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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로역정: 물리학자 생활 내 남성들의 무용담 - 05




번역: Andante | 페미니즘 번역모임



[책소개]

책 “입자선-시간과 생애-시간” (Beamtimes and Lifetimes)은 저자인 샤론 트래윅 (Sharon Traweek)이 참여관찰 방법론을 통해 과학자 사회를 연구한 결과물이다. 이 책은 당시 과학기술학의 민족지 연구가 주로 다루던 ‘지식의 형성과정’이라는 화두를 넘어 공간배치, 기계, 연구자의 생애과정과 같은 사회문화적 측면을 다룬 저작이다. 또한 미국과 일본이라는 상이한 문화에서의 과학연구 양상을 비교하여 국가와 젠더가 과학의 구체적 실천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에 대해 밝혀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여기서는 젠더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룬 이 책의 3장 “순례자의 모험기 (천로역정): 물리학자 생활 내 남성들의 무용담” (Pilgrim's Progress: Male Tales Told During a Life in Physics) 을 다룰 것이다.

[위의 소개는 데이비드 J. 헤스 저, 김환석 역, "과학학의 이해", 당대, 2004, 256쪽을 참조하였음]

- 번역자


[본문]


박사 후 과정 물리학자 (1/3)


긴 견습 기간이 끝나면, 6년 간 지속될 수 있는 박사 후 과정에 들어간다. 젊은 물리학자들은 이 박사 후 과정을 통해 누가 입자물리학자 사회의 중심에 들어가고, 누가 주변 그룹에 남고, 누가 이 분야를 떠날지 결정하기 위해 평가받을 것이다. 물리학자 사회의 중심에는 주요 연구소의 연구원들과 해당 연구소에서 연구를 진행하는 고에너지 물리학자들을 교수로 둔 대학 물리학과들이 있다. 그 주변에는 소위 주요 연구소의 ‘설비 그룹’으로 불리는 연구 장비를 관리하는 단위들과 중점대학이 아닌 대학들의 교수들이 있다. 분야를 떠나는 사람들은 주로 컴퓨터과학, 우주물리학, 생물물리학 혹은 지구물리학 분야로 이동한다.

 

박사를 받고난 후 성공적인 이론가들과 실험가들은 분리된다. 이론가들은 이론 그룹에 들어가고, 실험가들은 연구 그룹에 들어간다. 실험가인 박사 후 과정 연구자들은 검출기 디자인과 건설, 실험설계, 데이터 분석에 실력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상적으로는 세 가지 모두에 능숙해야한다. 적어도 셋 중 어떤 것이라고 싫어하거나 무능해서는 안 된다. 다재다능한 것은 중요하다. 분석만 하는 ‘책상’ 물리학자 그리고 실험만 하는 ‘바닥’ 물리학자로 분류되는 것 모두 좋지 않다.

 

박사 후 과정 연구자들은 더 이상 학생이 아니라 젊은 물리학자이다. 그들은 문자로 된 정보보다 음성언어에 의존하는 법을 배워야한다. 사람들은 그들이 교과서와 훈련 때의 문서들을 넘어서 누구와 이야기 할 지를 결정하기 위해 문헌들을 조사하기를 기대한다. 박사 후 과정 연구원들은 여러 구전되는 이야기들을 통해 과거에 대해서 배운다. 이는 그들이 학부생 때 피하라고 배웠던 과학사와는 아주 다르다. 그들은 현재의 것들의 수명이 6개월 정도라는 것을 배운다. 과거의 검출기에 대한 우여곡절, 젊은 시절 그룹리더의 착취행위와 같은 이야기들을 통해 그들은 그들만의 향수에 대한 이야기를 배운다. [29] 모든 문제의 세부사항들은 기억되며 검출기 그 자체는 기억증진장치이다.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검출기는 쓸모없어지는 것에 대한 공포를 가르친다. 박사 후 과정 연구원들은 과거를 사는 것이 얕은 것이라는 것을 배운다. 모든 것의 기원은 75년 전 즈음이라고 합의가 되어있다. 그들 스승들의 계보는 45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소한 가장 잘 알려진 과학자들에 대해서는 그렇다.) 과거에 대한 더 넓은 지식도 그들 자신의 세대의 깊이 이상으로 연장되지 않는다. 오직 과거와 씨름하는 사람들은 “더 이상 자신에게 아무런 물리학도 남아있지 않은” 나이든 물리학자와 아마 물리학자에 비해 “별로 만들어내지 못하는” 과학사 전문가들뿐이다.

 

일부 박사 후 과정 연구원들은 구두로 하는 의사소통을 아주 교묘한 도구로서 인식한다. SLAC의 한 유럽 출신의 박사 후 과정 연구원은 내게 많은 미국 박사 후 과정 연구원들이 그저 질문을 하지 않고 만약 그렇게 하면 지식이 없거나 멍청하게 여겨질 것으로 느낀다고 했다. 이외에 물리학자 사회에 몇 안 되는 미국인이 아닌 여성들 중 한 사람은 (그는 나중에 이 분야를 떠났다.) 이 모든 머뭇거림이 모두 어리석다는 것을 발견하고 많은 질문을 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그에게 질문을 많이 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박사 후 과정 연구원은 모든 사람들이 큰 소리로 자기 의견을 밝히는 것으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인상을 주려고 하기 때문에 들은 말들을 믿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가장 좋은 방법은 혼자서 공부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박사 후 과정 연구원들은 자신의 연구 그룹 내의 구성원들 그리고 전체로서의 입자물리학자 사회와 협상하는 법을 배운다. 이제 영웅과 학생 사이의 명확한 구분선은 흐려졌다. 박사 후 과정 연구원은 이제 자신의 명성을 형성하기 시작하고 있다고 느낀다. 이제 더 이상 그들의 불안은 그들의 교수들에게 향해있지 않다. 그들은 이제 자신만의 의견을 형성하는 법과 동료들의 좋은 의견을 길러내는 새로운 방법을 배운다. 특히 그들은 자신의 작업이 다른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으로 여겨지도록 말하는 방법을 배운다.

 

이제 경력이 있는 물리학자들은 자신의 연구 동료가 해야 할 일들을 주의 깊고, 조심스럽고, 지속적으로 하기를 바란다. 대부분의 박사 후 과정 연구원들은 어떻게 자신의 연구그룹을 위해 아주 많은 양의 지루한 작업과 전혀 재미없는 아주 복잡하고 심각한 장애물들을 극복하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장비와 프로그램의 중요한 부분을 만들어냈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을 말한다. 그들은 주로 자신의 결과물에 대해서 아무런 인정이나 칭찬 없이 그들이 속한 그룹이 성급하고 욕심 부려 귀속시킨 것으로 생각한다. 그들은 더 이상 대학원생이 하듯이 주어진 일을 잘하는 정도로는 인정받지 못한다. 기술은 당연한 것이다.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들을 풍자적인 오락으로서 혹은 씁쓸함으로서 말한다. 경력이 있는 물리학자들은 그저 박사 후 과정 연구원들은 이런 상황과 함께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30]

 

미국의 경력 있는 그룹 구성원들 중 대부분은 박사 후 과정 연구원이 이런 재미없고 일상적인 일만 잘해서는 부족하다는 것을 공유한다. 독립적이고 위험한 작업도 수행해야한다. 지금까지 내가 아는 한 아무도 이것을 박사 후 과정 연구원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을 그것을 즉시 느끼고,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고강도 노동이 아무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발견하고, 나머지는 전혀 깨닫지 못한다.

 

독립적이고 위험한 작업은 박사 후 과정 연구원이 한 프로젝트에 대한 단독 책임을 얻는 데에 성공할 경우에만 수행할 수 있다. 권한은 즉시 부여되지 않는다. 이런 기회는 내가 한정된 시간과 예산 내에서 어떤 장애물이 있더라도 다른 누구보다 잘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확신한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서 얻을 수 있다. 이런 자기주장과 허세는 반드시 다른 사람들의 작업을 무시하는 행위를 수반한다. 누가 그 일을 했느냐에 관계없이 내가 평범한 일을 가려낼 수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미국에서 박사 후 과정 연구원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동료들에게서 시선을 돌리게 하고 나에게 집중시키는 적절한 방법, 그리고 경력이 있는 그룹 구성원들이 자신의 옹호자가 되게 하는 방법을 배운다. 사람들은 박사 후 과정 연구원에게 추진력, 헌신, 그리고 카리스마를 요구한다.

 

사람들이 원하는 자기표현의 이미지는 경쟁적이고, 거만하며, 표면적으로 순응하지 않는 사람이다. 두 저명한 물리학자들은 “영국인처럼 행동하고 유대인처럼 생각해야지 반대로 하면 안 된다”고 농담했다. 한 그룹리더는 자신이 하는 일의 타당성을 다른 사람에게 확신시키기 위해서는 강한 자신감을 가져야 하고 매우 “공격적으로” 행동해야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어느 정도 “개자식”이 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물리학자들의 아주 흥미로운 버릇들을 발견한 SLAC의 한 직원은 자신이 20년여 관찰한 결과 “퉁명스럽고 이해에 밝은 자식들”이 성공한다고 결론 내렸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이런 관점에서 연구소의 젊은 물리학자들이 성공하기에는 너무 친절하다고 지적했다. 박사 후 과정 연구원 지원자들의 추천서들은 지원자들의 성격이 조용하고 온화하더라도 그가 탁월한 물리학을 한다고 말한다. 다른 말로 하면 그것들은 지원자들이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하는 자질들이다. 이런 적절한 정신을 가지는 것은 매우 스트레스 받는 일이다. 그리고 이것은 많은 박사 후 과정 연구원들이 언급했다. 이런 성격을 만들고 싶지 않거나 만들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일에 헌신하는 진지한 물리학자로 여겨지지 않는다.

 

정리하면, 미국에서 경력이 있는 물리학자들은 좋은 물리학적 판단이 독립성과 관련되어 있고 이런 특성은 박사 후 과정 동안 그것에 장벽을 세움으로서 기를 수 있다고 가정한다. 박사 후 과정 연구원들은 장비 혹은 프로그램의 핵심 부분을 제작할 때 실제로 이런 장애물들을 뛰어 넘을 것으로 기대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일부는 천천히, 일부는 빨리, 일부는 전혀 깨닫지 못한다.) 이런 상황을 통해 박사 후 과정 연구원은 “섬세한 형식으로서의 불복종”을 [31] 요구받는다. 박사 후 과정 연구원들은 경력 있는 물리학자들의 명시적인 지침을 따르지 않고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놓음으로서 그들의 암묵적인 지침을 존중한다.





[그림] 위의 사진은 한 물리학 학회에서 초전도와 관련된 세션에 모인 사람들을 찍은 것이다. ( https://www.wired.com/2010/03/0318superconductivity-woodstock-physics/ ) 학회장 또한 면대면 의사소통이 매우 중요하면서 매우 흥미로운 공간 중 하나인데, 물리학자들은 발표를 하면서 자신의 연구로 이목을 끌기 위해 정보를 은폐하기도 하고 일부러 흘리기도 한다. 또한 질문을 통해 상대방의 헤게모니 장악에 저항하기도 하고 질문에 실패해서 잘 모르는 사람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꼭 학회가 아니더라도 학생들끼리 모인 자리에서도 서로 자신이 아는 것을 내놓아서 좌중을 압도하려는 '지식배틀'이 왕왕 일어나며 연구단위 내 미팅에서도 잘 모르면서 아는 척 질문을 하는 무의미한 의사소통이 벌어지기도 한다. 정말 우스운 점 중 하나는 정보통제가 매우 엄격한 것 같아도 잘 몰라서 질문을 한다는 느낌으로 상대방을 살짝 띄워주면서 물어보면 자신이 아는 정보를 줄줄 내놓기도 한다는 점이다. 결국 이렇게 발화 스타일에 치중해서 유의미한 논의를 구분하는 남성중심문화에서 형성된 지식은 삶 전체를 조망하고 조직하는 일관적인 '태도'로서가 아니라 정체성과 자기서사를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인 '패션지식'으로서 기능한다. 또한 이런 과정 속에서 사회적 '정상성'을 획득하지 못해 동등한 구두 논의 상대가 되지 못하는 여성, 유색인종, 성소수자, 장애인 등을 포함한 소수자들은 스터디, 미팅, 공동작업과 같은 기회에서 배제되고 지식 생산 시스템의 중심부로 진입하는 것이 좌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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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향수는 역사적 의식의 한 형태이다. Dean MacCannell, The Tourist: A New Theory of the Leisure Class (NewYork: Schocken Books, 1976), p. 3, 에 따르면 향수는 진보의 정신에서 핵심적인 요소이다. “근대의 진보는 (중략) 바로 그 불안정성과 허구의 감각에 기대어있다. 근대에서 현실과 진실성은 다른 어떤 역사적 시기에서 보다 순수하고 단순한 삶의 양식으로 여겨진다. 다시 말해, 근대의 ‘자연스러움’, 그들의 향수, 진실성에 대한 탐구는 단순히 가벼운 것이 아니라 어떤 의미로 퇴폐적이고, 비록 무해하지만, 파괴된 문화와 죽은 시대에 대한 기념품에 대한 애착이다. 그것들은 또한 근대의 정복자 정신의 한 요소, 즉 통일 의식의 근거이기도 하다.” Paul Fussell, The Great War in Modern Memory (London: Oxford University Press, 1975) 는 개인이 가진 과거에 대한 기억은 사회적으로 구성된 개인이 겪은 경험과 크게 관련이 없는 집합적 내러티브에 의해서 형성된다고 주장했다. 검출기에 대한 이야기들은 성공사례이다.

[30] 미국 문화에서 명성에 대한 협상은 다음을 참고하라. Erving Goffman, The Presentation of Self in Everyday Life (Garden City, N.Y.: Double day Anchor Books, 1959).

[31] Professor Donald T. Campbell, Syracuse University, personal communication, April 14,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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