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홉스의 자연법 이론과 리바이어던, 그 비참함에 대하여 (2/2)

 

백선우(서교인문사회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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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홉스의 자연법 이론과 그 한계

 

  이 장에서는 앞서 살펴본 홉스의 자연법 이론과 코먼웰스와 시민법 혹은 실정법, 자연법과 실정법의 관계 등에 관해 비판적으로 고찰해보고자 한다. 우선 홉스의 경험론적 방법론에 대한 비판로부터 시작하여, 1자연법의 모순과 홉스의 일면적 자유 개념에 대한 비판,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연법과 실정법의 관계에 대한 비판을 다루고자 한다.

 

3.1. 홉스의 경험론적 방법론에 대한 비판

  홉스는 인간의 본성과 자연상태로부터 자연법, 코먼웰스의 성립과 시민법까지 이어지는 논증을 통해 자신의 정치철학을 개진한다. 여기서 핵심이 되는 것은 인간의 본성과 그로 인한 전쟁상태에 있는 자연상태, 그리고 이 자연상태의 비참함이라는 가치평가이다. 다시 말해 인간의 본성이나 자연상태에 관한 홉스의 명제가 타당한 것으로 증명될 수 없다면, 이후 코먼웰스의 성립이나 시민법과 같은 명제들 역시 타당한 것으로 증명될 수 없다.

홉스는 근대 경험론의 선구자인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의 개인 비서로 일했으며, 이는 이후 홉스의 경험주의에 큰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홉스는 인간의 본성으로부터 전쟁상태로의 진입을 논증하며, “나의 추론이 과연 경험적으로도 뒷받침될 수 있는지”(172)에 대해 몇 가지 경험적 증거를 제시한다. 홉스가 제시하는 증거는 여행을 갈 때 다수의 사람들과 무장한 채로 간다는 것, 잠들기 전 문단속, 금고를 사용하는 것 등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자연상태에 대해서는, 홉스 자신도 모든 역사가 필연적으로 자연상태에서 출발한다거나 자연상태가 필연적으로 존재한다고는 주장하지 않았으며, 이러한 주장은 홉스 자신의 경험론적 방법론과도 맞지 않는다. 하지만 홉스는 여전히 어떤 지역, 예를 들어 아메리카 곳곳에서 많은 야만족들이라고 말하는 당시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이 여전히 국가가 없는 상태로 자신이 말하는 자연상태와 유사한 비참한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한다.(173)

  헤겔은 자연법에서 홉스, 로크 등 경험론적 방법론에 입각한 자연법 이론을 비판한다. 우선 홉스는, 앞서 살펴본 것처럼, 몇 가지 중요한 명제들, 예컨대 인간의 본성, 자연권, 자연상태 등을 단적으로 규정하는데, 이러한 개념들은 홉스의 이론에서 부차적인 개념들이 아니라 이론 전체의 근거가 되는 핵심 개념들이다. 그러나 홉스는 이러한 개념들을 엄밀하게 규정하지 않으며, 몇 가지 경험적 근거들을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왜 인간의 본성은 자기보존이며, 왜 자연상태의 인간은 전쟁상태에 놓이게 되어야만 하는가?

  경험적 인식에서 인간은 이기적이기도 하며, 자기보존을 추구하기도 하며, 다른 한편 이타적이기도 하며, 자기희생적이기도 하다. 헤겔은 (홉스만이 아니라 경험론 일반에 대한 비판이기는 하지만) 홉스가 이러한 개별 규정들 중 하나의 특정한 규정을 자의적으로 선택하여, 보편성 혹은 인간의 본성으로 격상시킨다고 비판한다.(G.W.F. 헤겔, 자연법, 김준수 옮김, 한길사, 2015. 역자의 해제 근대 자연법론 비판과 절대적 인륜성의 체계21~26p 참조) 홉스에게 인간에 관한 수많은 개별 규정들 중 왜 하필 자기보존을 인간의 본성으로 규정하는지에 대한 근거는 오직 몇몇 역사적-경험적 사례들이 있을 뿐이다. 사실 더 큰 문제는 바로 자기보존이라는 인간의 본성이 이후의 리바이어던의 성립과 절대적 권리를 가진 주권자를 정당화하기 위한 근거가 된다는 점이다. 인간의 본성, 자유, 자연상태가 비참한 전쟁상태로 귀결되기 때문에, 인간은 그러한 권리를 리바이어던에 양도함으로써, 이러한 자유와 권리를 포기해야만 한다. 그리고 리바이어던 안에서는 통치형태의 변경, 저항, 주권박탈 등 어떠한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이러한 방식은 근거로부터 결론을 도출하는 방식이 아니라, 오히려 잘못된 결론의 정당화를 위해 정당화되어야할 근거를 오히려 먼저 정당화된 것으로 가정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3.2. 1자연법의 모순과 일면적 자유

  홉스에 따르면, 1자연법은 “[1] 모든 사람은, 달성될 가망이 있는 한, 평화를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2] 평화를 달성하는 일이 불가능할 경우에는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어떤 수단이라도 사용해도 좋다라는 것이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1자연법의 앞 문장은 자연법의 요구를 표현하고 있으며, 뒷 문장은 자기보존이라는 자연권을 표현하고 있다. 1자연법은 자연법의 명제와 자연권의 명제의 선언지로 이루어져있다. 이를 재구성하자면, 1자연법은 ‘[A] 평화가 달성될 가능성이 있다면, 평화를 얻기 위해 노력해야하고, [B] 평화가 달성될 가능성이 없다면, 모든 수단을 사용해서 자기보존을 위해 노력해야한다.’로 표현될 수 있다. 따라서 홉스의 제1자연법은 평화-권리포기 혹은 전쟁-자연권이라는 두 가지 선택지를 우리에게 강제하며, 이후 홉스의 논의는 평화-권리포기-신의계약의 준수 등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평화의 추구가 자연권의 포기를 요구하는 한에서, 앞의 문장은 평화가 달성될 가능성이 있다면, 자연권을 포기해야하고, 평화가 달성될 가능성이 없다면, 자연권을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로 정식화될 수 있으며, 이는 ‘AB, -A-B라는 형식으로 표현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제1자연법에는 이미 자연권과 자연법의 모순, 혹은 자유와 법의 모순이 함축되어있다.

이와 같은 모순은 홉스의 협소한 자유 개념에 의해 생겨난다. 홉스는 자유와 자연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일반적으로 학자들이 ‘자연적 권리(jus naturale)라고 부르는 ’자연권‘(right of nature)은 모든 사람이 그 자신의 본성, 즉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자기 뜻대로 힘을 사용할 수 있는 자유, 즉 그 자신의 판단과 이성에 따라 가장 적합한 조치라고 생각되는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자유를 말한다. ...... 자유(liberty)란 말은 정확히 말하면 외부적 방해의 부재를 의미한다. (176)

  이처럼 홉스는 자유를 단지 외적인 방해의 부재 상태라는 부정적 규정으로만 파악하고 있으며, 권리라는 말은 이런 자유의 사용 외에 어떠한 규정도 표함하고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홉스는 자유에 이어서 권리와 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

흔히 ‘권리’(jus)와 ‘법’(lex)을 같은 뜻으로 혼용하는데, 이 둘은 서로 다른 개념이다. 권리는 어떤 일을 하거나, 혹은 하지 않을 자유를 말하는 반면, 법은 어떤 일을 하도록 지시하거나 혹은 하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법과 권리는 의무와 자유만큼이나 다르며, 똑같은 방식으로 서로 다른 말이다. (177)
최고의 학식을 자랑하는 저술가들조차 ‘시민법’(lex civilis)과 ‘시민권’(jus civile)을 같은 것으로 혼동하는 경우가 있는데, 잘못된 일이다. 왜냐하면 ‘권리’는 ‘자유’, 즉 시민법이 우리에게 남겨준 자유를 말하는 반면, ‘시민법’은 ‘의무’이며, 자연법이 우리에게 부여한 권리를 가져가는 법이기 때문이다. (376)

자유에 대한 협소한 이해는 결국 권리와 법이 서로 다른 개념, 즉 권리는 자유를 의미하며, 법은 자연권을 가져가는 것이며, 하나의 의무 혹은 강제이고, 따라서 자유의 제약이다. 홉스처럼, 자유를 단지 외적인 방해의 부재로 이해한다면, 자연권과 자연법은, 또 자유와 법은 서로 모순되는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홉스는 스스로 코먼웰스의 성립과 시민법의 제정 이후에도 가능한 자유와 권리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홉스가 “‘권리’[즉 시민권]자유’, 즉 시민법이 우리에게 남겨준 자유라고 말하는 것처럼, 여기서 자유 혹은 권리는 자연상태에서의 만물에 대한 무제약적 자유나 권리는 아니지만, 법 안에서 여전히 보존되어 있는 자유, 아니 더 정확히 말해 법에 의해서만 보호될 수 있는 자유와 권리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자연상태에서의 인간의 자유가 인간을 전쟁상태에 놓이게 만들기 때문에 자유의 파괴로 귀결되는 것이었다면, 코먼웰스와 시민법 제정 이후 사회상태에서는 바로 이 코먼웰스 안에서 보장되는 자유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홉스의 소유에 대한 논의에서도 이와 같은 단초가 나타난다. 자연상태에서 인간은 만물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자연상태가 전쟁상태로 귀결되는 한에서, 인간은 항상 약탈이나 침략의 위험에 놓여있기 때문에, 어떤 것을 확실한 나의 것으로 소유할 수 없다 :

전쟁상태에서는 소유(propriety), 영유(dominion)도, ‘내 것’과 ‘네 것’의 구별도 존재하지 않는다, 획득 가능한 모든 것이 자기 것이며, 자기 것으로 유지 가능한 기간 동안 자기 것이다. (174)
그들이[시민들]이 보편적 권리를 포기한 대가로 상호계약에 의해 소유권(propriety)을 확보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 ...... 그러므로 ‘각자의 것’, 즉 소유권이 없는 곳에는 불의가 없으며, 어떤 강제력, 즉 코먼웰스가 없는 곳에는 소유권이 없다. (195)
주권자는 백성 각자가 동료 백성의 간섭을 받지 아니하고 누릴 수 있는 재산이 무엇이며, 할 수 있는 활동이 무엇인지에 대한 규칙을 제정할 수 있는 전권을 가지고 있다. 그 규칙이 바로 사람들이 ‘소유권’(propriety)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 주권이 설립되기 이전에는 (이미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만인이 만물에 대해 권리를 가지고 있었고, 그것이 바로 전쟁의 필연적인 원인이었다. 따라서 소유권은 평화를 위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주권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공공평화의 유지를 목적으로 한 주권의 행동이다. 소유권, 즉 ‘내 것’(meum)과 ‘네 것’(tuum)에 대한 규칙, 백성들의 행동에서 선과 악, 합법과 불법에 대한 규칙 등이 바로 시민법(civil laws)이다. (241~242)

이처럼 전쟁상태에서 오직 나의 것으로 유지할 수 있는 동안에만 가능한 소유, 더 정확히는 점유만이 존재하는 것과 달리, 코먼웰스와 시민법의 형성 이후에 시민들은 권리의 상호양도를 통해 보장받는 소유권, 곧 시민법에 의해 보장되는 소유권을 가지게 된다. 이는 소유에 관한 권리가 오직 국가와 법에 의해서만 부여될 수 있으며, 또 이를 통해서만 보장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홉스가 권리와 법을 자유의 긍정과 자유의 부정으로 파악하면서, 서로 대립되는 것으로 간주했던 것과 달리, 참된 의미에서의 권리는 국가나 법에 의해서 부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보장되는 것이다. 독일어에서는 이러한 권리와 법의 밀접한 관계가 더 잘 드러나는데, 독일어에서 권리(das Recht)와 법(das Recht)은 동일한 단어이다. 예컨대 칸트(Immanuel Kant, 1724~1804)에게서 법은 한 사람의 자유가 다른 사람의 자유를 상충되지 않도록 모든 사회의 구성원에 대해 외적 행위를 제약하는 것이지만, 이는 자유에 대한 억압이 아니라, 오히려 자유의 실현을 위한 적극적인 조건이다. 그러나 홉스에게서 이러한 법 안에서의 자유나 권리에 관한 단초들은 더 이상 발전되지 않는다.

 

3.3. 리바이어던과 주권자의 권리. 자연법과 실정법의 관계

  홉스의 정치철학에서는 코먼웰스, 곧 리바이어던의 설립 이후에 주권자에 대한 어떠한 저항권도 허용되지 않는다. 이에 관해 홉스는 18장 설립에 의한 주권자의 권리에 대하여에서 모든 시민들의 권리를 양도받은 주권자의 다음과 같은 권리에 대해 언급한다 : “1. 백성은 통치형태를 변경할 수 없다”, “2. 주권은 박탈되지 아니한다”, “3. 다수에 의해 선포된 주권의 설립에 항의하는 것은 불의이다”, “4. 주권자의 행위를 백성이 비난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5. 백성은 주권자의 어떤 행위도 처벌할 수 없다.”(18장 설립에 의한 주권자의 권리에 대하여참조)  어떠한 경우에도 주권자의 행위를 처벌할 수 없는 것은 이러한 처벌의 기준이 되는 법이 다름 아니라 주권자의 말(word), 곧 시민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일한 입법자로서 주권자는 시민법을 초월한 존재로 법에 의해 처벌받을 수 없다. 반면 시민들, 아니 백성들(subjects)은 자연법의 요구에 따라 한 사람 혹은 합의체에 계약을 통해 권리를 상호 양도하며, 이에 따라 계약을 준수하며, 양도된 권리의 행사를 방해하지 않을 의무를 가지기 때문에, 홉스의 이론 안에서는 원칙적으로 시민들의 저항권의 가능성이 제시되기 어렵게 된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것처럼, 리바이어던, 곧 코먼웰스에서 유일한 입법자는 주권자이며, 주권자의 말이 곧 시민법이기 때문에, 이러한 저항권의 부재는 결국 한편으로 주권자가 절대적 권력을 갖게 되는 절대군주에 관한 옹호로 귀결되며, 다른 한편으로 인간의 자연권이나 자연법의 요구가 실정법에 대한 어떠한 규제적 역할도 할 수 없게 만든다. 우선 절대군주에 관한 옹호론에 관해서 보면, 홉스 스스로도 이러한 논의가 결국 주권자에게 절대적 권력을 부여하며, 이에 따라 무제한적인 권력을 가진 자의 정욕과 변덕스런 정념에 백성들이 좌지우지된다면 백성들의 상태가 너무 비참하지 않은가”(246)라는 반론이 제기될 가능성을 알고 있다. 하지만 홉스는 이러한 반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한다 :

인간은 어떤 경우에도 불편이 전혀 없는 상태에 있을 수는 없다. 또한 통치형태를 불문하고 인간이 겪는 그 어떠한 극심한 불편도 ...... 법에 대한 복종도 없고, 약탈과 복수를 못하도록 그들의 손을 묶는 강제력도 없이, 즉 지배자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전쟁상태로서 자연상태에 있는 인간들]의 분열 상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247)

즉 홉스는 절대군주의 폭정이라는 위험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자연상태보다는 비참한 상태라는 점에서 여전히 주권자의 절대적 권리를 옹호하고 있다.

  다른 한편 홉스가 여전히 주권자의 절대적 권리를 옹호하는 한에서, 또 다른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처음 살펴본 것처럼, 홉스는 인간의 본성과 자연권, 자연상태의 비참함으로부터 자연법, 그리고 코먼웰스와 시민법 형성의 필연성에 논의로 나아간다. 또한 앞서 홉스는 자연법과 시민법, 곧 실정법 사이에 상호 연관성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한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것처럼, 홉스에게서 자연법과 실정법의 관계가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지 않다. 또한 홉스가 주권자가 절대적 권리를 가지고 있는 동시에 어떠한 경우에도 주권자에 대한 저항이 정당화되지 않는 한, 그리고 주권자가 하나의 국가 안에서 유일한 입법자로서, 실정법이 주권자의 말이라면, 결국 자연법과 실정법은 앞서 언급한 후자의 경우, 즉 자연법과 실정법이 상이한 계열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이러한 경우에 자연법은 실정법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 없으며, 실정법의 입법 원리나 규제적 원리로도 역할을 할 수 없다. 따라서 자연법은 법의 구성적 원리가 아니라 단지 주권자의 말인 실정법의 외부, 곧 자연상태에서만 의미를 가질 수 있을 뿐이다. 이러한 홉스의 논의 때문에, 홉스는 법실증주의의 선구자로 지목되기도 한다 :

앞서 리바이어던의 권능에서 언급하였듯이, 홉스의 이론 안에서 저항권은 원리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특별히 부정의한 실정법을 무효화시킬 수 있는 근거로서의 자연법 관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어떠한 내용의 법도 적법한 권위를 가진 자가 공포하면 실정법이 되는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취했다. 이는 현대 법률실증주의자들의 일반적인 주장과 연결된다. (이상영·이재승, 『법사상사』, 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문화원, 2014, 201~202)

 

 

4. 나가면서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홉스는 인간의 본성과 자연상태로부터 출발해서 국가와 시민법의 필연성에 대한 논의를 통해 자신의 정치철학을 전개한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것처럼, 홉스의 이론은 1) 경험론적 방법론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인간의 본성이나 자연상태와 같은 논증의 출발점을 단지 몇몇 경험적 사례만을 제시하는데 그치면서, 이를 정당화하는데 실패하며, 또 이것이 단지 자신의 결론, 곧 리바이어던을 정당화하기 위한 근거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를 드러낸다. 또한 2) 자유에 관한 잘못된 이해, 곧 자유를 외적인 방해의 부재라는 자유의 일면적 의미만을 파악함으로써, 여러 차례 자유와 법, 혹은 권리와 법의 밀접한 관계의 단초들을 제시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충분히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3) 결국 이러한 자유에 관한 일면적 파악은 홉스를 주권자의 절대적 권리를 옹호하는 입장으로 나아가게 만들며, 이는 자연법과 실정법 사이의 모호한 관계설정과 결합되어, 결국 자연법과 실정법의 관계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법실증주의와 같은 입장으로 나아가도록 한다. 이에 따라 자연법은 실정법 체계 내에서 어떠한 구성적 원리나 규제적 원리로 작용하지 못하며, 리바이어던 안에서의 입법과 완전히 무관한 것으로 드러난다. 만약 실정법에 대한 어떠한 규제적 원리를 설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실정법의 입법자()의 무제약적인 권리 역시 제약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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