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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사회적 인정(2/2)

- 인정이론의 관점에서 본 유가족 운동 -

 

백선우 (서교인문사회연구실)

 

 

3. 사회적 인정의 의미

 

하지만 이러한 죽음이 실제로 사회적 죽음으로 인정되는 경우를 찾기는 어렵다. 당장 중대본의 반응에서 볼 수 있듯이, 국가는 자신들에게 돌아올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라도 이들의 죽음을 사적인 것으로, 우연적인 것으로 만들고자 하며, 유가족들의 투쟁은 이에 저항해서 이들의 죽음이 사회적 죽음이라는 것을 인정받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희생자들의 죽음을 사회적으로 인정받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다소 모호하다. 죽음에 대한 사회적 인정은 시민들이 함께 애도하는 것을 의미하는가, 아니면 국가의 인정을 의미하는가, 아니면 어떤 다른 것을 의미하는가? 인정은 사전적으로 확실히 그렇다고 여김, 혹은 국가나 지방 자치 단체가 어떤 사실의 존재 여부나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결정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러한 의미에서 인정은 대체로 재난참사나 산업재해에 국가 혹은 기업, 책임자 등에 과실과 책임이 있다고 판단하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수많은 산업재해 속에서도 실제로 산업재해로 인정받는 것도 쉽지 않고, 재난참사에서도 국가적 책임을 인정받는 것 역시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만약 어떤 재난참사나 산업재해에서 국가가 책임이 있음을 인정한다면, 그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일까? 재난참사에서 진상규명에 대한 요구는 한편으로 책임자에 대한 법적 처벌에 대한 요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 구조적 원인에 대한 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변혁에 대한 요구이기도 하다. 여기서 죽음에 대한 사회적 인정은 사회 구조적 원인에 대한 규명과 관련하여 더 깊은 차원과 연결될 수 있다.

 

인정이라는 말이 일상적으로 위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지만, 인정의 의미는 단순히 일상적 의미의 차원에서 머무르지 않는다. 인정이라는 개념은 헤겔(G.W.F. Hegel)의 『정신현상학』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에서 인정투쟁이라는 개념과 함께 널리 알려져 있다. 여기서 인정은 우선 사람들이 서로를, 우리가 마음대로 해도되는 사물과 같은 것이 아니라 동등한 인간 혹은 주체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더 나아가 사회 혹은 국가의 구성원으로서 공동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의미한다. 따라서 헤겔 이후 인정 개념은 단순히 서로의 행위나 업적에 관한 긍정적인 반응과 같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 그 자체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의미한다. 오늘날 인정이론의 대표적인 연구자 악셀 호네트(Axel Honneth)는 인정 개념을 통해 현대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제시한다. 현대 사회를 분석하는 많은 이론들이 있지만, 호네트는 흥미롭게도 현대 사회를 제도화된 사회적 인정 관계, 즉 사회적 인정 질서로 이해하고 있다.

 

호네트는 『인정투쟁(Kampf um Anerkennung)』에서 헤겔의 인정이론과 미드(G.H. Mead)의 사회심리학을 경유하여 현대 사회의 사랑, 권리, 사회적 가치부여라는 세 가지 형태의 사회적 인정과 이에 대응하는 세 가지 형태의 무시(폭력, 권리부정, 가치부정), 그리고 무시의 경험으로부터 발생하는 인정투쟁을 통한 사회의 변혁에 관해 설명한다. 먼저 첫 번째 인정 형태인 사랑은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와 정서에 대한 인정이다. 호네트는 위니캇(D.W. Winnicott)의 대상관계이론(object-relations theory)에서 어머니와 갓 태어난 아기의 절대적 의존성에서 아이가 성장함에 따라 상대적 의존성으로 이행 과정에 대한 분석을 검토한다. 아기는 태어난 직후 생명활동에 필요한 모든 것을 어머니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으며, 어머니는 아기가 태내에 있을 때부터 아기의 모든 활동을 자신의 신체와 완전한 동일체로 생각하고 있으며, 이는 아기가 태어난 이후에도 한동안 지속되기 때문에, 아기가 출생한 직후 어머니와 아기는 서로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관계가 지속된다.

 

하지만 아기가 성장하는 과정과 동시에 어머니도 서서히 자신의 자립성을 회복하는 과정이 시작된다. 아이는 성장과정에서 어머니의 사랑과 보살핌을 통해 어머니가 식사를 준비하는 모습이나 도마 소리와 같은 신호들을 자신에 대한 돌봄의 신호로 이해하게 됨으로써, 아기는 서서히 어머니와 떨어져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나게 된다. 위니캇의 이러한 유아기 발달과정에 관한 설명을 인용하며, 호네트는 돌봄과 정서적 지지와 같은 사랑을 통한 욕구와 정서의 충족과 충족될 것이라는 믿음이 자기-믿음(Selbstvertrauen) 혹은 자신감(self-confidence)이라는 인간의 긍정적 자기관계를 형성한다고 말한다.

 

두 번째 인정 형태는 권리이고, 세 번째 인정 형태는 사회적 가치부여다. 권리와 사회적 가치부여라는 인정 형태는 근대 사회의 등장과 함께 새롭게 등장한 인정 형태다. 전통사회에서는 오늘날 권리와 명예 혹은 업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존중이라는 개념 속에 착종된 상태로 있었다. 예컨대 전통사회에서 권리는 모든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고, 오히려 위계화된 신분, 재산, 지위, 명예 등과 결합되어 차등적으로 주어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전통사회의 붕괴와 신분제 폐지, 인권 선언 등과 같은 역사적 발전 과정에 따라서, 기존에 존중 개념 속에 착종되어 있던 권리와 업적 개념이 분리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권리는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모든 인간이 보편적으로 인정받는 것이 되며, 업적은 각각의 인간의 개성을 인정받는 것과 관계된다. 우선 인간은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권리를 인정받음으로써, 우리의 요구를 제시하고, 의사 결정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되며, 이를 통해 인간은 자기-존중(Selbstachtung, self-respect)이라는 긍정적 자기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인간은 사회의 구성원으로 공동체의 가치와 목적에 기여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업적을 평가받고, 다른 사회구성원들과 구별되는 자기 자신의 개성을 인정받게 되며, 이를 통해 자부심, 자기 가치부여(Selbstschätzung, self-esteem)라는 긍정적 자기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호네트는 이와 같이 사랑, 권리, 사회적 가치부여라는 세 가지 형태의 인정과 이를 통한 자기-믿음, 자기-존중, 자기-가치부여라는 긍정적 자기 관계의 형성이 인간의 자아형성과 성공적 자기실현의 조건이 된다고 말한다.[1]

 

또한 앞서 말한 것처럼 호네트는 인정이론을 인간학적 차원에 한정하지 않는다. 주지하듯이, 이미 세 가지 인정 형태는, 특히 권리와 사회적 가치부여의 경우 역사적 발전 과정과 현대 사회의 분화 과정 속에서 등장한 인정 형태다. 따라서 현대 사회에서 권리의 영역은 이미 모든 인간의 보편적 속성에 대한 인정, 즉 권리라는 사회적 인정 관계의 제도화로 볼 수 있으며, 마찬가지로 한 사회 안에서 무엇을 가치와 목적 실현에 대한 기여로 평가할 것인가와 같은 가치 평가 척도 역시 사회적 가치부여라는 인정 형태가 제도화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초기 호네트가 사랑을 단순히 인간의 사회적 삶의 조건을 형성하는 사적 영역으로 평가하며 제도화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았던 것과 달리, 이후 호네트는 가족, 결혼, 돌봄 제도의 역사적 변동과 이에 관한 연구들을 참조함으로써, 사랑 역시 제도화된 사회적 인정 형태로 주장하게 된다. 이처럼 현대 사회에서 가족, 사회, 연대와 같은 영역들이 인간의 긍정적 자기실현을 보장하는 제도화된 사회적 인정 관계의 체현물이라면, 이러한 영역들은 사랑, 권리, 사회적 가치부여와 같은 사회적 인정을 보장해야한다는 규범적 요구의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사회적 인정을 훼손하는 무시(Mißachtung, disrespect), 즉 사랑, 권리, 사회적 가치부여라는 세 가지 형태의 인정에 상응하는 폭력, 권리부정, 가치부정이라는 세 가지 형태의 무시는 단순히 신체적인 폭력이나, 상대방의 가치를 절하하는 모욕적인 발언과 같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무시는 사회적 인정 관계 안에서 서로간의 규범적 기대를 훼손하는 도덕적이고 규범적인 차원에서 문제가 된다. 사람들이 한 사회 안에서 동등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사회적 삶을 이어나갈 수 있는 것은 사회적 인정 질서라는 규범과 이에 따른 서로간의 규범적 기대, 즉 서로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서로를 인정한다는 기대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폭력이나 권리부정, 가치부정과 같은 무시는 사회 그 자체를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인정 질서와 이에 대한 규범적 기대에 대한 훼손이다.

 

하지만 동시에 호네트는 무시의 경험과 이를 통한 인정투쟁에 주목한다. 무시는 폭력이나 권리부정, 가치부정과 같이 인정 형태에 상응하는 여러 형태로 구분될 수 있지만, 많은 연구 결과에서 무시의 경험은 항상 신체의 붕괴 상태와 관련된 비유를 통해 기술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한다. 폭력의 경험이 가져오는 심리적 죽음, 사회적 배제의 경험이 가져오는 사회적 죽음, 개인의 업적이나 사회적 평가 절하에 따른 모욕[2]이라는 표현은 결국 무시의 경험이 단지 신체와 관련된, 단지 권리와 관련된, 단지 사회적 가치평가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유기체로서의 신체적 고통과 같이 주체의 인격적 통일성 혹은 전인성(Integrität)을 훼손하는 것으로 경험된다는 것을 의미한다.[3] 따라서 주체는 무시의 경험과 이로 인한 사회적 고통이라는 부정적 감정 반응을 통해 자신의 인격적 통일성을 회복하기 위해 인정을 위한 투쟁(Kampf um Anerkennung)에 나선다. 따라서 호네트에게 인정투쟁은 주체의 무시의 경험에 의한 사회적 고통으로부터 발생한 투쟁이며, 동시에 사회적 인정 질서의 훼손으로부터 발생한 규범적 투쟁이다.

 

하지만 인정투쟁은 단순히 기존의 사회적 인정 질서로 다시 포섭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만약 기존의 사회적 인정 질서가 특정한 계급(class)이나 지위(status), 정체성(identity)에 속하는 사회구성원에 대한 체계적 배제를 포함하는 경우, 단지 기존의 인정 질서로 포섭되는 것만으로는 그들이 겪는 사회적 고통이 해결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호네트는 사회적 고통과 인정투쟁을 중심으로 도덕적 진보의 역사적 과정을 재구성[4]하는 일종의 역사철학을 제시하고자 한다. 예컨대 마셜(T.H. Marshall)근대법의 인정 내용이 단계적으로 확장되어온 과정을 해명할 수 있는 테제를 역사적 재구성의 형식을 통해 정립한다. 즉 근대적 권리 개념의 등장 이후 권리는 18세기 자유권의 형성에서 출발해서, 19세기 참정권으로, 20세기 사회복지권으로 점차 확장되었다는 것이다.[5] 호네트는 이와 같은 마셜의 분석을 단초로 하여, 권리가 한편으로는 점점 더 많은 새로운 권한이 갖추어진다는 점에서 단계적으로 확대되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권리 인격체의 지위가 더 많은 사회 구성원들에게 보장[6]되는 방향으로 확장되었던 것처럼, 사회적 인정 질서 역시 인정투쟁을 통해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4. 죽음과 사회적 인정의 새로운 지평

 

사회적 인정의 의미를 지금까지 살펴본 호네트의 인정이론에 따라 고찰하면, 죽음에 대한 사회적 인정은 단순히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는 것을 넘어 더 폭넓은 의미를 지닐 수 있다. 앞서 우리는 재난참사를 사회 구조적 원인에 의해 발생한 사건으로 규정했다. 따라서 죽음의 사회적 인정 역시 단순히 국가의 책임이나 책임자들의 처벌에 한정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는 시민의 기본적인 권리라고 할 수 있는 안전권에 대한 침해로부터 발생한 것이기 때문이다. 안전권이란 다양한 형태의 자연재난 및 사회재난의 위협, 그리고 그 밖의 각종 재난관련 사고의 위협으로부터 헌법상 보장된 개인의 생명·신체 및 재산 등과 같은 법익을 온전히 보호받거나 보장받을 수 있는 국민의 권리를 의미[7]한다. 따라서 재난참사에서 죽음에 대한 사회적 인정은 참사에서의 책임 규명과 동시에 시민의 안전을 보장하라는 규범적 요구이기 때문이다. 특히 후자의 요구의 경우 단순한 책임자에 대한 법적 처벌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다. 재난참사가 신자유주의라는 기조 속에서 국가가 점점 안전 관리 영역을 외주화하는 것으로부터 발생하는 것이라면, 이러한 국가 장치들의 재구조화의 방향 자체에 대한 수정을 요구해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난참사를 인정이론의 관점에서 분석하는 것은 출발부터 난관에 부딪친다. 재난참사는 인간에게 주어질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사회적 고통이지만, 동시에 희생자들의 죽음을 가져오는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 호네트의 인정이론은 사회적 고통의 담지자인 희생자들의 죽음 이후에 누가, 어떤 동기로 이러한 투쟁의 주체가 될 수 있는지에 관해 답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호네트의 인정이론은 주체의 무시의 경험과 이로 인한 사회적 고통이라는 도덕적이고 규범적인 동기로부터 시작되는 인정투쟁에 관한 이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겨진 이들의 투쟁, 즉 유가족 운동을 인정이론의 관점에서 규범적 투쟁으로 정초하기 위해서는 이를 매개할 수 있는 또 다른 개념이 필요하다. 우리는 유가족 운동과 재난참사에 관한 연구들에서 이러한 개념의 단초를 찾아볼 수 있다. 먼저 정원옥은 슬픔, 자괴감, 죄책감, 불안, 분노 등은 재난 경험 이후에 흔히 나타날 수 있는 정동(affect)[8]에 대한 치료적 접근이 아니라, 오히려 정동의 정치화 가능성[9]을 제시한다. 정원옥은 2015 5 26일 주최된 『4.16 희망과 길찾기: 1000인이 말하다』 자료집을 분석함으로써 토론회의 결과를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

 

첫째, 4.16 이후 안산시민들을 가장 힘들게 했던 심리적 고통이 분노, 무력감, 불안감, 죄책감 상실감 등 우울증과 외상의 정동임을 알 수 있게 해준다. 둘째, 토론회의 과정 속에서 심리적 고통이 줄어들었다는 것은 치료적 접근 없이도 말하기와 상호소통만으로도 심리적 고통이 완화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셋째, 토론회의 결과는 진실규명이 희생자에 대한 사회적 애도 및 공동체 회복의 전제 조건임을 말해준다. 마지막으로 토론회의 결과는 재난의 고통스러운 정동이 오히려 공동체를 결속시키는 힘으로, 어떤 행동을 하려는 에너지로 이행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10]

 

이는 슬픔과 분노와 같은 부정적 감정이 사회의 변혁을 가능하게 하는 긍정적 동기로 전화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앞서 본 것처럼, 호네트의 인정이론에서도 인정투쟁은 무시의 경험, 사회적 고통, 불의 의식과 같은 부정적 감정 반응에 의해 추동되는만큼, 유가족 운동이 고통스러운 정동에 의해 동기부여를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인정투쟁과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감정 반응과 정동에 의해 추동되는 유가족 운동이 어떻게 사회의 규범적 구조와 연관되는지는 다소 불분명하다.

 

다음으로 전주희는 1970년 전태일 열사의 분신 이후 이소선의 운동을 한국의 유가족 운동의 출발로 규정하면서, 이후 재난참사와 산재사고사망 유가족 운동까지 유가족 운동에 관한 폭넓은 분석을 제시했다.[11] 전주희에 따르면, 민주화운동 유가족, 재난참사 유가족, 산재사망 유가족의 운동이 서로 다른 형태로 드러나고, 서로 구별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가족 운동이 갖는 동형적인 구조[12], 즉 유가족 운동의 핵심에는 공통적으로 자책이라는 감정이 놓여있다. 다시 말해 유가족들의 행위와 실천을 추동하는 근본적인 감정은 자책’”이며, 이러한 자책이라는 감정은 가족이 사회적으로 타살 당했다는 피해자로서의 감정’”이나 다른 한편으로 가족을 지키지 못했다는 “‘가해가로서의 감정으로 환원되지 않는 매우 독특한 감정[13]이다. 특히 민주화운동 유가족에게서 명시적으로 드러나는 것처럼, 유가족은 자책이라는 감정과 함께 스스로 사회적 의무를 짊어진다. 이소선은 내가 죽으면 좁쌀만한 구멍이라도 캄캄한데 뚫리면, 그걸 보고 학생하고 노동자하고 같이 끝까지 싸워서 구멍을 조금씩 넓혀서 그 연약한 노동자들이 자기 할 일을, 자기 권리를 찾을 수 있는 길을 엄마가 만들어야 해요., 내가 부탁하는거 꼭 들어주겠다고 크게 한번 대답해 줘[14]라는 전태일의 유지를 이어받아, 그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평생 노동운동에 헌신했으며,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박정기는 『전태일 평전』 등 박종철이 공부했던 책을 찾아 공부하며 철이가 죽음과 맞바꾸면서까지 지키려 했던 것이 무엇인지 생각한다. ...... 스물세살의 철이는 세상의 한 가운데서 무엇을 꿈꾸었을까? 나는 그 답을 지금도 찾고 있다[15]고 말하며 운동에 헌신했다.

 

민주화운동 유가족들의 운동은 먼저 떠나간 가족의 운동과 정신을 계승하여, 그들의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재난참사와 산재사망 유가족은 이러한 민주화운동 유가족과 상황이 다르다. 대부분의 재난참사나 산재사망의 경우 갑작스럽게 찾아온 죽음으로 인해 유가족이 어떤 사회적 의무를 가져야하는지 직접적으로 주어지지 않으며, 이들에게는 오직 가족이 떠나고, 주체 없이 남아 있는 사회적 고통만이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고통과 감정은 오직 자기만 접근할 수 있는 내밀한 것, 오직 일인칭으로만 표현될 수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사회적 고통은 한편으로 개인에 의해서만 경험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감정이나 고통과 마찬가지로 주관적인 것이지만,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항상 사회적 인정 질서와 그것의 훼손에 의해서 발생한다는 점에서 객관적 혹은 사회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가 희생자들의 사적인 고통이나 감정을 일인칭 시점에서 이해할 수 없지만, 재난참사와 같은 사회 구조적 원인에 의해 벌어진 사건에서 희생자의 사회적 고통을 이해할 수 있는 길은 여전히 열려있다. 이 사람들, 죽음 사람들은 대체 우리가 어떻게 하길 바랄까? 우리가 무엇을 하길 바라고 있을까?[16], 혹은 (지하철) 감시활동은 저희의 사명이라 생각하고 있어요. 어머니, 자식, 형제 등을 잃고 난 후에 저희에게 주신 사명 말입니다[17]와 같은 재난참사 유가족들의 말은 떠나간 이들의 투쟁을 간접적인 방식으로 이어가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재난참사 유가족들의 운동은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말해지지 못했고, 행해지지 못했고, 전해지지 못했던 사회적 투쟁을 유가족 스스로 떠맡는 것이며, 또한 단지 슬픔, 분노와 같은 감정에 의해 추동되는 운동이 아니라, 사회적 인정 질서의 훼손으로부터 떠난 이들에 의해 수행되었어야할 규범적 투쟁을 이어가는 것이며, 따라서 유가족이 희생자들을 대신해서 수행하는 투쟁 역시 도덕적으로, 규범적으로 정당한 투쟁이라고 할 수 있다.

 

유가족 운동을 자책이라는 감정 구조를 매개로 하여 희생자를 대신해 수행하는 인정투쟁으로 이해하는 관점이 타당하다면, 이제 우리는 유가족 운동 역시 인정투쟁의 일반적 구조에 따라서 살펴볼 수 있다. 이에 따라 유가족 운동은 가족의 죽음과 관련하여 그들의 명예 회복을 위한 것이며, 곧 그들이 겪었던 무시의 경험, 사회적 인정의 훼손에 대한 응답이기 때문에, 사회적 인정의 회복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죽은 이들의 명예 회복은 이들의 죽음이 사적 죽음이 아닌 사회적 죽음이라고 인정받는 것, 희생자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사회 구조적 원인에 대한 규명, 그리고 궁극적으로 이러한 사회 구조적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안전사회 건설로 나아가는 것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으며, 유가족 운동 역시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미 대구 지하철 참사 유가족들은 이전까지 피해자 보상 차원에서 머물던 활동을 넘어 안전사회라는 이념을 걸고 현재까지 활동[18]하고 있으며, 세월호 참사 유가족 역시 사단법인 4.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피해자 가족협의회를 설립하여 현재까지도 진상규명과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활동을 지속하면서, 이러한 유가족 운동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잘 보여주고 있다.

 

5. 나가는 말

 

하지만 호네트가 말하는 것처럼, 무시의 경험이나 사회적 고통과 같은 도덕적 실천적 준거점은 사회적 현실에서 너무도 약한 것이기 때문에 무시하는 부정의는 이런 정서적 반응 속에서 불가피하게 인지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일 뿐이다. 사회적 수치나 무시당한 감정에 내포된 인지적 잠재력이 정치적, 도덕적 신념으로 나아갈 수 있느냐 하는 점은, 경험적으로 볼 때 무엇보다도 관련자들의 정치적, 문화적 외부 조건이 어떤 상태에 있느냐에 달려 있다. 오직 사회운동을 강화할 수 있는 수단이 존재할 때에만 무시에 대한 경험은 정치적 저항 행위를 동기화하는 원천이 될 수 있다.[19] 현재 한국 사회의 상황에서는 이러한 것이 더욱 어려운 상황이다. 재난참사 이후 안전사회 건설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에 대한 요구조차도 진영 논리에 의해 왜곡되고 축소되는 것이 현실이다.

 

유가족 운동은 기존의 사회운동과도 구별되는 종별성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유가족 운동 내에도 민주화운동 유가족 운동, 재난참사 유가족, 산재사망 유가족 운동 등 다양한 형태의 유가족 운동이 구별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동시에 유가족 운동에서 자책의 감정을 구조적 특징으로 발견하고, 자책의 구조를 통해 유가족 운동을 죽은 이들의 사회적 인정을 위한 투쟁으로 재구성함으로써 유가족 운동의 규범적 정당성을 주장할 수 있으며, 다양한 사회 운동과 유가족 운동을 인정투쟁이라는 틀 안에서 파악할 수 있다면, 여러 운동들 사이의 연대, 일반화된 재난참사와 마주한 시민들의 적극적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는 기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끝)

 



각주

 

[1] 졸고 「호네트 대 프레이저, 그리고 정치경제학 비판」(명지대학교 석사논문, 2014) 2 2절 호네트의 인정이론(9~21p) 참조.

[2] 모욕이라고 번역되는 독일어 명사 Kränkung은 동사 kranken이 명사화된 것으로, 본래 동사 kranken은 병을 앓다, 괴로워하다라는 의미를 가지며, 호네트는 이와 같은 맥락에서 모욕을 신체적 고통과 관련된 비유라고 말하는 것이다. 프레이저(N. Fraser)도 경제적 불평등에 의해 경험하는 무시를 손상(injury)이라고 표현한다는 점에서 이와 유사한 신체적 고통에 관한 비유를 사용한다고 할 수 있다.

[3] 악셀 호네트, 『인정투쟁』, 문성훈, 이현재 옮김, 사월의책, 2011, 256~7

[4] 호네트, 『인정투쟁』, 309

[5] 호네트, 『인정투쟁』, 225~6

[6] 호네트, 『인정투쟁』, 228

[7] 이한태·전우석, 「한국 헌법상 기본권으로서의 안전권에 관한 연구」, 130

[8] 정원옥, 「재난과 정동의 정치학: 사회적 고통에서 사회적 애도로」, 2015, 1

[9] 정원옥, 「재난과 정동의 정치학: 사회적 고통에서 사회적 애도로」, 2015, 3

[10] 정원옥, 「재난과 정동의 정치학: 사회적 고통에서 사회적 애도로」, 2015, 5

[11] 전주희, 「응답에서 책임으로: 유가족 운동의 역사적·사회적 의미」, 이소선 10주기 토론회 내가 너의 뜻을 이룰게 발표문, 2021

[12] 전주희, 「응답에서 책임으로: 유가족 운동의 역사적·사회적 의미」, 3

[13] 전주희, 「응답에서 책임으로: 유가족 운동의 역사적·사회적 의미」, 13

[14] 전주희, 「응답에서 책임으로: 유가족 운동의 역사적·사회적 의미」, 5

[15] 전주희, 「응답에서 책임으로: 유가족 운동의 역사적·사회적 의미」, 3

[16] 전주희, 「응답에서 책임으로: 유가족 운동의 역사적·사회적 의미」, 2

[17] 이선영, 「대형재난사고 유가족의 생활경험 연구」, 한국사회복지교육 15, 2011, 135

[18] 전주희, 2.18 대구지하철 참사에서 주체화 양상」, 성공회대학교 민주자료관 2022 1차 학술대회 『국가폭력, 재난, 전쟁. 재난과 폭력에 관한 인문학적 성찰』 자료집, 72

[19] 호네트, 『인정투쟁』, 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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