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인-무브

편집자의 말 : 이 글은 2018년 11월 23일-24일 양일간 열렸던 <알튀세르 탄생 100주년 기념 학술대회 : 알튀세르의 문제들>의 특별자료집에 「정치경제학 비판과 이데올로기 비판 : 알튀세르 이해를 위한 맑스주의의 두 가지 개념」이라는 제목으로 실렸던 글의 일부분이다. 인-무브에서는 이 두 항목을 다시 나누어 각각 게재하려 한다. 게재를 허락해 준 배세진 선생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을 전한다.


옮긴이 앞글 : 알튀세르 탄생 100주년을 맞아 개최되는 알튀세르 심포지엄을 위해 번역한 아래의 두 텍스트는 알튀세르의 가장 충실한 제자, 동료이자 주석가였던 에티엔 발리바르가 조르주 라비카(Georges Labica)와 제라르 뱅쉬상(Gérard Bensussan) 책임편집의 “마르크스주의 비판사전”(Dictionnaire critique du Marxisme, PUF, 1982)에 기고한 아홉 개의 항목 중 알튀세르의 사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두 개의 항목인 Économie politique (critique de l’), 즉 ‘정치경제학 (비판)’과 Appareil, 즉 ‘장치’를 번역한 것이다. ‘정치경제학 비판과 이데올로기 비판’이라는 위의 제목뿐만 아니라 아래의 제목들, 즉 ‘정치경제학 비판: 비판의 비판을 위하여’와 ‘장치란 무엇인가?’ 또한 옮긴이가 자의적으로 선택한 것이다. ‘정치경제학 비판: 비판의 비판을 위하여’의 경우 윤소영 교수의 번역으로 아주 오래 전에 번역된 바 있으며, 그 때 윤소영 교수가 붙인 제목이 글의 핵심을 매우 잘 드러낸다고 판단해 이 제목을 그대로 가져왔다. 또한 옮긴이는 이 윤소영 교수의 번역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이에 대해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장치란 무엇인가?’의 경우, 마지막 절 ‘헤게모니인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인가’가 오래 전에 번역된 바 있으나 이 텍스트의 전문이 번역된 적은 없다. 참고로, 발리바르가 “마르크스주의 비판사전”에 기고한 항목은 총 열 한가지로, 이 두 가지를 포함해 ‘바쿠닌주의’, ‘권력’, ‘국가소멸’, ‘반-혁명’, ‘계급’, ‘계급투쟁’, ‘프롤레타리아 독재’, ‘경향(의 권리)’, ‘육체노동과 지식노동의 분할’이 그 항목들이다. 몇 개의 항목은 예전에 번역된 바 있으나 너무 오래 전 번역인데다 현재 구하기도 힘든 텍스트들이므로 옮긴이가 나머지 11가지 항목도 모두 번역하여 웹상으로 공개할 계획이다. 이 두 항목의 번역과 알튀세르 심포지엄을 위한 출판을 허락해준 발리바르에게 감사한다.


장치란 무엇인가? 

Appareil, Apparatus, Apparat



에티엔 발리바르

배세진(파리 7대학 정치철학 전공 박사과정) 옮김




1.

 

맑스주의자들이 지속적으로 활용하는 이 용어는, 비록 이 맑스주의 비판 사전에서도 그 정의가 자명한 것처럼 기고자들이 사용하고 있지만, 그 존재 자체가 우리에게 두 가지 예비적 질문을 요구한다.

 

1) 이 용어는 도대체 무엇에 관한 것인가? 우리 쪽의 착오가 아니라면, 맑스와 엥겔스는 국가장치appareil d’État가 아니라 국가기계machine d’État(혹은 machinisme d’Etat, Staatsmaschinerie)에 대해 말한다. 반면 레닌은 장치라는 용어를 흔히 쓰는데, 고전가들[맑스와 엥겔스]의 표현과 번갈아 쓰다가 나중에는 그것[장치]의 의미를 점진적으로 넓혀 확장한다. 그러므로 국가장치는 제2인터내셔널을 통해 맑스주의 내로 도입된 것이다. 그런데 이 장치라는 용어는 다음과 같은 여러 다양한 관념이 뒤섞인 오래된 정치적, 기술적, 철학적 복합체에서 유래하는 은유이다.

 

- 권력장치라는 관념, 다시 말해 과시적 특징(이 과시적 특징에서 이 권력장치의 권위가, 그 신성한 외양이 유래한다), 그러니까 대표[표상/재현]représentation의 특징을 지닌 장치라는 관념. 이런 관념은 국가는 모든 사회의 공식적 대표자, 가시적 신체 내로 이 사회를 종합한 것이었다” (-뒤링3)라고 말하는 엥겔스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

- 기계론[메커니즘]mécanisme이라는 관념. 무엇보다도 고전적 합리주의(그리고 그 유물론적 구성요소)에 심원하게 연결되어 있는 이 관념은 윤리적,’ ‘유기적국가(이 국가의 내적 통일의 원리는 시민들의 도덕성이다)와 외적 강제contrainte에 기초해 있는 국가, 이 둘을 구별하기 위해 헤겔이 자신의 논의에 알맞도록 변형시켰던 관념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제기해야 할 질문은 기계라는 개념적 은유가 개인의 권리를 희생하는 방식으로 근대 국가들에서 불균등하게 발전된 중앙집중화된 행정적 요소를 특수하게 겨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이다. 하지만 바로 이것이 1843년의 헤겔 국법론 비판[헤겔 법철학 비판을 위하여]에서 맑스가 관료제와 대중 사이의 관계에 관한 경험적 서술로, 그리고 동시에 사변적 서술로 비판했던 바의 전형 아닌가?

 

만일 국가에 관한 기계론적 해석이 이렇듯 국가의 물질성에 대한 사고를 포함하고 있다면, 동시에 이런 해석은 국가가 본성적으로 지니고 있는 강압적 특징 혹은 억압적 특징을 그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 국가는 자유의 실현이 아닌 것이거나 혹은 아직은 여전히 아닌 것이다. 맑스주의 고전가들에게서, 기계론은 유기체론[유기체]organisme에 대립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엥겔스는, 주어진 사회적 조건들 내에서 강제의 역사적 필연성을 설명하고자 하는 한에서는, 이런 강제를 동시에 기계론과 유기체론 모두로 정확히 지시한다(-뒤링3장과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 고전 철학의 종말4장 참조). 그러므로 우리에게 유동적인 것으로 드러나는 것은 바로 이 은유의 적용 양태이다. 이 은유는 국가를 기계로 정의하거나(국가하나의 기계이다), 국가가 하나의 기계, 즉 장치 혹은 도구로서의 기계를 포함하고 있는, 즉 소유해 활용할 수 있는 것으로(이런 의미에서 국가는 기계의 주인과 소유자로 나타난다) ‘분석한다. 이는 이 은유가 자신이 명시적으로 다루도록 허락되지 않은 그런 모순들까지도 포괄한다는 점을 의미한다.

 

2) 이 은유가 목표로 하는 것은 어떤 개념인가? 이 은유는 특히 국가에 적용될 수 있는, 하지만 유일하게 국가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닌 그런 (‘사회학적인’) 일반적 개념으로서의 장치에 관한 것인가? 혹은 국가장치를 합쳐서(그러니까 특수하게 국가적인 장치적 현상으로) 온전히 취해야만 하는 국가장치에 관한 개념인 것인가?

 

a) ‘기계라는 용어 혹은 Maschinerie[기계류/기계들]라는 용어는 자본과 이 자본의 예비 작업을 위해 집필한 텍스트들에서 우선 고유한(기술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하지만 산업 혁명과 공장 체계에 관한 분석에서 맑스는 이미 이 기계라는 용어에 광범위한 유효 범위를 (하지만 정치적 차원은 결여된 채로) 부여한다. 처음에 이는 영어 machinery를 옮겨적은 것이었다. 하지만 산업적 기계화(그리고 그것의 자동화로의 변화)에 대한 분석은 노동 분할[분업]의 경향에 대한 분석과 분리 불가능하다. ‘기계 체계,’ 즉 생산수단의 물질적 체계는 노동력을 착출함과 동시에, 육체 노동과 지식 노동의 분할을 완성하고 노동자가 자신의 도구와 맺는 관계를 역전시킨다. 바로 기계적 자동장치가 주체가 되는 것이다. “중심 기계는 자동장치일 뿐만 아니라 전제 군주이기도 하다.” 중심 기계는 최종적인 수준에서 지배를 정초하는 것은 아니라고 해도 노동에 대한 자본과 자본가의 절대적 통제를 확립한다. 그러므로 이 중심 기계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하나의 사회적 관계’(맑스가 이미 그렇게 주장한 철학의 빈곤참조), 즉 파업을 분쇄하고 생산 내에 병영 규율을 확립하는 수단이다. 이를 통해 사회적 강제가 자유로운노동자들에게 행사된다는 점에서 노예제의 채찍보다 우월한 그런 하나의 사회적 강제가 확립된다. 이런 강제는 부르주아지의 정치적 지배 내에서 자유로운 시민들에게 행사되는 강제와 유사한 것인가 아니면 오히려 대립되는 것인가? 어쨌든 이런 강제는 부르주아지의 정치적 지배 내에서 행사되는 강제와 상관적이다(자본1권의 3편과 미간행된 장참조). 하지만 역으로 맑스의 사유 내에서, 이 상관 관계는 생명과 사회적 노동의 일반적 기능들외부화하며 강제장치 내에 물질화하는 (계급 사회 내의) 노동 분할과 연결된 동일한 일반적 과정의 효과로 설명되는 것 아닌가? 생산적 기계들과 정치적 기계들사이의 차이를 부차적인 것으로 간주하느냐 간주하지 않느냐에 따라, 우리는 (소외 개념에 준거하는) 이런 이론적 일반화(오늘날 우리는 [경제적으로] ‘계획화된 사회국가적 생산양식의 이론가들이라는, 이 이론적 일반화의 후예들을 가지고 있다)의 적절성을 인정하거나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b) 실증주의 법학과 실증주의 사회학의 영향 아래, 2인터내셔널과 제3인터내셔널의 맑스주의자들은 특히 /권리droit, 그리고 ‘(좋은[선한]) 의지강제사이의 (이 법/권리와 맺는) 특수한 관계라는 개념적 문제와 또 다시 마주하게 됐다. 이 점에 관해 가장 흥미로운 이론가는 오이겐 파슈카니스인데, 그에게 법률적 형태는 (논리적으로, 게다가 역사적으로) 국가를 선행하며 결과적으로 법률적 형태는 이론적으로는 국가로부터 독립적이다. 상품 관계가 발전되자마자, /권리는 특수한 강제장치를 발전시키는데, 이 강제장치의 본질적 계기는 바로 법정이다. 하지만 법정사적관계[즉 상품 관계] 내에 뿌리박혀 있다. 이런 구조는 단지 사후적인 방식으로만 국가 형태 아래에서 조직된다(하지만 아래에서 우리는 레닌의 입장이 이와는 정확히 정반대라는 점을 보게 될 것이다). “국가장치의 기술적 구조는 시장이라는 지반 위에서 태어나, “정치적 상부구조는 법률적 상부구조의 한 결과이지 그 역이 아니다(파슈카니스는 이 테제를 사회학적맑스주의의 테제라고 주장했다). 이런 정식화의 이점은 장치라는 개념적 은유와 토대와 상부구조 사이의 관계라는 그 자체 건축학적인 은유 사이의 밀접한 근친성을 명확히 밝혀준다는 점이다.


2.

 

맑스의 기계에서 레닌의 기계.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1852]7장에서 맑스는 국가기계에 관한 최초의 세밀한 분석을 발전시키며 그 역사를 소묘한다. 맑스의 이 최초의 정의는 국가기계의 완성의 시기 구분에 다음의 두 가지 중요한 테제들을 통합시킨다.

 

- ‘자율적 신체’(그리고 기생적 신체)로서의 국가기계는 부르주아지의 대표자들의 직접적권력인 입법 권력[의회 권력]에 대립되는 행정 권력의 발전이다. 하지만 특히,

- 국가기계의 발전은 어떤 하나의 이행상황, 즉 절대 군주제에서 그 기원을 발견하게 된다(이 절대 군주제라는 이행상황에서 봉건제와 부르주아지 사이의 적대적 힘들이 결합되며 심지어는 균형을 이루기까지 한다). 또한 마찬가지로 국가기계의 발전은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가 일시적으로 균형을 이루는 어떤 하나의 혁명적 이행 상황, 즉 보나파르티즘 속에서 완성된다. 사적 자본과 국가주의 양자 모두의 전례없는 발전을 가능케 함으로써 19세기의 역사가 이 일시성의 놀라운 안정성을 보여주는 한에서, 맑스와 엥겔스는 자신들의 정의 그 자체로 인해 해결하기 쉽지 않은 일련의 이론적 딜레마들에 봉착하게 된다. 우선 그들에게 국가장치의 의고성archaïsme으로 나타났던 바는 오히려 이 국가장치의 발전의 정상적형태 아니었을까?

 

프랑스 내전[1871]에서 의미심장한 하나의 전위가 발생하게 된다. 프랑스 내전의 여러 판본의 초고들은, 보나파르티즘에 관한 자신의 분석의 핵심을 유지하면서도 맑스가 국가기계를 행정 권력, 그리고 이 행정 권력의 신비로운 자율화와 동일시하는 사고로부터 점점 더 멀어져 간다는 점을 보여준다. 장치 그 자체의 전체 구조 혹은 대의적[재현적/의회적]이기도 하고 동시에 억압적이기도 한 일련의 심급들(제도들), 즉 군대, 경찰, 사법부, 행정부, 의회, 심지어 학교와 교회의 협력 작용을 분석하기 위해서 말이다. 이때부터 행정 권력 혹은 정부는 기계의 기원이라기보다는 관료제적이고 위계적인 형태들(이전의 모든 혁명 같이 기계의 완성을 추구하기를 멈추고 이 기계를 부러뜨리기에 착수할 때,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이 형태들에 대립하게 된다) 아래에서 기계의 중앙집중화를 보증하는 이 기계의 기능이다. 그러므로 국가의 역사는 다시 사고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국가의 역사는 사회의 일반적 기능들의 이런 특수화와 전문화의 발전 과정과 동일시되기 때문이다. 가족, 사적 소유, 국가의 기원[1884]의 결론에서 최초의 계급 사회들로, 즉 전자본주의적 적대(여전히 착취에 기초해 있지만 부르주아지의 존재와 연결되어 있지는 않은 적대)로 거슬러 올라감으로써 엥겔스가 보여주려 시도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아마도 엥겔스의 테제는 맑스의 분석에 의해 해결되지 않은 난점들(국가기계의 기능작용 내에서, 억압적이고 기생적인 측면들과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생산적인 합법적 기능들사이를 절합 혹은 구분할 수 있는가?)을 강조하는 것 같다. 하지만 기계의 역사적 완성이라는 맑스적 주제를 확장하는 방식을 다시 취함으로써, 이 엥겔스의 테제는 두 가지 핵심적인 주제들 혹은 문제들을, 특히 레닌이 이후에 발전시킬 다음의 두 가지 주제들 혹은 문제들을 드러낸다.

 

첫 번째 주제는 연속성이라는 문제이다. 혹은 더 정확히 말해, 연속적인 계급 사회들(서로 다른 여러 생산양식에 기초해 있는)의 역사를 통한 국가장치의 연속화라는 문제. 오늘날 존재하는 것으로서의 국가장치는 자본주의보다도 더 오래된 곳, 심지어는 봉건제보다도 더 오래된 곳으로부터 기원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국가장치는 근본적으로 새로운 기반들 위에서, 그리고 근본적으로 새로운 형태들 아래에서 매번 재창조되지 않아도 되는 독특한 역사적 대상이다. 그러나 국가장치의 이런 연속성이 자기-영속화의 초자연적 능력으로부터 기원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연속성도구들’(군대, 조세체계, 교통수단 등), 새로운 지배 계급을 위해 복무하도록 효과적으로[실제적으로] 이동하는 전문가들’(판관, 군인, 사제 등)의 앙상블이라는 정확한 물질적 토대를 지니고 있다. 특히 이런 연속성은 새로운 착취 관계들의 발전에 따른 국가장치와 사회 계급들의 상호적 변형·적응의 과정을 구성한다(맑스가 언급한 프랑스 대혁명의 과정이 이미 하나의 전형적인 사례이다). 특히 여기에서 이런 테제와 페르디난트 라살의 개념화들 사이의 관계라는 까다로운 문제가 제기되는데, 맑스와 엥겔스는 자세한 비판을 가하기를 전혀 원하지 않았으면서도(혹은 전혀 할 수 없었으면서도) 라살에게 매우 적대적이었으며, 레닌은 라살의 정식화들을 종종 다시 취해 라살의 것과는 매우 다른 의미를 부여했던 것 같다(앙리 르페브르의 국가에 관하여[1976] 참조). 이런 테제는 국가장치가, 자신의 점진적 재생산 내에서, 국가 그 자체의 상대적으로 불변적인 중핵이라는 점을 의미한다. 국가장치는 역사적으로 실제 그러했다. 이로부터 레닌에게서 국가와 정치의 법률적 형태(헌법적[구성적]constitutionnelle 형태)상대화되는 방식이 등장하게 된다. 하지만 또한 동시대의 서로 다른 여러 정치 체제들사이의 비교적 관점으로부터, ‘민주주의적국가들과 권위적국가들 내에서 구축되는 것이 실체적으로는 동일한 국가장치라는 주장(레닌에 따르면 이는 제국주의 시기의 국가장치의 군사화 내에서 출현하는 굉장히 놀라운 현상이다) 또한 도출된다. 이런 관점으로 인해, 니코스 풀란차스 같이 현재의 세력 관계의 응축’(이런 세력관계는 한 정세에서 다른 정세로 이동함에 따라 전도될 수 있다)이라는 관점에서 국가를 정의하는 유로코뮤니즘적경향의 맑스주의자들은 레닌주의와 선명히 단절하게 된다.

 

레닌이 발전시킨 두 번째 주제는 첫 번째 주제로부터 도출된다. 이는 국가장치의 연속성이 계급 투쟁의 장을 제한하고 이 계급 투쟁을 본질적인 역사적 쟁점들, 즉 생산수단의 소유와 정치 권력이라는 쟁점들을 대중들이라는 유효 범위 바깥에서 유지시키는 방식으로 계급 투쟁을 전위시키는 전형적인 효과를 생산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이런 기능 그 자체가 절대로 완전히 제거될 수 없는 계급 투쟁의 하나의 쟁점이다. ‘정상적시기에, 국가장치의 기능작용 그 자체는 계급 투쟁이 몇몇 유보된 영역들과 몇몇 제도들(군대, 외교 정책, 그리고 가능한 한에서 최대한 중립적인 것으로 간주되어야만 하는 행정부, 경찰, 사법부)외부에 갇혀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다른 한편으로, 계급 투쟁에 의해 다양한 정도로 침투당한 국가장치의 요소들(특히 부르주아 민주주의 국가에서의 대의제 제도들)은 계급 투쟁을 제한적 게임[작용]의 규칙에 종속시킴으로써 이 계급 투쟁을 전위시키고 변형시키는 방식으로, 그리고 이 계급 투쟁이 지배 이데올로기의 영향 아래에 종속되는 방식으로 항상 조직된다. 여기에서 국가장치 개념은 국가장치가 행정 권력과 동일하다는 등식으로부터 벗어날 뿐만 아니라 이 국가장치를 단순한 관료제와 동일시하는 것으로부터도 벗어난다. 바로 이 구조적 효과들 전체가 자본주의 체제에서 (순전히 요구투쟁적인 혹은 노동조합주의적인 노동조합의 지형 안에 갇혀버린) ‘경제적계급 투쟁과 (의회주의의 지형 안에 갇혀버린) ‘정치적계급 투쟁이 끊임없이 서로 분리되는 방식을 명확히 밝혀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하나의 혁명적 정세 내에서 혹은 어떤 하나의 대중당의 활동 내에서 이 두 측면이 융합된다는 것은 [지배 계급에게는] 중대한 위험으로, 즉 그에 따라 국가장치가 조직되고 재조직되는 이 중대한 위험으로 간주될 수 있다(최근에 미셸 아글리에타는 이를 구조적 형태들이라고 명명했다).


3.

 

대중장치’appareils de masse? 국가장치라는 통념을 점진적으로 확장함으로써 제기되는, 혁명적 기간 내에서만 그리고 사회주의 국가의 구성과 함께 할 때에만 전면화되는 두 가지 주요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

 

우선 국가의 경제적 기능들 혹은 국가의 경제적 장치의 존재가 제기하는 문제가 있다. 국가의 경제적 장치라는 통념은, 전쟁이 (금융적) 독점자본의 국가독점자본혹은 국가자본주의’(이 통념은 이미 루돌프 힐퍼딩에게, 특히 니콜라이 부하린에게 존재하고 있었는데, 그러나 부하린은 레닌이 비판한 유일한 경제트러스트라는 관점에서 이 통념을 이해했다)로의 변형을 가속화시켰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제국주의에 관한 분석에 다시 착수했을 때, 10월 혁명의 전야에 레닌에게서 최초로 등장했다. 이런 국면에서 부르주아지 자신(혹은 오히려 부르주아지 중에서도 그 지배적 분파, ‘금융 과두제 세력’)은 생산의 사회화(“우체국, 철도, 대규모 공장, 대규모 무역, 은행의 사회화된, 거대한 그리고 복잡한 장치[각주:1]의 진전된, 그리고 특히 모순적인(왜냐하면 부르주아지는 경쟁도 계급 적대도 전혀 제거하지 않기 때문이다) 형태를 표상[대표]하는 생산과 생산물 분배의 일반적 관리장치appareil de direction générale”[각주:2]를 설립한다. 이 정식은 직접적인 정치적 유효 범위를 지니고 있다. 이 정식은 혁명적 위기의 조건들 속에서 사회주의는 국가자본주의적 독점체의 직접적으로 연속적인 단계와 다른 것이 아니다라는 관념을 정초한다. 하지만 이런 관점에서, 혁명 기간 동안 레닌이 취한 서로 모순되는 정식화들은 과소평가됐던 실천적[현실적] 난점들의 광범위함뿐만 아니라 이 실천적 난점들의 잔존하는 모호성 또한 잘 보여준다. 레닌은 때로는 그런 장치[일반적 관리장치]의 구성이 포함하는 사회적 생산의 규제라는 과업의 합리화단순화 효과들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관료-군사적 억압장치 같이 이 장치를 파괴하는 것은 말도 안 되며[불가능하며] 혁명을 위해 복무하도록 활용해야 한다. 레온 트로츠키는 경제의 군사화를 옹호하면서 이런 경향을 더욱 더 강조한다. 반면 레닌은 때로는 그 자체 관료제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 의해 부패한 이 장치의 자생적으로 반-혁명적인 경향들과 그 관성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영구적인 정치적·문화적 투쟁 없이 이 장치를 활용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질문은 노동자 관리, 노동조합의 역할, 그리고 부르주아 전문가들의 활용이라는 문제와 관련해 신경제정책[네프] 시기의 토론에 끊임없이 출몰한다. 이 질문이 지니는 난점은, 사회로부터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이 사회 위에 위치하도록 강제되는 일군의 인물들을 국가장치와 동일시하는 사고로부터 더욱 거리를 둠으로써 레닌이 경제적 장치의 또 다른 측면으로서의 협동조합 조직에 준거함으로 인해서도 동일하게 명확해진다. 이런 장치는 대중장치라고 불릴 수 있을 것이다. 역사적 모순이 이 대중장치전체를 관통하며, 이런 역사적 모순은 계급 투쟁의 새로운 형태들을 요청한다.

 

사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소비에트의 구성으로 인해 이미 제기됐던 거대한 질문과 이 소비에트의 본성이라는 질문[즉 두 번째 문제]에 다시 마주하게 된다. 이 점에서, 러시아와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내에서, 이와 관련한 논쟁은 직접적인 방식으로 매우 격렬했다. 소비에트에 대한 자생주의적해석과 이 소비에트의 가능성에 대한 과소평가에 반대해, 1905년 이후 레닌과 트로츠키는 소비에트가 국가장치의 맹아를 구성한다는 점을 주장한다(바로 이로부터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라는 구호가 등장하는 것이다). 안토니오 그람시와 팔미로 톨리아티는 이 관념을 토리노의 공장 평의회에 적용시켰다. 공장 평의회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더 민주주의적인[각주:3] 새로운 유형의 장치라는 조건을 그 적용과 동시에 명확히 하면서 말이다(이런 장치의 역사적으로 유일한 선례는 파리 코뮌뿐인데, 왜냐하면 이런 장치의 구성은 대중들 자신들에게 통치[정부]의 과업들을 이전시킨다는 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맑스의 정식화들에 대한 변용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이 개념이 내포하는 한계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개념은 레닌으로 하여금 정말로 매우 다양한 서로 분기하는 테제들을 한 테제에서 다른 테제로 계속 이동하는 방식으로 주장하도록 강제한다. 비록 장치라는 개념적 은유가 그 최고 수준의 모순적 확장에서 맑스주의로 하여금 그 속에서 결정적인 정치적 문제들이 드러나는 그런 장(이 결정적인 정치적 문제들은, 레닌이 자신의 최후의 몇 개월간 다음의 두 가지 명령으로 집약시켰던 것이다. 대중의 문화혁명,’ 당의 기능작용과 당이 국가와 맺는 관계에 관한 근본적이고 급진적인 개혁)을 지시할 수 있게 한다고 하더라도, 이 개념적 은유는 이 문제들에 대한 분석과 해결을 진척시킴에 있어 충분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난다.

 

더 정확히 말해, 3인터내셔널의 맑스주의 내에서 장치라는 통념의 최후 변종이 겨냥하는 것은 바로 당이라는 문제이다. 오늘날 당장치라는 표현은 맑스주의자들에게서뿐만 아니라 비-맑스주의자들에게서도 흔히 사용되는 표현이 됐지만, 레닌에게서 이 표현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은 굉장히 놀랍다. 1922년의 토론에서 당의 국가화에 대한 비판을 발전시키고자 시도했을 때, 레닌이 우리의 장치와 그 결함들에 준거한 것은 항상 국가의 관리, 즉 국가에 대해 당이 실행하는(혹은 충분히 실행하지 못하는……) 통제를 통한 국가의 관리를 겨냥했던 것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개념적 관점에서 보자면, 혁명 운동의 관료제적 중앙집중화를 가장 체계적으로 공격했던 제2인터내셔널 맑스주의자들(특히 로자 룩셈부르크)의 전통 속에 온전히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분석과 관련해서 보자면, 대중 정당의 중앙집중화 메커니즘에 관해 정확히 기술했던 로베르트 미헬스 같은 사회학자들과 비교해 맑스주의가 이 점에 대해 특별한 독창성을 지니지는 못했다. 사실 이런 난점의 근원은 바로 조직문제에 관한 분석에서 한계를 보인 맑스와 엥겔스 자신들에게 있다.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의 첫 당대회에서 민주집중제에 관한 토론 전체는 (교회라는 보수주의의 중앙 전력소와 반정립적으로 비교되기까지 했던) 진정한 -국가기계로서의 중앙집중화된 정치장치라는 통념과 대중의 유기적 끈이 되기 위해 대중에게로 가는당이라는 통념, 간단히 말해 노동자 운동의 핵심에서 부르주아 국가에 의해 제도화된 지도자들과 인민 사이의 형식주의,’ 이원론이라는 통념 사이의 동일한 이론적 원환 내에서 전개됐다. (소련에서의 계급 투쟁에서) 샤를 베틀렘은 바로 이 시기, 1921~23년 사이에 소련에서 apparatchiki라는 용어가 등장했다고 지적한다.[각주:4] 그러나 장치의 구성원들을 지시함으로써 이 용어가 지니게 되는 점점 더 경멸적인 함의가 우리로 하여금 이 용어가 처음에 지녔던 양가성을 보지 못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4.

 

헤게모니인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인가? 그러나 혁명당이론이 제기한 이런 질문들은 현 시기 맑스주의자들이 마주하고 있는 일반적인 문제와 전혀 다르지 않다. 게다가 우리는 이 일반적인 문제를 장치라는 개념적 은유와 이데올로기라는 개념 사이의 절합의 딜레마로 표상할 수 있다. 도식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해보자. 우리는 그람시의 을 따르거나, 혹은 루이 알튀세르의 ’(그람시의 과 알튀세르의 모두가 실제로 반-레닌주의의 다양한 변형태들에 반대하는 레닌주의라는 점을, 혹은 다음과 같은 표현을 원한다면 포스트-레닌주의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 알튀세르의 은 당연히 일정 부분 그람시의 사상에 대한 응답이다)을 따를 수 있다고 말이다.

 

그람시의 길은, 우선 헤게모니적 장치() 혹은 헤게모니 장치()에 관해 언급함으로써 장치라는 통념을 자신의 연구 내에 통합하면서도 동시에 결국 국가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당에 대해서도 장치라는 통념을 경향적으로 제한하고 제거하는 방향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하지만 그람시에게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는 본질적으로 하나의 유기적현상, 한 계급에 대한 유기적 지식인들의 행위[실천]를 통해 획득된 동의의 현상이다. 또한 이로부터, 비록 시민사회라는 개념을 변경하기는 하지만, 그람시는 시민사회의 우위를 확립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에 알튀세르는 이 장치라는 통념의 의미를 명확히 하고 그 활용[용법]을 체계적으로 확장시킨다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각주:5]라는 개념을 분리 불가능한 하나의 전체tout로 정의함으로써 말이다. 이는 동시에 (그 일상적 실천들[관행들] 속에서 지배 이데올로기의 강제를 실현하는) ‘국가장치이지 않은 이데올로기적 장치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 또한 억압적이거나 이데올로기적이거나 국가장치란 존재하지 않으며, 대신 모든 국가장치는 항상 억압과 이데올로기 모두를 통해 기능[작용]한다는 점을 의미한다.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들은 착취 관계들의 재생산 과정 내에 기능적으로 기입되어 있다.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들은 예속화 혹은 개인의 주체로의 호명의 양태들(종교적, 학교-문화적, 직업적, 정치적, 법률적, 도덕-가족적 등)을 발전시킨다.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들은 계급 투쟁의 장소이자 쟁점인바, 이 계급 투쟁에 자신들의 구체적인 역사적 형태들을 부여한다. 이때부터 알튀세르의 위치[입장]은 아마도 고전적인 맑스주의적 테제, 즉 지배적인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중핵(비록 서로의 존재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해도, /권리와는 구 분되는) 법률적 이데올로기라는 테제를 정초하기 위한, 그래서 결과적으로 이 이데올로기라는 범주들 바깥에서 역사와 정치를 사고하고자 하는 가장 근본적이고 급진적인 시도를 대표할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지배 계급의 이데올로기만이 완벽한 하나의 체계로 조직될 수 있다고 주장함 에도(이는 그 자체 독립된 하나의 피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해 말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알튀세르는 영원한 이데올로기적 계급투쟁속에서 최종 심급에서의 결정적인 요소는 역설적으로 피지배 계급들과 피착취자들 이 이데올로기적인 것 내에서 점하고 있는 위치라고 주장하는 경향을 지니게 된다. 이는 그 어떤 국가 이데올로기도 노동과 존재의 조건들 내에 뿌리박혀 있는 대중적 토대없이는, 즉 피지배 계급들의 이데올로기가 내포하고 있는 진보적이고 유물론적인 요소를 나름의 방식으로 착취’[이용]exploiter하지 않고서는 존재할 수 없다는 점을 의미한다[각주:6]. 이때부터 우리는 혁명당을 새로운 군주’(대중들 속에서 그가 행하는 실천은 스스로를 하나의 국가로 형성하게 이끈다)로 지시했던 그람시와 달리, 왜 알튀세르가 혁명당이 (혁명당 자신 또한 그것의 한 요소인) ‘정치적인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의 규정[]으로부터 완전히 빠져나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주장하면서도 이와 모순되게, 노동자 투쟁이 이미 그 윤곽을 그리고 있는 공산주의의 관점에서, ‘국가 바깥의 당을 구성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하는지 설명할 수 있게 된다[각주:7]




 

  1. V. I. Lénine, Œuvres, t.25, Moscou/Paris: Éditions sociales, 1976, p.511. [본문으로]
  2. V. I. Lénine, Œuvres, t.29, Moscou/Paris: Éditions sociales, 1976, p.99, [본문으로]
  3. V. I. Lénine, Œuvres, t.25, Moscou/Paris: Éditions sociales, 1976, p.402. [본문으로]
  4. Charles Bettelheim, Les Luttes de classes en URSS: 1ère période, 1917-1923, Paris: Seuil/Maspero, 1974, p.277. [본문으로]
  5. [옮긴이] 여기에서 발리바르는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를 appareil-idéologique-d’État로 표기하고 있다. 그러므로 알튀세르의 일본어 번역에서와 같이 이를 ‘국가-이데올로기-장치’로 옮기는 것도 가능해 보인다. [본문으로]
  6. [옮긴이] 이에 대해서는, “알튀세르와 마르크스주의의 전화”, 에티엔 발리바르 외 지음, 윤소영 엮고 옮김, 1993에 실린 발리바르의 논문 ‘비동시대성: 정치와 이데올로기’를 참조. [본문으로]
  7. [옮긴이] 알튀세르의 ‘국가 바깥의 당’이라는 테제에 대해서는, “당내에 더 이상 지속되어선 안될 것, 루이 알튀세르 지음, 이진경 엮고 옮김, 새길, 1992에 실린 ‘로사나 로산다와의 대담: 맑스주의 이론에서 국가문제’를 참조하고, 이에 대한 발리바르의 비판에 대해서는 “대중들의 공포”의 역자해제를 참조하라.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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