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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로자살의 사회적 인정과 배제를 넘어: 과로 개념을 다시 생각하다 (1)



전주희 | 서교인문사회연구실



(1) 들어가며: 요약

(2) 국가의 자살예방정책

(3) 과로자살의 법적 이해 :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서 ‘업무상 재해’로서의 자살

(4) 프랑스 텔레콤 사례를 통해 본 ‘경영상의 학대’에 따른 노동자 자살

(5) 과로자살을 통해 다시, 과로를 생각한다.  

   ① 과로자살의 인정과 배제의 변증법 

   ② ‘집단’으로서의 과로자살, 그리고 과로




(1) 들어가며


IMF 위기 이후 한국사회에 대한 무수한 많은 별칭(?) 중에 두 개의 단어가 있다. ‘과로사회’, ‘자살공화국’. 우리가 지난 20여년간 들어왔거나 말해본 단어. 처음에는 그리고 그 다음에는 가끔씩 놀랐던 과로의 지표들, 그리고 자살의 통계들. 

그런면에서 보자면 과로자살이라는 개념은 우리에게 너무도 뒤늦게 당도한 것 같다. 그리고 나서 문득 드는 질문은 가령 이런 것들이다. 왜 우리는 과로사회에서 자살을 선택하는 혹은 선택당하는 일에 대해 개인적인 자살로 인식하고 있었을까? 왜 우리는 하루에 36명이 자살하는, 자살이 일반화된 사회에서 과로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들의 집단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을까? 

최근 언론을 통해 빈번하게 다루어지고 있는 과로자살이라는, 일본사회에서 발명된 개념은 한국사회에서 때 이른 개념이거나, 아니면 때 늦은 개념이다. 과로자살이 과로의 한 극단적인 양상으로, 그리하여 예외로 간주된다면 이 역시 한 때의 미디어가 생산해낸 신조어의 하나로 등장했다가 사라질 가능성이 농후하므로, 과로자살은 또 다시 우리 사회의 모든 모순을 우회해버릴 것이다. 그렇다면 과로자살은 여전히 한국사회에 도착하지 않은 개념이자, 이미 한국사회의 일상으로 흡수될 것이다.

그래서 그 전에 과로자살에 대해 보다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겠다. 이 단어마저도 아주 가끔식 간헐적 발작처럼 놀랐다가 이내 심드렁해지기 전에 말이다. 

 

이 글은 과로자살이라는 개념을 통해 과로와 자살이라는 그 자체로 독립적이고 방대한 연구가 필요한 개념을 동시에 다루려는 것이 아니라, 과로와 자살이 교차하는 사건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를 다루고자 한다. 특히 ‘과로를 매개한 자살’ 즉 과로자살의 특수성 보다는 ‘(과로)자살을 매개한 과로’의 일반화된 의미를 다루는 것이 이 글의 주제다. 특히 과로자살이라는 사회적 현상을 추상적으로 사회에 만연한 현상으로 접근하기보다는 국가라는 적극적 행위의 주체를 중심으로 과로자살이라는 일반적 현상이 어떻게 비가시화되어 왔는지 살펴볼 것이다. 이를 위해 ‘자살예방백서’에서 국가가 자살을 의미화하는 맥락을 따져보고, ‘산재보상보험법’에서 과로를 다루는 방식, 특히 업무상 재해의 정의와 최근 대법원 판례사이의 불일치의 의미를 짚어보고자 한다. 


국가는 자살예방에 대한 국가적 전략을 2004년부터 수립해왔으며, 최근 문재인 정부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자살예방 국가행동 계획’을 선포하고 2022년까지 자살자를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선언했다. 자살에 대한 국가의 태도는 자살의 지역별, 성별 등의 특징들을 유형화해 타겟을 정하고 이에 대한 관리와 예방을 강화하겠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자살을 선택하는 인구집단을 유형별로 분류하고, 고위험군에 속하는 인구를 집중적으로 관리하겠다는 타겟 전략은 자살에 이르는 사회구조적 원인을 규명하는 것과는 별개로 자살이라는 현상의 완화를 목표한다. 이때 국가는 자살을 사회적인 것에서 개인적인 것으로 전환하고, 개인의 극단적인 선택에 대한 개입의 일환으로 예방전략을 수립한다. 이 과정에서 자살은 정신적인 것으로 간주되며, 우울증 등 심리치료의 문제를 예방의 차원으로 부각하게 된다. 이로부터 자살이라는 결과에 따라 원인은 다시 재구성되는데, 이제는 개인적인 것이자 정신의 비정상적인 일탈로 간주하게 된다. 


이러한 맥락은 <산업재해 보상보험법>에서 업무상 재해에 따른 사망 즉 과로사와 과로자살을 구별하는 준거가 어떻게 의미화 되었는지와 연결된다. <산업재해 보상보험법> 상 자살은 원칙적으로 업무상 재해에 해당되지 않는다. 다만 예외적으로 “그 부상, 질병, 장해 또는 사망이 정상적인 인식능력 등이 뚜렷하게 저하된 상태에서 한 행위로 발생한 경우”에 한해 인정하게 된다. 다시 말해 과로자살은 법에서 원칙적으로 수용될 수 없는 것이지만 정신이 비정상적인 상태에서 자살을 행한 경우에 한해 예외적으로 인정된다. 이렇게 제한적으로 설정되어 있는 법은 최근 대법원 판례를 통해 보다 유연하게 해석되고 있다. 최근의 대법원 판례 경향은 기존의 판결들이 업무와 자살 사이의 인과관계를 ‘사회평균인’ 기준으로 판단해 과로로 인한 자살의 가능성을 최소화해왔던 것에 비해 인과관계를 상대적으로 폭넓게 해석하고 있다. 이로부터 쟁점은 법에서 정하는 자살에 대한 정의이다. 기존의 법에서는 자살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기 위하여 반드시 ‘정신 이상 상태’를 매개로 ‘업무->정신적 이상상태->자살’이라는 이중의 인과관계를 통해서만 인정되기 때문이다. 


국가에서 법이나 정책을 통해 자살을 ‘정신이상 상태에서 행하는 자해행위’로 정의하는 것은 자살을 사회적, 정치적 맥락과 분리하여 개인화하며, 예외적 일탈로 간주하게 하는 사회적 담론 형성에 핵심적인 장치 역할을 하게 된다. 자살은 개인의 선택이 야기한 사회적 문제가 되며, 과로자살은 과로가 일반화된 사회에서 예외적인 일탈로 간주하게 되는 역설적인 결과가 도출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는 자살을 비정상적인 행위로 인정하면서 동시에 배제한다. 즉 국가가 과로자살에 대해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결과적으로 정치적 배제가 된다. 인정의 형식을 띈 배제의 핵심에는 과로는 일반적인 것이지만 과로자살은 병리적이거나 예외적인 현상으로 간주하는 것에 있다. 이들은 과도한 착취를 견뎌내지 못한 심약한 자기원인을 지니고 있는 자들이다. 


이에 반해 과로자살이라는 개념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첫째 자살이라는 현상이 지시하는 원인은 심리적이거나 개인적 상황이라는 것을 넘어 ‘과로’라는 사회구조적 원인을 지목한다. 이는 과로가 일반화된 사회에서 국가가 자살이라는 현상에 중립적으로 개입하는 것의 맥락을 해체한다. 둘째. 과로자살은 과로상태와 자살상태의 외연을 교란한다. 자살에 대한 심리적이고 개인적인 원인들은 더 이상 말끔하게 규명될 수 없다. 과로상태의 일반화된 조건은 이제 과로자살의 예외성을 조건 짓는 핵심적인 원인이 된다. 


이 글에서는 과로자살을 신자유주의와 불평등, 그리고 과도한 착취의 병리적 결과로 간주하기보다는 하나의 ‘집단’으로 사유할 것을 제안한다. 통상 장시간 동안의 누적의 결과로 표면화되거나 압축적인 스트레스의 집중으로 표출되는 과로자살은 더 이상 병리적이거나 예외적 일탈이 될 수 없다. 또한 과로자살이 과로사회에서 특정 국가 장치들에 의해 재생산된다면 이들의 존재는 사회의 바깥이 아니라 사회 안에 존재하는 집단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과로자살자들을 ‘집단’으로 정의할 때, 이들은 역설적이게도 자신의 비존재를 존재의 조건으로 갖게 된다. 이들의 자살은 개별적이고 심지어 우발적이기까지 보이지만, 이들은 늘 집단적인 노동과정 속에 동료들과 포함된 상태에서, 바로 그 상황으로 인해 자살을 선택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때문에 그들의 자살은 살아있는 노동과정의 특정 장면을 포착한다. 그리고 그런 한에서 그들은 그 집단적 노동과정과 계급관계를 포함한 노동 관계들의 집단성을 포함하며, 동시에 그 관계들 안에서 비존재로서 나타난다. 마치 유령처럼. 하지만 이 살의 일부는 여전히 살아있는 기묘한 유령인 것이다. 


그러므로 과로자살이라는 집단은 한국 사회에 만연한 과로의 문제를 각성하게 만든다. 과로자살은 국가에서 분류하는 자살유형이나 과로유형의 하나가 아니다. 과로자살은 자살이라는 ‘행위’의 범주를 넘어 자살의 원인으로 과로를 지목하고, 나아가 과로가 발생한 장소를 사건의 현장으로 사유하게끔 한다. 따라서 자살을 행하는 장소, 자살방법, 자살자의 성별과 나이라는 분류는 과로자살의 원인과 특징을 설명할 수 없는 범주들이다. 이 글의 목표는 “과로자살은 자살이 아니라 과로의 장소를 지목한다”는 점을 밝히고 그것이 다른 여타의 자살과 달리 과로자살을 인식해야하는 출발점이자 결과라는 것을 밝히는 것에 있다. 결과가 아니라 원인의 발생적 장소를 지목하는 것은 과로자살이 현상(결과)가 아니라 하나의 집단으로 사회 안에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죽음 이후에야 비로소 그 발생의 원인이 가시화되기 때문이다. 죽음이 지목하는 장소는 여전히 살아있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장소이며, 자살이라는 사건은 이 장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가시화시키는 최초의 증언이다. 


과로자살을 지금까지의 제한적이거나 정신적인 문제를 넘어 보다 확대해서 인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동시에 이는 과로와 과로자살과의 관계를 다시금 묻게 한다. 과로사회에서 과로자살의 인정은 일반화된 과로를 배제할 수도 있고 과로를 다시금 사회적 문제로 재정의 할 수도 있다. 때문에 이것은 법 이전에 정치적인 문제다. 과로자살을 정치화시키기 위해서는 과로자살을 사회적이고 병리적인 결과로 간주해 예방하고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과로에 대해 근본적인 원인을 증언하는 집단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2) 국가의 자살예방정책


정부가 자살예방에 국가적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2003년이다. OECD에 가입한 29개 국가 중 최고의 자살률(23.3%)를 기족하게 되면서다. 이듬해(2004년) 보건복지부는 2010년 까지 자살사망률을 2003년 대비 20%감소시키고, 자살 시도율 및 자살 충동률을 2001년 대비 20% 감소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자살예방대책5개년종합대책>을 수립하여 발표했다. 정부의 자살예방정책의 주요한 방향은 생명존중문화를 조성하는 것과 언론의 자살보도 권고지침을 보급하는 것, 그리고 청소년과 노인의 자살예방지침서 보급과 우울증 및 자살위험자를 조기 발견하여 상담 및 치료하는 것이다.[각주:1]


즉 국가는 자살에 대한 개입의 초기부터 자살을 의료적 문제로 간주하며, 자살 위험에 대한 병리화를 추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면 2008년 <제 2차 자살예방종합대책>에서는 한국사회 자살의 특징이 제시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97년 경제위기 및 03년 신용카드 문제 등을 기점으로” 자살이 급증했으며, 그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고 보고했다(보건복지부, 2008: 1). 또한 2004년 이후 자살예방대책 5개년 계획을 수립, 추진했지만 가시적 성과를 내는데 실패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때부터 매년 발간하는 <자살예방백서>는 자살실태에 대한 정밀한 분석과 자살의 유형별 분석을 보다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2008년 한국사회 자살의 특징으로 지목한 경제위기와 사회안전망의 약화, “경쟁심화로 인한 상대적 스트레스의 증가”의 문제는 본격적으로 분석되고 있지 않고 대신 ‘우울증 등 정신질환 증가’의 요소는 연령별, 성별, 지역별 등으로 세분화되어 분석되고 있다. 

경제적 불안과 사회적 빈곤이 자살예방백서의 통계를 통해 아예 배제된 것은 아니지만 자살과 경제적 원인과의 관계를 자살을 둘러싼 원경(遠景)으로 배치될 뿐이다. 이는 자살을 둘러싼 복잡하고 다양한 원인들과 자살예방을 위한 정책과의 불일치를 가져온다. 하지만 이는 일종의 의도된 불일치이기도 하다.


자살이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한 2003년은 IMF 위기 이후 신자유주의가 경제적 사안을 넘어 사회적이고 정치적으로 문제로 등장한 시점과 일치한다. IMF 구조조정 프로그램은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위험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위험을 전사회적으로 전가하면서 삶의 조건을 개별적인 생존전략으로 전가했다. 2003년은 신용대란이 일어난 해이며, 400만 명이 넘는 신용불량자가 등장한 해이다. 당시 언론에서는 신용불량자를 도덕적 해이로 몰아부쳤지만 이때 신용불량의 원인이 카드신용이었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무분별한 소비와 투기 때문에 개인이 부채를 지게 된 것이 아니라 줄어든 소득을 카드 신용으로 메꾸면서 신용불량자가 양산된 것이다. 물론 신용불량자가 급증했던 자살율을 견인한 것인지는 그 어느 통계로도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2003년 이후 사회의 불평등과 빈곤이 곧바로 개인의 생존위협으로 전환된 두 양상으로 신용불량자와 자살률은 동일한 사회적 원인을 지목한다. 

하지만 2003년부터 2017년까지 국가의 자살예방대책은 이러한 사회적 원인에 대한 해결보다는 자살에 대한 인식개선이나 자살예방을 위한 홍보와 우울증 등 정신보건 서비스 강화에만 맞추어져 있다. 또한 자살 고위험군을 사전에 분류하여 집중적 관리를 시행함으로서 자살자 감소에 ‘가시적 성과’를 도출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그림 9-1> <3차 자살예방기본계획>에서 제시한 자살예방을 위한 3대 전략 10대 과제





2003년 이후의 사회적 현상으로 자살은 더 이상 개인의 고유한 선택으로 간주되는 것이 아니라 집단적이고 사회적인 사실로서 인정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사회적 사실로, 국가가 개입해야할 과제로 인정한다고 해서 자살을 사회적 죽음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니다. IMF 위기 이후의 자살이 모두 경제적인 원인으로 환원될 수는 없지만 경제적인 원인을 배제하고 자살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다룰 수는 없다. 즉 적극적인 사회복지 정책의 부재와 노동의 불안정화, 그리고 과도한 착취가 노동자의 생명을 단축시키는 자본에 대한 규제를 배제한 채 자살에 대한 예방과 대책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2017년 자살예방백서>에서는 3차 자살예방기본계획의 집중계획을 소개하고 있다. “획기적인 자살률 감소를 위한 자살위험단계별 구체적 접근을 하고자 하며 자살률 감소를 결정하는 핵심 중점은 ‘노인 자살예방’ ‘자살시도자 사후관리’ ‘우울증 조기발견’을 감안하여 계획을 수립하였다.”(보건복지부, 2017 : 147). 

보고서에 따르면 인구 중에 자살예방 차원에서 집중관리되어야할 대상은 노인과, 자살시도자, 그리고 우울증이다. 자살을 인구학적 특성으로 환원하게 되면 자살에 대한 사회적 맥락은 탈맥락화된다. 자살은 IMF 이후 한국사회의 특성을 드러낸 ‘사건’이 아니라 특정 인구의 예외적이고 병리적 현상으로 전환된다. 


국가는 <자살예방종합대책>을 통해 자살을 더 이상 개인적인 특성으로 간주하지 않으면서 국가의 개입이 필요한 사안으로 인정하게 된다. 하지만 이는 2003년이 지시하는 한국사회의 시간과 공간의 정세적 조건을 은폐하며, 나아가 국가가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의 주도적 행위자였다는 사실을 비가시화시킨다. 자살에 대한 국가의 적극적 인정과 개입은 자살이라는 인류의 오래된 금기를 도덕적으로 터부시하는 것을 넘어 국가가 자살이라는 사회적 현상을 인정하고 예방하려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행동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신자유주의적 자살’이라는 특징을 탈정치화시킨다. 이를 통해 국가는 자살의 원인에서 스스로를 삭제하며 자살이라는 현상에 대한 중립적 개입의 전략을 취한다. 이것이 자살예방대책이 가지고 있는 국가개입의 의도라고 말한다면 과도한 주장일까?  


국가는 자살예방대책을 통해 무엇을 구축하려고 하는 것일까. 단적으로 말해 자살하지 않는 ‘정상적 시민’이라는 규범을 재생산하는 것인데, 이때 자살자라는 국가에 의해 인정된 ‘지위’는 역설적으로 근대 자유주의 국가에서 온전한 시민자격의 예외이기 때문에 획득된다. 시민이라는 평등하고 보편적인 지위는 자유주의 국가에서 하나의 지위로 간주되지 않는다. 우리는 평소에 시민이라는 자격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태어날 때부터 부여되는 시민의 자격은 “티 나지 않는(unmarked) 규범”[각주:2]인 셈이다. 우리는 정상적인 시민으로 분류되지 않을 때 법적 지위를 획득하게 되는데, 범죄자, 이주노동자 등으로 국가에 의해 규정된다. 흉악범이 흉악범이 아닌 사람과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는 본성적인 것이 아니라면 흉악범은 국가에 의해 창조된 법적 지위이다. 자살자 역시 자살을 행하는 사람들의 인간학적 특성(우울증, 노인 등)이 원인이 아니라면 오늘날 자살자에 대한 지위는 국가에 의해 구성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물론 자살이라는 현상이 새롭게 창출되거나 인위적으로 조작된 결과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살자와 살아있는 자, 살고 있는 자 사이에 이미 존재하는 사회적 구분위에 ‘순진하고 우연히’ 국가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신자유주의 시대에, 과로와 자살이 일반화된 사회에 ‘정상적 시민’의 규범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오늘날 한국사회의 별칭이 되어버린 ‘과로사회’와 ‘자살공화국’은 한국사회의 문제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단어들이다. 하지만 과로와 자살은 모두 우리사회가 해결해야할 부정적인 것으로 간주되고 있을까? 그렇다면 왜 국가는 ‘자살예방계획’과 함께 ‘과로예방계획’을 5년마다 갱신하고 수립하지 않는 걸까?


다음 장에서는 최근 과로자살을 둘러싼 법적 쟁점을 다루면서 국가가 과로를 다루는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계속)




  1. 정승화, 「자살과 통치성: 한국사회 자살 담론의 계보학적 분석」,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박사학위논문, 2012, 224쪽. [본문으로]
  2. 레너드 C. 펠드먼, 「지위 부정의」, 낸시 프레이저 외 지음, 『불평등과 모욕을 넘어』, 문현아, 박건, 이현재 옮김, 그린비, 2016, 353쪽.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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