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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의 성별/유형(genre)

에티엔 발리바르

번역 서영표 | 사회학자

이 글은 2010년 5월 14~15일 이탈리아 파도바(Podova) 대학에서 개최된 로산나 로산다(Rossana Rossanda) 헌정 국제학술대회 <여성, 정치, 유토피아>에서 'Le genre du parti. Féminisme et communisme: un recours utopique?'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것이다. 지금 공개하는 번역문은 패트릭 킹(Patrick King)과 아사드 하이더(Asad Haider)가 'The Genre of the Party'(2017)라는 제목으로 Viewpoint Magazine에 등록한 영역본을 기본 대본으로 삼되, 불어 원문을 참조하였다.

나는 프랑스어와 이탈리어 모두에서 나타나는 언어유희의 위험(당의 성별genere는 무엇인가 또는 어떤 유형genere의 당인가?)을 무릅쓰고 ‘당의 성별/유형(genre)’라는 제목을 선택했다[각주:1][각주:2]. 나와 로산나 로산다를 이어주고, 간접적으로는 마리오 트론티(Mario Tronti), 루치아나 카스텔리나(Luciana Castellina),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 참석했을 법한 다른 많은 사람들을 이어준 정치적 개입의 형태에서 무엇이 문제인지, 그리고 무엇을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는지 숙고할 기회를 마다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아마 핵심적 문제일 정치적 주체성에 관해서는 곧 후술할 것인데, 이 문제를 다루면서 마르크스주의 사상은 한계에 직면하고 종국에는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 이 한계란 당-형태, 그리고 당-형태와 다른 ‘형태’(‘여성운동’, 결과적으로 페미니즘의 형태) 사이의 갈등적 관계다.

이러한 접근에서 전개되는 수사법은 이중적이다. 하나는 은유인데, 여기에서 장르성별(gender) 또는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성적 차이를 의미하는 동시에, ‘당’이라고 불리는 제도, 정치적 행위, 집합적 주체성의 유형(type)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환유인데, (다시 한 번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에서, 2차 대전 후 우리 정치사의 유사함 때문에) 당이라는 보통명사는 사실 하나의 당, 곧 공산당을 가리킬 따름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가 20세기의 주요 공산주의 ‘대중’ 정당들의 ‘형태학적’ 독특성과 이들을 움직인 모순들에 대한 관심을 목격하지 않았다면, 이런 식의 한정은 자의적이고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물론 이런 관심은 현재 진행 중인 정치의 위기를 성찰하려는 보다 일반적인 시도와 분리할 수 없는데, 이 위기는 민주주의의 위기인 동시에 시민성/시민권의 위기로 나타나고 있고, 지역과 세계 수준에 이중으로 속한 ‘당들’과 (사회) ‘운동들’ 모두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특정한 인물들을 불러내는 이 논쟁에 대한 모든 의견 제시는 신중하게 역사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즉 시간적․공간적 위치를 부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나는 ‘당-형태’라는 표현이 마르크스주의 지식인 서클들에서 출현한 것으로 보이는 시점에 당-형태를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을 특징짓는 몇몇 문헌의 재독해에 의거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당시는 1970년대~80년대의 전환점이라 할, 그 자체 결정적인 정세였는데, 이때 이탈리아에서는 ‘역사적 타협’의 경험이 비극적으로 종식되고, 프랑스에서는 위로부터 민중적 통일을 시도한 ‘공동 강령’이 최종적으로 실패한 바 있다. 또한 당시는 68년 5월과 뒤이은 ‘기어가는 5월’(maggio rampante)이 유발한 에너지가 소진에 이른 것으로 보이는 시점이기도 했다.[각주:3] 나는 문헌 세 편을 다룰 것인데, 이 문헌들의 발표 시점은 거의 같지만 내용은 각각 사뭇 다르다. 루이 알튀세르의 발표문 「유한한/제한된 이론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Il marxismo come teoria finita)는 1979년 『일 마니페스토』(Il Manifesto)에 게재되었고,[각주:4] 1979년에 발간된 로산다의 책 『타자들』(Le altre)은 1978년과 1979년 사이 (활동가, 지식인, 정치 및 노조 지도자 들의 참여로 만들어진) 제3라디오(RadioTre) 프로그램에서 로산다가 보도한 내용들을 엮은 것이다.[각주:5] 마지막으로 마리오 트론티의 1980년 저작 『정치의 시간』(Il tempo della politica)은, ‘당-형태’라는 용어가 (어쨌든 체계화된 방식으로) 처음 등장한 바로 그 문헌이다.[각주:6] 논리적이고 역사적인 이유에서 나는 알튀세르, 트론티, 로산다 순으로 논하고자 한다.

위기에 대한 세 개입: 알튀세르, 트론티, 로산다

알튀세르가 이야기한 것은 ‘정치의 위기’나 그 제도적 형태들의 위기가 아니라 ‘마르크스주의의 위기’인데, 그에게 있어 이는 본질적으로 마르크스주의 내 이론과 정치 간 관계의 끊임없는 위기이다. 즉 마르크스주의에는 (늘 예견불가능한, 역사에 개입할 당시의 정황에 의해, 강제되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규정되는) 스스로의 현실 정치에 대한 이론이 없고, 따라서 자신의 이론(즉 공산주의로의 이행이나 ‘혁명’의 기획)에 부합하는 정치도 더 이상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은 마르크스주의 전통 일반을 겨냥하는데, 그 뿌리는 마르크스 자신의 일부 ‘한계’, 특히 그람시와 그 유산에서 찾아야만 한다. 그람시가 나쁜 마르크스주의자라서가 아니라, 위기의 원인들과 결과들을 사고하려고 영웅적으로 노력하는 와중에서, (헤겔에서 기원한) 정치사회시민사회의 ‘부르주아적’ 구별을 강화하기 때문이다. 반면 알튀세르에 따르면 이 구별은 확고히 폐지되어야 할 것이었다.[각주:7] 알튀세르가 ‘유로공산주의’ 전략의 표명 이후 벌어진 논의에서, 피에트로 잉그라오(Pietro Ingrao)가 ‘일반화된 정치화’라고 불렀던 것에 찬성한다고 밝히고, 일반화된 정치화가 ‘종내 당 자체의 조직 형태를 문제삼을 것’이라고 선언한 까닭이다.[각주:8] 이 위기는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의 위기’(앞의 책, p.20)인데, 내가 이해한 바에 따르면 이는 맥락상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l'autonomia del politico)에 관한 이론화들을 비판하는 것이라기보다, 사회운동들(또는 ‘대중 운동들’) 자체에 대한 정치의 자율화, 정치 조직들의 작동방식 및 그 논의 절차 등을 비판하는 것이다.[각주:9] 알튀세르가 ‘국가 외부에 위치한다’(fuori dello Stato)는 의미에서 자율적일 (대중적) 공산당을 동시에 옹호할 수 있는 까닭이다. 이 당의 정치 형태는, 다른 말로 하면 (부르주아) 국가의 논리에 대해 발본적으로 이질적이거나 외재적일 것이고, 국가의 작동과 독립적일 것이라고 알튀세르는 주장한다.[각주:10]

잠시 이 정식화에 집중했으면 하는데, 알튀세르의 입장이 지닌 모든 급진성과 다의성이 여기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미공간 상태이던 원고 「자신의 한계들 속에 있는 마르크스」에서 이 논리가 상세하게 전개되는데, 이를 보면 정식화의 의미를 명확히 하는 데 도움이 된다. 여기에서 강조되는 관념은 결국, 부르주아 국가의 특징이 계급투쟁에 대한 외재성이라는 것이다. 알튀세르는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전통적 개념, 곧 ‘국가 장치의 자율화’를 취한 후 이를 국가(국가 형태)의 ‘실정적’ 특징으로 만들려고 시도하는데, 이 특징은 소외의 강화뿐만 아니라 종별적인 ‘효과성’(efficacy)의 원인이 된다.[각주:11]

이는 국가가 자신이 ‘정치 외부에’ 있다고 생각한다는 뜻인가(공산당이 ‘국가 외부에서’ 조직화에 성공함으로써 ‘정치를 하는’(fare politica) ― 국가는 당을 억압하거나 국가 내부로 흡수함으로써 당이 정치를 하는 것을 막으려고 획책한다 ― 능력이 있는 것으로 생각할 동안에)? 그보다는 ‘정치’ 개념 자체의 한복판에 근본적인 다의성을 기입하는 것이 중요한데, 정치 개념이 포괄하는 의미작용이나 실천/관행은 지배계급과 혁명계급에게 동일할 수 없다는 것이다.[각주:12] ‘정치’의 이중적 의미는 환원불가능한 경향들 사이의 갈등을 드러낼 수 있게 해 주는데, 알튀세르는 이를 마르크스주의적 용어로 설명하려고 시도하면서 ‘재생산’(생산조건들의 재생산, 더 일반적으로는 사회적 관계들의 재생산)의 문제와 결부시켰다. 모든 재생산은 실은 사회세력들 사이의 갈등, 더 들어가자면 역사적 경향들 사이의 갈등이 이루어지는 장소다. 한 경향이 현존하는 판세를 동일하게(심지어는 ‘확장된’ 방식으로) 갱신하는 것을 지향하는 데 반해, 다른 경향은 (결과적으로 ‘비(非)재생산’인 ‘재생산’의 역설을 드러냄으로써) 지배-효과의 중단을 지향한다.[각주:13] 이 영구적인 투쟁의 결과는 근본적으로 ‘우발적’일 것이다. 즉 동일한 상태로 재생산되리라는 보장이 없고, 계기가 된다면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의 와해로 이어질 수 있으며, 이를 지도하거나 조직하는 것은 헤게모니를 재생산하는 기계에 내재한 여타의 ‘당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절대적으로 독특한 ‘대중정당’일 것이다.

(미완성 상태임을 잊지 말아야 하는) 이러한 구성이 완전히 동어반복이 아닌지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공산당이 부르주아 계급 지배의 장치들을 와해시킬 수 있는 것은, 공산당 자신이 지배의 도구들을 통치하는 자들과 상반된 원리들에 따라 작동하는 한에서, 따라서 환원불가능한 상태를 유지하는 한에서라는 것…. 혹자는 정치의 구조적 제약들이 불안정해지는 지점이자 이들을 역전시킬 수 있는 지점, 곧 재생산의 ‘순환’이 자기 자신의 한계들에 봉착하는 지점을 (이론적으로) 특정하려는 시도로써 이들 제약에 영향을 주는 ‘작업’에 주목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특정한 정치적 경험에 근거한 이 이론적 작업에서, 정치적인 것(le politique)은 절대적으로 동질적인 상태에 머문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특히 페미니즘이 대표하는 이질성의 차원은 여기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다(어쨌든 아무런 특정적 역할도 하지 않는데, 왜냐하면 제3인터내셔널[코민테른] 출신인 공산주의 조직들에서 통용되는 (‘대중정당’, ‘대중운동’ 같은) 정전(正典)적 표현 중에 ‘대(對)여성’(envers les femmes) 정치 역시 포함된다는 것을 늘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인데, 이는 어찌 보면 페미니즘이 정치에 제기한 문제를 오인한 가장 기막힌 표현이다).[각주:14] 어떤 이들은 여기에서 회고적인 전기적 고찰과 (그 시절 마르크스주의 전통에서 여전히 널리 공유되던) 일정한 순응주의라는 (그 자체로 한탄스러운) 기정사실을 단락시킴으로써 ‘징후적 독해’를 수행하고 싶은 유혹을 애써 누를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징후가 집중되어 있는 곳은 ‘재생산’이라는 용어의 지속적 용법이라는 점을 관찰하게 될 것이다. 알튀세르(와 그의 제자들)는 마르크스가 자본의 구조적 차원을 분석하기 위해 사용한 말에 다른 의미 역시 있으며, 이 의미는 성욕과 ‘생명’, 따라서 역사적으로 존재한 사회들이 주로 여성들에게 한정한 역할―생산자, 전사, 시민, 그리고 필요한 경우, 지식인, 예술가나 정치가 들을 낳는 임무를 짊어진 어머니라는 역할―과 결부된다는 사실을 전혀 자각하지 못한 척 했다…. 그 시절 알튀세르 주위에 있던 단 한 사람도 이 다의적인 타자가 ‘정치’ 구상 전체를 다시 문제삼을 수 있다는 것을 알튀세르에게 깨우쳐 주지 못했던 것인지 이 대목에서 자문해 볼 만하다.[각주:15]

이번에는 똑같이 도식적인 방식으로 마리오 트론티가 1980년에 제시한 정식을 살펴보자. 이 때 그가 말한 것은 ‘마르크스주의의 위기’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위기’, 더 정확히 말하면(Il tempo…, p.43) 자본주의적 위기다.[각주:16] 분명히 하자. 이는 ‘경제적’ 위기가 아니라 정치적 위기를 의미하는데,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는 쉽게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그 ‘조건’은 경제적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생산관계들의 역사에 속하는데, 노동자계급의 투쟁들을 자본주의의 발전 안으로 통합하는 특정한 모델의 위기이기 때문이다. 또는 차라리, 계급갈등을 한 가지 산업화 모델(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구성 안에 통합함으로써 계급갈등을 ‘관리’하는 양식의 위기라고 말할 수도 있는데, 이 양식은 1930년대 (뉴딜과 함께) 미국에서 탄생하여 이후 유럽으로, 특히 1960년대 이탈리아 같은 ‘정치적 실험실’로 수출되었다. 트론티는 케인스주의 국가를 ‘부르주아 정치의 마지막 고전적 형태’(ultima forma classica della politica borghese)로 정의하는데, 여기서 문제는 헌정적 의미에서의(설사 ‘물질적’ 헌정으로 이해하더라도) 국가의 모델이라기보다 (사회적 전쟁이라는 의미에서) ‘전술적’ 모델로, 이 모델 안에서 부르주아지의 정치적 역량이 전개된다. 그러나 이 모델은 공적 공간 곳곳에서 분출한 저항운동들이 증거하듯, 1960년대 말이 되면 위기에 빠진다.

정치적인 것에 의해 통치되지 않는 사회적 도약은 늘 세대 간 단절을 야기하고, 계획이 없는 발전은 늘 계급 적대를 증대시키는 효과를 초래한다. 청년과 노동자 들은 체계의 대안이 될 수 있는 새로운 단결의 신호를 보냈다. 학생들은 대학을 떠났고, 노동자들은 공장을 떠났다. 이 거대한 은유는 번역되지도 않았고, 해석되지도 않았다. 그러나 우리 시대 계급투쟁의 수준은 여기에 이미 쓰여 있다. 사회적 적대의 새로운 세력권 안에 자리잡은 정치적 중심성이 그것이다.[각주:17]

이 맥락에서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l'autonomia del politico)이라는 구호는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내가 보기에는 두 가지를 뜻한다. 한편으로, 경제적인 것의 자율성의 (비가역적인? 또는 ‘위기’의 계기와 연결된 정세적인?) 종식, 따라서 경제적 발전과 산업적 변혁이 계급투쟁에 선행하는 ‘물질적 토대’를 구성할 것이라는 착각의 종식을 표시한다.[각주:18] 다른 한편으로, 유일한 혁명적 주체, 곧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중심성을 나타낸다. 그러나 정확히 이 지점에서 위기는 자신을 낳은 조건들을 변혁하는데, 위기가 초래한 변동이 ‘노동자 당 형태의 위기’라는 식으로 주체적 차원에 반영되기 때문이다.[각주:19]

트론티가 우리에게 말하는 바, 이는 한편으로 공장에서 자본이 행사하는 권력 형태들을 전복하는 노동자들의 획득된 역량, 다른 한편으로 ‘노동’ 범주의 의미작용에서 발생 중인 (혁명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급진적 변혁―새로운 노동 분할[분업]만이 아니라, 생산적 노동과 비생산적 노동 간(따라서 아마도 산업노동과 가사노동 간), 그리고 육체노동과 지식노동 간(따라서 아마도 생산과 교육 간) 전통적 분할들을 폐지하는―이 연접된 효과다. 이제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 너머로’(oltre l'autonomia del politico)(Il tempo, p.71) 한 발 더 나아갈 필요가 있어 보인다. 노동이 ‘비노동’이 될 때(또한 비노동 역시 ‘노동’이 될 때), “노동은 정치적 범주가 되었다”(il lavoro e diventato una categoria della politica).[각주:20] 그리고 당연히 제기되는 질문은, 어떤 의미에서 ‘공산당’은 여전히 ‘계급정당’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아마도 공산당은, 더 이상 사회학적으로는 ‘노동자 당’이 아니지만, 스스로의 한계들을 끊임없이 넘어서는 ‘확장적’ 계급의 당이라는 ‘노동자 계급의 당’의 변증법적 모순을 사고(하고 조직)하는 데까지 도달해야 할 것이다.

다시 한 번 이 대목에서 트론티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회고적으로) 제기하고 싶어진다. 이 변증법에서 여성들은 어디에 있으며, 여성운동은 어디에 있는가? 알튀세르의 저작과는 반대로 여성들은 결코 부재하지 않고, ‘개방 정당’(parti ouvert)의 건설에 가담하게 되어 있는 ‘조직된 운동들’이라는 범주 안에 포함되는데, 여기서 개방 정당이란 어떤 점에서는 이 조직된 운동들의 마주침 자체와 다르지 않다.[각주:21] 트론티는 이런 유형의 세 ‘운동’을 거론하는데, 이들의 중요성은 68년 이후의 정세에서 증명된 바 있다. 이들 운동의 교차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회학에 의지하지 않으면 안 되지만, 문제는 정치적 범주이지 사회학적 범주가 아니라는 것은 즉시 알 수 있는데, 노동자운동(또는 노동자투쟁의 새로운 정치화), 부르주아 사회의 권위주의 공리주의에 맞서 반역을 일으킨(이런 의미에서 지적으로 ‘공산주의적인’) 청년의 통일된 운동, 그리고 남성 권력의 오랜 가족적(가부장적) 종속과 새로운 형태들(부르주아적)―이는 자본주의가 (‘평등의 심급’을 이루는, 여성의 노동시장 진입을 통해 특히) 초래한 정치적 역설이다―에 맞서 개인과 집단 차원에서 일떠선 여성해방운동이 그것이다.[각주:22] 하지만 여기에서 여전히 범주들의 위계가, 적어도 (운동과 당 ‘형태’의) 형태적 수준에서 작동한다는 의심은 남아 있다. 가부장적이고 부르주아적인 가족에 대한 비판은 전복해야 할 사회적 지배와 계급 관계의 견지에서 사고되고, 조직 형태들은 청년이나 학생 운동이 유효성을 증명한 ‘통일적’(unitaire) 모델에 근거하여 사고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트론티가 공산주의 정치의 민주적 성격을 확고히 하기 위해 (페미니즘까지는 아니더라도) 여성운동에 부여한 특별한 중요성에 유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숙고해 본다면, 이는 정확히 같은 시점에 로산다가 조직한 대화들을 떠받치는 관심사와 무관하지 않으며, 따라서 (좀 더 ‘경험적’으로 보이는) 이 논의들과 당-형태의 위기에 대한 반성을 이어주는데, 여기서 당-형태의 위기란 “토의와 결정, 열정과 규율, 참된 전투성과 참된 지도력을 함께 유지해야 하는 필연성과 어려움”으로서, 그 모순은 “오늘날 공산주의 운동과 근대 민주주의를, 단호하고 결정적인 방식으로 대면하게 만든다.”[각주:23]

우리는 이제 같은 시기의 세 번째 문헌에 이르렀다. 한 해 전에 녹음한 제3라디오 방송 내용에 기초해 1979년 로산나 로산다가 출간한 『타자들』이 그것이다. 내가 보기에 중요한 점은, 이 책이 집단적 저술이라는 사실이다. 이 책은 이미 그 자체로 정치적 경험/실험으로, 이 경험/실험을 통해 저자는 세대와 세대, 남성과 여성, 노동자와 지식인, 상이한 활동 형태들(공산주의자, 노조 활동가, 페미니스트) 사이의 마주침을 실험했다. 이 과정에서 로산다는 자신이 이탈리아공산당의 틀 안에서 과거에 전개한 정치 참여의 근거들을 다시 문제삼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가 분명하게 말한 또 한 가지 사실은, 내부로부터 이 참여를 전복할 수 있게 해 준 것은 <마니페스토> 그룹의 작업이 대표했던 ‘공산주의적 이단’이라는 점이다. “상층에서 기층에 이르는 여성들이 이처럼 가득한 정치 집단은 어디에도 없었다. 노련하고 기가 센, 무서운 여성들이었다 (…) 우리는 늘 정치적 그룹들 한 가운데 있었고, 과업에 있어서는 필적할 자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의사결정 과정에서도 고집이 대단했다.”[각주:24] 따라서 <마니페스토> 그룹의 ‘실천적/관행적 페미니즘’(어떤 면에서는 여성들이 ‘완벽한 남성들’처럼 행동했기 때문에, 모순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리고 (역시 모순에서 자유롭지 않은) 1970년의 『공산주의를 위한 테제들』의 내용을 고려한다면, ‘이론적 페미니즘’ 역시 말할 수 있을 것이다.[각주:25] 이 같은 갈등적이면서도 생산적인 경험/실험은 이후 언급되는 (민주주의적) 정치 형태의 위기라는 생각과 뚜렷이 대조되는데, 이와 관련하여 로산다는 전후(戰後) 정치에 참여한 여성들의 환멸과 (공산당에 한정되지 않는) 당들 바깥으로의 퇴각, 정치 제도들의 가치와 여성들의 가치 사이의 갈등의 증폭을 묘사한다. “여성들은 당들에서 퇴각했다(rifluiscono). 나의 당[공산당]에서 퇴각했던 것처럼. 당들이 제공한 관계와 소통의 형태들, 따라서 정치 형태들, 착취자와 피착취자, 통치자와 피통치자의 공통 규약 안에서 더 이상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각주:26] 여기에서 엥겔스, 베벨(Bebel), 클라라 체트킨(Clara Zetkin), 또한 그람시에게서 유래하는 논지, 곧 여성들의 정치 참여를 정치의 민주적 발전의 기준으로 삼는 논지를 비판적으로 적용하지 않을 수 없다.[각주:27] 다만 여성들을 정치에서 공식적으로 배제하고 ‘수동적 시민’의 지위로 떨어뜨리며 필요하다면 폭력을 동원하는 상황과, 여성들을 ‘호출’하기는 하지만 여성들이 자신들의 목소리가 들리게 할 수 없고 자신들의 요구를 인정받게 할 수 없어서 결국 떠나는 상황은 구별될 필요가 있다. 배제, 퇴각, 이탈이라는 용어들의 근접성에 유의하면서 말이다.

이제 우리는 책 전체를 관통하는 3중의 변증법을 이해할 수 있다.

1) 우선 이방성(異邦性, l’étrangeté)[각주:28]의 변증법이라고 우리가 부를 수 있는 것이 있다. 정치에서 여성은 ‘이방인’인데, 이 처지를 공산주의 내부로 페미니즘의 이해관심을 도입하는 ‘비밀요원’(agent secret)의 처지에 비견할 수도 있다.

여성은 당을 떠나거나, 과거와는 매우 다른 방식으로 당으로 되돌아온다(여기에서 리디아 미나파체Lidia Menapace가 도입하는 주제가 매우 다양한 정치적 입장을 가진, 하지만 모두 페미니즘의 경험으로 결속되어 있는 여성들에 의해 재차 채택된다는 것을 앞으로 보게 될 것이다). 냉정하고 세속적인 눈으로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여성으로서 갖는 목표들을 우리의 당들 내부에서 실현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은 알고 있지만, 사회적 관계들을 확보하려면 내부에 머무르는 것이 유리하다고 말이다. 페미니즘의 비밀요원처럼, 포기하지 않고 경계를 유지하면서, 가능하다면 미소를 머금은 채 우리는 거기에 머물렀다.[각주:29]

여기에서 해방적 이해관심들의 이질성이 인정되는데, 그 기초는 (혁명적 정치가 포함되는 남성 지배가 빚은) 남성의 정치적 세계에 대한 여성의 타자성이다. 이 이질성은 (분업 같은) 단순한 경제적 용어나 (기능, 역할, 위계 등의) 단순한 사회적 용어가 아니라, 성욕과 성적 차이의 용어로 정의해야 하는데, 제도 정치(따라서 정당들)이 ‘감당’하지 못하는 것, 제도 정치가 관행적/실천적이고 지적으로 억압하는 것이 바로 이것[성욕과 성적 차이]이다.

2) 다음으로 평등과 불평등의 변증법이 있다. 자유의 가치가 우선한다고 주장하는 대담자(리치아 콘테Licia Conte)에게 답하면서 로산다는, 평등 범주가 정치적으로 더 전복적이라고 설명한다(권력의 담론들을 항상 사로잡는 ‘유령’). 이는 특히 여성의 관점에서 볼 때 더욱 역설적이기도 한데, 여성들은 실효적 평등을 거부당하는 일, 사회 내 직무와 권리에의 접근을 거부당하는 일에 익숙하고, (민주주의, 공화주의, 심지어 공산주의의) 평등주의 정치 담론들이 여성들에게 있어서는 성적 차이의 부인으로 기능하는 것을 목격하는 데 익숙한 바, 이 때문에 불평등의 존속에서 차이에 대한 권리의 보호가능성을 보는 역의 방향으로 흐를 수 있기 때문이다.[각주:30] 때로는 보수주의를, 때로는 반역을 유발하는 여성들의 ‘이중적 불신’에는, 그러나 정치에 있어 결정적인 질문 역시 담겨 있다. 개(인)성(individualité)과 그것이 함축하는 비결정성의 몫이 그것이다.[각주:31]

3) 마지막으로 ‘페미니즘’ 자체에 내적인 변증법이 있다. 이는 ‘1세대(first-wave) 페미니즘’과 ‘2세대(second-wave) 페미니즘’을 나누는데, 이로써 페미니즘 내부에서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사이의 오랜 사회적 분할을 재생산하는 것처럼 보인다.[각주:32] 하지만 2세대 페미니즘은, ‘사적인 것이 정치적이다’라고 긍정하는 단순한 방식이라기보다, 관개체적 관계들의 변혁에, 그리고 관개체적 관계들이 개(인)성 자체를 변용하는 방식에 초점을 맞추는 방식이다. 따라서 이는 정치에게 그 공식적 제도 및 일반적 정의의 장소와 다른 ‘장소’를 구성해 주는 방식이다. 하지만 로산다는 국가와 사회, 당들이 서로 관계를 맺는 갈등적 장이라는 ‘정치’의 넓은 정의를 단념하지 않는다. 이로부터, 최소한 외양상으로는, 그녀가 견지하는 담론들의 아포리아적 문제가 도출되는데, 페미니즘은 정치의 장소를 변화시키는 동시에 변화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그녀가 묘사하거나 대화를 나누는 페미니즘과 개인적으로 거리를 유지하는 방식인가(“페미니스트가 아닌 나”, p.74)?[각주:33] 그게 아니라면, 정치의 견지에서 볼 때, 페미니즘이 대표하는 것은 이미 실존하는 장소에 맞춘 자리바꿈이라기보다, 정치의 서로 다른 제도적 ‘장소들’에서, 위로부터 또한 아래로부터, 권력에 이의를 제기하고 ‘제자리에서 벗어나’(atopique) 전복을 일으키는 역량이라는 뜻인가?[각주:34][각주:35] 이렇게 해서 우리는 비밀요원이라는 은유 및 경계들의 은밀한 통행이라는 [비밀요원의] 임무와 재회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계급투쟁의 고전적 형태들의 ‘재생산’에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인지는 알지 못한다.

당-형태: 정치적 발생과 성적 구조

이 지점에서 (오늘날 우리가 보기에는, 정치 그 자체의 종언까지는 아니더라도, 정치의 특정 시기의 ‘종언’처럼 보이는) 한 국면의 불확실성을 표현한 문헌들의 단순 대결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각주:36] 객관적 면에서뿐만 아니라 주관적인 면에서도 결정적 효과들을 산출했던(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여전히 생산할) 역사적 형태인 당-형태를 둘러싼 논의의 시작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아마 이 ‘형태’는 일률적인 방식으로 실현되지 않았을 것이고, 불변의 상태로 존속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기는 해도 이 형태는 일정한 논리를 내포하고 있고, 서양에서는(그리고 ‘국민-형태’나 ‘학교 형태’처럼, 당-형태가 전 세계로 수출되었기 때문에, 서양 이외의 다른 곳에서도) 구조적 제약들에 종속되어 있다. 이 논점과 관련하여 나는, 논의에 따라 재정식화될 수 있고 진화할 수 있는 대목을 개략적으로 지시하는 데 그칠 것이다. 나는 세 가지 문제를 중심에 놓을 것인데, 이는 각각 당-형태의 계보학, 성적 차이의 견지에서 본 ‘당의 공산주의’의 특징, 마지막으로는 공산당의 민주화 시도에 페미니즘이 미친 모순적 효과와 관련된다.

우리가 오늘날 이해하는 바에 따르자면, 당-형태의 계보학은 사실 두 가지 설명 노선의 마주침(그리고 아마도 갈등)이 지휘하는 연구 계획 전체다. 이 연구 계획은 방금 말한 분할이 ‘현대의 군주’라는 개념의 용법을 완전히 지배한다고 말할 수 있을 『옥중수고』에서 잘 나타나는데, 여기에서 ‘현대의 군주’란 러시아 혁명 이후의 공산주의적 사건의 독특성을 해석하는 동시에, 유럽 파시즘과의 대결에서 창출된 새로운 역사적 조건에 따른 그 다양화를 상상하려는 시도 속에서 그람시가 채택한 수단이었다. 한편으로 노동자운동이 ‘경제적-조합주의적’ 단계에서 본래적 의미의 ‘정치적’ 단계로 이행하는 과정에 대한 반성 전체가 있는데, 이때 당은 마땅히 이행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 즉 당은 사회 안의 잠재적인 헤게모니 세력으로, 노동자계급에서 ‘유기적 지식인들’이 출현하는 것을 돕고, 자본주의 내 ‘세력 관계’의 역사성을 반성할 수 있는 집단적 역량의 구성으로 인도한다. 다른 한편으로 (‘능동’ 혁명과 ‘수동’ 혁명의 계기들이 이어지다가, 엘리트주의와 민중주의의 ‘민주적’ 융합이 일어나는 대중정당의 돌발에 이르는) 부르주아적인 국민적 정치 제도들의 형성에 대한, 한계를 지정할 수 없는 다학제적 조사 전체가 있다. 이 시각에서 보면, 공산당은 자신의 [조직]형태를 ‘발명한 것이 아니’라, 장구한 역사로부터 이 형태를 수용한 것이다. 자기 나름의 목적에 맞게 변형하였고, (당-형태가 한 축을 이루게 된) 일정한 ‘물질적 헌정’의 틀 안에 이를 기입하긴 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런 분할된 계보학이 당 형태 내부에서 성차별주의가 ‘유기적으로’ 현존하게 된 사실 자체를 어떻게 해명할 수 있느냐고 자문한다면, 우리는 심원하게 다르고 심지어 이질적인 현상들 쪽으로 이끌리게 된다.[각주:37] 한편으로 투쟁의 성애화(sexualisation), 따라서 투쟁의 ‘성별’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실이 있는데, 이는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사회학적 둔중함으로 전혀 환원될 수 없고, 정반대로 근대의 산업화와 함께 ‘발명된’ 것이다. 특히 노동자의 투쟁 형태들의 남자다움(파업, 봉기), 또한 이 투쟁 형태들에서 여성들이 수행하는 필수불가결한 지원―나는 돌봄(care)이라고 말할까도 했다―의 역할이 있다(이 지원은 물질적이고 정신적이며 심지어 감정적이기까지 하다. 파업노동자들에게 양식과 격려를 가져다주고, 그들의 용맹을 찬양하며, 민중문화 속에 연대의 가치를 대대로 영속시키고 전승하는 것 등).[각주:38] 다른 한편으로 정치적 대표의 남성적 독점의 온갖 형태들이 있고, 이로부터 정치적 수사와 행위의 남성적 특성 역시 유래하는데, 특히 준비에브 프레스(Geneviève Fraisse)는 그 이면을 서술하면서 이를 부르주아 시대에 여성들에게 부과된 공적 대표의 금지(따라서 공화주의적 의미의 ‘주권’에 대한 여성 참여 금지)라고 불렀다.[각주:39] (그 자체 여성노동자들보다는 남성노동자들로 … 이루어진) 노동자계급이 민주주의 정치 게임 안으로 진입한다고 해서, 이상의 모든 상황이 근본적으로 바뀐 것은 전혀 아니다.

하지만 혁명당이라는 관념의 순전히 제도적인 계보학에서 벗어나 인간학적 결정인들이 대두하는 사회적․역사적 실재들을 고려할 필요가 아마 있을 것 같다. 이것이 두 번째 문제다. 여기에서는 (정치가 조직화로써 집단적 의지를 형성하는 공간인) ‘당 형태’는 본질적으로 인간학적 차이들의 역사적 짜임이기도 하다고 주장하는 데까지 나아갈 것인데, 여기서 인간학적 차이에는 (그람시가 연구한) 육체노동과 지식노동의 차이뿐만 아니라 (그람시가 경시한) 성적 차이도 포함된다. 여기서 문제는 역사적 공산당들의 저항과 봉기의 역량을 만들어낸 요인을 이해하는 것이다(이 역사적 공산당들을, 과거에 쓰였던 ‘현존사회주의’라는 표현에 빗대, ‘현존[하는]’ 당들이라고 부르고 싶어지는데, 양자는 때로 갈등을 빚기도 했지만 유기적 유대를 유지했다). 당의 공산주의를 분석함에 있어 내가 보기에 가장 적절한 실마리는, 대항-사회(contre-société)라는 당의 기능과 대항-권력(contre-pouvoir)이라는 당의 전략 사이의 변증법이다. 잠재적으로 헤게모니적이기를 원했고, 현존 질서에 대한 도전으로 나타날 수 있던 운동이 실은 ‘하위주체적’(subaltern)이던 지점, 곧 운동을 규정하던 사회를 특징짓는 상징적 폭력의 형태들과 사회적 관계들을 따르고 재생산하던 지점이 어디인가 하는 질문이 날카롭고 분명하게 제기된다[각주:40]. 나로서는 두 측면을 구별할 작정인데, 이 두 측면은 프랑스와 이탈리아 공산당, 더 일반적으로는 서양 공산당들의 역사를 분석한 이들이 번갈아 제기한 바 있다.[각주:41]

‘대항-사회’는 말하자면, 규정된 국민적 조건하에서 나타나는 착취에 대한 저항 형태들, 투쟁 속의 연대 형태들, 국가와 교회와 부르주아 ‘사회정책’과의 대결 형태들의 집합인데, 이는 정당과 (유명한 스탈린주의적 용어법에 따르자면) 정당의 전달벨트들(노동조합, 청년조직, 문화단체, 자치체 들)이라는 형태를 취하고, 상대적으로 분리된 계급의 교육 및 문화를 발전시킴으로써 개인들의 부르주아적 사회화와 대립하는 사회화 모델을 창출한다. 현실에서 ‘즉자계급’으로 투사되고 즉자계급을 재생산하는 것은 ‘대자계급’이지 그 역이 아니라는 것, 따라서 마르크스가 이론화(하고 루카치가 완성)한 계급의식 형성의 이상적 도식과 정반대라는 것을 이해하고 싶다면 이상의 논점은 근본적이다. 이 같은 재생산의 궁극적 토대는, 프랑수아즈 뒤루(Francoise Duroux)가 일찍이 주장했듯, ‘노동자들의 가족’(famille des ouvriers)이다. 이때 속격[des, -의]은 이중의 의미를 갖는데, 즉 노동자 가족이기도 하지만, (남성) 노동자가 ‘소유하는’ 가족이기도 하다(그리고 이 가족을 수단으로 남성 노동자는 여성/아내(la femme) 역시 ‘소유한다.’).[각주:42] 바로 이 때문에 현실의 공산당에서(일부 예외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늘 제한적이고 취약했으며, 특히 지식인들의 경우에 국한되어 있었다) 사회적 구조가 직접적인 정치 행위, 어쨌든 의사결정에서 여성들을 배제하면서, 여성들을 계급의식의 수호자로 만든 것이다(부르주아 국가와 가족에서 여성들이 애국주의와 종교적 가치의 수호자가 된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이런 조건하에서 당-형태가 다양한 형태의 페미니즘과 근본적으로 양립불가능했던 것은 전혀 놀랍지 않은데, 왜냐하면 페미니즘은 성적 차이에 따라 할당된 집단적 가치들의 재생산이라는 역할을 의문에 부치면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은 따라서 ‘특정 계급의 적’이라기보다 ‘계급 일반의 적’이다(Le féminisme n’est donc pas tant « l’ennemi de classe » que « l’ennemi de la classe »). 하지만 현실 공산당들의 비극적인 역사에서는, 후자의 특성이 자주 전자의 특성으로 격하되었고, 페미니스트들은 노동자운동 내부에 침투한 부르주아의 첩자/요원(agents)으로 지목되었다(앞서 본 것처럼, 로산다와 그녀의 동지들이 반어적 역전으로써 혁명적 특성을 부여하려 했던 것이 이 첩자/요원이라는 멸칭이다).

‘대항-권력’의 의미는 다르다. 이는 자율적인 정치적 지도력의 형성을 통해 국가와 지배계급에 맞설 수 있는 당의 역량이다. 레닌이 기술과 처방을 절충하여 이론화한 그 형태는, 과학과 조직의 유기적 결합이다. 역사적으로 이 결합은 이론가인 동시에 조직가인 ‘지도자’의 형상에서 절정에 달하는데, 고전적 ‘대표’의 두 측면을 집약한 이 형상이, 20세기에는 (남성우월주의까지는 아니더라도) 전형적으로 남성적이라는 점은 쉽게 인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이론가와 조직가 들이 모인 ‘클럽’의 문을 힘으로 열어젖힌 여성들도 있었는데, 가장 두드러지고 비극적인 인물은 로자 룩셈부르크(Rosa Luxemburg)다.[각주:43] 이 때문에 지식과 권력의 남성적 특성에 관한 페미니즘의 일반론을 단순 반복하는 것보다는 좀 더 섬세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고, 지식의 권위 및 (지도가 특히 강력히 요구되던) 특정적 환경에서 이루어진 지식 전달과 결부된 상징적 폭력의 형태들을 분석하는 한편, 이 상징적 폭력의 형태들과 조직 내 ‘상식’의 생산 및 규율에 강박을 갖는 남근주의적 양상들의 결합을 분석하는 작업을 재개할 필요가 있다.[각주:44] 대항-권력은 대항-사회가 아니지만, 대항-사회의 형태들에 의존한 대항-권력의 전략은 결과적으로, 특정적 형태의 가부장제와 지적 ‘가부장제’, 가족의 강화와 ‘합리적으로’ 남성적인 권위에 대한 여성들의 동의, 그리고 활동가들(‘동지들’) 간의 형제애/우애(fraternité)―그 수혜자는 ‘자연히’ 남성이다―가 (재차 강조하건대, 문제, 저항, 예외, 전복적 표명 들이 없지 않았던) ‘현실’ 공산당들을 완전히 떠받치게 만들었다. 따라서 공산당에서 여성들은 ‘기층’에서 하위주체의 지위로 포함된 동시에 ‘정상’에서는 배제되었다(또는 중심에서 벗어난 지위에 놓였다). 이 같은 모순적 상황은 물론 역사적 사실이지만 구조적 특질이기도 한데, 이 구조적 특질이 표현하는 것은 당 형태가 중첩된 계급 관계와 성적 관계, 또는 이질적 지배들과 유지하는 ‘불가능한’ 관계다.[각주:45]

그러나 세 번째 문제가 있다. 이 모든 역사가 갈등이나 변혁 없이 전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의 공산주의는 사회의 도덕적․사회적 변혁들과 얽혀 있다. 대항-사회는 부르주아 사회에 진정으로 외재적이지 않거나 장기에 걸쳐 외재적인 상태를 유지할 수 없으며, 심지어 부르주아 사회의 진화에 기여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사회적 지배 형태 일체를 전복한다는 공산주의적 이상, 더 일반적으로는 ‘혁명’이라는 이념은, 정치 조직들 한복판에서 모순을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내가 보기에 여기에서 무엇보다 흥미로운 점은, 자신이 세우고자 하는 사회보다 공산당이 어떤 의미에서는 덜 민주적이라는 사실, 심지어 내부 조직원리 면에서는 공산당이 (공산당의 모태 노릇을 한) 자유주의 사회보다 덜 민주적이라는 사실에서 비롯한 영속적 긴장이다(이때 형식적․제도적 민주주의와 대중들을 실질적으로 이롭게 하는 민주주의의 차이를 신중히 감안할 필요가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각주:46]. 하지만 더 사변적으로 말하자면, 공산주의를 준비하는 운동, 조직들이나 제도들 내부에서 집단적 해방으로서의 공산주의의 선취를 어떻게 상상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제기할 수 있다. 문제는 바로 ‘공산주의자들’ 자신이, 나름의 조직적 관계들 안에서, 사회 전체로 혁명을 일반화한다는 목표 하에 공산주의를 자가-설립한다는 것인데, 이는 사실상 ‘공산당’이라는 표현을 모순어법이나 대립물의 통일로 만든다.[각주:47] 레닌이 ‘국가가 아닌 국가’를 말했던 것처럼, ‘당이 아닌 당’을 말할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사변적 측면에서 벗어나 역사적 경험(특히 20세기 60~70년대의 경험)의 문제로 돌아오면, 구체적 유토피아(즉 자신을 미래로 투사하거나 자신이 [미래의] 선취라고 생각하는 대신, 현재의 직접성 안에 물질화되는 유토피아)의 요소들이 전면에 돌발하는 것을 잘 볼 수 있는데, 이는 당 형태를 다시 문제삼는 방식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구체적 유토피아의 이단적 영향력을 많든 적든 깊이 겪은 현실의 당은 구체적 유토피아를 근본적으로 거부했거나, 다른 시대로의 이행을 선취하는 쇄신의 요인이라기보다 당의 역사적 위기를 악화시키는 요소로 이해했다. 하지만 구체적 유토피아의 요소들은 통일되어 있지 않거나, (양립불가능하진 않더라도) 적어도 ‘운동들의 운동’의 요소들을 이루지 않는다(68년 이후의 비상한 맥락 속에서, 다른 사람들처럼 트론티가 믿고 싶어 했던 것과 달리). 청년․학생 운동을 특이한 경우로 간주하기보다(그리고 청년 학생과 청년 노동자의 진정한 ‘마주침’의 가능성을 그 시절 번뜩이게 만든 것을 더 잘 끌어내기 위해), 당 형태의 맞은편에서,[각주:48] 항상 당 형태의 ‘타자’로 구성되었던 것, (프랑스에서는 종종 ‘자주관리’로 불린) 평의회 민주주의가 재출현한 것이었다고 말하고자 한다. 그리고 발언권과 (하나의 성을 다른 성의 모델로 환원하지 않는) 성평등을 위해 모든 사회에서 나타난 여성들의 일반적 운동으로서 페미니즘이 있었다. 두 사례에서 중요했던 것은 (제한된 역사적 형태의 외피를 쓴) 급진 민주화 과정, 또는 ‘민주주의의 민주화’ 그 자체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두 사례에서 민주화의 일차적 효과는 ‘정치체’를 해체하는 것(démembrer), 그 (정의상 상상적인) 유기적 통일성을 와해시키는 것이었다(피지배자의 힘을 지배자의 힘에, 혁명적 인민주권을 자본주의 국가주권에 대립시키기 위해 ‘당’은 이 유기적 통일성 안에서 계속 자기 자신을 인지/오인했다). 그러나 이어진 시기에서 볼 수 있듯, 해체는 이질성을 해방시키고, 다소 오래 지속한 자율성의 공간을 열지만, 정치적 전략을 정의하지는 않는다.

페미니즘, 공산주의의 유토피아적인 마지막 수단

이 때문에 나는 이상에서 환기한 오래 전 논의들, 그리고 이상에서 밑그림을 그린 회고적 이론화를 간단한 가설적 명명으로 마무리짓고자 하는데, 오래 전 논의들이 이 가설을 정당화해 주는 것 같다. 당-형태가 그 역사적 여정을 완료했다는 의미에서 완전히 ‘종결된’(이는 분명 이론적 담론들과 정치, 사회적 갈등들과 운동의 특정한 절합이 종결된 것이기도 할 것이다) 것이 아니라고 가정하면, 역사적 공산주의가 거부한 페미니즘이 그런데 어떤 면에서는 공산주의의 유토피아적인 마지막 수단이 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각주:49] 여기에서 나는 다른 곳에서 사용한 표현으로 돌아가, 정치적 관점에서 볼 때 중요한 것은 공산주의를 현존 사회를 역전한 상으로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할 수 있는 것임을 보여주고자 한다. 규정된 역사적 상황과 특정한 사회적 장소에서, ‘오늘날 공산주의자들은 누구인가?’, 그리고 ‘그들이 하고 있는 일은 무엇인가?’[각주:50] 게다가 이는 『공산주의자 선언』의 말미에서 마르크스 자신이 자본주의와 부르주아 지배에 대한 비판의 교훈을 집약한 방식이었다는 점을 기억하자. 그리고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물론 유일한 것은 아니지만) 가능한 대답 중 하나는, ‘공산주의자들’은 오늘날에는 ‘페미니스트들’이라는 것인데(그녀들이 자신을 그렇게 부르는지 여부와 무관하게), 왜냐하면 페미니스트들은 역사적 공산주의에 민주적이고 혁명적인 정치라는 대체보충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역사적 공산주의는 자신이 자기충족적이라고 믿었기 때문에(또는 자신이 ‘현존하는 상태를 폐지하는 현실적 운동’의 ‘총합’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 대체보충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 대체보충이 없다면 역사적 공산주의는 더 이상 재구성될 수 없을 것이다(아마도 앞으로는, 이런저런 정세에서 스스로를 새로운 정치의 부문이나 요소로 간주해야지, 정치의 통일적 형상으로 간주해서는 안 될 것이지만). 내가 페미니스트들을 ‘유토피아적인 마지막 수단’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제안한 것은 바로 이런 의미에서인데, 왜냐하면 그녀들의 정체와 그녀들이 하는 일은 ‘당’의 이념이 표현하는 닫힘(clôture)과는, 또는 적어도 ‘집단적’ 정치(‘집단적 지식인’이라는 그람시의 위대한 이념은 그 가치를 전혀 잃지 않았다)일 뿐만 아니라 ‘분리되고’, ‘동질적인’(또는 동질성이 자율성의 조건이 되는 식의) 정치라는 역사적 표상과는 확연히 양립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계급이 유일한 결정인이라는 생각에 빠져들면, 혁명적 헤게모니라는 관점은 불가피하게 순수성의 상상으로 귀착하게 되고, 성적 차이는 인간학적이고 도덕적이며 사회적인 불순성이라는 잔여적 자리를 부여받게 된다. 따라서 정치적으로도 불순한 것이 된다. 페미니즘이 코퍼러티즘적 이해관계를 표현한다는 의미에서의 ‘여성운동’이라는 관념으로도, (동화불가능한 차이 이외의 ‘몫’이나 ‘위치’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여성당’으로도 환원될 수 없다는 사실을 사고하기 위해, 나는 프랑수아즈 뒤루가 최근 유토피아라기보다 아토피아(atopie)라는 표현을 사용했다는 것을 떠올렸다. ‘공산주의의 유토피아적인 마지막 수단’이라고 말할 때 내가 정확히 염두에 둔 것은 자기지시적인 조직형태들을 이처럼 탈-조직화하는 것으로, 이는 동시에 (라인하르트 코젤렉Reinhart Koselleck 식으로 지나간 미래라고 부르고 싶어지는) 진부한 목표들 및 퇴적을 거듭한 역사적 형태들을 넘어, 정치적 실천/관행 자체의 질문을 다시 던지는 방식이다. 현존하는 정치와 관련하여 ‘아토피아’는 ‘비정치적’이지 않다. 제자리에서 벗어나는 것은 비정치적인 것과는 정반대다. 언젠가 『안티고네』를 논평하면서 로산다가 제안하고자 했던 것이 아마 이것일 것이다.[각주:51]


  1. 나는 물론 기존의 제목에서 영감을 얻었다. 가령 'Le genre de l'histoire'(이는 Cahiers du GRIF [프랑스 페미니즘 잡지] 1988년호의 제목인데, 이 책에는 특히 존 스콧Joan Scott의 논문 'Gender: A Useful Category of Historical Analysis'가 실렸다.). 좀 더 최근에는 라다 이베코비치(Rada Ivekovic)의 Le sexe de la nation (Paris: Léo Scheer, 2003)도 있다. [본문으로]
  2. [영역자 주] 발리바르가 이 글의 몇몇 대목에서 사용하는 이 언어유희는, 영어로는 적절히 번역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불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등) 로망스어군에 속하는 주요 언어들에서 'gender'에 해당하는 단어(가령 불어의 경우에는 genre)는 성적 차이의 사회적 형태를 가리킬 수도 있고, 좀 더 넓게는 x의 ‘유형’이나 ‘종류’를 가리킬 수도 있다(이 말의 라틴어 어원은 genus(속屬)이다). 이 글의 제목이 전형적 예다. 제목에 쓰인 genre는 당의 ‘성별’(gender)을 뜻하는 동시에(괄호 안에서 발리바르가 묻는 것처럼, 당의 성별이 무엇인가?), 당의 ‘유형’(type)을 뜻한다(역시 괄호에서 발리바르는 ‘어떤 유형의 당인가?’라고 묻는데, 이는 레닌이 ‘새로운 유형의 당’이라고 말할 때의 용법과 같다). 이 다의성을 포착하기 어려운 관계로, 발리바르가 의도적으로 이 이중적 의미를 사용하는 대목에서는 불어 단어 genre를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두고 이탤릭체로 표시했다. [옮긴이: 국역본에서는 이중적 의미를 사용할 경우 주로 ‘성별/유형’이라고 옮겼다.] [본문으로]
  3. 공산주의의 경험과 공산주의에 대한 비판을 거론할 때, 무엇보다 동유럽에서 같은 시기 일어난 사건의 결정적 중요성을 잊어서는 안 된다. 프라하의 봄과 바르샤바 조약기구에 의한 진압 말이다. [본문으로]
  4. 이 글은 ‘혁명 이후의 사회들에서 권력과 반대파’라는 주제로 1978년에 베니스에서 개최된 학술대회(영어판 Power and Opposition in Post-Revolutionary Societies, ed. Il Manifesto, trans. Patrick Camiller and John Rothschild (London: Ink Links Ltd., 1979)을 보라) 당시 알튀세르의 발표를 연장하고 일반화하기 위해 로산나 로산다가 청탁한 것으로, 국제적 논쟁의 진원지가 된다. 이 논쟁은 이탈리아의 공산주의 일간지 Il Manifesto 지상(紙上)에서 몇 주에 걸쳐 벌어졌으며, 이후 오늘날에는 아주 구하기 힘든 소책자 Discutere lo Stato (Bari: De Donato, 1978)에 재수록되었다. 알튀세르는 미완성 작업에서 이 논쟁을 다시 취해 발전시킨다. 'Marx in His Limits,' in The Philosophy of the Encounter: Later Writings, 1978-1987, ed. Olivier Corpet and François Matheron, trans. G.M. Goshgarian (New York: Verso, 2006). [본문으로]
  5. Rossana Rossanda, Le altre : conversazioni a Radiotre sui rapporti tra donne e politica, libertà, fraternità, uguaglianza, democrazia, fascismo, resistenza, stato, partito, rivoluzione, femminismo (Milan: Bompiani, 1980). [본문으로]
  6. Mario Tronti, Il tempo della politica (Rome: Editori Riuniti, 1980). 이 책은 Editori Riuniti의 새로운 총서 Tendenze의 1권이었다. 트론티는 당시 (‘국가 형태’의 반대명제인) ‘당 형태’의 용어법이 오페라이스모(operaismo)에서 뻗어 나온 지적 환경에서 유통되고 있었다고 나에게 말한 바 있다(개인적 대화). [본문으로]
  7. 이 논점과 관련하여 알튀세르는 그람시에게 공정한 것인가? 이 질문은 제쳐두고자 한다. 그람시를 준거로 제시한 정세를 더 잘 이해하려면, 톨리아티(Togliatti)와 이탈리아공산당 지도자들이 그람시를 활용한 것이 그람시에 ‘충실’한 것이었는가 라는 논점뿐만 아니라 70년대 중반 노르베르토 보비오(Norberto Bobbio)의 개입이 유발한 ‘도발’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 전체를 재구성해야 할 것이다(보비오는 시민사회와 정치사회 사이의 간극을 제거한 것이 마르크스 이후 공산주의 전통의 반(反)민주적 일탈의 모체라고 지적한다). [본문으로]
  8. "finisce per mettere in causa la forma di organizzazione del partito stesso," Discutere lo Stato, 14. [본문으로]
  9. Ibid., 20. [영역자 주] 여기에서 발리바르가 가리키는 것은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에 관해 논한 1970년대 트론티의 작업이다. 트론티는 당대의 다른 사상가, 가령 노르베르토 보비오처럼, 마르크스주의의 정치 이론과 국가 이해에서 큰 공백이 있다고 보았다. (국가 제도와 계급 세력들이 경제 발전에 대응하고, 종종 국가가 자본주의적 재생산 과정을 명령하는 적극적 역할을 맡는 장(場, field)으로 정의되는) ‘정치적인 것’의 자율적 논리는 계급투쟁을 사회적 동역학의 반영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단순하게 읽을 수는 없다는 것을 뜻했다. 트론티가 보기에는 자본주의적 축적의 경제적 리듬과 일대일로 조응하지 않는 ‘근대 부르주아 권력’이나 ‘자본의 정치적 순환’의 특정적 형태들이 있는데, 이 형태들이 대공황 이래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것이 트론티의 생각이었다. 물론 이 특정성에 대한 분석이 실천적으로 중요한 것은, 국가 내부에서 국가에 맞서는 당과 노동자 정치 조직이라는 문제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주제를 다룬 트론티의 작업에서는 노동자계급 자체를 노동자 당으로 대체하는 경향이 강력하게 나타나고(안토니오 네그리Antonio Negri가 제안한 바에 따르면, 이는 이탈리아의 정세와 ‘역사적 타협’이라는 이탈리아공산당의 전략이 남긴 잔재다), 따라서 국가의 실효적 통치에 대한 필요가 자본주의적 국가의 폐지에 대한 요구에 우선한다고 단정짓는다. 이것이야말로 알튀세르가 표적으로 삼은 정치의 자율화, 곧 공산주의 조직과 대중운동의 분리일 것이다. 국가를 특집 주제로 삼은 Viewpoint에 실린 Matteo Mandarini, 'Notes on the Political Over the Longue Durée'를 보라. 이 글은 트론티의 1979년 문헌 'The Political'의 소개 성격도 갖는다. 또한 Sara R. Farris, 'Althusser and Tronti: The Primacy of Politics Versus the Autonomy of the The Genre of the Party Political,' in Encountering Althusser: Politics and Materialism in Contemporary Radical Thought, eds. Katja Diefenbach, Sara R. Farris, Gal Kirn, and Peter D. Thomas (London: Bloomsbury, 2013), 185-203도 참고하라. [본문으로]
  10. 당시 전개된 토론에서 바로 이 논점과 관련하여 나는 알튀세르와 의견을 달리 한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 나는 (내가 보기에 공산당(들) 역시 포함되어야 마땅한)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라는 알튀세르적 구상을 알튀세르 자신에 맞서 활용하고자 했다(Discutere lo Stato, 271 sq.). [본문으로]
  11. Althusser, 'Marx in His Limits,' 70 sq. 알튀세르의 논변은 특히 니코스 풀란차스(Nicos Poulantzas)의 논지(‘국가는 정의상 계급투쟁에 의해 꿰뚫린다’)에 반하는 방향으로 전개되는데, 알튀세르에 따르면 이는 ‘욕망하는 바를 현실로 착각하는’ 것이다. [본문으로]
  12. 부르주아 계급이 ‘계급투쟁에 외재’한다고 알튀세르가 말하지 않았다는 데 유의하자. 이는 용어모순일 것인데, 계급들의 실존은 계급들의 역사적 투쟁에 선재하지 않는다고 알튀세르가 다른 곳에서 강한 바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하지만 부르주아 계급은 계급투쟁을 실행하기 위해, 그리고 그람시 식으로 ‘헤게모니’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설립하기 위해, ‘계급투쟁에 외재’하는 기계나 장치(국가)를 구축하는데, 이는 부르주아 계급이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통치’가 이루어지게 해 주는 동시에, 부르주아 계급이 혁명적 계급투쟁을 ‘무력화’(neutraliser)할 수 있게 해 준다(또는 ‘탈정치화’라고 할 수도 있는데, 여기가 트론티, 그리고 그를 매개로 슈미트와 마주치는 지점이라는 것은 명백하다). [본문으로]
  13. [영역자 주] 지배-효과는 종속(subjugation) 관계의 특수한 기능이나 유효성을 가리킨다. 가령 규정된 사회적 조건하에서 지배 이데올로기에 복종(subjection)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Pierre Macherey and Étienne Balibar, 'On Literature as an Ideological Form: Some Marxist Propositions,' trans. Ian McLeod et al., Oxford Literature Review, Vol. 3, No. 1 (1978): 4-12를 보라. [본문으로]
  14. [이 글을 발표한] 파도바 학술대회 토론 중 루치아나 카스텔리나는 특히, 공산당 내부에서 여성 활동가들이나 심지어 ‘지도자들’이 전혀 여성들의 정치(politique des femmes)가 아니던 ‘대(對)여성 정치’(politique envers les femmes)를 실시할 책임을 어떻게 떠맡았는지 상기시킨 바 있다. 낙태와 피임, 이혼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입장과 대결하는 것조차 필수 요건으로 포괄하지 않은 것이 대(對)여성 정치였다. [본문으로]
  15. 2004년에 출간된 자신의 책 Wayward Reproductions: Genealogies of Race and Nation in Transatlantic Modern Thought (Durham, NC: Duke University Press)에서 알리스 이브 웨인바움(Alys Eve Weinbaum)은 우리가 (Rethinking Marxism의 어느 국제학술대회 자리를 빌려) 1996년 앰허스트에서 나눈 대화를 옮겨놓는다. 당시 그녀가 나에게 제기한 질문은, ‘국민 형태’를 구성하는 ‘계보적 도식’의 역사적 기능을 정의하고자 한 바로 그 때, 왜 ‘재생산’의 이중적 의미를 고려하지 않느냐는 것이었고, 나의 답인즉 동음이의적이긴 하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두 개념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나는 이 대화가 기억나지 않지만, 그녀가 옳았다고 확신한다. 물론 ‘혼동’해서는 안 되겠지만, 분명한 것은 절합하거나 차라리 ‘과잉결정’해야 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본문으로]
  16. Il tempo, 43. [본문으로]
  17. Il tempo, 33. 이에 앞서(p.18), 트론티는 68의 운동이 ‘패배’를 겪지 않았다고 재차 단언한 바 있다. [본문으로]
  18. “위기와 위기 탈출, 전쟁과 투쟁을 통해 사회는 진정한 변화를 겪었다. 이는 퍼거슨과 헤겔, 스미스와 마르크스의 ‘시민사회’, 부르주아 사회(bürgerliche Gesellschaft)의 진정한 종언이었다. 이는 ‘부르주아 사회’의 이데올로기적 역사, 즉 정치적 국가의 분리, 공적 이익의 영역에 맞선 개인과 사사성의 세계, 규범 및 결정과 구별되는 시장과 생산이라는 이데올로기적 역사의 진정한 종언이었다. 이 모두를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의 탄생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그러면 이렇게 부르자. 경제적인 것의 자율성의 종언이라고….” Il tempo, 77. [본문으로]
  19. “자본주의가 약하던 곳에서 (…) 노동자운동의 정치 조직은 발전의 [역사적] 공간들을 발견해 냈다. 자본주의가 강하던 곳, 공격성과 참신함, 절대적으로 부재한 과거와 무한한 가용자원 때문에 자본주의가 강하던 곳에서는 (…) 프롤레타리아 조직의 어떤 정치적 형태도 출현하지 않았다. 나머지 노동자 세계는 이 상황에 적응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노동자 당 형태는 위기인 것이다….” Il tempo, 77. [본문으로]
  20. Il tempo, 71. [본문으로]
  21. “조직화된 운동이라는 개념이 가능해지기 시작한다. 자기 자신을 개방하고 운동이 되어야 하는 것은 당이 아니다. 조직의 실험, 원리, 시작, 모델 일체를 차용하지 않고, 새롭고 알려지지 않은 형태로 자기 자신을 제시하는 것을 생각해야만 하는 것은 운동, 아니 운동들이다….” Il tempo, 102. [본문으로]
  22. “왜냐하면 여기에서, 지금껏 마르크스주의가 주장했던 것과 전혀 달리, 자본주의의 진전이 직접적으로 초래하는 평등주의적 심급(일하고 생산하고 돈을 벌고 투쟁하는 여성)을 보기 때문이다. 반면 불평등이 존속하고 깊어지고 폭발하는 곳은 정치적인 것의 영역, 즉 남녀간 권력 관계의 장으로, 이는 가족-공장이 아니라 가족-국가인데, 이때 남성-여성 간 분할에서 중요한 것은, 아버지-아들 간 분할이 그렇듯, 생산자-소비자 간 경제적 분할이 아니라, 통치자-피통치자 간 정치적 분할이다.” Il tempo, 104. [본문으로]
  23. Il tempo, 101. [본문으로]
  24. Le altre, 20. [본문으로]
  25. “『공산주의를 위한 테제들』에서 여성들은 완전히 주변적인 존재로, 그러나 적절한 자리를 부여받으면 혁명적 주체라는 이념을 문제화하는 존재로 제시되어 있다. 여성들은 노동자의 중심성을 갈망하는 불완전한 프롤레타리아트가 아니라, 자율적인 형상이고 가치의 직접적 담지자였다(…). 하지만 이렇게 말할 때, 여성들과 다른 집단들의 차이가 주목받지 못했고, 여성들은 늘 괄호 안에 들어가 있었는바, 만일 여성들이 역사의 산물이라면, 그 역사는 자연의 시간과 일치할 만큼 장구한 것이었다….” (Ibid.) [본문으로]
  26. ibid., 30. [본문으로]
  27. Antonio Gramsci, The Prison Notebooks, Volume 3, ed. and trans. Joseph Buttigieg and Antonio Callari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993), 202 (§65). [본문으로]
  28. [옮긴이] 불어본에서는 여기에 "(ou de l'étrangèreté)"라는 구절이 추가되어 있는데, 불어에서 'étrangère'는 'étranger'의 여성형이다. 즉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이방인’의 성별은 여성이라는 점을 덧붙이고 있는 것이다. [본문으로]
  29. Le altre, 178. [본문으로]
  30. “다른 밀라노 사람이 말한다. 불평등에서 긍정적인 점은 우리가 각각 다르다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 다르고, 이는 긍정적인 사실이라는 것, 우리는 이를 반드시 깨달아야 한다. 하지만 부정적인 점은 역할과 문화를 경직되게 분할한다는 것이다. 소녀들을 다르게 교육시키는 양식에서 그녀들에게 성인으로서의 특정 역할을 부여하는 것…. 이런 식으로 한 여성의 모든 역량들이 축소되는 결과에 이르게 된다.” Ibid., 109. [본문으로]
  31. Ibid., 115. [본문으로]
  32. Ibid., 28-9. [본문으로]
  33. Ibid., 74. [본문으로]
  34. [영역자 주] atopic은 그리스어 átopos나 atopía에서 유래한 것으로, 그 뜻은 ‘제자리에서 벗어나 있음’ 또는 ‘자리가 없음’이다. [본문으로]
  35. Françoise Duroux, 'Une classe de femmes est-elle possible?' Post-scriptum pour une mise à l’heure et propositions pour un essai d’pistémologie du 'gender' à la manière de Nietzsche (미공간 문헌): “그러나 [‘성적 인종주의’와 부분적으로 비견될 수 있는 ‘계급적 인종주의’가 유발하는] 자연/본성으로부터의 이 같은 이탈이 평민들과 노동자들에게도 가능한 것으로 입증되는데, 왜냐하면 두 가지 상관적인 조건들이 충족되기 때문이다. 집단에 형상을 부여할 수 있는 가능성(집합체의 가능성, 집단을 이루고 유대를 이루는 가능성), 그리고 이 집단을 정치체(도시cité)와 정치적 지대 안에 기입할 수 있는 가능성이 그것이다. 이 두 번째 가능성이 영역들의 경계 획정, 곧 여성들의 배제와 상관적인 남성들의 공동체에 의존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 이 두 가능성과 관련하여, ‘여성들’이라고 불리는 이들은 누구인가? 세 가지 장면을 통해 나는 첫 번째 분할(또한 두 번째 분할)의 대상이 되는 ‘여성들’이 어떻게 정체성의 아포리아와 만나는지, 그리고 어떻게 이 아포리아를 마지막까지 밀어붙이도록 강제받는지 보여주려고 할 것이다. 아포리아, 막다른 골목, ‘활로’의 모색, 이 용어들은 페미니스트들의 문헌에서 끈질기게 존속하는데, 이는 사실과 정식화 사이의 부적합을 드러내는 징후다. ‘표상’과 개념의 체계 안에는 ‘해법’이 없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수밖에 없는데, 여기서 처음이란 성들의 상보성을 가리킨다. 어긋남이 등장하는 세 장면에서는, ‘자연/본성으로부터의 이탈’이 [리시스트라타의 우화에 나오는] 아크로폴리스로부터의 이탈, 공화국의 불만[프랑스혁명에서 ‘여성시민들’의 억압], ‘국외자들’의 이탈[버지니아 울프의 ‘국외자들의 사회’]이 되는데, 이는 자리와 정체성, 계급을 버리지 않는다면 불가능하다. 유토피아는 아토피아와 만난다….” (10-11). [본문으로]
  36. 마리오 트론티의 다른 후기 저작 La politica al tramonto, (Turin: Einaudi 1998)를 보라. [본문으로]
  37. 마르크스에게 계보학의 딜레마가 나타나는 방식을 살피기 위해 마르크스로 거슬러 올라가면 흥미로울 것이다. 특히 『공산주의자 선언』을 보면 두 가지 ‘노선’이 뚜렷하게 경쟁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한편으로 ‘공산당’이라는 표현의 본질은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투쟁이 의식화·조직화되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여기서 프롤레타리아 계급이란 부르주아 사회의 내적 해체나 소외의 표현과 다르지 않다(루카치가 1923년 『역사와 계급의식』의 정식화들에서 극단으로 밀어붙이는 것이 바로 이 노선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마르크스는 계급투쟁의 역사를 적대 형태들의 계기로 묘사하는데, 뒤로 갈수록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점점 더 깊은 영향을 받게 된다(사회의 ‘양극화’ 과정에서 ‘프롤레타리아트를 징집하는’ 부르주아지는 동시에 프롤레타리아트를 ‘정치적으로 교육’하는데, 그 끝은 프롤레타리아트가 자율성을 얻어 부르주아지에게 칼끝을 돌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이중적 노선 자체는 물론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나타나는데, 여기에서 노동자의 ‘계급의식’과 조직적 역량은 ‘사회의 모든 계급들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노동자의 역량과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있다. [본문으로]
  38. “따라서 여성들이 ‘계급투쟁’으로 초대받고, 계급 안에 포함되고, 계급의 이해관계를 옹호하며, 자신들의 자리는 건드리지 않는 역사적 과정에 협력하게 되는 것은, 클라라 제트킨의 표현에 따르자면 ‘붉은 아내들’라는 자격 하에서다(F. Duroux, 위의 글, p. 17). 뒤루는 이 같은 종속이 한편으로 남성과 여성 간 분업의 발전, 다른 한편으로 성적 관계(또는 원한다면, ‘사랑’)의 정치적 도구화 사이에서 통제할 수 없는 방식으로 동요한다고 말한다. [본문으로]
  39. Geneviève Fraisse, Les Deux gouvernements: la famille et la Cité, (Paris: Folio Gallimard, 2000). [본문으로]
  40. 하지만 이 재생산을 숙명론이나 결정론적 방식으로 읽어서는 안 되는데, 알튀세르가 말했던 것처럼 여기에는 우발적 차원 역시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로산다가 “거대[정당들]을 상대하는 공산당은 (…) 이미 국가를 상대하는 방식이다.”(Le altre, p. 30)라고 쓸 수 있는 것은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본문으로]
  41. 오늘날 사회학에서 일반적으로 쓰이는 ‘대항-사회’라는 용어를 프랑스공산당에 처음 적용한 것은 (한때 거의 광적인 공산당 활동가였다가 나중에는 극렬 비판자로 돌아선) 아니 크리겔(Annie Kriegel)의 1968년 저작 Les communistes français. 1920-1970 (Paris: Le Seuil, 1985 [1968])였다. 당연히 이 범주는, 논전을 넘어, 쉬운 해법이 없는 문제를 개방한다. 한편으로 노동자-노동자주의 문화의 사실상의 조건(오늘날 이주노동자들에게서 볼 수 있듯, 이는 임노동이 위협하는 전통적인 가족적 형태를 방어하려는 전략이기도 하다), 다른 한편으로 반(反)자본주의적인 ‘분할의 의지’ 사이에, 계급의식을 낳는 ‘공동체주의’의 온갖 역사적 양상이 있다. 반면 ‘대항-권력’은 (견제와 균형이라는 관념 안에서 늘 작동하고 있는) 자유주의 정치전통의 범주인데, 마르크스주의 정치 이론은 이를 전유하여 정치를 갈등으로, 심지어 다른 수단에 의해 계속되는 ‘전쟁’으로 보는 일반화된 표상 안에 기입한다. [본문으로]
  42. Françoise Duroux, 'La famille des ouvriers: mythe ou politique?,' 박사논문, University of Paris-VII, 1982. 이 질문은 마르크스주의의 ‘암묵적 발화’를 더 깊이 파고드는데, 왜냐하면 이 질문은 마르크스가 성적 관계로서의 남성/여성 관계를 지배 형태들의 도식에서 ‘배제’했던 방식을 다시 문제삼도록 강제하기 때문인데, 그에 반해 마르크스가 비판한 (‘유토피아적’이라고 일컬어지는) 낭만주의적 사회주의들은 이 관계를 포함시키고 있었다. 사실 성적 관계를 포함하게 되면 마르크스로서는 한편으로 착취양식들의 역사적 계기라는 선형적 질서를 다시 문제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 프롤레타리아트를 특징짓는 것은 소유의 발본적 부재(Eigentumslosigkeit)―공산주의 혁명에서 프롤레타리아트가 ‘쇠사슬 말고는 잃을 것이 없’는 것은 이 특징 때문이다―라는 관념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트는 항상 아직 ‘무언가’의 사적 소유자, 즉 그들의 아내(신체와 가사노동)와 가족의 사적 소유자인바, 따라서 ‘무언가 잃을 것’을 갖고 있거나 적어도 혁명의 도덕적 조건은 무매개적으로 보편화될 수 있는 용어로 제시되지 않는다. [본문으로]
  43. 특히 로자 룩셈부르크에 대해 레닌이 취한 태도의 애매성은 연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루카치는 더욱 그런데, 그의 경우 처음부터 룩셈부르크의 이론적 입장에 훨씬 더 가까웠지만 『역사와 계급의식』에서 그녀를 비판하는 역할을 말하자면 떠맡았는데, 이때 논점은 러시아혁명이 민주주의라는 문제를 제거한 방식이었다(레닌은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을 내놓지 못하는 무능에서 끝내 벗어나지 못했다). [본문으로]
  44. 그 이면은 아마 준비에브 프레스가 디시 한 번 ‘동의’라고 부른 것일 텐데, 이는 ‘자발적 복종’이라는 고전적 문제설정을 바로 연상시킨다. Geneviève Fraisse, Du consentement, (Paris: Editions du Seuil, 2007. [본문으로]
  45. 마르크스주의는 성적 차이(또는 ‘성별’)가 계급을 분할하지 않았다면 계급은 여성의 범주를 ‘분할’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하는 논리적 모순을 ‘해결할’ 능력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여성 부르주아지는 여성 노동자가 아니고, 여성 노동자는 결코 여성 부르주아지가 아니지만, 그녀들이 겪고 있는 두 가지 형태의 지배에 대한 여성 노동자의 해방은 성별 면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중성성’을 다시 문제삼는데, 이 중성성은 그동안의 사회적 적대가 남성성을 본떠 조형되었음을 사실상 은폐한다(이처럼 남성화된 사회적 적대의 극단적 형태는 ‘사회적 전쟁’이나 ‘내전’이다). [본문으로]
  46. 역설은 공산당이 조직한 사회적 투쟁들이 한편으로 부르주아 사회를 민주화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당 내부의 비민주적 규율과 권력 독점을 (일정 기간) 정당화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조르주 라보(Georges Lavau)가 프랑스공산당에 대한 중요한 연구에서 (『군주론』이 아니라 『로마사논고』에서 차용한) 마키아벨리적 용어로써 조직된 노동자운동의 ‘호민관적 기능’이라고 불렀던 것에 가까이 있다. Georges Lavau, À quoi sert le Parti communiste français? (Paris: Fayard, 1981). [본문으로]
  47. 이 질문을 제기한다는 사실만으로 레닌 이래 이론화된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전통과 단절하게 되는데, 왜냐하면 이 전통이 대립물을 경유하는, 심지어는 제도적 부정을 경유하는 절대적 민주주의의 도래라는 묵시록적 관념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으로, 공산주의를 위해 투쟁하는 제도는 자신 안에서 공산주의를 미리 실현해야만 한다(또는 공산주의적 미래를 예시豫示해야만 한다)는 관념은 유토피아 사회주의의 ‘연합’을 가로질러 기독교 공산주의라는 첫 번째 공산주의의 메시아주의 정치로 회송된다(기독교 공산주의는 (바디우 식으로) 오늘날 ‘공산주의적 가설’이라고 불리는 것이 구현된 첫 번째 장소이기도 할 것이다). [본문으로]
  48. 하지만 이 장소는 많은 경우 점점 다루기 어려워지는 당의 전달벨트 ‘체계’ 내부이기도 한데, 특히 노조가 그렇다. Cf. Bruno Trentin, Il Sindacato dei consigli (Editori Riuniti, Roma, 1980. 브루노 우골리니Bruno Ugolini와의 인터뷰 모음집). 프랑스 CGT의 전임 서기장인 조르주 세기(Georges Séguy)가 최근 출간한 비망록(Résister: de Mauthausen à Mai 68, L'Archipel, 2008)을 보면, 이 논점을 둘러싸고 68년에 CGT를 관통하였다가, 결국 당 지도부의 노조 통제 장치라는 낡은 장치의 승리로 끝맺은 갈등이 암시적으로 제시되어 있다. [본문으로]
  49. 여기에서는 다른 문제를 제기하는 평의회 민주주의라는 질문은 제쳐두고자 한다(양자는 추상 수준에서만 구별될 수 있다). 오늘날 ‘평의회’ 이념의 유산은 참여적이고 비의회주의적인(이는 반의회주의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대항-민주주의’의 경험/실험 쪽에서 주로 찾을 수 있다. Cf. Yves Sintomer, Le pouvoir au peuple (Paris: La découverte, 2007). [영역자 주] 우리는 'recours utopique'라는 발리바르의 난해한 문구를 ‘유토피아적인 마지막 수단’('utopian last resort')이라고 옮겼는데, 이는 La vie des idées에 실린 발리바르의 인터뷰(인터뷰어: 니콜라스 뒤부Nicolas Duvoux와 파스칼 세베락Pascal Sévérac)를 마이클 C. 베렌트(Michael C. Behrent)가 번역할 때 사용한 문구를 따른 것이다. 완전히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이 문구에 관한 발리바르의 용법은 ‘대체보충’(그 특정성 속에서 고려되어야 하는 정치의 또 다른 장면/무대나 양상)의 용법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본문으로]
  50. Étienne Balibar, 'Occasional Notes on Communism,' trans. Blandine Joret, Krisis: Journal of Contemporary Philosophy, no.1 (2011). [본문으로]
  51. Sophocles, Antigone, Con un saggio di Rossana Rossanda, trad. Luisa Biondetti (Milan: Feltrinelli, 1987).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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