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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Deleuze and The Schizoanalysis of Cinema(2008)7장을 번역한 것이다괄호 안에 페이지 인용은 들뢰즈·가타리 저작의 영역본을 기준으로 표기되었다



소수적 프랑스성의 영화들(1/2)

 

Cinemas of Minor Frenchness



빌 마샬 Bill Marshall



 번역: 신광호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영화이론 세미나팀



21세기의 처음 몇 해 동안 퀘백의 영화는 얼마간 승승장구해 오고 있었다. 자국 박스오피스를 백분율로 두 자릿수에 달할 정도로 점유했고, 몇몇 돌파구가 되는 영화들은 국제적 아트하우스 순회에서 성공을 맛보았다. 드니 아르캉Denys Arcand의 작품으로 2004년 오스카에서 베스트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한 <야만적 침략Les Invasions barbares, The Barbarian Invasions>(2003), -프랑소아 폴리오 Jean-François Pouliot<대단한 유혹La grande séduction, Seducing Doctor Lewis>(2003), -마크 발레Jean-Marc Vallée<C.R.A.Z.Y.>(2005)가 대표적이다. 퀘백 영화는 어느 정도는미해결된 민족적 문제(실패한 1980년과 1995년의 분리독립 투표[각주:1])와 소수성, 즉 영어 사용권 캐나다와 북미의 나머지와 관련해서 보아도 그렇고 본국 프랑스의 언어와 문화와 관련해서 보아도 지엽적 지위를 지니고 있다는 그 특유의 문화적 정치적 맥락에서 작동하고 있다.

 

잘 알려져 있듯, <시네마2: 시간-이미지>에서 질 들뢰즈는 1960년대 작업한 퀘벡 다큐멘터리 감독 중 피에르 페로Pierre Perrault의 작업을 분석했다. 이를테면 <세상의 다음을 위하여Pour la suite du monde>(1963)의 후반부에서 영화 제작자들은 생 로랑 강St Lawrence의 어떤 섬에서 흰돌고래를 사냥하는 전통적 방법을 재연re-enactment하도록 조성한다. 그리고 [그로써] 민족지학적 영화의 딜레마와 그 주체-대상의 [비대칭적] 관계를 얼마간 극복한다. 그 섬의 사람들은 중재자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들은 실제real[로 섬에 거주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허구fictions와 전설을 만드는 데에 관여하기 때문이다. 어떤 호혜적 소통과 전환이 제작자들과 주민들의 관계를 특징짓는다. 여기에서 진실을 위기에 밀어 넣는 힘은 시간이다. 우화 만들기fabulation를 통하여 페로와 그의 카메라맨 미셸 브로Michel Brault는 어떤 진실의 모델로부터 자유로워진다. 들뢰즈라면 니체에 의거하여 거짓의 역량the power of the false’라고 불렀을 것은 과거의 반복을 깨부수고, 회상a recalling이 아닌 환기a calling forth를 유발한다. 우스만 셈벤Ousmane Sembene과 글라우버 로샤Glauber Rocha와 같은, 자신이 연구한 제3세계 감독들의 경우에서처럼 들뢰즈는 <세상의 다음을 위하여>소수적영화의 예시로 보는데, ‘소수적영화에서 민중the people’은 완전한 정체성이나 현존을 제시하기보다는 그것을 결여한다고 여겨진다.

 

영화가 포착해야 하는 것은 실제적이건 혹은 허구적이건, 그 객관적이고 주관적인 국면을 통한 인물의 동일성이 아니다. 그것은 스스로 허구화하기시작하는, ‘생생하게 포착된 전설화하기를 시작하는, 그래서 자신의 고유한 민중을 창안해내는 데 기여하는 실제 인물의 생성이다. 인물은 그 자신이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옮겨가면서 결합하는 이전과 이후의 시간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그 인물은 이전과 이후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 그러나 그는 이전과 이후를 하나의 상태에서 다른 하나의 상태로의 경과 속에서 재통합해 낸다]. 그가 결코 허구적으로 되지 않으면서도 이야기를 꾸며내개 시작할 때 그 자신은 타자가 된다. 그리고 한편 영화 작가는 그가 만들어낸 허구를 몽땅 자신들의 아애기 꾸며대기로 대체해버리는 실제 인물들에 개입하게될 때 그 자신 타자가 된다.”[각주:2](들뢰즈, 1980: 150)

 

그러나 퀘백의 상황을 밝히는 데 있어 들뢰즈적 사유의 잠재력이란 이와 같은 <시간-이미지>의 구절들에서 끝나지 않는다. <천 개의 고원> 언어학의 공준들의 부분에선 명시적으로, 카프카에 대한 작업과 심지어 다른 공동 작업에서 상술된 반-오이디푸스적 입장들에선 암시적으로 들뢰즈와 가타리는 소수적프랑스성일지도 모르는 것을 제안하기 시작한다.

 

존재being가 아닌 생성becoming의 존재론으로, 고정성과 정체성이 아닌 운동, 과정, 다양성의 존재론으로, 그리고 자아/타아와 주체/대상의 이항대립들을 빗겨 나가면서 들뢰즈와 가타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강조한다. , ‘퀘백 사람québécois’[각주:3]과 같은 고유명사’(‘어떤 다양체multiplicity의 즉각적 포착’(들뢰즈와 가타리, 1987: 37))는 항상-이미 조각들, 요소들, 입자들로 구성된 복수적인 존재인데, 그 분자들은 몰적인 더 큰 구조들에 따라 배치되고 조직되어 있으나, 동시에 잠재적으로 새로운 방향들로 도약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호들은 어떤 사물의 기호들이 아니다. 그것들은 탈영토화와 재영토화의 기호들이다. 그것들은 이러한 움직임들의 경로에서 횡단된 모종의 문턱을 표시한다.’ (들뢰즈와 가타리, 1987: 67) 


퀘벡의 민족적 계획은 퀘백성Québécité’미국성Américanité’, 대륙적 정체성과 대서양적 정체성 사이의 대립하는 담론들로 인해, 그리고 그것[퀘백의 분리 독립 계획]이 불균질하게 삽입되는 세계화된 자본의 이주하는 흐름들로 인해, 캐나다에 수용된 다른 관계들로 인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수성과 소수성의 변화하는 범주들로 인해 영토화와 탈영토화 사이의 긴장으로 갈라진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소수적인 것을 숫자의 [많고 적음이라는] 관점이 아닌 생성과 영토화/탈영토화 과정 사이 관계라는 관점에서 구상한다. 카프카, 아프리카계 미국인들, 혹은 아일랜드인의 글은 모두 그들이 집필하고, 그들이 탈영토화의 높은 계수’(들뢰즈와 가타리, 1986: 16)로 변용affect하는 다수적언어와의 다층적 관계를 지닌다


예를 들어, 카프카는 독일어가 공용어였지만 모국어는 아니었던 제국의 한 주변적인 도시에서 독일어를 사용하는 소수집단으로부터 배제된 유대인으로서 독일어로 글을 썼다. 또 다른 예시를 들어보자면, 1960년대 퀘벡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언어가 어마어마한 북미인과 영어사용권 캐나다인의 다수성과 관련하여 소수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표준적 본토 프랑스어인 다수적언어와 마주해서도 주변적이었고 상대적으로 탈영토화되어 있었음을 의식하였다. 이는 프레드릭 제임슨(1986)이 들뢰즈와 가타리의 작업에 의지하여 민족적 알레고리national allegory에 관해 저술했을 때처럼 어떠한 개인적 발화도 이러한 맥락에서는 항상-이미 정치적으로 총체적 집단성을 끌어안기 위하여 확대된다는 것을 암시한다


실제로 들뢰즈와 가타리에게 개인적 언표행위란 존재하지 않는다.’ 언표행위는 항상 집합적 배치collective assemblage’를 함축하기 때문이고, 우리는 모두 간접 화법in indirect discourse으로 말하기 때문이다.(들뢰즈와 가타리, 1987: 79-80) 요는 개별적 방언으로서 퀘벡의 프랑스어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소수적이고 다수적인 태도들이 이러한 언어와 문화에 채택될 수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어떤 경우는 새로운 영토화에 의지하는 데까지 물러선다. ‘캐나다인 가수는 또한 재영토화라는 가장 반동적이고 오이디푸스적인 것을 초래할 수 있다. 오 마마, 오 나의 고국, 나의 오두막집, 올레, 올레.’(들뢰즈와 가타리, 1987: 24) 혹은 다른 경우는 소수적지위의 논리학을 따른다. , 그 급증과 혁신(생성)의 역량, 주인의 지위에 대한 안티테제, 그리고 자연적인 것, 정상적인 것, 그리고 보편적인 것에 대한 다수적문화의 권리 주장을 해체하기를 따르는 것이다. ‘이는 어떤 방언dialect or patois을 재영토화하는 것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다수적 언어를 탈영토화하는 것에 관한 문제이다.’(들뢰즈와 가타리, 1987: 104) 소수성은 자신의 영토성을 지니지만, 또한 반드시 생성의 씨앗들, 크리스탈들로 간주되어야 한다. 그 가치가 평균과 다수성에 대한 통제 불가능한 움직임과 탈영토화를 촉발하는 그러한 생성의 씨앗들, 크리스탈들 말이다.’ (들뢰즈와 가타리, 1987: 134) 출현하는 소수적언어와 문화는 전적으로 혁신적일지도 모른다. 이런 맥락에서 민족적 알레고리national allegory’는 이러한 구심력과 원심력 사이의 어떤 민족적-알레고리적 긴장national-allegorical tension’으로 가장 적절히 묘사된다. (마르셀, 2001)

 


<시네마>에서 언급된 들뢰즈의 영화 정전은 얼마간 문제의 여지가 있다. 예를 들어, 그는 3세계국가에서 한 명의 감독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는데, 보통 <카이에 뒤 시네마>에서 다룬 감독이다. 페로를 선택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맥락에서이다. 페로의 작품 대신, 어쩌면 들뢰즈는 [클로드 주트라Claude Jutra] <모든 것을 고려하여a tout prendre, All things considered>(1963)을 발견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세계 영화계에서 많이 알려지지 않은 보석으로 1961년부터 1963년 사이에 촬영되었고 1964년에 개봉되었다. 이 영화는 소수적인 것,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도시 부르주아 내부에서부터 구축된 소수적 양상에 골몰한다(더불어 주요 주인공은 나무랄 데 없는 본토의 프랑스어로 말한다). 사적 영역에서 만들어진 이 의사-자서전적 작품은 영화감독 클로드(클로드 주트라Claude Jutra), 흑인 모델 요한느(요한느 아렐Johanne Harel) 사이의 정사를 다룬다. 요한느는 여전히 (소원해진, 그리고 [영화에서] 보이지 않는) 그녀의 남편과 동거하고 있다. 관계의 부침, 이를테면 첫 마주침, 집착, 그 밖의 희롱, 요한느의 임신, 그 이후 클로드의 거절, 그리고 유산miscarriage 등은 이 영화가 영화적 언어의 형식적 실험을 정체성 그 자체에 대한 지속적 문제화와 결합시키는 방법에 비하면 덜 중요하다


<모든 것을 고려하여>는 이 영화가 나르시시즘적으로 초점을 맞출 것처럼 보이는 자아를 기꺼이 약화시킨다. 클로드가 파티를 준비하는 오프닝씬에서 관객은 자아의 취약성과 마주하게 된다. 샤워 중 신체의 세부들에 관한 사실주의’(이를테면 발을 씻는 것)는 거울 앞에서 다양한 변장을 해 보이는 클로드의 쇼트들의 몽타주와 결합되는데, 이는 그가 쏜 총에 거울이 부서지고 산산조각 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이 영화가 자칭하는 임무나의 유년기와 나의 내부에 존재하는 인물들(페르소나들)을 제거하는 것이다. 영화는 그러한 바람을 다루어내기 위해 나아가지만, 궁극적으로 클로드는 자신이 손에 넣을 그를 위한 통일된 정체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진 씬에서 클로드와 요한느는 서로 빙글빙글 도는데, 이는 어떤 닫힌 반복이 아닌 하나의 상호적 의존과 끌림의 관계에서 그러는 것이다. 그들은 완결되고 끝이 난 인칭들이나 정체성들이 아닌 조각들, 파편들, 원자들로 이루어져 있다(비록 요한느가 결국에는 이성애적 낭만에 기초하는 총체성을 향한 열망이라는 덫에 걸리게 되지만 말이다). 사실 ‘Je est un autre’, ‘나는 타자이다는 들뢰즈가 시간 속에서의 비-동일적인 것the non-identical in time[각주:4]과 이미지와 개념의 비-동일성the non-identity of image and concept을 묘사하기 위하여 랭보의 투시자의 편지(1871)에서 인용하여 사용하는 어구이다. 그리고 이를 장 루슈의 <, 흑인Moi, un noir>(1959)에서도 드러나는 것으로 보았다). 성공하는 길은 우화 만들기fabulation를 통하는 것이다.

 

중요하게도, <모든 것을 고려하여>는 성과 그것의 정체성(혹은 비-동일성)과의 관계에 대한 영화이다. 그리고 여기가 바로 <세상의 다음을 위하여>를 훨씬 넘어서게 되는 지점이다. 요한느를 향한 클로드의 응시는 주류적 할리우드와 심지어 예술영화의 표준적 남성 이성애적 응시, 즉 어떤 관음증과 페티시즘의 대상으로서 위협받는 여성 신체를 고정시키는 식의 응시로 특징지어지지 않는다. 클로드의 지위는 차이의 견습 생활이라고 이름 붙일지도 모르는 것에 의해 계속해서 약화된다. 요한나는 그로 하여금 차이를 경험하도록 강제한다. 이는 인종의 관점에서 그렇고(그녀는 분명하게 이국적이게 되기를 거부한다), 


그녀 자신의 정체성의 가장masquerade이라는 관점에서도 그러한데, 클로드의 응시가 (특히 요한느와 바바라[Monique Mercure]에 의해) 되돌아오는 문제적 씬에서, 그리고 가장 주요하게도 실은 그녀가 자극한 클로드 자신의 동성애적 성향을 스스로 인정할 때에 분명해진다. 클로드의 정체성혹은 차라리 정체성들의 다수성은 그리하여 타자성과의 대화, 타자-되기에 근거를 두고 있다. 퀘백의 교훈은 어떠한 민족적 투쟁도 반드시 정체성에 대한 임시적 생각들, 즉 전체적이거나 통일되지 않은 생각들에 기반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고려하여>가 어떤 정치적 계획을 수행하는 데 있어 무시하지 못할 어려움을 흡수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정체성의 정치학으로도 또한 이어진다. 동성애에 대한 괄목할 만한 취급1963년에는 놀라운 일인이란 하나의 정체성을 구축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너 남자 좋아하니?’라는 요한느의 대사는 행위들acts을 기반으로 한다). 그것은 강하게 암시되는 바와 같이 클로드가 자기 영화의 주연배우를 유혹함으로써 행위하도록 자극한다. 그러나 [영화에서] 게이 언명gay assertion이 더 멀리 나아가지 못했다는 사실을 오직 [시대적 한계라는] 역사적 맥락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이 영화는 퀘백성에 관한 직설적 언명으로 읽힐 수도 없다. 정체성의 위치()에 관한 영화의 취급은 결정적으로, 그리고 득의양양하게 소수적이다.

 

이는 드니 아르캉과 같은 당대의 주석자들이 놓친 지점이다. 드니 아르캉은 민족적 성숙성national maturity, 그 자신과 현실· 일상의 여성들과의 이성애적 관계들과 동일시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거기[<모든 것을 고려하여>]에서 우리는 자신의 집단적 자아와 마주치는 것에 대한 무의식적 부인을 발견한다(아르캉, 1964: 96).’ 그즈음, 심지어 그 이후로도 퀘백 민족적 영화에서 지배적 성적 해석은 가차없이 오이디푸스적이었다. 민족주의적 지식인 잡지 <단호한 결의>Parti pris의 편집자 페에르 마흐Pierre Maheu가 쓴 1964년의 소논문은 이러한 점을 잘 보여준다. 그 글은 가톨릭교회의 가짜 아버지false fathers’ 혹은 여장한 아버지pères en jupe, fathers in skirts’로써 표명된 보완적 신화들에 반대하고 있다. 피에르 마흐 그 자신이 추구하는 주체성은 퀘벡의 식민지적 오이디푸스colonial Oedipus’(마흐, 1964)라는 유산과 맞부딪치기를 진중하게 시도하고, 보편적이고 민족적인 것을 칭한다. 그러나 사실을 따지자면, 그러한 주체성이란 극심하게 젠더화되어 있고 이성애 중심화되어 있는 것이다. 그 이름을 말하고 행위하기를 두려워하는, 실패하고 거세된 남성성virility’ 대신에 마흐는 새로운 부성적인 자리, 즉 로버트 슈워츠월드Robert Schwartzwald남근적-민족적 성숙성a phallo-national maturity’(슈워츠월드, 1991: 181)이라고 이름 붙였던 것을 추구한다.

 

아버지의 세계는 딱딱한 대상들hard objects의 영역, 객관적 현실의 영역, 구체적 성취의 영역, 일과 능률의 영역이다. (대문자) 아버지는 실천praxis이며, (그 아버지로부터 비롯된) 우리의 신화는 우리에게 불모의 기획이라는 형을 선고했다. (마흐, 1964: 24)

 

이는 생활력과 모험심이 부재’(마흐, 1964: 26 저자 강조)했던 어떤 세계이다. 마흐에게 퀘백 남성은 오이디푸스이다. 그는 그의 불감증frigidity에 빠진그의 어머니와 결혼하기 때문이고, 그녀는 자신의 아들들과 남편을 거세하며 그들이 남성성과의 어떠한 진정한 마주침을 이루도록 하는 것’(저자 강조)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근적-민족적 성숙성에 기대고 있는, 민족주의적 계획과 관련된 이러한 남성성의 충만함이란 영원히 자연에 고정되고, 자연에 뿌리를 두는 어머니라는 컬트를 기반으로 하는 전통적 세계를 상정하고 있다. 그 결과로 모든 총체성과 충만함은 사라진다.

 

우리는 해체된 문화, 흩뿌려진 부스러기들로 환원된 삶 속에 살고 있다. 우리는 개인을 통합하는 데 본질적이면서 개인에게 자신이 수행할 역할을 보여주는 사회적 구조들, 이를테면 다각적이고, 효율적이고, 부성적인 기관들을 결여하고 있다. (...) 탈인간화란 우리를 [대문자] 어머니라는 가변적 모래로 집어삼키려고 위협하는 사회적 진탕이다. (마흐, 1964: 27)

 

마흐는 여성들을 자신의 민족적 계획에 포함시키려 시도할 만큼 충분히 기민하기는 하지만 이는 그가 믿는 것처럼 총체성totality으로서 민족이 다시 한 번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이른바 어머니-대지la Terre-mère/Mother-Soil’의 관념을 부활시키고 변형시킴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 소논문은 정말이지 그 시대의 유물이다. 그 글은 아직 도래하지 않은 자유의 이름으로 어떤 보편적인 것을 위해 극도로 젠더화된 위치를 취하는 오류를 범한다. 그리고 굉장히 편협한 여성과 남성의 (성적) 해방을 제시한다. ‘여성을 애인으로, 부인으로 만들어라. 어머니의 가슴으로부터 다시 한 번 탈출함으로써 우리를 어머니로부터 자유롭게 하라. 새로운 전투를 위해 무장하고, 준비하라.’ 더 이상 식민지적 오이디푸스인 것이 아니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대한 제안된 해결책으로 오이디푸스화된 것이고, 가족 로맨스 혹은 성기적 이성애의 젠더화된 주체성과 남성 권력의 고정된 할당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오이디푸스화된 것이다. 사실, 전체 시나리오는 민족적 정체성, 혹은 다른 어떠한 정체성의 중핵에 자리하는 그 결여, 긴장을 부인하는 데 있다.


다음에 계속 




  1. 두 차례(1980년, 1995년) 퀘벡주의 분리독립 투표가 있었으나 투표 결과 독립은 모두 무산되었다. [본문으로]
  2. 이정하가 옮긴 질 들뢰즈의 <시네마2: 시간 이미지>(시각과 언어)에서 직접 인용하였으나 일부 문장을 수정함. [본문으로]
  3. “... 오늘날 퀘벡인들은 스스로를 프랑스 계 캐나다인이 아닌 ‘퀘벡인(Québécois)’이라 지칭한다. ‘퀘벡의, 퀘벡 사 람의’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퀘벡쿠아(québécois)’는 1960년 이후에 만들어진 어휘이다.” 어순아, 이채영, 「캐나다 ‘퀘벡인(Québécois)’의 정체성 인식 양상」, <인문과학연구 제32집>, 36-37pp. [본문으로]
  4. “칸트는 데카르트가 일찍이 배제한 시간이라는 합성요소를 코기토에 부가한다. 시간 속에서 비로소 생각하는 나의 존재를 규정한다. 그러면 그때 사고하는 나(능동적 자아)와 그것에 의해 규정되는 존재(수동적 자아) 사이에는 간극이 생긴다. 규정작용은 시간 속에서 실현되기 때문이다 ... (이리하여 랭보의 “나는 한 사람의 타자이다”라는 문구는 칸트의 사상을 나타낸 시적 표현의 하나로 기술된다(들뢰즈 「칸트 철학을 요약해줄 네 개의 시적 표현에 관하여))」. 칸트는 자아 속의 균열을 발견한 것이라고 들뢰즈는 말한다.” 고쿠분 고이치로, <고쿠분 고이치로의 들뢰즈 제대로 읽기>, 박철은 역, 동아시아.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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