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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민주화와 표상의 정치(2/2)

 

 김현준(서교인문사회연구실)

 
 

*포스트민주화와 표상의 정치(1/2)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이 글은 제3회 서교연 컨퍼런스에서 발표되었습니다.

 

3. 과두적 엘리트 지배(87체제 헤게모니)와 민주화세력의 역사인식(인민 표상의 역사)

 
3-1. 대표/위임/임명의 정치사회학
 
이제 “사적 권력” 엘리트에 대해 논의해 보자. 이들은 민주적인 제도를 통해 통제되는 국가권력에 대한 규제를 민주적인 제도를 통해 해체하는 힘을 행사한다. 규제되지 않은 사적 권력, 즉 선출되지 않은 권력에는 기업이나 자본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사법부와 검찰, 관료기구, 언론, 심지어 과학이 포함(Crouch, 2020)되는데, 우리의 문제의식에서 민주화세력과 종교를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87년체제는 애초부터 독점재벌의 자유주의 프로젝트와 민중세력의 민주화 프로젝트 간의 교착 체제로 이해된다(김종엽, 2009: 19). 포퓰리즘을 포함해 포스트민주주의 한국사회의 정치적 모순은 이 교착 내지 융합 상태로부터 이해될 수 있다. 이광일(2017)은 포퓰리즘 정치에 민중 지향적인 지도자가 필요해왔다고 주장한 바 있다. 김대중과 노무현이 포퓰리즘 정치가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카리스마적 개인만이 그 역할을 하는 것만은 아니다. 역사적으로 386운동권은 민중을 대리해왔다. 민주당은 그 유산과 세력을 전유하고 자기 역사화함으로써 상징자본을 획득했다. 민주화세력은 이 교착 내지 모순적 접합을 민중계급(정치적 대의)/중간계급(자기 이익)의 이중적 이해관계에 입각해 번역하는 ‘연관 사회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민주화세대는 인민(서민)과 중산층의 비전을 혼합하여 자기화함으로써 대의에 입각한 자기-정치, 탈-이해타산적-이해타산의 구축에 성공했다. 민주화세대의 특수한 계급하비투스라 할 수 있는 무사무욕적 계급이해는 국가라는 메타권력의 장과 정치장의 특수한 산물이다. 그것은 산업화-독재세력의 이해타산적 계급이해와 실천에 대한 적대와 부정의 대립물이었다. 민주화운동세대의 ‘댓가없는 희생’은 그렇게 나타나고 인격으로 체화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중’ 개념은 운동의 주역으로서 자임한 86세대(운동권 지식인)가 운동의 주체로서 ‘호명’한 계급범주에 다름 아니었다(이남희, 2015). ‘민중’은 한 때, 사회과학적 혹은 마르크스주의적 ‘노동자 계급’에 부분적으로 대응하는 한국적 개념이었고, 어느 정도 ‘동원에 성공한 계급’이었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민중계급을 민주적 주체로 - 사실상 민주당 수호자로 - 호명하는 “동원의 기표”(천정환, 2019: 192)였다. 서구 근대에는 ‘민족’ 개념이, 19세기에는 ‘계급’ 개념이 ‘사회의 자기기술’의 하나로 등장한 것처럼, ‘민중’ 개념도 1980년대 “한국 지식인층의 한국사회에 대한 자기기술”로 이해될 수 있다(박치현, 2019: 56, 59). 이런 관점에서 ‘민중’ 개념과 ‘변혁이론’은 (운동)사회를 넘어서, 그리고 호명된 운동주체인 민중을 넘어서, 사실상의 운동주체인 “86세대의 자기기술”, “86세대의 자기정치학”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민중이라는 정치적 주체의 기의는 사실상 민주화세대라는 말이다(김현준, 2020).
 
‘중민’ 역시 진보적인 민중과 중산층 시민(중간계급)을 이론적으로 매개하고 실천적으로 동원하려는 작업의 산물이었다. 부르디외 식으로 말하자면, 본래 ‘중민’은 당시 ‘현실 계급(real class)’이라기보다는 예측적으로 구성된 ‘이론적 계급(theoretical class)’, ‘개연적 계급(probable class)’이다. 부르디외의 관점으로 보자면, 한상진의 중민 이론은 사회적 공간 안에서 인접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의 인구집단, 사실상 하나의 계급으로서 동원되기 어려운 민중과 민중적 가치지향을 갖는 중산층(사실상 학력자본을 갖춘 86세대 운동권)이라는 두 집단을 이론적으로 존재할 가능성이 있는 계급으로서 통합하고자한 시도다. 부르디외는 연구자의 지적 결단이 논문 상에서 허구적으로 재조합된 이론적 계급을 현실 계급으로 조장할 위험이 있다고 말했는데, 한상진이 구성한 ‘중민’은 오늘날 86세대라는 ‘현실 계급’을 (의도치는 않았겠지만 결과적으로) 예언한 셈이 되었다(김현준, 2020: 61). 즉 중민의 존재에 관한 설명적 이론이 중민(586세대)이라는 현실 존재가 된 것이며, ‘이론적 계급’이 ‘현실 계급’이 된 것이다(Bourdieu, 1998: 10-11 참조).
 
이렇듯 변혁주체에 관해 말하는 이러한 이론들은 언제나 그것을 말하는 발화자의 위치와 성향에 의해 매개된다. 이런 점에서 민주화세대의 발화행위와 그것에 대한 이론적 묘사는 대상에 대한 지시적 묘사인 동시에 대상에 대한 계급정치적 개입을 시사하는 것은 물론이다. 따라서 민주화세대가 제출한 계급적 담론들을 통한 계급정치는 민중계급을 위한 정치만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즉 중간계급을 지향하는 엘리트의 계급정치이기도 했다. 민주화운동세력은 인민을 대리하고 그들의 이해관계에 복무하고자 했지만, 사실상 인민이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복무하도록 만듦으로써 민주화체제의 성스러운 가치를 구축했던 것이다.
 
예컨대 조국 사태에서 환기된 교육입시 문제에 대한 지지자들의 입장에서 우리는 교육체제를 탈계급적으로 전환시키는 86세대 “마음의 레짐”(김홍중)을 읽을 수 있다. 이것은 교육・학력자본의 불평등 기저의 경제적 모순을 지배세력 내 권력투쟁과 내셔널리즘으로 치환할 수 있는 민주화세력의 정치적 능력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민주당에 부착된 민주주의의 수호를 이유로 교육・학력자본의 불평등 구조를 교묘히 회피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계급 없는 민주주의, 경제 없는 정치, 평등 없는 공정(능력주의)의 포스트민주주의 체제이다.    
 
민주화운동세대는 운동의 대타자로서 민중과, 대의의 상징으로서의 민주주의만을 발명한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을 그 상징의 근거로서 발명해 내었다(김현준, 2020: 66). 부르디외는 민중의 발명과 동시에 민중의 정치적 소외, 그리고 대표자의 권력 획득이 어떻게 상호 연관되는지 설명한 바 있다. “겉보기에는 집단이 자신을 대신하여 자신의 이름으로 말하는 사람을 만드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대변인이 집단을 만든다”는 것이다. “대표가 존재하기 때문에, 대표되고 상징되는 집단이 존재하는 것이고, 대표를 한 집단의 대표로서 존재하게 만드는 것이다”(부르디외, 2014: 246).
 
민주화세대가 87체제와 민주주의의 최대 수혜자가 되었다는 것은 단지 제도적 정치권력을 획득했다는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정치권력의 상징적 조건인 근본적인 정당성을 획득함으로써 사회구성체의 주인, 즉 사회를 구성해나가는 능동적 주체가 되었다는 것이다(김현준, 2020: 66). 그리고 ‘민주주의’ - 사실상 민주정권 - 라는 87체제의 상징적 표상은 조국수호집회와 같은 “친일적폐청산” “민주주의 수호”의 내셔널리즘의 정치종교적 동원의 표상이 된 것이다.
 
‘운동’의 구성이 집단의 구성과 동시에 이루어진다. 기호가 지시된 대상을 만든다. 기표는 기의와 동일시된다. 후자는 전자 없이 존재할 수 없으며, 전자로 환원된다. 기표는 표시된 집단을 표현하고 대표하는 것만이 아니다. 표시된 집단에게 존재하도록 통고(signifier)하는 것, 표시된 집단을 동원하면서, 가시적으로 존재하도록 불러오는 권력을 가진 것이 바로 기표이다. 기표는 특정한 조건에서, 위임에 의해 부여된 권력을 사용하여, 집단을 동원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부르디외, 2014: 246).
 
‘정치적 세대’로서 민주화세대는 집단정체성의 토대를 스스로 구축함으로써 그 어떤 주체보다 민주주의 역사와 국가의 주체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민주화세대의 혹자는 과거를 반추하며 이렇게 고백했다.
 

자기보다는 우리, 사회, 나아가 국가에 대한 생각이 먼저라고 하는 전통적인 가치관이 더 지배적인 면이 강하기 때문에 이 나라가 잘되기 위해서 하나의 합의가 이루어진다면 그것에 가장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세대라고 생각해요. 현재의 가장 주축인 386세대야말로 이 시대의 힘을 결집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거라는 점이죠. 이런 것을 통해 386세대가 상대적으로 개인적인 성향이 강하다고 생각되는 이후의 세대에 어떤 모범이 될 수도 있을 것 같구요(구형진 외, 2003: 292).

 
민주화세대는 대리되는 사람들을 사회/정치적 공론장에 내보여줌으로써 그들 자신이 대표자라는 것을 확인시켜주었다. 인민을 재현함으로써 그들 자신을 대표자로 재현한 것이다.
 
성직자는 신 또는 민중의 이익을 위해 자신을 완전히 지워버림으로써, 스스로 신이나 민중이 된다. 나는 무가 될 때 - 이는 내가 무가 될 수 있기 때문, 즉 나를 말소하고, 나를 잊고, 나를 희생하고, 나를 바칠 수 있기 때문이다 - 전부가 되는 것이다. 나는 신 또는 민중의 수임인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나는 전부의 이름으로 말하며, 그런 고로 나는 전부이다(부르디외, 2014: 257).
 
이 발명의 과정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고, 민주진보진영은 2002년과 2017년 탄핵촛불과 대선, 2020년 조국수호촛불과 총선의 민주당 승리를 87년 항쟁의 연장선상에서 그 완성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서사적 표상은 정치적 표상/대표와 겹쳐진다. 인민 표상의 역사는 대표 표상의 역사인 셈이다. 즉 역사의 재현은 대리를 통한 대표자의 상징자본의 독점 과정에 다름 아닌 것이다. “민중을 내세우되, 민중은 아니었던” 86세대 엘리트는 민중과 노동자를 대리했을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와 ‘촛불’(항쟁 또는 시민명예혁명), 나아가 인민의 계급투쟁도 대리하게 되었고, 심지어 도덕까지 전유하게 되었다. 예컨대 조국에 대한 비판은 “도덕주의” “도덕적 순결주의” “도덕적 단죄정치” “도덕 정치화”와 우파 기획으로, 심지어 반계급투쟁으로 매도되었다.[1]       
 
현재 포스트민주주의 국면의 보수/진보(민주진보진영)의 지지자 집단은, 이미 완성된 것으로 간주되는 민중, 민주화세대, 노사모, 깨시민, 문파와 함께 적대적 전선의 새로운 배치체로서 정치공동체의 형성과정으로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불로비치와 팔로넨(Vulović & Palonen, 2022: 2)에 따르면, 등가사슬과 구성적 외부를 통해 형성되는 정치적 집단(Laclau, 2005; 2015) 또는 ‘우리’(Palonen, 2020)의 헤게모니 형성과 접합 논리는 공동체에 대한 상상(Anderson, 1983)과 공동체 구성(Brubaker, 1996; 2020) 논리와 공명한다. 이들은 정치 공동체가 이미 형성된 정체성을 가진다는 생각을 기각하고 이러한 공동체들이 접합되는 과정에 주목한다(Vulović & Palonen, 2022: 2). 이 역사적 구성 과정에 여러 상징적 계기, 사건들이 기여한다. 특히 정치적 적대 구도의 형성적 계기들, 즉 몇 가지 상징적 장면들의 역사적 파노라마에 주목해 볼 수 있다. 이것은 정치종교로서 민주주의 헤게모니의 일정한 균열도 시사한다(5장에서 다시 언급할 것이다).
 
현재까지 지속되는 세월호 참사의 사회적 상흔, 2003년 이래 현재까지 제정되지 못하고 있는 차별금지법제정 시도의 역사, 이른바 ‘이대남’과 백래시로 표상되는 젠더 갈등과 2007년 페미니즘 리부트, 조국수호집회와 2016년 탄핵촛불이 그것이다. 이 역사적 장면들은 인민의 요구들 또는 정치적 집단들의 갈등구조와 실천이 만들어낸, 문화정치적으로 구성된 서사적 사건들이다. 따라서 이 서사를 어떻게 인식하느냐가 정치공동체와 전체 사회적 상상(포스트민주주의)의 성격을 규정짓는다.     
 
그 중에서도 ‘탄핵촛불’은 민주화세력과 산업화세력이 민주주의라는 규범적 가치(초월적 이데올로기)를 존재론적 차원에서, 사후적으로, 최종적으로 확인하는 사건이었는지 모른다. 민주당에게 있어서 ‘촛불’은 민주화(세력)의 가치와 민주당 집권 정당성의 사후적 구성물이다. 이 ‘촛불’은 노무현-문재인 정권과 함께 등가사슬로 연결되는 표상인 셈이다. 그리고 조국은 여기에 덧붙여 촛불과 민주주의의 의미를 재구성한다. 즉 조국 사태와 조국수호촛불은 기존의 민주진보진영을 보다 “순수한” 정치공동체로 “정화”(포함/배제)하는 상징적 재구축과 동시에 (역설적으로) 탈구축의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다.
 
조국 사태가 포스트민주주의 하의 포퓰리즘적 성격을 갖는 이유는 조국 자녀의 입시 비리가 그 지지자들에게 계급적 특권의 표식이라기보다는 정적 또는 사법권권(검찰), 이른바 “친일적폐”에 의한 권력투쟁의 희생물로서 간주된다는 점 때문이다. 이것은 계급이라는 사회적 상상보다는 양당체제적 상상, 내셔널리즘적 상상이 우선적임을 시사할지 모른다(물론 이러한 내셔널리즘은 전도된 계급의식이거나 상호구성물인 계급과 네이션과의 교차 효과일 수 있다). 민주화-산업화세력의 공모질서에 기반한 양당체제 내의 정권투쟁, 87체제의 모순이 규범적 가치가 되어 한국 민주주의 정치의 상상을 지배하는 것이다. 이들의 상상에 권력투쟁은 있지만 계급투쟁은 없다. 적폐 청산은 있지만 교육/젠더/계급불평등은 없다. 공정은 있지만 노동은 없는 것이다. 즉 계급투쟁 없는 권력투쟁, 계급 없는 정치질서에 대한 상상은 네이션(국민/비국민)에 대한/의한 동원/배제로 손쉽게 메꾸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정치사회적 상상계는 이제 계급이나 신분에 대한 소극적 부정이 자리한다. 이는 포스트민주정치 장의 이중적 진실을 시사한다. 그것은 반민주적 민주정치인 것이다.  
 
크라우치는 “사회 계급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현대 정치의 교의 자체가 포스트민주주의 징후” 이며 “포스트민주주의는 특권이나 종속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한다”고 지적한다(2008: 89). 이제 능력주의는 민주화세력의 일상적 습속을 지배하는 정치종교의 공식적 교리이며 정치사회적 상상이다. 그래서 조국 자녀의 입시비리를 억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이 능력주의는 그것의 조건, 즉 자본권력의 지배와 계급불평등을 은폐한다.    
 
민주화의 역사를 포물선으로 이해하는 크라우치의 일반 도식을 따른다면, 2016년 ‘탄핵촛불’은 87년체제의 ‘절정’이자 포스트민주주의의 서막으로서 이해해 볼 수 있다(물론 자본권력의 지배, 즉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아울러 신자유주의가 본격화한 시점을 포스트민주주의의 시작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일 것이다). 민주화의 절정, 즉 “최대(maximal) 민주주의”의 시각에서 보면 그 이전의 민주주의와 그 이후의 민주주의를 잇는 가교가 되는 셈이다(물론 “최대” 민주주의라는 것은 목적론을 기각하는 크라우치의 입장에서 보면 절대적 기준이 아니라 역사적이고 상대적인 기준일 것이다). 왜냐하면, 이하에서 다루겠지만 민주화세력과 중간계급의 “공식” 정당은 ‘촛불’을 민주정체의 “공고화” 증거와 문재인 정권의 근거라고 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절정은 프리-민주주의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포스트-민주주의에 의해서도 사후적으로 규정된다. 지금의 한국 정치적-경제적 상황은 촛불 당시 보다 나아졌다고 할 수 있는가. 현대의 민주주의가 촛불의 역사적/정치적/민주적 의미를 결정하는 것이다.  
 
 
3-2. 표상의 역사에 대한 표상의 정치학
 
이하에서는 대표적인 사례로 민주화세력의 주류적 관점에서 쓴 2022 대선 비평 글을 비평함으로써 포스트민주주의 하에서 촛불과 페미니즘의 의의과 민주화/민주당세력의 역사인식을 재고하고, 이를 통해 인민 표상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인식하고자 한다.
 
최병천(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전 진보정당 활동가)은 2022 대선을 평가하는 “젠더 전쟁은 ‘민주화 이후’ 선진국 정치의 특징이다”라는 글(2022/3/22)[2]에서 민주화 세력의 재집권이 민주주의적 게임의 규칙이 작동하고 있음을 증명하기에 민주주의의 공고화로 규정될 수 있다는 최장집의 ‘민주주의 공고화’론을 빌려와 한국 민주주의의 공고화 시점을 2017년 5월 9일, 문재인 대통령 당선일이라고 주장한다(이들은 2016년 ‘탄핵촛불’과 민주당 재집권의 의의를 동일시하는 관점에서 민주주의 이후 민주주의의 위기를 외면하고 긍정으로 포장한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공고화라고 자신만만하게 의미부여한 바로 그 시점이 역설적이게도 한국정치와 민주주의의 가장 취약한 지점들 – 크라우치가 말한 포스트민주주의가 곧이어 도래하는 민주주의 ‘포물선’의 정점 - 에서, 대표적으로 페미니즘/젠더불평등/차별금지법 의제와 ‘능력주의’와 ‘공정’으로 표상되는 사회적 불평등의 모순, 그리고 혐오가 한층 더 폭발적으로 드러난 시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최병천의 글은 제목만 보면 ‘젠더 전쟁’이 민주화 이후 당연한 특징이라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민주화 이후의 젠더불평등 의제를 중요하게 여기고 새로운 정치적 전선을 인정하는듯 보이지만, 2022년 대선의 교훈이 ‘젠더 전쟁’으로는 선거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사실상 페미니즘/젠더불평등을 민주화 이후의 주요 정치적 과제와 새로운 전선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젠더불평등 의제를 민주화 이후의 과제로 인정하는듯 보이지만 사실은 이 의제를 ‘젠더 갈등’이라는 기계적 중립 프레임에 가두고 선거정치에서 무시해야 한다는 주장인 것이다.  
 
20대 남성은 페미니즘/젠더에 매우 비판적이고, 20대 여성은 페미니즘/젠더에 매우 적극적이다. 국민의힘이든, 민주당이든 페미니즘을 ‘정치 쟁점’의 핵심 갈등으로 내세울 경우, 작용/반작용의 법칙이 작동하여 최종 결과는 서로 반/반이 된다는 것을 대선 결과는 말해준다.
 
곧이어 그는 미국 정치학자 샤츠슈나이더의 <절반의 인민주권>의 ‘갈등의 사회화’ 개념을 인용하면서 “선거 덕분에, 20대 남성과 20대 여성이 페미니즘/젠더 문제에 매우 민감하다는 것을 알게 됐”고, “그들이 어떤 처지에서,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고민하게 됐다”면서도, “한차원 높은 통합”으로 나아갈 것을 역설하는 것으로 비약한다. 하지만 사실상 이 통합은 선거정치공학적 효용을 의미하는 것이다. ‘젠더 갈등’이나 페미니즘을 정치 쟁점에서 덜 중요한 것으로 배제하면서 최종적인 선거 결과만을 “더 중요한” ‘정치 쟁점’으로 내세우는 것이다.
 
샤츠슈나이더(2008/1975)의 ‘갈등의 사회화’는 갈등의 공론화를 통해서 개인적 차원이나 개별적 갈등을 정치의 중심 의제로 부상시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지, 갈등을 선거정치의 목적에 끼워맞춰 서둘러 봉합하거나 삭제하라는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사적인 갈들에서 경쟁자들 간의 힘의 관계는 불평등하기 마련이므로, 당연히 가장 강력한 특수이익은 사적인 해결을 원한다. 외부의 개입 없이 갈등이 사적인 채로 남아있는 한, 강자가 갈등의 결과를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아더매니, 2008/1975: 30 재인용). 물론 최병천의 생각은 샤츠슈나이더의 “다수지배 원칙”에 대한 기계적 적용일 것이다. 즉 샤츠슈나이더는 민주주의가 갈등을 (선거 때문에) 무조건 줄이는 것이 아니라, 약자가 “힘의 균형이 변할 때까지 더욱더 많은 사람들을 갈등에 끌어들여” “사회화”(아더매니, 2008/1975: 30 재인용), 공론화함으로써 오히려 민주주의의 토대를 발견하여 더 나은 의사결정을 하며, 이를 통해 약자들도 민주주의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다시 말해 갈등을 사회화하는 과정에서 정당은 정치는 갈등을 사적인 차원에서 공적인 차원의 정치적 쟁점으로 만들 책임이 있는 것이다.
 
샤츠슈나이더의 입장은 민주주의가 모든 인간은 소중하다는 도덕적 원리, 개인의 자유에 대한 존중, 평등한 시민이라는 가치, 동료 시민에 대한 사랑을 전제로, “소수는 다수의 지위를 추구하고, 다수는 자신들의 결정에 동의하도록 소수를 설득”하며, “소수의 권리는 민주주의 공동체에 핵심적인 신념에 의해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이다(아더매니, 2008/1975: 16 재인용).   
 
그런데 최병천의 이러한 비약은 이른바 ‘젠더 갈등’ 국면에서 정치적 약자와 소수자를 배제하는 것은 물론이고 “갈등을 가시화”(샤츠슈나이더, 2008/1975: 51)하고 “사회화”하는 정치를 소거하며 소수의 권리를 보호하고 설득하는 정당의 책임을 방기하겠다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이는 민주주의가 모든 갈등에 관여하는 갈등의 사회화를 가능케 하는 가장 큰 힘이라는 것을 간과하는 것이다(아더매니, 2008/1975: 31). 결국 젠더불평등의 해소가 민주화 이후의 중요한 정치적 과제라고는 보지 않는 것이다.  
 
2022년 대선 기간 내내 페미니즘과 젠더 이슈를 갖고, 신나게 싸우고, 온갖 짱구를 굴리며 신나게 정치 공학을 발휘했다. 이를 통해 우리 사회가 얻은 결론은 젠더 이슈로는 선거에서 안정적인 승리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중요한 갈등을 직시해야 한다. 그래서, 역사의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야 한다.
 
하지만 앞서 계속 강조했다시피, 샤츠슈나이더는 약자의 요구에 의해 갈등 상황을 사회화하는 자유로운 정체로서 민주주의 중시한다. 왜냐하면 그래야만 보통의 시민대중이 공적 사안에 관여할 수 있고 이로부터 공공정책의 대안들이 부상하기 때문이다(샤츠슈나이더, 2008/1975: 219).  
 
또 이러한 최병천의 입장은 민주당 정치에 각인된 정치적 무능력과 일종의 정치적 회의주의를 보여준다. 누군가의 말처럼 문재인은 정치를 하지 않았다. 넓은 의미로서의 정치는 부재하고 선거정치공학과 집권, 그리고 통치행위만 남은 것이 2022년 대선을 통해서 “우리 사회가 얻은 결론”이라고 단언한다면 너무 슬픈 일이 아닌가. 이것이 양당체제 하의 정치인이 얻은 결론인가. 샤츠슈나이더의 결론은 최병천의 생각과는 달리 갈등을 사회화하는 정치의 책임을 강조하는 것으로 끝난다.
 
대중이 정치에 관여하는 것은 자유로운 사회에서 거의 언제나 발생할 수밖에 없는 갈등의 자연스런 결과이다. 책임 있는 정치 지도자와 조직이 이런 상황을 활용하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갈등의 사회화는 민주주의의 핵심적인 과정이다(샤츠슈나이더, 2008/1975: 222).
 
최병천 식의 인식으로 정권의 다음 페이지는 넘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역사의 다음 페이지는 여성주의/젠더/소수자 정치 없이는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크라우치(2008/2005)는 이미 포스트민주주의 시기에도 불구하고 시민 수동 모델을 “분쇄하고 변화시킬 변수”가 “여성의 정치적 동원”이라고 주장했다(100). 그에 따르면, “여성 운동이 겪는 모든 경험은 포스트민주주의의 계속되는 행군이라는 전반적인 틀 내에서도 민주주의적인 순간을 창출해냈다”(103). 크라우치의 관찰처럼 여성 운동은 “포스트민주주의라는 주된 역사적 경향에 맞설 수 있음을 우리에게 상기시켜”주었다(2008/2005: 104). 그에 따르면 예컨대 2018년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 행사와 같은 최근 페미니즘의 부활은 마초적인 남성 정치와 우파 포퓰리즘에 대한 반응일 수 있다(2019: 136).
2015년 한국의 “페미니즘 리부트”(손희정, 2017)는 포스트민주주의의 위기와 포퓰리즘의 새로운 구축 국면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들)의 이름이다.  
 
따라서 차별금지법과 성평등과 같은 진보적 인권 의제와 실천에 미온적인 민주당의 (재)집권은 포스트민주주의, 즉 민주주의의 약한 성격이나 요소의 실현인 셈이다. 그러니까 ‘촛불’과 그에 대한 민주당 이데올로기적 해석은 민주주의 침식의 어떤 징후를 시사한 것인지 모른다. 민주당의 주장대로라면 ‘촛불’은 박근혜를 탄핵한 것만이 아니라, 민주당 문재인 정권을 창출했기에 민주당의 정치이념과 동일시된다.
 
 

4. 87체제 포스트민주주의의 귀결: ‘촛불’ 헤게모니의 균열

 
한국 민주주의의 대립 구도와 전선은 무엇인가? “‘민주 대 반민주’ 구도가 여전히 유효한가? 아니면 이제 ‘분배 대 성장’ 또는 ‘신자유주의 대 반신자유주의’의 전선인가?”(신진욱, 2018: 71). 이 물음은 현재의 변화된 포스트민주주의적 상황을 이해하고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하기 위해 중요하다. 그리고 우리는 “대항 헤게모니 기획”(서영표, 2017) 또는 "헤게모니적 전환"(백승욱, 2022: 227)을 시도하기 위해 그 균열점을 파악하고자 한다. 백승욱(2022) 식으로 말하자면, 자유주의적 헤게모니의 포섭 시도를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민주/반민주 이분법은 적어도 정권의 중심부에 있는 일부 민주화세대•세력에게는 여전히 강고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앞서 최병철의 글에서 보았듯이, 이 이분법을 뒷받침하는 정당정치의 선거정치공학은 너무나 선택하기 쉬운 '산수'로 보인다. 한국정치는 마치 기업의 존재목적이 오로지 이윤창출에만 있다는 경제학 교과서의 서술처럼, '정치적인 것'을 오직 정권(재)창출을 위한 정치자본의 지대추구와 이윤극대화로만 인식하고 있다. 어쩌면 정치장의 고유한 논리일지 모르는 정치공학적 정치하비투스는 강력한 해석틀이자 정치성향인 진영논리를 발휘하여 대중의 불만과 요구를 ‘정치적 생존’을 위한 수단으로 굴절시킨다. 
 
민주당 정권과 그 지지자들은 이른바 '촛불혁명'을 정권교체의 도구로 축소해버렸고, 불평등과 민주사회의 규칙, 지배계급의 정당성, 성폭력, 차별과 혐오와 같은 다양한 사회적 문제들을 의제화할 계기로 삼기보다는 오로지 친일적폐청산, 검찰개혁, 조국 수호, 정권재창출이라는 제한적인 (포스트) 민주화 프로젝트에만 매달렸다. 그리고 자신을 향한 모든 비판을 내부의 균열을 획책하기 위한 적폐 프레임으로 간주하고 있다. 인민대중의 불만과 요구가 과점적 정치장 속에서 대의되지 못할 때, 이들의 요구는 기성 정치문법으로는 해석될 수 없는 언어로 표현되거나 정체성 정치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다(김현준, 2021: 29).
 
이 결과는 역설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조국수호와 검찰개혁을 내세운 문재인 정권의 헤게모니 전략은 조국으로 표상되는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개혁 요구를 우파에 포섭된 반정치 도덕주의자들의 공모로 매도함으로써 비판적 대중(잠재적 우군)으로부터 스스로를 고립시켰다(김현준, 2021: 29). 이를 통해 민주당/반민주당 진영론과 “광신”적 정치종교(토스카노, 2013)는 더욱 강화되었다. 민주화세대•세력이 "공공연히 '민주화운동의 적자'를 자임하면서도 그에 반하는 역할"을 하는 셈이었다(이광일, 2017: 186 참조).
 
페미니즘 리부트, 차별금지법제정운동, 조국 사태는 정치적 자유주의로 개종(?)한 주류 민주화세력의 헤게모니의 절정에서 역설적이게도 그 균열을 표상하는 상징적 사건들이라고 볼 수 있다. 즉 87년체제의 절정, 민주화 헤게모니의 절정을 2008년 ‘광우병촛불’과 2016년 ‘탄핵촛불’이라고 한다면, 페미니즘 백래시, 보수개신교의 반인권운동(차별금지법반대운동), 조국 사태(조국수호촛불), 젠더불평등과 페미니즘 백래시는 포스트민주주의 하에서 헤게모니의 내적 균열(구성적 외부)을 드러낸다.
 
강인철(2019a; b)은 반공-자유민주주의라는 국시가 그 헤게모니적 지위를 잃고 분화하여, “반공-국가주의”라는 하나의 시민종교로 축소되고 반대편에 “민주-공화주의”라는 또다른 시민종교가 출현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전자는 태극기 집회로, 후자는 촛불집회로 표상된다. 강인철은 두 시민종교의 분화와 갈등의 기점을 2003년 노무현 정부로 보았다. 하지만 2003년 차별금지법제정의 시작과 그 첫 실패는 민주-공화주의 촛불로 포괄할 수 없는 역사적 흐름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즉 노동 문제는 물론이고, 소수자와 장애인 인권 문제, 젠더불평등, 정치인들의 성범죄와 조국 사태에 대한 민주세력의 대응을 보면 "민주-공화주의"는 인민(들)의 권리와 가치를 정당화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시민종교인 것이다. 세월호 참사가 한국 시민종교의 분열된 토대를 확인시켜 준 사건이었던 것처럼, ‘촛불’ 역시 한국 민주주의라는 시민종교의 현실, 즉 헤게모니의 균열을 상징하는 것인지 모른다.
 
한국 포스트민주주의의 문제는 민주적 가치의 배제와 망각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 체제는 진영논리, 선거공학, 자신들의 계급정치를 위해 다른 민주적 가치와 타자를 희생시키는 체제인 것이다. 87년체제가 91년 노동자대투쟁을 망각한 것처럼, 2003년 차별금지법제정운동의 소수자정치와 2007년부터 리부팅된 페미니즘의 역사, 그리고 노동과 인권의 가치들을 삭제하고 한다면, 그러한 ‘민주주의’라는 정치질서의 정체가 대체 무엇인지를 우리는 재차 질문할 수밖에 없다.
 
포스트민주주의 개념은 변화되는 민주주의의 위기 속에서 민주주의의 변화적 의미를 다시 묻고 재규정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 글은 부족하게나마 포스트민주주의 시대 지배블록의 강고함과 표상 정치의 견고함, 그럼에도 그 사이에서 발생하는 포퓰리즘의 격랑 속에서 민주주의를 탈구축하는 인민(들)의 역사와 소수자 정치를 이론적으로 묘사함으로써 포스트민주화체제로서 87체제를 재고하고자 했다.    
 

(끝)

 
 


각주

[1] 아도르노(버틀러)와 홀에 입각한 나의 반론은 김현준( 2021)을 보라. 전반적인 반론은 김현준(2020)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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