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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의 용기


프레데릭 그로

번역 : 배세진

[옮긴이 앞글: 이 텍스트는 프레데릭 그로(Frédéric Gros)가 집필한 미셸 푸코”(Michel Foucault)(Que sais-je 총서 3118호, 제4, PUF, 2012), 3장 주체화의 실천 중 4절 진실의 용기를 번역한 것이다이미 편집 중에 있는 이 책은 곧 도서출판 킹콩북에서 2018년 초에 출간될 것이다게재를 허락해준 킹콩북의 심성보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1) 정치적 파레시아: 진실-말하기와 민주주의.

푸코는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행한 마지막 2년간의 강의의 경우 그 주제들을 확장하여 발전시킬 시간을 생전에 출간했던 저작과 논문 속에서는 갖지 못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서 우리는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그가 개진한 커다란 주제들의 단순한 개요를 제시하는 데에 만족할 수밖에 없다.

파레시아는 우선 자신에게 주의를 기울이는 제자 앞에 선 스승의 말의 체제, 즉 아름답지만 전혀 쓸모없는 아첨 또는 치밀한 레토릭과는 대립되는 솔직한 말, 그리고 자기의 통달이라는 어려운 여정 앞에 선 제자에게 주어지는 단단한 지팡이와 같은 직선적이고 직접적인 말을 특징짓는다. 플루타르크로부터 가져온 또 다른 텍스트는 우리에게 파레시아의 범례적인 장면을 제시해준다.[각주:1] 여기는 시칠리아의 시라쿠스에 있는 디오니우스 왕의 정원이다. 디온은 폭군에게 철학적 덕성의 원칙들을 깨닫게 해줄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플라톤을 부른다. 대화 도중에 플라톤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폭군의 삶에 대한 자신의 경멸을 표현하기로 결심한다. 디오니우스는 격노하고 플라톤을 노예형에 처한다. 파레시아는 진실에 관한 어떠한 말이다. 진실-말하기는 논증의 전략에도 속하지 않고 설득의 기술에도 속하지 않으며, 교육학에도 속하지 않는 것이다. 진실-말하기가 진실-말하기를 언표하는 이에게 (죽음을 포함한) 위험의 공간을 제시해줄 때, 그 곳에 파레시아가 존재한다. 또한 파레시아를 통해서, 말하는 이는 자신의 담론의 참된 내용과 결합된다. 하지만 이는 (고백에서와 같이) 대문자 타자에 대한 복종의 형태 아래에서 자기 자신의 안녕에 대한 희망으로 그러한 것이 아니라, 자유에 의해 구조화되는 자기와의 관계를 표현하기 위해 자기 자신의 죽음으로 떠맡게 된 위험 속에서 그러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텍스트들을 통해서, 우리가 솔직한 말, 진실의 용기라는 관념으로 번역할 수 있는 파레시아라는 이 개념이 진실을 말해야 하는 의무, 통치성의 문제설정, 그리고 자기의 관계라는 이 세 가지 항 사이의 교차점에서 갑작스레 출현하는 것을 보게 된다(푸코가 연구한 이 세 가지 거대한 차원은 파레시아의 경험으로부터 접혀지고 구성된다). 파레시아의 형식적 구성을 끌어낸 뒤에 푸코는 에우리피데스의 비극에서부터 견유주의적 도발에 이르는 이 개념의 역사적 변화를 추적하려 한다(심지어 푸코는 우리가 이보다 더 이후의 시대로 다시 되돌아와 르네상스적 국가 지식이라는 이름으로 군주에게 전달된 대신의 연설, 계몽주의 시기에 존재했던 볼테르적인 비판적 고발, 19세기의 혁명 담론 등등 속에서 파레시아의 구조를 찾을 수 있다고까지 암시한다).

고전 그리스 시대에 파레시아가 지시했던 바를 이해하기 위해, 푸코는 정밀한 방식으로 에우리피데스의 이온에서부터 자신의 연구를 시작한다.[각주:2] 거기에서 우리는, 아테네에서 파레시아의 권리를 부여하는 것은 토착민 어머니라는 사실을 배우게 된다. 에우리피데스의 단편으로부터 푸코는 파레시아에 대한 권리를 유일하게 부여할 수 있는 아테네적 모성을 스스로 증명하겠다는 이온의 고집을 상기시킨다. 아테네적 모성이 없다면 이온은 아테네에 관해 폭정을 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파레시아는 여기서 전제정의 편리함과 그 폭력을 거부하는 통치자의 솔직히-말하기로 간주된다. 파레시아는 솔직히-말하기를 활용하는 고결한 인물이 권력을 능동적으로 실행하는 바를 가리키는 것이다.

푸코가 분석한 폴리비오스의 한 텍스트는 아테네 민주주의와 연관된 정치적 파레시아를 개념화하려 한다.[각주:3] 우리는 민주주의를 인민에 의한 인민의 통치로 정의할 수 있으며, 또한 민주주의를 법 앞에서의 자유와 권리, 그리고 평등의 국가와 관련한 것이라고 기술할 수 있다. 아테네 민주주의는 자신의 기초를 두 가지 원칙, 즉 이세고리아(isègoria, 발언의 자유)와 파레시아에서 찾는다. 이세고리아는 발언의 자유이며, 이는 그가 장인이든 전사이든 농부이든 아테네의 모든 시민들이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기 위해 의회에서 손을 들고 일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가리킨다. 파레시아는 민주주의에 있어서 마찬가지로 완전히 근본적인 요소인 말의 또 다른 활용, 즉 인민에게 참된 담론을 냉철하게 전달하는 탁월한 인물에 의해 행해지는 용기 있는 발언을 가리킨다. 이 발언에 의해 발언자는, 이 말이 진실에 의해 통제되는 한에서, 타인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신의 우월함과 능력을 표현한다. 우리는 파레시아의 예를 투키디데스가 전하는 페리클레스의 위대한 연설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파레시아는 우월함과 용기를 표현하는 민주주의적인 진실-말하기로 정의된다. 이러한 냉철한 정치적 연설의 가능성은 그리스 민주주의의 기초들 중 하나를 구성한다.

하지만 이러한 가능성은 항상 위협받는다. 푸코는 이소크라테스가 비난하는 나쁜 파레시아의 점진적인 확산을 확인한다. 페리클레스 이후에 파레시아는 더 이상 진실 위에서 통제되는 말이 아니라, 진실의 용기 대신에 성공의 욕망을 표현하면서, 그리고 타자를 통치하기에 적합한 흔치 않은 인물의 우월함을 표시하는 것이 더 이상 아니라 먼저 오는 이는 누구나 가지고자 하는 권력에 대한 의지를 표시하면서, 평민(populace)의 욕망 위에서 통제되는 말이 되어버린다. 이는 민주주의에 대한 배신인데, 모든 정치적 연설은 추잡한 아첨이 되어버린다.

파레시아는 곧 영향력을 획득하기 위해 진입한 인물과 타자들 사이의 관계로 문제화되지 못 하게 된다. 후기 아테네 민주주의에서 파레시아는 사실상 자신의 반대물로 역전된다. 정치적 연설은 비굴함, 환심을 사기 위한 저열한 욕망, 그리고 거짓말로밖에 번역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깨닫게 된 플라톤은 파레시아를 그것이 의미를 갖게 된 장소인 민주주의적 환경으로부터 떼어내면서 파레시아를 재문제화 하는 것이다.[각주:4] 플라톤에게 있어 파레시아는 철학자와 폭군 사이의 개인적 관계라는 틀 내에서 등장하게 된다(시칠리아의 디오니우스가 등장하는 장면을 기억하자). 하지만 더 넓게 보아, 플라톤 정치철학의 모든 위대한 주제들은 민주주의적 파레시아의 실패 이후 진실과 정치 사이의 관계를 새롭게 사고하려는 시도로 이해할 수 있다. “국가”(8권)에서 플라톤은 진실과 관련을 맺지 않는 영혼과 도시(cité)는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확인한다. 그러므로 파레시아(말의 자유)는 데마고기적 의미로서만 작동할 수 있다. “법률”(3권)에서 플라톤은 (페르시아 왕국) 키루스의 통치를 언급한다. 주권자는 자신의 측근에게 완전한 말의 자유(파레시아)에 대한 양도를 보증한다. 그러므로 말의 자유는 전제적 제국의 원활한 작동의 보증자, 즉 결합(cohésion)의 원리로 등장하게 된다. 파레시아는 전제적 통치의 맥락 속에서 영혼을 대상으로 하는 고유한 철학적 활동이 된다.

하지만 더 넓게 보아 플라톤에게 있어 파레시아에 관한 새로운 문제화는 철학과 정치 사이의 관계의 문제를 새로운 방식으로 다루는 것이다.[각주:5] 이 연구를 위해 푸코는 플라톤의 “편지들”을 다시 독해했다. 특히 푸코는 편지 7에 주목한다. 편지 7에서 플라톤은 시칠리아에서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는데, 이 에피소드에서 플라톤은 디온을 따라 디오니시우스 2세의 정원으로 간다. 플라톤은 이 전제군주의 상속자를 따르기로 한다. 왜냐하면 디온에 대한 우정뿐 아니라, 여기에는 소크라테스를 죽게 만들었던 아테네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우호적 추측(Kairos, 카이로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특히 더욱 중요한 점은 플라톤이 여기에서 자신의 철학이 담론으로만 남지 않을 기회를 발견한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철학의 실재(réel)에 관한 문제가 제기되는 것이다. 즉, 철학에 의해 수행되는 이러한 진실-말하기, 진실-진술의 행위는 담론의 구성에서, 이성(logoi)의 정식화 속에서 소진되어 버리는 것일까? 플라톤은 이 편지 7에서 철학적 진실-진술의 현실(réalité)이 권력에 대한 용기 있는 말걸기(adresse)로부터 찾아져야 한다는 점을 제안하는 것 아닐까? 하지만 또한 이는 철학이 자신의 좋은 대화상대자를 찾고 이를 인지해야 한다는 점을 전제한다. 이러한 모든 듣기와 그 듣기의 진실-확인(vérification)의 작업은 철학이 자신의 현실을 발견하는 장소인 자기의 실천(pratiques de soi)을 위한 공간을 규정한다. 만일 디오니시우스 2세가 철학적 차원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이는 마치 철학자가 되는 것이 지식의 내용들을 늘어놓을 줄 아는 것에 달려있다는 듯이 그가 철학 교과서를 쓰고 싶어했기 때문이다.[각주:6]

2) 견유주의 또는 추문으로서의 진실 - 푸코는 이번에는 그가 파레시아를 정치적 차원에서가 아니라 윤리적 차원에서 규정하려 시도할 것이라고 예고한다. 그의 출발점은 소크라테스이다. 소크라테스적 파레시아는 본질적으로 죽음의 원환 내에서(“변명”, “크리톤”, “파이돈”), 그리고 젊음에 관한 대화(“라케스”)에서 검토된다.[각주:7] 푸코는 어떻게 소크라테스가 정치적 파레시아로 환원될 수 없는 고유하게 철학적인 진실-말하기를 확립하려 노력하는지를 보여주는 데에 전념한다. 이는 타자의 자기 배려를 목표로 하는 진실-진술과 관련된다. 자기 고유의 존재를 위험에 빠뜨리면서, 그리고 모든 정치적 토론(tribune)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행해지는 것은 바로 영혼의 시련/시험인 것이다. 타자의 자기 배려라는 이러한 임무는 용기의 가치, 그리고 영혼의 확고함과 조화를 이루면서 존재 양식에 의해 공증되어야 한다.

그런데 푸코에게 있어서, 정확히 말해 삶의 양식과 진실-말하기의 실천 사이의 이러한 결합이 견유주의 철학의 핵심을 소크라테스적 파레시아의 연장선상에서 구성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견유주의는 그 교의적 내용이 최소한으로만 존재하는 철학적 운동이다. 구성된 명제들의 집합으로 발전된 견유주의 철학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견유주의는 푸코에게 있어 특히 공적이고 자유로운 말의 실천과 특정한 존재 양식으로 간주된다. 이 전통은 큰 통 안에서 살았고 사람들 앞에서 자위를 했으며 군중에게 신랄한 조롱을 퍼부었고 자신을 만나러 온 알렉산더 대왕을 사생아 취급했던 디오게네스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견유주의 철학자는 무엇보다도 거칠고 방랑자적이며 거의 동물적인 존재양식에 의해 특징지어진다. 견유주의 철학자는 더럽고 가난하다. 그는 지나가는 군중을 폭력적인 독설로 거칠게 대하면서 자극적이고 조잡한 연설을 행한다. 하지만 견유주의에 관한 이러한 서술은, 더럽고 가난하다는 상대적으로 외적인 특징 내부에, 존재양식과 진실-말하기라는 내적인 특징을 남겨놓는다(마치 여기에 견유주의에 특징적인 이 외부와 내부라는 두 가지 요소, 하지만 서로 분리되어 있는 이 두 가지 요소가 존재하는 것처럼). 더 정확히 말해, 푸코에게 있어 견유주의는 자기 고유의 신체와 삶을 진실을 상연하는 극장으로 구성하는 운동이다.[각주:8] 이는 자신의 삶을 진실의 역설적이면서도 살아있는 증언으로 형성하는 것이다. 푸코에 따르면 진실에 관한 존재의 체계적 주름을 대하는 이러한 견유주의적 태도는 기독교적 금욕주의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측면에서의 투쟁적 태도 또는 예술적 요구(견유주의의 동시대적 모체는 아마도 현대미술일 것이다) 속에서도 존재한다. 푸코에게 있어 견유주의는 “진실된 삶”을 발명한다. 견유주의는 진실이 존재하게 만들며, [역설적이게도 바로] 이를 통해 진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으로 만든다. 아마도 참된 것은 감춰지지 않는 것일 것이다. 그래서 견유주의자는 완전히 공개적으로 (먹기, 사랑을 나누기 등등의 행위를) 한다. 참된 것은 또한 섞이지 않은 것이다. 견유주의자는 완전히 발가벗겨진 삶을 살아갈 것이고, 비록 가난이 자신을 추하고 비참하게 만들지라도 완전한 궁핍을 원할 것이다. 참된 것은 올곧은 것이다. 견유주의자는 자연만을 자신의 지침으로 삼을 것이고, 완전히 동물과 같이 행동할 것이다. 결국 참된 것은 지배적인 것(souverain, 주권자)이다. 견유주의자는 자기 스스로를 이 땅 위의 유일한 왕으로 선언할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견유주의의 작동방식을 잘 볼 수 있다. 즉 삶을 영원한 추문[스캔들]으로 만들기. 진실에 관한 이러한 극단주의적인 투쟁적 태도는 푸코에게 있어 철학의 기획 그 자체이다. 철학자는 아무런 근거 없이 도발하고 싶어하는 취향 때문이 아니라 올바르고 좋은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의식을 동요시키기 위해 자신의 삶을 진실에 관한 추문의 증거로 제시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파레시아의 역사는 이러한 찌푸린[즉, 불만족스러운] 형상 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푸코는 또한 기독교 내에서 존재했던 파레시아의 변화의 커다란 흔적들을 추적하려 시도한다.[각주:9] 그는 어떻게 파레시아가 참을 수 없는 오만의 기호로 비난받기 이전에 오히려 신과의 충만한 관계를 지시했었는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그리스 견유주의자를 이러한 보편적 감시병, 윤리적 인간성의 기능자로 정의한 뒤, 푸코는 자신의 죽음 몇 개월 이전에, 매우 오래전부터 그에게 활기를 불어넣어주었던, 먼 곳에서 존재하던 이러한 과업을 자신의 것으로 제시하려 시도할 수 있었다.

견유주의자는 그가 진실을 충실한 경호원과 같이 지키기 때문이 아니라 참된 단어들을 짖어대고 이 참된 단어들을 물어뜯기 때문에, 그리고 진실을 가지고 사람들을 공격하기 때문에, 진실의 개라고 말할 수 있다.



  1. 각주: 1983년 1월 12일. [본문으로]
  2. 1983년 1월 19일과 26일 강의. [본문으로]
  3. 1983년 2월 2일 강의. [본문으로]
  4. 1983년 2월 9일 강의. [본문으로]
  5. 1983년 2월과 3월 강의. [본문으로]
  6. 그러므로 푸코는 그가 데리다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점을 확인한다. 사실상 플라톤이 문자기록(l’écriture)을 거부하는 이유는 로고스에 대한 가치부여 때문이 아니라, 반대로 철학의 실재(réel)를 완전히 다루지는 못 하는 것으로서의 로고스에 대한 전반적인 의심 때문이다(다시 말해, 푸코에게 있어 철학의 실재는 오히려 자기의 통치와 타자의 통치와 결합하는 자기에 대한 자기의 실천과 뒤섞이는 것이다). [본문으로]
  7. 1984년 2월 강의. [본문으로]
  8. 1984년 3월 강의. [본문으로]
  9. 1984년의 마지막 강의.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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