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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사회적 인정(1/2)

- 인정이론의 관점에서 본 유가족 운동 -

 

백선우 (서교인문사회연구실)

 

 

1. 들어가는 말

 

한국에 또 한번 참사가 벌어졌다. 2022 10 29일 밤 10시 이태원에서 할로윈을 맞아 몰린 인파로 인해 압사 사고가 일어났고, 159명의 사망자와 197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상품백화점 붕괴, 성수대교 붕괴, 대구 지하철 화재, 세월호 침몰 등 수많은 참사가 일어났으나, 국가의 안전관리는 여전히 허술하고, 국가는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데 여전히 무능력했다.

 

10 29일 오후 11시 이후 이미 메신저와 SNS를 통해 참사 현장과 현장에서 CPR을 하는 장면, 거리에 놓인 희생자들의 시신들이 담긴 영상이 퍼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이 영상들이 실제 상황인지, 단지 할로윈 파티라는 상황에서의 연출인지를 혼란스러워 했다. 아마도 이런 혼란은 설마 저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겠어?라는 생각과 같이, 이태원 참사가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이어 언론 매체에서 이태원 참사에 대해 보도하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이제 이태원 참사가 실제로 벌어진 사건이라는 것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이태원 참사 보도 직후 한편에서는 희생자들의 안타까운 죽음에 슬픔과 애도를 표했다. 하지만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 누군가는 이태원이라는 공간과 할로윈 파티라는 상황을 술, 마약, 성욕과 연관시키며, 윤리적 타락으로부터 발생한 스스로 자초한 죽음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누군가는 이태원 참사를 서양 귀신 축제와 연관시키며 오컬트적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고, 일부 기독교계에서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귀신 축제에서 귀신들에게 희생당한 이들, 혹은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말하며 종교적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1] 또 다른 한편에서는 참사의 원인이 된 범인들을 찾기 시작했고, 이후에 토끼 머리띠를 쓴 사람을 범인으로 지목하며 그를 찾아서 책임을 물어야한다고 주장했다.[2] 이태원 참사 초기 이러한 대중들의 반응 속에서 이태원 참사는 이태원에 할로윈 파티를 즐기러 갔던 사람들이 죽은 우연한 사고 정도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에게 가장 먼저 연대의 뜻을 밝힌 이들은 다름 아닌 세월호 참사 유가족이었다. 이태원 참사 하루 뒤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는 4.16재단, 4.16연대와 함께 이태원 참사가 단순하거나 우연적인 사고가 아니라, 안전 관리의 부재 속에서 발생한 재난참사라는 성명을 발표함으로써 이태원 참사를 이해하는 대중과 여론의 인식을 바꾸는데 중요한 계기를 제공한다.

 

“아직 단순한 사고를 넘어서는 거대한 참사가 발생한 이유가 분명히 드러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한 가지 명확히 해야할 것은 이 참사는 결코 세계인의 상당수가 누리는 축제를 즐기고자 했던 시민들의 책임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 어젯밤 이태원에서는 수많은 나라에서 시민들이 함께 즐기는 할로윈 축제가 열리고 있었고, 여기에 많은 인파가 참여하리라는 것은 이미 예상되었습니다. 다중이 참여하는 공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고를 예방하고, 미리 경고하고, 대비하고, 사고 발생 시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할 책임은 우선적으로, 도시를 안전하게 관리해야 할 이들에게 있습니다. 4.16세월호참사 피해자 가족들과 시민들은 이태원 참사 유가족을 비롯한 모든 피해자의 입장에서 이 참사를 대하고, 그 분들의 고통에 함께 애통해하며, 그 분들이 원하는 수습과 지원, 치유, 진상 및 책임의 규명, 재발방지대책이 마련되도록 하는데 함께 할 것입니다.”[3]

 

요컨대 416가족협의회는 이태원 참사가 할로윈 축제에 참여한 시민들의 잘못과 책임이 아니라는 점과 안전 관리 주체인 국가에 책임이 있음을 명시하고, 이태원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에게 가장 먼저 연대의 뜻을 밝힘으로써 이태원 참사를 명시적으로 사고가 아닌 참사로 규정하는데 중요한 계기를 제공했다. 이미 세월호 참사 때에도 이태원 참사와 마찬가지의 대중반응과 여론의 흐름이 있었다. 세월호 참사 직후에도 한편에서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에 대한 슬픔과 애도, 그리고 국가의 무능력에 대한 분노를 표현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에 비유하거나, 시체팔이라는 모욕적인 표현으로 세월호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을 모욕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재난참사는 단순한 교통사고 이상의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희생자의 죽음은 우연적인 혹은 자연적인 죽음 그 이상의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미 재난참사 유가족들은 희생자들의 죽음을 사회적 죽음으로 인정받기 위해 투쟁해왔지만, 여전히 그들의 죽음은 사회적 죽음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나는 이 글에서 재난참사 희생자들의 죽음을 사회적 죽음으로 인정받는 것이 가진 의미와 이러한 사회적 인정을 위한 투쟁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이는 재난참사가 단순한 교통사고가 아니라는 단순한 질문에 해답임과 동시에 재난참사 이후에 희생자와 유가족, 생존자 혹은 목격자로서의 시민들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성찰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2. 사고와 사건 혹은 사적 죽음과 사회적 죽음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10.29 이태원 참사 다음날 오전, 이태원 참사 사상자 파악이나 신원파악 등 참사가 채 수습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사고 명칭을 이태원 사고로 통일하고, 피해자 등의 용어가 아닌 사망자, 사상자 등 객관적 용어 사용을 해야한다는 지침을 내렸다.[4] 이태원 참사를 사고로 규정하는가, 참사 혹은 사건으로 규정하는가, 또 단순히 사망자로 규정하는가, 희생자로 규정하는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이는 중대본에서 말하는 것처럼 단순히 객관적 용어 사용의 문제가 아니라, 참사의 성격과 원인을 규정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국가는 이태원 참사를 단순한 사고로,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사망자로 규정한다. 사고(事故)는 말그대로 뜻밖에 일어난 불행한 일을 의미한다. 서구권 언어에서 사고를 의미하는 accident는 이에 더해 우연을 의미하기도 하며, 철학에서는 실체성과 우유성(Substanz und Accidenz)의 관계에서와 같이 필연적이지 않은 성질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처럼 국가는 객관적 용어 사용이라는 기만적인 근거를 통해 이태원 참사를 단지 일반적이지 않은, 우연적으로 일어난 사고로 규정함으로써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기 급급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유가족과 시민들은 이태원 참사가 사고가 아닌 사건으로, 안전 관리의 부재로 인한 참사로 규정하고자 한다.

 

이미 참사를 사고로 규정하느냐, 사건으로 규정하느냐에 대한 중요성은 여러 차례 강조되어왔지만, 참사를 사건으로 규정할 때 생기는 문제에 관해서도 주목해야한다. 특히 정용택은 『눈먼 자들의 국가』의 표제작인 소설가 박민규의 「눈먼 자들의 국가」에서 제시된 사고와 사건의 구분에 대한 분석을 통해 세월호 참사를 어떻게 인식해야하는지에 관한 중요한 고찰을 제시한다.[5] 박민규는 세월호 참사를 사고이면서 동시에 사건으로 규정하는데, 그에 따르면, 세월호는 선박이 침몰한 사고이자, 국가가 국민을 구하지 않은 사건이다. 그가 사고와 사건을 구별하는 중요한 기준은 의도의 유무이다. 그는 교통사고가 사건으로 발전하는 가장 흔한 예가 뺑소니다. 신고와 구호, 수습의 의무를 저버린 데에는 분명한 의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6] 즉 그는 세월호 참사에서 국가가 구조를 하지 않은데 의도가 있다는 것을 근거로 세월호를 사고이자 사건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방식으로 세월호를 사고이자 사건으로 규정하는 것에는 여러 문제가 있다. 하나는 세월호를 의도에 의한 사건으로 규정하는 것의 문제이고, 다음으로 세월호를 사고로 규정하는 것 자체의 문제이다. 정용택에 따르면, 사고와 사건을 “‘의도 혹은 고의성의 유무에 따라 구분하는 것은 대통령을 위시한 국가 당국자들로 인격화된 국가 관념을 전제하는 것이며, 결국 이러한 전제는 세월호의 실소유자는 국정원이었고, 세월호의 침몰도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을 은폐하기 위한 국정원의 공작이었으며, 궁극적으로 사건의 배후에는 7시간 동안 행방이 묘연한 대통령이 있다는 식의 음모론적 해석에 도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7] 따라서 그는 “‘사건으로서의 세월호 프레임을 지지하면서도 대통령이나 국정원과 같은 특정한 인물의 의도가 아니라 국가 장치의 재구조화와 연동되어 생명·안전 영역에서 국가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이 보다 탈중심적으로 변화되었다는 사실[8]에 주목하며, 선박 연령 제한 완화, 안전 관리 영역과 해양 구조 영역의 민영화 등을 지적했다.

 

다시 말해 세월호와 같은 재난참사는 교통사고와 같은 단순한 사고로 규정될 수 없으며, 마찬가지로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했기 때문에 재난참사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누군가의 의도에 의해 일어났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국가 장치의 재구조화와 그러한 재구조화의 방식과 방향과 같은 일종의 의도에 의해 일어난 사건, 즉 사회 구조에 의해 발생한 사건으로 규정되어야 한다. 따라서 이러한 재난참사의 피해자의 죽음 역시 사적 죽음, 혹은 자연적 죽음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적 죽음으로 규정되어야 할 것이다.

 

중대본이 이태원 참사에 대해 사고와 사망자라는 표현이 객관적이라는 말 속에는, 참사와 희생자라는 표현이 주관적이라는 전제가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것처럼, 참사는 단지 일반적인 흐름에서 벗어난 우연적인 사고가 아니라, 오히려 신자유주의라는 기조 속에서 다양한 안전 관리 영역에서 국가의 역할이 점차 축소되고, 탈중심화됨으로써 발생한 안전관리의 총체적 부재를 드러내는 일반적인 사건이다. 따라서 참사와 희생자라는 표현은 단순히 유가족과 시민들의 슬픔과 분노에서 비롯한 주관적이고 감정적인 표현이 아니라, 오히려 참으로 객관적인 표현이며, 사고와 사망자라는 표현은 사회의 구조적 성격을 간과한 일면적인 표현에 불과하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제 우리는 일반화된 사회적 참사와 사회적 죽음을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계속)

 

 

 


각주

 

[1] 최승현, 예장통합 김의식 부총회장, 참사 직후 설교서 핼러윈은 귀신 축제’”, 뉴스앤조이, 22.11.06.

[2] 김지영, 목격자 "토끼머리띠 남성이 밀라 했다"경찰, CCTV·현장 증언 분석, MBN, 22.10.31.

[3]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4.16재단, 4.16연대, 이태원 참사에 관한 4.16세월호참사 피해자 가족과 시민의 입장, 22.10.30.

[4] 남효정, [단독] 이태원 참사 다음 날 중대본 회의서 "'피해자' 대신 '사망자' 써라" 논의, MBC뉴스, 22. 11. 01.

[5] 정용택, 「세월호를 해석하는 네 가지 프레임」

[6] 박민규, 「눈먼 자들의 국가」, 『눈먼 자들의 국가』, 문학동네, 2014

[7] 정용택, 「세월호를 해석하는 네 가지 프레임」, 168~170

[8] 정용택, 「세월호를 해석하는 네 가지 프레임」, 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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