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인-무브

부록 1

맑스 없이 코뮤니스트가 되는 것은 가능한가?



안토니오 네그리

번역 : 은혜


안토니오 네그리의 이 글은 도서출판 난장에서 곧 출간될, 히로세 준(廣瀨純, 1971~ )의 <혁명의 철학: 안토니오 네그리의 존재론과 주체론>(アントニオ・ネグリ: 革命の哲学, 2013)에 부록으로 수록될 예정입니다(번역은 <맑스 재장전>의 옮긴이인 은혜님이 맡아주셨습니다). 이와 관련 난장 편집자의 코멘트는 https://blog.naver.com/virilio73/221246444811 



   [편집자] Antonio Negri, “È possibile essere comunisti senza Marx?”(2010), Il comune in rivolta: Sul potere costituente delle lotte, Verona: Ombre Corte, 2012, pp.41~50. 이 글은 2010년 베를린에서 열린 ‘코뮤니즘이라는 이념’ 제2차 컨퍼런스에서 발표됐고 다음의 잡지에 처음 수록됐다. “Est-il possible d’être communiste sans Marx?,” Actuel Marx, no.48: Communisme?, 2010, pp.46~54.

   



   맑스 없이 코뮤니스트가 되는 것은 가능한가? 물론 그렇다. 그래도 나는 다른 [지적・운동] 전통의 동지들, 그리고 전복적 지식인들과 함께 종종 이 문제를 토론하곤 한다. 특히 프랑스에서 그렇다. 그리고 뒤이을 숙고도 본질적으로 프랑스의 상황과 관계가 있다. 그렇지만 고백해야겠는데, 나는 이런 논쟁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곧잘 지겨워한다. 너무나 다양한 갈래와 모순점이 있어서 이런 논쟁이 검증되거나 실험을 통해 해답을 구하는 데까지 진행되는 일도 드물다. 이런 논쟁은 곧잘 실제 정치를 추상적으로 다루는 수사적 대결이 되어버린다. 그런데 때로는, 맑스주의자라면 코뮤니스트라고 선언할 수 있다는 것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예컨대 한때 이보다 더 급진적일 수 없는 ‘마오주의적’ 가설들을 전개했던 어느 저명한 학자는 최근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프롤레타리아트가 권력을 장악한 이후의 국가의 ‘사멸’ 또는 ‘소멸’을 예측한 혁명적 맑스주의를 [계속] 고집한다면, 그리고 결국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자신을 ‘코뮤니스트’라 선언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이다. 나는, 그것은 요한계시록이 예지한 최후 심판의 날이 가까운 장래에 도래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죽은 자들의 부활’을 실제로 보지도 못했기 때문에 그리스도교가 거짓이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반박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지금과 같은] 이 각성의 시대에, 그리스도교도들이 말하는 이 세상의 종말과 사회주의적 종말론의 위기는 똑같은 처지에 놓인 것 같다고, 아니 차라리 둘 다 동일한 인식론적 명령에 의해 고통 받고 있는 것 같다고, 그러나 그 명령은 완전히 거짓이라고 말이다. 확실히 그리스도교는 거짓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것과는] 다른 이유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코뮤니즘이 거짓이라면, 확실히 그것은 그 종말론적 희망이 실현되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런 희망이 사실은 코뮤니즘의 전제에 들어 있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맑스의 코뮤니즘이 내놓은 예언들(더 정확히 말하면, 이론 장치들) 중 상당수가 실현됐다고 말하는 것이다. 자본의 예속[화]에 맞서 싸우는 문제를 다루는 것이 오늘날에도 (맑스 없이는) 불가능할 만큼 말이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그리스도교에서 그리스도로, 코뮤니즘에서 맑스로 돌아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리라.

그래서? 국가는 사멸되지 않았다. 러시아와 중국에서는 국가가 전능해졌고, 공통적인 것공적인 것의 형태로 조직(변조)됐다. 이로써 국가주의가 승리했고, 이 국가주의의 헤게모니 아래에서 공통적인 것이 아니라 고도로 중앙집권화된 관료제 자본주의가 세워졌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20세기의 위대한 코뮤니즘 혁명 경험을 통해, ‘절대적 민주주의’와 ‘인류의 공통체’라는 생각은 가능하다는 것이 입증됐다. 나는 여기서 ‘절대적 민주주의’를 자유주의 국가의 ‘상대적’ 민주주의 너머에 구축되는 정치적 기획으로, 따라서 국가에 대항하는 급진적 혁명의 신호로, ‘공적인 것’에 대항하는 실천이자 ‘공적인 것’에 대항해 ‘공통적인 것’을 구성하는 실천의 신호로, 그리고 기존의 것에 대한 거부이자 착취당하는 노동자 계급에 의한 구성권력의 행사로 이해하고 있다.

차이는 여기에서 생긴다. 결국 어떻게 끝났던지 간에, (맑스주의적 가설에 따라 움직이는) 코뮤니즘은 (비록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단지 우발적이기만 한 것도 아니고 일시적이기만 한 것도 아닌 일련의 실천을 통해, 즉 존재론적 실천을 통해 스스로를 입증했다. 그러므로 맑스주의자가 아니면서 코뮤니스트일 수 있는지를 물으려면, 먼저 코뮤니즘의 존재론적 차원과 마주해야 한다. 이 존재론의 유물론적 규정성, 그것의 남아 있는 효과, 현실과 인류의 집단적 욕망에서 [코뮤니즘이라는] 이 일화가 [실제로] 존재했다는 돌이킬 수 없는 사실과 마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맑스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은 코뮤니즘이 하나의 구성이며 하나의 존재론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생산하는 인간, 즉 노동자 집단[집합적 노동자]을 출발점으로 삼아 새로운 사회를 구성하는 것, 존재의 증대로 향하는 한에서 그 실효성을 보여주는 행동을 통해 새로운 사회를 구성하는 것이다.

이 [구성] 과정은 우발적으로 일어났고, [존재의 확장이라는] 이 경험[실험]은 부분적으로 실현됐다. 좌절됐다고 해서 이제 이 과정과 이 실험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이 실제로 가능함이 증명됐다. 수백만의 사람들이 이 가능성 속에서 행동했고 생각했고 노동했고 살아왔다. ‘현실 사회주의’의 시대가 참혹한 표류에 굴복했고, 참혹한 표류를 겪었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 경험을 무효화할 정도로 표류했는가? 가능한 것과 혁명적 사건의 역능을 현실화함으로써 [부분적으로나마] 구성되어온 존재의 확장을 내던져버려야 할 정도로? 만약 [실제로] 그랬다면, 만약 ‘현실 사회주의’의 추이를 끔찍하게 망가뜨린 부정적인 것이 전적으로 존재의 파괴를 양산했다면, 코뮤니즘의 경험은 여기저기 흩어져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절대적 민주주의’라는 기획, ‘인류의 공통체’ 구성이라는 이 호소는 여전히 매력적이며, 우리의 욕망과 우리의 의지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런 영속성, 이런 욕망의 유물론이 맑스의 사상이 갖는 유효성을 입증해주지 않는가? 그래서 맑스 없이 코뮤니스트가 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은 아닐지라도, 어렵지 않을까?

‘필연적으로’ 맑스주의적 실천에서 유래한다는 국가주의에 대한 반대에 대해, 우리는 우리의 분석을 다시 명확하게 밝힘으로써 응답해야 한다. 즉, 존재[의 확장 또는 역능]의 축적, ‘절대적 민주주의’의 진전, 자유와 평등에 대한 긍정이 봉쇄, 방해, 파국을 뚫고 나가며 계속 견뎌내고 있다고, 또한 이런 존재의 축적이, 그것이 겪게 될 파괴적 순간들보다 더 강하다고 주장함으로써 말이다. 실제로 이 과정은 궁극원인론적이지도, 목적론적이지도 않다. 역사철학의 움직임도 아니다. 이 과정은 그 어떤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비록 역사적 사건들을 통해서만 계속 이어질지언정, 존재의 축적은 운명이나 섭리가 아니기 때문이며 주체를 구성하는 수많은 실천과 의지, 변형과 변신의 결과이자 그것들의 교차이기 때문이다. 이 역사, 이 축적은 (역사가 행동으로 우리에게 증명해준) 구체적 특이성들의 산물이자 주체성 생산[과정]의 산물이다. 우리는 이를 후험적인 것으로 여기고 서술한다. 우리가 말하는 역사에 필연적인 것은 없다. [그렇지만] 모든 것은 우발적이나 결말이 있다. 모든 것은 임의적이나 마무리가 있다. Nihil factum infectum fieri potest[(이미) 행해진 어떤 것도 행해지지 않은 것이 될 수는 없다]. 살아 있는 것이 계속해서 살기를 욕망하는 곳, 그래서 아래로부터 삶에 대한 목적론을 의도적으로 표출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역사철학이 존재하지 않을까? ‘삶의 의지’는 살아 있음의 문제와 어려움을 해결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욕망 속에서, 세계를 구성해야 할 절박함이자 세계를 구성할 역능으로서 스스로를 제시한다. 단절이나 파열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역사적 연속성 속에서 드러나게 된다. 불규칙하게 끊어져 있어서 항상 앞으로 나아가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전반적으로나 존재론적으로나 파국적이지도 않은 연속성 속에서 말이다. 존재는 결코 완전히 파괴될 수 없다.

또 다른 주제. 이런 존재의 축적이 공통적인 것을 구축한다. 공통적인 것은 필연적인 궁극[목적]이 아니다. 오히려 공통적인 것은 존재의 증대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다양체가 되기를, 관계를 형성하기를, 다중이 되기를 욕망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혼자 있을 수 없으며, 무엇보다 홀로됨을 괴로워한다. 그 다음으로, 존재의 축적은 정체성도, 기원도 되지 않을 것이다. 존재의 축적은 그 자체로 다양성의 산물이자 특이성들 간의 일치/대립의 산물이며, 언어적 구성물들의 접합이자 역사적 규정성들의 접합이고, 마주침과 충돌의 결실이다. 특히 여기서 중요하게 강조해야 할 것은, 공통적인 것이 그 자체로 보편적인 것으로서 나타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공통적인 것은 보편적인 것을 포함하고 표현하지만 보편적인 것으로 환원될 수는 없다. 보편적인 것은 더 광범위하고 시간적으로 더 역동적이다. 보편적인 것은 개별적인 것들 각각에, 그리고 개별적인 것들 전체에 관여할 수 있다. 그러나 자립하는 개별[적인 것]individuo autosussistente이라는 개념은 모순적이다. 개별성[개체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특이성들의 관계만이 존재하는 것이다. 공통적인 것은 특이성들의 전체insieme를 재구성한다. 여기서는 공통적인 것과 보편적인 것의 차이가 절대적으로 핵심이다. 베네딕투스 데 스피노자는 보편적인 것의 일반적인 공허함과 개별적인 것의 모순[무근거성]에 맞서 ‘공통관념’의 구체적 규정성을 내세우며 공통적인 것을 정의했다. 보편적인 것은 각각의 주체가 고립・고독 속에서[도] 사유할 수 있는 그 무엇이다. 이와 반대로, 공통적인 것은 각각의 특이성이 존재론적으로 구축, 구성할 수 있는 그 무엇이다. 각각의 특이성은 다양하지만 [그] 다양체 속에서, 공통적 관계 속에서 구체적으로 규정된다는 사실에 입각해서 말이다. 보편적인 것은 다양한 것과 관련해 언급되는 반면에, 공통적인 것은 다양한 것을 통해 규정되고 구성되며 거기에서 특정된다. 보편성은 공통적인 것을 추상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역사의 흐름 속에서 공통적인 것을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공통적인 것은 보편적인 것을 부동不動과 반복으로부터 끄집어내며, 오히려 구체적으로 구축해낸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존재론을 전제한다. 코뮤니즘에게 맑스가 필요한 지점이 바로 여기이다. 즉, 공통적인 것 속에서, 존재론 속에서 스스로를 확립하기 위해 코뮤니즘에게는 맑스가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역사적 존재론이 없다면 코뮤니즘도 없다.

맑스주의자가 아니면서 코뮤니스트일 수 있을까? 프랑스의 ‘마오주의’는 한 번도 맑스와 긴밀한 적이 없었지만(이 점은 나중에 다시 다룰 것이다), 가령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는 매우 효과적인 방식으로 맑스주의자가 아니면서 코뮤니스트였기 때문에 들뢰즈 사후에 들뢰즈가 <맑스의 위대함>이라는 저작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소문이 돌기까지 했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자신들이 창안한] 집합적 배치와 방법론적 유물론을 통해 맑스주의에 다가서는 동시에 종래의 사회주의(특히 사회주의에 대한 유기체적 관념, 혹은 코뮤니즘에 대한 국가주의적 관념 일체)와 거리를 두며 공통적인 것을 구축한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틀림없이 자신들이 코뮤니스트라고 선언했다. 왜일까? 왜냐하면 맑스주의자가 아니면서도 그들은 실천에, 코뮤니스트적 전투성에 항상 열려 있는 사유의 운동 속에 몸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그들의 유물론은 존재론적이었고, 그들의 코뮤니즘은 바로 변혁적 실천의 천 개의 고원에서 전개됐다. 그들에게는 역사, 주체성의 동학을 생산하고 이해하는 데 종종 도움이 될 수 있는 실증적 역사가 결여되어 있었다(푸코에게는, 그런 장치가 최종적으로 비판적 존재론 속에 재통합됐다). 물론 그런 역사가 실증주의적 역사서술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때때로 역사는 역사주의Historismus에 전형적인 저 연대기적 허울 없이, 사건들을 과도하게 강조함 없이, 유물론적 방법론의 내부에 기입될 수[도] 있다. 그리고 들뢰즈와 가타리에게서 일어난 일이 정확히 이것이었다. 나는 유물론과 존재론의 상호보완성을 주장한다. 왜냐하면 (고전적 관념론의 관점으로나 실증주의의 관점으로나 분명히 철학을 본뜨고 있지만 결국 정치적 또는 윤리적 실체로 환원되어버리고, 그럼으로써 그 존재론적 차원을 부정당하는) 역사는 암묵적으로, 그러나 실질적으로 [(특히 유물론적) 철학에] 포섭될 수 있기 때문이다. 들뢰즈와 가타리의 경우에서처럼, 존재론이 특히 강력한 장치를 구성하고 있을 때 그렇다. 실제로 맑스주의가 과학 속에서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상황적’ 경험 속에서 전개되어간다는 점을 잊으면 안 된다. 맑스주의는 종종 전투적 장치를 통해 모습을 드러낸다.

우리의 문제(코뮤니즘/맑스주의, 역사/존재론)를, 가령 유토피아적 사회주의의 수많은 판본, 특히 ‘마오주의’로부터 파생된 판본과 비교해보면, 사태는 완전히 다르게 진행된다. 프랑스가 경험한 ‘마오주의’에서는 일종의 ‘역사 혐오’가 나타났는데, 이런 역사 혐오는 정치적 목표를 생산할 때마다 극심한 불안감을 드러냈다(이것이 마오주의의 끔찍한 결핍을 이뤘다). 그래서 사실상 마오주의는 역사를 제거함으로써 맑스주의뿐만 아니라 정치까지 제거해버렸다. 역설적으로, 마르크 블로크와 뤼시엥 페브르가 아날 학파를 세웠을 때 프랑스에서 일어났던 일(그때 맑스주의는 역사서술을 통해 철학적 논의에 도입됐다. 그리고 역사서술은 정치적이 됐다!)이 정반대의 방향으로 반복된 것이다.

유토피아적 사회주의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났다. 우리는 (마오주의적 판본 외부에서) 유토피아적 사회주의가 수많은 경험 속에서 존재론과 역사를 유물론적으로 연결했음을 인정해야 한다. 늘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자주 말이다. 프랑스에서의 경험에 관해서는, 앙리 르페브르가 이룬 굉장한 공헌을 생각해보면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다양한 입장들 속에서, 존재론적 실천과 반대되는 입장들이 (제시된 정치적 기획의 보편성이라는 이름 아래) [실제로] 출현했는지, 그랬다면 어느 정도로 출현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컨대 ‘본원적 축적’ 같은 범주의 역사성을 부정함으로써 결국에는 공통적인 것의 순수하고 직접적인 복원의 일환으로서 [어떤] 코뮤니즘 가설을 제시하는 입장, 아니면 (생산관계와 생산력의 관계 속에서 유물론적 주체성을 실제적이고 현실적으로 생산하는) 노동력의 ‘기술적 구성’을 다양하게 [재]설정하는 생산적 변형을 평가 절하함으로써 코뮤니즘적 저항은 (그 산술적 형태 아래에서sub forma arithmeticae 항상 동일한) [인간] 본성에서 기원한다는 주장으로 급격히 회귀하는 입장 같은 것들 말이다. 확실히 이런 입장들은 그 초월론적 형상에 있어서 관념론을 애매하게 재연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우리는 최근 자크 랑시에르에게서 역사적 유물론과 코뮤니즘의 모든 존재론적 관계를 부정하는 장치가 강조되는 것을 목격해왔다. 랑시에르의 연구에서 노동의 해방에 대한 전망은 실제로 의식의 진정성[확실성]이라는 차원에서 전개되며, 따라서 주체성은 어디까지나 개개인의 차원에 있는 것으로 상정되고, 그 다음으로는 주체성의 생산을 공통적인 것이라 명명할 수 있는 가능성이 애초부터 제거된다. 더 나아가, 해방의 행위는 모든 역사적 규정으로부터 자기를 이탈시키고, 구체적인 시간성으로부터 자기의 독립을 선언한다. 랑시에르에게 정치란 주체를 역사・사회・제도들과 분리시키는 역설적 행위인 것이다. 역사・사회・제도들에 대한 참여(근본적으로 모순될 수 있는 [정치적 주체의] 고유성) 없이, 정치적 주체에 대해 뭔가를 이야기하는 것은 불가능한 데도 말이다. 이리하여 해방의 운동, 즉 ‘정치’는 그 일체의 적대적 성격을 잃고 만다. 추상에서가 아니라 구체적인 투쟁 현장에서 말이다. 그래서 착취에 대한 규정은 더 이상 시야에 닿지 않고 (이와 병행해) 적, 즉 (양적으로 규정quantitate signata되지 않고, 항상 불확실한 형태로 나타나는) ‘치안’ 쪽에 있는 권력의 축적 역시 더 이상 문제로 간주되지 않게 된다. [이처럼] 존재론에 입각하지 않은 해방 담론은 유토피아이자 개인의 꿈일 뿐이며, 현실을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밖에 안 된다.

그러므로 여기서 우리는 핵심에, 즉 (1968년 이후) 프랑스에서 맑스주의와 연결된 코뮤니즘이 존재했던 적이 있었는가를 묻는 지점에까지 이르게 된다. 물론 스탈린주의, 트로츠키주의라는 두 개의 판본이 존재했지만(그리고 지금도 잔존하고 있지만), 오늘날 이 양자는 먼 옛날의 밀교적 역사에 속한다. 그러나 반대로 ‘68년의 철학’[각주:1]에 관해서라면, 거기서 맑스주의는 철저히 거부당한다. 내가 주로 언급하고 싶은 것은 바디우의 입장인데, 최근 그의 입장은 얼마간 인기를 누리고 있다.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다. (<자본>을 함께 읽는 모임에 참여한 이후) 1968년[68년 혁명]에 당면했을 즈음, 랑시에르는 루이 알튀세르의 입장을 통렬히 비판해나갔고, (알튀세르에게서는 1968년 이후에야 스탈린주의를 비판하면서 개시된, 따라서 약간 지체된!) 맑스주의적 인간주의에 대한 비판 속에 [알튀세르의 것과] 동일한 ‘당원’[당의 인간]uomo di partito의 지식인중심주의와 ‘주체 없는 과정’이라는 구조주의적 추상이 어떻게 잔존해 있는지를 만천하에 드러냈다.[각주:2] 그때는 랑시에르가 옳았다. 그런데 오늘날 랑시에르의 관점에서 바디우에게 동일한 비판을 가해야 하는 것 아닐까? 바디우에게 실제로 진리에 대한 보증을 이루는 것은 이성의 독립, 즉 이데올로기적 자율의 일관성뿐이다. 코뮤니즘의 정의가 결정되는 것은 바로 오직 이런 조건 아래에서이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이는 다양체를 가장한 채 상위의 철학이라는 낡은 관념으로 회귀하는 것 아닌가”[각주:3]라고 묻는다. 그러므로 바디우에게서 주체와 혁명적 단절[절단]의 존재론적 조건이 어디에 존재하는지를 알기는 매우 어렵다. 실제로 바디우에게 모든 대중 운동은 프티부르주아지의 퍼포먼스이며, 물질적 또는 인지적 노동의, 계급 또는 ‘사회적 노동’의 모든 무매개적[직접적] 투쟁은 결코 권력의 실체를 건드리지 못할 그 무엇이다. 프롤레타리아 주체들의 집단적 생산 능력의 확대는 체제 논리로의 종속이 확대되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투쟁의] 목표에는 결코 도달하지 못할 것이고, 주체는 정의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주체가 이론에 의해 생산되지 않는다면, 훈육되지 않는다면, 진리에 맞게 바뀌지 않는다면, 정치적 실천을 넘어 그리고 역사를 넘어 사건의 수준으로 고양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러나 바디우의 사유를 계속 따라가 본다면, 이런 지적들은 남아 있는 다른 문제들에 비해 사소한 것이다. 바디우에게는 특수하게 규정된 투쟁의 모든 맥락이, (이론과 투쟁 경험이 그 맥락에 전복적 역능을 부여해줄지라도) 순전히 꿈같은 환상으로 보일 뿐이다. 예컨대 ‘구성권력’을 주장하는 것은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자연권’이 혁명적인 정치적 역능으로 변형되는 꿈일 것이다. [바디우가 보기에는] ‘사건’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 사건을 결정할 수 있는 모든 주체적 실존의 외부에 있는 그런 사건, 사건의 장치들을 운용하는 모든 전략적 화용론의 외부에 있는 그런 사건만이. 바디우에게 사건(그리스도의 십자가형과 부활, 프랑스 혁명, 중국의 문화 혁명 등)은 항상 후험적으로 규정되며, 따라서 역사의 산물이 아니라 전제이다. 결국에는 역설적이게도 혁명적 사건은 예수 없이, 로베스피에르 없이, 마오 없이 존재하게 된다. 그러나 사건 생산의 내적 논리가 부재한 상태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사건과 신앙의 대상을 구별할 수 있겠는가? 실제로 바디우는 통상적으로 테르툴리아누스가 했다고 알려진 신비주의적 단언, 즉 “불합리하기에 믿는다”credo quia absurdum를 반복하는 데 그친다. 여기서 존재론이 완전히 일소된다. 그리고 코뮤니즘에 관한 논증은 몰아치는 광기로 환원되거나 정신이 하는 일로 환원된다. 들뢰즈와 가타리를 인용해 간결하게 말하면 다음과 같다. “[바디우에 따르면] 사건 자체는 특이성으로서보다는 공백의 초월성 혹은 공백으로서의 그 진리 안에서 자리에 부가되거나 삭제되는 따로 떨어진 불확실한 점으로 나타난다(혹은 사라진다). 따라서 우리로서는 사건의 자리가 놓이는 상황에 사건이 소속되는지의 여부를 결정할 수 없다(결정 불가능함). 반면에 어쩌면 사건에 자격을 부여해 사건이 상황에 관여하도록 하는 주사위 던지기와도 같은 어떤 개입, 즉 사건을 ‘만들어내는’ 역능이 있을지도 모른다.”[각주:4]

이제 (아무튼 과거의 혁명적 실천을 둘러싼 고통스럽고 널리 공유된 자기비판에서 출발한) 이런 이론적 입장들의 전제가 더 쉽게 이해될 것이다. 사실 첫 번째 관건은 ‘현실 사회주의’(패퇴했으나 항상 교조적인 전제로 가득 차 있었고, 기질적으로 배반의 성향을 띤 사회주의)의 역사에 대한 참조를 모조리 제거하는 것이었다. 두 번째로, 이런 이론적 입장들은 전복적 운동의 동학과 자본주의적 발전의 내용들・제도들 사이의 관계 확립을 피하고 싶어 했다. 노동조합의 전통은 이런 내용들・제도들과 그 안에서, 그에 대항해 불장난하기를 제안했는데, 이는 사실상 혁명의 욕망을 부패시켰고 투쟁에서 의지에 대한 환상을 양산했다. 그러나 이처럼 정당한 비판적 목표에 입각해, [현실 사회주의에서는] 코뮤니즘적 실천을 재구성하려는 정치적・전술적・전략적 시도와 그것을 실행하려는 노력이 해방의 전망에서 모조리 배제되어왔다고 결론짓는 것, 물질적이고 직접적인 투쟁의 적대적 차원 내부에는 그 어떤 구성적 기획이나 변혁의 통로도 존재할 수 없다고 결론짓는 것, 작금의 지배 형태를 설명하려는 모든 시도는 어떻게 전개되든 결국에는 자본주의적 명령에 종속되고 흡수될 것이라고 결론짓는 것, 마지막으로 생명정치적 구성조직 내부의 투쟁, 따라서 유물론적 관점에서 복지[국가]의 접합을 고찰하는 투쟁을 참조하는 것은 모조리 생기론을 재탕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결론짓는 것, 이 모든 것은 단 한 가지 의미만을 지닌다. 계급투쟁의 부정. 또한 바디우적 ‘극단주의’에 따르면, 코뮤니즘의 기획은 사적인 방식으로만, 권력으로부터 빠져나오는 형태로만 일어날 수 있다. 그리고 새로운 공동체는 (랑시에르도 주장하듯이) 공동체 없는 사람들이 만드는 것일 수밖에 없다. 이 기획에서 기분 나쁜 것은 그것이 표명하고 있는 얀센주의적 순수성이다.[각주:5] 그러나 실질적으로 인류의 역사에서 만들어진 모든 형태의 지성이 자본주의적 생산 체제의 논리로 환원됐다는 이유로 모든 형태의 집단지성을 그토록 경멸한다면,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게 아니라면, 남은 일은 이미 앞에서 살펴본 내용을 재차 긍정하는 것이다. 즉, 니콜로 마키아벨리와 프리드리히 니체, 스피노자와 들뢰즈를 통해 익히 알려진 유물론적 화용론(오직 그 자체에게만 유효한 운동, 오직 그 역능만을 참조하는 노동, 존재의 행위와 생산 활동에 집중하는 내재성)은, 어떤 경우에라도, 존재론에 대항해 역사나 형식적 불확실성과 까탈스러운 관계를 맺고 있는 유토피아보다 훨씬 더 코뮤니즘적이라는 사실을 긍정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맑스 없이 코뮤니즘에 대해 말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지 않는다. 물론 코뮤니즘은 깊게, 발본적으로 재해석되고 갱신되어야 한다. 그러나 역사적 유물론의 이런 창조적 변형은 맑스의 예시들을 따를 때 이뤄질 수 있다. 마키아벨리에서 스피노자, 니체에서 들뢰즈와 푸코에 이르기까지, 근대성을 살아낸 ‘대안적’ 흐름들에서 나온 예시들로 역사적 유물론을 풍성하게 만들면서 말이다. 맑스가 자본주의 사회의 운동 법칙을 연구했다면, 오늘날에는 노동하는 노동lavoro operaio(더 좋게 표현하면 전체로서의 사회적 활동)의 법칙을 연구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리고 사회에 대한 자본의 포섭과 전지구적 차원의 착취에 대한 저항의 내재성 안에서 주체성을 생산하는 법칙을 연구하는 것이 관건이다. 오늘날에는 자본의 법칙을 연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우리는 전 세계 노동자들이 표출한 반란의 역능에 응답해 움직여야 한다. 여전히 맑스를 따른다고 했을 때,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대상으로서의 노동이 아니라 활동으로서의 노동이다. 가치 그 자체로서의 노동이 아니라 가치가 생겨난 원천으로서의 노동. 자본에게 부 일반은 대상, 즉 현실로서 존재하고 있지만, 이런 자본에게 노동은 부 일반의 가능성으로서 존재하며 이 점은 활동에서 확인된다. 따라서 노동은 대상으로서는 절대적 빈곤이지만, 주체이자 활동으로서는 부의 일반적 가능성임을 긍정하는 데는 조금의 모순도 없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이런 방식으로 노동을 파악할 수 있을까? 즉, 우리는 어떻게 노동을 사회학적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정치적 주체로서 파악할 수 있을까? 바로 이것이 문제이며 탐구되어야 할 대상이다. 코뮤니즘에 대해 말하는 것은 문제를 해결함으로써만 가능하다. 필요하다면(거의 항상 필요하다) 손을 더럽힐 수도 있다. 그밖의 것은 모두 지식인중심주의적 잡설이다.





  1. [편집자] 여기서 ‘68년의 철학’이란 미셸 푸코, 질 들뢰즈, 펠릭스 가타리, 자크 데리다 등보다 한 세대 젊은 사상가들(1940년대 전후로 태어난 사상가들), 특히 루이 알튀세르의 제자들인 자크 랑시에르와 알랭 바디우의 사상을 지칭한다. 더 자세한 내용으로는 본서에 수록된 ‘부록 3’을 참조하라. [본문으로]
  2. [편집자] 랑시에르는 ‘이론적 실천’이라는 이름으로 알튀세르가 당연시했던 ‘아는 자’로서의 권위, 그 권위에 근거한 ‘지식을 가진 자’로서의 제스처에 반발해 알튀세르와 결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다음의 책을 참조하라. Jacques Rancière, La Leçon d'Althusser, Paris: Gallimard, 1974; Paris: La Fabrique, 2012. [본문으로]
  3. Gilles Deleuze et Félix Guattari, Qu’est-ce que la philosophie?, Paris: Minuit, 1991, p.144. [이정임・윤정임 옮김, <철학이란 무엇인가>, 현대미학사, 1999, 218쪽.] [본문으로]
  4. Deleuze et Guattari, Qu’est-ce que la philosophie?, pp.143~144. [<철학이란 무엇인가>, 217~218쪽.] [본문으로]
  5. [편집자] 얀센주의(Jansenism)란 네덜란드의 가톨릭 신학자 코르넬리스 얀센(Cornelius Jansen, 1585–1638)이 주창한 교의로서, 초대 그리스도 교회의 엄격한 윤리로 되돌아갈 것을 촉구한 것으로 유명하다. [본문으로]
댓글 로드 중…

최근에 게시된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