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인-무브

다섯 번째 엽서 

- 원-에크리튀르와 그것을 둘러싼 논쟁의 실마리를 찾아서 -

 

최 원 | 독립연구자


안녕하세요? 먼저 지난달에 제가 당신께 엽서를 쓰지 못한 점에 대해 사과를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새로 학기가 시작된 데다가 몇 가지 개인적인 사정이 겹치면서 그렇게 된 것이니 너그럽게 용서해주셨으면 합니다. 될 수 있는 대로 매달 한 장의 엽서를 보내드리고 싶지만 때로는 그렇게 하지 못할 수도 있는데, 그런 일이 생기면 그냥 바쁜가보다 또는 아직 생각이 덜 정리 되었나보다 여기셨으면 합니다. 오늘은 지난번에 말씀드린 대로 데리다의 원-에크리튀르에 대한 저의 이해를 간략히 말씀드리면서 거기에 기초해서 데리다와 알튀세르 사이의 쟁점 하나를 제기해보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 

저는 데리다의 에크리튀르를 글쓰기 또는 문자언어라고 옮기는 것이 온전히 적합한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주지하다시피 데리다는 통상적 의미 또는 협소한 의미의 에크리튀르와 훨씬 더 광범위한 사정을 갖는 원-에크리튀르(archi-écriture)를 나누지요. 우리가 흔히 음성언어의 문자적 기록이라고 부르는 것이 전자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면, 인간적 영역을 초과하는 범위를 갖는 일체의 ‘흔적’이야말로 후자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원-에크리튀르를 인간의 문자언어로 한정하여 이해하는 것(그것이 설사 표의문자나 상형문자를 포함한다고 해도)은 애초에 데리다의 취지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요. 데리다는 서양 형이상학적 기획의 핵심이 에크리튀르를 원-에크리튀르가 아닌 협소한 의미의 에크리튀르로 한정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것을 (음성언어에 대해) 부차적인 것, 파생적인 것으로 폄하하는 데에 있다고 말하기에 더더욱 그렇습니다. 

흔적의 이와 같은 지우기가 플라톤으로부터 루소와 헤겔에 이르기까지 협소한 의미에서의 에크리튀르로 향했다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의 전위인데, 우리는 이제 아마 이 전위의 필연성을 지각하고 있는 것 같다. 에크리튀르는 흔적 일반의 대표자(représentant)이지 흔적 자체는 아니다. 흔적 자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이하 DLG), 294쪽, 번역은 수정) 

그런데 이렇게 말해 놓고 보니, 이번엔 또 제가 원-에크리튀르를 너무 확장해서 이해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동시에 듭니다. 물론 이런 확장이 데리다 자신의 의도였다고 볼 수 있는 구절들을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에서 찾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컴퓨터의 기계언어는 물론, 생명체의 DNA, 심지어 빗방울이 땅위에 후드득 떨어져 생겨나는 먼지와 얽힌 자국조차 원-에크리튀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후자의 경우 어떤 인간도 필요치 않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할지라도, 아니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런 식의 확장은 우리가 원-에크리튀르 개념의 종별적 내용을 파악하는 데에 있어서 곤란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자연 안에 존재하는 관계가 모두 데리다가 말하는 흔적일진대, 왜 우리는 그 흔적을 글쓰기 또는 문자언어 따위에 연관된 원-에크리튀르라고 불러야 하는 걸까요? 왜 우리는 에크리튀르를 그 흔적의 “대표자”라고 여겨야 하는 걸까요? 그것이 단지 하나의 대표자에 불과하다면, 다른 대표자가 또 있을 수 있다는 말일까요? 예컨대 (자연 안에 존재하는 관계를 지칭하는 또 다른 용어인) 인과성 내지 인과관계는 그러한 흔적의 대표자가 될 수 없는 것일까요? 왜 에크리튀르는 다른 대표자들보다 더 나은 대표자로 여겨져야 하는 것일까요? 결국 이는 전에 살펴봤듯이 데리다가 그라마톨로지를 객체 자체에 대한 이론화라기보다는 주체와 객체의 사이-공간에 대한 이론화로서의 현상학의 ‘연장’이라고 본다는 것과 관계된 것은 아닐까요? 후설이 말하는 바의 “초월적 경험”이라는 것이 그라마톨로지가 탈구축적인 방식으로 재이론화하고자 하는 것이라면, 과연 원-에크리튀르라는 것을 인간적 현실과 완전히 분리된 사정을 갖는 어떤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 가능한가 한 번쯤 자문해 보는 것이 영 엉뚱한 일은 아닐 것 같습니다. 

그런 연유로, 저는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를 읽어나가는 동안 당신께 조금 다른 해석을 제안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약간 과감한 해석이니만큼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저는 데리다가 말하는 원-에크리튀르를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규정하듯이 ‘문자’라고 파악하기 보다는 우선은 ‘그림’이라고 파악해 보면 어떨까 합니다. 제가 여기서 ‘우선은’이라고 말한 까닭은 원-에크리튀르가 그림으로 환원된다고 주장하지는 않으면서도 그것을 그림이라고 생각해보는 것이 그 종별적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는 상당히 효과적이라고 시사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문자를 논하고 있는데 그림을 말하다니, 이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리냐’ 하는 말씀을 하실 것도 같은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게 그렇게까지 터무니없는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을 당신도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제가 떠올리는 것 가운데 하나는 태곳적 이른바 “원시인들”이 동굴에 옹기종기 모여 불을 지펴놓고 고픈 배를 움켜쥔 채 그날 실패한 사냥에 대해 기억하면서 동굴 벽에 자신들이 놓친 짐승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는 모습입니다. 이때 원시인들은 아직 어떤 언어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고 가정합시다. 실제로 그랬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그렇게 한 번 가정해 보자는 것이지요. 언어가 없다고 해서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것은 아니니 말입니다. 그런데 원시인들이 협소한 의미의 에크리튀르(곧 문자언어)는 물론 음성언어를 갖기 전에(또는 음성언어와 상관없이) 그릴 수 있었던 이 그림이야말로 어쩌면 일종의 원-에크리튀르라고 부르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가령 신석기 시대 토기의 표면에 어떤 사람이 그어놓은 것으로 보이는 단순한 빗살무늬의 선들은 어떨까요? 데리다는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에서 레비스트로스가 남비콰라족 사람들을 연구하며 경험했던 ‘비상한 사건’에 대해 그가 주었던 해석을 비판적으로 검토하지요. 이 비상한 사건이란 레비스트로스가 아직 글쓰기를 모른다고 간주하는 남비콰라족 사람들에게 종이와 연필을 나누어 주었을 때 벌어졌던 일을 말하는데, 그 원주민들은 종이와 연필을 받아들자 얼마 안 있어서 모두 선을 긋는 일에 몰두했다고 합니다. 레비스트로스는 이를 두고 이렇게 평가하지요. 

그들[남비콰라족 사람들]은 그들이 보았던 우리들의 유일한 비망록 사용법, 다시 말해 글쓰기를 모방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글쓰기의 목적과 중요성은 이해하지 못한 채였다. 게다가 그들은 글쓰는 행위를 이에카리우케듀투(iekariukedjutu), 즉 ‘선을 긋는 것’이라 불렀다. 이것은 그들에게 미학적 관심을 나타냈다.”(레비스트로스, <슬픈열대> - DLG 222~223쪽에서 재인용) 

이에 대해 데리다가 제기하는 반론 중 하나는 이런 선긋기가 반드시 미학적인 것으로서만 해석될 이유가 어디에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미 하나의 에크리튀르 또는 글쓰기라는 것이지요. 데리다는 이 선긋기가 “사람이나 원숭이를 보여 주는 표상적 그림들”일 뿐 아니라 “어떤 계보나 사회 구조를 묘사하고 설명하고 적는 도식들”이라고 말하면서, “이것이야말로 결정적인 현상”이라고 지적합니다. 그리고 데리다는 이를 원-에크리튀르로부터 통상적 의미 또는 협소한 의미의 에크리튀르(문자언어)로의 ‘이행’의 문제와 연관시킵니다. 폴리네시아의 주민들이 가진, 수십 세대의 족보들을 암송하는 능력은 놀랍지만 거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는 레비스트로스의 진술을 인용한 후에 데리다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데 에크리튀르―통상적 의미에서―가 나타날 때 도처에서 극복되는 것이 바로 이 [암송의] 한계다. 여기서 이 에크리튀르의 기능은 보존하는 것이고 족보적인 분류에 또 다른 차원에서 보충적인 객관화를 부여하는 것이다. [...] 우리는 여기서 원-에크리튀르로부터 통상적 의미의 에크리튀르로 넘어간다. 우리가 그 어려움을 과소평가하고 싶지 않은 이 이행은 말하기(parole)로부터 에크리튀르로의 이행이 아니다. 그것은 에크리튀르 일반의 내부에서 이루어진다. 족보적 관계와 사회적 분류는 언어(이른바 구어)와 통상적 의미의 에크리튀르의 조건인 원-에크리튀르의 봉합점인 것이다. (DLG 225쪽, 번역은 수정, 강조는 인용자) 

따라서 우리는 그림이 어떤 사물에 대한 단순한 표상 또는 재현을 넘어서서 그 안에 족보적 관계와 사회적 분류의 내용을 담아내기 시작할 때 원-에크리튀르로부터 협소한 의미의 에크리튀르(이른바 문자언어)로 이행하게 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음성언어를 받아 적는 일과는 원칙적으로 아무 상관없는 그림은 적어도 인간적 영역 안에서 찾아낼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에크리튀르, 곧 원-에크리튀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지요. 

제가 이렇게 원-에크리튀르의 가장 탁월한 예로서 그림에 주목하는 것은 물론 상당히 의도적인 것입니다. 제 의도가 얼마나 정당한 것인지는 더 따져봐야 할 문제입니다만, 어쨌든 저는 원-에크리튀르를 무엇보다 그림이라고 파악함으로써 그것을 다름 아닌 ‘상상’(the imaginary 또는 imagination)과 관련시키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완전히 자의적인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데리다는 루소의 텍스트에 나타나는 “대리보충”의 논리를 상상에 적극적으로 접근시키기 때문이지요. 

루소가 말하는 “위험한 대리보충”은 <에밀>에 등장하는 표현으로 그것은 루소가 처음 여성과 성관계를 맺었던 이태리에서 돌아온 후 그가 시작한 자위행위(masterbation)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자위행위는 여성과의 성행위의 대리보충인 것이지요. 여기에 데리다는 또 다른 루소의 텍스트인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에 등장하는, “자기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자기 건강을 희생시키면서 대지의 중심에서 실제적인 재물들 대신에 상상의 재물들을 찾으러” 가는 사람의 경우를 연관시킵니다. 그러면서 데리다는 이렇게 말하지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상상의(imaginaire)’라는 말이다. 모성적 ‘자연을 기만하는’ 대리보충은 에크리튀르처럼 작동하며, 에크리튀르처럼 삶에 위험하다. 그런데 이 위험은 이미지의 위험이다.”(DLG 268쪽, 번역은 수정) 

상상이 루소의 논의에서 가지고 있는 중심적 지위를 강조하기 위해 데리다는 연민이라는 정념이 인간 안에서 깨어나게 되는 과정을 매우 주의 깊게 재구성하여 보여줍니다. 루소에게 있어서 연민은 “각각의 개인에게서 자기 사랑(l'amour de soi-même)의 행위를 조절하면서 종 전체의 상호 보존에 기여하는 자연적 감정”(DLG 304쪽에서 재인용)으로 인간이 서로에게 “괴물”이 되지 않을 수 있게 해주는 자연적 덕목이지만, 루소 자신에 따르면 그것은 다른 동물들도 일정하게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단 다른 동물들에게서 그것은 잠재적인 상태로만 존재하고 있으며 인간의 경우처럼 활성화되어 있지 못한데, 인간이 그런 연민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힘은 바로 그가 가진 상상의 능력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데리다는 이렇게 말하지요. “[루소에게] 그것이 없다면 ‘인간의 마음에 자연적인’ 이 연민이 잠들어 있고 ‘비활성화’되어 있을 그것은 이성이 아니라 ‘연민을 작동시키는’ 상상이다.”(DLG 319, 번역은 수정) 따라서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구별되는 것은 루소에 따르면 이성이 아니라 상상 덕분인데, 이런 상상은 인간을 진보시키고 역사를 가동시키며 인간이 완성 가능성(perfectibilité)을 가질 수 있도록 함으로써 인간을 자유로운 존재로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상상 = 완성 가능성 = 자유’인 것이지요. 여기에 하나가 덧붙여지는데요, 그것은 바로 ‘죽음’입니다. 루소에 따르면 다른 동물들은 고통은 알지만 죽음은 알지 못합니다. 인간만이 죽음을 아는데, 왜냐하면 인간만이 죽음을 ‘상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데리다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대리보충적 시리즈를 따라서 이동하게 되면, 상상이 죽음의 예상과 동일한 의미작용의 연쇄에 속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상상은 그 본질상 죽음과의 관계이다. 이미지는 죽음이다. 그것은 우리가 다음과 같이 규정하거나 비규정(indéfinir)할 수 있는 명제이다: 이미지 하나의 죽음이다, 또는 죽음이란 하나의 이미지이다. 상상은 삶의 재-현을 통해 스스로를 변화(affecter)시키는, 삶을 위한, 힘이다. 이미지가 재-현하고 표상되는 것에 표상을 첨가할 수 있는 것은 표상되는 것의 현전이 세계 속에서 이미 자기 위에서 구부러지는 한에서만, 또 삶이 마치 그 자신의 결핍을 가리키듯이, 그 자신의 대리보충의 요구를 가리키듯이, 스스로를 가리키는 한에서만 가능하다. 표상되는 것의 현전은 이미지라는 이 무(無), 자기 자신의 표상과 자신의 죽음 속에서의 자신의 탈영유의 징조인 이 무를 스스로에게 첨가한 덕분에 구성된다. 주체의 고유성은 이와 같은 표상적/재현적 탈전유의 운동에 불과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상상은 죽음과 마찬가지로 표상적/재현적이고 대리보충적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러한 성질들이 바로 루소가 에크리튀르에 분명하게 인정하고 있는 성질들이라는 점이다. (DLG 322~323쪽, 번역은 수정) 

여기서 데리다가 상상을 죽음과 밀접하게 관련시키고, 그것을 다시 에크리튀르에 연결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데리다에게 에크리튀르는 무엇보다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삶, 다시 말해서 살아있는 현전을 구성하는 데에 필수적으로 보충되어야 하는 죽음이자, 다시 그렇게 구성된 삶에서 떨어져 나와 여전히 홀로 기능하며 돌아다닐 수 있는 죽음이지요. 마치 에크리튀르가 초월적이거나 기원적인 의미의 구성을 위해 반드시 포함되어야만 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그렇게 구성된 의미로부터 떨어져 나와 산종될 수 있는 것인 것처럼 말입니다. 대리보충의 논리, 에크리튀르는 기원에의 보충이자 기원을 변질시키는 기원의 대체물이기도 하다는 그 논리는 죽음과 떼려야 뗄 수 없이 연결되어 있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원-에크리튀르가 상상으로 환원될 수 있다고까지 말할 수는 없을지라도 그것과 상당히 겹칠 수 있으며, 특히 인간적 현실에 있어서는 그 양자가 사실상 등가적인 것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우리는 지난번에 현상학에 대해 논하면서 후설은 칸트적 인식론의 두 극인 개념과 직관 가운데 직관을 근본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고 개념을 파생적인 것이라고 본다는 말을 했습니다. 직관 안에는 이미 어떤 범주(내 눈 앞에 있는 ‘이 고양이’ 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발견되는 어떤 ‘고양이-적임’)와 같은 것이 담겨있으며 개념이란 단지 이를 가공하여 2차적으로 생겨나는 것일 뿐이라는 것이 후설의 생각이지요. 주지하다시피 칸트의 인식론의 두 극 사이에서 매개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상상 또는 상상적 도식(imaginary schema)인데요, 제가 보기에 후설이 말하는 범주적 직관 또는 직관적 범주는 이 상상적 도식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 도식이 가공되어 어떤 필연적이고 객관적인 법칙성으로까지 확립될 때 칸트가 말하는 바의 개념이 되는 것인데, 이렇게 놓고 보면 다음과 같은 데리다의 말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따라서 [루소에게서] 상상과 시간성은 개념과 법칙의 지배를 연다. 우리는 이미 루소에게 개념―그는 이것을 비교(comparaison)라고도 부를 것이다―은 시간으로서 실존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DLG 334쪽, 번역은 수정)

그런데 바로 이 대목에서 저는 (이것이 용기인지 만용인지는 모르겠지만) 또 하나의 과감한 해석을 당신께 제안하고 싶습니다. 만일 원-에크리튀르가 (적어도 인간적 현실에 있어서) ‘상상’과 등가적인 것이라고 한다면, 원-에크리튀르라는 것은 알튀세르의 입장에서 보면 정확히 ‘이데올로기’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 개념은 다름 아닌 상상을 가리키고, 이론적으로는 특히 스피노자가 제1종의 인식이라고 분류한 상상 개념에 준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각주:1] 조금 충격적인가요? 사실 저 자신이 이런 생각에 이르게 되면서 상당히 놀랐었는데요, 어쨌든 제가 보기에 알튀세르의 용어법 내에서 원-에크리튀르는 곧 이데올로기라는 말이 성립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마 당신은 제가 왜 갑자기 여기서 상상으로서의 이데올로기의 문제를 꺼내는지 의아해 하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데리다가 탈구축-재구축하려는 후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직관 및 상상과 과학적 인식 간의 관계였기 때문입니다. 알튀세르도 정확히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요. 하지만 양자는 그 둘의 관계를 완전히 대립적인 방식으로 파악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알튀세르에게 이데올로기는 바로 과학 또는 과학적 개념이 거기에서 어떤 인식론적 절단(epistemological break)에 의해 출현하는 장소를 이루는 것이지요. 바꿔 말해서 과학은 이데올로기 내에서 생산되는 인식론적 절단의 효과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과학은 이데올로기 바깥에서 생산되는 것이 아니라 이데올로기 안에서 생산되는 것이지만, 동시에 그것은 이데올로기로부터 불연속의 지점을 만들어 냄으로써 생산되는 것이기에 이데올로기로 환원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 한 가지 논점을 덧붙이자면 모든 과학은 항상 어떤 특정한 이데올로기로부터의 절단을 통해 생산되지만, 이데올로기 전체로부터의 절단을 이룰 수 있는 과학적 인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알튀세르가 주장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지난번에 후설이 자신의 철학적 작업을 통해 달성하려고 했던 것이 과학의 직관적 또는 경험적 기초를 해명하는 것이었으며, 그런 해명을 수행하는 학문으로서의 현상학을 ‘과학들의 과학’으로 정초하는 일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이를 위해서 후설은 칸트의 초월적 범주들에 대한 분석이 정적인 분석(static analysis)에 머물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그 초월적 범주들의 발생을 추적하는 발생론적 분석(genetic analysis)을 행해야 한다고 주장했지요. 후설에 따르면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의 A판(제1판)에서는 직관에서 출발하여 상상을 매개로 개념으로까지 나아가는 모종의 발생론적 분석을 시도했지만, 곧 어떤 곤란(아마도 그런 설명이 자신이 논박하고자 하는 경험론과 너무 흡사해 보인다는 곤란)을 경험하면서 B판(제2판)에서는 초월적 개념 및 초월적 주체의 통일성을 미리 전제한 채 거기에서 출발해서 직관으로 내려가는 설명방식을 도입하면서 발생론적 분석을 포기합니다. 여기서 후설은 말하자면 우리가 A판으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곧 A판의 발생론적 분석을 비판적으로 재구성하고 완성함으로써 과학적 인식의 직관적 기초를 밝혀낼 수 있어야 한다고 봤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후설에게 있어서 과학적 인식이란 직관의 연속, 곧 직관에서 이미 달성되는 ‘의미’의 발전 또는 전개라고 이론화됩니다. 후설이 이런 식의 이론화를 시도했던 것은 당시 유럽의 과학이 위기에 처해 있다고 판단하고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과거에 과학이 발생했던 시기에 형성된 기원적 의미로 우리가 되돌아가 그것을 충분히 탐구함으로써 새로운 과학적 인식으로 나아갈 수 있는 추동력을 얻어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기하학과 관련해서는 피타고라스가 자신의 정리를 발견한 바로 그 시기로 돌아가 그 과학적 정리의 의미가 형성되도록 만든 삶-경험(lived experience) 또는 문화적 지평을 사유하고 이해해야 한다고 봤던 것이지요. 이런 관점에서 보면 과학은 전과학적인 삶-경험 또는 문화에서 이미 형성된 의미의 이론화이지 그것과의 단절이 아닙니다. 과학은 이데올로기와의 단절로 정의되기는커녕 이데올로기적 의미를 오히려 일반화하고 법칙화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것이지요.

우리는 이제 하나의 뚜렷한 쟁점이 생겨나는 것을 보게 되는데, 이는 사실 현대철학을 관통하는 거대한 논쟁(들)이 걸려 있는 매우 심각한 쟁점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는 대륙철학과 분석철학(영미철학)의 분기뿐만 아니라 대륙철학 내의 분파들 사이에서의 또 다른 분기가 걸려있는 엄청난 논쟁인데요, 우선 대륙철학과 분석철학이 갈라지게 되는 결정적 계기를 살펴보면 그것은 1929년에 스위스의 다보스에서 열린 철학학술대회에서 (문화와 예술을 강조했던 Southwest 신칸트 학파에 속한) 하이데거와 (과학을 강조했던 Malburg 신칸트 학파에 속한) 카시러가 했던 논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논쟁이 벌어지고 난 후 몇 년 안 돼서 말부르크 학파의 소장학자였던 카르납이 하이데거를 맹렬하게 비판하는 논문을 쓰면서 두 철학적 전통이 완전히 갈라서게 되었던 것이지요. 아시다시피 이런 분기는, 그것을 극복하려는 산발적인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오늘날의 철학계를 두 개의 거대한 진영으로 나누어 놓고 있는 근본적인 분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쟁점이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칸트의 해석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하이데거가 직관에서 상상을 거쳐 개념으로 나아가는 A판의 설명을 특권화했다고 한다면, 카시러와 카르납은 개념에서 출발하여 직관으로 나아가는 B판의 설명을 특권화했습니다. 이 때문에 (하이데거에서 출발하는) 대륙철학은 근본적으로 주체의 수용성(receptivity)을 강조하고 결국 미학적인 성격을 갖는 판단인 반성적 판단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면(따라서 이 전통에서 중심적인 텍스트는 <판단력 비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분석철학은 근본적으로 주체의 자발성(spontaneity)을 강조하고 과학적인 성격을 갖는 판단인 규정적 판단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이데거 자신은 과학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으며 오히려 근대의 과학적 사고를 서양에서 진행된 존재망각이 초래한 하나의 극단적 결과라고 보면서 근대 사회에서의 과학기술주의의 지배를 맹비난했던 것으로 유명하지요. 하지만 하이데거가 A판의 설명을 중시하면서 직관 및 상상을 특권화했던 것은 기본적으로 그의 스승인 후설에게서 연원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후설 자신이 여전히 과학의 문제에 매달리면서 현상학을 ‘과학들의 과학’으로서 수립하려고 했다면 하이데거는 오히려 존재 및 예술의 문제에 매달리면서 현상학을 ‘미학의 미학’(Aesthesis of aesthesis)으로서 수립하려고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반면 분석철학은 철학적 언어에서 모든 형이상학을 몰아내고 그것을 과학에 적합한 논리적으로 투명한 언어로 재구성하려고 했다고 볼 수 있지요. 분석철학은, 초월적 개념들의 통일성은 이미 선험적으로 주어져 있으며(B판에서 사고되듯이) 이것이 모든 과학적 사유의 기초라고 봤던 것입니다. 

이런 대륙철학 대 분석철학의 논쟁에 추가해야할 논쟁은 앞서 말씀드렸듯이 대륙철학 내에서의 논쟁입니다. 하이데거, 사르트르, 메를로퐁티로 이어지는 현상학적 전통에 맞서서 구조주의적 노선이 이미 1940년대에 자라나왔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것이지만, 우리의 맥락에서 더 중요한 것은 구조주의적 노선으로 단순하게 환원될 수 없는 프랑스의 과학적 인식론 전통의 출현입니다. 바슐라르, 카바이예, 캉길렘, 알튀세르로 이어지는 전통이 그것이지요. 제가 보기에 이 프랑스의 과학적 인식론은 분석철학과 같이 과학적 개념들의 논리적 통일성을 전제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의 출현 과정을 추적하고 분석한다는 점에서 분명 A판의 설명 방식의 장 안에서 사유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지만, 과학적 개념의 기초를 직관이나 상상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들로부터의 불연속적인 단절에서 찾는다는 점에 그 특징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이들의 인식론은 과학의 직관적 기초를 강조하는 후설의 발생론에 대한 ‘비판’의 성격을 갖는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지도 그리기를 한 후 그 안에서 데리다가 서있는 곳을 살펴보면 우리는 데리다와 알튀세르가 각각 다른 진영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됩니다. 데리다가 후설에서 시작된 현상학적 전통 안에서 그것을 비판적으로 재구성하려고 했다면, 알튀세르는 그러한 현상학적 전통 밖에서 그것을 비판하는 입장을 취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지요. 우리는 다음번에 후설의 <기하학의 기원>이라는 논문에 대한 데리다의 비판적 <소개>를 논하면서 데리다가 과학의 과학으로서의 후설적 현상학을 어떻게 탈구축적으로 읽어내려고 했는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사실 이 부분은 저도 더 준비를 해야 하는 부분인데요, 그래서 어쩌면 다음 번 엽서가 생각보다 늦어질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는 말씀을 미리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어쨌든 엽서가 너무 늦어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씀을 드리며 오늘은 이만 이 어지러운 생각들이 가득 담긴 글을 줄일까 합니다. 

그럼 또 뵙지요.

 

2017년 10월 30일 

최 원 드림

 




  1. 스피노자는 인식을 세 가지 종류로 나누고 그것들을 제1종의 인식, 제2종의 인식, 제3종의 인식이라고 부르지요. 이 가운데 제1종의 인식이 바로 상상인데, 그것은 저 세 가지 인식 가운데 유일하게 부적합한 인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제2종의 인식은 지성(understanding)에 해당하는 것으로 그것은 원인에 의한 인식이라는 점에서 적합한 인식이지요. 제3종의 인식을 스피노자는 ‘직관지’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어떤 개체의 독특한 본질을 파악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상상은 스피노자에게 있어서 부적합한 인식이지만, 단순한 오류(따라서 적합한 인식이 성취될 때 사라지는 것)가 아니라 여전히 그것이 갖는 물질성을 통해 우리를 규정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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