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의 말 : 이 글은 2018년 11월 23일-24일 양일간 열렸던 <알튀세르 탄생 100주년 기념 학술대회 : 알튀세르의 문제들>의 특별자료집에 「맑스의 인식 이론에 대한 알튀세르의 분석에서 역사와 정치경제학 사이의 해소되지 않은 긴장에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실렸던 글이다. 인-무브에 게재를 허락해 준 배세진 선생과 특별자료집 편집 과정에서 교정교열을 맡아주신 이재원 선생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을 전한다.
역사와 정치경제학 사이의 해소되지 않은 긴장: 알튀세르와 마르크스적 인식론을 위하여
제라르 뒤메닐
배세진 옮김
나는 이 콜로퀴엄에 참여해달라는 주최측의 요구를, 내가 1969년에서 1971년 사이에 집필했으며 1978년에 ‘이론’ 총서 중 한 권으로 총서의 책임자였던 루이 알튀세르에 의해 출간된 『《자본》의 경제법칙 개념』(이하 『개념』)이 발생시킨 복합적 효과 때문으로 이해한다. 나는 알튀세르를 중심으로 작업했던 집단의 일원이었던 적이 없다. 나는 『개념』을 우편으로 알튀세르에게 보냈으며 그의 답변을 수화기 너머로 들을 수 있었다. 알튀세르는 우리의 만남을 위해 자신의 연구실에 들르라고 나를 초대했다. 알튀세르는 ‘내용’에 관심을 가지는 이의 직접적이고 깔끔한 스타일로, 매우 다정하게 나를 맞아줬다. 알튀세르는 이 텍스트에 자신의 서문을 붙여 출간하고 싶다고 내게 알렸으며, 쉽게 예상할 수 있듯 나는 그의 제안에 매우 기뻐했다. 알튀세르는 프랑수아 마스페로가 [상업적인 이유에서] 자신의 제안에 반대하고 있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으나 자신의 기획을 끝까지 밀어붙이기로 결심했다. 이후 알튀세르는 내게 이렇게 제안했다. 파리 고등사범학교 근처를 들르는 일이 있다면 가끔 오후에서 저녁 사이에 자기 연구실의 문을 두드리라고. 만일 자신 이 정말 바쁘다면 바쁘다고 말해주겠으며, 그게 아니라면 잠시 동안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이라고. 실제로 몇 번 정도 나는 그의 연구실을 들러 대화를 나눴다. 이런 방문이 중단됐던 이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알튀세르의 건강 문제 때문이 아니었을까 추측한다. 알튀세르와의 이 대화 동안, 우리는 이 책[『개념』]에서 전개된 주제들에 대해서 이야 기하기도 했고 그가 내게 질문을 제기했던 경제[학]적 문제들에 대해서 도 이야기했다. 몇 십 년의 시차가 지나 젊은 맑스주의자들이 1970년대에서 [맑스주의 경제학에 대한] 위대한 창조성의 시대를 본다면, 나는 이 젊은 맑스주의자들이 착각하는 것이라 믿는다. 알튀세르가 내게 제기했던 질문들은 이런 [1970년대라는 시대의 경제학적] 빈곤함을 반영한다. 경제학에 있어, 맑스주의는 추상[화/성] 속에서 자신의 길을 잃어버렸던 신리카르도주의자들의 테제가 부상하는 데 맞서 싸워야만 했다. [맑스주의가 이처럼 신리카르도주의자들에 맞서 버겁게 싸우고 있었던] 반면, 조절학파만이 (하지만 맑스주의로부터는 멀찍이 떨어져서) [경제학적] 정신을 사실과 역사로 향할 수 있게 해줬다.
이때[1970년대]부터 나는 맑스주의적 영감이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그리고 『개념』이 제기했던 질문들이 형성했던 관계로부터 단절되지 않은 그런 과정 속에서 경제학자로서의 내 학문적 활동을 지금까지 이끌어왔다. 이 콜로퀴엄의 초대 덕분에 나는 알튀세르의 저작[특히 『맑스를 위하여』]의 핵심적인 부분과 맑스의 중요한 몇몇 텍스트들[특히 1857년 의 「정치경제학 비판 서설」과 『철학의 빈곤』]을 다시 주의 깊게 읽어보게 됐다. 곧이어 우리는 잡지 『악튀엘 맑스』의 중심에서 전개됐던 논쟁들의 흔적 또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다루려는 이론적 영역은 내게 주어진 시간과 공간의 범위를 넘어설 정도로, 의도적으로 광범위하게 설정됐다. 알튀세르에 대한 나의 이 노트는 어떤 아카데믹한 제약도 신경쓰지 않으며, 유사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작업들을 정당함을 평가 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단지 나는 이 글에서, 부분적으로 소통 가능한 관점들/용어들을 제시하고자 하는 나의 독백 속에서, 매우 간략하게 논점을 짚어보고자 할 뿐이다.
1. 어떻게 맑스의 인식론적 절단이 취하는 두 영역을 알튀세르의 작업도 동일하게 공유하고 있는가?
알튀세르의 것과 같은 작업의 경계 혹은 일반적 구조를 정의하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알튀세르가 분석했던 맑스의 인식론적 절단의 두 영역과 공명하는, 알튀세르의 작업의 두 가지 주요 측면을 구별할 수 있을 것 같다. 알다시피, 알튀세르는 전통적 용어법(더욱 일반적으로는 1960~70년대에 여전히 유행하고 있었던 맑스-레닌주의의 용어법)과 단절하기를 원하지 않았으며, [맑스의 사상에 대한] 절단의 두 측면을 ‘역사유물론’과 ‘변증법적 유물론’으로 각각 지칭했다. 하지만 종종 이 용어들은 알튀세르의 펜 끝에서 각각 ‘역사에 관한 [대문자] 이론’과 ‘방법에 관한 [대문자] 이론’(“맑스가 자신의 이론적 실천 속에서 사용하는 방법,” 다시 말해 변증법)이라는 용어로 불리기도 했으며, 이 ‘방법에 관한 이론’은 ‘인식’의 과정들[절차들]을 지시했다.
내 생각에 알튀세르는 자신의 연구를 통해 (자신의 작업을 양분하는) 이 두 영역의 발전에 [모두] 기여하기를 원했던 것 같다. 하지만 알튀세르는 이 두 영역 사이의 밀접한 관계(이는 이 두 영역의 ‘혼동’을 초래할 수도 있다)를 강조했다. 역사유물론에 대한 알튀세르의 주요 기여는 (계급 투쟁을 대상으로 하는 한 권의 저서로 기획된) 『재생산에 대하여』(여기에서 알튀세르는 생산양식, 사회구성체, 국가장치 등에 대한 분석에 착수한다)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내 관점에서는 두 번째 측면, 즉 인식에 관한 이론이 가장 중요해 보인다(인식에 관한 이론은 특히 『맑스를 위하여』의 거의 절반을 차지할 뿐만 아니라 『《자본》을 읽자』 1권의 서문이 다루는 대상이기도 하다). 이 인식에 관한 이론의 중심 관념은 생산과정으로 이해된 인식에 대한 관념이다.
일화적인 방식으로 말하면, 1960년대에 대학생이었던 나는 바로 이런 관점을 통해 알튀세르의 저작에 접근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개념』(의 결론)에서 발견할 수 있는 알튀세르에 대한 유일한 두 가지 인용은 이 인식이라는 주제에 관한 것이다. 이 책의 출판으로까지 이어졌던 [알튀세르와의 이론적] 만남은 이 인식이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이뤄진 것이었다. 알튀세르의 서문은 맑스의 변증법과 헤겔의 변증법 사이의 차이로의 회귀라는, (이 두 가지 변증법을 헤겔의 변증법에서 맑스가 취했던 것이라는 논점, 최소한 이 두 가지 변증법과 마찬가지로 섬세한 논점으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루는 이중의 질문을 통한) 알튀세르적 성찰의 중심 대상인 이 주제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절에서 내가 맑스의 인식론적 절단의 두 측면과 알튀세르의 작업 사이에서 정립한 관계에는 놀라울 것이 전혀 없다. 맑스가 하나의 과학과 하나의 철학을 정초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알튀세르가 이 두 지형 위에서 맑스의 저작을 설명하고 분석하고자 했다는 점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다.
2. 맑스의 위대한 [대문자] 변증법과 그 대상들
알다시피, 그리고 알튀세르가 지적하듯, 맑스는 자신의 위대한 [대문자] 변증법에 관한 이론이 됐을 텍스트를 집필할 “시간을 갖지”못했다(이 표현은 알튀세르의 것이다). 맑스는 우리에게 몇 개의 텍스트를 남겨줬을 뿐이지만, 알튀세르는 이 쓰여지지 않은 [대문자] 변증법을 맑스의 거대한 이론적 기계 장치의 메커니즘, 그러니까 운동 중인 사상과 실천 속에서 관찰해야만 한다고 확신했다. 그러므로 첫 번째 ‘이중성,’ 즉 (한편으로) 스스로 자신의 방법을 명시적으로 표현하는 맑스의 텍스트들을 (다른 한편으로) 이 방법을 대상들에 실천적으로 적용하는 것과 대립시키는 그런 ‘이중성’이 여기에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분명 알튀세르는 그런 이중성을 완전히 인지하고 있다. 맑스가 자신의 방법에 관해 말하는 바와 맑스가 이 방법을 어떻게 적용하는지에 대해서. [그렇지만] 그런 이중성은 이미 [그 자체] 상당한 모호성을 담지하고 있는데, 왜냐하면 명시적 취급traitements explicites과 실천적 적용 사이의 내용적 일치는 거의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또 다른 양극적 관계의 존재에 주의를 집중시키고 싶은 데, 이는 바로 맑스의 방법과 그 대상 사이의 관계이다. 왜냐하면 맑스의 이 행위 내의 사고[행위하는 사고]pensée en action는 항상 단수의 대상 혹은 복수의 대상들을 지니기 때문이다. 나는 이어지는 절들에서 이 점을 명확히 해명할 것이다.
1) 방법과 대상이라는 두 용어 사이의 독립성이라는 테제는 선험적[일반적]으로 옹호 가능하거나 혹은 최소한 작업 가설로 취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맑스가 영역의 구별 없이 적용할 수 있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유일한 하나의 방법이 존재한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 같다.
2) 또 하나의 대안적인 해석은 방법과 그 잠재적 대상들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복수의] ‘방법들’에 관해 언급하는 것이 필수적인 작업이 된다.
3) 분명 우리는 이 [방법과 대상 사이의] 대립이 절대적 특징을 필연적으로 가지지는 않는다는 점을 주장함으로써 이 두 번째 판단을 복잡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판단의] 다양성이 일단 전제되고 나면, 사실상 이 질문은 이 특수한 방법들과 그 가능한 관계지음mise en relation(더욱 고양된 일반성의 수준에 위치해 있는 방법에 관한 이론의 중심에서 이뤄지는 관계지음) 사이의 관계들 속에서 열려진 것으로 남게 된다. 결국 이것이 위대한 [대문자] 변증법이 지닐 수 있었던 지위였을까? 복수적인 하나의 방법론une méthodologie plurielle의 통일적[통합적] 원리들principes unificateurs이라는 지위 말이다.
내 생각에 알튀세르는 위에서 언급한 1)과 같이, 아니면 아마도 3)과 같이 사태를 바라봤던 것 같다. 알튀세르가 순수하게 방법에 관한 이론을 (철학이라는 분과학문의 분야들 중 하나가 아니라) 맑스의 ‘철학’[자체]과 동일시하고자 했기 때문에, 알튀세르에게서 맑스의 철학의 지위 가 지니는 관점이라는 일반적 질문이 제기된다. 더 정확히 말해, 절단 이후의 맑스가 철학, [즉] 인식에 관한 이론에 제약되어 있는 철학 혹은 그렇지 않은 철학에 부여했던 지위에 대해 알튀세르가 어떻게 인식했는지에 대한 질문이 제기되는 것이다(알튀세르의 눈에, 맑스의 역사 이론[즉 역사과학]은 하나의 철학이 아닌 하나의 과학이었다).
3. 『독일 이데올로기』에 등장하는 “과학의 희미한 그림자”로서의 철학
나는 알튀세르의 관점에서 맑스의 철학이 아닌 바로부터 시작하고자 한다. 『맑스를 위하여』의 서문에서 알튀세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떤 원리적 필연성에 의해 역사에 대한 과학적 이론의 창설이 그 사실 자체로 철학에서의 이론적 혁명을 내포하고 감싸게 됐는가? …… [새로운 철학은] 새로운 과학과 혼동되려는 유혹을 받을 수 있었다. 『독일 이데올로기』는, 우리가 지적한 것처럼 철학을 실증주의의 공허한 일반화로 간주하는 데까지 이르지는 않는다 해도 철학을 과학의 희미한 그림자로 간주함으로써, 이런 혼동을 분명하게 인가한다.
여기에서 알튀세르는 『독일 이데올로기』를 심하게 축약한 바에 준거 하고 있다. 나는 맑스를 직접 인용해보도록 하겠다.
현실에 대한 설명[제시]로 인해, 자율적 철학은 자신이 존재할 수 있는 기반을 잃어버리고 만다. 기껏해야 자율적 철학은 인간들이 이룬 역사적 발전에 대한 검토를 추상화함으로써 추출될 수 있는 일반적 결과들의 요약으로 대체될 수 있을 뿐이다. 현실의 역사로부터 분리된 이 추상들 자체는 그 어떤 가치도 절대 지니지 않는다.
“기껏해야 …… 대체될 수 있을 뿐”이라는 정식은 가혹하다. 이 정식은 ‘대체,’ 그러니까 철학과는 다른 무언가에 대한 것이다. 게다가 이런 (자칭) 이론[즉 자율적 철학]에 부여된 공간은 매우 비좁은 ‘요약’의 공간이다. “추상들 자체”로 간주된(다시 말해 현실의 역사에 대한 자신들 의 관계로부터 절단된) 이 추상들은 “그 어떤 가치도 절대 지니지 않는다.” 그런 철학에 남겨진 유일한 가능성은 ‘자율적’이라는 수식어를 통해 제시된다. [그렇다면] 타율적 철학, 즉 ‘비판’은 존재할 수 있을까? 이런 분석은, 에마뉘엘 르노가 제시했던, 철학에 대한 맑스의 ‘축소주의적’déflationniste 개념화라는 테제의 기원이다.
『독일 이데올로기』라는 텍스트는 이런 추상들의 ‘예시’를 제공할 것 이라 예고한다. 그러므로 맑스와 엥겔스가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파악하기 위해, 우리는 『독일 이데올로기』의 논의를 계속 따라가야만 한다. 하지만 여기에서 그 무엇도 명확하지 않은데, 왜냐하면 몇 개의 페이지가 빠져 있을 뿐만 아니라 또 다른 이론적 전개가 이 설명에 개입해 들어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일 이데올로기』의 26쪽에서) 우리는 (인간 사회 내의) ‘인간들’의 역사에 관련된 그런 일반성들의 언표로 내가 해석하는 바에 이르게 된다. 뒤이어 맑스와 엥겔스는 자신들의 [이 일반성들의] 목록을 제시하는데, 이 목록이 결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 목록에서 다음의 주요 항들을 취하고자 한다. 1) 인간들은 자신들의 필요[욕구]besoins를 만족시키기 위해 생산을 해야 한다. 2) 새로운 필요가 만들어진다. 3) 인간들은 스스로를 재생산해야 한다. 이 지점에서 자연적 과정과 사회적 과정이라는, 이 과정들의 두 측면이 명시적으로 대립된다. 예를 들어 재생산은 가족 구조의 중심에서, 그러니까 사회적 관계의 표현으로 이해된다. 가족에 대한 참조에 있어 맑스와 엥겔스는 여기에서 논의되는 것이 가족이라는 개념이 아니라 정말로 실제하는 가족임을 명확히 한다(하지만 이런 분석을 뒷받침하는 유물론의 개념화는 행위와 실천, 다시 말해 과정적 유물론의 개념화이지 포이어바흐의 ‘경험적[감각적] 유물론’matérialisme empiriste의 개념화가 아니다). 이런 일반성들의 목록은 더욱 모호한 방식으로 이어진다. 생산은 협동 양식들, 그러니까 그 자체 분배 관계의 불균등성 등을 요구하는 노동 분할[즉 분업]을 함의한다. 이런 일련의 일반성들은 『독일 이데올로기』의 이어지는 페이지들에서 점점 더 역사유물론의 형태를 띠게 되는 바에 대한 언표로 이어지게 된다. 우리를 타율적 철학의 잠재적 영역에 대한 논의로부터 역사에 대한 이론으로 이끌어가는 이 페이지들을 독해함에 따라, 우리는 알튀세르가 혼동의 위험이 존재한다는 말로 의미하고자 했던 바를 더욱 정확히 이해하게 된다.
여기에서 나는, 자크 비데와 내가 서로 공유하고 있는 지식[앎]과 조직화에 대한 테제와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 육체 노동과 지식 노동 사이 의 분할에 대한 언급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겠다. 『독일 이데올로기』의 분석에서, 조직화라는 통념은, 생산이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는 분석에서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바로서의 (관리자 혹은 지도자에 의한) 경제적 혹은 정치적 조직화가 아니라, 언어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철학이나 종교 등의 영역에서의) 이론가[즉 이데올로그]의 작업과 관련된 것이다. 헤겔과 헤겔주의자들의 관념론을 거부하는 『독일 이데올로기』의 저자들에게 있어, ‘의식’은 사회-역사적 변화évolution의 생산물이다.
철학의 대체물은 어떤가? 위에서 인용한 『맑스를 위하여』의 한 부분은 『독일 이데올로기』의 분석에서 알튀세르가 발휘한 심원한 이해력을 증거한다. “철학을 실증주의의 공허한 일반화로 간주하는 데까지 이르지는 않는다 해도” 『독일 이데올로기』는 철학을 “과학의 희미한 그림자 로 간주함으로써, 이런 혼동을 분명하게 인가한다.” 하지만 동일하게 우리는 이런 (소위) 철학이 알튀세르가 맑스의 철학, 즉 ‘변증법적 유물론’과 동일시했던 바는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첫째로, 알튀세르의 눈에, 변증법적 유물론은 역사에 대한 [대문자] 이론의 ‘희미한 그림자’가 아니다. 둘째로, 위에서 기술된 일련의 추상들은 그 어떤 변증법도 증거하지 않는다. 변증법에 대한 이런 [『독일 이데올로기』에서의] 작업에 대한 알튀세르적 독해를 [제대로] 위치짓기 위해, 우리는 더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아니] 사실 그 다양한 영역을 관통해야만 한다.
4. 1857년의 「정치경제학 비판 서설」에 따른 정치경제학의 이론적 작업
비록 맑스가 성숙기 저작들에서 활용한 그런 활용 속에서 맑스의 철학을 독해해야 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지만, 알튀세르는 인식이라는 문제와 관련해 1857년의 「정치경제학 비판 서설」[이하 「서설」]의 명료한 상술에 상당 부분 준거한다. 알다시피 이 텍스트에서 맑스는 우선 그 [이론적] 유효 범위가 본질적으로 기술적인descriptive 몇몇 통념, 즉 인구, 생산, 소비 같은 통념을 활용하면서(맑스가 이 통념들을 활용하는 이유는, 이론적 [사고]과정démarche의 끝에서 그것들이 각각 ‘추상’으로 나타날 것이라는 점을 주장하기 위해서이다), (맑스의 표현을 그대로 따르면) ‘정치경제학’의 방법에 대해 논한다. 예를 들어 계급 없는 인구[라는 통념]는 그런 추상으로 남게 되는데, 이는 (맑스의 용어를 따르면) 임노동과 자본에 대한 분석 없는 계급[이라는 통념]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것이다.
맑스의 이 텍스트는 알튀세르로 하여금 생산과정으로서의 인식이라는 자신의 개념화를 가장 명확한 방식으로 펼칠 수 있게 해준다. 바로 이 맥락 내에서 알튀세르는 자신의 일반성 Ⅰ, Ⅱ, Ⅲ에 대한 이론을 제시하는 것이다(“이론적 실천의 과정”). 이런 이론은 포이어바흐의 경험적 유물론에 대한 비판과 헤겔적 관념론에 대한 비판이라는 이중의 비판과의 관계 속에서 작동하는 것이다. 나는 이를 다음과 같이 아주 간략하게 요약하고자 한다. 1) 이론가는 예를 들어 인구 같은 ‘통념들’(일반성Ⅰ)을 재료로 취해 작업한다. 2) 이론가는 예를 들어 가치 같은 ‘과학’의 개념들(일반성Ⅲ)을 생산한다(이 개념들은 그 유명한 ‘사고-구체’concret-de-pensée 내에서 서로 절합된다). 일반성Ⅱ(아마도 일반성Ⅱ의 예는 이윤일 것 같은데, 알튀세르는 예를 제시하지 않는다)는 주어진 ‘역사적’ 시기의 생산과정이 산출하는 미성숙한 결과이다. 하지만 ‘인식의 생산과정’에 대한 가장 명료한 분석이 등장하는 것은 바로 『《자본》을 읽자』의 1권(50쪽)에서이다.
나의 눈에 가장 놀라운 점은, 인식 과정에 관해 자신이 제시하는 이론화 내에서 알튀세르가 이 인식 과정을 고유한 의미에서의 인식 방법으로서보다는 역사적 과정으로 접근한다는 점이다. 1) (알튀세르가 부여 하는 의미로서, 대체적으로 ‘이데올로기적인’ 그런) 실천으로부터 파생된, 우리가 제대로 다듬어지지 않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그런 인식의 도구[일반성Ⅰ]. 2) 미성숙한 과학의 중간자적 상태[일반성Ⅱ]. 3) 결국 (특히 인식론적 절단의 끝에서) 생산된 과학[일반성Ⅲ]. 그렇다면 이런 분석의 대상은 무엇인가? 인식의 역사적 생산에 대한 하나의 이론인가 아니면 방법에 대한 하나의 이론인가? 알튀세르는 명확히 첫 번째 선택지로 기운다. 하지만 맑스의 텍스트는 내가 아래에서 간단히 인용할 저 유명한 구절이 증거하듯 변별적인 중심 대상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만일 내가 인구로부터 출발한다면, 나는 전체에 대한 혼란스런 표상을 가지게 될 것이며, 점진적인 규정 작용을 통해 나는 분석적으로 점점 더 단순한 개념에 이르게 될 것이다. …… 바로 여기에서부터 우리는 다시 뒤돌아가야만 한다…….
이 구절은 『개념』의 서문이 증거하듯 알튀세르가 그 중요성을 [정확히] 포착했던 『자본』의 [사고]과정이 취하는 가장 엄격한 방식을 정의해 준다. 하지만 『맑스를 위하여』와 『《자본》을 읽자』에서, 사실 알튀세르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이어지는 맑스의 논평에 집중한다. “첫 번째 길은 역사적으로 …… 경제학에 의해 채택됐던 그런 길이다.” 맑스가 [자신들의 연구] 방법을 명확히 설명하지 않았다고 경제학자들을 비판함에도 불구하고, 이 길은 일반성에 대한 알튀세르의 이론에 부합하는, 인식[앎]의 역사 속에 잠겨 있는 그런 길이다.
우리는 맑스도 알튀세르도 이런 분석 내에서 그 어떤 변증법에도 준거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변증법이라는 용어는 사용되지[도] 않는다. 알튀세르가 방법에 관한 맑스의 이론을 변증법과 동일시하기 때문에, 이로부터 우리는 「서설」의 분석이 방법에 관한 이론을 자신의 대상으로 가지지 않는다는 결론을 이끌어내야 하는가? 우리는 맑스의 위대한 [대문자] 변증법을 가지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여기에서 변증법은 우리가 가장 명료한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을 맑스의 텍스트들 속에서 다시 한 번 우리로부터 도망친다.
5. 역사에 관한 이론의 “기원적인 단순한 통일성”과 “‘이미 주어진’ 구조화된 복잡한 전체”
변증법은 「유물론적 변증법에 대하여」의 4절(“이미 주어진’ 구조화된 복잡한 전체”)에서 등장한다. 레닌, 그리고 특히 마오쩌둥에 준거함으로써, 알튀세르는 이 변증법을 ‘대립물들 간의 통일에 관한 이론’으로 우리에게 제시한다. 그렇지만 알튀세르는 항상 [레닌과 마오뿐만 아니라] 「서설」을 염두에 두고 있다. 4절에서 알튀세르는 헤겔적 개념화를 거부하기 위해, 바로 이 (“곧이어 자기-전개를 통해 과정의 모든 복잡함을 생산”해낼 “기원적인 단순한 통일성”이라고 알튀세르 자신이 부르는 바에 대한) 헤겔적 개념화를 활용한다. 알튀세르는 [헤겔 변증법의] ‘전도’라는 [맑스의] 문제설정이 부적합하다고 판단하고는, 이 ‘전도’의 문제설정을 “모든 구체적 ‘대상’의 복잡한 구조, 즉 대상의 전개와 (이 대상에 대한 인식을 생산하는) 이론적 실천의 전개를 지배하는 구조의 소여[즉 ‘주어진 바’]에 대한 인지”로 대체한다.
이런 분석은 5절(“지배관계를 갖는 구조: 모순과 과잉결정”)에서도 이어진다. 이 절에서 알튀세르는 주요 모순과 부차 모순으로 구조화된 체계에 대한 분석에 착수한다. 각 모순 내의 지배 관계를 갖는 구조에 대한 (실사substantif로서뿐만 아니라 동사로서도 사용되는) ‘반영’réflexion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나는 알튀세르의 표현을 조금 변형했다). 그러므로 인과성에 대한 선형적 접근의 해독제로서의 ‘과잉결정’에 대한 이론이 탄생하게 된다. 우리는 알튀세르가 이런 문제설정을 ‘가장 약한 고리’에 대한 레닌주의적 이론에 적용한다는 점을 알고 있는데, 이는 분명 이런 이론적 구축의 주요 정치적 동기들 가운데 하나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여기서 내가 관심을 가지는 바는 다른 지점, 즉 분석적 틀의 변형이라는 지점이다. 우리는 거의 인지하지도 못한 채 4절의 과학적 인식의 생산과정에서 인간 사회의 역사적 동학에 대한 분석, 즉 어떤 사회적 발전의 기원에 존재하는 모순들의 위계화된 체계의 작용으로 논의의 지반을 옮겨왔다. 내가 이미 언급했듯, 정치경제학의 방법이 알튀세르의 펜 끝에서 과학들의 역사에 관한 이론으로 변형된 것이 아닌 한에서 말 이다. 알튀세르적 의미에서의 ‘문제설정’이 일반성Ⅱ에 속하는 것이듯, ‘절단’이라는 통념은 실제로 이런 이론적 영역에 속하는 것이다.
이런 모호성은 앞서 인용한 알튀세르의 텍스트에서 나타난다. 동일한 변증법이 “대상의 전개”와 “이 대상의 인식을 생산하는 이론적 실천의 전개”를 모두 지배하는 것 같으며(이는 이미 하나의 이중성을 전제한다), “이론적 실천의 전개”라는 표현은 대상에 대한 작용으로서의 생산 과정과 그 역사적 발생을 구분할 수 없게 만든다는 점을 함의한다.
우리는 몇 개의 인식의 방법들과 마주하고 있는 것일까? 정치경제학의 방법, 과학들의 역사에 대한 방법, 역사적 동학에 대한 방법? 하지만 그렇다면 [이런 방법과 관계된] 몇 개의 변증법이 존재하는 것인가?
이에 대한 논의를 진전시키기 위해, 나는 헤겔적 방법을 차용하는 프루동의 방식을 비판하는 맑스의 논의를 활용해보도록 하겠다.
6. 헤겔 변증법에서 맑스가 취한 것: 『철학의 빈곤』에 대한 징후적 독해?
『철학의 빈곤』(1847)의 2장 첫 번째 편(「방법」)의 ‘첫 번째 고찰’에서, 맑스는 「서설」에서 앞으로 등장할 용어들로 경제학자들의 방법을 분석한다. 맑스는 경제학자들을 관념론자라고 전혀 비난하지 않는다. “경제학자들의 [사고의] 재료는 인간들의 활동적이고 행위적인 삶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맑스가 경제학자들이 활용하는 개념적 통념들을 높이 평가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맑스는 경제학자들이 “어떻게 이 [생산―뒤메닐]관계들이 생산되는지”(74쪽)를 우리에게 설명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맑스는 프루동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논의를 이어간다.
프루동씨의 [사고의] 재료는 경제학자들의 도그마이다. 우리가 생산관계들의 역사적 운동을 분석하지 않는다면(이 생산관계가 취하는 범주들 이 바로 그 이론적 표현이다), 우리가 이 범주들 속에서 현실적 관계들로부터 독립적인 관념과 자생적 사고만을 보고자 한다면, 우리는 이 사고에 순수이성의 운동을 그 기원으로 부여할 수밖에 없게 된다. …… 자기 자신의 바깥에서는 자기 자신을 위치지을 수 있는 토대를 가지지도, 자 기 자신이 대립할 수 있는 대상도, 자기 자신을 구성할 수 있는 주체도 가지지 않고 있기에, 이 비인격적 이성은 스스로를 위치짓고 대립하고 구성하면서, 즉 위치지움, 대립, 구성에 있어 곤두박질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리스어로 말하자면, 이는 정립, 반정립, 종합에 대한 것이다.
여기에서 내가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맑스의 프루동 비판, 즉 정립과 반정립을 사태의 나쁜 측면과 좋은 측면으로 대체하는(이를 통해, 프루동에게서 반정립은 정립의 ‘해독제’가 된다) 프루동의 (자칭) 변증법을 프루동을 조롱하기 위해 재앙에 가까운 것으로 표현하는 맑스의 묘사 자체가 아니다. 맑스와 프루동의 논쟁에서 내가 취하고자 하는 바는, 위의 인용문에 이어지는 두 번째 부분이 보여주듯, 이런 논쟁을 통해 맑스가 헤겔 변증법에 부여하고자 하는 그 제시[표현]présentation이다.
…… 대립물들은 서로 균형을 맞추게 되고 서로 중화되며 서로 마비된다. 이런 두 가지 모순적 사고 사이의 융합은 이 두 가지 모순적 사고 사이의 종합이라는 새로운 사고를 구성한다. 이런 새로운 사고 또한 두 가지 모순적 사고로 양분되며, 이번에는 이 두 가지 모순적 사고가 하나의 새로운 종합으로 융합된다. 이런 출산[즉 생산]의 작업을 통해 일군의 사고들이 탄생하게 된다. 이 일군의 사고들은 단순한 하나의 범주와 동일한 변증법적 운동을 따르게 된다…….
이 지점에서 나는, (앞으로 「서설」의 이론적 전개에서 다시 한 번 다뤄질) 헤겔 변증법에 대한 맑스의 이렇듯 간략한 ‘실정적’[긍정적]positive 제시가 이 동일한 맑스가 헤겔 변증법 내에서 높이 평가했던 바(즉 프루동이 제시하는 헤겔 변증법에 대한 패러디[속류적 모방]에 맞서 헤겔 변증법의 진정한 내용을 재정립하고자 할 때)에 대한 인정이라는 어려운 질문에 대한 해답의 방향을 제시해준다고 주장함으로써 이런 [『철학의 빈 곤』의] 분석에 대한 징후적 독해를 제안하고자 한다. 나는 맑스가 사실은 헤겔적 사고에 잠재해 있는 동학적 과정processus dynamique으로서의 인식이라는 관념에 관심을 가졌던 것이라는 가설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맑스에게서 이런 동학적 과정은 이 동학적 과정이 지니고 있던 관념론(현상을 생성하는 행위자로서의 자기의식)과 삼단논법적 형식주의 (이 사고의 시작점에서부터 이에 생명을 부여해주기 위해 소환되는 형식적 절차)가 제거된 동역학적 과정이다. 이런 방식으로 재구성된, 인식의 과정에 내적인 이런 동학[즉 운동]은 사실적 소여의 ‘모방’이 전혀 아닌 그런 절차 내에서, 이론적인 것의 설명적 가치라는 표현 이외에는 다른 표현을 가지지 않는 현실에 대한 관계 내에서, 다시 말해 이론과 그 대상 (이런 대상의 변형, 특히 생산관계의 변형을 강조하면서 혹은 그렇지 않으면서 끊임없이 맑스는 이 관계로 회귀한다) 사이의 관계 내에서 사고-구체의 형성물을 지배하는 동역학이다.
이런 인식 과정에 대한 인지는, 정치경제학에 의해 (내가 방금 정의했던 의미에서) 반反변증법적인 [사고]과정 내에서 ‘영원한 것’으로 전제된 범주들과 관련해 맑스가 비판하는 경제학자들(물론 이 경제학자들 또한 제 발로 걸어다니기는 하지만)의 이론적 실천에 대립된다. 사태를 조금 진부하게 표현하자면, 경제학자의 눈에, 직접적[무매개적]이고 변화하지 않는 인식관계에 따라, 자본은 자본이다(여러 번의 반복[순환]을 통해 더욱 커질 수 있는 상품, 혹은 화폐의 총계).
경제학자의 이런 [사고]과정은 사고-구체의 내적 동학을 위한 그 어떤 자리도 남겨두지 않는다. 경제학자의 이런 [사고]과정은 관념론으로 부터는 벗어나 있으나 편협한 실증주의의 영향 아래에 있는 것이다. 헤 겔의 관념론적 변증법과 비교해서는 맑스에 의해 높게 평가받는 경제학자의 이런 [사고]과정은 결정적 한걸음의 성취를 증거하지만, 맑스의 눈 에 이런 [사고]과정은 ‘너무 나아간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사고]과정은 맑스가 헤겔 변증법 내에서 취하고자 하는 바, 즉 개념적 동학의 공간, 다수의 이론적 영역들의 중심에 존재하는 개념들과 이 개념들의 설명적 가치의 동학(『개념』의 대상이 바로 이 이론적 영역들의 구성요소가 지니는 설명적 가치의 동학이다) 사이의 관계가 생명[핵심]인 사고-구체라는 이 기묘한 대상의 개념적 동학의 공간을 포기해버리기 때문이다.
자신이 사고하는 바로서의 ‘정치경제학’에 대한 맑스 자신의 비판 내에서, 맑스는 변화--생산관계의 변화 조건, 발생, 그리고 초월[지양]--를 사고하지 못하는 경제학자들의 무능함을 수차례 비판한다. 내가 이미 지적했듯, 여기에서 맑스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영원성을 이 경제학자들이 암묵적으로 전제하고 있다는 점을 비판한다는 사실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다루고 있는 것이 내용의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왜 맑스는 방법에 대한 분석이라는 맥락 내에서 이런 경제학자들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는 것일까? 내가 봤을 때 그 이유는 이론체corpus théorique가 지니는 설명적 가치의 획득 혹은 손실을 보증 해주는 ‘변동’mutation에 대한 사고가, 사고-구체의 영역과 이론적 구성물이 자신의 존재 이유로서 설명해야만 하는 그 현실 사이를 분리시키는 바에 대한 가장 명백한 표현들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난점, 즉 인식 과정(인식 과정의 고유한 동학)과 인식 과정이 현실과 맺는 관계(그 설명적 가치를 보증해주는 바)의 공존이라는 난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개념과 그 대상, 혹은 더 명확히 말해 과학적 구성의 [사고]과정에서의 개념의 생산과 그 설명적 가치의 적용의 공존. 내가 이미 지적했듯이, ‘과학적 구성’이라는 표현을 통해, 여기에서 나는 일반성Ⅱ 내에서와 같이 한 분과학문에 주어진 역사적 발전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의미하고자 하는 것은 『자본』의 그것과 같은 이론적 틀의 생산에 있어 개념과 법칙의 발생과 절합이다. 그리고 이런 방법에 관한 이론의 첫 번째 개념은 형태나 법칙과 같은 다른 것들에 대한 정의를 지배하는, 모든 것이 그에 의존하는 개념이라는 개념이다. 『개념』에서와 같이, 나는 어떤 형식적 규칙도 이런 동학을 지배하지는 않으며, 특히 어떤 ‘연역’의 양 태도(혹은 명백히, 삼단논법적 자기-생성의 양태도) 알튀세르가 『개념』의 서문에서 강조하듯 여기에서 작용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주장하고자 한다. 난점은 바로 상품, 가치, 자본 등과 같은 동일한 이론체의 개념들(이 개념들은 그 정의에 있어 극도의 엄밀함 을 요구한다)과 이 개념들에 대한 언표의 질서(자본-화폐의 시퀀스 혹은 『자본』Ⅰ~Ⅲ권 사이의 연쇄) 사이의 상호적 관계라는 문제이다. 이는 상호관계의 논리에 대한 것이지 연역적 논리가 전혀 아니다.
이 지점에 대한 논의를 마치기에 앞서, 내가 『개념』에서 활용했던 용어법을 참조하면서 한 가지 지점을 언급하고 싶다. 『개념』에서 나는 ‘변증법’이라는 용어를 매우 특수한 의미로 활용한다(표현manifestation의 변증법과 실현réalisation의 변증법). 나는 『개념』에서 왜 변증법이라는 용어를 이런 매우 특수한 의미에서 활용했는지 그 이유를 이제 더욱 정확히 이해할 수 있게 됐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나는 인식 과정에 내재적인 변증법만을 고려했다.
2) 나는 이 변증법을 모순이라는 통념에 연결시켰다.
위에서 우리가 논의했던 바를 상기시킴으로써 아마도 우리는 이 두 가지 이유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개념화의 이중적 과정이 작동할 때 ‘변증법’이 존재한다고 판단한다. 예를 들어 상품은 이중적인 것, 즉 유용성을 지닌 대상[사용가치]과 가치라는 이중적인 것이 라고 말할 때, 맑스는 [자신이 그러하듯] 경제학자가 상품이라는 개념을 활용할 때 이 경제학자가 상이한 결정요소들의 두 가지 앙상블--사용[가치]의 속성들(즉 맑스가 지적하듯 정치경제학의 연구 바깥에 존재 하는 것)과 사회적 노동의 일부로서 시장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상품의 능력--을 함께 사고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이는 생산력과 생산관계 사이의 모순이 그러하듯 분열된 개념적 총체성인 것이다. 맑스는 이런 개념적 분열을 광범위하게 활용한다. 우리는 그 또 다른 예를 『자본』 2권의 ‘~으로서’en tant que의 지루한 반복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자본이 취하는 상품 형태에 대해 언급하면서, 맑스는 이 상품 형태를 처음에는 상품 이론의 관점에서(‘상품으로서’), 그 다음으로는 자본 의 관점에서(‘자본으로서’) 사고한다. 여기에서 이 두 이론에 대한 융합은 이뤄지지 않는다. 그런 거대한 개념적 이중성의 또 다른 예는 내가 이미 경제학자들과 관련해 언급했던 변동이라는 개념이다. 이는 혼종적 사회구성체에서와 마찬가지로 변화의 과정 속에 존재하는 혼종성에 대한 꽤나 일반적인 사고이다.
자신의 설명적 가치에 대한 요구에 종속된 사고-구체의 상대적 자율성과 그 모순이라는 이 두 가지 측면을 내가 방금 위에서 행했듯 결합하는 것은 다소간 타당한 선택이었다. 나는 이 이외에 인식의 ‘변증법’을 구해낼 수 있는 다른 수단을 전혀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7. 너무 광대한 대륙으로서의 알튀세르적 [의미의] 역사
나는 맑스가 역사에 관한 ‘정관사’la 이론을 정초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맑스는 사회의 역사에 대한 하나의 거대한 테제, 우리가 편의상 ‘역사유물론’이라고 계속 부를 수 있을 그런 테제를 제시했을 뿐이다. 생산양식에 관한 이론(나는 의도적으로 ‘생산’을 강조했다), 잉여노동의 전유에 대한 특수한 양태로 이 생산양식을 특징짓는 이론, 이런 기준에 따른 계급들로 사회를 분할하는 것에 관한 이론, 이런 분석틀로부터 연역된 바로서의 국가에 대한 이론, 이와 마찬가지로 이런 틀로부터 산출된 바로서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이론, 그리고 이 이외의 많은 것들. 모든 것이 여기에 다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만 해도 광대하며 항상 우리가 넘어설 수 없는 수준의 것이다. 그리고 (내가 “이런 기준에 따른,” “연역된 바로서의” 혹은 “산출된 바로서의”라는 한정을 통해 표현했던) 맑스의 이론적 엄격함은 위대한 것이다. 부차적으로 우리는 맑스의 이런 이론적 엄격함이 인식의 내적 동학과 이 인식의 대상과 맺는 이 동학의 관계와 관련해 내가 위에서 설명했던 바를 훌륭하게 예증해준다는 점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이 틀(그러니까 역사에 대한 맑스의 테제가 정의하는 틀)을 초과하는 것으로부터, 나는 여기에서 단 하나의 유일한 측면만을 다시 취하고자 하는데, 이 유일한 측면은 내가 이 글에 붙였던 제목에 대한 논의로 다시 돌아올 수 있게 해줄 것이다. 맑스를 헤겔에게로 다시 데려가는 알튀세르가 상기시키는 이런 맑스의 연구의 ‘마지막 밤’의 끝에서, 그러니까 동이 틀 무렵의 그 새벽녘에, 절단 이후의 맑스는 무엇을 했는가. 맑스는 경제학자들의 작업을 독해하기 위해 도서관으로 향했다. 맑스는 정치경제학이 자신의 이중의 기획에 영양분을 공급해줄 수 있는 재료들을 제공해줄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맑스의 이중의 기획이란 다음과 같다. 1) 자본주의적 생산의 계급적 본성에 대한 증명을 제시하기(특히 잉여노동의 전유 메커니즘을 밝혀내기), 2) 자본주의적 생산의 기능 법칙을 발견하고 자본주의적 생산이 위기(잠재적으로 더욱 심화될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위기)로 진입하는 성향과 그 역사적 경향성(이 역사적 경향성은 자본주의적 생산의 역사성을 지배하는데, 왜냐하면 자본주의적 생산의 동학이 만들어내는 것보다 더욱 발전된 사회적 조직화의 형태들을 필연적으로 예비하기 때문에)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이해하기. 그리고 이런 [지적] 여정 속에서 [당대의] 지배적 이론들[즉 고전파 정치경제학과 속류 경제학]을 비판하기.
비록 우리에게 자신의 위대한 [대문자] 변증법을 남겨주지 않았다고는 하더라도, 맑스는 우리에게 자신의 위대한 [대문자] 경제학의 ‘커다란 조각 하나’를 남겨줬다. 왜냐하면 『자본』은 역사에 대한 하나의 [완성된] 이론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본』에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대한 정의(즉 ‘자본주의적 생산’에 대한 정의)를 찾으려 시도해봤자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자본』에서 하나의 정식을, 하지만 매우 빈약해 바다(그것도 대양 속의 바다)에 떠 있는 하나의 ‘병’ 같은 정식, ([맑스가 전체를 감수한 조제프 루아의] 『자본』의 프랑스어 번역을 따르자면) 하나의 첨가물을 발견할 뿐이다. 생산양식들의 연속에 관해서 말하자면, 물론 우리는 이를 『자본』에서 발견할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우리를 놀라게 하는 점은 그 근본 개념들이 이 저작의 계획[저작의 구성]에서는 그 어떤 표현으로도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근본 개념들은 일반적 [사고] 과정을 전혀 지배하지 않고 있다. [만일 존재했다면] 역사에 대한 거대한 논설의 계획은 도대체 어떠했을까?
『자본』은 역사의 동학에 대해 우리를 이해시켜줄 수 있는 ‘지배 관계 내의 모순들’의 체계에 대한 설명도, 그 자체가 거의 집필되지도 않은 역사의 거대한 변증법에 대한 설명도 전혀 아니다. 우리는 이를 『자본』 이외의 다른 곳에서 ‘부차적’으로만, 혹은 『자본』에 한정해 논의한다면 『자본』에서 ‘지엽적’으로만 발견할 수 있다. 「서설」에서 정치경제학의 방법(즉 『자본』의 방법)에 대한 자신의 기록을 우리에게 남겨줬을 때, 맑스의 담론은 [『자본』이라는] 저작의 집필에 착수하는 실천가[실무자]praticien의 담론이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나는 알튀세르의 분석에서 내게 가장 문제적으로 보이는 바에 대한 질문으로 되돌아온다. 이는 방법에 관한 맑스의 암묵적 혹은 명시적 언급이, 비록 방법에 대한 통념이 존재한다고 할지라도, 경제과학[즉 경제학]의 역사적 성숙에 관한 성찰이 아니라, 개념들의 이론적 생산과 이론적 [사고]과정 그 자체의 한가운데에서 이 개념들을 적용하는 것의 거대한 심원함에 대한 성찰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서 맑스가 인지했던 헤겔 변증법의 실정적 측면으로 내가 해석했던 바에 대한 암묵적 참조가 재출현하게 된다. 인식에 대한 이런 동학은, 근본적이고 급진적인 방식으로 변형됐다고 하더라도, 경제학자들의 방법과는 매우 강하게 대립된다.
부정할 수 없으며 주목할 수밖에 없는, 알튀세르가 1960년대의 맑스 연구 내에 도입했던 이 ‘절단’과 관련한 내 결론은 만일 나의 [사고]과정이 변증법적 의도를 숨기고 있다면 맑스가 프루동적 변증법에 대해 행했던 비판과 동일하게 그런 비판의 대상이 되고 말 것이다. 사실 나는 알튀세르적 절단의 ‘좋은 측면’과 ‘나쁜 측면’을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좋은 측면은 인식에 대한 성찰을 우리 연구 계획의 시작 단계에 위치지을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인데, 이는 사실상 우리를 맑스에 대한 새로운 독해로 이끌어준다. 아마도 나의 무지로 인해, 나는 오늘날 무시되고 있는 이런 성찰의 영역이 왜 포기의 대상이 됐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 나쁜 측면(이 ‘나쁜 측면’을 협소하게 정의하자면)은 알튀세르가 (인식 과정의 대상으로서) 다루고자 하는 두 영역, 즉 자신이 ‘역사에 대한 이론’과 정치경제학이라고 각각 부르는 두 가지 매우 변별되는 대상을 하나로 연결짓는데 있어 그가 맞닥뜨리는 거대한 난점이다. 이것이 알튀세르에게 있어 거대한 난점인 이유는, 이 두 영역 사이의 맞세움은 알튀세르를 방법의 통일[방법적 통일성/일의성], 즉 알튀세르적 의미에서 변증법의 통일이라는 질문으로 그 자신을 이끌어갔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새롭게 제기하고자 하는 바이다. 방법에 관한 하나의 이론이 존재하는가 아니면 복수의 이론들이 존재하는가? 내 의견은 복수의 이론들이 존재한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하지만 이 복수의 이론들을 결합하는 더욱 원대한 기획에 접근하기 이전에, 우선 우리는 이 복수의 이론들을 정의해야만 한다. 하지만 알튀세르와 다른 이들의 텍스트들을 독해함으로써, 우리는 (내가 위에서 방법에 대립되는 것으로 설정했던) 대상들(역사, 정치경제학 등) 사이의 구분조차 매우 까다롭고 논쟁적인 것으로 남아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