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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가역반응>을 시작합니다.





길혜민 | 국문학연구자






이상은 제가 알고 있는 이상한 시인들 중에서도 특히 이상함의 기원에 해당하는 작가입니다.

이상 시집의 첫 번째 작품 제목은

<이상한 가역반응>입니다.

1931년도에 발표된 작품의 제목치고는 꽤나 현란하죠.



가역, 可逆

되돌려본다는 뜻이겠죠.

그런데 이상은 이 시에서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표현합니다.

더 이상은 평행하지 않은 것, 그래서 꼭 붙어버린 곡선에 대해서 말이죠.

굴곡진 직선과 되돌려보는 것이 무슨 상관이 있다는 것일까요.



비유클리드 기하학에 대해 무식한 제가 유추해보건대

되돌아본다는 의식인 기억하기와 관련된 반응이 이상하다는 뜻 같습니다.

과거를 떠올린다는 일이란 

완전히 복원될 수 없는 기억을

현재라는 시점을 끌어안고 볼 수밖에 없는 노릇이라는 

시차에 대한 시인의 판단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상한 가역반응> 이후로 발표된 대부분의 시에서는 기호가 나타나고

그 유명한 ‘아해’들이 달리기도 하는 

어처구니없는 종이 위의 실험실이 되어버리는 것이 이상의 시집입니다.

저는 이런 이상의 실험시들은 모두 시간에 대한 실험에 해당한다고 생각합니다.



따지고 보면 ‘가역반응’이라는 말도

‘기억’과 ‘시간’에 대한 반응이라고 쉽게 설명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시인 나름으로 ‘기억’, ‘시간’ 또는 ‘시간성’에 대해 응답한 것이죠.

   


그런데 이렇게 말을 바꾸고 생각해보니 대부분의 시인들이 

시간과 기억에 대해서 시를 쓰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서정주의 <자화상>만 해도 첫 문장부터 과거형에서 시작되죠.

“애비는 종이었다”

그리고

“스물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

시간을 바람이라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시간에 대한 사유는 시인의 개성에 따라서

다채롭게 표현될 수 있겠죠.



하여 저는 앞으로 시간을 다룬 시들을 함께 음미할 생각입니다.

제 작업은 실험실 안에서의 시간, 바람의 생성학,

누추함의 기원, 길을 잃어버리는 골목 같은

다양한 시간에 대한 사유를 다룬 시인과 작품을 들고 나타나

여러분께 말을 걸어보는 일이 될 것 같습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의 보물은 

“사다함의 매화”였습니다.

위나라의 달력(책력)이었죠.

"사다함의 매화"를 기다리면서 

미실은 시간을 지배하는 자가 권력을 쥐고 있는 자라고 했었던 것 같습니다.  



역사책에 대한 국가간의 갈등, 국정교과서 사태,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등

현실정치와 생활감각에 있어서 시간을 해석하는 일의 중요성을 깨달을 때마다 

미실의 장면들을 떠올리곤 합니다.

  


한줌으로 잡기도 힘든 시가 권력을 잡을 수 있겠다고

뻥을 치려는 건 아니고요.

시간에 대한 사유하는 순간이야말로 

중요한 힘이 만들어지는 모먼트가 될 수 있겠다는 정도가 

저의 생각입니다. 


위와 같은 이유와 주제로 여러 시인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 

매월 11일,  

시와 함께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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