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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과 시간 속에서 움직이는 몸처럼" 디자인을 수행하기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이론과 실제: 카지미르 말레비치와 그의 학파> 서평

(저자|타티야나 고랴체바  역자|박종소  감수|김용철  편집|이은재, 김깃  디자인|신신, 인현진

마케팅|프랭크 유통연구소)

 

 

정지영 | 디자이너.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세미나회원

 

 

지금까지 그래픽 디자인사는 영국 산업혁명을 배경으로 한 윌리엄 모리스의 미술공예운동(1850)을 시작으로 프랑스 아르누보-아르데코(1900년 전후), 네덜란드 데-스틸(1910년대), 독일 바우하우스(1919~30년대), 미국 울름조형대학(1950년대)으로 이어진다. 미술에서 아방가르드 연구도 프랑스 다다이즘(1910년대)과 초현실주의(1920년대), 그리고 1930년대 이후 초현실주의가 미국으로 옮겨가는 형태로 전개된다. 이러한 흐름을 살펴보면 국내에 소개된 디자인과 미술 씬에서 러시아 아방가르드가 암암리에 외면되었음을 인정하게 된다. 러시아 아방가르드에 관한 자료가 턱없이 부족한 국내에 2020년 러시아에서 출판된 이 책을 불과 1~2년 정도만에 한국에서 읽을 수 있게 되어 놀라움과 감사함을 느낀다.

 

저자 타티야나 고랴체바(Tatyana Vadimovna Goryacheva, 1954 12 29~)는 러시아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의 20세기 그래픽 부서 학예연구원이다. 이 책은 저자가 지난 20년 동안 러시아 아방가르드를 연구하며 작성한 글을 모은 것이다. 저자는 1부에서 '검은 사각형'을 기본 단위로 하는 절대주의 질서를 소개하고 2부에서 이를 바탕으로 절대주의를 구축주의와의 관계 속에서 서술한다. 3부에서는 '우노비스'라는 단체 이름으로 흡수되었던 말레비치의 몇몇 제자 이름을 밝히면서 그들의 작품과 인적 관계를 다룬다. 디자이너의 관점으로 본 이 책은 정규 교육과정에서 다루지 않았던 '수행으로서 디자인이란 무엇이 될 수 있는지'를 다시 생각하는 계기를 열어주었다.

 

나는 이 글에서 '동사'로서의 디자인을 말하고자 한다. 디자인은 행위performance. 퍼포먼스로서 디자인은 그래픽 요소들이 작업 내에서 행하는 퍼포먼스와 그 요소들에 체계를 부여하고 재구성하는 디자이너의 퍼포먼스로 나눌 수 있다. '1-운동하는 마침표, 검은 사각형'에서는 절대주의 기본 요소인 검은 사각형을 소개하면서 말레비치가 검은 사각형에서 비물질적 수행성을 추구했음을 주장한다. '2-흰 바탕이라는 무대'에서는 절대주의의 바탕이 되었던 흰 공간이 가지는 의미를 다루며 절대주의가 적용된 매체를 통해 디자인과의 접점을 탐구한다. '3-공리적 목적에 따라 시스템을 구축하기'에서는 절대주의와 구축주의를 유비하여 공리성과 체계를 통한 구축 개념을 소개하고 이 개념이 디자인과 핵심을 공유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4-"공간과 시간 속에서 움직이는 몸처럼" 수행하는 디자인'에서는 이 책의 만듦새가 절대주의 이념에 몸과 질서를 부여한 결과물임을 증명한다. 마지막으로 '5-니나 코간, 디자이너는 무엇을 하는가'에서는 저자가 묘사하는 니나 코간에 대한 평가가 정당한지 비판적으로 되짚어보면서 디자이너의 역할을 재사유하고자 한다.

 

 

1 운동하는 마침표, 검은 사각형

 

검은 사각형이 태어난 곳은 무대였다. 1914년 미래주의 오페라 <태양에 대한 승리>의 리브레토를 재출간하려 계획하던 마튜신에게 말레비치는 검은 정사각형 무대막 스케치를 표지로 써달라고 부탁한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지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로 검은 사각형은 전통 이젤화가 아닌 '무대막 스케치' 용도로 탄생했다는 점이다. 이는 검은 사각형이 애초부터 회화로 재현되기 위한 대상이 아님을 보여준다. 오히려 검은 사각형은 무대에서 사용될 '디자인'에 가까웠다. 둘째로 말레비치가 검은 사각형을 운동성이 배태된 기본요소로 대했다는 점이다. 이는 검은 사각형 무대막 스케치를 리브레토 표지로 사용하고 싶어 하면서 그가 들었던 이유에서 잘 드러난다.

 

"검은 정사각형은 모든 가능성의 맹아로서 그 발전 과정에서 무서운 힘을 가진다. 검은 정사각형은 입방체와 구의 시초이며, 이것의 해체는 회화에 놀라운 문화를 선사한다."[15]

 

여기서 말레비치가 이미 입방체와 구를 만들어내는 정사각형의 운동성을 전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가 회화에 끼칠 가능성을 생각했던 것은 당시 그가 회화에 몸담고 있었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검은 사각형이 무대막 스케치였다는 사실을 단지 우연으로 치부하지 않는다면 무엇을 더 생각할 수 있을까?

 

말레비치. 오페라 <태양에 대한 승리> 무대막 스케치

 

검은 정사각형은 캔버스에 납작하게 들러붙어 멈춰있는 표면이 아니었다. 검은 정사각형은 어제의 회화를 응축시킨 마침점이자 내일의 회화로 나아가는 시작점이었다. 말레비치는 전시 도록에 다음과 같은 슬로건을 넣었다.

 

"그러나 나는 나 자신을 형태의 영(0, 零) 상태로 만들었고, 무(無)에서 (...) 비대상적 창조로 나아갔다."[20]

 

이때 '비대상'은 대상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대상을 표현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러나'라고 부정하면서 시작하는 이 슬로건은 저자가 말하듯 분기점으로서 정사각형을 잘 보여준다. 말레비치가 검은 사각형으로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모든 전통 회화를 그러모아 마침표를 찍음으로써 침묵하게 하고 새로운 창조로 나아가는, 전환을 위한 단절이었다.

 

말레비치에게는 검은 사각형 자체를 회화로 재현하는 것보다 그것을 그려내는 행위와 의미가 더 중요했을지 모른다. 재미있는 점은 <태양에 대한 승리>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상연되던 1913년 당시 검은 사각형 스케치가 실제로 존재했는지 분명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말레비치가 <검은 정사각형>의 탄생을 1913년으로 정할 권리가 있다"[15]고 말한다. 1910년대에 각축을 벌이던 비대상성 예술계 상황을 차치하더라도, 말레비치가 생각했던 검은 사각형이 가진 속성을 생각하면 그것이 물질로서 정말 존재하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말레비치는 1915년 러시아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이 참여한 마지막 미래주의 전시≪0,10≫ <검은 정사각형>을 전시했다. 저자는 "사각형의 각이 정확히 직각이 아니기 때문에 순수한 기하학의 관점에서 이 그림은 사실 그냥 사각형"이며, 이를 "작가가 부주의한 탓이 아니라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형태를 창조하고자 하는 원칙과 노력에서 비롯"되었다고 평가한다.[18] 실제로 말레비치가 1924년 베네치아 비엔날레에 출품했던 <검은 정사각형>, <>, <십자가>1915년 작품과 크기와 비율이 달랐다고 한다.[23] 저자는 "원작을 대체할 수 있는 사본처럼 완전히 동일한 그림을 그려달라는 미술관의 입장"이 말레비치에게 충격적이었을 것이라 추정한다.[24] 이는 말레비치의 목적이 원본성을 가진 회화로서 <검은 사각형>을 전시하는 데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말레비치의 행동으로 보건대 그가 생각하는 검은 사각형은 오히려 비물질적이고 그것을 그려내는 행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말레비치가 <검은 정사각형>을 똑같이 재현해달라는 미술관의 부탁을 거절하면서 전시실에서 직접 작업을 했다는 기록[24]은 흥미롭다. 그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전시실 현장에서 검은 사각형을 그리는 행위는 오늘날 퍼포먼스의 관점에서 충분히 논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그가 <검은 사각형>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점을 무의식적으로 반영한다. 이후 비텝스크에서 그는 회화에서 멀어지며 절대주의 강령을 메타적인 철학 이론으로 만드는 데 전념한다.[35] 계르셴존과의 대화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물질이라는 것이 존재하는가?'라는 의문이 생긴다. 우리가 물질이라 부르는 것은 단지 정신적 움직임이며, 아마도 정신이라고 부르는 것은 물질의 움직임일지 모른다."[75 주 171]

이 대화는 물질과 정신의 관계를 운동으로 이해하는 말레비치의 관점을 보여준다. 그의 절대주의 강령은 검은 사각형의 운동에서 비롯되었으며 검은 사각형 또한 절대주의 이념에 따라 운동했다. 말레비치에게 물질과 정신은 서로를 생성하며 운동하는 힘이었고, 검은 사각형은 그것의 현시였다.

 


2 흰 바탕이라는 무대

 

절대주의에서 흰 바탕은 바투 놓인 2차원 평면도, 원근법이 적용되는 3차원 공간도 아니었다. 상상을 뛰어넘는 7차원, 10차원을 가능하게 하는 무한한 공간이었다. 말레비치가 절대주의 에너지 근원으로 밝힌 흰색과 검정을 저자는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흰색은 무한한 공간 '무의 황량한 공간'에 대한 메타포이며, 스펙트럼의 모든 색을 포함하는 색이다. 검정은 색의 최소화를 상징하며, 모든 색을 흡수하는 '비(非)색이다."[21]

 

관념적 공간이었던 흰 바탕에서 검은 사각형은 어느 방향으로든, 얼만큼의 속도로든 움직일 수 있었다. 흰 바탕에서 요소들은 교차하고 쌓이고 회전하고 부딪혀 해체된다. 에너지(동력)를 가진 검은 사각형은 회전하여 원이 되고, 수직과 수평으로 움직이는 흰색과 검정색 평면은 십자 형태가 된다.[21] 절대주의 체계는 흰 바탕이라는 비대상적 장소를 기반으로 형성되었다.

 

절대주의 체계를 보여주는 작품, 〈자동차와 부인. 4차원의 다채로운 입체물〉 또한 흰 바탕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말레비치는 에너지를 가진 요소들을 구조적으로 결합하여 회화 체계를 생물의 몸처럼 만드는 'тело' 개념을 도입한다. 〈자동차와 부인〉에는 흰 바탕에 사각형들이 왼쪽 상단을 향하는 대각선으로 평행하게 놓여 있다. 화면의 절반 이상을 검은 덩어리(단괴)가 채우고 있고, 그 아래에 작은 사각형 3개가 주요 덩어리에서 약간 떨어져 있다. 저자는 말레비치에게 단괴라는 개념이 아주 중요했기 때문에 몸을 이루는 공식이 되었을 것이라 추정한다.[47] 단괴는 응집된 덩어리로, 절대주의 사각형이 가진 에너지와 동력, 양감을 드러내는 표현이다. 말레비치는 단괴를 평면과 입체 공간 모두에 적용했다.

 

말레비치. <자동차와 부인. 4차원의 다채로운 입체물>

 

절대주의가 가진 체계와 그것이 제자들에 의해 로고, 도자기, 건축에 적용된 사례를 떠올리면 말레비치의 개념을 비단 추상회화에 국한하여 적용하는 것이 오히려 어색하게 느껴진다. 저자는 단괴가 평면에서 장식 요소로서 반복되거나 개별 형태로 도자기와 직물 위에 그려졌다고 서술한다. 단괴는 붙어있는 긴 사각형 조합을 바탕으로 인쇄물(말레비치의 빈농위원회대회 자료 표지, A. 체이틀린의 배급표)에도 적용되었다.[50] 이는 마치 디자이너들이 오늘날 하나의 그래픽 모티프를 여러 사물에 적용하는 모습과 비슷하다. 흰 바탕이라면 어디든 적용할 수 있었던 절대주의 원칙은 예술가들이 디자인으로 자유롭게 나아가는 통로가 되어주었다. 말레비치의 제자 니콜라이 수예틴은 벽, 테이블 상판, 담배케이스 등 어떤 표면에든 적용할 수 있는 장식 디자인에 매진했다.[173] 그는 말레비치가 1935년 세상을 떠난 뒤 스승의 관과 유골함을 디자인하며 검은 사각형을 로고로 활용하기도 했다.[도판 163]

 

〈자동차와 부인〉의 체계가 입체 공간에 구축되면서 사각형 평면은 양감 있는 단괴로 변형되었다. 단괴가 서로 접촉하고 침투하고 적층되는 원리에 따라 크기와 공간이 변주되는 건축 추상이 만들어졌다.[52] 이를 토대로 미래 유토피아 주거 건축 플라니트와 비대상성 절대주의 건축 아르히텍톤이 구성되었다. 흰 바탕은 모든 색을 흡수하고 생성을 기다리는 공간, 생성이 이루어지는 공간이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절대주의 공간이 구체적으로 어떤 차원으로 구성되는지 설명하지는 않는다. 다만 나는 오늘날 디자이너가 포토샵에서 층층이 만들어내는 레이어가 시작도 끝도 없이 연속되는 모습을 상상한다. 절대주의 체계가 만들어질 수 있는 가능성은 가늠할 수 없는 차원의 깊이만큼 무한했다.

 

 

3 공리적 목적에 따라 시스템을 구축하기

 

디자인에서 '실용성'은 오랫동안 예술과 구별하는 기준이었다. 구글에 '디자인 정의'를 검색하면 다음의 결과가 나온다. "건축·공업 제품·복식(服飾상업 미술·산업 미술 등 실용적인 목적을 가진 조형 작품의 설계나 도안." 디자인은 실용적 목적에 따라 설계하는 행위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말레비치가 구상한 플라니트와 아르히텍톤은 실용성이 배제된 예술로서 건축 모델이다. 그러나 말레비치는 플라니트와 아르히텍톤을 설계할 때 공리성을 추구하고 보편적인 건축 원칙을 제시하려 했다.[53 역주99] 말레비치가 주장한 '공리성'을 저자는 '실용적 용도'라는 일반적인 의미를 잃지 않으면서 그와 정반대 의미도 포함하는 용어라고 설명한다.[100] 그가 주장하는 공리성은 현실에서가 아닌 유토피아에서의 실용성이다. 유토피아에서 실용적인 것은 "새로운 형태를 창조"하는 것이기 때문에 "건물이 땅 위에 서 있기"[각주:1]를 요구하지 않는다.[101] 말레비치의 절대주의는 실제 용도를 가지며 사회적으로 구현하는 일을 공리성이라 여기던 구축주의를 아카데미즘이라 비판한다.[102] 공리성 개념을 두고 대립하는 모습를 보면 구축주의 성격이 오늘날 디자인과 보다 닮았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두 이론은 근본적으로 유사한 핵심을 공유하고 있었다. 저자는 리시츠키가 "절대주의와 구축주의 대립 속에서 진정한 유사성을 발견했다"고 서술한다.[104]

 

"체계가 구축을 결정한다." 유딘이 일기에 기록한 말레비치의 말은 절대주의의 핵심이자 구축주의와 유사점이었다. 체계를 형성하고 구축하는 것은 절대주의가 목표하는 기하학주의로 가기 위한 방법론이었다. 저자는 구축주의가 구축물을 만드는 목적에서 기하학을 가장 합목적적인 수단으로 사용한 것이 절대주의와 차이점라고 설명[98]하지만 이어서 둘이 동일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103]고 결론짓는다. 이러한 유사성은 구축주의와 가장 날카롭게 대립하는 것처럼 보였던 공리성 개념에도 드러난다. 말레비치는 플라니트 설계도에 다음과 같은 설명을 남겼다.

 

> "미래의 지구인이 플라니트의 모든 면에 다가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플라니트의 시스템은 건물을 청결하게 유지하도록 하며, 청소 장비 없이도 씻겨지고, 각 입체구성물과 층은 높지 않아 계단을 내려가는 것처럼 걸어 다닐 수 있다. 벽은 천장, 바닥과 마찬가지로 난방이 된다."[53 역주 98]

 

난방을 고려한 말레비치의 설계는 러시아의 지역 특성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이 설명은 말레비치가 사용자의 입장에서 플라니트를 설계했음을 표명하고 있다. 이를 통해 말레비치의 공리성이 비현실 공간에서 철저히 미학적 목표만을 지향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디자인은 체계system를 만드는 일이다. "체계가 구축을 결정한다."는 말레비치의 말을 디자인에 가져온다면 다음과 같다. 체계를 만드는 행위가 디자인 결과물을 결정한다. 디자이너는 체계를 만들고 체계에 따라 요소들을 배치한다. 여기서 '실용적'이라는 말은 다양한 공간과 시간 맥락 속에서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디자이너가 만들어내는 체계(질서)가 논리적으로 형성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질서는 소통 가능성을 전제한다. 논리적으로 만든 체계는 그 의도가 수용자에게 전달된다. 이러한 점에서 말레비치가 만들어낸 절대주의 질서는 디자인으로 이행하는 필요조건처럼 느껴진다. 절대주의가 이후 건축가 헤데켈이나 디자이너 리시츠키가 작품에 체계를 형성하는 데 영향을 주었음은 분명하다.

 


4 "공간과 시간 속에서 움직이는 몸처럼" 수행하는 디자인

 

절대주의 이념을 넓은 의미의 디자인으로 해석할 수 있을까? 물론 말레비치가 직접적으로 일상에 영향을 미치는 절대주의 원칙을 제안한 것은 아니다. 그 이유를 저자는 "절대주의 유토피아가 미학적 지향을 근본으로 하기 때문"이며 "말레비치의 유토피아에서 예술은 가장 대담한 구상을 실현할 수 있는 토포스(장소)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75] 말레비치에게는 가장 대담한 구상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것이 중요했다. 실용적 목적에 따라 설계한다는 오늘날 디자인의 정의에 말레비치의 사상을 포섭하려면 절대주의의 목적이 미학보다는 일상이라는 생활세계를 더 우선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디자인은 일상에서의 실용성만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이 책의 독자라면 '책의 디자인이 철저히 실용성을 목적으로 하고 있나?'라는 물음에 그렇다고 답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나에게 이 책은 실용적이다. 지금부터 나는 이 책의 디자인이 절대주의 이념을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이 책은 절대주의 이론을 수행하는 디자인의 관점으로 번역한 결과다. 책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절대주의 주요 요소인 검은 사각형 모티프를 반복했다는 점이다. 검은 사각형 처리된 요소로는 내지 상단 왼쪽의 책 제목, 오른쪽의 장 제목, 같은 선상에서 본문의 양쪽 끝에 위치한 쪽번호, 본문 중간에 들어가는 도판 지시문, 각주 번호, 본문의 강조 표시가 있다. 내지의 검은 사각형들은 책장을 빠르게 넘길 때 리듬감을 주지만 책을 정독하기 시작하면 강한 대비를 일으켜 시야를 침범한다. 내지 상단의 책 제목과 장 제목, 도판 위치를 표시한 사각형이 반복되면서 눈길을 끌기 때문에, 본문을 읽을 때 앞 뒤 순서의 소제목으로 바로 이동하기가 어렵다. 나는 장 내에서 다음 소제목으로 이동할 때 목차의 도움을 여러 번 받아야 했다. 그러나 이러한 점이 비실용적이라 판단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디자인은 독자를 아름다운 체계로 안내하며 절대주의를 감각적으로 체험하게 한다.

 

 "공간과 시간 속에서 움직이는 몸처럼, 형태를 담은 페이지의 역동적인 부조처럼 책을 구성하라.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단일한 구조가 새로이 교차하고 새로운 국면이 나타난다."[143]

말레비치의 카리스마와 급진성을 닮은 붉은 레더텍스 장정은 한눈에 보아도 강렬하다. 1에 검정 박으로 글자가 찍혀 있다.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이론과 실제" 그리고 더 작은 크기의 글자로 "카지미르 말레비치와 그의 학파" 그 아래에 한 줄 정도 여백이 있고 지은이와 옮긴이가 같은 크기의 글자로 줄바꿈 되어 있다. 왼손으로 표지를 열자 책은 왼편으로 새로운 공간을 점유한다. 면지에는 검은 사각형 두 개가 위아래로 늘어서 각각 지은이와 옮긴이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다. 넓이가 비슷한 두 사각형이 긴장감을 형성하며 번역서를 장소 삼아 원저자와 번역가의 관계를 은유한다. 오른쪽 면지를 넘기자 오른쪽 반 표제지가 리듬감 있게 따라오고, 표제지를 한 장 더 넘겨보면 차례가 나온다. "차례"와 장 제목은 가운데 정렬로, 나머지 소제목은 왼쪽 정렬로, 쪽번호는 오른쪽 정렬로 되어 있다. 목차는 장별로 구분되어 검은 사각형으로 둘러싸여 있다.

 

절대주의 세 가지 주요 요소들은 각 장을 구분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장표지 그래픽으로 1장에는 정사각형, 2장에는 원, 3장에는 십자가 형태가 쓰였다. 이는 말레비치가 『비대상성으로서의 세계』 '절대주의' 챕터에서 밝힌 단계를 반영한다. "절대주의의 주요 요소. 정사각형.1913", "절대주의의 주요 요소. 절대주의 형상들이 유래된 정사각형 다음으로 주요한 요소. 1913"(), "절대주의의 세 번째 주요 요소. 1913"(십자가)[23] 장표지를 장식하는 그래픽은 도판의 말레비치 작품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1장의 정사각형은 완전한 정사각형이 아니며 23면의 도판 1-12처럼 아래쪽에 굴곡이 있다. 2장의 원은 도판 1-13처럼 오른쪽 상단으로 치우쳐 배치했다. 3장의 십자가 또한 붓이 지나간 몸을 드러내듯 평행하지 않은 선분의 기울기가 도판 1-14의 모습과 흡사하다.

 

출처: 지하출판소 페이스북 페이지

 

뒤표지는 절대주의를 가장 충실하게 그래픽으로 수행하는 부분이다. 4의 그래픽은 본문에 배치한 사각형 모음으로 책 전반의 체계를 한눈에 보여준다. 이 그래픽은 언뜻 평면처럼 보이지만 페이지가 쌓이면서 만들어내는 지층의 모음이다. 예를 들면 왼쪽 상단의 정사각형은 그저 하나의 정사각형 평면이 아닌 왼쪽 페이지 번호들의 집합을 나타낸다. 중앙의 직사각형은 본문에서 책 제목과 장 제목을 지시하는 사각형들의 집합이다. 오른쪽 상단의 정사각형 또한 오른쪽 페이지 번호들의 집합이다. 그 아래에 가로로 가장 긴 직사각형은 91페이지에 직렬로 배치된 도판 지시문에 176페이지, 212페이지의 도판 지시문 등이 중첩되어 만들어졌다. 독자가 책을 펼쳐 읽을 때 페이지는 낱장으로 포물선 운동을 하지만 책이 덮여 있을 때 모든 페이지는 중첩된다. 4는 책을 덮은 시점에 책을 다시 뒤에서 앞으로 투사한다. 내지의 흰 바탕에서 본문을 가로지르며 부유하던 사각형들이 표4의 붉은 표면에 자신의 모습을 내비친다. 붉은 표면은 2차원 평면이 아닌 내지 두께만큼 깊이를 가지는 절대주의 공간으로 변모한다. 이제 테이블 위에 놓인 책은 사각형을 담은 페이지의 역동적인 부조로 변신한다.

 

디자인된 부분은 여러 관점에서 실용적이다. 내지로 사용된 아도니스 러프가 조명 빛을 반사하지 않고 눈을 편안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이 책의 디자인은 실용적이다. 도판 모음으로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작은 도판 썸네일이 본문을 읽을 때 흐름을 끊지 않는다는 점에서, 각주 내용을 펼친 페이지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의 디자인은 실용적이다. 그러나 사용하기에 편리하다는 좁은 의미의 실용성은 언제나 특정 공간과 시간의 맥락 안에서만 유효하다. 앞에서 실용적이라고 판단한 점이 다른 상황에서는 얼마든지 실용적이지 않을 수 있다. 같은 조건이라도 아도니스 러프가 아주 희지 않기 때문에, 어떤 독자에게는 도판 모음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도판 썸네일이 너무 작기 때문에 실용적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디자인이 무엇을 어떻게 담을 것인지 목적을 정하고 그것에 따라 체계를 만들어 구축하는 행위라면 실용성이라는 판단 기준도 그에 따라야 한다. 디자인이 무엇을 담고 있으며 디자인의 목적이 무엇인가에 따라 실용적인지 그렇지 않은지가 결정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 책의 디자인이 실용적인 이유는 말레비치의 사상을 담으면서 그것을 체험하도록 체계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5 니나 코간, 디자이너는 무엇을 하는가

 

디자인이 목적에 따라 체계를 만드는 행위고 디자이너가 이를 수행하는 사람이라는 관점에서 니나 코간을 다시 바라보고자 한다. 책의 마무리 부분에서 저자가 인용하는 니나 코간에 대한 묘사는 독자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남긴다. 저자는 니나 코간을 "말레비치와 흘레브니코프를 흠모하면서 두 사람의 이론이 가진 본질적 차이를 인식하지는 못"했다고 평가한다.[244] 저자는 코간에 대한 미투리치와 하르지예프의 묘사를 인용한다. 미투리치는 코간을 "예술 관련 일과 문제에서 가장 가까운 비서"[249]이며 "철학에 대해 광적인 우둔한 여자"[255]라 묘사한다. 하르지예프는 코간에 대해 "그녀는 축복받은 자의 미소, 즉 광인, 바보 성자(유로지비)의 미소를 가지고 있었으나 총체적으로 성녀이다. 이타적이고 사리사욕이 없는 자, 가여운 영혼, 삐쩍 말랐으며, 마치 미친 사람처럼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일을 처리했다."고 서술한다.[256] 이러한 묘사는 코간을 이해력이 부족하고 다른 예술가들을 지원하는 부차적 인물처럼 보이게 한다. 실제로 코간은 1920년대 말부터 절대주의 기법을 버리고 사실주의 화법을 구사했다.[238] 그러나 이것이 그가 절대주의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절대주의 화법을 구사하지 못했음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코간이 연출한 <절대주의 발레>는 그가 절대주의 이론을 정확하게 이해했음을 보여준다.

 

니나 코간(1889-1942)

 

니나 코간은 <절대주의 발레> '생생한 그림'이라 불렀다.[231] 이러한 명명은 코간이 공연에 참여한 배우들을 조형 요소로, 무대를 이젤화의 캔버스처럼 인식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저자는 코간의 설명을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기하학적 도형을 들고서 발레의 연출가가 규정한 절대주의적 형태의 논리적인 변형 체계에 따라 엄격하게 이동했다. '살아있는 그림'은 절대주의 원칙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이것은 전통적인 '살아있는 그림'에서처럼 살아 있는 배우들이 참여해서가 아니라, 절대주의 이젤화를 움직이게 하고 공간 속에서 이루어지는 절대주의적 형태의 운동에 관한 이론과 (...) 조형적 원리를 실제로 구현했기 때문이다."[232]

 

<절대주의 발레>는 무대에서 탄생했지만 무대에서 수행한 적 없던 검은 사각형을 다시 무대로 소환했다. 말레비치가 정신과 물질의 관계를 운동으로 파악하고, 절대주의 체계에서 움직이는 에너지를 가진 사각형을 기본 요소로 삼았음을 떠올리면 코간이 수행성을 보여주는 적합한 매체로 '공연'을 선택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저자는 코간이 '발레'라는 단어를 통해 조형적이고 역동적인 의미를 강조하려 했다고 밝힌다.[231] 코간이 강조하려고 했던 점은 그래픽 디자인 요소들의 수행성과 일맥상통한다. 그는 공연을 통해 이젤화에서 간접적으로만 보여줄 수 있었던 요소들의 수행성을 무대로 옮겨 직접적으로 드러냈다. 이 공연을 연출하면서 코간은 대중에게 난해하게 느껴지던 절대주의 개념을 발레라는 형식으로 전달하려 했다고 저자는 서술한다.[231] 이러한 점에서 제목 <절대주의 발레>는 코간의 의도를 담백하게 드러낸다. 새로운 자신만의 것을 만들어내기보다 기존의 것을 적합한 다른 언어로 번역해내는 코간의 태도는 디자이너의 태도와 맞닿아 있다.

 

니나 코간. <절대주의 발레. 무대 장식 디자인> (1920)

 

코간은 절대주의를 충실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저자는 시간이 흐른 뒤 말레비치의 시나리오 『회화와 건축의 문제』에서 코간의 이해가 증명된다고 밝힌다.[232] 그러나 우노비스 연감에 실린 이 공연의 해설이 "비텝스크에서 가장 급진적인 무대예술 실험이었던" 의의를 담지 못했으며, "그저 평범한 해설의 어조"로 남겨졌다.[233] 이러한 연유로 코간의 <절대주의 발레>는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을 것이다. 저자는 코간이 "뛰어난 예술가는 아니었지만 다른 사람의 사상을 있는 그대로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고 평가한다.[235] 그러나 코간이 이젤화를 무대로 옮길 때 아무리 그것을 '있는 그대로' 옮긴다고 해도 그러기 위해서는 절대주의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해하고 해석하는 과정은 창조와 다르지 않다. 말레비치의 조형 언어를 이해하고, 해석하여 무대 위에서 몸짓언어로 번역하는 작업으로 판단하건대, 코간에게는 원작의 체계를 파악하고 자신의 체계로 번역해내는 역량이 있었을 것이다. 디자인을 수행할 때 체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목적을 설정해야 하며, 목적을 설정하기 위해서는 콘텐츠를 이해해야 한다. 니나 코간이 연출한 <절대주의 발레>가 말레비치의 절대주의를 충실하게 반영하여 발레 형식에 따라 이를 풀어냈다면, 코간이 성공적인 디자인을 수행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코간의 출판 작업 또한 자신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이론을 충실히 이해하고 실천에 옮긴 행위로 바라볼 수 있다. 저자의 서술에 따르면 코간은 말레비치 이론과 흘레브니코프 이론을 상호 보완적으로 여기며 둘 사이에 연합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다.[247] 저자는 이에 대해 "말레비치가 문학 분야에서 창작적 지향이 같았던 것은 흘레브니코프가 아닌 크루초니흐였"기 때문에 "전혀 정당성이 없는 계획이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열성적이었던 니나 코간이 관련 없어 보이는 두 이론의 공통점을 발견했을 가능성도 있다. 니나 코간이 주목했던 말레비치와 흘레브니코프가 지금 각각 러시아의 회화와 문학에서 거장으로 받는 평가를 고려한다면, 적어도 코간에게 예술적 가치를 알아보는 안목이 존재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저자가 인용한 주변 인물들의 부정적 평가에도 코간이 수행한 일을 들여다보면 원 콘텐츠의 체계를 이해하고 새로운 체계로 번역하는 디자이너로서 코간을 발견할 수 있다. 절대주의 개념을 성실하게 이해하고 어려운 현실적 상황에도 흘레브니코프의 작품을 출판하는 데 적극적으로 기여했던 인물로 코간을 재평가한다면 우리는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또 다른 면을 발견하게 될지 모른다.

  1. 현실적 유용성을 비유하는 표현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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