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균 털어내기 : 김용균 사망사고와 중대재해처벌법
김용균 털어내기 : 김용균 사망사고와 중대재해처벌법
전주희 | 서교인문사회연구실
* 이 글은 황해문화 122호(2024.03)에 실린 글입니다.
황해문화 통권 제122호 - 새얼문화재단 논문 : 전문잡지 - DBpia
1. 김용균 사망사고에 대한 사법적 결론
2023년 12월 7일, 김용균 사망사고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내려졌다.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업무상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기소된 김병숙 전 한국서부발전(주)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한국서부발전(주) 태안화력발전소의 하청노동자 김용균이 점검 중이던 컨베이어벨트에 신체가 빨려 들어가 사망한 사건은 5년 전, 2018년 12월 11일에 발생했다. 김용균 5주기를 며칠 앞두고 대법원 판결을 끝으로 김용균 사망사고에 대한 사법적 결론은 모두 이뤄졌다.
원청인 한국서부발전의 대표이사는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형법상 업무상과실치사죄는 물론 산업안전법 위반 책임도 인정되지 않았다. 한국서부발전 태안발전본부장에게도 1심에서 유죄로 판단되었던 업무상과실치사죄와 산업안전법 위반 행위에 대해 2심에서는 모두 무죄가 선고되었다. 한국서부발전의 임직원은 아무도 산업안전법 위반의 책임을 지지 않았고, 다만 업무상과실치사죄가 인정된 사람은 태안발전본부의 기술지원처장과 연소기술부장, 연소기술부 차장, 석탄설비부장, 석탄설비부 차장과 같은 중하위급의 관리자들이었다.
하청인 한국발전기술(주)의 대표이사에 대해서도 1심은 업무상과실치사와 산업안전법 위반 모두 유죄로 보았지만, 2심은 업무상과실치사만 유죄로 인정했다. 한국발전기술에서 모두 유죄가 인정된 사람은 현장 관리자라고 할 수 있는 태안사업소장 1명 뿐이었다.
지난 5년간 이뤄진 재판결과를 요약하면, 2020년 8월 검찰이 원청과 하청 기업과 사장 등 14명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했으나 법원은 원청 대표에게 책임이 없다는 판단을 1심부터 유지했을 뿐만 아니라, 그나마 유죄 판결을 받은 일부도 2심을 거치면서 모두 집행유예 또는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그 결과 김용균 재판에서 실형을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김용균 사망사고에 대한 사법부의 결정을 비판하기 위해서 우리는 24세의 구미 청년, 중층적인 원·하청 구조의 가장 아랫단에 있었던 하청업체 계약직 노동자의 사망사고가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되짚어보는 것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다.
김용균 노동자의 사망사고는 한국사회에서 이례적으로 ‘사건화’되었다. ‘아무개’의 죽음으로 신문지면에 단신으로 보도되는 것조차 그날 하루의 때 이른 죽음들에게 다 돌아가지 못할 정도로 노동자 사망사고가 흔해빠진 사회에서 ‘발전소 하청노동자 김 아무개’의 죽음은 SNS 등을 통해 빠르게 퍼져나갔다. 처음에는 석탄을 나르는 컨베이어벨트에 몸이 빨려 들어가 등이 다 타고, 머리와 몸이 분리된 채 사망했다는 충격적이고도 끔찍한 소식이 삽시간에 퍼졌다. 얼마안가 ‘김용균’의 이름과 살아생전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노동자와 만납시다’ 손 피켓을 든 사진이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안전모에 내려앉은 석탄가루와 뿔테안경, 방진마스크는 무심하게 활자화된 ‘00작업장 끼임사고’가 아니라 ‘김용균의 얼굴’로, 불과 얼마 전까지 살아있었다는 구체적인 증거로 나타났다.
유가족은 장례를 무기한 미룬 채 싸움을 선택했다. 덕분에 우리는 죽음의 실체에 다가갈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할 수 있었다. 언론을 비롯해 시민사회는 김용균의 비극적인 죽음에 머물지 않고 ‘위험의 외주화’라는 사건의 본질에 빠르게 다가갔다.
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 씨는 ‘아들의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 뿐만 아니라 ‘아들의 동료들’의 안전을 원했다. 그 결과 2018년 12월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하 ‘개정 산안법’)이 통과되었다. 28년만의 전부개정이었다. 개정 산안법은 원청(도급인)의 산업재해 예방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정되었다. 발의되었지만 국회에서 잠자던 법안은 김용균이 사망한 지 16일 만에 전격적으로 통과되었다. 그러나 2016년 5월 구의역 ‘김군’이 사망한 후 ‘위험의 외주화’를 막아야 한다는 사회적 여론으로 이미 수차례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발의된 지 2년이 지난 후, 나아가 2000년 이후 연평균 2,100여명의 노동자가 사망한 뒤에야 국회가 움직인 것이다.
‘김용균법’의 별칭을 갖게 된 개정 산안법의 한계는 명확했다. ‘위험의 외주화’를 금지하는 법이 되어야 한다는 노동계의 요구와는 달리, 개정된 법은 대부분의 외주화를 허용하되 원청(도급인)의 산재예방 책임을 확대하는 우회적인 방식을 택했다.
개정 산안법의 한계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운동’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2021년 1월 8일, 산업재해와 시민재해를 포함하여 중대재해가 발생한 경우 기업의 경영책임자 등을 처벌하는 내용의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되었다.
김용균 사망사고가 한국사회에 끼친 영향은 넓고 깊다. 우선 세월호 참사 이후 생명·안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그간 구조적으로 분리되어 있던 노동자 위험까지 연결되는데 구의역 ‘김군’ 사망사고와 김용균 사망사고가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물론 노동자들의 위험은 여전히 시민의 안전 혹은 소비자의 불편과 손쉽게 맞바꿔질 수 있을 만큼 구조적이고 체계적으로 분리되어 있지만 적어도 구의역 ‘김군’과 김용균 사고는 오랫동안 구축된 분리의 감각을 단숨에 넘어선 ‘사건’이었다.
다음으로 개정 산안법을 넘어 중대재해처벌법 제정까지의 흐름은 경총 등 기업계와 친기업측 전문가가 ‘떼법’ ‘포퓰리즘법’이라고 맹렬하게 비난할 정도로 광범위한 지지여론과 함께 ‘산업재해’를 기업의 범죄로 재정의하는데 성공했다. 물론 중대재해법을 둘러싼 투명한 계급적 이해가 여전하고, 윤석열 정부와 여당의 노골적인 중대재해법 무력화 시도, 더불어민주당의 위태롭고 갈팡질팡하는 태도, 검찰과 사법부의 느슨한 법 적용이 여전히 중대재해법의 효과를 의문시하고 있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김용균 이후’의 변화는 ‘김용균 사망사고’의 사법적 결론, ‘원청대표의 무죄’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을 뒷받침해주기도 한다. 안타깝게도 김용균 사고 이후에 개정된 산안법, 제정된 중대재해법은 모두 김용균 사망사고에는 적용할 수 없다. 김용균 재판은 모두 당시의 구 산안법(2019.1.15. 법률 제16272호로 전부 개정되된기 전의 것)이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2018년 12월 10일 김용균 사망 당시 구 산안법은 원청(도급인)이 하청노동자의 안전보건조치에 대한 공동책임을 부과하고 있으나 22개의 위험장소(추락, 토사 붕괴 등의 위험이 있는 도급인 사업장 내 작업장소)에 한정되어 있어, 그 외의 장소에서 발생한 하청 노동자의 산재에 대해 원청의 책임을 물을 수 없었다. 김용균이 수행했던 컨베이어벨트 작업은 22개의 위험장소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러나 구 산안법을 적용한다고 할지라도 김용균 사망사고에 대한 사법부의 판결은 매우 문제적이다. 이는 현재 산안법을 전부 개정하고, 중대재해처벌법을 새로 만들었다는 것만으로 노동재해가 획기적으로 줄어들지 않고 있는 근본적인 원인과 맞닿아있다. 또한 사업주의 예방의무를 중심으로 한 산업안전법과 노동자가 겪은 산업재해를 보상하는 사회보험제도인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한계가 산업재해를 기업 범죄로서 처벌하고자 하는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으로 이어지게 된 것과도 연관되어 있다. 다시말해 법의 미비, ‘사업주는 예방하고 노동자는 보상받는다’는 느슨한 낙관이 야기한 구조적인 폭력으로서 노동재해의 장기적인 방치가 한쪽으로 있었고, 산안법 위반에 대한 형사책임을 사실상 무력화하는 느슨한 법집행이 ‘기업활동 보장’ ‘산업평화’ 등의 외피를 쓰고 관행으로 고착된 것이 다른 편에 있다.
2013~2017년 5년간 산안법 위반관련 1,714건의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산업안전법 위반 사범 중 징역 및 금고형은 2.93%에 불과하며, 90% 넘는 비율이 집행유예와 벌금형을 선고 받았다. 벌금형의 경우 지난 5년간 평균액은 자연인의 경우 약 421만원, 법인의 경우 약 448만원이었다.
이러한 문제는 중대재해법을 제정하게 된 결정적 원인이지만, 거꾸로 중대재해법 제정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법과 법적용의 문제, 법의 규범적 효력과 이를 둘러싼 계급투쟁과 사회적 갈등이라는 좀 더 복잡한 문제와 결부되어 있다. 중대재해법이 시행된 지 2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논란이 한창인 것은 이 때문이다.
때문에 김용균 사망사고 판결은 이제는 과거의 것이 되어버린 구 산안법의 한계로 인한 불가피한 결과가 아니다. 김용균 판결은 김용균 사망사고로 불거진 노동자의 위험과 죽음을 둘러싼 문제를 김용균 사망 이전의 행태로 반복한 사법적 행위라는 점에서, 여전히 법의 소극적 적용이라는 관행을 성찰없이 이었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더욱이 1심, 2심, 대법원 판결까지의 기간은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되고 노동자 사망사고에 대해 법원이 기업과 사회에게 이전과는 다른 규범을 제시해야할 시기였다. 법원은 이러한 의무가 있음에도 이를 고려하지 않았다. 법 적용의 완고함 이면에 우리 사회에 뿌리깊은 반노동자적, 친기업적인 기득권 세력의 완강한 저항으로 읽히는 것은 과도한 해석일까.
2. 김용균 판결문에서 빠진 것
김용균 사망사고와 관련해 김용균 특조위(‘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 이하 ‘특조위’)가 제출한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조사결과 종합보고서>(2019.9.)는 사법부의 결론과 다른 결론을 제출했다. 특조위의 보고서와 사법부의 판결은 수사와 조사의 차이, 처벌과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는 목적의 차이 외에도 사망사고를 둘러싼 구조적 원인과 책임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대한 차이를 드러낸다.
1심과 2심 판결문에서 가장 문제적인 것은 판결의 논리가 오히려 ‘위험의 외주화’를 정당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주요 논거로 첫째, 원청인 서부발전과 김용균은 ‘실질적 고용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산업안전법상 원청의 책임을 물을 수 없어 무죄라는 것이고 둘째, 원청의 경영책임자는 김용균이 수행한 업무의 안전조치 의무에 대해 “일반적, 추상적 주의의무”가 있을 뿐, “직접적, 구체적 주의의무”는 없기 때문에 무죄라고 주장했다.
우선, 구 산안법에서 원청(도급인)이 하청(수급인) 노동자 사망에 대해 형사 책임을 지려면 도급인과 수급인 근로자 사이에 ‘실질적인 고용관계’에 있는 경우여야 한다.
법원은 원청인 서부발전이 1) 컨베이어벨트를 비롯해 발전소 모든 설비의 소유자로서 설비에 대한 운전, 정비 등에 관한 권한을 바탕으로 설비에 대한 운영 전반을 실질적으로 관리 감독했으며 2) 유기적으로 연결된 공정 전체를 관장하면서 하청 노동자를 작업에 투입하는 시기와 인원, 이들의 노동시간과 노동형태의 변경, 설비 운전방법 등에 직접 관여했으며, 3) 매일 아침 작업전 진행되는 안전회의를 통해 하청업체 소속의 노동자에게 작업 내용과 작업시 주의사항을 직접 전달하거나 카카오톡, 문자메세지, 구도, 전화 등을 통해 개별 작업에 관여하고 감독한 점 등을 모두 인정하면서도 ‘실질적 고용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원청과 하청 관계로 이루어진 도급계약은 사용자와 노동자의 관계를 원청사용자와 하청사용자의 도급계약으로 전환하고, 하청노동자와의 직접적인 고용관계를 부정하는 것에 있다. 이러한 도급계약을 안전보건 측면에서 살펴보면, 원청(도급인)은 일의 완성에 대한 보수만을 지급할 의무를 부담하기 때문에 일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위험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별도의 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 이것이 ‘위험의 외주화’가 법적, 제도적 보증을 바탕으로 확대된 기본 원리다.
반면 특조위 보고서는 하청노동자가 처한 위험의 생산자가 누구인지, 누가 사업장 내의 위험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는지를 규명하고자 했다. 또한 분절된 원·하청 구조가 위험을 아래로 전가하고 위험책임의 공백을 야기한 제도적·구조적 원인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위험은 고용형태의 한계 안에 가두어지지 않는다. 원청이 위험을 생산한다고 원청 소속 노동자만 위험해지는 것이 아니다. 때문에 ‘불법파견’ 여부를 다투는 근로기준법상의 법해석과 달리 산업안전법상 ‘실질적 고용관계’는 실질적 위험생산-위험수용관계로 파악해야 한다. 그러나 법원은 ‘외주화된 노동’의 사용을 우선하고, 이를 침해하지 않은 한에서 법을 적용하려다 보니 스스로 인정한 사실관계를 스스로 부정하는 기이한 판결을 내놓았다. 판결문을 보면, 온통 모순투성이의 서술로 가득차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최고 경영자의 ‘책임’ 문제이다. 가령 이런 식이다. 김병숙 서부발전(주) 대표가 있다. 서부발전은 태안발전소 뿐만 아니라 평택, 서인천, 군산, 김포 등의 사업장이 있다. 김병숙은 사고 발생 전인 2018년 3월, 안전보건경영기본계획을 수립하면서 자신을 안전보건최고책임자로 지정했다. 이에 따라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조치인 설비개선과 인력증원은 최고경영자인 김병숙의 승인이 필요한 사항이다. (그리고 한국서부발전에서는 2008년부터 10년동안 44건의 산재사고가 발생했고, 12명이 사망했다.) 그런데 안전에 대한 총괄책임자인 김병숙 대표는 안전에 대한 총괄적인 책임을 지기 때문에 무죄가 될 수 있었다.
“피고인은 태안발전본부 이외에도 한국서부발전의 본사 및 그 산하 발전본부를 포함한 회사 전체의 업무를 총괄하는 대표이사이다...대표이사(최고경영자)는 안전보건 방침을 설정하고 안전보건매뉴얼을 승인하며 안전보건활동을 위한 자원을 제공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그 외에 산하 발전본부별 안전보건관리계획의 수립 및 이행과 작업환경 점검 및 개선, 유해위험 예방조치 등에 관한 사항은 각 발전본부의 안전보건관리책임자에게 위임되어 있었다.... 태안발전본부의 경우 00이 2018.6.경부터 안전보건 총괄·관리책임자로 지정되어 있었으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한국서부발전 본사의 대표이사인 피고인이 이 사건 컨베이어 벨트를 포함한 태안발전본부 내 개별적인 설비 등에 대하여까지 작업환경을 점검하고 위험 예방조치 등을 이행할 구체적, 직접적 주의의무를 가진다고 보기 어렵다.”(대전지방법원 2023.2.9, 2022노462. 71~72쪽. 강조는 인용자)
지금까지 모든 산업안전법 위반자들이 주로 하위관리자에게 집중되는 이유, 원인의 원인이 연결되고 거슬러 올라가지 못하는 이유, 체계와 계통을 따라 책임이 하방되지만 책임추궁이 위로 올라가지 않았던 이유, 그래서 결국 사법적 처벌과 책임이 그토록 가벼웠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법원이 최고경영자에게 준 면죄부는 ‘일반적·추상적 의무’이다. 이들에게 ‘구체적·직접적 의무’는 없다. 총괄적인 안전보건 관리, 감독 의무를 갖되, 구체적인 역할은 하위직들에게 부여하면 될 뿐이다. 그런데 이는 말장난에 불과하다. 체계적으로 배분된 구체적, 직접적 의무를 합치게 되면 최고경영자의 일반적, 추상적 의무가 도출될까?
대표이사가 현장 안전관리자 100명을 고용했다고 치자. 100명의 안전관리자가 대표이사를 대체할 수 없듯이, 여전히 총괄적인 관리, 감독업무는 남는다. 거꾸로 총괄적인 관리, 감독 업무를 위해서는 규모에 따라 현장 안전관리자 100명을 고용해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의무를 배분해야하는데, 그렇다고 관리감독 업무를 100개로 분할해 위임하는 것이 아니라 100개의 구체 업무를 전제로 총괄적인 관리감독 업무가 규정된다. 관리, 감독업무는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안전관리 업무에 대한 설계, 관리, 감독, 평가를 의미하기 때문에 구체적, 직접적 의무와 사실상 구분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개별적인 구체적, 직접적 의무 위에 포개져 있다.
만약 구체적, 직접적 의무가 촘촘하게 배치되지 않거나 빈 공백이 생기면 어떻게 될까? 그것은 일반적, 추상적 의무가 해결해야할 영역이다. 법원에서 물어야 할 것은 이부분이다. ‘작업 현장에서 구체적인 관리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면 이에 대한 총괄적인 관리책임은 무엇을 해야 하며, 이를 제대로 수행했는가?’.
이렇듯 너무도 상식적인 수준의 구조화된 책임이 ‘일반적, 추상적 의무’와 ‘구체적, 직접적 의무’로 분절된 채 법원의 판결에 의해 왜곡되어왔다. 이에 따라 사업장의 규모가 클수록, 최고경영책임자가 현장의 위험에 무관심할수록 책임은 면제되어왔다.
김용균 사건에 대한 판결은 노동자 사망사고가 줄어들지 않고 반복되어 발생해온 문제에 대해 사법부 역시 가담해왔다는 일종의 자기고백이다. 더욱이 김용균 판결문은 앞서 발생한 구의역 ‘김군’ 사망사고에 대한 판결,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망사고에 대한 보다 진전된 판결에 비해 퇴행적인 판결이라는 점에서 더욱 문제적이다. 구의역 사고의 경우 법원이 서울메트로 최고경영자인 사장에게 업무상과실치사죄를 인정했으며, 이에 대한 근거로 최고경영자라고 할지라도 ‘김 군’의 현장에서 2인1조 작업이 실시되고 있는지 관리·감독할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주의의무가 있다고 보았다. 하청 노동자 6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2017년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와 관련해서는 대법원이 원청인 삼성중공업에게 ‘크레인 간 충돌에 따른 대형 안전사고의 발생을 예방할 의무’가 있다는 점을 들어, 1·2심 무죄 판결을 깨고 파기 환송했다.
김용균 특조위 보고서에는 김용균 사망사고의 원인에 대해, 원청인 서부발전이 ‘외주화’를 매개로 어떻게 위험을 전가하고 책임을 회피해왔는지를 분석하고 있다.
“외주화의 가장 큰 문제는 원청인 발전회사가 협력사 및 그 소속 노동자들에 대한 절대적 권한을 유지하면서도 협력사 노동자들에 대한 각종 법적 책임을 회피할 수 있다는 점이다. 협력사 노동자의 안전사고에 책임을지지 않는 발전회사가 그들의 안전을 위한 설비 개선비용을 부담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비용감축을 목표로 한 외주화는 고용불안정과 저임금의 문제를 넘어 소통의 단절과 책임의 공백 상태를 만들어냈고, 그로 인한 새로운 위험은 하청 노동자의 산재사고로 집중되어 나타나고 있다. 그 피해의 상징이 바로 고 김용균이다.”
결국 김용균 판결문에서 빠진 것은 ‘김용균’이다. 판결문은 단지 원청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만이 아니라, 김용균 사망사고에서 김용균을 털어냈다. 이 과정에서 사회적인 논의와 과정을 거쳐 마련된 김용균 특조위의 보고서, 이 보고서가 집요하게 제기한 ‘원·하청 구조’의 문제는 판결문의 주변부로 밀려났다.
3. 중대재해처벌법, 제 2라운드
2023년 12월 7일. 대법원 판결은 짧았다. “상고를 모두 기각한다.”
김미숙 어머니는 판결 이후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국민들에게 죄송하다. 힘이 없다는 게 이렇게 비참할 수가 없습니다. 앞으로 다른 길로 사람들을 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2022년 1월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이후 2년이 조금 안되었을 때 이루어진 대법원 판결은 중대재해법을 둘러싼 그동안의 긴장을 더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에서는 구 산안법과 형법(업무상과실치사죄)의 한계와 중대재해처벌법의 필요가 다시금 중요하게 떠올랐다. 다른 한편에서는 중대재해법 50인 미만 확대 적용을 둘러싼 대통령실과 국민의 힘의 공격, 더불어 민주당의 동요. 경총 등 경제계의 집중적인 공격과 언론 플레이가 법이 50인 미만까지 전면 시행된 1월 27일, 그리고 27일 이후까지 계속되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경영책임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할 목적으로 제정되었다. 제정과정부터 시행된지 2년이 지난 지금까지 중대재재해법을 둘러싼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한편에서는 윤석열 대통령 후보시절부터 공공연하게 중대재해처벌법을 축소하려는 시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1월 27일에 자동적으로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법 적용이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여당, 경제계는 ‘적용 유예’ 카드를 다시 내밀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조차 중대재해법의 50인 미만 적용 유예를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조선일보를 위시로 중대재해법이 확대 적용되면 자영업자와 영세 사업장이 곧 망할 것처럼 공포를 조장하는 보도가 쏟아지고 있으며, 이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을 둘러싼 경제계의 비판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과도한 처벌(엄벌주의)는 예방의 강화로 연결되지 않는다. 둘째, 과도한 처벌은 기업활동을 위축시킨다.
우선 중대재해법의 위헌 논란은 일단락되었다. 2023년 11월 법원은 중대재해를 일으킨 두성산업이 제기한 위헌소송에 대해 중대재해법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중대재해법을 둘러싼 제2라운드는 실효성을 둘러싸고 진행되고 있다. 중대재해법은 처벌 중심이기 때문에 실제 산재예방으로 이어지지 않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재계와 일부 전문가들의 주장이 있다.
정부·여당과 경제계는를 이를 사후적으로 증명하기 위해 법의 적용(검찰 기소와 법원의 선고)를 매우 느리고 약하게 적용하고,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확대 적용을 저지함으로써 법의 사각지대를 광범위하게 만들어 법의 효과를 감소하고자 한다.
50인 미만 적용 유예는 지금까지 실패로 돌아갔지만, 법원은 산업안전법의 솜방망이 처벌을 중대재해법에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법 시행 2년차인 현재까지 선고된 건은 510건의 중대재해 사건 중 13건에 불과하고, 처벌 형량 역시 한국제강 대표의 징역 1년을 제외하고는 모두 집행유예에 그쳤다.
50인 미만 사업장이 안전보건시스템 구축과 안전설비 투자에 어려움이 있다면 정부가 나서서 보다 더 적극적인 지원을 해야한다. 지난 3년간 50인 미만 사업장의 적용을 유예한 것은 정부의 지원을 바탕으로 좀 더 준비할 시간을 부여한 것이다. 그럼에도 추가 유예안을 요구하는 것은 기업의 과실로 인한 노동자의 죽음을 ‘기업범죄’가 아닌, 산업활동에 따른 “부수적 피해”로 되돌리려는 시도로밖에 이해되지 않는다.
‘기업활동의 위축’과 ‘노동자의 생명’은 비교되거나 교환될 수 있는 가치가 아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논리가 반복되는 것은 기업활동의 위축을 곧 공적이익의 침해로 간주하고 노동자의 위험을 사적인 것, 사소한 것으로 만들어 공적 이익(=기업활동)을 우위에 두려는 전도된 인식을 생산한다. 이는 기업의 규모가 작을수록 더 강력한 논리로 거듭난다. 조선일보의 ‘빵집의 공포’는 중대재해법을 골목의 영세상권마저 무너뜨리는 거대한 폭력으로 위치지운다. 피해와 가해, 피해와 폭력의 위치가 뒤바뀌면서 ‘국민의 힘’ 윤재옥 원내대표의 일성이 터져나온다. “800만 근로자와 83만 중소기업, 또 영세 자영업자들의 눈물을 외면한 민주당의 비정함과 몰인정함에 대해 국민이 반드시 심판할 것이다.”
피해와 가해의 구도가 어느 순간 뒤집어지는 것은 신자유주의적 생명정치의 주요 특징이다. 노동재해에서 피해와 가해의 전도는 피해자 과실론(재판과정에서 사측 변호의 주된 논리는 ‘김용균 사망사고의 원인은 김용균 자신’이었다)이 으로 나타난다. 이는 중대재해법의 처벌 효과를 감소시키고 있는 기제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기업의 책임보다 노동자의 실수나 잘못은 더 쉽게 주장할 수 있다.
또 다른 특징은 위험의 구조적이고 체계적인 분리이다. 노동자의 위험과 시민의 위험이 분절화되고, 노동자의 위험과 시민의 불편이 분리된다. 이렇게 분리된 감각은 생명에 대한 평등주의적 접근을 훼손한다. 동네 빵집은 실제 노동자 사망사고가 빈번한 사업장이 아니다. 그럼에도 빵집 경제활동의 위축을 우선하는 순간, 노동자 생명에 대한 평등주의는 훼손되고 경제적 이익의 기준으로 보호받아야할 노동자집단과 그렇지 않은 노동자집단 사이에 분할선이 그어진다. 그리고 이미 중대재해법은 5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는 적용 제외된 채 제정되었고, 50인 미만 사업장 역시 2년간의 적용 유예기간을 둔 채 시행되었다. 지난 2년 5인미만, 50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가 중대재해로 사망하더라도 중대재해법의 적용을 받지 않기 때문에 언론에 보도되는 회수는 급격하게 줄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2년, 실제 노동현장은 얼만큼 변했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기업의 규모와 노동조합의 존재여부, 노동안전시스템 구축의 정도 등이 종합적으로 평가되어야 하지만 정부는 이러한 실태를 면밀하게 조사하지 않는다. 고용노동부 조차 기업과 노동 사이에 중립적인 제스춰마저 내다 버린지 오래이며, 중대재해법의 효과를 어떻게든 감추고 싶어한다. 아마도 당분간은 중대재해법을 둘러싼 너무나도 투명한 계급적 이해를 감추지 않고 충동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중대재해법의 의미가 과소평가되는 것뿐만 아니라, 과잉규정되는 것을 경계해야한다. 중대재해법은 무엇보다 처벌을 목적으로 하는 법이다. 산재예방의 효과는 간접적이며 보다 복합적인 제도적 조치들의 결과로서 나타날 것이다.
마치 최저임금제를 비판하기 위해 최저임금제가 불평등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는지를 중심으로 논점을 의도적으로 형성한 뒤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처럼,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과도한 의미화는 오히려 중대재해법 무용론으로 손쉽게 미끄러질 수 있다.
중대재해법 시행 2년차, 법을 둘러싼 논란이 정리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제2라운드를 시작하며, 중대재해법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무엇을 목적하는지에 대한 정확한 논의가 제출될 필요가 있음을 절감한다.
[미주]
1) 한국발전기술 태안사업소장만이 업무상과실치사죄와 산업안전법 위반 모두 유죄로 인정되었고, 태안사업소의 운영실장, 연료운영팀장, 안전관리차장 등 하청업체의 말단 관리자에게는 업무상과실치사죄만 인정되었다.
2) 정부는 2016년 발생한 구의역 ‘김 군’ 사망사고를 계기로 2018년 초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입법 예고가 시작되면서 경총 등 경영계가 총공세에 나섰고 보수언론과 경제신문이 이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기사를 쏟아내면서 전부개정안은 이미 누더기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나마도 통과되지 못한 채 1년 동안 국회에서 잠자고 있었다. 정부 여당조차 법안 상정의 의지가 없는 상황에서 김용균 사망사고가 발생하면서 산안법 전부개정안이 ‘김용균법’이라는 이름으로, 법안 통과에 대한 사회적 여론이 일게 되었다. 그러나 정작 김용균이 사망한 작업장은 개정 산안법에서 정한 22개 위험장소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에, ‘김용균 없는 김용균법’이라는 비판이 일었다.
3) 송은희, ‘28년 만의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 끝이 아닌 시작’, 월간참여사회, 2019,3.
4) 전주희, ‘한국사회는 중대재해법을 필요로 하는가’, 문화과학, 2022,9.
5) 범죄의 성립과 처벌은 행위 시의 법률에 따른다(형법 제1조 제1항).
6) 김성룡 외,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사건 판결 분석 연구’ 고용노동부 연구보고서, 2018.
7) 전형배, ‘실질적 고용관계 법리의 빛과 그림자’, 김용균 사건 판결을 중심으로 본 중대재해 재판의 현안과 과제 토론회 자료집, 2023, 22쪽.
8) “대상 판결의 논리를 따르면 기업의 규모가 크면 클수록 산안법 위반과 노동자의 사망에 대한 대표이사의 책임은 약해진다. 현장의 상황을 모르기 때문이고 판결의 용어에 따르면 노동자를 보호할 ‘구체적, 직접적’ 주의의무가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최정학, ‘노동자의 안전에 대한 사업주의 보호의무’, 김용균 사건 판결을 중심으로 본 “중대재해 재판의 현안과 과제” 토론회 자료집, 2023, 15쪽.
9) 김용균 특조위,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조사결과 종합보고서’, 11쪽.
10) 2023년 2월 1일, 국민의 힘이 제시한 ‘2년 유예+산업안전보건청 설치 안’에 대해 대통령실이 동의하자 민주당의 원내지도부는 2년 유예연장안에 합의하고자 했다. 그러나 민주당 의원총회장 앞에서 입장하는 의원들을 상대로 유가족과 민주노총의 설득과 항의, 그리고 원내대표와의 면담이 이루어지고,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의원들의 ‘유예 연장 반대 발언’이 이어지면서, 민주당은 유예연장에 합의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11) 뉴시스, ‘고용장관, 50인 미만 중대재해법 유예 호소..국회, 현명한 판단을’, 2024.2.1.
12) 지그문트 바우만, ‘부수적 피해’, 2013. 민음사.
13) 특히 조선일보의 ‘빵집’을 내세운 중대재해법 공포 조장을 위한 기사들 참고. 조선비즈, ‘내일부터 동네 식당, 빵집도 중대재해법 적용...고용노동부 밀착 지원’, 2024.1.26.; 조선비즈, ‘직원 5명 빵집 사장님까지...정부, 영세기업 중대재해법 유예 촉구’, 2024.0.5. 등.
14) 머니투데이, ‘국민의 힘, 중대재해법 유예 거부한 민주당에 “국민과 함께 분노”’, 2024.2.1.
15) 매일노동뉴스, ‘후진국형 재해 대부분, 법원은 “피해자 과실”’, 202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