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마르크스주의는 역사주의가 아니다
『"자본"을 읽자』, 2부 「“자본”의 대상(L’Objet du “Capital”)」[각주:1]
루이 알튀세르(Louis Althusser) 지음
배세진 옮김 (파리 7대학 사회과학대학 ‘사회학 및 정치철학’ 학과 정치철학 전공 박사과정)
하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동일한 종류의 것이면서도 아마 훨씬 더 심각한 것일 그러한 마지막 오해와 대면하게 된다. 이 오해는 “자본”에 대한 독해를 대상으로 할 뿐만 아니라, 그리고 마르크스주의 철학을 대상으로 할 뿐만 아니라, 또한 “자본”과 마르크스주의 철학 사이에 존재하는, 그러니까 역사유물론과 변증법적 유물론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를 대상으로 하는, 다시 말해 하나의 전체(tout)로 간주된 마르크스의 저작/작업의 의미/방향을 대상으로 하는, 결국에는 현실역사와 마르크스주의 이론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기에 동일한 종류의 것임에도 훨씬 더 심각한 오해일 것이다. 이 오해는 마르크스주의 안에서 하나의 역사주의를, 그리고 모든 역사주의들 가운데에서 가장 근본적/급진적인 역사주의인 하나의 ‘절대적 역사주의’를 보는(voit) 그러한 오류(bévue) 내에 자리하고 있다.[각주:2] 이러한 확인/주장(affirmation)은, 역사과학과 마르크스주의 철학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라는 유형 하에서[차원 내에서], 마르크스주의 철학이 현실역사와 맺는 관계를 무대 위에 상연한다.
***
나는 마르크스주의가 이론적 관점에서 인간주의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cf. 프랑스어판 “마르크스를 위하여”, p. 225 sq.) 하나의 역사주의가 아니라는 점을, 적지 않은 상황들에서 인간주의와 역사주의 둘 모두가 동일한 이데올로기적 문제설정에 토대해 있다는 점을, 그리고 이론적으로 말해 마르크스주의는, 동일한 운동을 통해 그리고 이 마르크스주의를 정초하는 유일한 인식론적 단절로 인해 하나의 반(反)인간주의이자 하나의 반(反)역사주의라는 점을 주장하고자 한다.[각주:3] 게다가 나는 엄밀한 방식으로 하나의 무-인간주의와 하나의 무-역사주의라고 말해야만 할 것이다.[각주:4] 따라서 나는 단절에 대한 선언--이 단절에 대한 선언은 자명한(aller de soi) 것이기는커녕 이와는 정반대로 수행(consommer)하기에 매우 까다로운 것이다--이 지니는 모든 무게[영향력 혹은 의미]를 이 무-인간주의와 무-역사주의에 부여하기 위해, 단순한 부정접두사의 형태[즉 ‘무’] 대신에 이러한 이중으로 부정적인[‘반’의] 정식(반인간주의와 반역사주의)을 의식적으로 활용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40년 전부터 몇몇 영역들에서 마르크스주의를 끊임없이 위협하고 있는 인간주의와 역사주의의 공격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단순한 부정접두사의 활용만으로는 전혀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떠한 상황들(circonstances)에서 마르크스에 대한 이러한 인간주의적이고 역사주의적인 해석이 탄생했는지, 그리고 어떠한 최근의 상황들이 이 해석에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했는지 완벽하게 알고 있다. 이 해석은 1917년 러시아 혁명에 선행하는 기간에, 그리고 특히 러시아 혁명 바로 이후의 몇 년간에, 제2인터내셔널의 기계론과 경제주의에 대항하는 맹렬한 반격(réaction) 속에서 탄생했다. 이 해석은, 상당히 다른 형태 하에서라고는 할지라도 소련 공산당 20차 당대회의 ‘개인숭배’의 범죄와 도그마적 오류에 대한 고발 직후에 이루어진 이 해석에 대한 최근의 부활이 몇몇 역사적 권리[정당성]를 지니는 것과 마찬가지로, 실제적인 역사적 공적(mérites)을 자신의 권리로 지니고 있다. 만일 최근에 이루어진 이러한 새로운 생명력의 부여가 [러시아혁명 시기의 인간주의적이고 역사주의적인 해석을 통한 반격에 대한] 반복에 불과한 것이라면, 그리고 자비로운 혹은 능수능란한, ‘좌익주의적’인 것이었긴 했지만 혁명적 정신의 저항적 힘을 지니고 있었던 이 역사적 반격(réaction)에 대한 우회임에도 ‘우익적’인 우회에 불과한 것이라면, 이러한 해석의 최초 상태[최초 형태]의 역사적 의미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제2인터내셔널에 적용하는 기준(norme)과 동일한 기준을 활용할 수는 없다. 바로 독일 좌파, 즉 처음에는 로자 룩셈부르크(Rosa Luxemburg)와 프란츠 메링(Franz Mehring)의 독일 좌파, 그 다음에는 1917년 러시아혁명 이후의 일련의 모든 이론가들(이들 중 몇몇은 코르쉬와 같이 그 영향력을 상실하기도 했으나 루카치와 같은,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그람시와 같은 또 다른 이들의 경우에는 영향력 있는 역할을 수행했다)의 독일 좌파 주위에서 혁명적 인간주의와 혁명적 역사주의에 대한 주제들이 확립되었다. 우리는 레닌이 어떠한 용어들/관점들로 제2인터내셔널의 기계론적 진부함에 대항하는 ‘좌익화된’ 이러한 반격(réaction) 운동을 평가했는지를 알고 있다. 레닌은, 예를 들어 로자 룩셈부르크와 그람시가 그 당시 본래적으로 혁명적인 것을 포함하고 있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cf. “좌익주의 혹은 공산주의의 소아병”에서) 이 ‘좌익주의화된’ 반격 운동의 이론적 우화들[이론적으로 빈약한 담론들]과 그 정치전술을 비판했다. 우리는 언젠가는 이 모든 과거를 명료히 밝혀내야만 할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이고 이론적인 연구는, 우리의 현재 그 자체 내에서 실제 인물들을 유령들로부터 제대로 구별해내기 위해서는, 그리고 제2인터내셔널의 기계론과 숙명론에 대항하는 반격(réaction)이 인간들이 결국 혁명--역사가 이 인간들에게 그 수행의 임무를 부과했던--을 수행해내기 위해서는 이 인간들의 의식과 의지에 대한 호소라는 형태를 취해야만 했던 그러한 혼란스러운 전장에서 그 당시 수행되어야만 했던 비판의 결과들을 이론의 여지없이 탄탄한 토대들 위에 자리잡게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필요불가결한 것이다. 바로 그 때에, 아마도 우리는 그람시가 1917년의 반자본주의적 혁명이, 제2인터내셔널이 마치 성경에서와 같이 사회주의의 숙명적 도래를 읽어냈던 한 권의 [대문자] 책[즉 “자본”]으로 인해서가 아니라 인간들과 대중들과 볼셰비키들의 의지적이고 의식적인 행위를 통해, 칼 마르크스의 “자본”에 반해서 수행되어야만 했다는 점을 명확히 강조하는 “자본”에 반하는 혁명을 격찬했던 그 유명한 그의 저술의 제목[즉 ‘“자본”에 반하는 혁명’]의 역설을 조금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각주:5]
이러한 인간주의와 역사주의의 ‘좌익주의적’인 최초 형태[러시아혁명 당시 등장했던 형태]를 생산해냈던 조건에 대한 과학적 연구를 기다리면서도, 우리는 마르크스 그 자신 안에서 이러한 해석을 승인해줄 수 있었던 바를, 그리고 분명 오늘날의 마르크스 독자들의 눈에 이 해석의 최근 형태를 성공적으로 정당화하는 것으로 보이는 바를 식별할 수 있다. 우리는 기계론적이고 진화주의적인 독해에 자양분을 공급할 수 있었던 정식화에서의 그 동일한 모호성들이 이와 동시에 역사주의적 독해 또한 승인해 주었다는 점을 발견하고 놀라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레닌은, 기회주의와 좌익주의의 역설적 마주침이 우리를 당황케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 기회주의와 좌익주의의 공통의 이론적 토대에 대한 충분한 예시들을 제공했다.
이제 정식화에서의 모호성들을 언급해보도록 하겠다. 바로 이 지점에서 여전히, 우리는 우리가 이미 그 효과를 가늠한 바 있던 하나의 현실에 부딪혀 넘어지게 된다. 자신의 저작/작업 속에서 자신을 자신의 전임자들로부터 분리시키는 구별을 온전히 생산해냈던 마르크스가, 결국 이는 모든 발명가들의 공통된 운명이기는 한데, 충분히 완전한 선명성을 가지고서 이러한 구별의 개념을 사고하지는 않았다는 현실 말이다. 마르크스는 적합하고 발전된/전개된 하나의 형태 하에서 자신의 이론적으로 혁명적인 사고과정(démarche)에 대한 이론적 개념과 이론적 함의들을 이론적으로 사고하지 않았다.[각주:6] 때로 마르크스는 이 사고과정을 (더 나은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부분적으로는 다른 이들로부터 차용해온 개념들(특히 그 무엇보다도 헤겔적 개념들) 내에서 사고했는데, 이는 이 개념들을 차용해온 장소인 기원적인 의미론적(sémantique originaire) 장과 이 개념들이 적용되었던 장소인 개념적 대상들의 장 사이의 어긋남이라는 효과를 도입했다. 때로 마르크스는 이러한 차이 그 자체를 사고했는데, 하지만 부분적으로만 혹은 하나의 개요적 지표(esquisse d’une indication) 내에서, 이 개념들의 등가물들[이 개념들과 동일한 가치를 지니는 것들]에 대한 끈질긴 탐구 내에서[각주:7], 하지만 한 개념의 적합성 내에서 자신이 생산해냈던 바에 대한 엄밀한 본원적 의미(sens original)를 언표하는 데에 단숨에 성공해내지는 못하면서, 사고했다. 하나의 비판적 독해를 통해서만 식별될 수 있으며 제거될 수 있는 이러한 어긋남은 마르크스의 담론의 텍스트 그 자체의 객관적 일부를 이룬다.[각주:8]
바로 이 때문에, 모든 경향적 이유들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마르크스의 그토록 많은 상속자들과 지지자들이 마르크스 자신의 텍스트들을 손에 쥐고서 이 텍스트들의 문자 그대로에 자신들은 충실히 남아있다고 주장(prétendant)하면서도 그의 사유에 대한 부정확한 해석들을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각주:9]
이 지점에서 나는 이 경우 어떠한 텍스트들 위에 우리가 마르크스에 대한 역사주의적 독해를 정초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세부지점으로 들어가보고자 한다. 나는 마르크스의 [대문자] 청년기의 혹은 [대문자] 절단의 텍스트들(프랑스어판 “마르크스를 위하여”, p. 26)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다. 왜냐하면 이 [대문자] 청년기[특히 1844년 파리원고] 혹은 [대문자] 절단[특히 ‘포이어바흐에 관한 열 한 가지 테제들’과 “독일 이데올로기”]의 텍스트들 위에 이 역사주의적 독해를 정초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하는 것은 [“마르크스를 위하여”에서 내가 이미 보여주었듯] 손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들’이나 “독일 이데올로기”와 같은 인간주의적이고 역사주의적인 심원한 반향이 여전히 울려퍼지고 있는 텍스트들에, 이 텍스트들로부터 우리가 기대하는 단어들을 이 텍스트들이 발음하도록 만들기 위해, 폭력을 가할 필요는 없다.[각주:10] 왜냐하면 이 텍스트들은 이 단어들을 다른 이들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발음하기 때문이다. 나는 “자본”과 ‘1857년 서문’에 대해서만 언급하도록 하겠다.
마르크스에 대한 역사주의적 독해가 의거할 수 있는 그러한 마르크스의 텍스트들은 두 가지 집합으로 그러모아질 수 있다. 첫 번째 집합은 그 안에서 역사적 과학 전체의 대상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조건들에 대한 정의와 관계된다.[각주:11]
‘1857년 서문’에서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쓴다.
(…) 경제적 범주들의 운동[진행과정](marche)과 관련해, 역사적 과학 혹은 사회적 과학 일반에서, 주체, 즉 여기에서는 근대 부르주아 [시민]사회가 현실 속에서 뿐만 아니라 뇌 속에서도 주어진다는 점, 따라서 [경제적] 범주들은 이러한 규정된(déterminée) 사회의, 종종 이 주체[근대 부르주아 시민사회]의 규정된 단순한 양상들인 그 존재형태들, 그 규정된 존재조건들 등을 표현한다.”(170)
우리는 이 텍스트를 “자본”의 한 구절과 상호접근시킬 수 있다(I. 87).
사회적 삶의 형태들에 대한 성찰[이론], 그러니까 결국 이 사회적 삶의 형태들에 대한 과학적 분석은 현실적 운동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하나의 길을 따른다. 사회적 삶의 형태들에 대한 성찰은 이미 전체가 확립된 소여들과 함께, 발전/전개의 결과들과 함께 사후적으로 시작된다(…).[각주:12]
이 텍스트들은 사회적 과학과 역사적 과학 전체의 대상이 [이미] 생성된(devenu) 하나의 대상, 즉 하나의 결과라는 점 뿐만 아니라 이 대상에 적용되는 인식 활동 또한 이 소여의 현재에 의해, 이 소여의 현행적 계기에 의해 정의된다는 점 또한 지시한다. 이는 크로체의 표현을 다시 취해 몇몇 이탈리아 마르크스주의 해석가들이 ‘역사적 현재’의 ‘동시대성’의 범주, 하나의 역사적 대상을 취급하는 인식 전체의 조건을 역사적으로, 그러니까 역사적인 조건으로 정의하는 그러한 범주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이미 알다시피 이 동시대성이라는 용어는 하나의 모호함을 내포하고 있다.
마르크스 자신 또한 ‘1857년 서문’으로부터 위에서 인용했던 텍스트보다 몇 줄 전에 이 절대적 조건을 인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결국 우리가 역사적 발전/전개라고 부르는 바는 [이 역사적 발전/전개에서의] 최종적 형태가 과거의 형태들을 자기 고유의 발전/전개 단계로 이끌어주는 단계들로 간주한다는 사실에 기초해 있다. 그러나 이 최종적 형태는 제대로 규정된(déterminées) 조건 내에서가 아니라면 자기 자신에 대해 스스로가 행하는 비판을 거의 대부분의 경우 행하지 못하기에 (…) 이 최종적 형태는 과거의 형태들을 항상 하나의 일면적 양상 하에서만 개념화한다.[각주:13] 기독교는 어느 특정 정도에 이르기까지, 말하자면 dynamei를, 자기 자신에 대해 스스로가 행하는 비판을 완수한 뒤에야만 이전의 신화들을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작업을 도울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부르주아 정치경제학은 부르주아 사회가 스스로 행하는 자기비판이 시작되는 그날이 되어서야 봉건사회, 고대사회, 동양사회를 이해하는 데에 이르게 되었다(…)(‘1857년 서문’, 170).[각주:14]
나는 이 텍스트를 다음과 같이 요약하도록 하겠다. 하나의 역사적 대상을 취하는 과학 전체(그리고 특히 정치경제학이라는 과학)는 주어진 그리고 현재의 역사적 대상, 과거 역사의 결과(résultat)로 생성된(devenu) 대상을 취급한다고 말이다. 따라서 현재로부터 출발하는 그리고 하나의 생성된-대상(objet-devenu)을 취급하는 인식의 실행(opération) 전체는 이 대상의 현재를 이 대상의 과거에 투사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반영하는/성찰하는’(réfléchissante) 역사와 관련해 헤겔이 “역사철학 입문”(Introduction à la philosophie de l’Histoire)에서 비판했던 바인 회고(rétrospection)를 바로 이 지점에서 기술하는 것이다. 이러한 불가피한 회고는, 만일 현재가 자기 자신에 대한 과학에, 자기 자신에 대한 비판에, 이 과학에 대한 자기비판에 도달하는 데에 성공한다면, 다시 말해 만일 현재가 본질을 가시적인 것으로 만드는 하나의 ‘본질적 절단면’이라면, 바로 그러할 때에만 과학적인 것이 된다.[각주:15]
하지만 바로 이 지점에 두 번째 집합의 텍스트들이 개입해 들어온다. 즉, 이 지점은 우리가 마르크스 자신의 역사주의에 관해 말할 수 있는 결정적 지점이다. 이 결정적 지점은 위에서 언급했던 텍스트에서 마르크스가 어떠한 하나의 현재에 대한 “자기비판의 잘 규정된(déterminées) 조건”이라 부르는 바와 정확히 관련된다.[각주:16] 이를 다음과 같이 이해하도록 하자. 어떠한 한 현재의 자기의식[자기에 대한 의식](conscience de soi)의 회고가 주관적이기를 멈추려면, 이 현재가 스스로 자기비판할 수 있어야 하며 결국 이를 통해 자기에 대한 과학(science de soi)에까지 도달해야 한다고 말이다.[각주:17] 그런데 만일 우리가 정치경제학의 역사로 고개를 돌린다면 우리는 무엇을 보게 되는가? 우리는 자신들의 현재가 만든 한계 내에 갇혀서 사고하는 것 이외에는, 그러니까 자신들의 시간을 넘어서 튀어오를 수 없어서 이렇게 사고하는 것 이외에는 그 무엇도 하지 않은 그러한 사상가들을 보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 그의 모든 천재성은 그로 하여금 수량이 x인 대상 A = 수량이 y 인 대상 B 라는 동등성(égalité)을 등식(égalité)으로 써내려가도록, 그리고 이 등식의 공통적 실체가[즉 실제 내용이] 부조리하기에 사고 불가능한 것이라는 점을 선언하는 것만을 허락했을 뿐이다. 이러한 도중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시대의 한계를 건드렸다. 그런데 도대체 누가 아리스토텔레스로 하여금 자신의 시대의 한계를 넘어 나아가도록 하는 것을 가로막았는가?
모든 노동이 상품의 가치형태 내에서 무차별적[구별되지 않는](indistinct) 인간 노동으로 표현된다는, 따라서 결국 [모두] 동등한(égaux) 것으로 표현된다는 점을 아리스토텔레스로 하여금 이 상품의 가치형태 내에서 읽어내지(herauslesen) 못하도록 가로막았던 것은 그리스 사회가 노예 노동에 기초해 있었으며 그 자연적 토대로서 인간들의 불평등(inégalité)과 이 인간들의 노동력의 불평등을 취하고 있었다는 점이다(“자본”, I, 73).
아리스토텔레스로 하여금 이러한 천재적 직관의 독해를 행할 수 있게 허락했던 이 현재는, 이와 동시에, 바로 이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신이 제기했던 질문을 해결하는 것을 금지했다.[각주:18] 고전파 정치경제학의 모든 위대한 발명가들에게도 사태는 동일하다. 중상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시대의 화폐정책을 가지고서 화폐이론을 만듦으로써, 자기 자신들의 고유한 현재를 반영/성찰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중농주의자들은, 잉여가치에 대한 천재적인 이론을, 하지만 자연적 잉여가치에 대한, 그러니까 밀이 자라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그리고 이 밀을 생산하는 농업 노동자가 소비하지 않은 잉여(surplus)가 농장주의 곳간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그러한 농업 노동의 잉여가치에 대한 천재적인 이론을 소묘함으로써 자기 자신들의 고유한 현재를 반영/성찰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이러한 도중에, 중농주의자들은 자기 자신들의 현재의 본질을, 즉 마르크스가 열거하는 노르망디, 피카르디, 일-드-프랑스의 뒤를 잇는(“반뒤링”, E. S., chapitre X, p. 283) 파리 분지의 비옥한 평원에서의 농업자본주의의 발전을 언표하고 있었을 뿐이다.[각주:19] 이 중농주의자들 또한 자기 자신들의 시간을 넘어서 튀어오를 수는 없었다. 이들은 자기 자신들의 시간[즉 현재]이 자기 자신들에게 하나의 가시적 형태로 인식을 제공했던, 그리고 이들의 의식을 위해 이 인식을 생산했던 그러한 한계 그 자체 내에서만 이 인식에 도달하는 데에 성공할 수 있었다. 결국 이 중농주의자들은 그들이 보았던 것을 기술했던 것이다. 스미스와 리카르도는 이보다 더 멀리 나아가 그들이 보지 못했던 것조차도 기술했는가? 스마스와 리카르도는 자기 자신들의 시대를 넘어서 튀어올랐는가? 아니다. 만일 스미스와 리카르도가 자기 자신들의 현재에 대한 단순한 의식과는 다른 것으로서 하나의 과학에 도달하는 데에 성공했다면, 이는 이들의 의식이 이 현재에 대한 진정한 자기비판을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자기비판은 도대체 어떻게 가능했는가? 그 원리에서 헤겔적인 이러한 해석의 논리 내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자 하는 유혹을 받게 된다. 스미스와 리카르도는 자기 자신들의 현재의 의식 내에서, 이 의식이 의식으로서[의식 그 자체로서] 자기 자신에 대한 자기비판, 그러니까 자기에 대한 과학이었기 때문에, 과학 그 자체에 도달했다고 말이다.[각주:20]
달리 말해, 스미스와 리카르도가 살아가고 있으며 살아내었던 현재의 특징, 즉 이 현재를 다른 모든 (과거의) 현재들로부터 구별해주는 그러한 특징은, 최초로 이 현재가 자기 자신 내에서[즉자적으로](en soi) 자기 자신에 대한 자기 스스로의 비판(sa propre critique de soi)을 생산했다는, 따라서 이 현재가 자기의식[자기에 대한 의식]이라는 형태 그 자체 내에서 자기에 대한 과학[자기과학]을 생산하는 그러한 역사적 특권을 가졌다는 점이다.[각주:21] 하지만 이 현재는 하나의 이름을 지니게 된다. 이는 절대지[절대적 지식]의 현재라는 이름이며, 이 현재에서 의식과 과학은 일체를 이루고, 이 현재에서 과학은 의식의 무매개적 형태 내에서 존재하며, 이 현재에서 진리는 직접적으로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약간의 노력만 기울이면 현상들 내에서 펼쳐진 책을 읽는 것과 같이 손쉽게 읽어낼 수 있다(왜냐하면 현상들 내에서, 현실적인 경험적 존재 내에서, 추상들--간주된considérée 사회-역사적 과학 전체가 그 위에 기초해 있는--이 실제적으로 현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해 언급한 뒤 곧바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든 노동이 인간 노동이기 때문에, 그리고 모든 노동이 인간 노동이라는 점에서, 이 모든 노동의 동등성(égalité)과 등가성(équivalence)으로 가치가 표현되는 것의 비밀은 인간의 동등성[평등]이라는 관념이 일반적으로 통용되는(populaire) 선입견의 뿌리깊은 성격[즉 사회 전체로의 일반화]을 이미 획득했을 때에만 풀릴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상품형태가 노동생산물이라는 일반형태가 되는 어느 한 사회 내에서만, 결과적으로 인간들이 자신들 사이에서 상품의 생산자와 교환자로서 맺는 관계가 지배적인 사회적 관계인 그러한 어느 한 사회 내에서만 가능하다(…)(“자본”, I, 75).
혹은 다르게 말하여,
(…) 상품생산은 다음과 같은 과학적 진리가, 즉 서로가 서로에 대해 독립적인 방식으로 실행되는 사적 노동들이, 비록 이 사적 노동들이 노동분할의 자율적(spontané) 사회체계의 가지들(ramifications)로서 서로 얽히고설키게 된다고는 해도, 이 사적 노동들에 대한 비례적인 사회적 척도로 지속적으로 포섭된다(ramenés)는 과학적 진리가 경험 그 자체로부터 드러나기 이전에 완전히 발전되어야만 한다(…)(“자본”, I, 87).
가치로서의 노동생산물이 이 노동생산물의 생산 내에서 지출된 인간 노동의 순수하고 단순한 표현이라는 (…) 과학적 발견은 인류의 발전에서 하나의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표시한다(“자본”, I, 86).
여기에서 [대문자] 정치경제학이라는 과학을 정초하는 이러한 역사적 시대(époque)는 경험(Erfahrung) 그 자체와의, 다시 말해 현상 내에서의 본질에 대한 가시적(à ciel ouvert) 독해와의, 혹은 우리가 다음과 같은 표현을 더 선호한다면, 현재의 단면(tranche) 내 본질적 절단면으로의 독해와의 온전한 관계맺음인 것처럼, 상품생산의 일반화 그러니까 상품이라는 범주의 일반화가 절대적 가능조건으로서와 동시에 이러한 경험으로부터의 직접적 독해로부터 얻어진 무매개적 소여로서도 나타나는 장소로서의 인간 역사의 특수한(particulière) 한 시대의 본질과의 온전한 관계맺음인 것처럼 보인다. 사실, ‘1857년 서문’에서뿐만 아니라 “자본”에서도, 노동 일반 즉 추상적 노동이라는 이러한 현실은 자본주의적 생산에 의한 하나의 현상적 현실로 생산된다고 말해진다. 어떤 의미에서 역사는 이미 이러한 지점에 도달하여, 과학적 추상들이 경험적 현실들의 상태로 존재하는 장소로서의, 과학과 과학적 개념들이 백일하에 드러난(à ciel ouvert) 진리들로서 경험의 가시적 형태 내에서 존재하는 장소로서의 이러한 예외적인 특수한 현재를 이미 생산했을 것이다.
‘1857년 서문’에서는 이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 노동 일반이라는 이러한 추상은 [복수의] 노동들이 형성하는 하나의 구체적 총체성에 대한 사고(geistige) 내에서의 결과일 뿐인 것이 아니다. 이러저러한 규정된(déterminé) 노동들에서의 무차별성(indifférence)은 하나의 사회형태, 즉 그 안에서 규정된(déterminés) 개인들이 하나의 노동에서 다른 하나의 노동으로 손쉽게 이동하는, 그리고 그 안에서 노동의 독립적인(précis) 한 종류가 이 개인들에게는 우연적인 것일 뿐인, 그러니까 무차별적인(indifférent) 것일 뿐인 그러한 하나의 사회형태에 조응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노동은 범주 내에서뿐만 아니라 현실 그 자체 내에서(in der Wirklichkeit)도 부 일반을 창조하는 수단이 되었으며, 결정요소로서의 이 노동은, 어떠한 개별 양상 하에서의 개인이든간에 이 개인들과 동일한 것에 불과할 뿐임을 멈추게 되었다. 이러한 사물/사태의 상태는 부르주아 사회들 중 가장 근대적인 존재형태인 미국에서 그 가장 높은 발전 정도에 도달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만 ‘노동’, ‘노동 일반’, 노동 ‘그 자체’(sans phrase)라는 범주의 추상은, 근대경제의 출발점으로서, 실천적 진리가 된다(wird praktisch wahr). 이로 인해, 근대경제가 제일 앞 줄에 위치시키는, 그리고 모든 사회형태에 유효(valable)하며 매우 의고적인 하나의 관계를 표현하는 그러한 가장 단순한 추상은 가장 근대적인 사회의 범주로서만 실천적 진리(praktisch wahr)로서의 이 추상적 형태 하에서 나타나게 된다(‘1857년 서문’, 168-169, 강조는 알튀세르).
만일 자본주의적 생산의 현재가 그 가시적 현실(Wirklichkeit, Erscheinung, Erfahrung) 내에서, 그 자기의식 내에서 과학적 진리 그 자체를 생산해냈다면, 그래서 만일 이 현재의 자기의식이, 이 현재 고유의 현상이 현행적으로(en acte) 이 현재 고유의 자기비판이라면, 우리는 과거에 대한 현재의 회고(rétrospection du présent sur le passé)가 더 이상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참된 인식이라는 점을 완벽히 이해하게 되며, 또한 우리는 현재의 과거에 대한 정당한 인식론적 우위를 포착하게 된다.
부르주아 [시민]사회는 존재할 수 있는 것들 중 가장 발전된, 가장 변화된(variée) 역사적 생산조직이다. 이러한 사실로부터, 이러한 사회의 관계들을 표현하는, 그리고 이 사회의 구조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범주들은, 이와 동시에, 그 잔해들(débris)과 요소들을 남겨두고 사라져버린 사회형태들 전체--이 잔해들과 요소들로부터 이 사회가 구축되었으며, 이 잔해들과 요소들 중 부분적으로는 아직 지양되지 않은 몇몇 흔적들이 이 사회 내에서 지속적으로 잔존하게 되며, 이 잔해들과 요소들 중 몇몇 단순한 기호들(signes)은 스스로 발전함으로써 자신들의 의미(signification) 전체를 가지게 된다--의 생산관계들과 생산구조를 해명할 수 있게 해준다. 결국 인간의 해부학은 원숭이의 해부학의 열쇠인 것이다. 열등한 동물 종의 경우에서, 우리는 우등한 형태가 그 자체로 이미 인식되었을 때에만 우등한 형태를 예고하는 기호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부르주아 경제는 우리에게 고대 경제 등의 [이해를 위한] 열쇠를 제공하는 것이다(‘1857년 서문’, p. 169).
경제적 역사[경제사] 전체(혹은 다른 종류의 역사들)를 (예를 들어 상품 내에 무매개적으로 현존하는 가치와 같은) 하나의 단순하고 원시적(primitive)이며 기원적인(originaire) 형태의 헤겔적 의미에서의 발전/전개로 개념화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자본”을 가치 범주 혹은 더 나아가 노동 범주와 같은 하나의 기원적 범주로부터 출발해 모든 경제적 범주들을 논리-역사적으로 연역하는 작업으로 독해하기 위해서는, 절대지의 논리 내에서 한 걸음 더 넘어서는 것, 의식과 동일한(identique) 하나의 과학[의식으로서의 과학]의 현재 내에서 정점에 도달하여 완성되는 역사의 발전/전개를 사고하는 것, 그리고 정초된[정당한](fondée) 회고 내에서 이 결과를 반영/성찰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런데 이러한 조건 하에서, “자본”의 설명/서술(exposition) 방법은 개념의 사변적 발생과 혼동된다. 심지어, 개념에 대한 이러한 사변적 발생은 현실구체 그 자체의 발생과, 다시 말해 경험적 역사의 과정과 동일한 것이 되고 만다. 이럴 경우 [“자본”과 마주해] 우리는 하나의 헤겔적 본질의 저작 앞에 놓여 있게 될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출발점이라는 질문이, 모든 것이 이 출발점 즉 “자본” 1권 1편 1장에 대한 오해에 기반한(malentendue) [잘못된] 독해 내에서 작용/작동(se jouer)할 수 있기에, 하나의 비판적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또한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글에서 이전 설명들을 통해 이미 내가 보여주었듯, 모든 비판적 독해가 이러한 오해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자본” 1권 1편 1장의 개념들의 지위와 분석양식의 지위를 명확히 해명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주의의 형태는, 이 역사주의의 형태가 절대-지의 부정에서 그 정점에 도달하고 이 절대-지의 부정 안에서 말소되는 한에서, 하나의 한계-형태로 간주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이 역사주의의 형태를, 이 역사주의의 형태가 우리를 다른 역사주의의 형태들에 대한 이해(intelligence)를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이 다른 역사주의의 형태들--비록 종종 더욱 ‘근본적/급진적’이기도 하지만 덜 확정적péremptoires이고 종종 덜 가시적인--의 공통된 모체로 간주할 수 있다.
이에 대한 증거로서 나는, 종종은 의식적으로 종종은 무의식적으로 몇몇 마르크스주의 해석가들, 프랑스의 해석가들과 마찬가지로 특히 이탈리아의 해석가들의 저작/작업을 물들이고 있는 역사주의의 동시대 형태들을 제시하고 싶다. 바로 이탈리아 마르크스주의 전통 내에서 ‘절대적 역사주의’로서의 마르크스주의 해석이 가장 선명한 특징과 가장 엄밀한 형태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약간의 지면을 할애해 내가 이 점에 대해 강조하는 것을 허락해주길 바란다.
이러한 전통은 라브리올라와 크로체로부터 이 전통의 상당 부분을 상속받은 그람시에게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람시에 대해 다루어야만 한다. 하지만 나는, 놀라울 정도로 미묘(nuancée)하며 섬세한(subtile) 그람시의 천재적 저작/작업을 필연적으로 도식적일 수밖에 없는 나의 언급들을 통해 왜곡(défigurer)하지는 않을까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그람시적인 변증법적 유물론 해석을 대상으로 해서만 내가 정식화하고자 하는 나의 이론적 유보를 나도 모르게 독자들로 하여금 역사유물론이라는 영역 내에서의 그람시의 비옥한 발견들로까지 확장하도록 잘못 이끌지는 않을까에 대해서도 걱정하기에, 나는 매우 깊은 거리낌[주저함]을 느끼면서 이렇게 그람시를 다루고자 한다. 따라서 나는 독자들이 그람시의 변증법적 유물론 해석과 역사유물론 해석 사이에 존재하는 구별을 잘 유념하기를 바란다. 이러한 구별이 없다면, 나의 이러한 비판적 성찰 시도는 그 한계를 넘어가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 나는 다음과 같은 기초적인 대비행위[신중함](précaution)를 수행하도록 하겠다. 나는 어떠한 경우에서도, 그리고 그 어떠한 구실(prétexte)이나 그람시의 그 어떠한 텍스트(texte)를 가지고서도, 그람시를 그 자신이 했던 말들 그 자체를 가지고서 무매개적으로 이해하기를 거부할 것이다.[각주:22] 나는 그람시의 이 말들을, 이 말들이 그람시의 가장 심원한 철학적 문제설정에 진정으로 속하는 그러한 ‘유기적’ 개념들을 통해 승인된 기능을 수행할 때에만--그러니까 이 말들이 하나의 논쟁적 역할이든 혹은 하나의 ‘실천적’ 지시의 기능(기존의 하나의 문제 혹은 하나의 대상에 대한 지시이든 하나의 문제를 제대로 제기하고 해결하기 위해 취해야 할 방향direction에 대한 지시이든)이든 이를 떠맡게 된 언어의 역할만을 수행할 때가 아니라--취하도록 하겠다. 예를 들어, 크로체에 대한 그람시의 유명한 주석과 같이(Il Materialismo Storico e la Filosofia di B. Croce, Einaudi, p. 159) 논쟁적인 하나의 텍스트에 대한 처음으로 행한[즉 피상적인] 독해를 통해 그람시를 ‘절대적’인 ‘인간주의자’이자 ‘역사주의자’로 선언하는 것은 그람시의 의도를 부당하게 비난하는 일 그 자체일 것이다.
헤겔주의는 우리의 저자[즉 크로체]가 철학을 하는(philosopher) 이유들 중 (상대적으로) 가장 중요한 이유임에 틀림없다. 특히 그리고 또한, 왜냐하면 헤겔주의는 그 어떠한 의심의 여지도 없이 하나의 탁월한 중요성을 가지고 있었던, 그리고 철학적 탐구의 세계-역사적인 하나의 계기를 표상하는, 관념론과 유물론의 전통적 개념화들을 하나의 새로운 종합을 통해 지양하고자 시도했기 때문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크로체의) “에세이”(Essai)에서 프락시스의 철학의 ‘내재성’(immanence)이라는 용어가 은유적 의미에서 활용될 때, 우리가 그 무엇도 말하지 않게 되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사실, 내재성이라는 용어는 ‘범신론주의자들’이 부여하는 의미가 아닌, 그리고 전통적인 형이상학적 의미를 전혀 지니고 있지 않은, 하지만 새로운 것이며 [그 의미가] 확정되어야만 하는, 그러한 하나의 특별한(particulière) 의미를 획득했다. 매우 광범위하게 통용되는 역사유물론이라는 표현 내에서 우리는, 우리가 유물론이라는 형이상학적 기원의 첫 번째 단어가 아니라 역사라는 두 번째 단어를 강조해야 한다는 점을 망각했다.[각주:23] 프락시스의 철학은 절대적 ‘역사주의’, 사유에 대한 절대적 세속화(mondanisation)와 ‘세속성’(terrestrité), 역사에 대한 절대적 인간주의이다. 바로 이러한 방향으로 우리는 세계(monde)에 대한 새로운 개념화의 광맥을 파고 들어가야만 한다.[각주:24]
그람시의 이러한 ‘절대적인’ ‘인간주의적’이고 ‘역사주의적’인 주장들(affirmations)이 무엇보다도 우선 비판적이고 논쟁적인 의미를 지닌다는 점은 너무나 명확하다. 이 주장들은 다른 무엇보다도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기능을 수행한다. 1) 마르크스주의 철학에 대한 모든 형이상학적 해석을 거부하기, 2) 이전의 형이상학들과의 모든 연관을 단절시키기 위해, 마르크스주의적 개념화가 확립되어야만 하는 장소와 이 장소의 방향설정(direction)을 ‘실천적’ 개념들로서[각주:25] 지시하기. 여기에서 이 장소란 마르크스가 이미 고전 철학들의 초월성 즉 저편(jenseits)을 ‘diesseits’(우리의 이편)의 자격으로 대립시켰던 ‘내재성’ 즉 ‘이편’의 장소이다.[각주:26] 이러한 구별은 ‘포이어바흐에 관한 열 한가지 테제들’ 중 두 번째 테제로 그 용어 그대로 등장한다.[각주:27] 그러나 이미 우리는, 그람시에 의해 단 하나의 유일하고 동일한 기능을 지닌 하나의 쌍으로 묶여진 이 두 개념들(인간주의와 역사주의)의 ‘실천적-지시적’ 본성으로부터, 최초의 결론을, 분명 그 자체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이론적으로 중요한 그러한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게 된다. 만일 이 개념들이 지시적-논쟁적인 것이라면, 이 개념들은 하나의 탐구가 진입해야만 하는 방향을,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해석의 문제가 제기되어야 하는 공간으로서의 영역 유형을, 하지만 이러한 해석의 실정적 개념을 제시하지는 않으면서, 분명히 지시하는 것이다. 그람시의 해석을 판단할 수 있기 위해, 우선 우리는 이 해석을 표현하는 실정적 개념들을 해명해야만 한다. 결국 그람시가 ‘절대적 역사주의’라는 용어를 통해 의미하는 바는 도대체 무엇인가?
만일 우리가 그람시의 정식화들이 지니는 비판적 의도를 지양한다면[논외로 한다면], 무엇보다도 우선 우리는 첫 번째 실정적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마르크스주의를 하나의 역사주의로 제시함으로써, 그람시는 마르크스주의 이론에 본질적인 하나의 결정작용을, 즉 현실역사 내에서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실천적 역할을 강조한다. 그람시의 지속적인 관심사 중 하나는 그람시가 종교에 대한 크로체적 개념화를 자신의 것으로 다시 취하면서 거대한 ‘세계관들’ 혹은 ‘이데올로기들’이라고 부르는 바의 역사적-실천적 역할과 관계된다. 이 ‘세계관들’ 혹은 ‘이데올로기들’은, 인간들에게 그러니까 ‘지식인들’ 뿐만 아니라 또한 그리고 특히 ‘범박한 이들’(simples)에게도 세계의 흐름에 대한 일반적 관점과 동시에 실천적 품행의 규칙(règle de conduite) 또한 제공함으로써, 인간들의 실천적 삶 내에 침투할 수 있는, 그러니까 하나의 역사적 시대(époque) 전체에 영감과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그러한 이론적 형성물들이다.[각주:28] 이러한 관계[의미] 하에서, 마르크스주의의 역사주의란 이러한 과업과 이러한 필연성에 대한 의식일 뿐이다. 마르크스주의는, 만일 이 마르크스주의가 자신의 이론 그 자체 내에서 역사 내로의, 사회의 모든 층위들 내로의, 그리고 심지어는 인간들의 일상적 품행 내로까지의 이러한 침투의 조건을 사고하는 한에서만, 스스로가 역사에 대한 이론이라고 주장(prétendre)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관점 내에서 우리는, 예를 들어 철학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이어야 하며 역사가 되어야 한다고, 현실 철학자는 정치가와 다를 바 없다고, 철학, 정치학, 역사학은 결국 단 하나의 유일하고 동일한 것이라고 말하는 그람시의 몇몇 정식화들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각주:29] 바로 이러한 관점을 통해서 우리는 그람시의 지식인과 이데올로기에 대한 이론을, 다소간 주관적이며 자의적인 이데올로기들을 생산할 수 있는 개인적 지식인들과 ‘유기적’ 지식인들 혹은 ‘집합적 지식인’(즉 당)--자신의 ‘세계관’(혹은 유기적 이데올로기)을 모든 인간들의 일상적 삶으로 집어넣음으로써 하나의 지배적 계급이 자신의 ‘헤게모니’를 확립하게 해주는[각주:30]--사이의 구분을 이해하고 그람시의 마키아벨리적 [대문자] ‘군주’에 대한 해석--그람시에게서는 현대의 공산당이 새로운 조건 등등 속에서 그 유산을 자신의 것으로 다시 취한다--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경우에서, 단지 그람시는 실천적으로뿐만 아니라 의식적으로, 그리고 이론적으로, 마르크스주의에 내재적인(inhérente) 이러한 필연성을 표현하도록 만들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마르크스주의의 역사주의는 잘 개념화된 자기 자신의 이론의 양상들과 효과들 중 하나에 불과하며, 마르크스주의의 역사주의는 자기 자신에 대해 일관적인(conséquente) 마르크스주의 자신의 이론에 불과한 것이다. 즉, [그람시에 따르면] 현실 역사에 대한 하나의 이론은, 그 또한 다른 ‘세계관들’이 아주 오래전에 행했던 바처럼, 현실 역사를 통과(passer)해야만 한다. 거대 종교들에서 참인 바는 마르크스주의 그 자체에 대해서도, 심지어는 더욱 강한 이유로, 참이어야만 한다. 마르크스주의와 이 이데올로기들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또한 심지어는 마르크스주의의 철학적 새로움으로 인해(왜냐하면 마르크스주의의 새로움은 자신의 이론 그 자체 내에 실천적 의미를 포함시키는 것에 놓여 있기 때문에) 바로 이 차이 그 자체 때문에 말이다.[각주:31]
하지만 우리를 마르크스주의 이론 내부의 주제로 준거케 하는 이 ‘역사주의’의 마지막 의미가 여전히, 매우 거대한 부분에서, 모든 ‘책상머리’(livresques) 마르크스주의자들로, 마르크스주의를 현실에 대한 영향력(prise) 없이 ‘개인적 철학들’(philosophies individuelles)의 운명 속으로 강림하도록 만든다고 주장하는(prétendent) 이들로 규탄하는 것을, 혹은 심지어는 정치적 행위와 현실역사로는 진입하지 않으면서 (크로체와 같이) ‘위로부터’(par le haut) 인간종을 교육시키기를(faire l’éducation) 원하는 르네상스 지식인들의 불행한 전통을 다시 취하는 모든 이데올로그들로 규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하나의 비판적 지표(indication critique)라는 점을 우리는 인지했을 것이다.[각주:32] 그람시가 주장했던 역사주의는 이러한 이론과 이러한 이론의 ‘사상가들’의 귀족주의에 대항하는 강력한 저항(protestation)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각주:33] 제2인터내셔널의 책상머리 위선(pharisaïsme)에 대항하는 이전의 저항(즉 ‘“자본”에 반하는 혁명’)의 소리가 바로 이 그람시의 저항에서 여전히 반향하고 있다. 이는 ‘실천’, 정치적 행위, ‘세계의 변형’--이것들이 없다면 마르크스주의는 도서관의 쥐들의 먹잇감이 혹은 수동적인 정치 공무원들의 먹잇감이 되고 말 것이다--에 대한 직접적인 하나의 호소인 것이다.[각주:34]
이러한 저항(protestation)은 자기 자신 내에[즉자적으로](en soi) 마르크스주의 이론에 대한 하나의 새로운 이론적 해석을 필연적으로 지니고 있는가? 필연적으로는 아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저항은, 하나의 절대적 호소라는 실천적 형태 하에서, 마르크스의 이론이 취하는 하나의 본질적 주제[테마]를, 즉 마르크스의 이론 그 자체 내에서, 마르크스에 의해 정립된 ‘이론’과 ‘실천’ 사이의 새로운 관계라는 주제를 [이 주제에 대한 새로운 이론적 해석을 제시함 없이] 단순하게 발전시키기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주제를 우리는 마르크스 자신에 의해 다음의 두 장소에서 사고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데, 한편으로는 역사유물론(이데올로기들의 역할에 대한 이론, 그리고 기존 이데올로기들의 변형에서 과학적 이론의 역할에 대한 이론)이라는 장소, 다른 한편으로는 변증법적 유물론(우리가 ‘인식에 대한 유물론적 이론’이라고 일반적으로 부르는 바 내에서의 이론과 실천, 그리고 이 이론과 실천 사이의 관계에 대한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대상으로 하는)이라는 장소이다. 역사유물론과 변증법적 유물론이라는 이 두 경우 모두에서, 마르크스에 의해 생생하게 주장되는 바, 그리고 우리의 문제에서 쟁점이 되는 바, 그것은 바로 마르크스주의적 유물론이다. 따라서 마르크스주의의 ‘역사주의’(우리가 방금 정의했던 매우 정확한 의미에서)에 대해 그람시가 행했던 강조는 실제로는(en réalité) (역사유물론과 변증법적 유물론 모두에서의) 마르크스의 개념화가 지니는 단호하게 유물론적인 특징을 암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현실은 우리를 당황스러운 하나의 언급의 길 위에 서게 만들며, 이러한 당황스러운 하나의 언급은 모두가 동일한 정도로 우리에게 곤란을 초래하는 다음의 세 가지 측면을 포함한다. 1) 직접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이 유물론인 반면, 그람시는, “역사유물론”이라는 표현 내에서, 그에 따르면 “유물론이라는 ‘형이상학적 기원의’ 첫 번째 단어가 아니라 ‘역사’라는 두 번째 단어를 강조해야 한다”는 점을 선언한다. 2) 유물론에 대한 강조가 역사유물론뿐만 아니라 또한 변증법적 유물론과도 관계되어 있는 반면, 그람시는 역사유물론 이외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더욱이, 그람시는 ‘유물론’이라는 표현이 ‘형이상학적’ 반향들을 필연적으로 초래하거나, 혹은 아마도 이러한 반향들 이상의 것을 초래한다고 주장한다. 3) 따라서 그람시가 [사실은] 역사에 대한 과학적 이론만을 유일하게 지시하는 것인 ‘역사유물론’이라는 표현에 두 가지 의미를 담지케 한다는 점은 명확하다. 그람시에게서 ‘역사유물론’이라는 표현은 역사유물론과 마르크스주의 철학을 동시에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람시는 역사유물론이라는 단수의 것 내에서 역사이론과 변증법적 유물론이라는 사실은 구별되는 두 가지 영역[분과](disciplines)을 혼동하고 있는 것이다. 위에서 제시된 언급들과 [특히] 이 마지막 결론을 언표하기 위해, 나는 내가 [자의적으로] 분석하는 단 하나의 구절도 분명 나 스스로에게 허락치 않으며, 대신 그람시 자신의 매우 많은 수의 이론적 전개들(développements)--이 이론적 전개들은 이 마지막 결론을 그 어떠한 모호함 없이 확인시켜주고 있는데, 그래서 이 이론적 전개들은 이 마지막 결론에 하나의 개념적 의미를 제시해주고 있다--을 활용하도록 하겠다.[각주:35] 나는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가 그람시적 ‘역사주의’의 새로운 의미--이번에는 우리가 더 이상 지시적, 논쟁적 혹은 비판적인 하나의 개념에 대한 정당한 활용으로는 환원활 수 없는, 하지만 마르크스의 사고의 내용 그 자체를 대상으로 하는 하나의 이론적 해석으로 우리가 간주해야만 하는, 그래서 우리의 유보 혹은 비판 아래로 굴러 떨어질 수 있는--를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그람시에게서는, 이 개념에 대한 논쟁적이고 실천적인 의미를 넘어서, 마르크스에 대한 진정한[즉 이론적인] ‘역사주의적’ 개념화가 존재하는 것이다. 즉, 마르크스의 이론이 현실역사와 맺는 관계를 대상으로 하는 이론에 대한 ‘역사주의적’ 개념화 말이다. 만일 그람시가 종교에 대한 크로체적 이론에 지속적으로 사로잡혀 있다면 이는 전혀 우연이 아니다. 만일 그람시가 종교에 대한 크로체적 이론의 용어들을 수용한다면, 그리고 만일 그람시가 종교에 대한 크로체적 이론을 현실적(effectives) 종교들로부터 마르크스주의라는 새로운 ‘세계관’으로까지 확장한다면, 만일 그람시가 이러한 관계[맥락] 하에서 이 종교들과 마르크스주의 사이에 그 어떠한 차이점도 설정하지 않는다면, 만일 그람시가 이 종교들과 마르크스주의를 ‘세계관’ 혹은 ‘이데올로기’라는 동일한 개념 아래 위치시킨다면, 만일 그람시가 마르크스주의를 이데올로기적 ‘세계관들’로부터 구별해주는 바가 모든 천상의 ‘내세’(au-delà)를 종결짓는 (상당한[유의미한]) 형식적 차이라기보다는 절대적 내재성의 변별적(distinctive) 형태, 즉 과학성의 형태라는 점을 지적함 없이 종교, 이데올로기, 철학 그리고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그토록 손쉽게 동일시한다면, 이는 전혀 우연이 아니다. 심지어 ‘유기적’이기까지 한 이전의 종교들 혹은 이데올로기들과 마르크스주의--이 마르크스주의는 그람시에게는 하나의 과학이며[과학임과 동시에], 대중들 속에서 하나의 새로운 이데올로기 형태(이번에는 이전과는 달리 하나의 과학 위에 기초해 있는 그러한 이데올로기인데, 이는 인류가 전혀 경험해본 적 없는 것이다)를 생산해냄으로써 인류 역사의 ‘유기적인’ 이데올로기가 되어야만 한다--사이의 이러한 ‘절단’, 이 ‘절단’은 그람시에 의해 진정으로 성찰된 적이 없으며, 그는 현실역사 내에서 ‘프락시스의 철학’의 침투 요구와 그 실천적 조건에 너무나도 강하게 영향받아 이러한 절단과 이 절단의 이론적이고 실천적인 결론들[영향들](conséquences)의 역사적 의미를 무시해버리고 만다. 이로 인해 그람시는 동일한 하나의 용어 하에서 역사에 대한 과학적 이론(역사유물론)과 마르크스주의 철학(변증법적 유물론)을 서로 만나도록(réunir) 하는 경향을, 그리고 이러한 통일체를 하나의 ‘세계관’ 혹은 결국은 이전 종교들과 비교 가능한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사고하는 경향을 거의 대부분의 경우 취하게 된다. 게다가 그람시는 마르크스주의 과학과 현실역사 사이의 관계를 (역사적으로 지배적이며 활동적인agissante) 하나의 ‘유기적’ 이데올로기와 현실역사 사이의 관계의 모델 위에서 사고하는 동일한 경향을, 결국 마르크스주의적인 과학이론[과학적 마르크스주의 이론]과 현실역사 사이의 이러한 관계를 하나의 유기적 이데올로기와 이 이데올로기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 사이의 관계를 충분히 잘 설명해주는 직접적 표현관계라는 모델 위에서 사고하는 경향을 가지게 된다. 내가 볼 때는 바로 이 지점에 그람시의 역사주의가 취하는 반박의 여지가 있는(contestable) 원리가 놓여 있는 것 같다. 바로 이 지점에서 그람시는 모든 ‘역사주의’에 필요불가결한 언어와 이론적 문제설정을 자생적으로[스스로] 발견하게 된다.
이 전제들로부터 출발하여, 우리는 우리 논의의 시작에서 내가 인용했던 정식들에 이론적으로 역사주의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정식들은, 내가 방금 지시했던 맥락 전체에 의해 지지되고 있기에, 그람시에게서 이러한 이론적으로 역사주의적인 의미 또한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일 이제 내가 가능한 가장 엄밀한 방식으로, 가능한 가장 소박한 공간[지면] 안에서 이 정식들의 함의를 발전시키고자 시도한다면, 이는 그람시에게 불만을 제기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그람시는 그래야만 할 때에 이로부터 거리를 두지 않기에는 역사적이고 이론적인 감각sensibilité이 너무나 발달해 있기 때문에) 하나의 잠재적(latente) 논리--이 잠재적 논리에 대한 인식은 일정 수의 그 이론적 효과들을 인지 가능하게 만들어주는데, 그람시 자신에게서이든 그람시로부터 영감을 얻거나 그와 결합(rejoindre)할 수 있는 이들 중 몇몇에게서이든, 이 잠재적 논리와의 만남은 다른 한편으로는 수수께끼적인 것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를 가시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함이다. 따라서 이 지점에서 또 다시, 내가 “자본”의 몇몇 텍스트들에 대한 ‘역사주의적’ 독해에 관해 행했듯, 나는 하나의 한계-상황을 설명할 것이며, (그람시, 델라 볼페, 콜레티, 사르트르 등에 대한) 이러저러한 해석보다는 이들의 성찰에 출몰하는, 그리고 가끔은 이들의 개념들과 문제들과 해결책들 중 몇몇에서 돌발하는 이론적 문제설정의 장을 정의할 것이다.
이러한 목적에서, 그리고 형식적(style)인 것에 머무르는 것이 전혀 아닌 이러한 유보 하에서, 이제 나는 그람시로부터 다음과 같은 정식을 취하고자 한다. 마르크스주의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의 잠재적(latente) 문제설정 전체를 명증화할 수 있게 해주는 하나의 증상적 테제를 위해 ‘절대적 역사주의’로 개념화되어야만 한다. 우리가 현재 취하고 있는 관점에서 이러한 그람시의 주장(affirmation)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만일 마르크스주의가 하나의 절대적 역사주의라면, 이는 마르크스주의가 헤겔적 역사주의, 즉 그 종말/목적(fin)이 [대문자] 절대지의 지양 불가능한 현재인 그러한 헤겔적 역사주의 내에서 역사의 이론적이고 실천적인 고유한 부정인 바 그 자체를 역사화하기 때문이다. 절대적 역사주의 내에서, [대문자] 절대지는, 그러니까 역사의 종말/목적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총체성이 하나의 ‘본질적 절단면’ 내에서 가시적(visible)이고 독해 가능한(lisible) 것이 되는, 의식과 과학이 일치(coïncideraient)할, 그러한 특권화된 현재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대문자] 절대지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그런데 바로 이것이 절대적 역사주의를 가능케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대문자] 절대지가 그 자체로 역사화되었다는 점을 의미한다. 만일 더이상 특권화된 현재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모든 현재들이 동등한 자격을 가지고서 바로 이 특권화된 현재가 된다. 이에 따라, 역사적 시간은 이 각각의 현재들 내에서 각각의 현재에 동시대성의 ‘본질적 절단면’을 가능케 하는 그러한 하나의 구조를 소유하게 된다. 그렇지만, 마르크스주의적 총체성이 헤겔적 총체성과 동일한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기에, 특히 마르크스주의적 총체성이 서로가 서로에 대해 직접적으로 표현적이지는 않은 그러한 서로 다른 수준들 혹은 심급들을 포함하고 있기에, 이 마르크스주의적 총체성으로 하여금 ‘본질적 절단면’이[즉 ‘본질적 절단’이] 가능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각각의 현재가 다른 모든 현재들과 일치(coïncide)하는 그러한 방식으로, 그러니까 이 모든 현재들이 ‘동시대적’인 그러한 방식으로 이 구별되는 수준들을 그 수준들 사이에서 상호연결(relier)시켜야만 한다. 이 모든 현재들이 형성하는, 이러한 방식으로 수정된 관계는 본래적인 마르크스주의적 개념화 내에서는 동시대성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독해와 모순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