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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_2018분 이어말하기_현장스케치


증언과 증인 그리고 그 사이


단단



지난 3월 22일 청계광장에서는 ‘#미투 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이 주최한 ‘2018분 이어말하기’ 행사가 있었습니다. 개인과 시민단체, 노동단체 등 다양한 위치의 여성들이 검은색 리본을 배턴 터치하듯 이어받아 자신의 성폭력 경험을 쏟아냈습니다. 미투 운동에 가해지는 ‘백래시’처럼 차가운 바람은 발언자와 청중 사이를 후벼 파듯 갈라놨습니다. 그러나 담요로 몸을 감싸며 버티는 청중의 뒷모습은 역행할 수 없는 어떤 흐름을 아련하게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미투 운동과 함께 하는 시민행동’은 약 340개 단체가 모여 지난 15일에 출범, 그 중 한 단체인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는 상근 활동가 세 분이 오랜 활동가의 면모를 뿜어내며 발언 내용을 기록했습니다. 몇 겹으로 무장한 옷차림과 담요, 핫팩, 보온병 등의 단단한 채비에서는 밤새 이어달리는 말하기의 순간을 놓치지 않겠다는 결의가 느껴졌습니다. 활동가의 제일 덕목인 ‘끈기’라는 유전자가 없는 저는 추위를 이겨보려 커피숍에도 들어가고 화장실을 핑계 삼아 바람을 피할 궁리를 했다면, 저와는 다르게 세 활동가는 긴 시간 앉은자리에서 꼼짝 않고 발언자의 말을 경청했습니다. 피해자의 발언 내용에 따라 화도 내고 옳다고 박수 치며 기록하는 그들은 단지 기록을 위한 경청이 아니라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그 멀고도 먼 거리를 좁히기 위한 하나의 예의를 보여주었습니다.


2018분 내내 자리를 지키지는 못했지만 주최측이 마련한 실시간 방송으로 다양한 증언을 들었습니다. 성폭력 증언은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여성의 삶 깊숙이 파고든 차별과 그에 따른 폭력이 당연하게 자행되고 있었음을 확인했습니다. 성폭력이라는 거대한 범주 안에서 자행된 폭력의 실상은 마치 고문 기술자가 쾌감에 취해 작정하고 덤빈 것 같다는 불쾌하고 숨막히는 인상이었습니다.

자정을 넘어서자 광장에 남은 사람은 몇몇의 청중과 발언자 그리고 여러 단체들의 활동가뿐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시작된 발언은 대독을 요청한 성매매 여성의 증언이었습니다. 가장 충격적인 증언은 안희정 전 도지사의 성폭력 피해자 김지은 씨를 남자 손님들이 “미투 언니”라고 칭하고, 성매매 여성 중 피해자와 닮은 여성에게 “나도 미투 당해보고 싶다”라고 말하며 희롱하는 대목이었습니다. 누군가의 고통을 술자리 안주거리로 만드는 무감각 때문에 몸서리 치며, 심대하게 ‘인간’이라는 정의를 다시 한번 소환해 따져 묻고 싶었습니다. 

인간이라고 주장할 때 페미니스트라고 몰아세우며 따돌리던 사람에게 그렇다면 기꺼이 페미니스트가 되어주겠다고, 이 세상의 인간 범주를 바꿔버리겠다고, 기득권을 가진 자로서 책무를 다하지 않는 당신의 몫까지 고민했던 삶에 딱히 불만은 없었습니다. 부끄러움마저 사회적 약자에게 돌리는 세상에 기대를 품는 일은 바로 절망감에 좌절하는 미련한 일임을 아니까요. 그 밤, 모든 증언은 그렇게 희망과 절망을 넘어선 텅텅한 울림이었습니다. 


2018분 이어말하기 현장에서 한 가지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사람은 세 부류, 말하는 사람과 그 말을 들으려는 사람 그리고 그 사이를 가로막는 사람으로 나뉠 수 있겠다고.

사람보다 바람이 더 생생한 광장 한가운데 찬바람 때문인지 두려움 때문인지 모를 떨림을 안고, 일면식도 없는 이들 앞에 서는 것만으로도 현기증이 날 것만 같은 그녀들이 두 주먹 힘껏 쥐고 자신의 피해를 말했습니다. 그것은 단지 하나의 피해 증언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을 까발리는 폭로였습니다. 그리고 폭로를 마주하겠다고, 기꺼이 증언의 증인이 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또한 거기 있었습니다. 팽팽한 긴장감에 가시 하나에도 터져버릴 듯한 그 사이를 심심하게 지나치는 한 중년 남성의 모습, 2018분 중의 한 순간이 지금 우리의 모습입니다.



* 아래는 한국성폭력상담소 페이스북에 올라온 이어말하기 발언들 입니다. 



“여성은 감정적이고 가벼운 주제의 신변잡기만 나누고 진지한 이야기를 할 수 없다는 편견에 맞서는 동시에 우리는 아장아장 걸을때부터 상대를 배려하고, 웃으면서 공감하라는 교육을 받습니다. 제가 싸우는 것은 폭력과 범죄뿐 아니라 내면화되어 나와 분리하기 어려운 사고방식도 싸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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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다른 사람앞에서 저를 저 라고 낮추고 겸얌어를 쓰고 누구에게든 존댓말을 쓰며 자랐습니다. 그런데 이게 상대를 배려하는 말하기가 아니라 저를 낮아지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상대를 동료시민으로 대하는 말하기를 하는데 상대에 의해 저는 반말하고 하대할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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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발췌) 말을 중간에 끊는 사람들은 대부분 남성이다. 남성이 그러는건 괜찮지만 여성이 그렇게 하면 사회적인 처벌을 받는다. 혼성그룹에서는 남성이 대화의 주제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몇몇 안되는 남자들이 여자들의 말하는 발식을 결정했다. 

왜 여자는 말이 많다는 상식이 생겼는가. 사람들은 여자들의 발화양을 남자들의 것과 비교한게 아니라 여자들이 입을 닫았으면 했던 것이다. 여자들의 직감이라는 것도 상대의 말을 잘 듣기 때문에 발달한 것이다. 경청의 능력이다.“


“ 성차별 성폭력과 싸우고 계신 모든 분들께 지지와 연대의 마음 전합니다. 어젯밤 하고싶은 이야기를 정리하며 고민했습니다. 나보다 심한 일을 겪은 분들도 많은데 나는 너무 사소한게 아닐까 누구나 겪은 일 아닐까.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스스로 미투운동을 지지하면서 여성으로서의 자기검열에 빠지는 제가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 사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사회가 사소한 일로 치부하던 여성혐오를 알리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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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별명은 조폭마누라였습니다. 그런데 왜 여자아이를 괴롭히는 남자아이에 대한 별명은 없죠? 반면에 왜 여자아이는 조폭마누라 라는 별명을 얻죠? 남자아이가 그러면 상대방을 좋아하는 거라고 하면서, 여자아이에게는 왜 타박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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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때 제 옆반에는 지적장애를 가진 여학생이 있었고 그 아이는 가슴이 컸습니다. 남자아이들은 그 아이를 둘러싸 공처럼 밀고 만졌습니다. 남자아이들은 그 아이에 대한 성희롱을 무용담처럼 꺼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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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승용차 한대가 저와 친구를 따라오다가 좁은 골목길에서 저와 친구의 앞길을 막았습니다. 그리고 한 남자가 창문을 내리고 저희를 쳐다보았습니다. 주변에서 인기척이 들리자 창문을 올리고 사라졌습니다. 밤 10시였습니자. 그남자는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습니자. 제가 만약 혼자 였다면 주변에 사람이 없었다면 이자리에 없을지도 모릅니다. 이 기억을 떠올리면 소름이 돋습니다. 잊을 수 없습니다. 
..
지난 설날 꽃을 파는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지나가던 아저씨들은 ‘꽃이 꽃을 파네. 아가씨 예뻐서 꽃사려고 들른거야.’ 선심쓰듯이 칭찬이라는듯이 말하며 어깨를 쓰다듬던 손길을 기억합니다. 
...
우리는 사람입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에 살고 싶습니다.”

"펜스룰이라는 단어가 없었더라도 한국 남성들은 여성을 배제해 왔습니다. 자기가 어떤 여학생을 좋아한다고 주변에 다 알려놓고 고백했다 차이면 꽃뱀 만들어서 왕따 당하게 만들고. 여자애들한테 성적인 농담해서 못 알아들으면 낄낄거리고 알아들으면 걸레 만들고...

가해 지목 당하기 싫다고 펜스룰 운운하며 여자를 피하고 배제하려는 걸 보면 참으로 많은 생각이 들어요. 아무리 '여자'로 보인다 해도 같은 지구에서 살아가는 '인간'으로 대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걸까요."


"초등학교 3학년 때 성추행으로 경찰서까지 갔었는데요. 경찰은 상의 속으로 손을 넣어 저의 배 근처를 만지며 "그 오빠가 어디를 만졌어?" 했습니다. 옆에 있던 아빠는 말리지 않고 그만 울고 그쳐, 라고만 하더군요.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살아갈 세상이 바뀌길 바란다면, 당신도 같이 움직여야만 합니다."


"수원에는 고은 시비가 평화의소녀상 옆에 있었어요. 문제제기를 단체들이 하자 입장도 논의도 없다가 갑자기 조용히 철거해버렸습니다. 지자체가 만들었다가 문제시되면 조용히 없애고 그런 걸 반복하고 있어요.

몇년전부터 청개구리가 수원의 대표 캐릭터였는데요, 어느 새 수원이를 당연스레 남자로 설정하고 슬그머니 '여자친구' 다정이 캐릭터를 만들었어요. 수원이를 '밀당의 고수'라면서요. 웹툰도 있는데 성별 고정관념이 깔려있어요. 계속 문제제기해 나가야 해요."


"세상은 평온하지 않다는 걸 있는 힘껏 받아들여야 이것을 바꿀 힘이 생겨난다는 걸 이제 알겠다. 그건 잘못되었다고 이제라도 말할 내 목소리를 키워줄 것이다."


"미투은 여성에 대한 폭력이지만 사회문제거든요. 그런데 성폭력 이야기만 나오면 '여성'문제잖아? 여성단체 뭐해? 여가부는? 정말 열심히 할때는 관심없다가 귀찮은 일이 생기면 '여성' 단위를 찾는 것일까요.

문화체육관광부는 1년 예산이 5조 6천억 정도인데, 여가부는 7,640억원이예요. 성폭력은 고용노동부 등 모든 곳과 연결되어야 하고 여가부가 '조정'할 수 있어야 하는데 예산만 봐도 힘이 얼마나 안 실려있나요. '반성폭력'을 할 수 있는 인력과 예산을 만들어가는 게 필요해요."


"채팅방에 들어가면 먼저 물어봤어요. 남? 여? 여자라고 하면 바로 변? 이라고 물어봐요. 야한 말을 하고 그런 사진을 주고 받자는 뜻이예요. 친한 남자사람친구랑 진실게임을 할 때는요. 뭘 물어보나 했더니 "너 지금 팬티색깔 뭐야?" 하더라구요..... 여자를 성적 대상으로 보지 않는 건 못하는 건가요?

성추행범을 잡기 위해 경찰을 갔을 때도 경찰이 보더니 그러더군요 "치마가 짧네" 돌아오는 길에 분하고 펑펑 울었어요. 저는 꼭 경찰, 경찰청장이 되어서 피해자가 울지 않는 세상, 2차 피해를 당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고등학교 때 얘기들이에요. 사회문화 교사는 "유리천장은 사라졌고, 역차별이 더 심해"라고 했죠. 입술 튼 친구는 "키스를 얼마나 한거냐", 졸았던 친구는 '남친이랑 어젯밤에 뭘 했어", 야자 시간에는 "너네는 못생겨서 아무도 너네 안 건드려", "여자들이 적당히 백치미가 있어야 남자들이 눌리지 않고 좋아해" 라는 얘기를 들었어요. 어떤 남교사는 "여자는 키 168에 몸무게 48이어야 해." 라고 했죠. 본인 탈모는?

미션스쿨이라 교목이 주1회 수업을 했는데요, 교사가 되고 싶다하는 학생에게는 "남자들이 딱 좋아하지, 시집가기 좋아요", 스튜어디스가 되고 싶다 하니 "아 그것도 남자들이 좋아하죠"라고 했어요. 왜 여자가 일을 하고 돈을 벌려고 하니 왜 남자들이 좋아할 거다 아니다를 말하는 걸까요. 동성애는 에이즈의 원인이라고, 낙태는 안된다고 항상 말하던 게 학교 목사였어요."



"그 남자는 나에게 병신이라 했고, 머리에 든 게 없는 년이라고 했고, 나이값 못하는 년이라고 했고, 너 같은 애 때문에 펜스룰이 있는 거라고 했습니다. 내가 그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요. 그는 나의 전 연인이었습니다.

미투 이후에 내가 이제 이해되었다며 또 연락이 왔습니다. "알겠어요, 불편하니 댓글 달지 마세요" 그랬더니 내가 자기 편도 못 알아본다며 또 연락 연락 연락을 했습니다.

당신은 나에게 조언을 할 권리도 자격도 의무도 없다고, 왜냐하면 우리는 동등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더이상 필요하지 않고 내 인생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고요. 내 말이 여전히 아니꼽고 모르겠고 당신 주장이 옳다면, 당신은 틀렸습니다."


"엄마는 저한테 통금을 심하게 강조했어요. 저는 너무 싫었죠. 근데 엄마는 아들 하나 낳기 위해 넷이나 태어난 딸 중 하나였고, 남동생 학교 보낼려고 공장을 다녔어요. 엄마가 미투를 보며 그러시더라고요. '저 운동이 왜 이제야 나왔냐?' 저는 그 말을 듣고 펑펑 울었어요.

제가 여기 와서 말한다고 하니 친구들이 넌 말 잘할거야! 응원해줬는데요, 걔들은 지금 일을 하고 있어서 여기에 올 수가 없어요. 나랑 페미니즘을 같이 하고 있는 친구들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요."


"살면서 마이크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것 같아요. 누가 말하는가, 누가 말해도 되는가. 나는 말할 만한 사람인가?

제가 녹취 푸는 알바를 했었는데요, 4-50대 남성과 여성 녹취 중에 남성들은 '국민학교 때 축구부도 중학교 때 농구부도 날 원했다'고 말하며 나를 인터뷰하는 건 잘한 거다, 라고 하는데 비해 여성들은 끊임없이 내가 인터뷰할만한 사람인지, 날 인터뷰해도 적합할지 물어보시더라고요."


"딸이 밤에 올 때도 "딸~ 씩씩하게 와~"라고 말합니다. 여자는 무서워야하고, 여자를 피해자로만 상정해놓은 걸 반복한다면, 가해자들에게 참 편한 세상일 것 같아서요.

여자들이랑 일하지 않겠어, 펜스룰을 하겠다는 말이 있는 것 같은데 정말 말도 안돼요. 모든 곳에서 여성들이 중요한 위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면 이런 이야기는 나오지 않겠죠. 헌법개정에서 여성대표성을 확대하는 남녀동수는 꼭 필요해요."



"제가 성폭력상담소에서 처음 일했을 때는 모두 '좋은 일 하는구나' 하는 말이 칭찬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일한지 어느덧 9년째가 되자 왜 좋은 일 한다고 하면서 사람들은 참여하고 동참하는 걸 꺼려할까, 의문이 듭니다.

우리는 항상 연대하면서 활동합니다. 작은 일에도 함께 토론하고 상의하면서 하는데요, 함께 하지만 그 속에 한사람 한사람도 중요합니다. 예전엔 그냥 사회적인 뉴스를 보면 개인의 문제인 줄 알았거든요. 그러나 연대하고 함께 싸우는 게 우리의 힘이라는 걸 이제는 놓을 수 없어요.

저는 지적장애여성을 주로 지원하는데요 미투운동을 보면서도 장애여성의 경험은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해요. 얼마전 딸이 오래전 질병으로 다니던 병원 의사가 했던 추행에 대해 미투를 보고 전화했다는 어머니의 상담을 받았어요.

우리가 원하는 세상은 오는가? 때로는 좌절하고 절망하게 되지만, 우리가 만드는 작은 변화들이 분명히 있고, 그걸 크게 봐야겠다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에겐 연대하는 힘이 있고, 그리고 변화를 상상하는 힘이 있어요. 그리고 남성이든 어떤 성적지향을 가졌든 함께 권력구조를 바꾸는 데 동참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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