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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사전 1: 쓰레기에서 시체까지

 

 

오스타프 슬리빈스키 

서문 및 번역: 이종현 | 서교인문사회연구실 회원

 

 

친러냐 반러냐, 전쟁 지지냐 반대냐, 미국이냐 러시아냐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목소리는 어디서 들을 수 있을까? 우크라이나의 시인들이 쓴 시를 찾던 중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는 글을 찾게 되었다. 리비우에 사는 시인 오스타프 슬리빈시키(Остап Сливинський)가 페이스북에서 진행하는 '전쟁 사전(Словник війни)'이라는 프로젝트다. 일상의 단어들이 전쟁이 일어나면서 어떤 의미와 일화를 지니게 되었는지, 전쟁의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으고 기록하는 작업이다. 페이스북에서 #Словниквійни라는 해시태그로 검색하면 이런저런 사람들이 올린 '전쟁 사전'의 항목들을 볼 수 있다. 우선 다음 사이트에 올라온 항목들부터 우리말로 옮겨보고자 한다. (일러스트레이션이 좋아서 사이트 운영자의 허락을 미처 구하지 못한 채 가져왔다.) Словник війни: від сміття до складу (chytomo.com) <전쟁 사전>의 일부는 영어로 번역되기도 했다. A war vocabulary: Displaced Ukrainians share fragmented stories of loss, trauma, and absurdity (documentjournal.com)

 

아직 우크라이나어가 서툴어서 조금씩 올리려고 하니 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구한다. 

 

 

 

1943년 나치가 점령한 바르샤바에 머물고 있던 폴란드의 시인 체스와프 미워시는 세계. 순진한 시들이라는 제목의 연작을 썼다. 연작에 포함된 대부분의 시들은 단순한 단어들에 대한 설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불안’, ‘사랑’, ‘희망’, ‘쪽문’, ‘현관’, ‘등등. 전쟁은 단어들의 의미를 변화시킨다. 어떤 의미들은 무뎌지는 바람에 돌에 칼을 갈 듯 날카롭게 만들 필요가 있다. 반대로 어떤 의미들은 아주 날카로워져서 감히 바라보기도 어려울 정도다. 또 어떤 의미들은 대체로 소멸하고 침전한다. 어떤 의미들은 과거에서 떠오르기도 하고 다시 무언가를 가리키기 시작하며 중요한 것이 되기도 한다.

 

나는 그런 의미들을 모은 전쟁의 작은 사전을 만들어 보려고 한다. 그러나 이것들은 내가 쓰는 시 또는 텍스트가 아니다. 이것들은 다른 사람들이 말한 독백의 단편들로서, 내가 이 힘겨운 나날 동안 들었던 것들, 아마도 듣게 될 것들이다. 약간의 문학적 가공이 들어갈 수도 있다. 또 몇몇은 러시아어에서 옮긴 것일 수도 있다.

 

전쟁이 계속 되면서 동쪽을 떠나 서쪽으로 몰려드는 궁핍한 피난민들이 거쳐 가는 르비우의 기차역에서, 임시 대피소에서, 길거리에서, 커피 스탠드 근처에서 사람들은 이야기를 한다. 이따금 스스로 먼저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이따금 세심하게 말을 걸어 이야기를 하게끔 해야 하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멈추기 어려운 어떤 파도가 터져 나온다.

 

여기에 모은 많은 이야기들은 내가 받아 적은 것이 아니라 나의 공동저자들, 저 자신도 이 전쟁의 참가자이자 증인들인 사람들이 적은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다른 사람들에게서 들었던 그들 개인의 역사이며 슈제트이다. 오늘 나의 공동저자들은 다음과 같다. 안나 프로추크, 예브겐 클리마킨, 옥사나 쿠릴로, 드미트로 트카추크, 보흐다나 로만초바, 올렉산드르 모차르, 스타니슬라우 투리나, 라리사 데니센코, 빅토리야 체르냐히프스카, 카테리나 예고루시키나, 아리나 레페튜흐, 비올레타 테를리가.

 

이제, 읽어보자. (오스타프 슬리빈스키)

 

 

 

 

쓰레기 Сміття

카테리나, 비시고로드

 

“224. 러시아 헬리콥터들이 창문 아래로 막 날아지나갔고 포탄이 떨어졌다. 나는 여기서 나가야 한다. 쓰레기를 내다버려야 한다.

유기물 쓰레기가 든 봉투를 집었다. 플라스틱, 유리, 포장지가 든 쓰레기봉투들도 가져가야 할까? 아니면 이 전쟁의 혼돈 가운데 모든 걸 다 섞어야 할까? 깨끗하게 씻은 요구르트병, 물이나 술을 담았던 병, 아이들의 색칠놀이 책...

내가 나의 집, 나의 도시를 버린다면 그것들도 쓰레기가 되지 않을까?

이런 것들을 생각할 권리가 내게 있긴 한 걸까?”

 

 

마들렌 Мадленка

보흐다나, 키이우-리비우

 

원조물품으로 마들렌 여러 개를 받았는데, 마들렌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Madeleine.” 꼼꼼하게 개별 포장되어 있다, 각자에게 자신만의, 개인의 마들렌이 돌아갈 수 있도록. 우리는 마들렌을 아이들에게 준다, 내게 이것은 상징적인 행위다. 저마다 미래에 존재할, 자신만의 콩브레 한 조각 씩 챙긴 셈이다. 그렇게 공동 기억의 무게가 제자리를 잡게 된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의 도시들을 지키고, 탐욕스러운 점령자는 도시들을 파괴하지 못하게 된다.” 

 

 

 

 

정적 Тиша

울랴나, 리비우

 

인형극장은 피난민들을 위한 대피소가 되었다. 우리는 매트리스를 무대에, 홀에, 객석에 늘어놓았다. 처음 며칠 동안 아이들과 동물들을 데려온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꼬박 이틀 동안 그들은 말없이 매트리스에 누워있었다. 나는 그렇게 많은 아이들과 동물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한 곳에 모여 있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시간이 더 흘러서야 그들은 생기를 되찾았다.

그러나 그 정적을 잊을 수 없다. 무서운 것이었다.”

 

 

편지 Листи

니나, 코노토프

 

난 기억에 대해 자주 생각하는 편이다. 우리는 우리의 뇌가 어떤 능력을 지녔는지 잘 모른다.

남편은 지질학자였고 전 연방에서 이름을 날렸다. 그는 자주 여러 달 동안 극지방에 머물렀고 그곳에서 내게 편지를 썼다. 그럴 때면 그는 편지지 대신 엽서를 보냈다. 마흔 세 통의 엽서가 모였다. 나는 벙커로 가기 위해 가방을 싸면서 한 통도 빠짐없이 편지들을 챙겼다. 어떤 사람은 책들을 챙겼다지만 나는 편지를 챙겼다. 혼자서 읽을 참이었다. 그러나 그곳은 불빛이 너무 어두워서 편지를 읽을 수 없었고, 나는 그냥 편지를 손에 들고 그 내용을 가만히 떠올려 보았다. 이미 오랫동안 다시 읽지 않았지만 기억 속에서 편지의 내용은 생생했다.

편지들의 내용을 모조리 회상하고 나서는 머릿속으로 답장을 써보았다. 말하기 부끄럽지만 나는 남편에게 자주 답장을 보내지 못했다. 그나마 보낸 답장도 대체로 짧았다. 이번에는 길고 아름다운 답장을 썼다. 그러나 전쟁에 대해서는 이야기 하지 않았다, 공습대피소에 대해서도. 그곳에 있는 남편에게 전쟁 이야기가 무슨 필요 있겠는가? 그저 올 겨울은 대단히 오래 지속되고 있다고만 이야기했다.”

 

 

시체 Труп

율리야, 드니프로

 

우리는 피난용 좌석버스, 그러니까 인터시티 같은 버스를 타고 리비우로 가고 있었다. 우리 옆에 여자가 앉았는데, 그녀에게는 다리와 등이 있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오랫동안 앉아있지 못했다. 그녀는 짐을 바닥에 두고는 바닥에 누워 머리가 달린 무언가를 뒤집어썼다. 길을 계속 가다보니 유난히도 우리 버스에 사람이 적다는 것이 눈에 띄었다. 담배를 피려고 정류장에서 잠시 내렸을 때 모든 것이 밝혀졌다. 다들 우리 버스가 시체를 싣고 가고 있고, 그래서 아무도 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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