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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산드라 L. 존스(신시내티 대학 아프리카학 조교수) 저
단감 번역

 

 

 

 

 

 

 

인류학적 시선과 반기술적 흑인성에 맞서기

 

디지털 그리오로서의 자넬 모네의 혁명적 잠재력 중 하나는 과거의 역사적 순간들과 현재까지 이어지는 그것의 영향력을 비판하기 위해 이렇게 ‘서로 경쟁하며 보완하는 비트’를 레이어링하는 능력이다. 예를 들어 “Q.U.E.E.N”은 모든 신체부위를 샅샅이 검사하여 흑인의 열등성을 입증하려 했던 19세기의 유사과학을 상기시키며 비판한다. 실제로 반란군의 얼어붙은 몸을 전시하는 전시회는 사라 바트만의 전시와 상통한다. 뮤직비디오의 시작 부분에 등장하는 바둘라 오브롱가타의 위치는 이 주장을 한층 뒷받침한다. 명백히도 모종의 대응을 계획하며 함께 있는 세 명의 혁명가 중 리더로 지칭되고 있음에도, 오브롱가타는 관람객을 등지고 있으며, 그의 엉덩이를 우리 쪽으로 내밀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조직의 리더로서의 그의 역할보다는 그의 몸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그러나 불안정한 선형적 내러티브에 혁명적인 동시에 기술적인 내러티브를 삽입하면서, 음악을 통해 이러한 인류학적 담론이 교란된다. 가령, 두개골은 인류학적 시선의 지표에서 말 그대로 해방의 도구로 변형된다. 이 해골은 모네를 규정하고 표백하며 가두려 했던 감옥에서 그를 풀어주는 레코드플레이어로 사용된다. 그루브를 해방적 진동으로 바꾸어주는 금니로 된 레코드 바늘을 가진 이 해골-레코드플레이어는 ‘깡패’의 상징인 금니를 상기시킨다. 이를 통해 금니가 타자성의 표지에서 해방의 표지로 바뀌는 급진적 재생이 이루어진다. 반 빈이 흑인성을 하나로 한정된 정체성으로 가두는 “게토 리얼리즘의 폭력과 자본주의적 화려함”을 지적하고 아프리카 미래주의가 이 함정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탈출구’를 제공한다고 주장할 때, 모네는 그 “게토 리얼리즘의 화려함”에 거리를 두려고 하지 않는다. 그는 그 표지를 재생시켜 변형한다. 다시 한 번 모네는 온전한 인간으로 흑인성을 정의하려는 투쟁으로 돌아온다.

 

제랄도 리베라 등의 전문가들은 어째선지 인종 문제가 아니라 금니나 후드 티셔츠와 같은 ‘깡패’ 문화의 표지 때문에 젊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생명을 잃게 되었다고 주장해왔다. 이런 사람들은 가령 트레이번 마틴이 인종 때문이 아니라 후드 티셔츠를 입었기 때문에 죽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후드 티셔츠나 금니는 인종과 별개의 문제가 될 수 없다. 후드 티셔츠가, 특히 그 옷을 흑인의 몸, 즉 ‘깡패’가 입었을 때. 무엇을 의미하게 되었는지가 핵심이다. 이런 식의 주장에 따르면, 후드 티셔츠든 배기 바지든 깡패에 대한 표지가 있기만 하면 그 옷을 입고 있는 흑인 남자의 삶의 가치는 얼마든지 경시할 수 있다. “Q.U.E.E.N” 뮤직비디오는 계속해서 “내가 괴물이야? …”라고 묻는 코러스를 통해 이러한 주장을 비롯하여 흑인성, 여성성, 섹슈얼리티를 억압하는 다른 여러 주장들을 비판한다. 백인 문화가 간단히 처분할 수 있는 삶의 표지로 읽었던 금니가 이 뮤직비디오의 맥락 속에서는 흑인성을 비인간화하는 계급 및 인종의 표지에서 해방의 도구로 변형된다. 이 영상에서 금니에 대한 백인 미국의 정의는 벗어날 수 있는 정체성이 아니다. 이빨 자체는 해방적 신호, 즉 시냅스를 가로질러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진동을 전달하는 기표가 된다. 그 신호는 기술적 참여가 역사에 대한 지식 및 현재에 대한 인식과 결합될 때 사회적 해방을 이뤄내는 힘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보여준다. 이렇게 기술과 그에 수반된 인종화된 내러티브가 변형되어 결합하는 것이 디지털 그리오의 힘이다.

 

 

 

 

 

 

 

 

결론

 

모네의 혁명적 디지털 그리오는 박물관이라는 감옥에서 자유를 쟁취하는 수단으로 기술을 사용한다. 그러나 기술만으로 필요한 자유를 마련할 수는 없다. 분명히 기술은 반군 지도자와 그의 동료 혁명가들의 운동을 무장 해제하고 감금하는 데에도 사용되었다. 또한 기술의 복잡한 사용을 통해 인종, 젠더, 섹슈얼리티, 계급, 역사를 인식하고, 과거의 영향, 현재의 도전, 미래의 희망을 한데 모을 수 있기도 하다. 반란을 종식시키기 위해 시간 위원회 및 박물관이 최선을 다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이스오버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연구자들은 여전히 이 프로그램(21세기의 음악적 무기 프로그램)의 본질을 해독하며, 완다랜드가 노래, 감정 그림 및 예술 작품으로 위장시킨 갖가지 자유 운동을 쫓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저항을 서구 문화의 기계는 해독할 수 없는 방식으로 코딩하여 지하 운동을 계속할 수 있게 한 것이야말로 반군의 능력이다. 이 해독 불가능성은 마크 데리가 ‘비보이 브리콜라주’라고 지칭한 바 있는 음악적 기술의 ‘무기화’ 및 다른 창조적 사용에서 나온다. 이는 ‘스트리트 스타일’의 창조적 재사용과 기술적 거부가 ‘고급 스타일’로 재창조되며, 현 상태를 전복시킬 힘을 가질 수 있다는 개념이다. 데리가 지적한 바와 같이 “거리는 어떤 물건이든 나름의 용도를 찾아준다”라는 사이버펑크 격언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문화에서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다. 헨리 루이스 게이츠 주니어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전통은 처음부터 표상적이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서구 문화가 지금껏 간과해왔던 이러한 문화적 파편들이 완다랜드의 저항 속에서 재생된다. 금니를 가진 해골은 레코드플레이어로 변형되어 반군을 해방시키는 문자 그대로의 메커니즘이 된다. 일부는 이를 흑인성을 오직 체화된 것으로만 구체화하려는 움직임으로 읽을 수 있겠지만, 해골 레코드플레이어를 반기술적이라고만 보았던 흑인성의 역사적 내러티브를 다시 써서, 아프리카인 및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신체와 신체 부위를 전시하며 그들의 온전한 인간성을 부정하는 과거의 박물관을 침입하며, 이 신체를 말 그대로 해방의 기술로 재창조하는 순간으로 읽을 수도 있다.

 

 

카산드라존스_캔자스시티에해방을.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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