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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엽서


엽서는 편지와는 조금 다른 시간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편지는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나름대로 숙고되고 정리되었을 때 적어 보내는 것이지요. 그래서 호흡이 길어지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엽서는 무언가 다른 일을 하는 와중에 빠르게 몇 줄 휙 휘갈겨 보내는 것이기 쉽습니다. 미처 숙고되지 못하고 정리되지 못한 생각을 말이지요. 그래서 엽서는 (마냥 가벼운 안부만을 담아 보내는 경우가 아니라면) 수정되거나 심지어 취소될 것을 예상하면서 조금은 불안한 마음으로 적어 보내는 것이 아닐까 여겨집니다. 물론 편지도 그럴 수 있지만, 엽서보다는 조금 덜 하지요. 그렇기 때문에 엽서엔 너무 많은 의미를 담아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아무 의미도 두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렇기는커녕, 우리는 엽서를 쓰면서 좁은 지면에라도 어떤 소량의 의미를 담기 위해 노력하지요. 그 소량의 의미, 그 소량의 누빔점(point de capiton)마저 시간 속에서 무화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엽서에 적을 내용을 고심하고 심지어 형식과 문체를 고민합니다. 오늘 당신께 보내는 세 번째 엽서에서는 바로 이 점에 대한 저의 생각을 조금 말씀드려볼까 합니다. 왜냐하면 사실 저는 제가 두 번째 엽서에서 당신께 말씀드렸던 생각을 오늘 조금(그러나 이는 어쩌면 아주 큰 ‘조금’일 수도 있겠습니다)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오늘 저는 조금 거창하게 말하자면 의미와 그 의미를 담을 용기로서의 에크리튀르의 관계에 대해서 말하고 싶습니다.

지난 번 엽서에서 저는 ‘데리다에게 있어서는 에크리튀르의 단수성이 먼저 있고 그것이 이후 다양한 콘텍스트들과 마주침으로써 산종된다’는 아즈마 히로키의 산종에 대한 해석을 높이 평가하면서 그것을 라캉의 환유적 누빔점의 형성 및 해체라는 문제설정과 접근시켜 봤습니다. 라캉과 데리다가 이런 식의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기표가 기의로부터 분리될 수 있는 어떤 것이라는 점을 두 사람 모두 보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아즈마의 위와 같은 설명은 약간 관점을 달리해서 보자면 적어도 한 가지 문제를 미해결의 상태로 남겨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곧, 만일 최초에 에크리튀르의 단수성이 먼저 있고, 이후 그것이 다양한 콘텍스트들과 마주침으로써 산종된다고 말한다면, 이 다양한 콘텍스트들 자체는 도대체 어디에서 유래하는 것일까? 그리고 제가 생각하기에 이 질문을 숙고해본다면 우리는 데리다가 어디에서 라캉보다 훨씬 더 멀리까지 나아가고 있는지를 깨달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솔직히 말한다면 저는 데리다가 결코 ‘최초에 에크리튀르의 단수성이 있다’고 말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설사 그가 그렇게 말한다고 해도, 그것은 아마 성경에서처럼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고 하는 식은 아닐 것 같습니다. ‘말씀’의 자리에 ‘에크리튀르’만 바꿔 넣으면서 말이지요. 왜냐하면 에크리튀르는 적어도 제가 느끼기론 기원적 자리(또는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늘 그러한 기원적 자리에 대해 부차적인 자리(또는 두 번째 자리)를 차지하는 보충적인 어떤 것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에 대한 보충일까요? 바로 어떤 의미 또는 콘텍스트에 대한 보충입니다. 좀 더 사태를 정교하게 묘사하자면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최초에 에크리튀르의 단수성이 먼저 있고 그것이 콘텍스트들과 마주침으로써 다양한 의미로 산종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어떤 의미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첨가되어야 하는 것이 에크리튀르라고 말이지요. 왜 의미를 구성하는 데에 에크리튀르가 필요한 것일까요? 왜냐하면 의미가 의미이기 위해서는 그것이 반복 가능한 어떤 것이어야만 하는데, 무엇인가가 반복 가능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또한 반드시 어떤 물질적 흔적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에크리튀르란 바로 이 의미의 반복을 가능하게 만드는 흔적, 말하자면 의미를 안정적으로 담아두기 위한 용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주목해야 할 것은, 에크리튀르는 하나의 흔적이기에, 다시 말해서 어떤 ‘다른 것’의 흔적이기에, 그 자체로는 첫 번째 자리 또는 기원적 자리에 현전해 있는 어떤 것일 수 없다는 점이지요.

이렇게 에크리튀르는 기원적 의미를 구성하는 데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하는 필수적인 보충물이지만, 자신이 보충하는 의미에 대한 ‘타자성(alterity)’ 내지 ‘외재성’을 또한 갖고 있는 것입니다. 기원적 의미가 일단 구성되고나면 에크리튀르가 그 기원적 의미에서 떨어져 나올 수 있는 것도 에크리튀르가 이런 타자성 내지 외재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라캉이라면 누빔점의 해체라고 불렀을만한 현상이 바로 이것이지요). 산종은 정확히 이렇게 기원적 기의에서 분리된 기표 또는 에크리튀르가 또 다른 콘텍스트들, 또 다른 기의와 마주침으로써 생산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에크리튀르의 운동의 이런 복잡성을 파악하는 것이 데리다의 사유의 심오함을 깨닫는 데에 관건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 심오함이 어디에까지 이르는지를 가늠하기 위해서 오늘 저는 제가 예전에 전설처럼 전해 들었던 두 선생님의 논쟁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기회를 가졌으면 합니다. 바로 김상환 선생님과 김상봉 선생님이라는 두 거목의 논쟁인데요, 이 논쟁은 아주 오래 전 1990년대에 어떤 대학원 강의실에서 일어났었다고 합니다.

논쟁은 소쉬르의 기호학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김상환 선생님이 소쉬르를 옹호했다면, 김상봉 선생님은 소쉬르를 비판했지요. 김상봉 선생님은 하나의 기표가 다른 기표들과의 차이를 통해서만 자신의 기의를 갖게 된다는 생각은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김상봉 선생님은, ‘그것이 무엇이 아니다’ 또는 ‘그것이 무엇과 다르다’라는 것만 가지고는 결코 그것이 긍정적으로 무엇인지에 도달할 수 없다고 말했는데, 여기서 김상봉 선생님은 칸트주의자답게 ‘무한판단(infinite judgment)’ 범주를 통해 자신의 비판을 펼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S is non-P’는 무한히 이어질 뿐 결코 모종의 긍정판단, ‘S is P’ 가 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요지라고 볼 수 있지요.

그러면서 김상봉 선생님은 자신 앞에 놓여 있던 카푸치노 캔커피를 집어들고, 이것이 책상이 아니라고 해서, 이것이 걸상이 아니라고 해서 어떻게 그런 판단이 ‘이것이 카푸치노 캔커피라는 것’을 알려줄 수 있단 말인가 하고 반문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김상환 선생님이 조용히 그 캔커피를 받아들더니 거기 씌어진 “나는 …… 카푸치노”라는 상표를 가리키며, 그 이름 안에 있는 말줄임표에는 이미 일어난 수없이 많은 기표들의 의미작용이 숨어 있다고 말했다더군요. 정말 기지 넘치는 답변이 아닐 수 없습니다.

김상환 선생님은 저 답변을 통해, 기표들 사이의 차이가 없으면 아예 카푸치노 캔커피라는 지시체(referent) 자체가 생산될 수 없다고 말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 차이가 나는 기표들의 체계로서의 언어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칸트 식으로 말하자면 남는 것은 캔커피, 책상, 걸상 따위의 분명한 대상이 아니라 ‘물 자체’ 또는 혼란스럽게 뒤섞인 사물의 연속체(continuum)일 뿐이라는 것이지요. 기표들의 차이를 통해서만 그 사물의 연속체는 캔커피, 책상, 걸상 따위로 나뉘어 규정될 수 있게 됩니다. 따라서 기표들의 차이의 망은, 다시 한 번 칸트 식으로 말하자면, (시간이나 공간과 마찬가지로) 대상에 대한 인식의 선험적 조건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소쉬르적 답변은 확실히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는 훌륭한 답변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여전히 이 답변 안에서 어떤 질문이 풀리지 않은 채로 남아 있는 듯이 여겨져 가끔 이 논쟁을 혼자 복기해보곤 했습니다. 곧 우리가 차이가 나는 기표들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왜 하필이면 그것들은 사물의 연속체를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자르고 다른 방식으로 자르지 않을까 하는 질문이 그것입니다. 왜 기표들의 차이의 분절된 지형은 꼭 기의들의 차이의 이 분절된 지형(저 분절된 지형이 아니라)과 연동되는 것일까요? 김상봉 선생님의 어법으로 다시 말하자면, 왜 캔커피라는 말은 병커피나 캔쥬스 따위의 사물을 조금 더 자신의 지시 안에 포함하는 식으로 기의를 갖지 않고 캔커피에서 기적적으로 딱 멈추는 것일까요? 사실은 이 질문들은 하나의 랑그 내에서가 아니라 랑그와 랑그 사이에서 제기할 때 더욱 더 분명하게 그 의미를 드러내게 됩니다. 우리는 소쉬르 식으로 이렇게 물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왜 기호들이 갖는 가치들은 다양한 언어들(랑그들) 안에서 상이하게 나타나는 것일까요? 왜 하필이면 프랑스어의 mouton은 살아있는 양과 죽은 양고기를 모두 다 가리키는데 반해, 영어의 mutton은 죽은 양고기만을 가리키는 것일까? 왜 이런 차이가 생겨나는 것일까요? 하나의 랑그 내의 차이들은 왜 또 다른 랑그 내의 차이들과 차이가 나는 것일까요? 이 차이들의 차이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그것은 단지 우연의 산물일 뿐일까요?

사실 이 질문들은 랑그의 차원에서는 해결될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랑그 그 자체의 존재 이유를 묻고 있는 질문들이기 때문이지요. 바꿔 말하자면, 이 질문들은 랑그 내의 요소들의 관계로서의 차이의 문제가 아니라 랑그와 랑그 사이의 차이의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파롤의 차원을 도입함으로써 이 질문들을 해결해야 할까요? 아마도 소쉬르라면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파롤의 차원으로 넘어가는 순간 우리는 사실상 소쉬르가 규정한 언어학의 범위를 넘어가게 되지요. 왜냐하면 소쉬르는 파롤이 아니라 랑그만이 언어학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쉬르가 이렇게 언어학의 대상을 랑그로 한정했다는 것은 사실 위의 질문들을 언어학에서 ‘금지’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왜 소쉬르는 위와 같은 질문들을 금지했던 것일까요? 왜냐하면 그것들은 궁극적으로 언어의 기원이라는 문제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언어(랑그)는 왜 생겨났는가? 언어는 어떻게 발생했는가? 언어의 기원, 언어의 발생이라는 질문을 금지함으로써 소쉬르는 구조주의적 언어학을 출현시킬 수 있었다고 볼 수 있고, 이는 사실 소쉬르의 엄청난 기여였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콩디악적인 문제설정에 의해 지배된) 19세기의 언어학은 언어의 기원이라는 문제를 중심으로 회전했기 때문에 언어에 대한 매우 목적론적인 설명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다고 볼 수 있는데, 소쉬르는 이 기원의 문제를 언어학에서 금지함으로써 언어학이 언어의 시스템 자체, 언어를 언어로 만들어주는 언어 내적 관계로서의 구조를 연구하도록 강제했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이런 금지가 과연 긍정적인 효과만을 가져왔을까요? 사실 질문의 금지가 질문의 소멸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위에서 제기됐던 질문들(‘왜 이 랑그는 저 랑그와 차이가 나는가?’ 등)은 제가 느끼기엔 완전히 정당한 질문들이라고 볼 수 있는데, 소쉬르는 언어의 기원이라는 문제를 괄호 침으로써 바로 그 질문들에 대해 사유할 수 있는 길 또한 원천적으로 봉쇄했던 것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와 같은 질문들에 대해 어떤 길을 통해 접근해야 할까요? 저는 요즘 그 길을 데리다의 그라마톨로지 안에서 발견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하게 됩니다.

앞서 우리는 데리다에게 에크리튀르란 기원적 의미의 구성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이질적인 보충물’이라는 위상을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는 우선, 우리가 에크리튀르(쓰기, 흔적-남기기, 기록하기로서의 에크리튀르)의 작업을 수행할 때 그것은 분명 어떤 의미를 생산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의미 구성의 행위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거기에는 소쉬르의 생각과는 달리 어떤 ‘의도’ 내지 ‘동기’가 반드시 동반되지요. 소쉬르는 주지하다시피 상징과 기호를 엄격하게 구분하면서 의미하는 것과 의미되는 것 사이의 자연적 연관성이 발견되는 것은 상징이며, 반면 기호는 그러한 자연적 연관을 전혀 발견할 수 없는 ‘자의성’에 의해 특징지어지는 것이라고 말했지요. 그런데 데리다적 에크리튀르란 항상 어떤 의미 구성을 위해 수행되는 것이기 때문에 마치 상징과도 같이 의미하는 것과 의미되는 것 사이의 연관성(동기)을 그 속에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는 것으로 우선 나타납니다. 김상봉 선생님이 말씀하신 ‘S is P’라는 긍정적인 가리킴, 동기의 차원을 에크리튀르는 그 안에 가지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데리다는 이런 에크리튀르 개념을 가지고 지금 전(前)구조주의적인 언어관(상징으로서의 언어)으로 복귀하려고 했던 것일까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와는 정반대이지요. 데리다는 오히려 에크리튀르 개념을 가지고 구조주의를 넘어 포스트구조주의로 나아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왜냐하면 그의 에크리튀르 개념에는 바로 저 첫 번째 측면(그것이 의도와 함께 출발한다는 측면)을 가위표 치는(말소시키는) 두 번째 측면이 동시에 그 안에 담겨 있기 때문이지요. 바로 에크리튀르란, 비록 기원적 의미의 구성을 위해서는 반드시 수행되어야 할 실천이지만, 동시에 그렇게 의미가 일단 구성되고나면 그로부터 떨어져 나올 수 있는 어떤 타자성을 지니고 있는 흔적이라는 측면 말입니다. 이 때문에 에크리튀르는 기의와의 연관성을 상실하고 비의도적인 것, 자의적인 것이 될 수 있는 가능성 및 더욱이 필연성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데리다는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어떤 ‘자연’에도 다시 준거하지 않은 채, 흔적의 비동기화는 항상 생성되어 왔다. 사실 동기 없는 흔적은 없다. 흔적은 무한정하게 자기 자신의 비동기적으로-되기이다. 소쉬르의 언어로, 소쉬르가 말하지 않은 것이 말해져야 할 것이다. 상징도 없고, 기호도 없으며, 상징의 기호-되기가 있다.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 동문선, 91쪽, 번역은 수정, 강조는 인용자)

이제 우리는 에크리튀르의 복잡한 이중적 운동이 랑그와 파롤, 공시성과 통시성의 대립들에 비해 훨씬 더 근본적인 자리를 차지하는 운동이며, 오히려 그러한 대립들을 자신의 효과로서 생산하는 운동이라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요컨대, 에크리튀르는 의미의 안정성을 만들어 내는 데에 봉사하지만(다시 말해서 랑그의 공시성을 만들어내지만), 동시에 스스로를 콘텍스트에서 분리시키는 운동을 통해 의미를 불안정화 하는 데에 봉사합니다(소쉬르에 의해 파롤로 지칭된 ‘변화’의 차원이 바로 이 차원인데, 이 차원은 이제 개인적 주관성의 차원이 아니라 오히려 기의 없는 기표의 물질성의 차원이라고 이해됩니다).

더 나아가서, 이제 우리는 이를 통해 데리다가 ‘차이(différence)’를 넘어서 ‘차연(différance)’이라는 개념을 도입하게 되는 이유까지도 어렴풋이 알 수 있게 됩니다. ‘차이’란 근본적으로 공간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고, 특히 그것은 소쉬르가 <일반 언어학 강의>에서 ‘언어에는 차이만이 있다’고 말했을 때 지적한 바로 그 공시적 차이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의 랑그 내의 공시적 차이들과 또 다른 랑그 내의 공시적 차이들 사이의 차이, 곧 차이들의 차이는 시간적 차이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데리다는 공간적 차이만이 아니라 시간적 차이(지연)를 그 안에 포함하고 있는 새로운 개념이 필요했던 것이지요. 차연이란 바로 그런 시간적-공간적 차이화의 운동을 지칭하기 위해 도입한 개념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데, 이런 의미에서의 ‘차연’이란 기원을 이루는 것이자 동시에 그 기원을 말소하는 것이지요. 데리다는 이렇게 말합니다. “흔적은 사실 의미 일반의 절대적 기원이다. 이는 곧 의미 일반의 절대적 기원은 없다는 뜻이다. 흔적은 나타남(l'apparaître)과 의미 작용을 열어주는 차연이다.” (같은 책, 122쪽, 번역은 수정)

저는 데리다의 이런 사유가 라캉의 ‘기의 없는 기표’에 대한 생각을 훨씬 더 멀리까지 밀고 나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라캉은 적어도 <세미나 20>(1972~73년) 이전에는 통시성과 공시성의 이원론적 대립을 따라서 사고했으며, 특히 통시성에 대한 공시성의 우위(다시 말해서 환유에 대한 은유의 우위)를 주장했다는 점에서 철두철미하게 구조주의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비록 라캉의 기의 없는 기표에 대한 사고가 구조주의를 무너뜨리는 구조주의 내부의 출발점을 표시한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그 탈구축의 운동을 실현한 것은 데리다였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여겨집니다.

오늘은 이쯤에서 엽서를 마무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다음에는 현상학 및 시간에 관련된 이야기를 조금 해볼까 하는데, 생각대로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다음에 또 소식 전하지요.

2017년 7월 24일

최 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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