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의 말] 이 글은 2001년 개정 출간된 Lenin and Philosophy and Other Essays(벤 브루스터 역, 먼슬리 리뷰 출판사)에 덧붙여진 프레드릭 제임슨의 발문이다. 이 책은 1971년에 이미 같은 역자, 같은 출판사에 의해 영어권 독자들에게 소개된 바 있으나, 제임슨의 이 발문은 그간의 알튀세르에 대한 이해를 갱신하게 만든다. 이 책에 수록된 알튀세르의 글 중 「레닌과 철학」은 진태원의 번역으로 『레닌과 미래의 혁명』(그린비, 2008)에서,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들(연구를 위한 노트)」는 『아미앵에서의 주장』(김동수 역, 솔, 1991) 및 『재생산에 대하여』(김웅권 역, 동문선, 2007)에서, 「프로이트와 라캉」은 윤소영이 편역한 『알튀세르와 라캉』(공감, 1995)에서 소개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의 다른 글들은 그 중요성에 비해서 요원하기만 하다. 제임슨의 이 발문을 공유함으로써 다른 글들도 만나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길 바란다. 더불어 이 글은 현대정치철학연구회의 김정한 선생이 약 10여년 전에 번역한 것을 다시 싣는 것임을 밝힌다. Lenin and Philosophy and Other Essays의 목차는 아래와 같다.
"레닌과 철학" 입문(프레드릭 제임슨)
영역판 출간에 부쳐
혁명적 무기로서의 철학(1968년 2월)
레닌과 철학(1968년 2월)
레닌과 철학 추기
『자본론』 1권에 붙이는 서문
맑스주의 주요 문헌들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헤겔 이전의 레닌(1969년 4월)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들(연구를 위한 노트)(1969년 1월-4월)
부록
프로이트와 라캉(1964년 1월, 1969년 2월 수정)
예술에 관하여 : 앙드라 다스프레에게 보내는 답변(1966년 4월)
추상의 화가 크레모니니(1966년 8월)
“레닌과 철학” 입문
프레드릭 제임슨
옮긴이 김정한(현대정치철학연구회)
오늘날 우리가 다시 읽는 알튀세르는 더 이상 1960년대와 70년대 맑스주의들의 특징을 이룬 그런 뜨거운 논쟁들이나 이데올로기적 전투들의 중심이 아니다. 그는 이제 맑스주의의 고전이 된 것인가? 그것은 부분적으로 맑스주의가 새로운 세기에 어떻게 되느냐에, 그리고 부분적으로 맑스주의가 공격 대상이자 행위의 장으로서 대결하는 세계화와 보편적 상품화라는 새로운 탈냉전 상황에 달려 있을 것이다. 그의 작업은, 특히 주목할 만한 E. P. 톰슨의 “철학의 빈곤”처럼, 격렬한 이론적 대립을 자극해왔다. 그의 경력(저술 활동을 제외한)에 종지부를 찍은 그리고 그가 걸린 간헐적인 정신 질환의 결과인 것처럼 보이는 비극적 사건들의 결과로, 조잡한 인신공격들이 그의 작업을 훼손시키려 시도해왔다. 그동안, 그의 평생의 프랑스 공산당 당적은 그의 입장을 단순한 당 노선의 선전이나 더 나쁘게는 스탈린주의라고 허다하게 평가절하 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당 내부에서 스탈린주의적 교조들에 맞서 싸운 그의 절조 있는 투쟁들을 체계적으로 간과하는 관점이다. 종국에는, 그의 스타일의 엄격성이 수많은 독자들을 멀리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는 단지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그의 철학하는 양식에 내재하는 곤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가 새로운 방식으로 알튀세르의 작업(일련의 사후 출판물들 에 의해 확대된)으로 돌아가서, 그것을 새롭게 평가하는 일은 가능해보인다.
여기 이 선집은 알튀세르의 가장 자극적이고 도발적인 논문들을 일부 포함하고 있는데, 이는 그의 작업이 관계 맺는 주제들의 다양성을 살짝 드러낸다. 인식론, 맑스의 진전에 관한 유물론적 해석, 사회구성체와 국가, 이데올로기, 라캉의 정신분석학과 예술, 제각각 그가 구별해서 말한 것들. 이 다양한 ‘개입들’이 실은 어떤 종류의 철학적 체계를 이루고 있는 것일까? ‘레닌과 철학’이란 논문은 그것을 부인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맑스의 유명하지만 수수께끼 같은 “독일 이데올로기”에서의 언급--“도덕, 종교, 형이상학, 그밖의 모든 이데올로기 … 는 역사도 없고, 발전도 없다”--에 기초해서 알튀세르는 당시에 전개된 체계들의 자율적인 영역이라는 철학 개념에 반론을 펴고, 오히려 이론에의 개입이라는, 그리고 그 자신의 경우엔 계급투쟁과 당파성의 이론에의 개입이라는 철학 개념을 주장한다. 바로 이런 정식화야말로 알튀세르의 텍스트들이 항상 논쟁적이고 상황-특수적이라는 것을 시사한다. 그것들은 항상 그가 쟁점들을 명료화하려고, 그리고 어떤 주어진 개념적 논쟁이 온갖 종류의 관념론적 경향들과 맑스적 유물론간의 투쟁임을 드러내려고 시도하는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맥락을 향해 있다. 그의 글쓰기가 지닌 독특한 깐깐함과 심지어 이따금 호통치는 듯한 논조는 그런 편재하는 논쟁적 태도를 반영한다. 그는 모든 곳에 있는 우리의 막연한 편견들을 정정하고 준엄하게 상술하고 결정적인 어감들을 구별짓는다(종종 편재하는 이탤릭체의 단어, 높아진 의미심장한 어조를 통해). 이것은 그런 구절들에서 모든 관념이 오직 아무개의 관념으로서, 어떤 동일시할 수 있는 (정치적) 입장에서 그 관념을 이데올로기적으로 투사한 것으로서 나타남을 의미한다. 그래서 먼저 그 이데올로기적 경쟁자들을 의심하고 처음부터 그들이 이데올로기적임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알튀세르는 자신이 그런 관념의 정정 판본이라고 간주한 것을 결코 우리에게 제공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런 개입들의 복잡성과 논쟁적인 입장들은 맑스주의의 형태라고 단순히 확인해야 하는 것인가? 정신분석학에서의 라캉과 마찬가지로, 알튀세르는 자신의 작업이 보다 순수한 맑스주의의 정신, 그가 레닌주의와 결합시킨 정신으로의 복귀를 나타낸다고 생각했으며, 맑스주의가 처음엔 제2인터내셔널의 사회주의를 통해, 나중엔 스탈린주의를 통해, 또한 당시에 영향력을 지닌 다양한 본질주의적이고 인간주의적인 맑스주의들(사르트르, 콜라코프스키, 유고슬라비아 실천 학파)을 통해 왜곡되고 전위되어왔다고 생각했다. 어떤 경우엔 부지불식간에 그것들을 오염시킨 부르주아 철학의 관념론들보다 훨씬 더한 그런 ‘편향들’은, 모든 전선에서 맑스주의-레닌주의를 그 본래적인 계급에 기초한 적대적 입장으로 복권시키기 위한 그의 전쟁의 주요 표적이다. 특히, 그는 자유주의적(인간주의적) 방향에서가 아니라 진정 좌파적이고 혁명적인 정치를 위해 공산당(흐루시초프 시대)의 근본적 탈-스탈린화를 보장하기 위해 싸웠다. 유로코뮤니즘 이후, 그리고 무엇보다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 이후 공산당들의 전개는 그런 시도를 그 당시보다 훨씬 더 의미 있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알튀세르주의’는 ‘구조주의적 맑스주의’라고 불려오지 않았는가? 또한 알튀세르는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자크 라캉, 롤랑 바르트, 미셸 푸코, 자크 데리다(여기서 마지막 두 사람은 실제로 상당한 시기에 걸쳐 개인적으로 알튀세르와 교류했다)와 더불어, 구조주의의 위대한 혹은 창립한 인물들 축에 들지 않는가? 그리고 만일 그렇다면, 그 자신이 보다 진정하고 본래적인 품종이라고 표상했던 맑스주의의 본성이 함의하는 바는 무엇인가? 그 대답은 맑스주의의 본성 자체에 놓여 있으며, 나는 내가 알튀세르의 입장이라고 여기는 것을 약간 다른 언어(그가 의심할 바 없이 엄격하게 반론을 제기했을)로 바꿔 말할 자유를 누릴 것이다. (알튀세르에 동의하는 한에서) 나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곤 한다. 맑스주의는 철학이 아니다. 정신분석학과 마찬가지로, 하지만 다른 어떤 현대적 사유 양태와는 다르게, 나는 그것을 이론과 실천의 통일이라고 부를 것이다. 이것은 맑스주의가 개념들을 가진다는 것, 하지만 그 개념들은 또한 실천의 형태들이라는 것, 그리하여 누구든 실천적 입장과 헌신의 불편한 개입 없이 사심 없는 철학적인 방식으로 그것들과 단순하게 논쟁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것은 또한 현재의 다양한 철학적 흐름들이 항상 그 개념들을 포착할 수 있고 아주 많은 별개의 자율적인 듯 보이는 철학들로 변형시킬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는 실증주의적 맑스주의(엥겔스), 칸트적 맑스주의(제2인터내셔널), 헤겔적 맑스주의(루카치) 실용주의적 맑스주의(시드니 훅), 그리고 그밖의 다양한 현상학적, 실존주의적, 종교적, 아니 심지어 포스트구조주의 내지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전후 시기의 맑스주의들을 갖고 있다. 내 견해로는, 그 ‘철학들’은 각각 우리에게 뭔가를 가르쳐주고, 맑스주의 그 자체인 그 본래의 이론과 실천의 통일이 지닌 새로운 측면을 조명해준다. 그러나 맑스주의는 항상 그 모든 것과는 구별된다.
그리하여 정확히 구조주의적인 어떤 맑스주의(단지 ‘철학’ 자체라고만 여겨지는)의 출현에 특별히 놀랄만한 것은 없다. 알튀세르가 자신의 작업에 그런 특징을 부여하는 데 대항해서 끈기 있게 싸웠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무엇보다도, 그의 것은 언어에 기초한 철학이 아니다. 그것은 ‘구조’(그가 사용하길 꺼려하는 단어)를 일련의 이항 대립들이 아니라, 오히려 상이한 수준들로 이해하는데, 그 각각은 반(半)자율적이면서 자신만의 특정한 논리를 갖고 관계 맺는다. 실제로, 나는 내 스스로 기꺼이 알튀세르를 구조주의적 맑스주의자라고 부르곤 했지만, 핵심적인 한가지 조건에서였다. 즉 그에게 단 하나의 구조, 이른바 생산양식만이 존재한다는 것을 사전에 분명히 이해해야 한다. 이 선집에 있는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들’이란 논문은, 그런 관점이 그로 하여금 끊임없이 그가 효과성의 수준들이라고 부른 것을 구별하도록, 국가권력과 그것을 강화시키는 다양한 심급들(법, 가족, 교육 장치 등)을 구별하도록, 그리고 나중에, 인상적인 ‘예술에 대한 편지’에서는, 예술과 그 모든 것을 구별하도록 이끈 방식을 설명한다 —차이 속에서 그 모두를 통일시키는 생산양식이라는 ‘궁극적으로 결정하는 심급’을 강조하면서도, 다양한 수준들이 서로 완전히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것이 아니라 반(半)자율적이라고 파악하는 일이 중요하고 사실상 긴급하다고 하면서.
그러나 알튀세르의 철학은 단지 사회민주주의로 치명적으로 이끌리도록 예정된 그런 ‘인간주의적’ 맑스주의에 대항한, 또는 다양한 부르주아적 구조주의들 자체에 대항한 전쟁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또한, 그리고 특정하게, 맑스의 헤겔화 그리고 맑스의 변증법을 헤겔의 관념론적 변증법과 쉽게 동화할 수 있는 용어들로 묘사할 것을 강조하는 다양한 전통들에 대항한 투쟁이었다. 실제로 루카치와 “역사와 계급의식” 이후, 그리고 1930년대 프랑스에서 알렉산드르 코제브의 유명한 헤겔 강의 이후, 헤겔의 명성과 영향력은 확대되길 결코 멈추지 않았다. 심지어 서구의 맑스주의자들 사이에서도 그랬는데, 그들은 본래의 헤겔 변증법으로의 회귀를 스탈린주의적 동구의 정통 변증법적 유물론에 대항한 방어이자 정정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알튀세르는 헤게모니적 스탈린주의 철학이 아주 정확히 헤겔적이라고 생각했고(소비에트 연방에서 헤겔의 이름에 대한 금기가 무엇이든), 맑스 자신이 “자본” 1권 초판 서문에서 고백한 헤겔적 변증법과의 그런 ‘불장난’의 잔여물들을 지닌 맑스주의 전통을 정화하려고 했다. 이것은 초심자들이 “자본” 1권을 막 바로 2부부터 읽고, 그리하여 상품의 ‘신학적 복잡함’과 그 ‘물신성’에 대한 아마도 가장 유명한 장을 생략하면서 시작해야 한다는 알튀세르의 다소 놀라운 제안을 설명해준다. 그러나 이런 수술은 레닌 자신의 입장들, 알튀세르가 여기서 회복시키고 재발명하고자 하는 레닌의 가장 악명 높은 철학적이고 진정 조악한 유물론적 언급–“유물론과 경험비판론”–을 재검토할 것을 요구한다. 레닌 자신의 진전에서 유물론자들을 당혹시키는 것은 물론, 이 맑스주의-레닌주의의 창립자가 1차 대전의 처음 몇 년간 스위스 망명 동안에 착수했던, 강렬하고 열성적인 헤겔의 “논리학”에의 몰입이다. 헤겔에 대한 레닌의 광범위한 단평들은 실제로, 맑스 자신이 1권을 최종 구성하기 직전 시기에 “논리학” 연구에서 추출해낸 변증법적 원리들을 중심으로 “자본”의 미완성된 다섯 권에 관한 전체 계획이 편성되었다고 주장하도록 후대 주석가들에게 문을 열어주었다. 수많은 추문적인 진술들이 그 주제에 대한 레닌의 단평들, 무엇보다 특히 그의 ‘잠언’에서 발견될 것이다. “헤겔의 “논리학” 전체를 완전히 연구하고 이해하지 않은채 맑스의 “자본”, 특히 그 1장을 완전하게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과적으로, 반세기가 지나도록 어떤 맑스주의자도 맑스를 이해하지 못했다!”
이것은 알튀세르 자신의 반헤겔적 기획을 서서히 멈추게 할 것 같은 견해이며 권위이다. 이런 딜레마에 대한 알튀세르의 대담한 대결이 성공적인지의 여부는 독자가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논증을 상연하는 능수능란함에는 분명히 감탄할 것이다. 그리고 아마 그의 주목할 만한 결론은 (내가 그러듯이) 적어도 인정할 수는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자본”을 완전히 연구하고 이해하지 않은 채 헤겔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한 세기 반이 지나도록 아무도 헤겔을 이해하지 못했다.” 사실 이런 예기치 않은 반전은 우리에게 ‘주체 없는 과정’(또한 더 나중의 목적 없는 과정이란 정식화)이라는 알튀세르의 역사관에 이르는 열쇠를 제공한다. 과정은 역사의 유물변증법, 온갖 헤겔적 변증법에서 자유로운 변증법임이 드러난다. 다른 저서들에서, 이런 개념화는 보다 정확히 ‘구조주의적인’ 언어로, 복합적으로 접합되고 구조적으로 ‘중층결정’된 정세들--혁명적 계기 내지 개시--의 운동이라고 정교화될 것이다. 중층결정은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에서 유래하며, 사건들의 다수의 원인들이란 통념을 통해 맑스주의적 전통의 익숙하고 오랜 경제결정론을 전위하려는 의도를 갖는다. 사건들 자체가 우리가 앞서 언급한 정확히 그런 다수의 사회적 수준들의 복합적 상호작용이라고 파악된다. 이것이 바로, 정치와 문화 모두에서, 후대의 사표편찬에 강력하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는 독창적인 기여이다. 잘 알려진 경제적인 것의 ‘궁극적으로 결정하는 심급’이 많은 동감을 표하는 부르주아 독자들에게조차 ‘목의 가시’로 남아있을지라도 말이다. 보다 큰 쟁점은 알튀세르가 인식론이라 부르길 거부한 것에 대한, 그리고 이 선집에서는 단지 부분적으로만 반영된 그의 기여이다. 알튀세르가 그 영역에서 가르치려고 했던 교훈은 다른 분과학문들, 특히 사회학적이고 문학적인 텍스트들에 친숙한 것인데, 말하자면 개념적 진술들은 세계에 관한 것이 아니라(이런 의미에서 ‘지칭’을 갖는 것이 아니라), 다른 텍스트들과 다른 개념적 진술들과 관계하는 것이다. 구상 화가(figurative painter) 크레모니니에 대한 논문은 그런 다른 점에서 역설적인 철학적 입장에 접근하는 예기치 못한 더 풍부한 방식을 제시할 수 있다.
화가로서 그의 전체적 강점은 그가 ‘대상’도…‘장소’도…‘시간’ 내지 ‘계기’도 ‘그리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있다…크레모니니는 대상, 장소, 시간을 묶는 관계들을 ‘그린다.’ 크레모니니는 추상화의 화가(painter of abstraction)이다. 추상 화가(abstract painter)가 아니라…실재적 추상(the real abstract)의화가…‘인간들’과 그들의 ‘사물들’ 사이의, 또는 오히려, 그 용어에 더 강한 의미를 부여하자면, ‘사물들’과 그것들의 ‘인간들’ 사이의 실재적 관계들(필연적으로 추상적인 관계들)의 화가이다(230).
따라서 우리가 실재(the real)를 사유하는 범주와 개념은 그 자체로 직접적 현실(reality)과 동일한 것이 아니다(알튀세르가 스피노자를 즐겨 인용하듯이, 설탕이란 개념은 달지 않다). 또한 그것들은 서로를 단절하는 방식, 우리가 알튀세르의 작업에서 묘사했던 일종의 개입의 방식을 통해 작동한다. 실제로, 위대한 과학 혁명 자체는 실재에 관한 발견이 아니라, 그 선행자들과의 ‘인식론적 단절’(가스통 바슐라르의 영향력 있는 용어)을 통해 출현한다. 그리고 이는 맑스에 의해 세 번째로 발견된 새로운 역사의 대륙만큼이나 그에 앞선 두 개의 지식의 대륙—수학과 물리학--의 진실이다. 그리하여 맑스 자신의 관념론적 선행자들과의 인식론적 단절에 관한 특정하게 알튀세르적인 쟁점과 실제로 그 단절이 전기적이고 연대기적으로 어디에 위치해야 하는지의 문제는, 즉 알튀세르의 작업에서 추문적인 계기는 “1844년 경제학 철학 수고”--근대 내지 서구 맑스주의라는 상이한 전통의 전체적인 새로운 출발점--를 단절 이전의 청년 맑스의 관념론에 위탁하는 일에 놓여 있는 것이 전혀 아니다. 여기서 알튀세르의 입장--내가 보기에 충분히 방어할 수 있는--은 초기 맑스가 본질적으로 인간학적이고 여전히 인간 본성 내지 인간 본질이란 개념을 생산하려 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자본”의 맑스는 온전하게 그런 순수하게 철학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전제 없이 할 수 있는 형태를 창출했다. 우리는 여기서 알튀세르적 인식론의 복잡성들을 더 이상 다룰 수 없다(그 가장 놀랍고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특징이 어떤 지칭 이론도 없다는 것이라는 점만은 말해야 한다). 다른 한편 이 선집에서 매우 중심적으로 표상되는 것은 훨씬 더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알튀세르적 이데올로기 이론이다.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는 훗날 피에르 부르디외 등이 채택하는 입장을 선도한다. 우리가 보통 이데올로기적 입장들이라고 사유하는 것--사상, 의견, 세계관, 정치적 함의와 귀결을 지닌 모든 것--은 마음이나 개별적 경험과 의식 속에 결코 존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군대나 법정처럼 국가에 기초한 것이든, 가족과 학교, 미술관과 미디어 제도들, 교회와 소액재판소처럼 표면상 사적인 것처럼 보이든 사회적 제도들과 장치들에 의해 항상 뒷받침되고 강화되며 실제로 재생산된다. 이데올로기는 무엇보다 우선 제도적인 것이며 단지 나중에 의식의 문제로 고찰되어야 한다.
또한 이런 제안이 맑스주의적 전통에의 개입을 구성하기도 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확실히, 옛 맑스주의 역시 자본주의와 그 법적이고 문화적인 ‘심급’의 연계를 제어하는 토대와 상부구조의 관계만이 아니라 사회적 ‘재생산’에 관해 말했다. 이 토대와 상부구조라는 통념은 (맑스의 저술에서 단 한번, 그것도 아주 부차적인 장소에서 나타나는데) 맑스주의의 온갖 근대적 비판자들의 쉬운 표적이 되어왔으며, 그들은 그 기계론적 본성과 과잉단순화와 매개체의 결여를 올바르게 지적하고 있다. 내 자신의 관점은 만일 토대와 상부구조의 도식이 설명이자 해답이라면 그 모든 비판들이 정당화된다는 것이다. 만일 그 반대로 그것이 출발점이고 풀려야 할 문제라면 그것은 필요불가결하다. 알튀세르는 이 점도 시인하지만, 그것을 단순히 ‘묘사적’이라고, 해결되어야 할 모순이 처음 나타나는 일종의 최초의 계기라고 특징짓는다. 토대와 상부구조의 정식을 사회적 재생산의 문제와 결합시키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그 정식은 이제 말하자면 변화하기 시작하고, 사회적 시간성에 관한 전혀 새로운 설명은 (억압적 국가장치와 구별되는)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에 관한 영향력 있는 알튀세르적 개념화의 작용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것은 충격력을 지닌 논문의 첫 부분일 뿐이다. 그 두 번째 부분인 “이데올로기에 대하여”는 라캉적 정신분석학에 빚지고 있는 이데올로기에 관한 전혀 새로운 이론을 제시하는 한에서 오히려 훨씬 더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프로이트와 라캉’이란 논문은 라캉의 독창성에 관한 사례를 제시하는데, 어떤 면에서 라캉주의자들 자신들에겐 의심할 바 없이 불만족스럽겠지만, 일반적으로 정신분석학에 적대적이고 특수하게는 라캉에게 무지한 맑스주의자들에겐 비범하게 시사적이다. 정신분석학에서 알튀세르는 또 다른 반인간주의(정신분석학은 심리학이나 인간학이 아니다) 그리고 또한 ‘주체 없는 과정’의 또 다른 모델(라캉에게 의식적 주체, 에고 내지 자아는 부차적 현상이자 오류와 몰인지의 영역이다)을 인식했다. 그의 논문은 라캉의 근본적인 혁신이 인간 경험을 세 개의 통약불가능한 차원들로 분리하는 데 있다고 설명한다. 실재, 상징계, 상상계. 여기서 상징계는 언어의 비인격적이고 집단적인 영역과 그 다양한 사회적 위치들을 가리키며, 상상계는 개인적이거나 대쌍적인 인간관계들, 이른바 거울 단계, 그리고 에고의 영역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것이 바로 알튀세르가 인상적인 두 개의 단서를 붙인 서문과 함께 자신만의 이데올로기 이론을 전개할 개념들이다. 첫째 이데올로기는 역사를 갖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인간의 삶 자체와 불리할 수 없는 기능이다. 둘째(그리고 그 결과로서) 상상할 수 있는 미래의 더 완전한 사회가 무엇이든 이데올로기는 항상 존재할 것이다. 이것은 알튀세르가 과학과 이데올로기의 전통적인 대립 형태를 폐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학과 과학적 혁명 및 발견은 우리가 앞서 특징화한 인식론적 수준에서 발생한다. 반면에 이데올로기는 일상생활의 기능이며, 그것을 항해하는 개인의 선택이자 행로이다. 이를 염두에 둔다면, 우리는 그의 유명한 정식의 풍부함과 독창성을 높이 평가할 수 있다. “이데올로기는 실재적 존재 조건들에 대한 개인들의 상상적 관계의 ‘표상’이다.” 이 정식이 지닌 라캉적 음색은, 이데올로기가 개인적 자아(상상계)와 이를 둘러싼 집단적이고 제도적인 현실들의 복잡하며 실제로 표상불가능한 총체성간의 관계를 설정하는 방식에 대해 경고한다. 그런 어법은 라캉적 실재와 상징적 질서 자체를 합성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실재가 사유를 무너뜨리는 드물고 위급한 계기들을 제외한다면, 우리는 보통 오직 상징적 질서의 매개를 통한 방식으로만 현실을 파악한다는 사실을 강조할 뿐이다. 그 정식은 그런 ‘존재 조건들’을 이해하는 과학적 접근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그 조건들을 터득할 수 있을지라도, 우리는 그 개념화에 대한 우리의 개인적이고 전기기적인 자아의 관계를 여전히 그리고 항상 창안해야 한다는 것, 또한 그 관계는, 현상태에 대한 것이든 그에 대항한 투쟁에 대한 것이든 그에 대한 일종의 헌신(commitment)에 이런저런 방식으로 매여 있다는 것을 단지 명기할 뿐이다. 따라서 이데올로기는 하이데거적 표현을 사용하자면 우리의 세계-내-존재(Being-in-the-world)이다.
이데올로기 이론은 그 관계가 성취되는 메커니즘에 관한 설명을 통해 완성되며, 이것이 알튀세르가 ‘호명’이라고 부른 것, 다시 말해서 사회적 질서가 개인들로서의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방식, 이를테면 이름을 부르는 방식이다. 그것은 비인격적이고 집단적인 상징적 질서 속에 함유된 역할들 및 사회적 위치들의 체계로 가장 잘 이해될 수 있다. 상징적 질서는 우리의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계기 속에서 이용할 수 있는 선택안들을 설치한다. 우리는 그저 그 중에 하나를 채택할 수 있거나, 반란을 일으켜 그 모두를 거부할 수 있다. 아니면 결국 우리는 우리 사회가 아직 제공하지 않는 새로운 것들을 창안하려고 시도할 수 있다. 호명에 의한 구속은 단순히 우리의 역사적 상황의 가능성, 우리를 다루는 역사의 손, 우리가 작업해야 하는 조건이다. 처음 제안된 이후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 이론은 복잡한 논쟁을 격화시켰으며, 그 내적인 문제들만이 아니라 그 복잡성 또한 드러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최근 철학에서 아직까지 제시되는 개인과 집단의 공약불가능성이 지닌 딜레마에 대해 가장 자극적인 ‘해법’을 제시한다. 이것이 다양하고 광범위한 작업을 통해 루이 알튀세르가 제안한 유일한 개념적 혁신이라면, 그의 이름은 근대 철학의 역사에서 안전을 지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