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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여성이라는 자리(1)


소영


청년 여성이라니. 이 단어는 어딘가 이상한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청년은 성별에 상관없이 젊은 사람을 가리키는 단어다. 청년정책이 젊은 남성만을 위한 정책이 아닌 것처럼. 그렇지만 동시에 청년은 젊은 남성을 상상케 한다. 노동자가 남성을 상상케 하듯이, 학생이 남성을 상상케 하듯이. 젊은 여성은 아가씨지, 청년이 아니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청년을 이렇게 설명한다. 신체적·정신적으로 한창 성장하거나 무르익은 시기에 있는 사람. 성년 남자. 요컨대 청년 여성인간 여성만큼이나 이상한 단어지만, 청년이 인간만큼이나 명백하게 남성을 가리키고 있는 이상(혹은 그렇게 이야기되고 있는 이상) 딱히 이상할 것도 없는 단어다. 기존 청년세대 담론이 단지 젊은 남성의 문제로 여겨질 뿐, 여성의 경험은 청년의 경험으로 통합되지 못한 채 비가시화됨을 지적하는 글[각주:1]에 비춰볼 때, 어쩌면 표준국어대사전은 자못 적절한 뜻풀이를 제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남성은 남성인데, 젊은() 남성이다. 이들 젊은 남성은 몇 세부터 몇 세까지를 가리키는 걸까? 청년실업률은 15세 이상 29세 이하의 경제활동인구에서 실업자가 차지하는 비율을 말한다. 실업자든 취준생이든 미취업자를 대상으로 하는 서울시 청년수당 신청 자격은 19세 이상 29세 이하다. 한편 취업자를 대상으로 하는 서울시 희망두배 청년통장[각주:2] 사업 신청 자격은 18세 이상 34세 이하이며, 청년고용촉진 특별법에서는 15세 이상 34세 이하로 규정된다. 그런가 하면 2018년 국토안전부가 공시한 행복주택 신청 자격 중 청년층19세 이상 39세 이하로 규정된다. 이는 적어도 한 가지 사실을 뚜렷이 드러낸다. ‘청년은 단일한 의미로 포착되지 않는다. 생물학적 연령만이 아니라 여러 맥락 속에서 다층적으로 구성된 개념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미취업 청년들의 구직활동을 촉진하는 수당인 청년수당에서 청년은 명백하게 대학생(혹은 막 졸업한 취준생)을 상상케 한다. 각 시도 청년수당 홈페이지에서는 이들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신 수당을 받아 자격증 공부/구직 활동에 집중할 여력을 얻었다는 사실을 집중적으로 알리고 있다. 아무리 취직 연령이 늦춰졌다지만 구직 활동비를 지원받을 만한 젊은이는 20대지, 30대가 아니다. 한편 근로장려금인 희망두배 청년통장은 다르다. 학원비나 토익 응시료가 아닌 주거비, 교육비, 결혼자금, 창업·운영자금(저축 목적을 네 가지 중 하나로 설정해야 한다)을 지원받기에 20대는 너무 젊다. 한두 학기 휴학을 하고 졸업을 유보하고 이런저런 인턴 경험을 쌓은 끝에 취직하면 벌써 20대 후반이니까. 학자금을 다달이 상환하고 원룸 보증금이라도 마련해야 할 청년30대 중반까지 범위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청년고용촉진 특별법개정을 놓고 벌어진 논란[각주:3]은 청년/비청년을 나누는 기준이 결코 생물학적 연령만이 아님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경제활동 시작 연령은 늦춰진 데 반해 고용 불안정성은 높아졌고, 평균 수명이 늘어난 데 반해 정년은 당겨졌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청년을 호명하는 이들은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불안정한 지위에 주목하는 듯하다. 가장 잘 알려진 청년세대 담론(88만원 세대, N포 세대)은 마땅히 누려야 하는 것(노동에 상응하는 임금, 연애·결혼·출산 등으로 이어지는 정상적인 생애주기)을 박탈당한 인영들을 불러내며, <아프니까 청춘이다> 같은 베스트셀러에 주목하면서 힐링 혹은 멘토 열풍을 다룬 글들은 기존 체제에 순응적인 인영들을 불러낸다. 자신을 위협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고작 경쟁을 통해 해결책을 찾으려는 청년들은 루저거나 잉여.

 


정치적 기획으로서의 청년 담론

잘 알려져 있듯 이들 담론은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2007년 출간된 <88만원 세대>는 지금까지 20만 부 이상 팔려 나갔으며, 2011경향신문을 통해 퍼져나간 N포 세대 담론은(시작은 3포 세대였다)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러 기사 제목에서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88만원 세대가 77만원 세대로, N포 세대가 달관 세대로 이어졌듯 새로운 세대론이 계속해서 제시됐다. 언론은 이를 계속해서 재생산했다. 분명히, 세대론은 매력적인 답안지다. 청년임대주택 건립을 놓고 빈민 아파트가 들어서면 집값이 폭락할 것이라는 안내문이 나붙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청년임대주택을 둘러싼 갈등은 (N포 목록에 들어가는 내 집 마련에 성공한) 기성세대가 청년세대를 빈민화하면서 내쫓는 님비 현상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세대는 우리그들을 아주 단순하게 갈라주기 때문에 정치 도구로서 매력적이며 동원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각주:4] 즉 세대론은 전선을 명확하게 긋는 듯하지만, 이는 복잡한 갈등을 단순하게 만들어버림으로써 얻어낸 것이다.

<88만원 세대>도 이러한 정치적 동원 내지 기획이었다. <88만원 세대>가 말하는 바를 거칠게 요약하면, 20대가 겪는 문제는 세대 (‘가 아니라) ‘경쟁 혹은 착취이며, 이들을 착취하는 자는 386세대다. 승자(386세대)가 경제적 과실을 독식하고 있으니, 20대여, 바리케이드를 치고 짱돌을 던져라.[각주:5] 박권일은 집필 당시 세대론이 지닐 수밖에 없는 한계를 인식했으면서도 계급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면 책이 얼마나 팔리지 않을지도 잘 알고 있었음을 말하면서 이렇게 썼다. “그 결과 떠올린 방책이 불안정노동의 전면화라는 다분히 계급적인 문제에 세대론의 당의(糖衣)’를 입힌다는 것이었다.”[각주:6] 이는 계급적인 틀을 내세웠을 때 20대가 얼마나 무관심할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세대 간 경쟁이라는 틀을 끼워 넣었다는 말로도 읽힌다. 이런 접근 방식을 적극적으로 밀어붙였던 우석훈은 ‘88만원 세대에 큰 정치적 기대를 걸었던지, 20123월 자신이 생각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며 돌연 절판을 선언하기도 했다.[각주:7]

이 일련 과정은 청년이라는 기표가 어떻게 이용되는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애초에 세대가 연속선상에 놓인 인구집단을 임의적인 기준에 따라 잘라낸 것이기에 어떤 세대든 다른 세대와의 관계 속에서 개념화되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청년세대는 특정한 정치적 기획 아래에서 구별 지어지며, 이 구별짓기는 청년세대에 대한 일정한 고정관념 속에서 이루어지는 듯하다.[각주:8] 누가 어떠한 의도로 호명하는가에 따라 청년은 조국을 지키는 군인이었으며, 혁명 주체였으며, 산업 역군이었다. 요컨대 지난 세기에 청년이 대체로 국가적 과업을 짊어진 이들을 상상케 했다면, 신자유주의가 뿌리내리게 될 1990년대에는 시장으로부터 문화 생산자 혹은 소비자로서 호명됐다. 산업 역군에서도, 혁명 주체에서도, 물론 군인에서도 배제됐던 여성은 문화 생산자 혹은 소비자로서 호명된 청년 속에서야 비로소 찾아볼 수 있는데,[각주:9] 이는 빠순이로 전락하거나 된장녀로 비하됐다. 요컨대 여성은 청년에게 부여됐던 갖은 이름으로부터 번번이 튕겨져 나왔다.

 

존재하지 않는 젠더 격차

마찬가지로 88만원 세대론에서도, N포 세대론에서도 젠더 격차에 대한 관심은 찾아보기 어렵다. 가령 <88만원 세대>비정규직의 여성화를 언급하면서도 정작 여성 노동자에 대해서는 반 장()을 할애할 뿐이다. ‘88만원이라는 구체적인 액수는 전체 비정규직 평균 임금인 119만원에 20대 평균 소득 비율인 74%를 곱해 산출한 금액인데, 잘 알려져 있듯 한국은 성별임금격차가 매우 큰 국가다. 20대 남성과 20대 여성은 서로 다른 노동시장으로 진입해 서로 다른 임금을 받는다. 남성에게 정상적인 생애주기의 단면인 결혼 및 출산은 여성에게 많은 경우 경력 단절, 가사·육아노동으로 이어진다. 자연히 “<88만원 세대>가 처음 나왔을 때 여성학계에서 가장 흔한 반응은 여성 88만원 세대는 어디에 있지?’라는 질문이 됐고, 이는 여성에 주목한 연구로 이어졌다.[각주:10] 그렇지만 배은경이 지적하듯 20-30대 여성에 대한 연구는 여성 연구, 20-30대 남성들에 대한 연구 혹은 젠더 관점을 결여한 몰젠더적 연구는 세대 연구로 다뤄졌다. 요컨대 청년이 남성으로 상상되는 한, 여성에 주목한 연구는 청년 여성이라는 이상한 단어로 남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지적은 어떤 면에서 세대론이 갖는 맹점을 떠올리게 한다. 가령 학벌주의가 비단 20대에 국한된 문제가 아님에도 곧장 청년 문제로 받아들여지듯이, 특정한 연령층(특히 20, 60)이 언급될 때 해석 틀은 너무도 쉽게 세대주의로 흘러가고 만다. 앞서 언급했던 청년임대주택 문제 역시 다분히 세대주의적인 관점으로 해석됐다. 한 필자는 청년들이 이렇게 가난한 것에 부모 세대의 책임이 하나도 없다고 말할 수 있는가를 물었고, 한 기자는 이 정도면 어른들의 갑질이라 부를 만하다. 내 재산권, 내 생존권을 위해 청년들의 등골을 빼먹겠다는 것 아닌가라고 일갈했다.[각주:11] 이는 한국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위상을 고려할 때, 부동산 매매 차익을 통한 자산 축적이 더 이상 불가능함을 고려할 때, 폭등한 부동산 가격에 독립하지 못하거나(이는 부모에게 부담을 가중시킨다는 비난으로 돌아온다) 빈곤을 벗어나지 못하는 청년들을 고려할 때, 충분히 납득할 만한 지적으로 들린다. 그렇지만 이들 지적에 깔려 있는 세대 적대라는 명제는, 입주 세대를 특정하지 않은 다른 임대주택 건립지에서도 같은 갈등 양상이 나타났다는 사실을 삭제하거나 무시한다. 때문에 청년임대주택이란 미명하에 70% 이상이 1인 거주 5평짜리 빈민 아파트가 어떻게 청년을 빈민화하는지에 대해서는 묻지 않은 채, 다만 후안무치한 기성세대를 꾸짖는 데서 끝난다.

같은 맥락에서 20-30대 여성에 대한 연구가 세대 연구가 아닌 여성 연구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비단 한 세대에서 여성이 벗어나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많은 이들이 복잡한 갈등을 단순하게(단순하기 때문에 명쾌해지는) 이해하고 싶어하기 때문은 아닐까. 청년임대주택이 세대 간 격차에서비롯된 문제가 아니듯이, 20-30대 여성들이 겪는 어려움은 성차에서비롯된 문제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고 말하려면 우리는 모든 여성이 같은 출발선에, 같은 조건을 가진 채로 서 있다고 가정해야만 한다. 말하자면 단일한 여성이라는 단위를 상상해야 한다. 그렇지만 청년이 그러했듯이 여성역시 여러 맥락에서 다층적으로 구성된다. 이는 성별이 중요한 변수임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마찬가지로 세대라는 개념을 기각하자는 것도 아니다). 어떤 문제를 여성 문제로 환원할 때, 혹은 여성 문제라는 이름을 붙일 때 많은 것이 단순해지지 않는가 묻는 것이다. 가령 비정규직 노동자 다수가 여성일 때, 이들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연구는 여성 연구이기만 한 걸까? 이러한 이름 붙이기는 노동환경이 열악해서, 저임금이어서, 진입 장벽이 낮아서 점점 여성화된 맥락을 뭉개버리는 것이 아닐까.

그렇기에 조금 다른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기존 청년세대 담론에 젠더 관점을 끼워 넣는 것은 이 글의 관심사가 아니다. 여성이라는 위치를 부각하는 순간 두 가지 의문이 생겨난다. 계급, 젠더, 인종 등 한 사람을 구성하는 여러 변수를 주변화하고 세대를 우선시함으로써 중층적이고 복잡한 문제를 세대 갈등으로 단순화해버렸듯이, 많은 문제를 성별 대립적인 갈등으로 설정해버리는 건 아닐까. 더욱이 많은 경우 남성에 비해 열악한 처지에 놓여 있는 여성에 초점을 맞출 때, 이는 더 불행하고 더 절망적이기만 한 세대론을 또 하나 만들어내는 게 아닐까. 요컨대 묻고 싶은 것은 균일하지 않은 인구 집단을 단일한 세대로 설정하는 함정에 빠지지도 않고, 성별 대립적인 설명이라는 함정에 빠지지도 않으면서 청년 여성을 어떻게 말할 수 있는가다. 이는 청년 여성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이기도 하다.

기존 청년세대 담론에 젠더 관점을 끼워 넣는 것이 관심사가 아닌 이유는 간단하다. 청년 남성이 누구인가를 밝힌 다음 여기에 여성을 끼워 넣으면 청년 여성이 될 수 있는가? 아니, 청년 남성과 청년 여성은 같은 연령대마저도 가리키지 못한다. 남성은 자연스럽게 나이를 먹는다. 소년에서 청년으로, 청년에서 장년으로 옮겨 가면서 한 세대를 표상하는 이미지가 된다. 반면 여성이 나이를 먹는 과정은 끊임없이 성별에 달라붙어 이름 붙여지며, 특정한 이미지들을 만들어낸다. 소녀, 여고생, 여대생, 아가씨, 아줌마, 노처녀, 골드미스, 미시족 등. 요컨대 여성은 자연스럽게 나이를 먹지 않는다. 청년기는 여성에게 훨씬 잘게 쪼개져 특정한 나이에 취해야 하는 행동 양식이 된다. 25세에 이미 꺾이기 시작해 30세를 맞는 순간 져버리듯, 여성의 시곗바늘은 남성보다 더 빨리 돌아간다. 여성은 노동시장에서 더 빨리 늙고, 더 빨리 퇴출당한다. 여성에게 신체적·정신적으로 한창 성장하거나 무르익은 시기는 놀랄 만큼 짧은 것이다.

그렇다면 청년 여성은 대체 누구를 지칭할 수 있는 호칭일까?


  1. 배은경, 「‘청년 세대’ 담론의 젠더화를 위한 시론」, 『젠더와 문화』 8, 2015, pp. 7-41. [본문으로]
  2. 2018년 공시된 ‘희망두배 청년통장’은 참여자가 2년/3년 동안 매달 근로소득으로 저축하는 금액과 동일한 금액을 서울시 예산 및 시민 후원금 등으로 적립, 지원해주는 사업이다. 단 본인 근로소득금액이 세전 월 220만 원 이하여야 하며, 부모 및 배우자의 소득인정액이 기준중위소득 80% 이하여야 한다. [본문으로]
  3. 이 법안은 다소 복잡한 맥락을 갖고 있다. 2004년 입법된 「청년실업해소 특별법」은 ‘청년’을 15세 이상 29세 이하로 규정한다. 2008년 12월 31일까지 효력을 갖는 한시적 법안이었던 「청년실업해소 특별법」은 2009년 「청년고용촉진 특별법」으로 개정된다. 공공기관 및 지방공기업으로 하여금 매년 정원의 3%를 청년 고용에 할당하도록 한 「청년고용촉진 특별법」 역시 2013년 12월 31일까지 효력을 갖는 한시적 법안이었다. 논란은 이를 개정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청년 실업이 큰 사회 문제로 여겨지고, 취업을 위해 졸업을 유보하는 등 평균 취업 연령이 높아진 상황 속에서 청년을 29세 이하로 규정하는 건 불합리하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결국 이 법안에서 ‘청년’ 개념은 수정됐고, 공공기관 및 지방공기업이 채용하는 경우에 한해 15세 이상 34세 이하인 사람을 가리키게 됐다. [본문으로]
  4. 전상진, 2013; 김선기, 「세대연구를 다시 생각하다」, 『문화와사회』 17, 2014에서 재인용. [본문으로]
  5. 물론 <88만원 세대>는 20대가 다른 세대에 비해 구조적으로 취약한 곳에 놓일 수밖에 없는 배경(신자유주의, 부재하는 사회적 안전망, ‘선택과 집중’을 내걸었던 국가 정책 등)에 대해서도 서술한다. 그렇지만 결론이라고 할 수 있는 3장에서 ‘20대에게 필요한 것들’로 바리케이드와 짱돌을 드는데, 아직 기존 체제에 들어가지 못했거나 들어가더라도 비정규직으로 밀려나고 말 20대가 가질 수 있는 ‘상징적 짱돌’을 예시하는 문장은 다시금 세대주의적인 논지로 돌아간다. “만약 20대 1만 명 정도가 스타벅스에 가기를 거부하고 20대 사장이 직접 내려주는 커피와 차를 마시겠다는 선언을 했다고 생각해보자.” [본문으로]
  6. 88 세대론 <조선> 독우물에 빠지다’, 레디앙, 2009.1.30. [본문으로]
  7. 그는 <88만원 세대>가 “세상에 준 기여보다 부정적 폐해가 더 많게 된 책, 청춘들이 움직이지 않을 이유를 삼게 된 책”이라고 말하며 “죽어도 바리케이드를 치지는 못하겠다는 20대만 많아졌다”는 데에 강한 실망감을 표했다. ‘우석훈 교수 “20대 변화 없어… 88만원 세대 절판”’, 《경향신문》, 2012.3.26. [본문으로]
  8. 김선기, 앞의 글. 이 글에서 김선기는 특정 연령집단에 대한 고정관념의 존재와 효과에 대한 다른 연구자들의 설문조사를 참고하는데, 이에 따르면 “특정 연령집단에 대한 부정적 편견이 다른 연령집단은 비껴가면서 20~30대와 60대 이상에게만 귀속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본문으로]
  9. 이는 이 시기 여성을 공적 노동시장에 참여하는 노동자로 호명하는 담론이 본격적으로 자리 잡은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엄혜진, 「신자유주의 시대 여성 자아 기획의 이중성과 ‘속물’의 탄생」, 『한국여성학』 32, 2016, pp. 31-69. [본문으로]
  10. 배은경, 앞의 글. [본문으로]
  11. ‘세대의 님비’, 《한국일보》, 2018.4.20; ‘청년 울리는 어른들의 ‘갑질’’, 《경향신문》, 2018.4.16.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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