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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로역정: 물리학자 생활 내 남성들의 무용담 - 09




번역: Andante | 페미니즘 번역모임



[책소개]

책 “입자선-시간과 생애-시간” (Beamtimes and Lifetimes)은 저자인 샤론 트래윅 (Sharon Traweek)이 참여관찰 방법론을 통해 과학자 사회를 연구한 결과물이다. 이 책은 당시 과학기술학의 민족지 연구가 주로 다루던 ‘지식의 형성과정’이라는 화두를 넘어 공간배치, 기계, 연구자의 생애과정과 같은 사회문화적 측면을 다룬 저작이다. 또한 미국과 일본이라는 상이한 문화에서의 과학연구 양상을 비교하여 국가와 젠더가 과학의 구체적 실천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에 대해 밝혀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여기서는 젠더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룬 이 책의 3장 “순례자의 모험기 (천로역정): 물리학자 생활 내 남성들의 무용담” (Pilgrim's Progress: Male Tales Told During a Life in Physics) 을 다룰 것이다.

[위의 소개는 데이비드 J. 헤스 저, 김환석 역, "과학학의 이해", 당대, 2004, 256쪽을 참조하였음]

- 번역자


[본문]


그룹리더 (2/2)


일본 그룹리더들의 책임은 미국의 그것과 매우 다르다. 코자의 자원은 모두 그에게 귀속된다. 이 자원을 유지하고 증대시켜서 현재 조교수 직책을 맡고 있는 차기 리더에게 넘기는 것은 그의 책임이다. 연구, 급여, 방문 등에 관한 코자의 수입분배는 리더가 모든 구성원과 협의하여 결정한다. 또한 지도자는 코자의 재정을 관리한다. 미국에서 이 업무는 그룹리더의 행정직원들이 해야 할 주요 업무가 된다. 경영과 관련된 직책은 거의 과학자가 아니며 제도적 규칙과 관료적인 미궁을 통한 비공식적 경로에 정통한 여성들이 맡게 된다. 일본에서는 연구를 위한 정부 자금이 미국과 같이 연구소나 대학에 제공되는 것이 아니라 코자에 직접적으로 제공되기 때문에, 코자 리더는 도쿄에서 과학 교육을 받지 않았고 몇 년 마다 직책을 바꾸는 문부과학성 (몬부쇼) 관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보낸다. 과학행정에 대한 막대한 부담에 의해 코자 리더는 대부분의 시간을 이곳에 할애하고, 연구나 연구 기획에는 거의 시간을 쓸 수 없게 된다. 물리학에 대한 리더십은 자주 조교수 그리고 연구위원에게 까지도 요구되기 때문에 그들은 미국에서 대응되는 직책보다 훨씬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리더는 그의 외부적 책임 이외에 추가적으로 그룹 구성원들의 경력을 관리한다. 그는 광범위한 국제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젊은 물리학자들에게 해외 공동연구 경험을 제공한다. 또한 모든 구성원들에게 수년 마다 다양한 종류의 과제를 부여함으로서 물리학 연구에 대한 광범위한 경험을 구축하도록 장려한다. 그는 중간 위계에 위치한 구성원들을 대학, 실험실, 정부기관 및 업계 모임에 데려와서 그들이 관찰을 통해 협상의 기술을 배울 수 있도록 한다. 리더는 개인적인 문제까지 포함하여 그룹 구성원들이 가질 수 있는 모든 문제에 대해서 조언한다. 그리고 미혼의 젊은 물리학자들을 위해 적절한 배경을 가진 미혼의 젊은 여성들과 선을 보도록 한다. (나는 결혼하지 않은 35세 이상의 일본물리학자를 오직 한명 밖에 보지 못했다.) 정리하자면, 리더는 생산하고 육성하는 일을 한다. 미국의 그룹리더와는 다르게 사람을 화나게 만드는 여러 이중구속에 직면한 그룹 구성원을 평가하지 않는다. 그는 그룹에서 구성원을 배제하지 않는다.

그 수가 비록 적지만 이 경력기간이 끝나기 전에 선임 물리학자는 연구실 리더가 될 수 있다. 간혹 학장이나 대학 총장이 되기도 한다. 일본의 고에너지 물리학자들은 미국의 연구자들과 마찬가지로 국가 과학정책을 수립하는 데에 개입할 만한 힘이 별로 없다. 일본 물리학자들의 경력기간은 권위 있는 공립대학의 정년이 대개 55세라는 점 때문에 추가적으로 단축된다. 코자의 리더는 사립대학 자리로 물러날 수 있지만,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은 줄어들 것이다. 그에게는 미국인 동료가 손쉽게 이용할 수 없는 선택지가 있다. 자신이 있던 그룹에서 실험을 위해 구입한 장비를 제공한 사기업의 고문이 될 수 있다. 일본 코자 간의 네트워크는 상대적으로 고정되어있으며, 여러 코자에서의 직책을 맡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동으로 역할이 부여된다. 반면 미국의 물리학자들은 개인의 네트워크를 구성해야한다. 미국인들은 그들의 네트워크를 자신의 후배에게 증여할 수는 없지만,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는 중요한 학과 및 실험실에서 젊은 물리학자들이 일하도록 할 수 있다. 일본에서는 코자 사이의 명확한 구분이 있고, 그 사이의 자리 이동은 거의 없다. 미국인들은 오직 세대 간 유대에서만 제한적이다. 일본에서 경쟁은 주로 코자 네트워크 사이에서 일어난다. 미국에서는 경쟁이 궁극적으로 그룹리더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 세대 내의 개인들 사이로 한정된다.

미국의 선임 물리학자들은 새로운 그룹의 발달을 막고 그래서 새로운 그룹리더의 출현을 못하게 하는 자금지원의 제한과 학생의 질적 저하가 그들의 시스템을 침식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시스템은 고에너지 가속기 연구소가 (KEK) 제공하는 새로운 차세대 교육모델에 의해 발생한 강력한 세대 간 차이에 의해 도전받고 있다. [46] 미국 시스템을 온전히 유지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그룹리더들은 새로운 그룹에 속한 예비-상속인을 확보하는데 자신의 권력과 권위를 사용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시도는 이미 형성된 권력균형이 이동하는 것을 꺼리는 같은 세대의 구성원들에 의해 좌절된다. 각 대학 학과와 연구소에 존재하는 코자 네트워크는 전통 네트워크 구조와는 독립적인 새로운 코자의 등장을 꺼린다.

미국의 자격을 갖춘 물리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자신들이 작업이 얼마나 훌륭한지, 그리고 다른 세대의 연구가 얼마나 부적절한지 이야기한다. 예를 들어 SLAC의 한 물리학자는 “페르미 연구실 내부에는 자기 실험을 똑바로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다른 물리학자들은 잘 알려진 실험 물리학자들이 계속 잘못 생각하고 있고, 그들의 경력은 오직 개인적 성격에 의해 구축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개인적인 프로젝트”를 언급했다. 그는 수년에 걸쳐 국제적으로 “훌륭한 아이디어맨”으로 알려진 동료의 경력을 추적하고 이 사람의 아이디어가 실제로 어디에서 왔는지 확인했다. 전국의 동료들과 이야기하면서 그는 아직 한 가지 생각도 고유한 것인지 확인하지 못했다. 그는 추가적으로 이 분야에서 오직 한 명의 실험가가 지속적으로 맞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 실험가는 “결코 고유한 아이디어가 없지”만, “훌륭한 실험을 격추시키는”데에 특화된 노벨상 수상자이다. 그는 이 사람이 헌신하고 열정을 다해 일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조직을 만들었으며, 조직원들은 열심히 일하고 표준 검출기를 아주 세심하고 꼼꼼하게 만들었다. 그의 실험이 “훌륭한 실험”을 뒷받침하면 그 팀의 연구는 증거로 여겨진다. 만약 원래 수행된 실험과 모순된 결과가 도출되면 그의 그룹은 오류를 발견한 것으로 신뢰를 얻는다. 나는 내 현장연구 기간 동안 여러 선임 물리학자들로부터 이 사람의 자기중심적이고 권위주의적인 태도와 상상력이 부족한 물리학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을 들었다.

물리학자들은 또한 본인 그룹의 탁월함을 이야기하고, 고도로 발달된 수사를 사용하여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연구를 지원하도록 설득한다. 데이터 분실에 대한 공포에 대한 대학원생 이야기의 아이러니컬한 반전에서, 영년직 그룹 구성원의 불안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을 데이터를 가지게 되거나 모두가 다른 이의 데이터를 주목할 가능성에 대한 것이 된다. 물리학 분야에서 활발한 실험 경력은 50대 즈음에 끝이 난다. 50세 이상의 연구자는 중요한 발견을 하기에 부적당한 것으로 여겨진다. 한 물리학자가 나에게 물었다. “샤론, 혹시 사람들이 어느 나이에 중요한 발견을 하는지 조사한 연구가 있나요? 내 친구와 내가 젊었을 때 해낸 이 분야의 중요한 발견은 젊은 사람들이 해왔을 그런 발견 중 하나에요. 지금은 왜 우리냐고요? 우리가 지금 발견을 한다면 분명히 젊은 사람들이 4, 5년 전부터 이것을 만들어와야 했습니다.” 나는 대답했다. “네 그 주제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가 있었고, 그들은 발견이 전 연령대에 분포해있음을 보였어요. 한 연령대에 집중되어 있지 않아요.” 그는 대답했다. “그들은 입자물리학 분야에 대해서는 연구하지 않았군요. 입자물리학 분야에 국한된 데이터는 없나요?” 내가 “사실 없어요.”라고 대답하자 그는 반박했다. “글쎄요. 다른 분야에 있어서는 저도 옳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아니에요. 그리고 이것은 단지 내가 느끼는 것을 보여주네요. 요즘 젊은 사람들은 필요한 것을 가지고 있지 않아요.”

선임 물리학자들은 본인 세대의 성공이 공격성, 젊은 지성, 독립성 그리고 경쟁에 기반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2차 대전 말에 졸업한 물리학자들은 정말 본인 세대의 독특한 점이 있는지 의심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그들은 현재의 젊은 세대가 50년대, 60년대의 물리학자들과 같은 소양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학부생은 현재에 집중하는 법을 배우고, 대학원생은 현재 충분한 시간이 없다는 것을 발견한다. 박사 후 과정 연구원은 미래가 너무 짧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하며, 충분한 시간을 갖기 위해 미래를 예측해야한다. 자격을 갖춘 물리학자들은 물리학 연구와 자리와 자원을 지키는데 필요한 일들 사이에서 어떻게 시간배분을 할 지 고민한다. 선임 물리학자들은 소멸에 대해서 걱정해야한다는 것을 의식한다. 실험실, 검출기 그리고 자신의 아이디어마저도 대학원생 때와 마찬가지로 끝이 다가오고 있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이제 다른 종류의 시간이 펼쳐진다. 선임 물리학자가 자신의 성취가 작년이 아니라 지난 세대의 것으로 평가되기 전에 해야 할 일은 이 분야의 정치가로 전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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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Sharon Traweek, "An Anthropologist Studies Physicists at Tsukuba," Chuokoron, January 1987, pp. 145-153 (in Japanese) 저자를 통해 번역을 받을 수 있음.

[그림] 위의 사진은 올해 노벨상을 수상한 중력파와 관련된 한 저널의 논문 검색 결과이다. 인용 횟수 1000회가 넘는 이런 거대한 발견과 연구 성과들은 어떤 방식으로 평가되고 결정되는 것일까. 저자의 논의에 따르면 이런 평가는 단지 물리학의 이데올로기가 말하는 '과학적 합리성'에 의해서만 결정되지 않는다. 연구자는 자신의 사회적 범주를 설정하고 연구분야, 연구집단, 연구방식, 세대, 젠더에 따른 서사를 구성한다. 이런 문화적 형식은 연구의 수월성을 평가하는데에 개입하여 연구의 특성과 장단점을 이데올로기적으로 구성한다. 그리고 이런 서사와 헤게모니의 물적 토대를 구성하기 위해 영향력 있는 물리학자들은 자신의 영향력 아래 있는 사람들과 물적 자원을 확장하고 지속시키려 고군분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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