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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자스시티에 해방을’: 디지털 그리오로서의 자넬 모네의 혁명(1/4)

 

 

카산드라 L. 존스(신시내티 대학 아프리카학 조교수) 저

단감 번역

 

 

 

 

들어가며

 

자칭 아프리카 미래주의자(Afrofuturist)이자 알앤비 가수이며 이제는 배우이기도 한 자넬 모네는 정식 발표한 다수의 음반 및 뮤직비디오를 통해 대안적 도시풍경을 지닌 메트로폴리스를 그린 음악을 창작하며 대중적 관심과 함께 학문적 관심을 모아왔다. 미래적 도시는 신디 메이웨더의 이야기 혹은 전복적인 ‘일렉트릭 레이디electric lady’라는 모네의 비전을 위한 풍경으로, 여기에서 모네가 메트로폴리스를 찾을 때마다 활용하는 사이보그 비유(trope)를 소환한다. 이는 다른 아프리카 미래주의자들도 자주 소환하곤 하는 비유이다. 성장하는 흑인 사변 미술 운동인 아프리카 미래주의는 문학, 음악, 고급 예술 및 거리 예술을 포함하는 포괄적 용어로, 전세계에 흩어져 사는 아프리카 출신 흑인들이 상상한 기술(technology)의 은유와 기술의 실질적 사용을 모두 탐구한다. ‘상상, 기술, 미래 및 해방의 교차점’에서 작업하면서, 아프리카 미래주의자 작가, 음악가, 기술자는 좀처럼 일어날 성싶지 않거나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미래와 새로운 기술 그리고 오랜 기술의 새로운 사용 방식을 상상하는 흑인 문화의 탄력성에 기대어, SF소설 및 판타지의 수사를 통해 사회 불평등을 비판한다.

 

 

 

 

 

노예 같은 로봇 노동자와 기술 및 자본 차원에 깊이 뿌리 내린 부의 편중으로 특징지어지는 모네의 미래 도시 메트로폴리스는 미니앨범 ≪Metropolis: Suite I (The Chase)≫(2007)과 앨범 ≪ArchAndroid≫(2010) 및 ≪The Electric Lady≫(2013)에 그려져왔다. 각 앨범과 함께 공개된 뮤직비디오도 마찬가지로 메트로폴리스의 SF적 세계를 정교하게 구현한다. 모네는 프리츠 랭의 1927년 영화 ≪메트로폴리스≫,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1982), 옥타비아 E. 버틀러 및 아이작 아시모프의 SF문학과 더불어 모네 자신이 ‘캔자스 주 캔자스시티에 사는 약물에 찌든 가정’에서 탈출한 경험에서 모은 형상 및 텍스트에서 영감을 받는다고 언급한다. ‘Many Moons’ 등 각각의 노래와 뮤직비디오, 그리고 그것의 ‘공식 단편 영화’는 마치 시리즈물 소설처럼 읽힐 수 있다. 메트로폴리스의 세계 속에서 각각이 새로운 테마에 초점을 맞추거나 주제를 확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에세이는 모네의 여러 노래 및 비디오에서 디지털 혁명이라는 주제에 초점을 맞추면서 특히 2013년 앨범 ≪The Electric Lady≫에 수록된 “Q.U.E.E.N”를 중심으로 논의를 진행하겠다. 이 곡은 모네가 메트로폴리스의 과중한 부담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는 동시에, 실제이자 비유인 ‘캔자스시티’의 마찬가지로 억압적인 힘에서 보다 많은 청자들을 해방시키고자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하에서 힘겹게 일하는 노동자와 그 위에서 사치스러운 생활을 누리는 부유층 간의 계급 격차에 대한 랭의 1927년 비판을 바탕으로, 모네의 메트로폴리스는 아프리카 미래주의자의 틀을 활용하여 인종, 젠더, 섹슈얼리티의 교활한 계략을 비판한다.

 

아프리카 미래주의가 범위와 가시성의 측면에서 성장함에 따라, 애덤 J. 뱅크스의 “디지털 그리오digital griot”, 존 아캄프라의 “데이터 도둑data thief”, 애나 에버렛의 “흑인 사이버산책자black cyberflaneur” 및 “아프로긱Afrogeek” 그리고 폴 D. 밀러의 “리듬 과학” 등 다양한 이론적 목소리가 과학 및 기술에 관여해 온 흑인 역사와 이들을 문학, 음악, 미술 작품 속에서 상상적으로 탐험해온 내용의 연관성을 이해할 수 있는 은유로 사용되었다. 이와 같은 은유들 각각은 D. 폭스 해럴이 ‘영감적 허구’라 불렀던 것과 기술과의 실질적 연관 사이의 경계를 흐린다. 이러한 은유 중에서도 이 에세이는 디지털 그리오(griot, 역사구송자, 전승 시인)를 활용하여 메트로폴리스 세계가 반기술적 흑인성이라는 개념에 답하는 방식과 자넬 모네가 음악과 뮤직비디오를 통해 역사화된 미국 흑인 여성의 존재를 고도로 기술적이자 혁명적인 역할이라 주장하면서 혁명을 디지털화하는 방식을 탐구한다.

역사를 다시 섞어 새로운 층위를 만들어내기 위해 기술 및 기술에 대한 은유를 사용하면서, 모네의 노래와 비디오는 예술과 운동에 대한 기존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접근에 새로운 목소리를 더한다. 그의 작업은 이성애의 틀에 갇혀 있는 흑인 권력 운동에 대응하여 퀴어 음악의 소리를 높이면서, 흑인 예술 운동과 같은 시도와 공명하는 동시에 그것에 도전한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는 단순히 기술이 고도화된 유토피아 세계에 관한 동화가 아니다. 그의 목소리는 기술을 통해 자유를 서술하면서도, 동시에 기술의 인종차별, 이성애 중심주의, 가부장제, 자본주의적 기원에 맞서며 이것이 어떻게 흑인 여성의 신체를 착취하는 데 이용되어 왔는지를 비판한다.

 

모네의 노래와 비디오에 리믹스되어 있는 역사는 ‘디지털 그리오’에 해당하는 작업이다. ‘디지털 그리오’는 애덤 J. 뱅크스가 「디지털 그리오: 멀티미디어 시대의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수사학」에서 제안한 용어이다. 디지털 그리오는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합하고 흑인이 기술과 연관을 맺지 못하게 막는 장벽인 디지털 격차를 거부하며 특히 아프리카계 미국인 수사학을 활용하는 개입적 형상이다. 디지털 그리오는 텍스트의 해체와 재구성을 통해 말하며, 이러한 연결성을 ‘전통과 미래를 연결하며 양자가 보이고 들리고 느껴지고 인식되는 방식을 형성하기 위한 권력을 잡는’ 시간 여행에 사용하는 디제이이다. 실제로 디제이는 계속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바꾸며 결코 정착하지 않는다. 뱅크스는 시적인 글을 통해 디제이를 이렇게 묘사한다.

 

그는 항상 청중에게 그들이 바라는 바와 필요로 하는 바, 지식, 태도, 기쁨, 고통, 재주를 –어떤 상황에서든- 한 눈에 분석한다. … 그는 언제나 누구도 찾지 못하고 누구도 그런 식으로 활용하지 못했던 그 틈, 그 균열, 그 연결점을 찾아 상자를 파헤치며 조사한다. … 그는 단 몇 초 안에 행성계 혹은 은하계 시공간 전송기를 켤 수 있는 역사, 기억, 재기억의 담지자이다. 그는 어떤 세계를 해석하여 그 세계의 모든 광기를 다스리는 법과 그 안에서 살아가면서도 여전히 우리의 영혼을 지키며 탈출하는 법을 암시적으로 그리고 명시적으로 우리에게 알려준다.

 

디지털 그리오는 흑인들이 “디지털 이야기의 일부로서 자신을 볼 수 있게” 해주는 하나의 혁명적인 형상이자 아프리카계 미국인 수사학의 표지이다. 디지털 그리오는 그러한 디지털 이야기 속에서 흑인의 역할을 창조하고 이해하고자 추구할 때 기술 및 기술에의 접근이 얼마나 핵심적인 측면인지를 강조하는 해방 전략으로 기능한다. 아프리카 미래주의가 과학소설을 이용하여 흑인과 기술과의 관계를 재구성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디지털 그리오도 스토리텔링의 힘을 이용하여 “학술적이고 시민적이며 곧잘 무시되는 흑인 공동체”에 그와 같은 새로운 관계를 이끌어낸다. 소셜 미디어가 우리에게서 다양한 의견과 세계관을 차단하여 반향실(메아리방, echo chamber)을 만들어내고,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면 구글이 답변을 미리 정렬하여 우리가 클릭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관점만을 되돌려주는 세계에서, 디지털 그리오와 그가 과거와 현재 사이에 만들어낸 연결고리들은 현재 존재하는 인종 및 젠더 불평등의 문제를 새롭게 접근할 수 있는 사회적 연결 및 역사적 이해의 형식으로서 작동한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스토리텔링 전통에 기원한 디지털 그리오의 뿌리는 그들의 경험, 신화 상징을 활용하여 역사를 재구성하고 “기술 및 기술 체계와의 관계 속에서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중요한 관점을 제시한다.” 과학 소설의 서술 방식을 이용하여 모네는 그가 혁명을 디지털화하는 만큼이나 흑인성이 기술의 역사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음을 주장하면서 인종차별, 성차별, 이성애 중심주의에 도전한다.

 

 

 

 

아프리카 미래주의: 시냅스 회로

 

모네는 자신의 혁명을 고향인 캔자스시티에서 시작했다. 그곳은 그녀가 ‘자기 내면의 괴짜를 발견’한 곳이자 지역 사회에 만연한 약물과 폭력의 환경에서 도망쳐나온 곳이었다. 이 도시와의 인연 및 애정은 이어가면서도, 잡지 「피치Pitch」와의 2006년 인터뷰 및 2013년 발표곡 “Q.U.E.E.N”의 가사에서 그는 미래 세계에 대한 자신의 이야기에 담긴 예술과 운동의 조합을 통해 캔자스시티를 ‘해방’시키는 것이 본인의 목표라고 언급했다. “말도 안 되는 얘기죠. 하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저는 고향에 돌아오는 모든 사람에게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게다가 마약을 팔아서가 아니라 올바른 일에 열정을 가지는 것으로요. 그러면 올바른 일이 당신에게도 찾아올 거라고요.” 2007년에 미니앨범 ≪Metropolis: Suite I (The Chase)≫을 발표하면서부터, 2006년 「피치Pitch」인터뷰 발언처럼 ‘열정’을 통한 개인적 구원을 강조하던 모네는 구조적 불평등과 소수자들을 억압하는 방식으로만 이용되는 국가권력을 공격하는 데 중점을 두는 쪽으로 바뀌었다. 이것은 첫 곡 “March of the Wolfmasters(늑대 조련사의 행진)”의 유쾌한 어조를 통해 입증된다. 거기서 어떤 인간을 사랑한 안드로이드인 신디 메이웨더의 퀴어 사랑은 불법이었다. 방송에서 활기찬 목소리로 메이웨더가 ‘실연 내기의 불운한 당첨자’라고 방송하자, 현상금 사냥꾼들이 상금을 얻기 위해 일제히 그를 쫓기 시작한다. 이 노래에서 모네는 메이웨더의 탈출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는 약물과 폭력의 광경을 그저 그림처럼 그리지 않는다. 모네가 2006년 인터뷰와 같은 개인적 구원의 이야기에서 벗어나면서 “March of the Wolfmasters”는 사람들은 상금을 노리고 메이웨더의 ‘사이버 영혼’을 사냥하고 정부는 총력을 기울여 퀴어 관계를 맺은 사람들을 절멸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디스토피아적 풍경을 청자에게 선보인다.

 

오랫동안 과학 소설이 사회적 가치를 비판하는 역할을 하는 장르로 인식되어 왔던 만큼, 아프리카 미래주의 텍스트 안에 담긴 문화 비평도 이론적인 내용에서 아프리카 미래주의 활동가들이 살아왔던 경험으로 움직이기 시작하고 있다. 사회 정의 쪽으로 이동하면서 아프리카 미래주의에서 과거에는 미학적 운동으로 정의되었던 바를 넘어서는 영역이 발전하고 있다. 아프리카 미래주의가 지식인, 작가, 예술가, 음악가로 구성되어 있긴 하지만, 이는 단순히 학문 탐구 영역이나 문학적 혹은 예술적 운동이 아니다. 최근의 한 가지 사례로 활동가이자 영화감독인 브리 뉴섬의 이야기가 있다. 그는 2015년 6월 27일 사우스캐롤라이나 콜럼비아의 주 의회 의사당 옆에 걸린 논란의 남부연합기를 뜯어내기 위해 깃대에 올라갔다.

 

그는 아프리카 미래주의 영화감독이기도 하지만,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투표권을 비롯한 여러 대의를 주장하기 위해 노스캐롤라이나의 올바른 월요일(Moral Monday)시위에 관여해 온 활동가이기도 하다. 깃대 꼭대기에서 벌어진 그의 시위는 수많은 밈을 만들어내었고 그를 슈퍼히어로로 묘사하며 다시 자신이 출발했던 아프리카 미래주의로 돌아가게 되었다. 아프리카 미래주의자로서 뉴섬은 활동가이자 예술가이며, 자기 영화의 사회적 비평을 자신의 운동으로 이어간다. 뿐만 아니라, 컬렉션과 책이 구체화됨에 따라 -가령 「옥타비아의 종족: 사회 정의 운동에서 기원한 과학 소설 이야기」의 에이드리언 마리 브라운의 「새로운 전략」최초의 여성 아프리카계 미국인 과학 소설 작가로 알려진 옥타비아 E. 버틀러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2014년 스펠먼 대학에서 열린 “옥타비아 E. 버틀러 기념 예술과 운동”과 같이- 아프리카 미래주의 집단으로부터 나오는 사회 정의 및 지역 봉사 활동도 늘어나는 형세로, 그는 예술가의 상상에서 나온 사회 비판을 말 그대로 실현시키고 있다.

 

 

 

 

소셜 미디어 그룹 ‘아프로퓨처리스트 어페어Afrofuturist Affair’나 블로그 ‘Futuristically Ancient(미래적 고대)’는 아프리카 미래주의의 이름 하에 흑인 과학소설의 예술적 표현은 물론 본질적으로 사변적인 소설에 배타적으로 편향되어 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운동의 기회를 모았다. 그러한 사례 중 하나가 블로그 ‘Futuristically Ancient’의 한 포스트이다. 이는 브룩클린에서 열린 “흑인 여성의 코드Black Girls Code”라는 행사와 잡지 「Afrikadaa」에서 아프리카 미래주의를 다룬 호, 그리고 당시에는 기획 중이었고 이제는 출판된 인종과 디지털 창의성에 대한 레니나 자몬의 책 「흑인 여성은 미래에서 왔다Black Girls are from the Future」를 통합하여 다루었다. 모든 행사가 사변 소설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하나의 블로그 포스트에서 각각의 행사 및 출판물을 함께 언급하면서 인터넷을 통해 지역 운동, 기술적 참여, 그리고 흑인 페미니스트 관점으로 본 미래에 대한 비전이 연결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여러 분야에 퍼져 있는 흑인은 반기술적이라는 관념과 싸우기 위해, 젊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에게 코딩을 교육하고자 하는 비영리 단체 ‘Black Girls Code’ 등의 여러 기관은 재정적으로 여유 있는, 그러려면 계속해서 백인 남성에 의해 지배될 수밖에 없는 공간을 개설하려고 하고 있다. 한편 「흑인 여성은 미래에서 왔다」와 같은 책은 디지털 공동체, 킥스타터 등의 자금 모집 방식, 그리고 고도로 기술적인 미래에 대한 비전을 검토하며 그 안에서 흑인 여성성의 자리는 무엇일지 탐구한다. 인종, 젠더, 섹슈얼리티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기술 혁신은 영감적 소설은 무엇인가의 문제를 넘어, 이 운동의 매우 중요한 일부분이다. 집단행동 및 디지털 혁명이 아프리카 미래주의자들이 참여하여 일구어낸 사변 소설과 사회 비평이라는 마녀의 약물을 쏟아버리기 시작하고 있다.

 

D. 폭스 해럴과 같은 일부 학자들은 기술을 활용한 그들의 작업을 아프리카 미래주의보다 더 구체적으로 파악하는데, 그래서 해럴은 그것을 ‘영감적 소설’이라고 주장한다. 아프리카 미래주의는 사변 소설과 그것을 생산하는 예술가들, 연구하는 학자들을 넘어선다. 애나 에버렛의 글 “혁명은 디지털화될 것이다”와 알렉산더 웨헬리이의 “갈망”은 아프리카 미래주의가 처음으로 일어났을 때부터 학문 탐구의 한 영역으로서 흑인들의 기술 활용에 대한 자기 나름의 학문적 배경을 가지고 사변 소설의 논의에 참여해 왔다. 기술은, 단순히 은유로만이 아니라, 아프리카 미래주의 사상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운동은 오늘날의 기술과 관여하고 미래의 기술을 상상하면서, 무시되고 있던 흑인의 목소리를 회복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마크 데리는 20세기 과학 소설의 상당수에서 흑인의 과거를 지워버리고 미래를 미리 폐제하는 식으로 그들을 표현하고 있는 방식에 대응하는 것이 아프리카 미래주의의 주요 목표 중 하나라고 언급했다. 아프리카 미래주의 학자 알론드라 넬슨은 이 아이디어를 확장하여 대중문화를 통해 흑인의 기술 참여가 구축되어온 방식을 좀 더 파고든다. 그는 아프리카 미래주의가 이렇게 ‘원시적인’ 상태 혹은 고대 문화로 아무 문제없이 회귀하는 미래를 그리거나 혹은 모든 인종 정체성이 지워진 곳으로서 고도로 기술화된 미래를 가정하는 방식으로 흑인을 부재하는 것으로 만들면서, 그들을 뒤에 남겨둔 채 고도화된 기술로 이루어진 미래를 그리는 비전에 대항한다고 언급한다. 이러한 미래 비전은 모두 마찬가지로 흑인성을 반기술적인 것으로 구성한다.

 

흑인성을 반-기술로 재현하는 데에 맞서면서, 아프리카 미래주의는 그 동안 간과되었던 기술 혁신가, 발명가, 얼리 어답터로서의 흑인의 역사에 주목한다. 이 역사를 주목하면서, 아프리카 미래주의는 구전을 통해 비공의 작품 등의 아프리카 미래주의 작품은 미래의 흑인을 상상하기 위해 과거를 다시 생각한다. 그러면서 미래에 대한 비전을 ‘과거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그로 인해 뒤처지지 않고, 연속성을 유지하면서도 완전히 탈바꿈한’ 아프리카계의 디아스포라 경험으로 재창조한다.

 

사변 소설이나 학문연구, 기술 활용에서부터 사회 운동에 이르기까지 이토록 넓은 분야를 포함하는 영역으로서, 아프리카 미래주의는 사상가 및 사회운동가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이 네트워크는 활동의 영역 간에 연결점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느슨한 연계를 통해 형성된다. 이러한 연계와 동시에 여전히 각 영역 사이에 존재하는 공간은 간극이나 단절처럼 보이는 부분을 포함한 하나의 회로망을 형성한다. 그러나 이런 간극은 균열이 아니라 시냅스로 볼 수 있다. 시냅스는 두 개의 신경세포 사이에 있는 공간으로 메시지가 교환되는 곳이다. 한 신경세포에서 다음 세포로 이어지는 연결 지점에 있는 이 단락은 전기 신호가 화학 신호로 혹은 그 반대로 바뀌면서 메시지가 형성되는 곳이다. 따라서 간극처럼 보이는 곳에서 소통에 휴지가 생김에도 불구하고 그곳에서 메시지가 형태를 변형하면서 연결은 지속된다. 나는 이 논의의 다양한 결절이 서로 연결되는 양상을 이런 식으로 바라본다. 나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과학소설 작가인 옥타비아 E. 버틀러가 그들이 마주치는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권력을 재분배하는, 공동체적인 동시에 개인적인 지식 생산의 결절들로 구축해놓은 작품에 담긴 네트워크에서 영감을 받는다. 이는 버틀러의 단편소설 「특사Amnesty」에 가장 선명하게 표현되어 있다. 이 소설에는 다수의 개별적 정체성이 보다 큰 하나의 단위들 사이에서 분배되고 공유되는 ‘공동체’로서 존재하는 외계존재가 등장한다. 이 존재들 사이의 연결은 보이지 않고, 개인이 모인 집단은 공동체 사이를 이동할 수 있지만, 그들은 결코 단절되지 않는다. 그들은 항상 자신의 공동 결절 안에 갇혀 있지만, 그러면서도 특정 자율성을 유지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부분은 그들이 그들 사이의 작은 공간을 건너뛸 수 있는 전기 자극을 사용하여 소통한다는 점이다. 나는 이 비유를 바탕으로 ‘시간 여행, 무기화된 음악 기술, 인류학적 시선 및 반기술적 흑인성의 개념을 해체하여 리믹스한 역사’라는 내 주장의 사이보그식 분절을 따라간다. ‘공동체’라고 불리는 이러한 존재가 서로를 연결해주는 전기 자극을 통해 지식 생산의 다중 결절의 영역을 형성하는 「특사」처럼, 다양한 아프리카 미래주의 집단들 사이에서도 메시지가 그런 식으로 전달된다. 때로는 전기 자극으로 직접 연결되어 이동하기도 하고, 때로는 화학 신호로 전환되어 세포 간의 간극을 뛰어넘기도 한다. 이로 인해 전혀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아이디어들이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연결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소통 방식의 변화를 통해 근본적으로 신체의 한계 및 신체가 공동체 안에서 다른 사람과 연결되는 방식을 재해석할 수 있다. 이렇게 생각이 ‘전기적’인 것에서 ‘화학적’인 것으로 전환되며 공유된 메시지를 서로 다른 방법으로 전달하는 양상은 우리가 예술과 학문 그리고 아프리카 미래주의 공동체 안에서 성장하고 있는 액티비즘 간의 연관성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방식이기도 하다. 이론과 실천이 상호작용하며 해방이라는 목표를 밀고 나갈 새로운 방법을 찾는다. 시냅스 회로로써의 공동체라는 개념과 음악적 기술을 통해 자아 및 시간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소통은 디지털 그리오로서 자넬 모네의 역할로 분명히 드러나지만, 아프리카 미래주의 세계 전체에 걸쳐 나타나기도 한다. 서로 단단히 얽혀 있는 아프리카 미래주의의 음악, 시각 예술, 문학의 부속물, 과학 및 과학 소설, 그리고 흑인의 스토리텔링 전통은 그들이 완전히 벗어날 수 없으며 미래의 공동체를 재조합하고 상상하기 위해 과거와 미래를 오가며 시간을 가로질러 연결점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생각의 공동체 속에 깊이 스며 있다. 이러한 아프리카 미래주의의 부속물들 사이의 절합이 우리에게 완전히 선명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해도, 이는 우리가 그들이 주고받는 영향의 경로를 탐구하며 차츰 드러난다.

 

 

 

*본 게시물에는 각주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논문 전편이 공개된 후에 각주를 포함한 텍스트를 제공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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