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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의 <시네마>는 영화이론과 철학의 접점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텍스트다. "들뢰즈의 <시네마> 읽기" 코너는 영미권에서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들뢰즈의 <시네마> 연구를 소개하고자 한다. 첫번째로 소개할 텍스트는 Deleuze Studies의 편집장인 이언 뷰캐넌이 편집한 Deleuze and The Schizoanalysis of Cinema(2008)에 실린 조 휴즈의 Schizoanalysis and the Phenomenology of Cinema다. 조 휴즈는 현상학과의 비판적인 관계를 중심으로 들뢰즈를 분석하는 철학자다. 국내에서도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 입문>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조 휴즈는 <시네마>를 들뢰즈의 주된 테마인 분열분석으로 독해함으로서, 들뢰즈의 영화 담론을 예술론이 아니라 주체화의 차원에서 고찰한다. 이 글은 <시네마>뿐만 아니라 들뢰즈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도 일독을 권할만한 훌륭한 개념 정리를 보여주고 있다.  

*이 글의 제목과 소제목은 번역자가 내용에 맞춰서 임의로 달았음을 밝힌다. 


주체화의 이론으로서 <시네마> 읽기(1/2)

-분열분석과 영화의 현상학

 Schizoanalysis and the Phenomenology of Cinema

조 휴즈 Joe Hughes

 번역: 조지훈|서교인문사회연구실 

영화이론 세미나팀

 

1. 분열분석적 사례, 혹은 주체화의 이론으로서의 들뢰즈의 <시네마> 

영화의 분열분석가능한가? 그것은 적어도 다음의 두 가지 것에 달려있다. 분열분석이 무엇인가와 영화 기호에 관한 들뢰즈의 분류와 연구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말이다. 처음에 대략적으로 읽어보면, 들뢰즈의 기호 분류는 영화 작품들 그 자체에 대한 신중하고 포괄적인 연구로부터 나온 것처럼 보인다. 심지어 들뢰즈가 영화에 대한 거대한 기호학을 수립하여, 영화의 역사에서 지배적인 이미지들을 수집하고, 그 이미지들에 질서를 부여하고, 그것들을 그룹들로 배열한 것처럼 보일 정도다. 예를 들어 도상(icon)은 감정 혹은 정서(affect)를 표현하는 이미지의 유형이다. 들뢰즈는 브레송의 <잔 다르크의 재판>에서 잔 다르크의 얼굴을 예시로 사용할 뿐이지만, 영화 비평가는 영화사에 걸친 수많은 감독들의 필름들 속에서 도상으로서 기능하는 다른 이미지들을 찾을 것이다. (들뢰즈의) <시네마>에 대한 비평가 식의 독해는, 들뢰즈의 작업이 영화 연구에 기여하고 있다는 것을, 즉 우리로 하여금 영화 언어 및 영화가 감정의 창조와 조작을 통해 관객에게 말을 거는 법 등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것을 암시할 수도 있다.

그러나 두 번째로 좀 더 잘 읽어보면, 들뢰즈의 작업에 대한 이러한 접근은 다소 그 개연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들뢰즈가 <시네마1>4번째 챕터에서 분명하게 한 것처럼, 그 두 권의 책에서 수집된 기호의 집합들은 다양한 정전적 영화들에 있는 기호들의 추상화되고 일반화된 판본들이 아니다. 그보다 <시네마>에서 이루어진 기호 분류들은 베르그손적인주체의 이론을 다시 언급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들뢰즈는 (자신이) 내재성의 평면이라고 명명했던 것으로부터 베르그손적인 주체의 구조를 연역해내고 있다. 내재성의 평면은 모든 운동-이미지(), 그 스스로 물질로부터 식별 불가능하고, 각각의 이미지가 그들의 모든 요소들의 의해그리고 단번에 그들 모두의 측면에서서로 다른 이미지에 작용하고 반작용하는 이미지들의 집합이다. 이러한 물질의 장 안에서 바로 하나의 간격’(, ‘’)이 있는데, 그 간격 속에서 하나의 물질적 주체성세 개의 구분되는 감각-운동 도식의 계기들로 분화된다. 지각, 정서 그리고 행동으로 말이다. 영화의 기호들을 규정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물질적 주체성의 일반적인 구조이다. 물질적 주체가 내재성의 평면을 가로질러 분산되고 있는 물질을 지각할 때, 그 물질은 가능한 세 개의 기호들 중에 하나로 재현된다. 사실기호(a dicisign), 유상체(a reume), 엔그램/단위소(a gramme). 이러한 지각들이 정서로 연장될 때, 그 기호들은 다시 새 개의 기호의 형태 속에서 재현된다. 도상들(icons), 특질기호들(qualisigns), 또는 분할개체들(dividuals). 이 정서들이 행위로 더 연장될 때, 그것들은 더욱 다양한 종류의 기호들을 정의한다.

다른 말로 하면, 들뢰즈가 영화에서 발견한 기호들은 상이한 영화들에서 수집된 이미지들로부터 추상화된 것이 아니다. 대신에 그 기호들은 물질적 주체의 다양하고 잠재적인 경험을 표시한다. 운동-이미지가 지각 안에서 취해질 때, 그것은 사실기호를 산출한다. 혹은 운동-이미지가 느껴졌을 , 그것은 도상을 산출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았을 때, <시네마>는 물질적 주체성의 구조를 이해하는데 만큼 영화 언어를 이해하는데 그렇게 많은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들뢰즈는 이 지점을 더욱 명확하게 만들고자 기호론(semiology)와 기호학(semiotics) 사이의 구별을 도입한다. ‘기호론은 언어학적 체계로서의 기호 시스템을 연구한다. 반면에 기호학은 비-언어학적이고 현상학적인 기호 시스템들을 연구한다. 들뢰즈는 자신의 연구가 기호론이 아니라 기호학을 대변하고 있다는 것을 명확히 이해한다. 들뢰즈가 이 책들에서 기술하는 것은 크리스티앙 메츠(Christian Metz)가 시도했던 영화의 언어가 아니라, ‘-언어적주체성의 언어와 구조다. 이 논문에서 나는 들뢰즈의 두 초기 작품으로 돌아가 매우 형식적인 수준에서 주체성의 이론을 추적할 것이다. <의미의 논리>와 가타리와 함께 쓴 <안티 오이디푸스>에서 말이다. 이 작업을 통해 나는 두 가지 사실에 도달하기를 희망한다. 첫 번째로 <시네마>의 기저를 이루고 있는 주체성 이론의 검토가 시작되기를, 두 번째로 들뢰즈의 영화에 대한 분석 자체가 이미분열분석적인 사례임을 드러날 수 있기를 말이다. 

     

2. 들뢰즈의 세가지 수동적 종합

분열분석이란 무엇인가? 들뢰즈와 가타리는 <안티 오이디푸스>를 통해 이를 여러 가지 방식으로 정의하였는데, 그 모든 것은 하나로 모일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분열분석은 초월론적이자 동시에 유물론적인 분석이다... 분열분석은 초월론적 무의식에 대한 탐사에 착수하고 있다.” 이것은 그들이 분열분석에 부여한 가장 광범위한 정의다. 그것은 분열분석을 물질적이고 초월론적인 무의식의 탐사로서 정의한다. 그러나 그것은 다양한 공식들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분열분석의 임무는 주체의 욕망하는 기계들이 무엇인지에 대해, 그것들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 즉 그 모든 경우에 있어서 어떤 종합을 통해, 그 기계 속의 어떤 에너지의 분출 및 구성적 불발을 통해, 어떤 흐름들, 어떤 연쇄들 및 생성들을 통해 주체의 욕망하는 기계들이 작동하는 지에 대해 배우는 것이다. 그러나 욕망하는 기계는 단지 초월론적 무의식에 대한 또 다른 표현일 뿐이다. 분열분석이라는 질문 가운데서, 우리는 새로운 질문으로 밀어 넣어지는 것을 피할 수 없다. 분열분석이 탐사하고 묘사하려는 초월론적 무의식이란 무엇인가?

들뢰즈와 가타리에게 초월론적 무의식은 세 가지 구분되는 계기들로 이루어지는 생산의 과정이다: 연결적 종합, 이접적 종합, 통접적 종합. 이 세 종합은 수동적종합이다. 들뢰즈는 <차이와 반복>에서 처음으로 수동적 종합이라는 개념을 사용했는데, 그 개념은 후설로부터 차용한 것이다. 후설은 그 개념을 칸트로부터 차용했다. <순수이성비판>에서 칸트는 세 가지 초월론적 종합을 묘사했다: 직관에서 포착의 종합, 상상 안에서 재생의 종합, 그리고 개념 안에서 재인의 종합. 이 세 가지 종합은 감성과 지성을 매개하기 위해서 고안된 것이다. 그들은 감각적 감성적 잡다의 불연속성으로부터 개념의 통일성으로 이동한다

첫 번째 종합은 내감 안에서혹은 시간의 텅 빈 형식 안에서 분화된 순간들을 조사하고 모은다. 그러나 이 종합은 시간 그 자체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재생이라는 두 번째 종합은 그 다음의 현재 안에서 그 표상들을 재생해야만 한다. 그러나 이제 두 다른 재현들이 있다: 과거의 현재 그리고 현재의 현재. 따라서 과거의 현재와 현재의 현재를 동일한 의식의 부분들로 재인하기 위해서는 세 번째 종합이 필요하다. 우리가 현재 생각하고 있는 것이 이전의 순간에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 동일한 것이라는 의식이 없이는, 표상의 계열 안에서의 모든 재생은 헛된 것이 될 것이다. 따라서 세 번째 종합은 처음 두 종합들 안에서 산출된 표상들이 하나이자 동일한 의식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재인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세 가지 종합은 먼저 연속적으로 직관된 잡다로, 그 다음에는 재생된 것으로, 그리고 그 다음에는 하나의 표상으로이동한다.

<순수이성비판>의 초판(A판)에서 각각의 종합은 특정한 능력에 의해 유발 되었다: ‘감성, 상상력, 그리고 통각’. 오로지 세 번째 능력만이 자발성에 근거를 두고 있고, (통각을 특징짓는) 자유와 자기 의식적인 활동으로 작동한다. 처음의 두 종합은 수동적인 능력들에 속해 있었다.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을 다시 썼을 때, 그는 이 모든 세 종합들을 지성의 관할권 아래로 들어가게 변화시켰다. 모든 세 종합들은 후설이 능동적 종합’(들뢰즈는 그를 따르고 있다)이라고 불렀던 것으로 변화했다. 후설에게 이러한 (칸트의) 변화는 수동적으로 작동하는 종합의 유형에 대한 빛나는 통찰의 빛을 바래게 한 것이었다. 앤서니 스타인벅(Anthony Steinbock)은 수동적 종합이라는 개념의 이러한 측면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후설은 <순수이성비판>의 첫 번째 판본(A판)을 인용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거기에서 칸트가 어떤 능력에 대해서, 즉 지성의 기능에 종속된 것이라기보다는 그 지성으로부터 독립된 상상력에 대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성은 규칙들에 따라 감성적 잡다를 묶고 연결하는 능동적 종합의 자발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반면에, 감성은 수동적인 특성을 갖고 있는데, 왜냐하면 내적이고 외적인 감성은 단지 감각적 자료를 받아들이기만 할 뿐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 당연하게도, ‘수동적 종합이라는 표현은 칸트(주의)의 관점에서는 모순어법이다.

다시 말해 수동적 종합은 규칙들이 없이, 자유 또는 자유의지 없이, 어떤 종류의 통일된 의식의 통제도 없이 일어나는 종합이다. 들뢰즈는 <차이와 반복>에서 이런 모든 것을 하나의 명료한 문장 속에 담아낸다. 수동적 종합은 정신에 의해서 수행되는 것이 아니라, 정신 안에서 발생하는 종합이다. 그것은 감각-운동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3. 초월론적 무의식과 수동적 종합: 안티 오이디푸스

<안티 오이디푸스>의 초월적 무의식은 이러한 세 가지 종합으로 구성되는데, 분열분석의 주요 과제는 이 세 가지 종합을 상세하게 기술하는 것이다. 그러나 분열분석은 우리가 그 종합의 규칙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기 전에 기술해야만 하는 보다 근본적인 두 번째 사실 또한 발견한다, 분열분석은 수동적 종합에 앞서 부분대상들의 물질적 장을 발견한다. 부분대상들은 무의식의 궁극적 요소. 그들은 자신들의 물질적 시작을 재현한다. 이러한 부분대상들은 두 가지 일반적인 특징을 가지는데, 그 특징은 다음에서와 같이 중요해진다. 첫째로, 부분대상은 작다. 그것들은 분자적 무의식분자들그 자체다. 두 번째로, 부분대상은 분자적 다양체 안의 긍정적 분산상태로 실존한다. ‘긍정적 분산은 부분대상들 사이의 (유일한) 관계가 관계의 결여라는 것을 의미한다. 초월적 무의식의 세 가지 종합은 마침내 부분대상들 사이의 관계를 만들어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그들 사이의 어떤 관계도 없는 분자적 다양체으로 간주된다, 부분대상들은 자신들의 토대가 형성될 초월적 무의식과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세 종합은 이러한 대상들을 종합한다. 그것들은 칸트처럼 내감 혹은 시간의 순수 형식적 불연속면들로 종합하지 않는다. 대신에 그것들은 일종의 질료적 잡다로 기능하는 물질적 파편들을 종합한다. 들뢰즈가 말하는 세 종합은 감각의 형식보다는 감각의 내용을 종합한다. 첫 번째 종합인 연접은 직접적으로 부분대상들 모두를 한데 모으고 포착한다. 그것은 처음의 접속들 혹은 그들 사이에서의 흐름들을 창조한다. 두 번째 종합은 첫 번째 작업을 기반으로 한다. 그것은 더 이상 물질적 부분대상들을 종합하지 않지만, 첫 번째 종합에서 포착된 대상들을 재생산하거나 혹은 기록하고, 따라서 부분대상들을 무의식적 자아를 위한 잡다로 바꾸어놓는다. ‘잡다, 기록된 정보의 조각들, 그리고 그것들의 전송은 선행하는 연접과는 다른 종류인 이접의 격자를 형성한다’. 세 번째 종합인 통접은 첫 번째와 두 번째 종합을 가로지르고 한데 모은다. 그것(세 번째 종합)은 첫 번째와 두 번째 종합의 양립가능성을 인지하며, 그것들이 동일한 자아의 양쪽 부분임을 인지한다. 그것(세 번째 종합)은 두 번째 종합에 반해서 첫 번째 종합을 측정하고, ‘강도들의 형식 안에서 양자 사이의 차이를 표현한다.

분열분석이 밝히는 초월론적 무의식은 따라서 이러한 일반적 형식을 갖는다: 물질의 영역에 기초하여 설립한, 세 가지 수동적 종합이 있다: (1) 포착의 수동적 종합 (2) 재생산의 수동적 종합 (3) 재인 혹은 조화의 수동적 종합. 도식적으로 우리는 이렇게 조직할 수 있다.

1. 물질적 영역

2. 첫 번째 수동적 종합

3. 두 번째 수동적 종합

4. 세 번째 수동적 종합

 

*이후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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