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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와 ‘자유’는 양립할 수 있는가?


에티엔 발리바르 

번역: 장진범 | 사회학도


   글은새로운 세대의 공산주의라는 주제로 2011년 프랑스 몽뤼송에서 개최된 세미나 당시 발리바르가 발표한 내용을 통일공산주의자연합(Association des Communistes Unitaires, ACU) 기관지 Cerises 측에서 녹취하여 '"Communisme" et "Liberté" peuvent-ils faire bon ménage?'라는 제목으로 2014 공개한 글을 번역한 것이다. 녹취에 기반한 글이라 일부 오기(誤記) 의미가 불명확한 부분도 있다는 점을 감안하여 읽어주길 바란다.


추상적으로 말하자면 여러 가능성이 있다. 우선공산주의자유 별개의 통념이고, (가령공산주의민주주의’, 또는 떠올려 있는 다른 예들에서처럼) 이들 통념을 연결짓거나 접합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할 있을 것이다. 여기서 나가자면, 양자가 극한에서는 대립물이라고, 따라서 일종의 대립물의 통일이나 변증법적 해법을 찾아내야 한다고 상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이런 생각은 부분적으로는 모종의 상황에서 역사가 강제한 것이리라. 다른 극단에 있는 형식적 가능성은, 이들 명사(名辭) 지시대상이 동일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근본적으로는 공산주의가 자유라고, 또는 아마도 형식적·실질적 권리의 특히 구체적인 형태이자, 사회와 역사 안에서 자유를 극대화하거나 실현할 있는 효과적 형태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십중팔구 맑스는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맑스가 보기에공산주의자유 대립항일 있다는 관념은 부조리했을 것이다. 공산주의자가 아닌 이들 역시 자유를 주창했다는 사실을 그가 자각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에게 있어 진정한 자유는 바로 공산주의였다. 그러니 배신의 역사라거나 도착(倒錯) 역사―나는 이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라는 식으로 싸잡을 없는 역사에 직면했을 , 다음과 같은 변명에 만족하지 말자. 공산주의가 유명한 철의 장막 저편의 사회주의 나라들에서는 독재나 전제와 일체가 되어 버린 반해, 우리들 나라에서는 공산주의가 이상이나 이론적 이념에 완벽히 충실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을 것이라는 변명 말이다.

사태는 이보다 훨씬 복잡했으며, 극단적으로 말하면 가장 해로운 영향이 미친 방향이 어느 쪽인지 파악하기가 실로 어렵다고까지 있다. 물론 나는 프랑스 공산당 창건이나 인민전선, 레지스탕스나 독일점령 해방 세대는 아니고, 드골주의 시대 특히 ()식민주의 전쟁 시기에 공산주의에 가담한 세대다. 시절 일부 사람들은, 소비에트 모델을 모방한 것이 가장 문제였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생각은, 단순히 동구권 맏형의 영향만이 아니라, 프랑스 공산당 내부의 민주적 결핍과 연결된 내생적 원인이 있었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시절 이래 나를 비롯한 많은 이들은, 원인을 어느 수준에서 두어야 하는지 자문하면서 질문을 반성하려는 노력을 한시도 멈추지 않았다.

나의 경우 이는 이런저런 지도자의 책임을 묻기 위한 것이 전혀 아니었다. 문제는 피착취자, 노동자계급과 주변 집단의 해방 투쟁을 옹호하는 것을 본질로 삼았던(그리고 여전히 본질로 삼고 있는) 조직의 작동 논리가, 그런데 어찌하여 극히 역설적인 결과, 종내는 완전한 역효과를 조직 내부에서 낳을 있었는지 이유를 이해하는 것이었다. 자신을 둘러싼 자본주의 사회의 민주화와 해방을 추구했던 조직의 내부가, 바꾸겠노라고 주창했던 사회보다 여러 모로 민주적인 방식으로 작동할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동시에 공산당이라는 조직 또는 조직의 전통이 공산주의 문화를 육성했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라는 사실을 나는 이해하고 있다. 당의 지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당의 영향을 많든 적든 받는 일련의 단체와 노조 활동 전체가 조직을 중심으로 회전한 , 스탈린의 유명한 문헌이 당의전달벨트’(라는 끔찍한 은유) 묘사했던 것이 이것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부르주아 사회가 정치에서 배제하거나 하찮게 치부한 시민, 노동자, 농민, 심지어 지식인 대중들에게 있어 당은 사회화와 해방, 연대, 정치 참여의 특별 장소였다. 여기서 아직 사태는 절대적인 흑백논리에 따라 전개되지 않지만, 바로 때문에 문제제기나 질문이 더욱 필수적이 된다.

나는 평행하는 평면 , 한편으로 공산주의 이념(바디우 식으로 말하자면 공산주의 가설), 다른 한편으로 현존하는 상태를 폐지하는 현실적 운동이라는 문제에서 질문을 전개해 보고 싶은데, 이때 운동이 이념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이고, 운동에 모순들이 가득하다면, 모순들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주목해야 마땅한 것임을 강조할 것이다.

번째 논점과 관련하여 내가 발전시켰고 점점 애착을 갖는 관념은 이하의 가설에 상응한다. 맑스와 엥겔스, 후계자들이 정의했던 식의 공산주의는, 공산주의 이념의 구성정의기술 자체에서 결정적 계기이자 중심적 측면이고, 완전히 본질적인 부분을 이루는 같다는 가설이다. 공산주의 이념을 버려야 한다는 것은 생각과 전혀 거리가 멀다. 그렇지만 우리가 처한 역사적 상황[각주:1] 때문에 공산주의의 역사 안에서 맑스적 계기에 우리가 부여한 중요성이 적어도 상대화되고 있다는 생각은 하고 있다. 이로써 우리가 절감하지 않을 없는 것은, 장기지속의 지평에서 맑스 이전에도 공산주의에 대한 구상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물론] 맑스에게도 아주 중요하고 결정적인 공산주의 구상이 있고―맑스가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에서 망설이다가 어떻게 해서 이를 채택했는지 살펴보면 흥미로울 것이다―, 아마 맑스 이후에도, 같은 모습은 아니겠지만, 공산주의 구상이 여전히 있을 것이다. 나는 이런 관점을 취하고자 한다.

가설이 튼튼한 근거를 갖추려면 가지를 말해야 한다. 첫째, 역사 안으로 돌발했던 어떤 것도 흔적 없이 사라지지 않는다. 공산주의라는 말이 있고―이 말의 내력을 말하려면 시간을 들여야 것이다―, 말은 잇따르는 계기들 사이에서 증언의 전령 같은 역할을 한다. 망각기 또는 잠복기가 오래 지속하다가, 말이 재차 돌발하고, 말을 둘러싸고 상황이 전개된다. [둘째,] 역사 안으로 돌발했던 어떤 것도 사라지지 않지만, 그렇다고 영원하지도 않으며, 정확히 같은 역할을 무한정 계속 수행하지도 않는다.

이상의 생각을 구체화하자면, 서양 세계(당분간 나는 밖의 세계는 차치할 것이다. 이들 세계의 중요성이 점점 커질 것이지만 말이다) 공산주의 이념, 공산주의 역사에는 차례의 계기가 있었다. 공산주의의 발명이라는 번째 위대한 계기가 포착되는 시점은 중세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프란치스코회라는 계기가 그것이다. 오늘날 이념은 비단 유럽뿐만 아니라 세계 도처에서 되돌아오고 있다. 같은 현대적 회귀(回歸) 라틴아메리카의 해방신학에서 시작되었고, 우리 주변의 예를 들자면 공산주의 이념의대변자토니 네그리 같은 철학자들이 이어가고 있다. 프란치스코회의 공산주의 구상, 그들 가장 극단적인 분파를 화형대로 이끌었던 구상의 열쇠말은 무엇인가? 그것은 프란치스코회의 가난 이념이었다.

가난은 경멸 어린 통념이 아닐 뿐더러, 사회의 비참을 기술하는 통념은 더욱 아니다. 프란치스코회의 문헌들이 말하는 가난한 이들은 걸인들이 아니며(그들이 구걸을 한다면,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가장 비참한 생존 조건으로 내몰리게 이들도 아니다(그런 점에서 항구적 궁핍 상태도 아니다). 그들은 사적 소유를 거부한 이들인데, 이는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기 위함이 아니라, 나누고 공유하기 위함이다. 그런 점에서 프란치스코회가 복음서 또는 사도 바울이 표명한 비범한 정식을 찾아내게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아무 것도 없는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그들은 세계 전체를 가진다. 쓰면 없어지는 모든 물건, 모든 문화적 재화, 모든 물질적 재화 만물이 그들의 수중에 있는 , 이는 교환의 미덕에 의한 것이다. 여기에 자연스레 동반되는 것은 공동체주의, 극히 엄격하고 심지어 억압적이기 십상인 공동체라는 관념이다. 같은 이상이 오로지 해방적이기만 하다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계기에서 이미 드러나는 바는, 공산주의 이념이 해방의 미덕 가까운 곳에 어두운 역시 가질 있다는 , 어쨌든 공산주의 이념을 실현하려고 시도하던 굴러떨어질 있는 심연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번째 공산주의 이념은 바뵈프와 블랑키주의자들의 이념이다. 맑스는 이념을 상당 부분 물려받았고, 흔적이 특히 『공산주의자 선언』에 발견되는데, 저작에는 블랑키주의에서 직접 유래한 일련의 정식들, 가령프롤레타리아 독재전제적 수단같은 관념이 등장한다. 번째 공산주의 이념은 본질적으로 평등에 기초하고 있다. 이념이 가난과 양립할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양자가 같지는 않다. 우선 이념은 사회적공동체적 이념이라기보다 정치적 이념이다. 이념은 프랑스 공산주의 전통에 아주 깊이 뿌리박고 있다. 여기에는 아주 강력한 평등주의 요소가 있다. 이는 오늘날 우리 주위의 몇몇 지식인이나 활동가에게서 아주 흥미로운 방식으로 다시금 돌발하는데, 그들에게 있어 공산주의는 무엇보다 평등이다. 바로 대목에서 평등과 자유 사이에 모순이 있는가 라는 질문이 가장 첨예한 형식으로 제기된다. 달리 말하면 이렇다. 평등은 독재적 수단에 의해 부과될 있는가? 이런 관념은 블랑키나 바뵈프에게 별로 낯설지 않았으며, 맑스주의는 관념을 상속했다. 이는 자크 랑시에르[각주:2] 같은 철학자가 가장 강조하는 난문이다. 또한 아나키즘이나 프루동주의 안에서 아주 강력했던 전통이기도 하다.[각주:3]

우리 사회 같은 , 그러니까 불평등이 지수적 방식으로 증가하고, 불평등이 소비재나 생존조건이라는 차원뿐만 아니라 권력에 접근하고 자기만의 삶의 조건을 다스리는 차원에서도 표출되는 곳에서, 평등이라는 이념 또는 평등주의적 구성요소가 어느 때보다 근본적인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렇긴 하지만 맑스는 논점에 대해 복합적인 입장을 취했다. 그는 에누리 없는 평등주의의 ()광신도가 아니었다. 따라서 급진민주주의의 유일한 형태는, 모든 개인이, 능력과 무관하게, 책임 있는 자리와 공적 발언에 정확히 똑같은 방식으로 접근할 있는 형태여야 한다는 식의 관념은 맑스에게 중심을 점하지는 않는다. 그가 파리코뮌을 다루면서 직접민주주의에 관심을 표명한 예외적 구절들이 전통의 완벽한 일부이긴 하지만 말이다.

맑스가 나눔이나 공동체, 평등 같은 이념에서 무언가를 취했다 하더라도, 맑스에게 고유했던 이념은 무엇일까? 사회주의라는 이름으로 지칭됐던 것이다. 어감과 의미의 차이를 길게 논할 있고 그래야 하겠지만, 어쨌든 맑스의 공산주의가 자본주의적 생산의 무정부상태, 그리고 자본의 전제정에 맞서 투쟁하는 노동자운동의 공산주의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이는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수단의 사회화, 생산 조직의 공유와 생산의 계획화라는 이념과 깊이 결부되어 있다.

소비에트 타락의 뿌리 일부가 중앙집권화된 정치형태의 채택에 있다는 , 정치형태는 효율성의 이름으로 국가 곁에 존재했던 당의 내부에서 권력 독점을 재생산했다는 점은 내가 보기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부르주아 국가가 고도로 중앙집권화되어 있다면, 혁명가들의 역시 중앙집권화되어 군대식 규율을 갖춰야 한다고 썼던 사람은 레닌이다. 그러나 맑스주의적 공산주의라는 문제에는 해방의 요소와 결합된 다른 측면이 있었다. 어두운 또는 부정적인 것은 분명, 근대적 생산이 가능한 가장 고도화된 사회화와 집중, 계획화로 향한다는 관념, 그리고 공산주의는 한층 대체보충적인 요소를 대표할 것이라는 관념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전개된 역사에서, 집중과 사회화의 형태들, 특히 금융자본주의에 의존적인 형태들을 발명했던 것은 [공산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였다. 자본주의는 특정한 방식으로 생산의 무정부성을 극복하는 방법을 알아냈다. 자본주의는 적어도 특정 기간 동안 유효한 조절 형태들을 찾아냈으며, 그에 비해 사회주의적이거나 소비에트적인 계획화는 선진적인 것이 아니라 퇴행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번째 공산주의를 이끄는 이념은 무엇이 있을까? 앞선 공산주의들의 일부 요소를 보존하면서 불확실성들과 모순들을 제어하려고 노력하겠지만, 가난도, 평등도, 사회나 사회화도 아닌 공산주의. 나는 그것이 ()(individualité) 또는 개인화/개성화(individualisation) 공산주의라고 말하고 싶은 유혹에 이끌린다. 이는 처음 보기에 역설적인데, 왜냐하면 공산주의라는 이름 자체는 우리 다수에게 개인주의에 대한 저항, 개인의 원자화에 대한 저항을 떠올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유명한 문헌들에서 맑스는 부르주아 개인주의를 거칠게 대하는데, 자본이 개인적·부정적 자유의 특정 통념, 경쟁의 자유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로자 룩셈부르크의 유명한 문구를 인용하자면, “부르주아 체제에서 자유란 무엇인가? 그것은 자유로운 닭들 사이에서 자유로운 여우가 누리는 자유, 여기에서는 관계가 모든 것을 지휘한다. 이런 의미에서 공산주의 이념은 내가 앞서 언급한 전통 하나를 상속하는데, 전통은 연대, 공동체, 또는 나눔, 심지어 아닌 말로 우애/형제애와 본질적 관련이 있다. 이는 우리의 생존 조건이 동일한데도 우리를 서로 적대하게 만드는 자본주의 사회가 모든 연대와 모든 공동체적 유대를 파괴하거나 용해시키는 수법에 저항하는 가지 방식이다.

[하지만] 맑스의 문헌들에는 공산주의가 개인의 만개 가능성을 것이라는 다른 관념 역시 있다. 질문은 맑스에게서는 매우 추상적이지만, 오늘날에는 구체적인 방식으로 이를 제기하도록 강제받는데, 왜냐하면 오늘날의 사회에서는 거대한 모순이 있으며, 우리가 겪는 위기는 모순을 비극적인 방식으로 악화시키기 때문이다. 모순인즉, 개인들로 하여금 자기를 실현하고, 따라서 일정한 자율성을 보유할 있게 허용해 사회적 조건들은 발달했는 반해, 개인적 자유와 자율성을 뒷받침하는 조건의 파괴는 (대량실업 때문에, 그리고 교육 제도와 공적 서비스, 문화적 서비스의 악화 때문에, 특히 청년들 사이에서) 오늘날 비극적인 방식으로 표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청년들의 일정한 자율성의 가능성, 사회에서 그들의 기회를 찾을 있는 가능성을 폐지한다면, 사회학자 로베르 카스텔이 소속박탈(désaffiliation) 또는 부정적 ()성이라고 부른 것을 산출하게 된다. 그리하여 개인은 자기만의 삶을 경영하는 소기업가처럼 쉼없이 처신하는 가운데 각종 시장에서 자신의 자격증이나 노동력을 협상하라는 독촉을 받는데, 반면 현실에서는 개인의 독립() 자기통제를 뒷받침하는 모든 사회적 조건을 박탈당해버렸다.

대안을 찾아야 하는 것은 이런 지반 위에서다. 지금 순간 신자유주의가 공격하는 제도들의 방어에만 몰두하는 것은, 물론 아주 중요한 일이긴 하지만, 대안은 거기에 있지 않다. 무엇보다 먼저 관련자들의 저항과 투쟁, 상상에서 출발하여 지반 위에서 발명해야 새로운 것이 있다. 근본적으로 여기에 내가 제안하고 해석하고 싶은 , 현존하는 상태를 폐지하는 공산주의라는 현실적 운동이라는 통념이 있다. 나는공산주의 사회라는 이념에 과도하게 집착하지는 않는다. 나는 그것이 장차 존재할지 여부는 알지 못한다. 대신 내가 훨씬 관심을 갖는 것은 신자유주의의 효과에 맞서 창출되는 연대들, 사회의 투쟁들이다. 거기에 가난, 평등, 사회화 같은 오랜 이념들의 무언가를 인계받은, 그러나 오늘과 내일 새로운 것을 덧붙이려고 노력하는 실천적 공산주의가 있다.




  1. 노동자투쟁의 거대한 역사적 순환이 종결된 시점을 말하는데, 이 순환은 『공산주의자 선언』과 1848년의 혁명들에서 시작하여 소비에트적 유형의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되거나 다른 것―즉, 오늘날 세계시장에서 나머지 세계 자본주의와 경쟁에 돌입한 권위주의적 자본주의 체제―으로 전환됨에 따라 완료되었다. [본문으로]
  2. [옮긴이] 원문에는 ‘자크 안시엘’(Jacques Anciel)이라고 되어 있는데, 오기로 보여 바로잡았다. [본문으로]
  3. [옮긴이] 아나키즘이나 프루동주의가 이 관념을 강력하게 문제삼았다는 의미로 보인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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