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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적 경험



프레데릭 그로

번역: 배세진 / 파리 7대학 '사회학 및 정치철학' 학과 박사과정


[옮긴이 앞 글이 텍스트는 프레데릭 그로(Frédéric Gros)가 집필한 미셸 푸코”(Michel Foucault)(Que sais-je 총서 3118호 제4, PUF, 2012) 중 1장의 일부분인 문학적 경험’을 번역한 것이다이미 편집 중에 있는 이 책은 곧 도서출판 킹콩북에서 2018년 초에 출간될 것이다게재를 허락해준 킹콩북의 심성보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문학적 경험


1)  작품의 부재


앞에서 살펴본 이런 경험 안에서 인간과학은 자신의 역사적 출현의 표면뿐 아니라 이론적 붕괴의 지점 또한 발견한다푸코는 흥미롭게도 글쓰기의 실천 안에서 이런 경험의 모델을 찾아야 했는데그는 글쓰기의 실천을 문학을 구성하는 바로 간주하기를 원했다사르트르와 마찬가지로푸코는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제기한다그리고 1961년에서 1966년 사이에 집필한 일련의 논문을 통해서 그는 이 질문에 답하려고 한다(이 문헌들은 쓰인 것과 말해진 것Dits et écrit 1[각주:1]에 다시 실렸다). 푸코에게 문학은 언어의 존재를 표상한다고 말할 수 있다그러나 이 언어의 존재는 개념을 통해서는 규정될 수 없는데왜냐하면 그것은 이론적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언어의 존재는 오히려 경험의 살아 움직이는 움푹 패인 홈즉 글쓰기의 경험을 지시하는 것이다그렇기 때문에 푸코는 언어의 존재를 사유하기 위해 정확한 개념적 결정요소보다는 일련의 의미지에 의존하는 것이다첫 번째 이미지는 거울이라는 이미지다(p.254-255, 274-275). 문학은 거울에서와 마찬가지로 단어가 오직 단어만을 참조하고언어가 오직 언어만을 말하며언어가 오직 자신의 증식prolifération 운동을 통해서만 지지되는 애매하고 심오한 장소를 가리킨다이것이 바로 문학의 무한함그 흐름의 무한정성이다푸코에게 문학은 중얼거림(p.255, 257, 299, 336), 즉 실타래(trame, 골자 또는 짜임)를 감는 것 말고는 그 무엇도 말하지 않는사물과 의미가 사라지는 순수한 언어적 고백이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단어의 운동을 지속의 운동혹은 의식의 흐름과 혼동해서는 안 될 것이다문학은 시간과 관련을 맺지 않는다(아마도 이것이 푸코에게 있어 문학과 단순한 이야기récit가 구분되는 지점일 것이다). 대신에 문학은 거울이라는 은유가 이미 암시하듯이 공간과 관련을 가진다(p.407). 글쓰기는 (적어도 사드Donatien Alphonse François de Sade와 스테판 말라르메Stéphane Mallarmé 이후로귀환의 굴곡진 구조(오뒷세이에서 율리시스는 기나긴 추방 이후 고향으로 돌아온다)최초의 약속의 실현이라는 굴곡진 구조(소설의 예언적 형식)기원과의 재회라는 굴곡진 구조(프루스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마지막 부분에서 글쓰기의 가능성을 발견한다)를 추적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시간의 고리는 글쓰기의 현재적 실천 속에서 느슨하게 풀린다글쓰기는 이제부터 [공간의거리를 산출하며(p.263-267, 273-276, 280-281), 바깥을 향해 열린다(p.521-526, 537-538). 하지만 글쓰기의 운동이 산출하는 공간은 텅 빈 공간이다이것은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두 개의 거울 사이에서 조직된 상상의 공간이며, “나는 쓴다”[라는 언표가촉발한 구멍이다문학적 언어라는 무한히 홈 패인 이런 공간 안에서모든 것은 오직 허구일 뿐이고(p.280, 524) 사물들은 그곳에서 오직 자기 자신에 대한 시뮬라크르일 뿐이다(p.275, 326-337). 문학작품은 결국 모든 존재가 둘로 나뉘는 하나의 부피(volume, 한 권의 책)를 형성하게 된다(p.261, 309, 340). 왜냐하면 우리가 이미 언급했듯이문학이란 언어가 자기 자신 안으로 침잠하는 것이고자기 자신을 무한히 참조하는 것이며언어를 말해야 한다는 자신의 소명에 대한 열망의 공백 내에 있는 것이라면이런 언어의 반복은 주석commentaire의 건조한 운동 ― 이것은 무한한 재개의 운동을 통해 언어의 순수한 의미를 끊임없이 복원하려고 한다 ― 이 아니라 이중체doubles 생산으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각주:2][각주:3] 예를 들어 문장은 사물의 상태를 이 상태의 유령과 같은 언어적 이중체doublet로 전달하며심지어는 문장 스스로가 다른 문장의 멀리 울려 퍼지는 메아리로 나타날 뿐이다(바로 이것이 루셀Raymond Roussel의 방식이다). 문학적 언어는 순수한 의미라는 수수께끼 같은 단일성을 항상 반영하는 깊은 심층을 가진 언어가 아니라 표면들을 증식시키는multiplication 언어이다.[각주:4] 문학에서는 일련의 이중체들만이 존재한다그러나 [심층이 존재하지 않는하나의 이중체가 아니라면 그 무엇도 절대 이중체일 수 없다일련의 이미지들 중 마지막 이미지는 살인과 위반이다문학은 소모와 소멸의 운동에 언어를 끌어들인다한편으로 모든 것을 남김없이 말해버리는 방식이든(그것은 자기 이후의 모든 문학적 기획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가 작품을 쓰는 바로 그 순간에 자신의 작품을 부인해 버리는 방식이든죽음은 (우리가 죽지 않기 위해서 작품을 쓴다는 의미에서문학의 단순한 구성적 장애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그에 못지않게 글쓰기의 근대적 경험을 깊숙이 관통한다문학은 언어에 의해 살해되고(랭보Arthur Rimbaud는 아카데미 언어를 거부한다), 말해진 것에 불과하며(말라르메Stephane Mallarmé는 시적 언어를 통해서 세계를 부정한다), 결국에는 글을 쓰는 주체 그 자체가 된다이것은 글쓰기 안에서 주체가 자기 자신을 실현하거나 재발견하는 경험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박탈당하는 경험을 한다는 뜻이다다시 말해 주체는 자신의 구성적 통일성을 경험하는 대신에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분열된다바타이유는 말들의 익명적 도취 속에서 주체를 폭파하고(p.243), 블랑쇼는 순수한 무변화monotonie를 위해서 주체를 소멸시키고(p.521), 아르토는 주체를 파열시키고 다수의 울부짖는 육체만을 남기며(p.522), 클로소프스키 소설에서는 주체가 끝없이 증식démultiplication한다(p.377). 하지만 글쓰기라는 행위를 하는 주체의 이러한 소멸은 아마도 작품의 중심 자체에 있는 더욱 내밀한 부재즉 품 자체의 부재가 초래하는 간접적 결과일 뿐일 것이다푸코는 상당히 까다로운 주장을 펼친다그러니까 작품은 작품의 부재에 의해서 위협당하지만이런 부재를 통해서 우리에게 도달할 것이다근대의 문학적 글쓰기는 푸코가 볼 때 신성한 말이나 과거의 문헌적 전통에서 자원을 취하지 않는다근대의 문학적 글쓰기는 자신을 선행하고 또 지탱하는 부재(rien, )에서 유래한다이것은 휠더린Hölderlin이 신들의 우회라고 언급했던 것이고(p. 201), 라포르트Laporte가 대상 없는 순수한 기다림이라고 말했던 것이고(p, 265), 블랑쇼가 죽음의 세심한 공백이라고 지시했던 것이다(p.539). 쓰이는 것은 부재로부터 쓰인다다시 말해 작품은 작품의 부재에서 자신의 자원을 끌어온다문학의 이런 실현된 불가능성또는 언제나 이미 부인된 불가능성이 바로 푸코가 위반이라는 용어로 설명하려는 것이다(p.236-238).


여기서 알 수 있듯이 근대적 글쓰기의 존재 양식을 특징짓기 위해 푸코는 작품의 부재라는 개념을 끊임없이 사용한다그런데 그는 이 동일한 개념을 통해서 또한 광기를 지칭한다.[각주:5] 문학과 광기를 서로 만나게 하는 것은 푸코가 작품의 부재라는 기호 아래에서 파악하는 언어의 경험이다이것은 메시지를 전달할 뿐 아니라 그와 동시에 메시지의 해석 원리즉 읽기의 고유한 코드를 산출하는 수직적 언어의 경험이다망상은 ― 최소한 정신분석이 이해하는 망상의 경험에서 ― 말들(mots)을 정렬한다여기서 말들은 자신의 언표 속에서 랑그 – 말들은 이 랑그 안에서 언표를 언표한다 를 언표한다.” 다른 한편 근대 문학은 조금씩 언어로 변해가는데이 언어의 파롤은 (파롤이 말하는 바와 동시에그리고 파롤의 동일한 운동 속에서랑그를 언표한다그리고 이 랑그는 문학을 파롤과 마찬가지로 해독될 수 있는 것으로 만든다.”(p.418) 이렇듯 언표를 언표의 고유한 해석 코드로 환원하는 것은 말의 교환과 순환 작용을 사라지게 만든다반면에 이 지점에서 정신이상자의 망상과 문학적 글쓰기의 분산된 고독이 빛을 발한다.

 

2)  레이몽 루셀

 

그러므로 푸코의 모든 문학 관련 작업은 다음과 같은 주제의 성좌를 묘사하는 일이다거울거리공간공백죽음위반살인이중체표면광기사라짐깨어있음veille[불침번]시뮬라크르부피volume[]기원의 부재주체의 분열 등.[각주:6] 이런 주제 전체는 레이몽 루셀이라는 교향곡을 쓰기 위해 한꺼번에 소환되고 체계적으로 조직된다.[각주:7] 이 책은 (과도하게 겉멋을 부린다는 의미가 아니라찬란하게 빛을 발한다는 점에서 바로크적 글쓰기를 자랑한다이 책에서 우리는 가장 먼저 죽음과 이중체라는 두 가지 주제의 결합을 발견한다루셀은 나는 어떻게 책을 썼는가?Comment j’ai écrit certains de mes livres라는 제목의 글을 남겼다거기서 그는 자신의 글쓰기 방식 중 몇 가지를 설명하고 그가 죽기 전에 이 책을 출간하는 것을 금지했다. [이런 자전적 설명에도 불구하고] (문턱과 열쇠라는 장에서푸코는 나는 어떻게 책을 썼는가가 우리를 루셀의 저술들에 대한 해석으로 이끌고 갈 결정적 폭로(révélation, 계시)를 선사하기는커녕이 책의 첫 번째 효과는 루셀의 비밀들 전체를 곳곳에 흩트러뜨리고 루셀의 저술들에 대한 독해를 끝없는 불안에 휩싸이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루셀의 사후에 출간된 이 저술은 그의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비밀의] “열쇠가 아니다이것은 한편으로 작품의 이중체라는 이름으로 루셀 자신이 행한 시도 때문이다이 시도는 비밀을 폭로하는 원리가 아니라 작품을 증식하는multiplication 원리에 따른다그러니까 루셀의 이 사후 출간된 저술이 그의 창작 비밀을 밝혀준다고 한다 해도이 나는 어떻게 책을 썼는가』 자체가 루셀 저술들의 비밀을 드러내는 순간 그에 준하는 이 나는 어떻게 책을 썼는가』 자신의 비밀을 감추는 것은 아닐까이 저술이 글쓰기의 비밀을 밝혀냈다고 주장하는 바로 그 순간우리는 루셀의 작품을 독해하지 못하고 장애에 빠지는 것은 아닐까게다가 우리는 루셀 자신이 이 저술의 사후 출간을 요구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루셀은 자살하고그 이후 나는 어떻게 책을 썼는가?의 출간이 가능해진다이는 마치 저자의 죽음만이 작품의 투명한 원리를 확정하는 것처럼 보인다또한 우리는 루셀의 죽음이 그의 저작에 완결성을 부여하는 동시에 (일종의 열쇠가 되는 장처럼 저작 속에 기입되어제거불가능한 모호성을 또한 도입한다고 말할 수 있다.


루셀에게 이중체와 죽음 사이의 결합은 사후에 출간된 저술(나는 어떻게 책을 썼는가?)과 나머지 저작 전체의 관계의 수준에서만 출현하는 것이 아니다푸코는 이 관계를 루셀의 텍스트들 자체의 구성에서 파악하려고 한다특히 그는 젊은 시절에 쓴 소설에 초점을 맞춘다(당구대의 쿠션이라는 장). 여기서 루셀은 소설을 쓰면서 이야기의 첫 구절과 마지막 구절에 두 개의 문장을 배치한다(예를 들어, “오래된 당구대의 쿠션 위에 하얀색 문자가 적혀 있다les lettres du blanc sur les bandes du vieux billard”, “늙은 약탈자의 무리에 관해서 어느 백인이 편지를 남겼다les lettres du blanc sur les bandes du vieux pillard”). 이 두 개의 문장에서 루셀은 각각의 단어를 각기 다른 의미로 사용한다이를 위해 그는 마지막 문자의 하나의 단어만 바꾼다(그래서 첫 번째 문장은 당구대의 가장자리에 분필로 쓰인 기호들을 말해주며두 번째 문장은 약탈자 무리에 관한 어떤 백인의 편지에 관해서 말해준다). 여기서 작동하는 것[또는 놀이]은 결국 우리를 첫 번째 문장에서 마지막 문장으로 이끌 수 있는 하나의 이야기를 쓰는 것이다따라서 언어적 이중체(doublet)를 분리하는 공백 속에서글쓰기의 실천이 자신을 부피(volume, 한 권의 책)로 만드는 것이다하지만 이런 방식은 루셀의 위대한 산문들에서는 보다 복잡해진다(로쿠스 솔루스Locus Solus아프리카의 인상들Impressions d’Afrique). 루셀은 이중적인 의미로 단어를 계속 사용하지만이제는 그 단어들이 텍스트 속에서 더 이상 그 단어의 의미로조차 읽히지도 않는다(운과 이성Rime et raison이라는 장[각주:8]). 거기서 루셀은 의미의 유사성을 통해서 복수의 다른 단어들을 환기시킨다이런 복수의 단어들은 허구적 이야기fiction를 통해서 결합되어야 한다다른 한편 루셀은 기성의 문장을 가져와서 요소들로 분해한다이들 요소 역시 이야기를 통해서 결합되어야 한다따라서 나는 목재 담배 갑 안에 좋은 담배가 있어j’ai du bon tabac dans ma tabatière라는 문장이 이야기에 활용해야 하는 비취튜브파도오바드, -으로외통 장군jade, tube, onde, aubade[각주:9], en, ma, etc으로 분해된다이것은 마치 우리가 언어의 분해와 탈구에서 출발해야만 글을 쓸 수 있는 것과 같다모든 경이로운 구문(여명광산크리스탈이라는 장에서 푸코가 연구한 언어 장치), 이 모든 놀라운 이야기루셀은 이것을 기상천외한 상상력이 아니라 단어들의 세심한 직물에서 길어온다단어들의 촘촘한 직물에서 이야기의 또 다른 실타래(trames, 골자 또는 짜임)가 풀렸다가 감기는 것이다우리는 푸코가 어떻게 여기서 이중체와 죽음이라는 두 가지 주제를 결합할 수 있는지 이해하게 된다사실상 글쓰기의 경험 전체는 반복의 표지signe 아래 자리하는 것으로 보인다다시 말해 글쓰기는 언제나 이미 말해진 것을 반복하는 일이다우리는 결코 기원에서 말한 적이 없으며존재Être를 개시하는 단어를 말한 적이 없다문학은 단어들로 닳아 해진 주름을 다려서 펼 뿐이다언어 이전에는 언어 자신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푸코에 따르면 이런 닫힘(이것은 폐쇄라기보다는 오히려 끝없는 고백언어 안으로 침잠하는 것이다)은 동시에 죽음의 두께volume를 규정한다왜냐하면 문학적 글쓰기 안에서 언어는 자기 자신을 고갈하려 하기 때문이다왜냐하면 저자는 작품에 희생당한 자기 자신을 발견하기 때문이다왜냐하면 글쓰기의 매혹적인 기다림에서 우리는 죽음의 열려진 공백에서만 기호들이 자신을 반복하고스스로에 관해 성찰하고복종하며둘로 나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언어에는 이런 갑작스런 죽음의 공백이 언제나 존재한다이 공백에서 곧바로 별들의 탄생이 이어진다죽음과 탄생바로 이것이 시의 거리를 규정한다.”(p.62).[각주:10]



  1. 『쓰인 것과 말해진 것』은 푸코의 논문, 서문, 대담을 모은 책이다. 본문의 모든 인용은 이 책에서 가져온 것이다. [Michel Foucault, Dits et Écrits, tome 1 : 1954-1975, 1994; Michel Foucault, Gallimard, Dits et Écrits, tome 2 : 1976 – 1988, Gallimard, 1994.] [본문으로]
  2. 주석에 관해서는 『임상의학의 탄생』, p.XII-XIII, 『말과 사물』, p. 55-56, 『담론의 질서』, p.27-28을 참조하기 바란다. [본문으로]
  3. [여기서 double는 이중, 이중체, 분신, 이중의미 등으로 번역이 가능한데, 이에 대한 설명으로는 『문학의 고고학』(미셸 푸코 지음, 허경 옮김, 인간사랑, 2015)의 옮긴이 서문(p,9-10)을 참조할 수 있다. “푸코는 『광기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서로 겹쳐지며 스스로를 드러냈던 두 영역, 과학적 의학과 서정적 문학을 1963년 두 권의 책, 곧 의학의 영역을 다룬 『임상의학의 탄생』과 프랑스의 한 소설가를 다룬 문학비평서 『레몽 루셀』을 출간한다. 푸코가 출간일자마저도 같은 날로 조정하고자 했던(실제로는 전자가 4월, 후자가 5월에 발간된다) 이 두 권의 ‘쌍둥이’ 책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이중-분신(double)의 사유이다. 이중 혹은 분신의 사유란 ‘언어의 이중적 존재론’이라 말할 수 있는데, 이에 따르면, 하나의 언어가 언어로서 기능할 수 있는 조건(condition)이란 언어의 메타적(meta) 기능, 곧 논리적 현실적으로 스스로에 대하여 스스로를 지칭, 지시하는 기능(fonction)으로서, 이때 언어는 내재적인 동시에 메타적인 것이고, 내적인 동시에 외적인 것이자, 돌아옴인 동시에 떠남이며, 안인 동시에 밖이 된다(그럼에도 일정한 강조점은 늘 후자 쪽에 놓여 있다). 그리하여, 가장 먼 것과 가장 가까운 것은 만나게 된다. 이는 언어를 어떤 본성(nature) 혹은 본질(essence)을 갖는 하나의 고정된 실체(substance)가 아닌 ‘늘 작용하며 작동하는 하나의 기능’으로 바라보는 관점이다. 언어의 기능은 스스로에 대해 이중화되면서 스스로로부터 달라지는 것, 곧 자기와의, 자기로부터의 차이화 작용(différenciation)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러한 언어의 놀이는 동일자(le Même)가 아닌 타자성(l’Autre)에, 동일성(identité)이 아닌 차이(différence)에 기반한 것이다.”] [본문으로]
  4. 그래서 푸코는 루셀을 읽는 한 가지 독해 방식에 반대한다. 루셀의 텍스트를 열쇠가 있는 수수께끼로 간주하는 독해방식 말이다. 그러나 루셀의 텍스트에는 그 이면에 우리가 발견해야 할 어떤 비밀, 또는 객관적 진실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푸코의 언급에서 이런 명확한 수수께끼의 해답을 곧바로 발견할 수 있다. “루셀의 언어에 대한 모든 심층적 독해[루셀 텍스트의 이면 또는 심층에서 무언가를 발견하려는 독해]는 “비밀”을 객관적 진실의 측면에 위치시킨다. 하지만 루셀의 언어는 바로 그 언어가 의미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다.”(p.210) [본문으로]
  5. 광기를 작품의 부재로 규정하는 것에 관해서는 다음을 참고하라. 『광기의 역사』, p.555-557, 『쓰인 것과 말해진 것』, 1권, p.162-163, 412-421. 블량쇼는 『무한한 대화』에서 이런 규정을 자신의 것으로 다시 취한다. M. Blanchot, L’entretien infini, Gallimard, 1969. [본문으로]
  6. 우리는 여기에 간극lacune(p.242, 284), 미로(p.212, 253), 먼 곳(p. 251, 525), 화살(p. 280, 337) 등을 추가할 수 있다. [본문으로]
  7. Michel Foucault, Raymond Roussel, Gallimard, 1963. 피에르 마슈레Pierre Macherey의 아름다운 서문이 들어있는 폴리오/에세(Folio/Essai) 총서판을 현재 구해볼 수 있다. [본문으로]
  8. [불어에서 sans rime ni raison이라는 표현은 운율이 맞지 않아 글이 아름답지 않고 그만큼 어색하고 논리적이지 않다는 뜻이다.] [본문으로]
  9. [누군가에 대한 존경의 뜻을 담아 그 사람의 집 앞에서 새벽 또는 아침에 음악을 연주하는 행동을 말한다. 확장하여, 이렇게 누군가를 존경해 그 사람의 집 앞에서 새벽 또는 아침 시간에 연주하는 음악의 장르 자체를 지칭하기도 한다.] [본문으로]
  10. 그러나 몇 년 뒤 브리세J. P. Brisset의 망상적 글쓰기는 푸코에게 더 이상 부정적 존재의 산출로 보이지 않는다. 대신에 그것은 전쟁 장면의 혼란스럽고 갑작스런 출현으로 보인다(『쓰인 것과 말해진 것』, 2권, p.13-25).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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