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에 맞서 작업을 중지할 권리와 작업장 민주주의
[보고서] 금속노조 작업중지권 실태와 과제(2024)
- 최민, 김홍일, 박다혜, 안우혁, 이태진, 전주희, 주민영
작업중지권은 일시적이고 잠정적으로 위험을 회피하는 것이 일차적인 목적이다. 현행법상의 ‘급박한 위험’보다 더 넓게 ‘위험’의 범주를 확장해서 적용한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노동자가 위험을 회피하는 동안 노사가 위험을 분석하고 해결방안을 도출하여, 조치를 취하는 것이 작업중지권의 이차적인 목적이자 실질적인 효과다. 따라서 일시적인 위험 회피가 근본적인 위험의 해결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작업중지권의 효과는 작업현장에서 일시적이고 잠정적인 수준에서 국한된다.
그동안 작업중지권이 현장에서 얼마만큼 잘 사용되고 있는가의 여부를 작업중지권 사용 건수와 작업중지권 적용 시간이라는 양적인 지표로 판단해온 경향이 있다. 질적인 평가를 수행한다고 하더라도 작업중지 이후 재발방지 대책 수립 여부를 평가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일시적, 잠정적 조치인 작업중지권이 얼마만큼 활발하게 사용되느냐의 여부와 함께 작업중지권이 노동안전시스템과 어떻게 연동되고 상호 영향을 미치는지, 그래서 궁극적으로 작업현장의 위험이 해결되는데 작업중지권이 얼마만큼 기여하고 있는지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사업장의 안전보건관리체계에서 ‘노동자 참여’는 필수적이다. 노동자는 노동현장에서 유해요인에 직접 노출되는 당자사이자, 해당 작업의 위험을 가장 잘 아는 전문가이지만 동시에 해당 정보를 충분하게 제공받지 못하기도 한다. 그러나 안전보건시스템이 잘 작동해 산업재해를 감소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현장의 위험을 감지하고, 해결할 ‘주체’가 시스템의 주요 요소로 포함되어야 한다. 산업안전법상 노동자 참여는 ‘작업중지권’ 뿐만 아니라, 노동조합과 근로자대표를 통한 참여를 보장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각각의 참여권이 하나의 ‘시스템’으로 연결되어 권리의 사용이 활성화되는 조건을 두텁게 구축하는가이다.
이는 노동조합 혹은 개별 노동자가 작업중지권을 사용할 때 ‘왜 사용하는가?’ 즉, 작업중지권을 사용하는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과도 맞닿아있다. 노동조합에서 작업중지권을 사용하고자 할 때, 노동조합 활동으로서 힘의 표현, 협상수단, 위험을 해결하지 않는 사측에 대한 경고, 위험에 직면한 조합원의 보호, 과거 대공장 중심으로 빈번하게 사용되어 왔던 파상파업용 등을 위한 사용을 넘어 노동자 참여에 기반한 민주적 안전보건시스템의 구축과 작업중지권을 연계시키는 지속적인 노력과 근본적인 관점이 필요하다.
가령, 어떤 사업장은 노동조합이 작업중지권을 사고 후 뿐만 아니라 사고 예방차원에서 빈번하게 사용할 뿐만 아니라, 적절한 재발방지 대책에 대한 합의 없이는 작업재개가 불가능하다. 이럴 경우 우리는 노동조합이 작업중지권을 잘 사용하고 있다고 인식한다. 그러나 보다 넓은 시야에서 이러한 작업중지권이 경직되고 노동자 배제적인 노동안전시스템 하에서 허용되는 것이라면, 또한 배제적인 노동안전시스템의 변화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수준에서 반복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이라면, 노동조합에서 활발하게 수행하는 작업중지권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다른 한편, 어느 사업장은 작업중지권의 사용을 위해 구체적인 절차와 매뉴얼을 마련해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드물게 작업중지권이 사용되고 있었다. 이럴 경우 우리는 작업중지권을 형식적으로만 갖춰져 있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 전주희, 작업중지권 왜 사용하는가?(보고서, 10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