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인-무브

편집자의 말 : 이 글은 2018년 11월 23일-24일 양일간 열렸던 <알튀세르 탄생 100주년 기념 학술대회 : 알튀세르의 문제들>의 특별자료집에 「정치경제학 비판과 이데올로기 비판 : 알튀세르 이해를 위한 맑스주의의 두 가지 개념」이라는 제목으로 실렸던 글의 일부분이다. 인-무브에서는 이 두 항목을 다시 나누어 각각 게재하려 한다. 게재를 허락해 준 배세진 선생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을 전한다.


옮긴이 앞글 : 알튀세르 탄생 100주년을 맞아 개최되는 알튀세르 심포지엄을 위해 번역한 아래의 두 텍스트는 알튀세르의 가장 충실한 제자, 동료이자 주석가였던 에티엔 발리바르가 조르주 라비카(Georges Labica)와 제라르 뱅쉬상(Gérard Bensussan) 책임편집의 “마르크스주의 비판사전”(Dictionnaire critique du Marxisme, PUF, 1982)에 기고한 아홉 개의 항목 중 알튀세르의 사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두 개의 항목인 Économie politique (critique de l’), 즉 ‘정치경제학 (비판)’과 Appareil, 즉 ‘장치’를 번역한 것이다. ‘정치경제학 비판과 이데올로기 비판’이라는 위의 제목뿐만 아니라 아래의 제목들, 즉 ‘정치경제학 비판: 비판의 비판을 위하여’와 ‘장치란 무엇인가?’ 또한 옮긴이가 자의적으로 선택한 것이다. ‘정치경제학 비판: 비판의 비판을 위하여’의 경우 윤소영 교수의 번역으로 아주 오래 전에 번역된 바 있으며, 그 때 윤소영 교수가 붙인 제목이 글의 핵심을 매우 잘 드러낸다고 판단해 이 제목을 그대로 가져왔다. 또한 옮긴이는 이 윤소영 교수의 번역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이에 대해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장치란 무엇인가?’의 경우, 마지막 절 ‘헤게모니인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인가’가 오래 전에 번역된 바 있으나 이 텍스트의 전문이 번역된 적은 없다. 참고로, 발리바르가 “마르크스주의 비판사전”에 기고한 항목은 총 열 한가지로, 이 두 가지를 포함해 ‘바쿠닌주의’, ‘권력’, ‘국가소멸’, ‘반-혁명’, ‘계급’, ‘계급투쟁’, ‘프롤레타리아 독재’, ‘경향(의 권리)’, ‘육체노동과 지식노동의 분할’이 그 항목들이다. 몇 개의 항목은 예전에 번역된 바 있으나 너무 오래 전 번역인데다 현재 구하기도 힘든 텍스트들이므로 옮긴이가 나머지 11가지 항목도 모두 번역하여 웹상으로 공개할 계획이다. 이 두 항목의 번역과 알튀세르 심포지엄을 위한 출판을 허락해준 발리바르에게 감사한다.


정치경제학 비판: 비판의 비판을 위하여

 Économie politique (critique de l’), Critique of political economy, Kritik der politischen Ökonomie

 


에티엔 발리바르

배세진 옮김


1.

 

정치경제학 비판이라는 표현은 맑스의 주요 저서들의 제목에서든 연구 계획에서든 끊임없이 등장한다. 이미 1844년 경제학-철학 수고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라는 제목이 붙여질 예정이었는데, 이 제목은 [1857~58년경 맑스가 계획한] 전체 논고의 1분책으로 1859년 출간된 저작의 제목이 된다.[각주:1] 1859년 출간된 이 저작[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은 정치경제학 비판의 의미[방향]sens과 방법을 심원하게 변경하는, 또한 그 의미를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1857~58년 원고)[이하 요강]이 출간된 덕택에 오늘날 우리가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맑스의 15년 간의 집요한 작업의 결과물이다.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1분책]의 후속작을 위해 자신이 활용했던 재료들(1861~63년 원고)을 즉각 출간하는 대신, 맑스는 자신의 이 저작을 가지고 완전히 새로운 작업을 개시해 결국 1867년에 정치경제학 비판, 1이라는 부제를 달아서 자본을 출간한다.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맑스의 원고들을 토대로 자본2권과 3권을 출간하며, 또한 1885년과 1895년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자신의 서문을 추가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로 여기에서 맑스의 이론적 작업이 제기하는 해석의 문제들의 핵심에 위치하게 된다. 다시 말해, 맑스의 이론적 작업의 대상이라는 문제, 맑스의 이론적 작업의 연속성 혹은 정반대로 연속적 단절들이라는 문제, 맑스의 정치적 실천과 그가 처한 역사적 조건들이 그 자신의 이론적 작업과 어떻게 절합되는가라는 문제, 마지막으로 맑스의 이론적 작업이 노동자 운동과 당대의 사회과학들에 미친 그 효과라는 문제.


이 주제의 유효범위를 더욱 명확히 표시하기 위해, 자본이라는 맑스의 이론적 핵심에 다음의 텍스트들을 추가하자. 엥겔스가 1844년에 출간한 국민경제학 비판 개요라는 논문(맑스는 자본에서 이 논문에 깊은 경의를 표했다), ②「정치경제학의 형이상학이라는 제목이 달린, ‘정치경제학 비판에 평행[대응]하고 요강으로 이어질 작업을 개시한다는 의미를 지니는 철학의 빈곤2, 엥겔스의 -뒤링(1877)을 위해 맑스가 집필한 정치경제학 비판의 역사에 관한 장(이 텍스트는 칼 카우츠키가 1905년 출간하게 되는 1862~63년 원고, 잉여가치 학설사의 요약본이다), 마지막으로 ④『자본의 독일어 제2(1873)의 후기부터 (1881~82년의 경제학 일반에 관하여라는 노트에서 발췌한 텍스트인) 아돌프 바그너의 정치경제학 교과서에 대한 난외주석에 이르는, 자기비판적 경향을 지니고 있는 맑스 최후의 작업이 생산해낸 텍스트들.


그러므로 여기에서 우리가 다루는 정치경제학 비판이라는 표현은 맑스가 자기 고유의 대상과 맺는 이론적-실천적 관계의 영원한 양태를 가장 일반적인 형태로 포함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 관계는, 마치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지의 계급 투쟁을 표현하는 혁명적 실천을 경제적 범주들에 대한 비판과 결합한다는 사실이 자연스럽게 강제되는 것이라는 듯이, 처음부터 [당연한 것으로] 주어진 것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이 관계는 비판이라는 더 일반적인 문제에서 출발해 그 결과로서 조금씩 조금씩 생산된 것이다. 처음에 맑스의 목표는 부르주아 [시민]사회 내에서의 정치적 소외를 비판하는 것이었고, 이런 비판에 요구되는 이론적 형태는 철학적 사변에 대한 비판 및 시민사회와 근대 국가를 포괄하는 다양한 주제들’(철학은 이 다양한 주제들사이의 분할을 은폐함으로써 그 유기적 통일을 표현하겠다고 자처한다)에 대한 비판이었다.[각주:2]


하지만 이런 기획의 실행에서 하나의 의미심장한 전위가 매우 빠르게 개입한다. /권리droit, 도덕, 정치를 비판하는 것은 우선 이 법/권리, 도덕, 정치를 그 유물론적 토대, 그러니까 노동과 생산 내에서의 인간의 구성 과정과 소외 과정에 맞세우는 것이다. 그리고 애초 기획했던 이론적 원환을 완성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바로 이 예비적 순간에서부터[부르주아 시민사회 내에서의 정치적 소외에 대한 비판이라는 초기 기획에서부터 이미] ‘사변적인관념론적 개념화[인식]와 역사에 대한 유물론적 개념화 사이의 양자택일이 작동한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가 명료히 밝혀내야 할 다음의 두 가지 사항이 존재한다. 한편으로, 이런 이론적 전위와 공산주의적 위치[입장](이 공산주의적 위치는 더 이상 인간의 보편성을 표방하지 않으며 대신 규정된 한 계급을 표방한다)으로의 정치적 이행 사이의 관계. 다른 한편으로, 이제 맑스가 밝혀낸 지반을 사실상 차지하게 되는 정치경제학 비판이 자신의 진정한 대상을 결국에는 정치가 아니라 경제에서 찾아내고, 그래서 결국 그 최초의 목표[부르주아 시민사회 내에서의 정치적 소외에 대한 비판]를 대체하는 어떤 정치경제학 비판이라는 기획을 맑스가 실현한 것으로 간주해야 하는지, 아니면 이 정치경제학 비판이 이 광범위한 기획 속에서 한 자리를 차지할 뿐이며 정치경제학 비판은 단지 이 광범위한 기획의 실현을 위한 기초들만을 전개할 뿐인 것인지의 문제.

 

2

 

철학에서 고전적으로 비판이란 어떤 체계 혹은 도그마주의를 해체하려는 목표로 행해지는 논쟁참된 지식[참에 대한 지식]의 정초 둘 모두를 동시에 의미한다. 이 두 경우 모두에서, ‘비판은 강한 의미에서 그 자체 하나의 이론인 것은 아니다. ‘비판은 더 이상 혹은 여전히 대상을 가지고 있지 않다. ‘비판은 단지 (이론적이든 실천적이든) 어떤 능력의 한계들을 보여주는 것이거나, 혹은 그 능력의 본성, 다시 말해 그 원인에 조응하는 허상의 필연성을 보여줄 뿐이다. 하지만, 이전 철학에 대한 관념론적 비판과는 정반대로, 여기에서 우리가 맑스와 함께 마주하고 있는 것은 비판이 취하는 하나의 특수하고도 새로운 양태이다. 유물론적인, 실정적인 지식을 생산하는, 그리고 그 작동인opérateur이 바로 역사 그 자체인 그런 비판을 말이다. -뒤링21장에서 정치경제학의 외연을 확장할 때 엥겔스가 의미하는 비판이 바로 이것인 듯하다. 그래서 현존하는 정치경제학의 허상들에 대한 비판을 통해, 우리는 본질적으로 역사적이기에 유일하게 진정으로 과학적인 새로운 정치경제학의 정초로 가닿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런 이론적 대립은 정치적 대립과 분리 불가능하다. 그래서 (자본3권의 23, 27장의 정식화들과 공명하는) 1864년의 국제노동자협회 창립 연설에서 맑스는 부르주아지의 정치경제학노동자 계급의 정치경제학에 맞세운다. 여기에서 우리는 기초, 대상, 방법이라는 이론적 문제가 계급적 관점의 문제와 하나가 되는 것을 보게 된다. 하지만 동시에 여기에서 우리는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경제()’의 의미가 혼란스러워짐을 발견한다. ‘경제()’은 현실적 과정에 대한 것인가 아니면 이 현실적 과정에 조응하는 이론적 학문분과[경제학]에 대한 것인가, 그도 아니라면 이 둘 모두인가?


맑스와 엥겔스는 자신들의 작업의 특정 시기에 이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취급할 뿐만 아니라, 또한 이 두 의미 사이의 혼동[혼합]을 당연한 것으로 정당화하기까지 한다. 그래서 맑스에게는 1848년의 자유무역 문제에 관한 연설에서, 그리고 엥겔스에게는 1844년의 국민경제학 비판 개요에서, (자유주의와 동일시되는) 이론적 정치경제학은 부르주아적인 경제적 현실에 대한 필연적이면서 폭로의 기능을 수행하는, 자생적 언어인 것이다. 이론적 정치경제학의 위선을 비판하는 것, 이는 곧 부르주아적인 경제적 현실의 비인간성에 맞서 투쟁하는 것이며 그 역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가 출간된] 1859년에는 이미 이런 혼동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게 된다. 맑스와 엥겔스가 이런 혼동의 관념론적 성격을 인지하게 됐기 때문이다(특히 현실 과정사고 과정을 구분하는 요강1857년 서문[정치경제학 비판 서설]을 참조하라). 이전에 맑스와 엥겔스가 취하고 있었던 의식과 현실적인 것 사이의 비구분성이, 고전파 정치경제학이 현실에 부합한다는 점에서 이라고 주장하도록 혹은 그 반대로 현실적인 것이 이론 그 자체와 마찬가지로 허구적이라고 주장하도록 강제했던 반면, 이런 혼동의 관념론적 성격을 인지한 이후 이제 맑스와 엥겔스는 이론적 작업의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계기를 매우 명확히 구별해주는 구분선을 그을 수 있게 된 것 같다. 한편으로, 자본주의적 사회의 현실적 운동에 대한 과학적 분석이라는 계기, 다른 한편으로, 이데올로기로서의 정치경제학에 대한 비판이라는 계기. 그리고 이로 인해, 맑스의 원고들은 이 두 가지 계기에 대략적으로 조응하는 거대한 두 계열로 양분된다.


하지만 표면적으로는 당연해 보이는 두 가지 계기 사이의 이런 구분이, 제시되자마자 사실상[실천적]으로는 적용 불가능한 것으로 드러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 때문인가? 아마도 이는 근본적으로 맑스가 준거하는 이데올로기 개념이 이데올로기를 항상 허상으로만, 사변적 신비화로만 정의하는 반면, 맑스의 관점에서 고전파 정치경제학에 내재하는 부르주아적인 계급적 관점은 우리가 무시하지 않고 반드시 사고해야만 하는 어떤 객관성을 그 상관항으로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비판의 두 계기 각각은 자기 고유의 변증법을 만들어내게 되는데, 이 변증법에서 고전파 경제학의 언표들과의 대면은 역사적 모순들에 대한 설명과 겹쳐진다. 바로 이런 이중적 형태 아래에서 역사적 과정 그 자체에 내재적인 비판이라는, 맑스에게 근본적인 그런 관념이 나타난다. 하지만 맑스는 이데올로기 개념을 20년 동안 방기하는데, 그래서 자본에는 이 이데올로기 개념이 완전히 부재해 있다.[각주:3]

 

3.

 

경제 이론들[경제학]에 대한 비판은 맑스가 자신의 작업을 전개해나가면서 상당한 정도로 변형됐다. 경제 이론들에 대한 맑스의 비판이 그 변형 과정 내내 정확히 동일한 목표를 항상 지니고 있었는지 질문해봐야만 한다.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에 관한 1859년의 서평에서, 엥겔스는 정치경제학에 관한 역사적 비판논리적 비판을 구분했다.


그런데 만일 정치경제학에 대한 논리적비판이라는 것이 가능하다면, 이는 필연적인 이론적 전개가 그 근본에서부터 존재하고 있음을 표현하는 정치경제학의 논리가 [이미]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경제학 비판은 이런 내재적 논리의 복원, 경제적 범주들에 대한 설명Darstellung, 무엇보다도 교환가치(추상적) 노동이라는 경제적 범주들에 대한 설명, 결국 이 범주들에 대한 재구성에 다름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이는 노동가치에 대한 정의, “그 어떤 경제학자도 할 줄 몰랐던노동가치에 대한 정의을 기반으로 한 경제 법칙들에 대한 유효한 해명일 것이다. 하지만 사고 속에서 표상된 경제적 범주들의 역사, 이 경제적 범주들의 현실적 전개를 (심지어 전도된 방식으로라고 할지라도 어찌됐든) 반영하는 역사는 이미 역사 내에서 (무의식적인) 비판의 과정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맑스는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1장의 역사적 보론에서 상품을 노동으로 분석적으로 환원하는 것은 …… 고전파 정치경제학에 의해 150여 년 이상 행해진 연구들에 대한 비판적인 최종적 결과das kritische Endergebnis”[각주:4]라고 말했던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맑스의 비판은 그 자체로 이미 비판적 담론에 적용된다. 그러므로 (경제학자들의 오류에 대한 맑스의 발견을 반박하는) 경제학자들의 반론에 대한 맑스의 응답뿐만 아니라 경제학자들의 오류 자체에 대한 정정 또한 (경제학자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들 고유의 비판적 경향의 실현을 구성하게 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서 우리는 변증법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인데, 그러나 이는 (1858년 맑스가 [우연한 계기로] 다시 읽었던) [대논리학] 헤겔과 매우 가까운 의미에서의 변증법이다. 극단적으로 보면, 맑스는 헤겔이 철학 체계들을 지양한 것과 마찬가지로 경제학 체계들을 비판하는 것이다. 이 체계들[헤겔에게는 철학 체계들, 맑스에게는 경제학 체계들]진리를 발현하게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이런 관점에서, ‘정치경제학 비판은 맑스주의를 경제학자들의 지반과는 다른 지반위에 확립되도록 이끌 수 없고 대신 이 경제학자들이 지니는 모순들의 논리를 (필요하다면, 현대의 맑스주의자들이 제안했듯이, ‘고전파 경제학자들의 작업뿐만 아니라 더 최근의 이론가들, 즉 존 메이너드 케인스, 피에로 스라파 등의 작업 또한 출발점으로 삼으면서) 전개되도록 이끌 수 있을 뿐이라는 점을 지적하자.


그런데 자본에서 맑스의 문제설정은 변한다. 경제학자들에게 제기된 비판들은 항상 동일한 결절점, (교환)가치에 대한 노동으로의 일반적 환원이라는 결절점[원리]에 준거한다. 하지만 경제학자들이 이 원리로부터 끌어내고자 노력하는 결론들 내에서 그들의 오류를 발견하는 대신(결론들은 결국 [맑스에게는] ‘비결론들’inconséquences이다), 이제 경제학자들의 오류는 그들의 [복수의] 원리들 그 자체 내에 위치하게 된다. 엥겔스에게 보낸 186818일자의 중요한 편지에서 맑스가 지적하듯, 노동에 의한 가치의 결정은 데이비드 리카르도에게서 비결정되어 있으며, 바로 이것이 리카르도의 극복 불가능한 모순이다. 그러므로 모든 쟁점이 이런 사이비-결정 속에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리카르도에게 노동이라는 개념은 미분화된 개념으로, ‘추상적일 뿐만 아니라 이미 가치의 크기로 표상된, 그러니까 허구적으로 회계화된개념이다. 리카르도의 노동 시간이라는 개념은 지출된 노동력의 척도라기보다는 오히려 생산에 필수적인 기간이다. 그래서 정치경제학은 노동을 항상-이미 자본의 힘으로 표상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노동을 자신들의 문제설정의 기초로 삼느냐 삼지 않느냐에 따라 경제학 이론들을 분류하는 것이 전혀 충분하지 않은 이유이다. 우리는 이 경제학 이론들 내에서 어떤 노동개념이 적용되고 있는지를 여전히 질문해야 한다.


이제부터 비판의 결과는 하나의 비판적 정치경제학을 구성하는 것, 그러니까 이 비판적 정치경제학의 역사적으로 내재적인 고유한 경향을 완성하는 것이 더 이상 아니다. 만일 오류가 원리들 그 자체에 있는 것이라면, 우리는 정치경제학이 내포하는 그 모순과 혼란을 과학적인 하나의 정치경제학의 [존재론적] 불가능성 자체의 지표로 사고해야 한다. 이제부터 우리는 이론 내에서 하나의 비-경제학적인 관점을 구성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위에서 제기된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은 하나의 형식적 답변을 얻게 된다. 우리가 그 모순들을 분석하는 현실은 하나의 경제적현실이 아니다. 이 현실을 이데올로기적으로 경제로 표상하는 것은 단지 경제학 이론일 뿐이며, 이 현실을 이데올로기적으로 경제학으로 표상하는 이는 단지 경제 이론가들일 뿐이다.

 

4.

 

경제적 현실에 대한 비판이 최초의 혼동, 즉 경제학 이론에 대한 비판과의 혼동으로부터 벗어남으로써 이 경제적 현실에 대한 비판이 경제학 이론에 대한 비판과의 관계 속에서 의미하는 바를 검토할 수 있게 된다면, 비로소 우리는 맑스의 결론과 유사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바로 생산과 교환의 관계들의 적대적 모순들을 명확히 해명해내는 것이다. 이 모순들, 무엇보다도 위기라는 형태 아래에서 발현되는 모순들은 (모순들 없이도 존재할 수 있는, 혹은 적절한 정치적 테크닉을 통해 이 모순들이 제거될 수 있는 그런) 경제적 현실의 우연적 효과 혹은 표면적 형태가 아니다. 이 모순들은 경제적 현실의 본질그 자체를 구성한다. 그러므로 이 모순들은 이데올로기적 몽상 속에서가 아니라면 그 어떤 모순들 간의 화해도 허락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물질적 생산의 사회적 조건들(‘생산의 사회적 관계들’)은 그 자체로 적대적 조건들이며, 이 적대적 조건들은 이 적대적 조건들을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계급 투쟁에 기반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가치 법칙에서부터 축적 법칙인구 법칙에 이르기까지) 경제적 구조와 그 법칙들전체를 계급 투쟁이 취하는 형태들의 역사와 관련지어야 한다. 그런데 이 형태들은 [맑스와 엥겔스의 관점에서] ‘소멸이 예정된현재 상태의 진행 중인 변형 과정 내에 기입되어 있다. 경제적 현실의 구조의 법칙들을 결국에는 혁명적 경향들’(하지만 -경향들의 복합체에 의해 어느 정도 효과적으로 균형을 되찾게 되는 그런 혁명적 경향들’)로 정의함으로써 맑스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가 바로 이것이다. 그래서 유물론적 비판은, [절대주의적인] 보편적 역사철학을 재구성하지는 않으면서도 동시에 (예를 들어 스튜어트 밀이나 그 이후 막스 베버와 현대 사회인류학이 그러했듯) 단순한 역사적 관점이 유도하는 상대주의로 빠져버리지는 않게 된다.


이 일반적 테제들은 노동과 가치에 관한 근본 범주들의 의미를 대상으로 하는 논증과 결합된다. 정치경제학에게서, 노동 생산물의 가치 형태는 지양[초월] 불가능한 하나의 소여[주어진 것]이다. 만일 정치경제학이 이런 형태의 기원에 관해 질문해본다고 해도, 이는 인간 본성으로부터 출발해 형태의 관념적 발생을 전개함으로써 필연적으로 허구적이며 형이상학적인 방식으로, 혹은 하나의 공리적인 방식으로, 하지만 항상 교환의 영역 그 자체 내에서 질문하는 것에 불과하다(바로 이 교환의 영역으로부터 원시적인간의 교환 성향을 제시하는 로빈슨 크루소 우화에 준거하고자 하는 끈질긴 경향이 나타난다). 맑스에게 이런 관점은 다음의 두 가지 근본적 질문을 무시하는 것이다.


a) 정량적으로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자신의 생산물들에 가치() 형태를 부여함으로써도 가치를 결정하는 사회적 노동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자본의 논증 전체는 유일하게 자본주의적 생산양식만이 (노동력으로부터 분리된) 생산수단을 특수한 한 계급의 독점물로 보편적으로 변형함으로써 이 수단을 인간 노동을 착출하는 수단으로([직접]생산자에게서의 유용성뿐만 아니라 생산수단의 소유자에게서의 유용성과 관련해서도 이 노동의 모든 직접적 유용성과는 독립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만든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잉여노동으로부터 출발해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이 생산과정 그 자체가, 사회적 수준에서, ‘구체적 노동추상적 노동사이의 구분을 일반화하며 구체적 노동추상적 노동에 종속시키고 이를 통해 모든 생산물의 가치 형태를 영구적으로 재생산하는 것이다.


b) 노동력 그 자체를, 자본가들을 따라 정치경제학이 노동의 가치혹은 가격으로 생산물을 평가함으로써 회계화한 일정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하나의 상품으로 만드는 조건들은 도대체 무엇인가? 노동자에게 필수적인 소비 수단의 가치와 노동력 가치 사이의 평균적 등가성을 완전히 수수께끼적인 하나의 기정사실로 전제함으로써, 정치경제학은 사실 노동력 재생산의 조건들을 상품을 통해 은폐하는 것이다.


그래서 맑스의 분석은 경제학자들의 눈에는 완전히 역설적인 전도에 이르게 된다. 가치에 대한 일반적 정의 혹은 가치와 가격의 결정을 위한 양적 원리(이것들은 모두 국민 회계의 자명함을 예상하는, 자본가의 일상적 실천의 자명함에서 추상된 것이다)의 결론들을 전개하는 대신에, 착취를 (예컨대 불균등한 분배 같이) 하나의 경제적 메커니즘의 결론으로 정의하는 대신에, 정반대로 맑스는 경제적형태들을 임노동 착취의 전체 과정의 계기와 효과로 정의한다. 이 지점이 바로 이론적으로 핵심적인 지점인데, 가치라는 범주는 (맑스의 주장을 문자 그대로 믿어버리는 맑스 주석가들이 너무나 자주 그렇게 간주했듯) 유산 혹은 연속성이라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영구적이며 화해 불가능한 하나의 분기라는 의미에서, [고전파] 정치경제학과 [맑스적] 역사유물론 사이의 마주침의 지점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다음의 두 가지 이론적 벡터가 대립된다. 한편으로는 연역적인 방식으로 가치에서 가격으로, 그 다음 이윤과 임금으로 나아가는 이론적 벡터가 존재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분석적인 방식으로 가치에서 축적 가능한 잉여가치 구성의 형태들(다시 말해 자본주의적 잉여노동에 의해 주어진 양태들), 그래서 규정된 역사적 착취 전략들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론적 벡터가 존재한다. 명백히 이 두 가지 이론적 벡터들로부터 도출되는 예상의 유형들은 완전히 반정립적[대립적]이다. 만일 우리가 맑스의 논증을 따라간다면, 정치경제학은 역사유물론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유물론은 역사적으로 필연적인, 자본주의적 착취의 객관적 형태들 내에 함축되어 있는 이데올로기적 표상들의 체계로 정치경제학을 이해하고 이를 설명할 수 있다.

 

5.

 

이때부터 맑스는 우리가 방금 지적한 의미에서의 정치경제학의 존재의 역사적 조건들에 대해 더 정확한 테제를 주장할 수 있게 된다. 이 테제는 과학적경제학과 속류경제학의 구분과 연결되어 있다. 잉여가치 학설사10장에서, 이런 구분은 스미스와 리카르도에게서 고전적 경제 이론의 두 부분’, 비교적’[심원한]ésotérique 부분과 현교적’[표면적]exotérique 부분의 구분에서 출발해 제시된다(‘비교적,’ ‘현교적이라는 용어는 맑스가 아리스토텔레스적 전통으로부터 취한 것이다). 자본의 독일어 제2(1873) 후기에서 맑스는 자신의 논의를 이보다 더 멀리 밀어붙인다. 맑스는 정치경제학의 모순적 발전과 유럽 계급 투쟁의 역사를 연속적 국면들을 갖는 복합적 단일 과정으로 제시한다. 이 과정은 각각 처음에는 19세기 초에 토지 소유자와 산업자본 사이의 세력 관계의 역전이라는 축을, 그 다음으로는 부르주아지에 의한 정치 권력의 장악이라는 축을, 마지막으로는 자본의 축적이라는 자연적운동에 대한 위협으로서의 노동력의 자율성이 돌발하도록 만든, 조직된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발전이라는 축을 중심으로 회전했다. 1848~49년 혁명 이후 [고전파] 정치경제학이 (변호론적인) ‘속류 경제학으로 총체적으로 변질된 것은 과학적 사회주의’(과학적 사회주의의 객관성은 더 이상 계급적 관점의 부인 위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이런 계급적 관점의 명시적 전개 위에 기반한다)의 발전과 상관적인 것임이 드러난다.


여기에서 우리는 맑스가 사회학주의혹은 정치적 상대주의로 회귀했다고 간주해서는 안 된다. 각 계급과 그 계급의이론 사이에 일대일 대응 관계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계급 모순들의 앙상블 형태와 이론 내 모순들의 형태 사이의 관계가 우선 존재하는 것이다. 만일 (이 고전파 경제학이 객관적 설명을 추구하고 현실 경제에 대한 자본가적 경영 테크닉과 국가 정책에 기입되어 있는 현실적 이데올로기를 세공하는 데 만족하지 않는 한에서) 고전파 경제학이 형식적으로 과학적이라면, 이는 이 고전파 경제학이 (스미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노동의 명령’[지배]commande에 필수적인, [리카르도의 표현을 빌리자면] 토지 소유에 대한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헤게모니적 우위(결국 이들 사이의 투쟁은 지배 계급의 분파들 사이에서 잉여가치의 일정한 분배 이외에 다른 목적을 가지지 않는다)에 필수적인, 축적에 기입되어 있는 사회적 관계들을 이론화하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은, 자신이 그 모든 족쇄로부터 해방시키고자 하는 형상, 즉 상품 생산의 생산자-교환자라는 이데올로기적 형상(그 탁월한 대표자가 바로 호모 에코노미쿠스이다) 속에서 구체화된다. 바로 이런 범위 내에서 고전파 경제학의 관점은 자본의 이해와 프롤레타리아의 이해 사이의 대립이 존재함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이 자본의 이해와 프롤레타리아의 이해 사이의 대립을 비-적대적인, 정치적으로 관리[통제] 가능한contrôlable 모순으로 표상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래서 고전파 경제학의 관점은 항상-이미 속류적이고 변호론적인 요소(스미스의 현교적요소, 그리고 절대지대에 대한 거부에도 불구하고 항상 존재하고 있는 리카르도의 현교적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고전파 경제학에 그 이론적 형태를 부여하는 것, 그리고 이 고전파 경제학의 이론 내부에서부터 그 과학적 추상들의 생산을 명령하는 것은, 정확히 말해, 객관적인 요소와 속류적인 요소라는 두 가지 요소들의 불안정한 결합이다. 다시 말해, 동일한 문제설정의 모순적 통일체 내에서 계급 투쟁에 대한 인정과 불인정의 결합 말이다. 그렇지만 만일 과학적요소가 속류적요소로부터 분리될 수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경제학이 아닐 것이다. 정치경제학을 해체décomposition함으로써 추출해낼 수 있는 고립된 속류적 요소는 (심지어 자신이 기술적으로 수학적 형태를 취한다고 할지라도) 거의 혹은 더 이상 전혀 이론이 아니다. 이 속류적 요소는 착취의 테크닉과 전략을 포함하는 정치-법률-도덕적 이데올로기로 회귀하는 경향을 가지기 때문이다.

 

6.

 

비판의 비판에 착수하기 위해 맑스, 아니 오히려 맑스주의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삼중의 질문을 제기하는 문제가 우리에게 남아 있다.


a) 조직된 노동자 계급 투쟁의 역사적 돌발이 고전파 경제학을 속류 경제학으로 해체하도록 만들었던 방식을 분석한 뒤에도, 어떻게 맑스주의는 (이와 대칭적으로) 조직된 프롤레타리아 투쟁의 상대적 제도화가 자기 자신을 속류 맑스주의로 경향적으로 변형하도록 만들었던 방식을 분석하는 데 사실상 무능력할 수 있었는가? 사실 제국주의가 발전하기 시작한 19세기 말의 첫 번째 맑스주의의 위기에서부터 현재의 [맑스주의의] ‘위기에 이르기까지, 이런 변형은 지배 부르주아지의 사회 정책에 침투당한 개량주의와 자본주의의 일반적 위기의 폭발을 예언하는 데 온 힘을 쏟아부어버리는 추상적인 혁명적 파국주의라는 이중의 형태 아래에서 광범위하게 그리고 강력하게 작동했다. 우리는 이런 변형의 과정을 (제국주의에 관한 이론들의 발전이 대표하는 바에도 불구하고) ‘정치경제학 비판(노동자 투쟁의 효과 자체 아래에서의)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동시대적 변형 사이의 점점 더 커지는 지체혹은 간극과 연결시키는 관련성에 대해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노동력의 활용과 재생산은 19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노동력에 대한 착취를 지배했던 야만적인경쟁 형태들과 일반화된 탈숙련화의 경향으로부터 끊임없이 멀어져 갔다. 동시에 노동력의 활용과 재생산은 가장 발전된국가들에서 노동자 조직들을 자본과 노동 사이의 관계 내에 유기적으로 기입된 (근대 국가의) ‘구조적 형태로 만들었다. 서구 제국주의 국가의 계약형태 아래에서든 사회주의 국가의 계획화형태 아래에서든 말이다. 그래서 이 두 경우 모두에서 적대적 모순들은 제거되지 않고 국가의 기능작용 그 자체 내부로 포섭됐다. 하지만 동시에, 그리고 어떤 예외도 없이, 현재의 상태에 대한 유물론적 비판을 연장하는 대신, 이런 사건 이후에야 뒤늦게 등장하는 당 혹은 노동조합의 이데올로기적 시멘트가 되어버린 맑스주의는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하나의 도덕적 비판으로 혹은 거의 종교적인 하나의 노동자주의로 대부분 퇴보해버렸다.


b) 결국 경제적 이데올로기를 넘어 맑스가 겨냥하고 있는 것이 무엇보다 사회적 현실의 모순들이라는 효과 아래에서 이 사회적 현실에 내적인 변형 과정이라면, 맑스 자신으로 그리고 맑스 자신이 활용한 비판개념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왜 우리는 엥겔스가 그랬듯이 단순하게 유물론적 변증법을 말하지 않는 것인가? 경제적 현실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외부로부터’(혹은, 이와 동일한 것이지만, 역사의 흐름 속에서 허구적으로 확립된 어느 한 도덕적 주체의 관점으로부터) 채택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경향적 법칙들을 분석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순간, (맑스주의의 정초자들이 변증법에 점진적으로 부여한) 새로운 의미의 변증법에서, 현실적 비판은 바로 변증법 그 자체이다. 비판적이고 혁명적인것으로 이해된 변증법이라는 용어는, ‘정치경제학 비판이라는 용어보다 훨씬 더 명시적으로, (현실적 과정 그 자체를 특징짓는 개념인) 혁명이라는 개념과 이 현실에 대한 (객관적 인식을 제공하는) 이론 혹은 과학이라는 개념 사이에서 구성되는 실천적 통일체를 지시하는 것 같다. 만일 이런 질문이 맑스에게서 완전히 명확해지지 않았다면, 이는 이런 통일체가 직접적으로[무매개적으로] 획득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문제적인 것으로 남아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혁명 과정 내로의 과학적 이론의 개입 양식이라는 영원히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론(과학)에 의한 대상(혁명)전유 방식이라는, 우리에게 반복적으로 출현하는 문제 또한 존재한다. ‘변증법=과학이라는 등식 곁에, 그리고 동시에 이 등식에 대립적인 방식으로 변증법=비판이라는 등식을 유지시키는 것은 맑스에게서 해결되지 않은 [바로 앞서 언급한] 이런 이중적 문제, 이론 내에서의 계급적 관점이 지니는 난점들과 관련된 이중적 문제의 존재를 지시한다, 그리고 이 문제의 사실상의 정치적 본성을 지시한다고 도식적으로 말해두자.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정치경제학을 이데올로기로 정의함에서 맑스가 맞닥뜨린 난점이 아니라, 이번에는 자기 자신의 과학적 이론조차 이데올로기로 사고함에서, 혹은 (이런 표현을 원한다면) 자기 자신의 과학적 이론의 이데올로기적 조건들과 효과들을 사고함에서 맑스가 마주하게 되는 어려움이다.


c) 하지만 이 두 경우 모두에서 이데올로기 개념은 핵심적인 지점이다. 논의를 결론짓기 위해 제기할 수 있을 세 번째 질문과 관련해 여전히 우리 눈 앞에 등장하는 것이 바로 이 이데올로기 개념이다. 세 번째 질문은 다음과 같다. ‘정치 비판이라는 최초의 기획을 점차 정치경제학 비판으로 변형한 뒤에도, 그리고 이를 통해 (역사유물론의 문제설정을 추출하려고) 철학적 관념론의 지형을 이동시킨 뒤에도, 어떻게 맑스와 그 후계자들은 여전히 국가에 관한 이론이라는 관념에 그토록 끊임없이 사로잡혀 있었을까? 마치 정치경제학 비판이 국가에 관한 이론예비적 이론을 대표할 뿐이라는 듯이 말이다. 혹은 달리 말하면, 맑스가 경제학자들을 부르주아 계급의 대표적 이데올로그들로 명시한 뒤에도, 즉 경제학의 정치적 기능과 대상을 제시한 뒤에도, 어떻게 맑스의 비판은 맑스주의 자체 내에서 경제주의의 회귀를 혹은 (맑스가 접근하지 못했고, 여전히 구성해야만 하는 것으로 남아 있던) ‘정치적인 것에 관한 이론이라는 신기루를 끊임없이 생산해냈을까? 여기에서 우리는 (답변이라기보다는 사실상 연구 계획이라고 할 수 있을) 세 가지 차원에서의 답변을 제시할 수 있을 뿐이다. 첫째로, 분명 비판공적일 뿐만 아니라 사적인 실천들을 (자본주의의 국면에 따라 가변적인 방식으로) 포함하는 착취 조건들의 전체 과정에 대한 연구로 나아갔다. 그래서 정치경제학 비판시민사회국가사이의 절대적 구분이라는 고전파 경제학자들의 유산에서 항상 더 멀어져 갔다. 하지만 (1859년에 자신의 이론을 시민사회의 해부학으로 정의한) 맑스는 정치경제학 비판을 형식적으로 이런 구분 아래에서, 또한 경제 이데올로기의 대표적 생산물인 시장계획의 상관적 구분 아래에서 사고하기를 멈추지 않았다(그러므로 사실 맑스는 여전히 경제 이데올로기에 의존해 있었던 것이다). 두 번째로, ‘정치경제학 비판이 이런 구분 자체를 문제시하지 않았던 한에서(비록 맑스가 이런 구분의 유물론적 결정을 표현하기 위해 토대상부구조라는 언어 속으로 이 구분을 전치시킨다고 해도 말이다), 맑스의 비판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 일반을 근본적으로 하나의 법률적인 이데올로기로 정의하려는 경향을 지속적으로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맑스는 자신의 모든 분석이 끊임없이 제시했던 바를 사실은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던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대표적인 국가 이데올로기(이것 안에서, 이것을 통해 부르주아 계급의 헤게모니가 구성된다)가 바로 경제 이데올로기라는 점을 말이다. 왜냐하면 사변적방식으로가 아니라 현실적 쟁점들[내깃물]enjeux가장 가까이에서 계급 투쟁과 대중 행동을 장기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바로 이 경제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그리고 동일한 이유에서, 맑스주의는 집권당이 취하는 하나의 이데올로기를 통해 혹은 집권당에 종속된 당들이 취하는 하나의 이데올로기를 통해 하나의 국가 이데올로기로 스스로 변형되는 경향을 지녔던 만큼, (그런 관계를 부인할 때조차도) 경제주의와 자신 사이의 관계, 그러므로 정치경제학과 자신 사이의 관계의 포로였다.[각주:5]




  1. [옮긴이] 당시 맑스는 총 6권으로 경제학 저작을 집필할 계획이었다(순서대로 각 책은 자본, 토지 소유, 임노동, 국가, 국제무역, 세계시장을 다룰 예정이었다). [본문으로]
  2. [옮긴이] 부르주아 시민사회 내에서의 정치적 소외에 대한 비판에서 정치경제학 비판으로의 이행에 대해서는 다음의 책에 수록된 미카엘 뢰비의 논문(「정치편」)을 참조하라. Gérard Duménil, Michael Löwy, et Emmanuel Renault, Lire Marx, Paris: PUF, 2009, p.184. [황재민•김덕민•배세진 옮김, 『맑스를 읽자』, 나름북스, 근간.] 뢰비는 맑스가 정치, 즉 운동과 맺은 관계를 고려하면서 ‘목재 절도’에 관한 초기의 텍스트에서 출발해 그의 사상적 변화를 교과서적으로 매우 명료하게 설명해낸다. [본문으로]
  3. [옮긴이] 발리바르의 더 자세한 설명으로는 다음을 참조하라. 에티엔 발리바르, 서관모•최원 옮김, 「붙잡을 수 없는 프롤레타리아트」(3부 3장), 『대중들의 공포: 맑스 전과 후의 정치와 철학』, 도서출판b, 2007. [본문으로]
  4. [옮긴이] 칼 맑스, 김호균 옮김,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중원문화, 2007, 40쪽. [본문으로]
  5. [옮긴이] 6절에 담긴 발리바르의 해석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으로는 다음을 참조하라. 에티엔 발리바르, 배세진 옮김, 「이데올로기 또는 물신숭배: 권력과 주체화/복종」(3장), 『마르크스의 철학』, 오월의봄, 2018; 『대중들의 공포』, 3부 전체.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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