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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 이론의 위기

 

* 본 번역 텍스트는 '생각의힘' 출판사를 통해 곧 출간될 루이 알튀세르의 유고집 『검은 소』(배세진 역) 제4장이다. 게재를 허락해준 출판사에 감사드린다.

 

 


Q> 방금 당신이 정세에 관해 언급했으므로, 엥겔스가 ‘이론에서의 계급투쟁’이라 불렀던 것,[각주:1] 즉 이론적 정세 또한 우리의 논의에 개입시켜야 하는 것 아닐까요?

A> 물론이죠.
그리고 우리의 논의를 더 진전시키기 전에, 어떠한 이론적 맥락에서 우리의 질문이 제기되는 것인지를 언급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질문은 다음과 같이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현재 상황이 처해 있는 이론적 맥락, 간단히 말해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과학적 개념에 대한 포기 자체가 과학적 개념의 중요성이라는 질문을 제기한다는 이론적 맥락에서 굉장히 역설적인 형태를 취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언젠가 역사가 이 사태에 대한 판단을 내릴 것이며, 우리가 그 안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그 현실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원인이 아마 나타나도록 만들 것입니다. 우리가 요구하지는 않았지만 이 현실로부터 그 유산을 상속받았다는 단순한 이유로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역사가 판단을 내릴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으며, 심지어 역사학자들이 판정을 내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지, 그들이 판정을 내리기를 원하는 날이 올 것인지조차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수단을 가지고 스스로 해나가야 하며, 우리에겐 다른 선택지가 없습니다. 물론 우리는, 놓쳐서는 안 되는 모든 기회를 활용하여, 진화주의적이고 경제주의적이며 인간주의적-의지주의적인 스탈린주의적 편향이 우리의 이론적 공백의 가까운 원인이라고 말하고 쓸 수 있습니다(왜냐하면 이러한 원인은 우리 눈에 매우 명백해 보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왜 이러한 스탈린주의적 편향이 존재하며 그 시작은 정확히 언제부터일까요?). 우리는 스탈린주의적 편향과 그 효과의 존재를 확인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효과가 국제 공산주의운동 전체로 퍼져나갔으며, 국제 공산주의운동에 굉장히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했다는 점을 확인합니다. 수백만 명의 희생자뿐만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죽음을 당한 것뿐 아니라, 이념 또한 죽음을 당했기 때문입니다.[각주:2]

사태를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합니다. 과학이라는 단어를 제가 여러 번 언급했기 때문에, 그리고 독트린을 가진 다른 조직들과는 달리 공산당은 과학이라는 독트린을 가지고 있는 조직이라는 점을 제가 주장했기 때문에, 우리는 필연적으로 과학에 대해 말해야 합니다. 새로운 대상을 인식하기 위해 자기 고유의 개념들에 관해 작업하지 않는 과학, 즉 이전 개념의 기초 위에서 새로운 과학적 개념들을 유기적인 방식으로 생산하지 않는 과학, 그러한 과학은 스스로를 ‘과학’이라고 선언해보았자 과학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는 교리dogme[독트린]가 되는 것이 아니라(사람들은 마르크스주의가 종교라는 이야기를 귀가 따갑도록 우리에게 반복적으로 들려줍니다만) 지배 이데올로기의 단순한 부록,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변종이 될 뿐입니다. 저는 마르크스주의가 마르크스주의자들, 심지어는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부르주아적인 위치에서 행해질 수 있었다는 점을, 그리고 마르크스주의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 의해 지배받거나 심지어는 마르크스주의 고유의 용어라는 외피 아래에서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 의해 포위될 수 있었다는 점(우리는 이에 대해 제2인터내셔널의 ‘수정주의자들’이라는 예를 가지고 있죠)을 충분히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점을, 공산주의자들이 최소한 그 가능성을 인정할 수 있도록, 마르크스와 레닌의 이론과 사상 자체의 기반 위에서 말했습니다. 

왜 역사적으로뿐만 아니라 (제2인터내셔널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이론적으로도 이것이 가능할까요? (어떠한 과학이 가지고 있는 과학성이라는 특권에 의해, 다시 말해 진리의 순수함에 의해 그 과학은 이데올로기로부터 보호받을 것이라 간주되곤 하지만) 이는 세상의 그 어떠한 과학도 이데올로기로부터 안전한, 이데올로기의 모든 영향력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그러한 영역 내에 존재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모든 과학은 경제적·정치적·이데올로기적인 계급투쟁의 세계인 현실 세계 내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모든 과학은 생산, 정치, 이데올로기, 철학의 실천들이 인식을 생산하는 특수한 마주침rencontres을 통해 결합하는 그러한 세계 속에서 태어납니다. 그리고 최초의 인식은 그 최초의 인식이 생산해내는 고유한 이론적 실천을 통해 또 다른 인식으로 확장되거나 또는 다른 인식과 결합되면서, 이데올로기적이고 철학적인 요소들의 새로운 정세하에서 또 다른 인식의 탄생을 가능케 합니다. 과학사가들을 그토록 놀라게 했던 과학의 역사에서의 불연속성은 과학 사이의(즉 서로 다른 이론적 실천 사이의) 지식노동 분할의 효과, 철학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그리고 항상 독특하며 규정된 정세하에서 좋은 또는 나쁜heureuses ou malheureuses 마주침(이로부터 새로운 인식이 탄생하거나 유산됩니다)을 생산하는 효과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철학이라는 수단을 통해 이데올로기(저는 이 단어를 통해, 계급모순으로 특징지어지는 현실적이고도 모순적인 어떠한 다양성을 지시합니다)는 과학의 시작에서부터 그 가장 고도의 발전에 이르기까지 과학을 에워싸는enveloppe 것입니다. 

그리고 이데올로기는 과학들을 처음부터(즉 ‘인식론적 단절rupture épistémologique’의 순간에서부터) 과학들에게서 낯선 무언가의 자격으로 에워싸지는 않습니다. 이데올로기는 과학을 그 과학 고유의 이데올로기적 방어물, 과학이 자기 고유의 실천 조건을 성찰하기 위해 발산하는 이데올로기와 자생적 철학의 자격으로 에워쌉니다. 하지만 우리는 — 최근에 저는 다음을 보여주려 시도했던 것인데[각주:3] — 이러한 ‘과학자들의 자생적 철학’이 모순적이며, 그 자생적 철학이 포함하는 유물론적 요소는 가장 많은 경우 지배 이데올로기 — 지배 이데올로기는, 지배계급의 독재의 형태들 중 하나인 관념론적 요소가 인간 세계를 지배한다는 점에서, 인식의 세계와는 다른 것[인식의 세계를 넘어선 인간 세계 자체]을 지배합니다 — 에 종속되어 있는 관념론적 요소에 의해 지배당한다는 점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철학을 경유하여(철학은 계급투쟁 속에서 이데올로기적 모순들을 통해 정치적으로 ‘조정된’ 이론적 형태입니다) 주어진 시기의 서로 다른 과학의 결과물들은 (과학이 처해 있는 주어진 정세에 따라 정도가 달라지지만) 항상 어느 정도는 지배 이데올로기 —지배 이데올로기는 과학이 실제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과학이 지배 이데올로기로서 기능하기 위해 말해야 하는 것을 그 과학이 말하게 하기 위해 이 과학을 통제합니다 —에 좌우되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만일 정치적 정세가 적합하다면, 다시 말해 철학과 이데올로기 사이의 관계의 정세가 이에 부합한다면, 과학이 자신의 실천의 자율성 내에서 그리고 그 자율성에 의해 충분히 보호받지 못한다면, 특히 과학이 살아 숨쉬지 않는다면, 과학이 자신의 정복 범위를 넓히지 않는다면, 과학이 그 ‘초석’(레닌[각주:4])에 머무르는 것에 만족한다면, 과학이 자신을 노리는 지배 이데올로기의 위협을 끊임없이 물리치지 않는다면, 과학이 유물론적 요소의 곁에서 과학자들의 ‘자생적 철학’을 흔들리게 만들지 않는다면, 과학이 새로운 영역들을 끊임없이 장악하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지배 이데올로기는 과학을 장악하고 과학에 침투하며 과학을 포위하게investir 됩니다.

이것이 ‘사회’과학보다는 자연과학이라 불리는 학문들과 관련될 때 사고하기가 더욱 힘들다는 점은 언젠가 우리가 검토해보아야 할 사실입니다. 이 사실은 아마도 이러한 자연과학이라 불리는 학문들의 이론적 실천이 가지는 더욱 큰 보호막, 다시 말해 더욱 높은 자율성과 관계가 있을 것입니다. 또한 아마도 이는 결국엔 이 학문들이 지배계급과 항상 맺어왔던 계약과 관계가 있을 것입니다(이 학문들은 착취에서, 즉 그 원재료와 수단을 자연으로부터 획득하는 물질적 생산에서 지배계급의 이해관계에 직접적으로 봉사해왔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소묘된 도식이 ‘사회’와 ‘역사’에 관한 학문들에서 일어나는 바 또한 잘 설명한다는 점, 그리고 특히, 추상적인 방식이라고 하더라도, 우리가 확인하고 있는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위기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바를 잘 설명한다는 점은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배 이데올로기, 즉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마르크스주의 이론 내로의 침투investissement가 역사적으로도 또한 이론적으로도 가능하다는 점을 주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은 『자본』 출간 100년 이후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만 의미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주장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와 그 이론적 형성물들formations, 특히 무엇보다도 부르주아지의 이데올로기적 계급투쟁의 관점에서 이 이론적 형성물들 중 으뜸가는 것인 정치경제학과의 단절을 완수하기까지 (계급적 이유로 인해) 오랫동안 자신의 길을 추구해야 했던 마르크스 자신에게도 유효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마르크스 자신은 그가 단절을 수행했던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었습니다. 이는 그 부르주아 이데올로기가 그 당시 지배적이었기 때문이죠. 우리는 그 흔적을 마르크스의 청년기 저작들뿐만 아니라 『자본』, 그리고 물론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와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Grundrisse der Kritik der Politischen Ökonomie』—이 저작은 소외라는 주제와 관련하여 모든 인간주의적인, 즉 (부르주아 해석자든 공산주의 해석자든 대부분의 마르크스 해석자에게 지배적인) 관념론적인 해석을 가능케 해줍니다 — 에서도 발견합니다. 우리는 그 흔적(이 흔적은 아주 잘 감추어져 있는데, 왜냐하면 아담 스미스의 ‘생산적 노동’[각주:5]에 관한 이론적 논의를 받아들이는 『잉여가치학설사』가 『자본』이 스미스의 논의를 자신의 것으로 다시 취한다고 생각하게끔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는 부정확한 이야기죠.[각주:6])을 『자본』에서의 잉여가치론에 대한 [표면적으로는] 회계론적인 설명, ‘생산양식’ 개념에 관한 (기이하게도 부재하는) ‘이론’, 자본주의의 ‘부르주아적’ 기원에 관한 이론 등등에서와 같이 바로 ‘생산적 노동’에 관한 ‘이론’에서 발견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모든 허구적인 문제들이 마르크스를 독해할 줄 알았던 레닌에게서는 근본적으로 사라진다는 점을 또한 확인합니다. 

그리고 만일 우리가 마르크스 이후 마르크스주의 이론에 일어난 일들에 관해 질문한다면, 만일 우리가 『자본』에 마르크스보다 10년을 더 살았던 엥겔스의 모든 저작들을 추가한다면, 제2인터내셔널 시기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지도자들이 역사유물론의 질서에서든(카우츠키의 『농업문제La Question agraire』), 문학사의 질서에서든(메링F. Mehring), 철학적 질서에서든(라브리올라A. Labriola, 플레하노프), 부여받은 이론적 임무를 계속 추구할 줄 알았다는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들은 이러저러한 점에서 실수를 할 수 있었지만, 최소한 그들은 마르크스의 발견을 통해 열린 영역을 확장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로자 룩셈부르크에 관해서만 이야기해보자면, 그녀는 『자본』 2권의 재생산 표식에 관해 실수를 범할 수 있었으며, 또한 (엄격함을 지닌 능력 있는 인물이었음에도) 이로부터 제국주의에 관한 잘못된 결론들을 이끌어내기도 했지만, 그녀가 저지른 몇몇 오류의 명백함은 오히려 상당히 흥미로운 부분이며, 이론에 관해 그녀가 집필했던 모든 것은 전혀 잘못된 것이 아니었고, 어쨌거나 결국 그녀는 이에 관한 작업을 수행해냈습니다! 오늘날 마르크스주의 이론에 관한 과학적 생산물들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물론, 다행스럽게도 우리에게는 안토니오 그람시가 있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옥중수고』를 남겨줄 만큼, 감옥에서이긴 하지만 충분히 오래 살 수 있었지요.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필요한 경우에는 검열을 피하기 위해 만들어진 정식들에서 그가 말하고 싶어하지 않았던 것을 그에게 말하도록 하면서, 그에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그람시를 대학 출판본[각주:7]으로 읽을 수 있으며 이 대학 출판본은 토글리아티Togliatti가 첫 번째 이탈리아어 출판본에서 삭제했던 구절들(참 잘한 짓입니다!)까지도 복원하여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그람시 또한 모두가 그러했듯, 마르크스가 그러하고 엥겔스와 레닌과 마오가 그러했듯, 바보같은 말을 했습니다. 과학을 실천하는 이들이 오류를 전혀 말하지 않게끔 보장받는 그러한 과학은 세상에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의 오류에 감사를 표해야 합니다. 특히 그 오류가 체계적일 때 말이죠. 왜냐하면 오류는 그들이 엄밀한 개념의 기초 위에서 탐구를 행했다는 점을, 그리고 탐구할, 다시 말해 사고할 용기를 가진 이들만이 실수한다는 점을 증명하기 때문입니다. 마르크스가 자신이 원했던 『자본』의 독자를 정의하기 위해 말했듯이, ‘그들 스스로 사고할’ 용기를 말입니다.[각주:8] 

그렇습니다, 우리는 루카치가 아닌 그람시를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루카치는 (마르크스주의적 ‘존재론’이라는 불가능한 수단을 가지고 스탈린의 ‘사상’을 피하기 위해 그가 견뎌야 했던) 끔찍한 시련으로부터 이론적으로 살아남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세계의 다른 쪽 끝에서, 비록 그가 우리가 아닌 다른 세계의 사람들[중국 인민들]을 위해 말하기는 했지만, 우리는 그 또한 마르크스주의자였고 ‘사고했’으며 또한 ‘스스로’ 사고했던 마오를 가지고 있습니다. 비록 마오가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실용주의적이고 도덕적인 경향의) 몇몇 오류를 저질렀지만, 그 오류들은 위대한 공산주의 이론가-지도자들의 모든 오류와 마찬가지로 흥미로운 것들입니다. 왜냐하면 공산주의 지도자는 그가 이론가인 경우, 다른 이론가들과 동일한 종류의 이론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그는 단순한 언어로 단순한 사태들을 말하기를 받아들이는, 그리고 진실된 것들을 말하려 하는 대중의 이론가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말하는 것은 실천을 직접적으로 통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이곳 또는 저곳에서 마르크스 또는 레닌 또는 그람시 또는 마오 또는 트로츠키 —빈약한 실력의 철학자였다는 점에서, 이론가라기보다는 정치가와 분석가였던 — 를 그들의 자리에서만 사고하도록 내버려 두는 모든 이들은, 비록 그들이 마르크스주의 이론에 스탈린적 실천들과 노선이 초래한 경직화와 단절했다고 믿는다 하더라도,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아주 조금도 발전시키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스탈린의 공세에 굴복하기 이전에 소련에서 투쟁했던 위대한 이론가들의 중요한 저작들을 겨우 알아가기 시작했을 뿐입니다. 『부하린Boukharine[각주:9] 전집』은 어디에 있습니까? 『프레오브라젠스키Préobrajenski[각주:10] 전집』은 어디에 있나요? 그리고 만일 우리가 이를 알아가기 시작했다면, 이는 프랑스 공산당 출판부가 아니라 부르주아 출판가들 또는 트로츠키주의 운동 —불행히도 그 위대한 선조[트로츠키]의 전집 하나로 만족하는 — 덕분입니다.

우리의 유산…, 우리는 그 유산을 우리의 경험을 통해 더듬거리며 찾아나갑니다. 반면 삶과 계급투쟁은 마르크스주의 이론이 생산되어 결국 그 침묵으로부터 탈출하기를, 그리고 마르크스가 우리를 위해 열어젖힌 이 대륙에 관하여 마르크스주의 이론이 말해야만 하는 것, 마르크스주의 이론만이 말할 수 있는 것을 말하기를 요구하고 있죠. 저는 분명히 ‘이 대륙ce continent’이라고 당신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마르크스주의자들과 ‘마르크스를 따르는 이들marxisants’이 모든 분과학문에서 우글거리는 때에, 만일 이 대륙이 그 위에서 사태가 명확해져야 하는 지점이라면, 이는 마르크스주의 이론이 모든 과학적 이론과 마찬가지로 한계지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발전이 한계지어져 있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대상 안에서, 자신의 대상에 의해 한계지어져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심지어 공산주의적 사유까지도 오염시키는 범박한 생각들과는 달리, 마르크스주의 이론은 철학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 존재하는 문제들 전체를 포괄한다고 주장하는 하나의 앎이 아닌 것입니다. 마르크스주의 이론은 하나의 과학이며, 이 과학은 한계지어져 있는 대상에 관한 과학입니다. 마르크스는 무엇에 관한 과학적 인식을 우리에게 남겨주었던 것일까요? 바로 부르주아 독재를 프롤레타리아 독재로 뒤바꾸는 혁명으로 필연적으로 나아가는, 자본주의 생산양식과 그 모순적 경향들입니다. 마르크스는 이와는 다른 주장을 한 적이 전혀 없습니다. 

마르크스는 단 한 순간도, ‘인성personnalité에 관한 마르크스주의적 이론’[각주:11] 또는 어떤 다른 심리학(그것이 무엇이든 간에)을 위한 기초를 제공하는 주장을 한 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문제에 관해 명시적으로 말할 필요가 없었던 그는 심리학이 제1의 분과학문으로 존재하는 한에서(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이 점에 대해 면밀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지배적 분파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기 때문입니다. 

마르크스는 정치경제학이라는 하나의 이론을 형성하는 주장을 제시한 적이 전혀 없습니다. 그는 자신이 정치경제학에 대한 ‘비판’을 하고 싶었다는 점을 충분히 말했으며, 하나의 경제학 이론이라는 관념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 속하는 것이라는 점(케인스조차 이 점을 반박하지 못했습니다)을 충분히 보여주었습니다. 마르크스는 하나의 사회학을, 하물며 하나의 심리사회학psychosociologie[사회심리학] —이 둘 모두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 속하는 것인데, 그 이유를 우리는 곧 확인할 것입니다 — 을 창설하지 않았으며 또한 창설하도록 허락하지도 않았습니다. 

이 모든 분과학문 —최소한 그 현대적 형태에서는 부분적으로는 마르크스의 생전에,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마르크스 사후에 발전된 분과학문 — 은 마르크스주의 이론과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다. 반면 이 분과학문들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와 명백한 관계를 맺고 있는데, 다음을 상기시키길 허락하신다면,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는 프롤레타리아에 대항하는 부르주아 계급투쟁의 본질적인 일부입니다. 

이 분과학문들을 공공연히 지는 해로 간주하는 우리의 동시대인들에게 이 점을 확신시키기 위해 다음을 상기시킬 필요가 있을까요? 사회학을 창설한 것은 오귀스트 콩트Auguste Comte이며, 프랑스에서 사회학을 발전시킨 것은 에밀 뒤르켐Émile Durkheim이며, 이들은 계급의 이론적 위치positions에 대한, 심지어 더욱 단순하게는, 계급의 완벽하게 개방된 정치적 위치들에 관한 작업(이 작업은 전혀 현재성을 잃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을 행했다는 점을요 —이들은 사회계급과 계급투쟁에 관한 부르주아 ‘이론’ 내에서, 그러니까 프롤레타리아에 대항하여 부르주아지가 (무엇보다도 사회학의 도움으로) 이끄는 이데올로기 투쟁 내에서 사회학에 부여된 기능에 관해 어떠한 의심도 하지 않았죠 —. 그리고 만일 콩트와 뒤르켐에 관해서는 전혀 논쟁의 여지가 없는 것이라면, 베버, 즉 가장 ‘대담한 것’에 관해서, 가장 ‘급진적인 것avancée’에 관해서(아카데믹하게 말하자면, 예, 그렇죠. 하지만 그다음에는요?), 가장 ‘자유로운 것’에 관해서 —자신이 제기하지 않는 모든 문제에 관한 해결책으로 하비투스habitus 개념을 지겹도록 반복하는, 정치를 행하려 하는 이들에게 굉장히 수사학적인 방식으로 수사학 강의를 하는,[각주:12] 그리고 파리 고등사범학교École[각주:13] 내에서 투쟁하려 하는 이들에게 자신의 거대한 경험연구(‘우리on’는 파리 고등사범학교에서 일어났던 구체적인 것들에 대해 두려워할 것이 없기 때문에 이 경험연구를 할 수 있었다고 말하면서요!)의 결론(어찌되었든 그 무엇도 무언가를 변화시키지 않으며 행동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점을 ‘재생산’ 개념의 개입을 통해 증명하는)을 상기시켜주려 하는 프랑스 사회학 학파 스스로의 자기 인식이라는 눈으로 봤을 때 베버는 최소한 그렇죠 — 사고했던 이 대가는 무엇을 말했을까요? 사회민주주의적인 사회학, 다시 말해 계급협력에 관한 ‘좌파적’ 태도가 무언가를 더 잘 해내지는 않습니다. 

한편으로 만일 마르크스주의 이론이 이렇듯 제한적이라면,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만일 우리가 이데올로기적 계급투쟁의 효과로 인해, (이 동일한 투쟁에서 완벽하게 ‘작동하는’, 하지만 노동자 계급투쟁에서는 작동하지 않는) ‘이론들’과 마주하게 된다면, 당연하게도 마르크스주의 이론은 자신의 영역, 즉 자기 자신 안으로 침잠할 수밖에 없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걸까요? 하지만 이는 소위 정치경제학·사회학·심리학·심리사회학 그리고 이를 뒤따르는 다른 학문들이 차지하는 영역이 기만적인 이론들에 의해 점령당해 있다는 점을, 그리고 이 영역으로부터 이 학문들을 내쫓아야 한다는 점을 망각하는 것입니다. 다른 곳에서와 마찬가지로, 제가 말하지도 않은 것을 여기에서 말하게 만들지는 말아주십시오. 저는 이데올로기적으로 말하자면 부르주아적일 수밖에 없는 정치경제학·사회학·심리학 그리고 심리사회학의 사회적 이성하에서 형성된 모든 것이 본성적으로 전혀 유효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의 ‘조사연구recherche’ 활동들을 떠받치는 [부르주아적인] 사회적 이성이 있음에도, 이 분과학문 내에서 유효한 무언가가, 심지어는 흥미로운 무언가가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잘못된aberrantes 범주 —이 단어를 통해 저는 잘못된 철학적 관념을 의미합니다 —가 분명 흥미롭고 부분적인 결과, 하지만 실증적이며 이 결과를 풍부하게 만들 수 있는 이론이 다시 취할 수 있는 결과를 (주어진 이론적 정세와 새로운 경험들의 역설적 마주침들을 통해) 생산할 수 없는 이성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과학의 역사는 이를 풍부한 사례를 통해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세상의 그 무엇도 이 동일한 결과가 [그 결과를 생산한] 범주 — 이 범주들하에서, 그리고 이러한 범주가 있음에도 이 결과들이 생산되었던 그러한 범주 — 에 관한 이론적 주장을 [역으로 거슬러 올라가] 정당화할 수 있도록 만들어줄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는 정치경제학·사회학·심리학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점을 강조해야 하는데, 저는 사태를 또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자연스럽게도 제가 말하는 것은 지배 이데올로기의 기존 관념뿐만 아니라 개인적 신념 —이는 개인들을 맹목적으로 만듦에도 여전히 존경할 만한 것입니다 — 과도 충돌하기 때문입니다. 

1960년 이래로 우리는 사람들이 심리학주의psychologisme라고 부르는 것에 대항하는 전위적 인간 과학의 위대한 저항을 경험했습니다. 후설은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과학적 인식의 이론 내에서 [이러한 전위적 인간과학의 위대한 저항을 위한] 길을 열었는데, 그는, 이 점에서 칸트를 넘어 흄(그렇습니다!), 데카르트, 플라톤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기나긴 관념론적 전통을 따라가면서, 동시대의 주관성la subjectivité courante, 즉 ‘심리학적’ 주체의 주관성[주체성]과는 또 다른 [중요한] 지점은 ‘초월론적transcendantale’ 주관성[주체성]이라는 점을 상기시켰습니다. 왜냐하면 ‘심리학적’ 주체의 주관성[주체성]은 직접적인 소여所與들, 그러니까 불연속적이고 우연적인 소여들을 기록하기만 할 뿐인 데 반해, ‘초월론적’ 주관성[주체성]은 이 주관성[주체성]이 자신의 인식의 대상, 그러니까 자신의 앎을 구성한다는 점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다른 곳에서 저는 이러한 주체에 관한 철학, 이러한 ‘초월론적’ 주체에 관한 철학에 대해 제가 생각하는 바를 말했었습니다(cf. 『철학과 과학자의 자생적 철학』[각주:14]). 그런데 랑그langue에 관한 이론을 만들기 위해 언어langage를 ‘에포케épochè’ (중지 혹은 괄호에 넣기)[각주:15]에 종속시켰을 때, —‘에포케’는 언어를 그 구조의 관점에서 연구하기 위해 언어로부터 모든 파롤parole을 (그리고 일반적인 방식으로 모든 ‘심리학적’이고 ‘역사적인’ 결정작용을) 제거했습니다— 소쉬르는 (철학에서 후설이 말했던 것을) 과학자로서의 자신의 ‘자생적 철학’ 속에서 자생적으로 발견해냈습니다. 이러한 반심리학주의는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냈습니다. 우리는 문학과 ‘텍스트’에 관한 새로운 이론가들에게서와 마찬가지로 레비스트로스가 선언했던 구조주의의 반심리학주의 또한 발견했던 것이죠. 

우리는 이러한 반심리학주의를 경멸해서는 안 되는데, 왜냐하면 이는 동시에 반경험주의였으며, 이러한 반심리학주의이자 동시에 반경험주의라는 이중의 자격으로, 이 반심리학주의는 경험적 사실 또는 주관적 의식의 소여들의 명증성에 자신의 대상을 단순히 종속시키는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대상을 정의할 수 있는 이론적 인식의 자격을 옹호할 수 있다는 이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실수할 것에 대한 두려움 없이, 우리는 이러한 반심리학주의에 대한 옹호와 설명(심지어 몇몇 이들은 이 반심리학주의를 구조주의와 결합시켰습니다)이 프랑스 철학이 (최소한 신소쉬르주의자들의 언어학과 라캉 정신분석학, 그리고 신no문학이론과 관련된 교육과정들에서) 신실증주의적 경험주의의 오염(우리는 프랑스에서 이를 분명히 무시하고 있는데, 이러한 오염은 압도적인 방식으로 제국주의 국가들에서 지배적이었으며 사회주의 국가들에서도 상당한 위력을 떨쳤습니다)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었던 주요한 이유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반심리학주의를 말하는 이는 그래도 역시 심리학에 관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최소한 표면적으로는 그렇죠. 왜냐하면 만일 심리학이 존재한다면, 반심리학주의적 심리학들, 다시 말해 주관주의적이지 않고 경험주의적이지 않은 심리학들 또한 존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정신분석학(잠재적인 모든 혼란을 피하기 위해 이 점에 관해 라캉은 정신분석학이 심리학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그리고 뤼시앵 세브의 인성 심리학psychologie de la personnalité(이 인성 심리학이, 자신의 주장들이 수없이 많음에도 과학이 아니라 마르크스주의 과학을 존재하지 않는 대상에 적용하는 위장된 도덕적 이데올로기라는 점을 제외한다면) 등등이 그렇죠. 하지만 사실적 수준의 문제를 논의해봅시다. 저는 단순히 다음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만일 철학적 반심리학주의가 부정적인 테제들로 한정된다면 그것은 우연이 아니란 겁니다. 만일 당신이 하나의 과학을 정초하고 싶다면, 당신은 당신 과학의 대상을 주관성의 소여들과도, 그리고 경험적 사실들과도(심지어 실험에 의해 ‘확인된’ 사실들이라 할지라도)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만일 당신이 하나의 과학을 정초하고 싶다면, 당신은 주관적 소여들과 경험적 사실들을 ‘중지시키’고 ‘괄호에 넣어’야 합니다. 그리고 당신 자신에게 이러한 과학의 이론적 대상을 직접 부여해야 합니다. 이러한 한편으로는 방법론적인 주의점, 다른 한편으로는 철학적인 주의점, 마지막으로는 이론적인 주의점에서 잘못된 점은 없습니다.

하지만 작은 어려움이 한 가지 있습니다. 이 세상 어디에도 이러한 부정적 테제의, 이러한 철학적 주의점의 적용이 어떠한 과학에게도 자신의 직접적인en personne 이론적 대상을(그러니까, 이론적 대상이 이 체계들에 의존하므로, 그 개념들의 체계를) 제공한 적은 없다는 점입니다. 중지, ‘에포케’, ‘괄호에 넣기’와 같은 용어하에서 추상화라는 오래된 경험적 실천을 다시 취하면서, 간단히 말해 ‘현상적’ 측면들을 ‘본질’에서 ‘분리하écartant’면서, “토대를 발견하기 위해 모래를 쓸어내면서écartant”(루소[각주:16]) 우리가 어떠한 과학의 이론적 대상의 결정이라는 난관, 어떠한 과학이 언젠가는 자신의 대상을 자신의 것으로(그러니까 과학에게 이 대상을 제시해주는 개념들의 체계로) 구성하도록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이 제기하는 난관에서 벗어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우리는 이러한 이론적 주의점의 이론 내에서, 우리가 인식하기 이전에 인식의 보증물을 절대적으로 생산해야 한다는 오래된 관념론적 생각을, 스피노자와 헤겔의 비웃음을 샀던 오래된 관념론적 생각을, 결국 걷기 전에 걸을 줄 안다는 것이 절대적으로 보증되어 있어야 한다는, 왜 없음 대신 무언가가 존재하는가? 라는 종교적인 영원한 질문을 보증이라는 형태하에서 다시 취하게 만들 수밖에 없는 오래된 관념론적 생각을 다시 발견합니다. 

이러한 엄청난 혼란스러움 뒤에서, 모든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는 반심리학주의의 장막 뒤에서, 다시 말해 (심리학이 현재 쟁점과 문제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교란diversion 형태로서의 심리학이라는 연막 뒤에서 스스로를 전개할 수 있는 유리한 위치를 점하게 되었습니다. 

제 주장을 설명해야겠습니다. 철학적 반심리학의 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이들은 주관주의·역사주의·경험주의에 반대하여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잘 싸워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제1의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전선에서 싸우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심리학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하나의 형성물입니다. 어떠한 잠재적인 주저함도 없이 이를 확신하기 위해서는 조르주 캉길렘G. Canguilhem의 작업들과 미셸 푸코의 몇몇 분석을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작업들만으로 충분하지 않을 수도 있죠. 왜냐하면 ‘과학’으로서의 심리학(그 미래의 변종들이 무엇이었든지 간에)은 오래된 정신주의(피히테나 맨 드 비랑Maine de Biran의 자아)와 생리-신경과학이라는 정세로부터만 탄생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으며, 만남은 절대로 둘이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요. 이러한 정세 이외에도 심리학은 법적 주체, 교환-계약의 주체, 즉 자신의 사적 재산으로 인정된 재화를 사고 파는 계약의 주체의 능력들로부터, 이 법적 주체의 의지의 자유로부터 부르주아 법이 제시하는 정의라는, 부르주아 법이라는 세례대 위에서도 또한 태어나는 것입니다. 부르주아 법의 세례대 위에서 태어난 심리학은 부르주아 법 이데올로기(법적 주체는 자유롭고 평등한 등등의 인간homme이라고 간주하는 이데올로기)의, 그러므로 인간주의 이데올로기의 보호와 후원하에서도 태어납니다. 인간주의를 통해 도덕과 법 이데올로기가 연결되므로, 심리학은 도덕(인간, 도덕적 주체)의 보호와 후원하에서 태어납니다. 도덕적 이데올로기가 종교와 연결되므로(cf. 칸트), 심리학은 동시에 종교(구원을 위해 태어난, 유한한 창조물로서의 인간)의 보호와 후원하에서도 태어납니다 등등. 왜냐하면 모든 이데올로기는, 이 이데올로기들 각자가 지배적 이데올로기인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형성물일 뿐이라는 점으로 인해, 이러한 거대한 상황 내에서 서로서로 손을 잡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푸코의 테제가 제가 제시하는 테제를 강력하게 지지해주고 있기 때문에 기꺼이 다음을 인정하는데, 심리학은 모든 법률적인, 병원의, 학교의, 처벌의 실천들, 가장 최근에 생산한 자신의 저서에서 푸코가 경탄스럽게 서술하고 있는[각주:17] 신체의 규율화와 ‘영혼의 해방’도 포함하여, 이러한 모든 실천으로부터 태어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실천들은 제가 말하는 이데올로기들의 물질적 존재일 뿐이며, 이러한 실천들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들[각주:18](어쩌면 이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들은 [국가장치임에도] 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일 수도 있죠. [프랑스 사람들이 흔히 말하듯] 가장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자는 당연히 가장 적은 일도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가장 적은 것이 가장 많은 것에 기여할 수도 있을거라고 말하지 못할 이유가 있을까요?)[각주:19] 내에 존재하는 이데올로기들의 물질적 존재에 관해 제가 제시했던 몇몇 언급에 근거했을 때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정당한 연구를 위한 길을 열어주면서 이야기되고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사태를 있는 그대로 말해야 합니다. 즉, 부르주아 계급투쟁 내에서, 심리학은 전투에서의 한 분견대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부르주아지는 그렇게 멍청하지 않습니다. 부르주아지는 자신의 이데올로기적 계급투쟁에서의 진지한 전투들이 어디에서 일어나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눈에, 그것이 일단 심리학 내에서는 아니지요. 분명히 무언가가 부분적으로는 심리학 내에서 전개되고 있지만, 오늘날 심리학이 부르주아지에게 제공할 수 있는 최고의 봉사는 자신의 적대적 지식인들에 대한 교란diversion을 위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뿐입니다. 이 적대적 지식인들은 항상 자네Janet 또는 피아제Piaget에 반대하여 싸울 수 있으며, 또는 행동주의나 심리사회학의 미묘한 미국적 변형태에 반대하여 싸울 수 있습니다. 적대적 지식인들은 항상 이러한 심리학적 구성물, 그리고 이러한 구성물에 의존하는 정신의학과 교육학이 순수한 이데올로기적 형성물이라는 점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적대적 지식인들은 정신분석학이 하나의 심리학이 아니라는 점을 증명하는 데에 그들의 노력 모두를 써버릴 수 있습니다. 부르주아지는 이러한 노력을 비웃지만, 이러한 비웃음과는 반대로 이는 부르주아지에게 [외려]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계급투쟁에 관한 부르주아 이론에 근거해보았을 때(cf. 아래에 나오는 논의를 보십시오), 마르크스가 아니라 부르주아 경제학자들과 부르주아 역사학자들이 계급과 그 투쟁의 존재를 발견했다는 사실에 근거해보았을 때, 하부구조에서의 계급투쟁에 관한 최초의 부르주아 이론을 만든 이는 바로 리카르도라는 사실에 근거해보았을 때, 부르주아지는 (마키아벨리와 홉스 이래로 그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해도 어쨌든) 최소한 18세기 이래로는 상부구조와 하부구조에서의 계급투쟁을 완벽하게 구분하고 사고할 줄 알았으며 또한 상부구조 내에서 (국가권력을 위한) 정치적 계급투쟁과 이데올로기적 계급투쟁을 완벽히 구분할 줄 알았다는 사실에 근거해보았을 때, 부르주아지에게 진지한 전투는 다른 곳에서 전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부르주아지는 지배계급이기 때문에, 그 이데올로기적 계급투쟁 내에서 부르주아지를 위해 결정적인 계급투쟁이 어디에서 전개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부르주아지 자신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전선 위에서 부르주아지는 자신의 거대한 이데올로기적 힘을 전치시키는 것이며, 부르주아지는 심리학, 도덕, 미학 그리고 종교의 연막 뒤에서 자신의 투쟁의 결과를 이끌어내는 것입니다. 

부르주아지는 이러한 전선을 우연을 따라 선택하는 것도 아니며 자의적으로 선택하는 것도 아닙니다. 어떠한 계급도, 자신의 전투 장치를 자신의 계급의 적 때문에 왜곡시킬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는 것이 아니라면, 자신의 계급투쟁의 장소도 형태도 선택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부르주아지는 자신의 이데올로기적 계급투쟁의 첫 번째 전선으로 경제적 전선을, 마르크스주의가 경제(학) 내에서의 이데올로기적 계급투쟁이라 부르는 것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부르주아지에 의해 이 전선을 지키라는 임무를 부여받은 이데올로기적 형성물은 잘 알려진 이름, 즉 정치경제학이라는 과학의 이름을 지닙니다. 그것이 하나의 과학이든지 아니든지 간에, 이는 해답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든 해답을 찾기를 원하는 이들에게든 그 질문을 내던져버리는 저를 용서해줄 만큼 이미 충분히 토론된 질문입니다. 마르크스 자신이 『자본』의 서문과 『자본』 전체, 그리고 『잉여가치학설사』 내에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단순하다는 점을 결론내리기 위해 이 질문에 관해 꽤나 많이 토론했다는 점을 상기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입니다. 그리고 마르크스는 아마도 이 질문을 이데올로기적이든 과학적이든 이론적 형성물의 역사의 문제로 다룰 만한 수단들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마르크스가 자신의 고유한 방향설정에서 절대로 실수를 범하지 않았다는 점은 사실입니다. 󰡔자본󰡕이 ‘정치경제학 비판’이라는 점을 말하면서, 그리고 이러한 생각을 자신의 저작 속에서 매우 길게 발전시키면서, 마르크스는 그가 고전 정치경제학이든 속류 정치경제학이든 정치경제학 내에서 하나의 분과학문, 자신이 과학적이라고 스스로 선언했음에도(cf. 오지에Osier, 『치경제학에 대한 하나의 비판: 호지스킨』[각주:20]) 부르주아지의 이데올로기적 형성물에 지나지 않았던 한 분과학문을 지시했다는 점을 충분히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전투에 참가하지 않는] 순수한 학자들을 위한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이론적 형성물 —부르주아지는 이 이론적 형성물을 요구할 권리를 가지고 있긴 하죠 — 은 단 하나도 없으며, 대신 가장 압축적이고 가장 육중하며 가장 중요한 형성물, 간단히 말해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황실 근위대’로서 전투에 참여하고 있는 —부르주아 계급을 위한 이데올로기 전투의 전선에 나가 있는 — 하나의 부르주아 이데올로기 형성물이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분명 이로부터 결론을 끌어내야 합니다. 첫 번째 결론은 마르크스가 하나의 마르크스주의적 정치경제학이 존재할 수 있다는 관념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표현이 ‘황색 대수logarithme jaune’ 또는 ‘네모난 동그라미’와 같은 표현들과 마찬가지로 부조리하기 때문만 아니라, 그리고 마르크스주의 이론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 내에서만 존재하는 어떠한 대상에 관한 이론을 만들 수 없기 때문만이 아니라, 더욱이 정치경제학이라는 관념 자체는 그 관념 하나만으로도 과학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생각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다음과 같은 절대적으로 필연적인 결론을 이끌어냅니다. 부르주아적인 정치경제학, 부르주아지의 눈에 결정적인 의미를 지니는 전선 위에서의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적 계급투쟁에 참전한 이론적 형성물로 이해된 의미의 부르주아적인 정치경제학만이 존재한다는 결론. 두 번째 결론은 첫 번째 결론으로부터 자동적으로 도출됩니다. 만일 과학적 관점에서 마르크스주의적인 정치경제학도 정치경제학 그 자체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러므로 만일 정치경제학과 관련하여 부르주아적인 정치경제학만이 존재한다면, 부르주아지가 국가권력을 손에 넣은 이래로 모든 정치경제학의 역사는 단 하루 만에 명확해질 것이라는 결론. 부르주아적인 정치경제학 형태들의 역사는, 역사에서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작은 ‘사건들’ —예를 들어 1929년의 위기, 뉴딜 그리고 인민전선 — 을 고려했을 때, 이러한 정치경제학이 부르주아 계급의 이데올로기 투쟁 내에서의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취해야 하는 형태의 역사가 되는 것입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존 메이너드 케인스 씨는 당신에게 저보다 훨씬 더 잘 설명해줄 것입니다. 

당연히도, 모든 진지전guerre de position에서와 마찬가지로, 부르주아지의 이데올로기적 계급투쟁의 전선은 매우 넓게 확장되어 있습니다. 이 이데올로기적 계급투쟁의 전선은 전선 전체를 포괄해야 하는데, 그러나 전선 자체는 여러 개의 전선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저는 [방금 위에서 제가 행한 것이] 첫 번째 전선이 정치경제학이라 불리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이론적 형성물에 의해 점거되었다는 관념을 제시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저는 두 번째 전선이 사회학이라 불리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이론적 형성물에 의해, 그리고 세 번째 전선은 심리학(우리는 이 심리학을 무의식에 관한 프로이트의 이론과 혼동해서는 안 되는데, 프로이트의 이론은, 라캉이 매우 잘 지적했듯이, 법률적·도덕적· 종교적 이데올로기로 가득 찬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심리학’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죠)이라 불리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이론적 형성물에 의해 점거되었다는 점을 말해야 합니다. 

만일 이것이 부르주아지의 이데올로기적 계급투쟁의 상황이라면, 그리고 이러한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이론적 형성물들이 조금씩 조금씩, 하지만 깊숙히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장을 침투했다면, 우리는 마르크스주의 이론이 지배 이데올로기에 의해 마비되었다는 점에 놀라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가장 요새화되어 있는 자신의 영역 내에서, 즉 국가이론과 프롤레타리아 독재이론과 같은 정치이론의 영역 내에서, 마르크스주의 이론이 자신의 적에게 무기를 스스로 내어줄 만큼, 그리고 자신의 적이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고유한 위치들을 차지할 만큼 자신의 적에게 침투당해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해서 놀라지 않을 것입니다. 

최근에 사람들은 제가 감히 ‘제2인터내셔널의 사후死後 복수’[각주:21]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저를 비난했습니다. 만일 이러한 비난이 우리에게 가르쳐줄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역사학자의 비난이라면, 저는 이러한 비난을 받아들이겠습니다. 하지만 만일 그 비난이 정치학자 또는 철학자의 비난이라면, 저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원칙적으로, 장기적인 시간의 측면에서(당연히 일시적인 시간의 측면에서가 아니라), 만일 마르크스주의가 항상 동일한 적 — 80년의 거리를 두고서 마르크스주의의 내부에 침투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적 — 과 마주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제2인터내셔널의 사후 복수’라는 저의 정식은 올바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조건 내에서, 우리는 왜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과 같이 마르크스주의에 본질적인 이론적 개념notion에 대한 요구가 조금씩 조금씩 사라져갈 수 있었는지, 그리고 마르크스주의 자신에게 낯선 것이 되어버릴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1. 『농민전쟁』의 서문. Engels, La Guerre des paysans en Allemagne, Brack(A.M. Desrousseaux) 역, É. Bottigelli 감수, Paris, Éditions sociales, 1974, pp. 38~39. Lénine, Œuvres, 5권, pp. 377~ 378을 보라. [본문으로]
  2. 알튀세르가 1964년에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단편 「소외와 ‘개인숭배’Aliénation et “culte de la personnalité”」에서 가져온 정식. IMEC, Fonds Althusser, Alt2.A3-04.01, p. 17. [본문으로]
  3. Philosophie et philosophie spontanée…, 앞의 책, pp. 101~102, 117 이하. [본문으로]
  4. Lénine, Œuvres, 4권, p. 218. [본문으로]
  5. Marx, Théories sur la plus-value (Livre IV du “Capital”), G. Badia 외 편, Paris, Éditions sociales, 1974, p. 167 이하, 343. 생산적 노동자에 관한 정의는 1975-1976년 ≪프랑스 누벨≫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그리고 ≪뤼마니테≫에까지 그 여파가 미쳤던 이론적 논쟁의 대상이었다. [본문으로]
  6. 이전 판본에서 알튀세르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생산적 노동이 지적으로 풍부한 개념인 만큼, 생산적 노동자 개념은 하나의 곤란을 나타냅니다. 왜냐하면 이는 각 개인에서의 계급적 결정을 사고하기 위해 계급적 관점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생산적 노동자로서의 운송 노동자에 관한 이론을 전개할 때에 마르크스 또한 이러한 결함에 빠지게 됩니다. 만일 우리가 마르크스의 주장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왜 창고에서 가져온 식료품들을 진열대에 진열하는 식료품상이 생산적 노동자가 아닌지 알 수가 없게 됩니다.” [본문으로]
  7. Gramsci, Quaderni del carcere 전 4권, Instituto Gramsci, Valentino Gerratana 책임편집, Turin, Einaudi, 1975. [본문으로]
  8. Marx, “Préface de la premire édition”, Le Capital, Livre I, J. Roy 옮김, L. Althusser 연대기표와 일러두기, Paris, Garnier-Flammarion, 1969, p. 36. [본문으로]
  9. (옮긴이) 니콜라이 이바노비치 부하린Nikolai Ivanovich Boukharine(1888~1938)은 정치적 음모에 의해 스탈린 체제하에서 처형당했던 소련의 정치가이며, 동시에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이기도 했다. [본문으로]
  10. (옮긴이) 예브게니 알렉세이에비치 프레오브라젠스키Evgueni Alekseïevitch Probrajenski (1886~1937)는 볼셰비키당의 당원이자 소련의 경제학자로, 스탈린 체제에 저항하다가 처형당했다. [본문으로]
  11. 여기에서 알튀세르는 Lucien Sève, Marxisme et théorie de la personnalité, Paris, Éditions sociales, 1975(초판 1969)를 암시하고 있다. [본문으로]
  12. Pierre Bourdieu, “La lecture de Marx. Quelques remarques critiques à propos de “Quelques remarques critiques à propos de Lire ‘Le Capital’””, Actes de la recherche en sciences sociales, 5~6, 1975년 11월, pp. 65~79, “Le discours d’importance. Quelques remarques critiques propos de “Quelques remarques critiques propos de Lire ‘Le Capital’””이라는 제목으로 Langage et pouvoir symbolique, Paris, Fayard, “Essais” 총서, 2001, pp. 379~396에 다시 실림. É. Balibar, “Sur la dialectique historique. Quelques remarques critiques propos de Lire “Le Capital””, La Pensée, 170, 1973년 8월, pp. 27~47을 볼 것, Cinq Études du matrialisme historique, Paris, Maspero, “Thorie” 총서, 1974, pp. 203~245에 다시 실림[Langage et pouvoir symbolique은 『언어와 상징권력』, 피에르 부르디외 지음, 김현경 옮김(나남출판, 2014)으로, Cinq Études du matérialisme historique은 『역사유물론 연구』, 에티엔 발리바르 지음, 이해민 옮김(푸른미디어, 1999)로 국역되어 있다 — 옮긴이]. [본문으로]
  13. (옮긴이) 여기에서 École이 프랑스 학계 전반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맥락상 파리 고등사범학교를 의미하는 것 같아 파리 고등사범학교로 옮겼다. 실제로 부르디외는 『호모 아카데미쿠스』에서 자신의 분석 대상을 파리 고등사범학교 출신의 학자들과 이 학교가 형성하는 장으로 설정한다. [본문으로]
  14. Philosophie et philosophie spontanée des savants, 앞의 책, pp. 91~95. [본문으로]
  15. (옮긴이) ‘에포케épochè’는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판단중지’를 뜻하는 말이다. 특히 후설의 현상학에서는 일상적 관점을 괄호에 넣어 순수의식을 획득하는 방법을 지칭하는 개념이기 때문에 ‘괄호에 넣기’로 옮길 수 있다. [본문으로]
  16. Rousseau, Discours sur l’origine et les fondements de l’inégalité parmi les hommes 서문, C. Van Staen 편, 전집, R. Trousson과 F. S. Eigeldinger 편, Genève, Slatkine, 2012, 5권: Écrits politiques et économiques, 두 번째 부분, p. 88. [본문으로]
  17. 아마도 알튀세르는 푸코의 Surveiller et punir. Naissance de la prison, Paris, Gallimard, “Tel” 총서, 1975, p. 38의 ‘영혼, 신체의 감옥’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다. [국역본으로는, 『감시와 처벌』(번역 개정판), 미셸 푸코 지음, 오생근 옮김(나남, 2016)을 참조 — 옮긴이] [본문으로]
  18. “Idéologie et appareils idéologiques d’État”, 앞의 글, pp. 105~109. [본문으로]
  19. (옮긴이) 이 괄호 속 문장은 사실 프랑스인이 봤을 때도 그 의미가 매우 모호하며 정확하게 쓰여 있지 않다. 원문은 ou privés: qui peut le plus peut le moins, et qui peut prouver que le moins ne contribue pas au plus? 이며, qui peut le plus peut le moins의 경우 ‘가장 힘겨운 일을 해낼 수 있는 이라면 가장 쉬운 일 정도는 해낼 수 있다’는 의미로 실제로 일상에서 쓰이는 말이지만, 뒤의 문장과 결합해서 어떠한 의미인지는 모호하다. 옮긴이의 추측에 이는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가 국가장치임에도 공적 영역에서의 공적 역할뿐만 아니라 시민사회와 같은 사적 영역(사실 이러한 구분 자체를 알튀세르는 거부하는 것인데)에서의 사적 역할 또한 수행한다, 즉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는 공적 영역에서뿐만 아니라 사적 영역에서도 자신의 역할을 동일하게 수행한다는 의미인 것 같다. [본문으로]
  20. J. P. Osier, Thomas Hodgskin. Une critique prolétarienne de l’économie politique, Paris, Maspero, “Théorie” 총서, 1976. [본문으로]
  21. Réponse à John Lewis, 앞의 책, p. 93. Lire “Le Capital”, 앞의 책, p. 341을 보라.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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