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의 말] 이 글은 2008년 역자 김정한 선생님의 블로그에 게시된 바 있으나, 발리바르가 다루는 쟁점들을 웹진 인-무브를 통해 다시 한번 문제화될 수 있으리라 생각하여 게재한다. 발리바르의 책 『대중, 계급, 사상』에 수록된 논문 중 일부는 『대중들의 공포』(최원, 서관모 역)와 『인권의 정치와 성적 차이』(윤소영 편역) 등의 역서에서 조금 수정된 형태로 찾아볼 수 있다. 『대중, 계급, 사상』의 목차는 다음과 같다 :
제1부 계급 정치의 딜레마 : 전복 대 구성
1장 스피노자, 반(反) 오웰 : 대중의 공포
2장 "인간의 권리"와 "시민의 권리" : 평등과 자유에 관한 현대적 변증법
3장 피히테와 내면의 경계 : 「독일 민족에게 고함」에 관하여
제2부 맑스주의 정치학의 이율배반
4장 맑스주의에서의 이데올로기의 동요
5장 프롤레타리아트 연구 : 맑스의 계급 정치 의념
6장 정치와 진리 : 이데올로기의 동요Ⅱ
제3부 현대 정치의 경계들 : 보편적인 것의 문제
7장 파시즘, 정신분석학, 프로이트-맑스주의
8장 보편주의로서 인종주의
9장 인권의 정치란 무엇인가?
『대중, 계급, 사상』 서문
Etienne Balibar, “Preface,” Masses, Classes, Ideas: Studies on Politics and Philosophy Before and After Marx, Routledge, 1994
옮긴이 김정한(현대정치철학연구회)
내가 본서에 선집한 논문들은 1982년(1장 「스피노자, 반오웰: 대중의 공포」)과 1991년(9장 「인권의 정치란 무엇인가?」) 사이에 쓰여졌다. 이 논문들은 논리적으로 상호 독립적이어서 따로따로 읽혀질 수 있다(예외적으로 6장 「정치와 진리」는 4장 「맑스주의에서의 이데올로기의 동요」의 후속편이므로, 5장 「프롤레타리아트 연구」를 먼저 읽는 것도 좋다). 하지만 나는 이것들을 연속적인 순서로 제시했는데, 독자들이 그 공통의 대상들과 근원적인 가설들을 이해하는 데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
내가 정치철학의 체계적인 교의를 제시했다고 주장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고전들을 다시 읽거나 최근의 쟁점들을 검토하면서 내가 질문했던 문제들, 상이한 기원을 갖는 개념들을 평가했던 기준들, 그리고 상이한 시기들과 문맥들 사이에 설정하고자 했던 조응관계들, 이 모든 것은 정치적 전통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아주 결정적인 몇 가지 쟁점들을 제기한다고 확신한다. 대부분의 동시대인들처럼, 나는 우리가 살고 있는 매우 불확실한 정세 속에서 이런 전통을 다시 작동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것은 그 내부로부터 전통의 전화를 동반한다.
우선 중심적인 쟁점은 본서의 부제인 ‘맑스 전후의 정치와 철학에 대한 연구’에 이미 나타나 있다. 이 부제는 영미권 독자들에게 잘 알려진 본C. E. Vaughan의 『루소 전후의 정치철학사 연구』(Manchester, 1925)를 상기시킬 것이다. 바로 이 책을 통해 우리 대부분은 처음으로 (특히) 스피노자, 로크, 피히테, 마치니의 이론들에 익숙해졌다. 나는 이 위대한 고전이 지닌 전망의 폭과 내용의 풍부함에 도전한다고 자임하지 않으며, 단지 그 방법의 일부를 계승하고자 한다. ‘루소 이전과 이후’ 그리고 ‘맑스 이전과 이후’라는 유비가 제기하는 문제는 단지 형식적인 특징들만이 아니다. 더 자세히 설명해보자.
우리는 오늘날 『공산당 선언』, 『자본』, 또는 『반뒤링』 같은 저작에서 거의 동일한 연대기적 거리감을 느끼는데, 이는 20세기 초의 정치사상가들이나 활동가들(특히 제1세대 ‘맑스주의자들’)이 『불평등의 기원에 관한 논고』(이하 『논고』)와 『사회계약』에 대해 느꼈던 거리감과 유사하다. 그리고 혁명과 반혁명의 경험들 속에 있는 그들의 고유한 개념 능력과 논쟁적 유산들 덕분에, 각자의 ‘세기(世紀)들’(그들로부터 유래하는 세기들을 의미한다)에 미친 루소주의와 맑스주의의 충격은 거의 동등하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또한 향후 몇 십 년 동안의 맑스에 대한 관심의 쇠퇴는 20세기의 루소에 대한 망각과 거의 다를 바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우리는 심지어 루소가 『사회계약』의 서두(I, 5)에서 제기했던 “무엇이 인민을 인민으로 만드는가?”라는 유명한 질문의 의미와 지속적인 효과, 그리고 맑스, 엥겔스, 이들의 일부 후계자들이 계급투쟁, 대중운동, 근대 정치에서의 사회주의적/공산주의적 세계관Weltanschauung의 역할과 관련하여 제기했던 질문들의 영향력 사이에 있는 밀접한 유사성을 추적할 수도 있다. 실제로 루소주의적 질문이 인민의 국가 통일성(베를린 장벽의 붕괴 이전에 동독의 최근 사건들 속에서 발생했던 징후적 동요를 상기시키는 인민ein Volk 대 국민das Volk)과 관련되었던 것처럼, 마찬가지로 맑스주의의 일련의 질문들은 인민의 혁명적 통일성(또는 2장에서 보듯이 ‘인민의 인민,’ 즉 노동자계급 내지 프롤레타리아트)과 관련되어 있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 맑스주의는 루소의 저작들에서 분명히 나타나는, 그리고 근대 민주주의 정치사상의 아주 전형적인 특징인 ‘봉기insurrection’와 ‘구성constitution’간의 내적 긴장을 단순히 한 걸음 더 밀고나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나의 논문들, 특히 이 선집의 조합에 내재되어 있는 유비의 핵심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나는 맑스주의 정치이론의 독창성의 정도를 그 선행자들과 관련하여 평가하고자 하며(‘단절’의 정확한 본성), 맑스주의가 그 계승자들(바로 우리들)에게 부과하는 비가역적 제약들의 성격을 논의하고자 하는데, 이것은 근대 민주주의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 루소가 제시한 독창성의 정도와 비가역적 문턱의 성격을 필수적으로 평가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루소가 결정적인 논점(인민주권, 그리고 입법부의 ‘내재적’ 본성)에서 과거의 ‘입헌constitutional’ 이론과 단절했기 때문에, 루소 이후에 전통적인 방식으로 (통치자들의 ‘기예art’로서) 정치를 사고하는 것은 가능할 수 없었다. 그 결과, 그의 선행자들, 로크나 스피노자, 심지어 마키아벨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유용성 자체는 루소가 구성한 새로운 ‘패러다임’에 의해 변형되고 결정되었다. 맑스와 엥겔스(그들의 상이한 성향에도 불구하고 이런 측면에서는 거의 구별 불가능한)가 역사의 원동력과 지향에 대한 과거의 ‘이데올로기적’ 표상들과 단절했기 때문에, 그들 이후에 전통적인 방식으로 (‘의지’, 또는 이성의 ‘목적’의 실현으로서) 정치를 사고하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현대 ‘맑스주의의 위기’는 이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가장 잘 입증해주는데, 특히 법, 국가, 사회적 이해, 또는 사회적 투쟁들 사이의 관계에 관한 대안적 전망의 일정한 근거를 발견하기 위해, 또는 좀더 단순하게 (내가 넓은 범위에서 공유하고 있는 지향으로서) 맑스주의 자체의 중심적인 아포리아들[논리적 난점들]을 명료화하고 그것들을 제거할 방법을 도출하기 위해, 맑스주의의 위기가 고전적, 전(前)맑스주의적 저자들을 재독해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주지하듯이 루소도, 맑스와 맑스주의 전통도 자신의 역사적 운명으로부터 격리될 수 없다. 루소는 필연적으로 프랑스혁명과 연결되어야 한다(프랑스혁명이 정확히 ‘루소주의적’ 과정이 아니었고,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이하 『권리선언』)도 루소주의적 텍스트가 아니었지만, 만일 『논고』와 『사회계약』이 없었다면, 급진적인 혁명의 원동력이 그 자신의 진정한 언어를 발견할 수 있었을까?) 유사하게, 맑스는 소비에트혁명 전후의 노동운동과 여타의 혁명적 혹은 개혁적 운동들의 역사와 분리되어 읽혀질 수 없다(소비에트혁명이 맑스주의적 혁명이 아니라, 오히려 맑스의 이름으로 수행된 혁명과 그 이후의 반혁명으로서, 맑스주의와 아주 다르고 훨씬 모호하다는 것이 분명하지만). 하지만 여기서 나의 목표는 직접적인 사회적‧정치적 역사가 아니다. 나의 목표는 맑스주의의 지적인 함의들과 그에 필적할만한 다른 교의들(긍정적인 함의로서 사유의 새로운 영역의 개방, 부정적인 함의로서 [사유의] 봉쇄 또는 ‘인식론적 장애물들’의 생산)에 집중된다.
이런 측면에서, 내가 주장하고 싶은 바는 다음과 같은 일반적인 인식이다. 만일 루소와 맑스의 대칭성들이 문제라면, 내게 비범해 보이는 것은 무엇보다도 한 쪽에서 다른 쪽으로 넘어갈 때 발생하는 철학적 전도이다. 나는 루소에게서 비롯하는 ‘민주주의적’ 지향을 향해 맑스가 한 걸음 더 나아갔다는 잘 알려진 사실을 이미 언급했다. 그러나 이제 이 새로운 걸음은 ‘정치’에 대한 철학적 태도를 ‘전도’시키는 조건 위에서만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고자 한다. 실제로 루소는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의 아주 전형적인 대표자(그 개념이 고전시대의 종말 이후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조건을 창출했다는 의미에서, 아마도 유일한 전형적인 근대의 대표자)이다. 그의 관점에서 정치는 역사적 조건들, 즉 다루어야 할 복잡한 문제(‘정념과 이해’)를 가질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는 인민의, 그리고 인민을 이루는 개인들의 ‘구성적constituent’ 활동으로서 궁극적으로 자기자신에 근거한다. 일종의 ‘선순환virtuous circle’(분명 루소의 ‘덕virtue’ 개념과 관계를 갖는) 속에서, 정치는 정치적 개념과 결단의 자율성을 전제하며 또한 정치 자체가 그것을 위한 조건들을 창출한다. 미국혁명과 프랑스혁명, 그리고 특히 『권리선언』의 정식화에서 분명해지는 것은, 시민권 정의의 오랜 전통을 암시하는 이런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이 오직 또 다른 자율성--이른바 정치적 주체로서 ‘우리 인민we the people’의 발생, 또는 인민주권의 실천적 부과--을 표현했기 때문에 유효해졌다는 점이다. 이런 측면에서, 이제 맑스와 관련하여 인상적인 것은 그가 이런 입장을 완전히 전도시켰다는 사실이다. 의심할 바 없이 이것이 그가 ‘유물론’이라고 부르는 것의 결정적인 양상들 가운데 하나이다. 그는 전형적으로 정치의 타율성 개념을 주창하는데, 이는 정치의 ‘진리’와 ‘현실’이 자기자신의 내부에, 자신의 고유한 정치적 의식이나 활동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자신의 외부에, 자신의 ‘외적’ 조건들과 대상들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내가 생각하는 것은 정치의 부정에 이르는, 그리고 조야한 독해를 통해 맑스에게 귀착시켜왔던 환원주의적이거나 경제주의적인 관점이 아니다. 나는 맑스가 사실상 (개인들과 집단들이 활동하는) 정치과정을 정치의 ‘타자’--넓은 의미에서의 ‘경제’ 영역--에 내재하는 모순들의 완전한 발전과 동일시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맑스에게 정치는 부정되거나 폐기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보다 효과적인 과정으로 변증법적으로 재창조된다. 그것은 계급정치, 다시 말해서 공식적인 정의에서처럼 양대 진영(지배계급, 혁명계급)으로부터 부단히 ‘정치적인 것’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사회적 실천이 된다. 왜냐하면 정치는 노동이 적대적 사회관계라는 사실의 결과들과 대면해야만 하기 때문인데, 그 속에는 착취와 지배가 존재하며, ‘근대’ ‘산업’ 사회에서 사회적이고 개인적인 삶의 어떤 양상도 그와 무관하도록 방치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외견상 역설적이지만, ‘인민’(지금은 기본적으로 노동인민으로 정의되는)의 자기-결정과 자기-해방liberation을 의미하는 정치에서의 (집단적) 자율성의 결정적 중요성을 재단언하기 위해서, 급진적 민주주의자 맑스는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을 부인해야만 했다. 그는 철학사에서 가장 강력하고 포괄적인 ‘타율적’ 정치이론을 구축하려 했는데, 이는 정치와 정치의 ‘타자’를 도발적이고 ‘유물론적으로’ 동일화하는 것에 의존한다. 이것이 내가 ‘정치주의’에 대한 경제적 비판과 ‘경제주의’에 대한 정치적 비판의 동시적인 전개로부터 발생하는 ‘정치’와 ‘경제’의 단락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정치의 타율성에 대한 이런 급진적 단언이 획기적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근대 정치적 논쟁 전체를 형상화했다. 그러나 최근의 ‘맑스주의의 위기’와 근원적인 역사적 현상들로 인해 다시 의문에 붙여지는 것이 정확히 그런 단언 내지 단락(그리고 그에 따른 ‘노동의 정치’라는 쟁점을 둘러싼 민주주의 정치의 조직화)이라는 것도 깨달아야 한다. 맑스주의의 위기가 규정하는 ‘포스트맑스주의적’ 태도를 포함하여, 이런 위기가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에 관한 이론으로서 정치이론의 부활, 그리고 특히 (민주 진영 내지 진보 진영에서) 루소주의적(아니면 약간 다른 방식으로 로크적이거나 칸트적인) 관점의 복귀로 귀결할 것인지(해야 하는지)의 여부가 결정적인 철학적 쟁점이다. 이것이 정치이론과 정치철학에서 최근의 대부분의 논쟁의 근저에 있긴 하지만, 지금까지는 여전히 전적인 미해결 상태로 남아있다.
정치철학으로서 맑스주의의 독창성을 검사하고 그 역사적 상황을 새롭게 조명하려는 일반적인 기획에 준거하여, 나는 여기에 제출하는 논문들을 실제 쓰여진 순서가 아니라 다루는 주제들의 대략적인 연대기적 순서를 따라서 세 부분으로 분류했다. 이제 실마리로 삼을 수 있는 핵심적인 논점들을 지적하면서 세 부분에 대한 간략한 요약을 제시해보겠다.
제1부 ‘계급정치의 딜레마: 전복 대 구성.’ 나는 세 개의 주요 텍스트 혹은 텍스트 묶음을 고전 전통의 독해를 위해 배치했다. 스피노자의 철학(『신학-정치론』, 『에티카』, 『정치론』)은 정치(학)과 존재론을 결합하는 가장 명료한 실례를 보여준다. 1789년 프랑스의 『권리선언』은 ‘평등-자유egaliberty’라는 혁명적 원리에 근거하여 ‘인간’과 ‘시민’의 잠재적 동일성(또는 정치에 대한 보편적 권리와 진입)을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피히테의 『독일 민족에게 고함』의 핵심에 놓여 있는 ‘내적인(또는 내부의, 내면의) 경계’라는 수수께끼 같은 통념을 다루는데, 이것은 그 이후 대부분의 ‘민족주의적’ 문헌의 모델이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17세기, 18세기, 그리고 19세기 텍스트가 존재한다. 그러나 논의하는 ‘정치적 주체’가 다중multitude인 것도 있고,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들로 구성된 민족인 것도 있으며, 초월적인 동시에 육화한 통일체로서 인민과 동일시되는 것도 있다.
「스피노자, 반오웰: 대중들의 공포」는 가장 초기의 논문이다. 이 논문은 스피노자가 ‘대중들the masses’ 개념에 기여한 독특한 이론적·정치적 중요성의 근거를 명료화하고, 또한 스피노자 자신이 기본적인 정치 문제--이를테면, 상상 영역 내의 실재 현상으로서 ‘민중’ 운동 내지 ‘대중’ 운동--라고 간주한 것에 대한 그의 매우 양면적인 태도를 명료화하려는 의도로 착수되었다(그러므로 스피노자의 커다란 아포리아는 민주주의를 제시하려는 명제들인데, 그는 법률적 토대를 지닌 ‘가장 자연스러운’ ‘가장 절대적인’ 체제라고 명명하여, 자신에게서 혁명적인 논변과 보수적인 논변 모두를 도출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남겨두었다). 나의 결론은 민주주의를 사고하기 위한 스피노자 철학의 (심지어 현재적인) 중요성이 그의 아포리아들에도 불구하고 발생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바로 그 때문에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에게 현실주의적 자유freedom 개념을 구성하도록 했던 것이 정확히 그런 아포리아들인데, 자유 개념은 인간 본성의 본래적인 ‘개인횡단적transindividual’ 특성, 그리고 효과적인 ‘연합fusion’과 합리적인 ‘소통’의 변증법에 직접적으로 결합되는 공동체 개념 등과 분리될 수 없다. 이런 자유 개념은 그의 시대뿐만 아니라, 이 쟁점에 대한 현대의 수많은 논쟁들 가운데서도 탁월하다고 생각한다.
스피노자는 개인적 자유liberty와 집단적 자유freedom의 상보적 기능에 대해, 그리고 이런 상보성에서 실천적으로 발생하는 만만찮은 곤란들에 대해 급진 민주주의적 관점을 견지했다. 그러나 그는 분명히 ‘혁명’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관점을 견지했고, 여전히 혁명을 ‘고대적인’ 방식으로, 즉 대중운동과 함께 발생하는 정권 형태나 통치자 개인의 단순한 변동으로 사고했다. 이는 정치의 또 다른 변증법적 양상을 표현하거나 가치부여하지 못하는 그의 무능력(혹은 그를 뒤따르는 우리의 무능력)이라고 설명할 수도 있는데, 그것은 바로 민주주의 혁명이 근거하는 원리의 부정적 함의 혹은 부정성이다(그리고 이것은 『권리선언』에 의해 가장 잘 예시된다). 이를 테면, 어떤 효과적인 민주주의적 구성도 봉기라는 관념에 의존하고 있으며, 봉기 자체는 항상 부정적 논리 형식을 취한다는 사실. 의도적인 언어유희를 통해서, 나는 평등 없이는 진정한 자유도 불가능하고 자유 없이는 진정한 평등도 불가능하기 때문에 평등과 자유는 ‘동일’하다는 의미에서 그것을 ‘평등-자유 명제’라고 명명한 후, 이것이 시민에 대한 새로운 보편주의적(또는 ‘무한한’) 정의를 논리적 필요조건으로 삼으면서 『권리선언』의 조항들에 축자적으로 포함되어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러나 그것은 내게 ‘평등-자유’의 내적 긴장을 강조하도록 만든다. ‘평등-자유’는 안정적이거나 ‘공리적인’ 원리가 결코 아니며, (적어도 개념적인 수준에서) 그 실현의 모순적 형태들을 설명한다. 일단 역사 속에서 ‘선언’되었기 때문에(실제로 이런 ‘선언’ 내지 ‘발화’는 기본적인 동등한 형식들로 수차례 반복되었다), 평등-자유 명제는 더 이상 무시될 수 없었지만, 또한 매개들과 갈등들 없이는 (특히 근본규범Grundnorm이나 법적 질서의 원리로서) 실행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이런 (넓은 의미에서) 모순들은 두 가지 매우 상이한 종류인 것처럼 보인다. 일군의 모순들은 평등-자유가 소유와 공동체의 적대적 원리들, 더 정확히 말해서 그 원리들의 대립, 갈등 형태들(민족 공동체 대 프롤레타리아 공동체, 자본주의적 소유 대 개인 노동의 결과로서의 소유)과 결합될 때 출현했다. 이런 모순들은 근대 시기 내내 정치 담론에서 공공연히 드러나며, 특히 ‘계급투쟁’의 담론에 본질적인 이데올로기적 참조점들을 제공한다. 이와 반대로 다른 일군의 모순들은 대체로 정치 담론에서 억압되었다. 이것은 그 모순들이 전혀 표현되지 않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제도적으로 무시되었으며, 약간의 예외를 제외하면 그 자체로 거의 모순들로 인식될 수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이런 모순들 또한 직접적으로 정치적인 것인 한에서 두 개의 거대한 인류학적 분할들 내지 ‘차이들’--성적 차이와 지적 차이--에 의해 지탱된다고 생각한다. 그것들이 오늘날 사회 갈등의 보다 고전적인 형태들을 상대화하거나 ‘과잉결정’하는 것처럼 보이는 중요성을 지닌 모순들이라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 때문에 때때로 정치(학)의 역사에서 ‘탈근대적’ 전회라고 다소 명시적으로 묘사되는 것은 단선적인 시대 구분상의 새로운 단계를 나타낸다기보다는, 정세에 따라 상이하게 위계화될 수 있는, ‘정치적인 것’의 단층들의 중첩을 나타낸다고 생각한다. 나는 나중에 오늘날 [재]정의될 수 있는 ‘인권의 정치’라는 보다 실천적인 문제와 대면하면서 이런 논점을 다시 다룬다(9장 참조).
세 번째로 나는 본서의 제1부에 피히테의 『독일 민족에게 고함』에 관한 논문(80년대 중반 월러스틴과 『인종, 민족, 계급』을 공동 작업하면서 작성한)을 수록했는데, 이는 현재 더욱더 중요해지는 민족주의 문제에 대한 참조점을 제시하기 때문이며(제3부에서 이 문제를 다시 다룬다), 공동체 개념에 관해 논의하는 본질적인 사례를 부언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나는 『독일 민족에게 고함』에서 드러나는 철학의 현실적 의미(따라서 그 양면적인 효과의 현실적 근거)가 아주 완전히 왜곡되고 오해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이 텍스트가 실제로 읽혀지기보다 더 자주 상징적으로 언급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심지어 ‘독일관념론’에 관해 상당한 지식을 갖고 자세히 파고든 저자들조차도, 이른바 ‘헤르더의 문화적 특수주의’--또는 ‘역사주의’--라는 것과 히틀러의 국가사회주의를 당연히 포함하는 19세기 인종주의 이론들 사이의 매개 고리로서 이 텍스트를 이해하고 있다. 이런 놀라운 오류들의 이면에서 나는 한편으론 ‘독일 이데올로기’에 관한 지속적인 편견들(특히 프랑스에서 나타나는 민족주의적 편견들), 다른 한편으론 보편주의, 특히 정치와 역사에서의 도덕적 보편주의(피히테가 탁월하게 대표하는)의 역할에 관한 완벽한 오해를 확인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민족주의에 관한 일부 급진적 표현들(그리고 아마도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의 결정체로서 민족공동체의 모든 상징적, 제도적 토대)이 특수주의적인 것이 아니라 보편주의적인 범주들과 원리들에 근거한다는 사실은, ‘개인주의 대 전체주의’ 또는 ‘합리주의 대 비합리주의’ 같은 그런 양자택일의 절대적 성격을 신봉하는 사람들에게는 불가사의일 것이다. 반대로 피히테의 역사철학 같은 그런 일관된 관념론에 의해 정교화된 범주들--특히 주체성과 활동성을 동일시하는 범주들--은 어떠한 경험적인 사회학적 설명보다도 민족주의에 관한 우리의 인식과 민족적 ‘정체성’의 구축을 아마 더 잘 예시해줄 것이다. 최소한 그런 범주들은 사회학적 설명에 통합되어야 하며, 이것이 내가 논증하려는 바이다.
마지막으로, 이상의 비판적 독해들은 우리에게 몇 가지 문제들을 남겨준다. 그 중 하나는 정치와 정치 담론에서 ‘보편주의’의 야누스 얼굴과 관계한다. 스피노자를 보편주의의 옹호자로 간주할 수 있는지는 분명하지 않은데(니체와 얼핏 비교해도 그는 분명히 반보편주의자는 아니다), 왜냐하면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모든 개인들의 네트워크로서 개인횡단성transindividuality에 관한 스피노자의 분석은 독자성singularity이라는 보다 심층적인 개념에 의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개인적이고 시민적인 권리들의 획득의 표현으로서 평등-자유라는 의심할 바 없는 보편주의적 명제, 그리고 피히테의 민족공동체라는 똑같은 보편주의적 개념은, 비록 그것들이 분명히 역사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할지라도 첨예한 갈등을 일으킬 수 있다(아마도 그럴 것이다). 보편주의가 첫째 ‘형식적,’ ‘부정적’ 보편성 개념(말하자면 ‘공백void의 보편성’)을 지칭하고, 둘째 ‘실질적’ 보편성(다른 언어로 말하자면 보편성의 이데올로기적 개념이라고 부를 수도 있는)을 지칭한다는 것에 마음이 끌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보편성과 보편주의라는 문제가 오늘날의 ‘통합된’ 세계에서 스스로를 나타내는 (많은 측면에서 예상하지 못한) 방식은, 그런 류의 전통적 대칭성들을 포기하고 잠정적으로 논의를 개방시켜두자고 제안한다(제3부에서 이론 논점을 다시 다룬다).
발생하는 또 다른 문제는 혁명 개념과 관계한다. 그 고전적인(근대적인) 의미의 핵심에 놓여 있는 것은 기존 권력의 전복이라는 은유만이 아니라(이런 내포가 여전히 현존하긴 하지만), 억압에서 저항을, 불의에서 봉기를, 봉기에서 집단적 해방을 이끌어내는 과정이라는 통념이다. 이것은 분명히 목적론적 도식이다. 그것이 필연적으로 새로운 종말론--역사의 ‘목적들’의 완전한 실현으로서의 역사에 관한 ‘목적’론--의 핵심이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것은 그런 연속적인 단계들 속에서 구성되는 역사의 주체에 대한 표상을 함의하는 것처럼 보인다(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런 단계들을 거치는 동안 스스로를 해방시킴으로써 스스로를 구성하는 역사의 주체. 그러므로 칸트 이후의 역사적 관념론과 혁명에 관한 통념간의 내재적 관계가 문제가 되는데, 왜냐하면 근대의 ‘관념론’은 무엇보다도 주체의 능동적인 자기-구성의 이론이기 때문이다). 피히테의 ‘원민족people’(자코뱅적 기원과 민족해방투쟁에서 동원 기능을 지닌)은 분명히 이런 통념의 표현(또는 아마도 ‘전치’)인데, 이것은 맑스의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들』에서 중심적인 사유로 다시 나타나는 혁명적 활동성Tätigkeit 개념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그러나 맑스의 ‘프롤레타리아트’란 정확히 무엇인가? 그것은 자신의 해방과정에서 스스로를 구성하는 역사의 주체의 또 다른 형상이 아닌가? 여기에는 악명 높은 복잡한 문제가 존재한다. 피히테의 ‘민족’과 맑스의 ‘프롤레타리아트’ 사이에는 분명한 대칭성(따라서 이론적 유사성)이 존재하는데, 마치 지난 두 세기 동안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들과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들 사이에 항상적인 대칭성이 존재했던 것처럼, 이 두 개념은 또한 (도덕적) 공동체와 정체성에 관한 개념이다. 그러나 또한 맑스의 ‘유물론’에는, 정확히 프롤레타리아트의 경우에 주체의 표상의 해체라는 분명한 요소가 존재한다. 아마도 이것이 그의 보다 독창적인 이론적 공헌일 것이다. 해체는 ‘자연의 인간화natural-human’ 과정으로서의 착취 분석과 계급투쟁에 관한 구체적인 묘사의 결과이다. 여러 측면에서 맑스적인 ‘프롤레타리아트’는 역사에서 주체라기보다는 비주체이다(알튀세르는 이 점에서 옳았으며, 엄청난 거부에 맞서 그것을 주장할만한 충분한 이유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봉기와 해방이란 통념만이 아니라, 훨씬 더 근원적이게는 혁명 원리가 표현하는 일종의 ‘법적 사실’로서의 불가역적인 진리와 어떻게 양립할 수 있는가? 진리를 실천적으로 인식하면서 ‘주체’로서 스스로를 드러내는 그런 인간들이 없다면, 현실적인 역사적 조건들 속에서 어떻게 진리 명제--인간들이나 인간 집단들에 의해 그리고 그들을 위해 표현되는--가 출현할 수 있는가? 이것은 실제로 매우 곤란한 문제이며, 맑스주의와 사회주의를 둘러싼 논쟁에서 결코 출몰하길 멈추지 않았다. 그것은 또한 집단적 이념들, 정념들, 행동들의 본성 및 역할과 관련하여 스피노자주의적 지반에 제기될 수 있는 문제들을 매혹적인 방식으로 가로지른다. 때때로 피히테의 철학에 스피노자주의적 요소가 존재한다고 주장되긴 하지만, 여기서는 상상적 공동체--이것의 구성과 양면성이 바로 스피노자 이론의 대상이었다--에 관한 완벽한 예증으로서 피히테의 ‘원민족’을 분석하는 것이 훨씬 더 논리적일 것이다. 맑스의 ‘프롤레타리아트’의 경우에, 프롤레타리아트의 목적론에 관한, 그리고 프롤레타리아트의 보편적 임무라는 상상적 표상에 관한 스피노자주의적 ‘해체’를 발전시키는 것은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어떤 의미에서 스피노자와 맑스가 공통으로 갖고 있는 대상이나 문제--이른바 ‘대중들’의 문제, 또는 더 정확하게 말해서 역사에서 대중들의 결정하는 역할에 관한 문제--를 고려한다면, 이상의 비판이 훨씬 더 흥미로울 것 같다. (본서의 주요한 제안 중의 하나인) 이런 비교에 착수한다면, 스피노자는 맑스가 설명하지 못한 어떤 것(따라서 또한 맑스 자신이 뭔가 설명하고는 있지만 맑스주의자들에게 모호하게 남아있는 것)을 설명한다는 관념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맑스는 스피노자가 설명하지 못한 어떤 것(따라서 또한 스피노자가 설명하고는 있지만 모호하게 남아 있는 것)을 설명한다는 관념에 도달할 수도 있다. 요컨대, 스피노자의 대중들 이론에는 ‘심리학적’(또는 글자 그대로 ‘정신분석학적’) 우위성이 존재하지만, 대중의 사회적·경제적 조건에 관한 맑스의 설명에는 ‘역사적’ 우위성이 존재한다. 그러나 맑스가 정치경제적 과정들에 대한 묘사 속에서 적어도 상상의 필연적 기능을 지적할 만큼 충분히 ‘변증법적’이었던 것처럼, 스피노자도 상상력의 정치적 효과에 관한 논의 속에서 적어도 경제적인 ‘실재적’ 조건들의 필연성을 지적할 만큼 충분히 ‘변증법적’이었다. 그러므로 이것은 ‘정치’의 결정적인 규정들이 (최소한 처음에는) 대립 형태를 취할 수밖에 없지만 정확히 이런 상보성의 지평에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본서에서 다루는 맑스주의에 대한 논문들을 설명한 후 나는 이런 논점에 관한 좀더 정확한 가설을 정식화할 것이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세 논문들(「맑스주의에서의 이데올로기의 동요」, 「프롤레타리아트 연구」, 「정치와 진리」)은 사실상 상보적이다. 이것들은 동일한 연구과정에서 대개 내 제자들과의 교육 활동의 결과로서 쓰여졌으며, 여기서 거의 재구성하긴 했지만 보다 조건이 좋았다면 사실상 한 권의 작은 책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솔직히 말해서 세 논문들은 단순한 ‘철학적 문제들’에서 출발하고 있으며, 이것은 내게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여러 세대의 ‘맑스주의자들’(그리고 반맑스주의자들)에 의해 유지되어온 수많은 잘못된 딜레마들, 맑스 이론의 내용과 관련해 그들이 생산해온 과잉단순화한 결론들은, 맑스의 저술들과 무엇보다도 그 용어법의 실제 내용에 관한 순수한 실수에서 유래하든가, 아니면 그것을 통해 정당화되기 때문이다. 맑스가 쓴 그대로의 진정한 텍스트는 고전적 ‘역사유물론’을 교육받은 이들에게는 놀라움으로 가득 차 있다(제2, 제3인터내셔널의 전통은 [역사유물론이] 불완전할지라도 정합적인 ‘체계’라는 관념을 고수했으며, 이런 관념은 루카치에서 코르쉬를 거쳐 그람시, 프랑크푸르트 학파, 초기 하버마스, 프랑스의 르페브르와 알튀세르에 이르는 20세기 ‘비판적 맑스주의’의 다양한 조류들로부터도 거의 도전받지 않았다). 하지만 맑스의 실제 정식화들과 그가 ‘논증’했거나 설명했다고 믿어지는 것들 사이의 불일치는, 맑스의 진정한 사상과 이상화된 ‘맑스주의’의 형상을 분리시키는 간격을 드러내는 유의미한 증거일 뿐만이 아니다. 보다 근원적으로 그것은 맑스의 진정한 대상인 근대 ‘계급사회’의 정치과정에 관한 분석을 특징짓는 뿌리 깊은 이율배반들의 징후이다.
이어지는 논문들에서 상세히 검토하는 두가지 예만 거론하자면, 그런 이율배반들의 난점과 적실성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맑스의 주요 이론적 저작인 『자본』(제1권)이 역사상 노동계급의 혁명적 임무의 사회적 조건들에 집중함에도 불구하고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명시적인 언급이 (설명하겠지만, 일부 ‘주변적인’ 장소들을 제외하고) 거의 없다는 사실, ‘부르주아’ 정치경제학이 자본주의 체계의 ‘변호론’이라고 비판하는 데 집중함에도 불구하고 이데올로기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덧붙이자면, ‘역사의 주체’ 내지 ‘계급의식’ 같은 통념들은 사실상 맑스의 모든 저술들에서 전적으로 부재하며, 통상 그런 이름으로 언급된 문제들이 맑스주의와 전혀 무관하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처음에는 순수하게 부정적이며 차라리 수수께끼 같은 이런 진술들로부터, 나는 자본주의에서의 계급투쟁이라는 맑스의 ‘유물론적’ 개념화에 관한 보다 자세한 탐구로 나아간다. 이것은 내가 보기에 하나의 모험, 즉 정치의 ‘지배적’ 형상에 관한 비판을 발전시키면서 최초의 가정들을 계속해서 전위시키는, 뿐만 아니라 동일한 기본적인 장애물들에 걸려 반복해서 넘어지는 실험적이고 이론적인 발견의 과정이다. 나는 우선 맑스(와 엥겔스)의 지성사의 연속적인 단계들과, 19세기 사회운동들에 대한 그들의 정치적 개입의 정확한 에피소드들--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실천에 있어서 잇따른 모순적인 전술들의 필요성이다--사이의 분명한 연계를 확립하고자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는 그런 역사를, 내가 느끼는 정치이론으로서의 ‘역사유물론’--내 생각에 우리가 여전히 의존하고 있는 것--이 지닌 내재적 아포리아들과 연결시키고자 한다. 아포리아들은 두가지 결정적인, 하지만 서로 무관하지 않은 난점들에 집중되고 있는 것 같다.
첫 번째는 ‘지배 이데올로기’라는 통념, 혹은 더 정확하게 ‘이데올로기’ 영역에서의 ‘피지배자 없는 지배’라는 잠재적 아포리아와 관련되는데, 이는 동시대 정치투쟁에 관한 맑스와 엥겔스의 논의에서 맹점으로 나타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역사인과성에 관한 설명에서 잃어버린 고리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런 난점은 결국 ‘프롤레타리아 이데올로기’와 ‘당 이데올로기’(또는 세계관Weltanschauung)의 본성을 적절히 개념화하지 못하는 (비극적 결과를 지닌) 지속적인 장애물로 나타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혁명적’ 혹은 ‘과학적’ 사상들이 프롤레타리아 정치의 역사에서 발휘했어야 할 (제한적이지만 존재하는) 유효성의 성격을 규정한다.
두 번째 기본적인 난점은 계급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트와 대중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트라는 유산된 변증법의 현존과 관련되는데, 이는 이미 맑스의 초기 저작들에서 출현하여 『자본』에서 구조적 기능을 실질적으로 획득하고 ‘후기’ 엥겔스의 탁월한 에세이들에서 바로 정치의 ‘본질’이라고 거의 인식되지만, 결과적으로 역사적 ‘결정론’ 내지 목적론에 의해 은폐되고 중화된다.
이상의 ‘아포리아적’ 탐구들로부터 맑스주의 이론이 결국 그 내적 모순들 때문에 붕괴하고 있었다는 결론에 이르는 것과는 반대로, 나는 맑스의 난점들이 당면한 문제들--특히 20세기 후반 ‘세계-경제’, ‘세계정치’, ‘세계소통’에서 인종주의의 새로운 형태와 기능에 관한 문제들--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고 본다. (정치철학 영역에서 나의 텍스트 독해의 함의를 확장하고 재정식화하는 이런 방식은 분명히 그 내적 논리에서만이 아니라 시민적 혹은 활동가적 관심에서도 유래한다.) 제3부 ‘현대 정치의 경계들: 보편적인 것의 문제’는 경험적인 관점보다는 개념적인 관점에 기초하고 있지만 대체로 이런 문제들에 전념하고 있다. 정치적 ‘실천’의 현재 조건들은 무엇보다 두가지 주요 사실들 혹은 경향들을 특징으로 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나는 정치의 보편화가 실제로 세계 전쟁, 식민화와 탈식민화, 자본주의의 ‘발전’과 위기, ‘사회주의’의 성장과 쇠퇴 등의 결과로서 실현되어왔다는 점이다. 또한 실천 속에서 정치의 보편화는 결정적인 철학적 사실로서 이론적 사유의 조건을 변화시킨다. 마치 실천 속에서 ‘추상abstraction’의 실현이, 맑스가 ‘물신주의’와 ‘실질적 포섭’을 분석하면서 전념했던 결정적인 철학적 사실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 우리는 이 두 사실들이 역사상 불균등하게 발전하지만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본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긍정적 사실이며, 정치적 실천이 자신의 현실적 조건들, 특히 경제적 조건들--맑스가 분명히 설명하듯이 결코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또한 결코 ‘국지적’인 것이 아니라 ‘지구적’인)--과 맞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인권의 정치란 무엇인가」에서 나는 이런 상황이 어떻게 자본주의 자체 내부에서 소유의 ‘개인적’이고 ‘집단적’인 양상들에 관한 새로운 변증법을, 혹은 정치적 쟁점화를 경향적으로 제기하는지 밝히고자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보편성’이나 보편화는 더 이상 이념들이 아니며, 오히려 이념들의 윤리적 기능을 크게 변용시키는 어떤 것이다.
이것은 (헤겔의 말하듯이) ‘보편성이 구체화’되거나 현실적 사실이 되는 세계가 또한 인종, 문화, 성, 지식의 경계선을 따라 ‘인류’ 자체가 구조적으로 분할되는 세계와 동일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피히테가 ‘내면의 경계’라고 불렀던 것은 (그 경계를 능가하는 군사적 ‘세계 질서’는 말할 것도 없고) 수많은 장소에서 경제적으로 상대화되고 제도적으로 희미해진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그것은 증식되고 다양해지는데, 이에 관해 푸코라면--국가권력이나 국가장치의 수준을 단순히 폐기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기능들을 근원적으로 변형시키면서--‘거시정치’ 수준에서 ‘미시정치’ 수준으로 이동한다고 말했을 것이다. 경계들, 범위들, 제한들은 더 이상 주로(혹은 외견상 보이듯이) 모든 정치적 ‘공동체’의 테두리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곳에 위치한다(마치 세계경제의 ‘주변부들’이 점점 더 ‘중심부’에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인간’과 ‘과소인간infra-human’(이런 면에서 인간다움의 견실한 ‘척도’가 부재하거나, 더 정확히 말해서 ‘잘못된 척도’가 현실적 규칙이기 때문에 아마도 심지어 ‘과잉인간superhuman’)의 동일화 혹은 (상상적) 인식의 투영 메커니즘들projective mechanisms--현실 속에서 근원적으로 개인횡단적임에도 불구하고 고전 정신분석학이 주로 개인적 수준에서 묘사했던--이 정치의 직접적인 쟁점과 대상이 되는 세계이다.
그러나 이것은 작금의 역사적 조건들과 관련하여 내가 두 번째 결정적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우리를 즉시 인도한다. 맑스에 관한 비판적 독해(그리고 맑스와 스피노자, 맑스와 피히테, 맑스와 프로이트 등의 간접 비교)로부터 도출되는 용어법을 다시 한번 차용하자면, ‘계급투쟁’의 변증법은 (‘비합리적인’ 혹은 ‘통제할 수 없는’ 현상으로서 ‘폭력’의 증식에 뚜렷이 조응하는) 더 복잡하고 모호한 ‘대중 갈등’의 변증법으로 물러나는--더 정확히 말해서, 분명히 통합되는--것처럼 보인다. 내가 다른 곳에서 주장했던 것처럼, 역사에서 ‘계급투쟁’은 정치과정들의 근저에 있는 유사-자연적 토대가 아니다. 그것은 일정한 정치적 조건들이 실현될 때 대중운동과 대중 갈등이 취하는 (사실상 매우 결정적일 수 있으며, 세계 주요 지역에서 장기간 결정적 역할을 수행하는) 정세적 형태이다. 도발적으로 제시하자면, 역사상 (제도들에 조응하는) 계급투쟁들로 조직된 계급투쟁들은 규칙이 아니라 예외이며, 이것이 맑스주의(혹은 정정된 맑스주의 내지 ‘일반화된 맑스주의’)의 테제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그러나 수많은 상이한 형태들(어떤 것도 단일한 ‘본질’일 수 없으며, 그 반대로 무한히 많은 변형태들을 지닌 인종적, 민족적, 종교적 형태들)을 취할 수 있는, 정세들의 근저에 있는 ‘기본’ 구조는 정확히 ‘대중 갈등’이며, 말하자면 그 질료는 정확히 이데올로기(집단적 의식, 그러나 더 정확하게는 의식과 무의식의 수준에서 동시에 작동하는 개인횡단적 상상)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것은 역사에서 인과성이란 관념을 단념하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역사인과성의 유형을 발전시키도록 도와주는데, 역사인과성에서 실재와 상상, 혹은 경제(폭넓은 사회적 의미에서)와 이데올로기(무의식을 포함하는 넓은 의미에서)의 ‘복합적 통일성’은 파생형이 아니라 기본형이다. 그것은 말하자면 집단적 인간 생활의 이런 각각의 ‘정반대’ 양상들이 자신의 효과를 ‘타자의 무대 위에서’ 주로 생산하는 유형이다. 즉 이데올로기는 경제를 유효하게 만들고, 반대로 경제는 이데올로기를 유효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는 항상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것은 사실상 정치, 그리고 무엇보다도 민주주의 정치에 어려운 문제를 제기한다. 19세기 후반 이후, 역사에서 ‘대중 부문’을, 따라서 또한 상상과 무의식의 인과적 기능을 인식하는 것은 주로 보수주의적(때때로 파시즘에 근접하는 아주 반동적) 정치이론들, 혹은 ‘자유중심주의적인libertarian’ 반反정치적 교의들과 도덕적 사조들의 전유물이었다. 하지만 이제 문제는 ‘대중들’ 자신이, 집단행동의 필연적 조건인 대중 이데올로기와 대중운동(대중들이 스스로를 그 일부로 구성하는)의 변증법을, 일상 경험과 추상 개념 모두에 입각해서 실천적으로 통제, 조절, 이해하는 데 있다. 다른 한편, 고유한 정치적·지리적 조건들과 전형적인 연속적 단계들(국가에 대한 공공연한 적대감--‘국가와 혁명’의 반정립--에서 시작하여 ‘사회적 민족국가’ 형태 속에서의 상대적 통합 내지 승인에 도달하는)을 갖는 조직화된 계급투쟁은, 의심할 바 없이 하나의 특수한, 하지만 매우 효과적인, 정치적 실천의 보편화 형태였다. 이제, 정치의 물질적 조건들이 보편화되는 정세의 역설, 그리고 아마도 불가피한 결과는 바로 이런 ‘주체적’ 보편화의 특정 형태(사실상 실천적으로 ‘평등-자유’의 새로운 실행과 다르지 않았던)가 적어도 자율적인 형태로는 현실을 형상화할 능력을 오늘날 상실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적어도 그 전통적 형태에 있어서 ‘수동적’ 보편화의 전진과 ‘능동적’ 보편화의 후퇴 내지 위기 사이에는 지금 거대한 간극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에 조응하여, ‘소통’의 압도적 충격 아래에서 공적 영역Öffentlichkeit의 쇠퇴가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정치적 실천의 일종의 ‘영점zero point’만을 표시하는 불안하고 매우 걱정스런 정세이다. 그러나 물론 이런 정세는 대부분, 다시 한번 정치가 자신의 ‘타자’의 형태들 속에서, 즉 그 자체로 인식되지는 않는 형태들 속에서 존재하거나 스스로를 재창출한다는 사실로부터 생겨나는 하나의 외양이다(이에 대응하여, 6장 「정치와 진리」에서는 가면을 쓰고 작동하는 정치라는 개념을 다듬고자 하는데, 이것은 ‘지배’의 ‘지배적’ 형태들에 관한 엥겔스의 시기구분의 내적 비판을 통해 도출해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위기의 외양은 위기 자체를 충분히 재생산한다.
이런 상황의 근원을 이해하려는 시도가 최근의 일만은 아니며, [새로운] 역사적 ‘순환’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에, 나는 ‘프로이트-맑스주의’의 명제들에 각별한 논의를 기울이고 있다(7장 「파시즘, 정신분석학, 프로이트-맑스주의」에서는 1930년대 파시즘이 조작했던 ‘대중운동’에 관한 빌헬름 라이히의 분석을 다룬다). 그러나 물론 나는 그런 지적인 경험이 자극이 될 수도 있지만 그것을 반복할 수 있고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그 한계들로부터 보다 많은 것을 배워왔다.
현실적으로 내가 믿는 바는, 가능한 한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과 ‘타율성’의 딜레마를 넘어 ‘정치’ 개념 자체를 재창조해야 하는 상황에 우리가 처해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늘 그랬듯이 ‘시대의 징조’를 해석하고 과거 개념화들의 비판적 유산과 대결하는 문제이다. 아주 최소한 이런 유산에는 개인성, 소유, 공동체에 관한 ‘고전 이론들’--부르주아 시대의 민주주의적 봉기와 구성에 주목했던--만이 아니라, 계급 정치, 특히 맑스주의적 계급 정치의 ‘이율배반들’--이런 이율배반들의 전개만이 아니라, 근대의 대중 조건과 대중운동의 ‘정치적 무의식’에 대한 지속적인 성찰들--도 포함된다. 이 책에서 나의 목적은 그런 이질적이고 종종 갈등적인, 동시에 필수적인 자원들과 대결하기 위한 원료를 제공하는 데 있다.
1993년 2월 25일 바세나르Wassenaar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