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인-무브

"마르크스의 철학" 재판 서문


에티엔 발리바르 지음

번역: 배세진 (파리 7대학)


옮긴이 앞글

(1) 이 번역문은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을 맞아 곧 도서출판 오월의 봄에서 출간될 발리바르의 저서 "마르크스의 철학"의 재판 서문이다. 웹진 게재를 허락해준 도서출판 오월의 봄에 감사드린다.    

(2) “마르크스의 철학1993학생 대중과 교양있는 독자 대중을 대상으로 한 라 데쿠베르트 출판사의 입문 총서중 한 권으로 처음 출간되었으며[각주:1], 2001년에는 동일한 출판사의 “Repères” 총서 포슈판으로 (‘문헌 안내를 재검토하고 증보한 것 이외에는) 아무런 개정 없이 두 번째 출간되었다[각주:2]. 우리가 지금 출간하는 이 책은 2014년 동일한 출판사에서 출간된 재판(이 역시 포슈판이지만 개정과 증보를 거친 완전한 의미의 재판이다)을 완역한 것이다. “마르크스의 철학1993년 초판은 한신대 국제경제학과의 윤소영 교수가 1995년 완역하여 문화과학사의 이론신서 겸 과천연구실 세미나로 출간하여 한국의 인문사회과학계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이 번역본이 절판된 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마르크스주의를 연구하는 연구자 또는 마르크스주의에 관심을 가진 일반 대중은 이 번역본을 참조하고 있다. 하지만 직역을 원칙으로 하여 연구자가 아닌 일반 대중은 다가가기 쉽지 않았던 윤소영 교수의 번역본과 달리,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을 맞아 옮긴이는, 일반 대중이 마르크스에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이 입문 총서의 취지에 맞게 원문의 의미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독자들이 한국어로 편하게 읽을 수 있는 번역본을 만드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그렇기 때문에 옮긴이가 상당히 자의적으로 의미를 한정하기 위해 삽입했다고 판단되는 부분이 아닌 한 가독성을 해치는 대괄호의 사용은 최대한 절제했으며, 다양한 의미를 지닌 단어의 경우에도 그 단어의 다양한 의미를 본문에서 모두 나열하기 보다는 가독성을 위해 옮긴이 주를 활용해 그 의미를 설명했음을 밝힌다. ‘입문 총서라는 취지에 맞게, 번역어 선정 등과 관련한 사항이 아니라면 옮긴이의 자의적인 해석이 담긴 옮긴이 주 또한 최대한 절제하였음을 밝힌다. 번역이 비슷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리고 위에서 언급했듯 최대한 의역의 원칙에 충실하기 위해, 윤소영 교수의 1995년 초판 번역본의 경우 가능한 한 부분적으로만 참조했음을 밝힌다.

 

재판을 위한 일러두기

 

프랑수아 제즈가 맡았었던 데쿠베르트 출판사 대표직의 후임자인 위그 잘롱(Hugues Jallon) 내가 1993 동일하게 데쿠베르트 출판사에서 출간한 있었던 소책자 마르크스의 철학”(La Philosophe de Marx) 재편집하여 포슈판 총서로 새롭게 재출간하자고 제안했으며, 나는 재출간을 위해 이전 판본의 텍스트를 재검토하거나 변형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해 자문해 보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에게는 앞으로 재판 서문에서 내가 직접 언급할 이유들로 인해 이것이 가능해 보이지도 않았으며 바람직해 보이지도 않았다. 반면에 또한 나에게는 저서에 가지 텍스트를 추가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가 처해 있는 조건들을 고려했을 저서의 활용에 있어 유익할 것으로 보였다. 더욱이 가지 텍스트 자체는 각각의 방식으로 저서를 현재의 상황에 맞게 정정해주는 역할을 한다.

 

첫 번째 텍스트는 재판 서문인 알튀세르적 마르크스주의에서 마르크스의 철학들로? “마르크스의 철학출간 20년 후이다. 이 글은 나의 친구이자 마르크스주의 활동가이며 철학자인 프리더 오토 볼프(Frieder Otto Wolf)의 노고로 빛을 보게 된 마르크스의 철학의 독일어 번역본 후기로 싣기 위해 집필한 텍스트를 프랑스어에 맞게 조금 수정한 것이다. 나의 친구 프리더 오토 볼프는 이 독일어 번역본 후기를 통해 1993년의 이 저서와 오늘날 내가 가지고 있는 개념화들(conceptions)을 비교하는 방식으로 이 1993년의 저서를 새롭게 위치 짓는 시도를 해보도록 나에게 요청했다[각주:3]. 또한 정말이지 나에게는 내가 프리더 오토 볼프에게 제시했던 답변, 즉 이 재판 서문이 독일어 독자들에게 뿐만 아니라 프랑스어 독자들에게도 전달될 수 있을 것 같아 보였으며, 그래서 이 글을 여기에 싣게 되었다. 나는 우리가 우리 나름의 방식으로 관언어적(translinguistique)이고 관경계적(transfrontière)인 공간 -바로 이러한 공간 내에서 마르크스에 대한 나의 저작이 만들어졌던 것이다- 을 재구성할 수 있었던 만큼, 그의 제안에 깊이 감사한다[각주:4].

 

이러한 조건들 하에서 나는 너무나 자연스럽게도 2011년 알바니(Albany) 대학에서 열렸던 세미나를 위해 집필한 텍스트 철학적 인간학인가 관계의 존재론인가. ‘포이어바흐에 관한 여섯 번째 테제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후기로 포함시킴으로써 이 마르크스의 철학의 재판을 서문과 후기 모두를 통해 보완하기를 원했다. 우리가 곧 보게 될 것처럼, 이 텍스트는 마르크스의 철학과 같이 입문이라는 스타일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주의라는 질문과 사회적 존재론에 관한 새로운 논쟁들과 관련하여) 마르크스의 저작(corpus)에 대한 해석이라는 정확한 목표지점을 지니는, 절반은 문헌학적이고 절반은 철학적인 논의 스타일을 취한다. “마르크스의 철학의 본문 내용, 1장에서 5장까지의 내용이 제시하는 설명을 통해, 독해하기가 쉽지 않은 이 후기가 이 책의 모든 독자들 또는 대부분의 독자들에게 접근 가능한 것이 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내가 주해하고자 하는 이 텍스트, 포이어바흐에 관한 여섯 번째 테제가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는 점은 제외하고) 나에게는 이러한 후기를 이 책에 덧붙이고자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마르크스에게 있어, 더욱 정확히 말해 포이어바흐에 관한 여섯 번째 테제, “관개체성의 철학 -어떤 지점들에 있어서는 스피노자와 프로이트가 가지고 있는 관개체성의 철학과 비교 가능한- 이 존재하며 또한 개인들이 맺는 관계들에 대한 개인들의 우위를 (논리적이고 정치적으로) 전도하는 관계의 존재론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마르크스의 철학” 2장의 몇몇 부분들은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몇몇 질문들을 촉발시키기도 했다[각주:5].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변을 제시하려 시도하기 위해, 또는 최소한 내 가설의 의미를 명확히 하기 위해, “마르크스의 철학의 재판만큼 좋은 기회가 또 있겠는가?[각주:6]

 

마지막으로, 편집자의 동의하에 이 재판은 1993년 초판에 실렸던 문헌 안내에 소개된 참고문헌과 저작 목록 전체를 재검토하고 증보했던 2001년 포슈판의 문헌 안내를 그대로 전재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오늘날 이 문헌 안내는 직접 교육적으로 활용되기 위해서는 필요불가결한 완전한 개정(그리고 아마도 문헌의 외연에 대한 확장)을 요구하겠지만, 나에게는 이를 수행할 만한 능력이 없다. 이러한 공백을 메울 수 있으리라 희망하는 마르크스에 대한 훌륭한 입문서들, 그리고 마르크스의 저작과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연구에 할애된 장소들이 이미 많이 존재하고 있다[각주:7]. 그러므로 이러한 상태의 문헌 안내는 단순한 방식으로, 그리고 관습에서 벗어나지 않는 방식으로, 마르크스의 철학재판 내에서 참고문헌의 체계 정도로 활용될 것이다. 또한 우리는 역사적이고 전기적인 요약설명이나 또는 본문의 설명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텍스트 발췌문들을 제시해주는, “Repères” 총서의 특징인 설명상자체계를 그대로 유지했음을 밝힌다.

 

재판 서문: 알튀세르적 마르크스주의에서 마르크스의 철학들로? “마르크스의 철학출간 20

 

나는 마르크스의 철학에 관한 이 얇은 책을 내 두 명의 친구의 요청에 따라 1993년에 집필했다. 이 두 친구는 그 당시 라 데쿠베르트 출판사의 대표였던 프랑수아 제즈(François Gèze), 그리고 지금은 작고한 파리 1대학의 동료이자 경제학자이며 노동조합운동가인 장-폴 피리우(Jean-Paul Piriou)였다. 이 두 친구는 인문과학에 있어서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정통 학문들에 대한 비판과 분과학문들 사이의 경계의 개방이라는 정신을 따르면서 동시에 인문과학을 공부하는 대학생들을 위한 교육에 쓰일 수 있는 “Repères” 총서를 만들었다. 물론 그 당시 “Repères” 총서의 편집자가 지녔던 또 하나의 기대는 가능한 한 많은 이에게 접근 가능한 평이한 스타일로, 그러니까 전문용어를 과도하게 사용하지는 않으면서도 너무 과도한 단순화는 피하는 방식으로 집필된 이 총서의 저서들이 대학생들을 넘어 더 넓은 독자층에게 활용될 수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20년이 지난 후에, 나는 마르크스의 철학이 이 책이 여러 번 재쇄를 찍었던 프랑스어권뿐만 아니라 이 책의 여러 번역본이 여전히 읽히고 있는 외국에서도 이 서로 다른 목표와 기대를 달성했다고 (다소 젠체하는 척하지 않으면서도) 말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마르크스의 철학적 사유의 대상들과 그 사유양태들, 그리고 이 사유가 제기하는 문제들에 관하여 이전의 삼십여 년에 걸쳐 내가 배울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 바를 선험적으로(a priori) 엄밀하게 한계 지어진 이론적 공간 내에 취합하고 요약하기 위해 몇 주 간의 강도 높은 작업에 투여했던 나의 노력이 헛된 것이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노력은 서로 다른 독자 집단들 -마르크스의 철학에 입문하는 사람들의 집단이든 마르크스 철학에 정통한 전문가 집단이든- 로 하여금 이 책이 정교하게 제작한 문으로 (하지만 동시에 이 책이 정교하게 제작한 문이 얼마나 적절한지에 대해서 토론해볼 수 있는 수단들 또한 제시하면서) 마르크스의 지적 세계에 들어갈 수 있게 해주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 책은 나로 하여금 내가 오랜 시간동안 탐구했던 마르크스 해석의 열쇠를 (하지만 이 마르크스 해석의 열쇠를 나와 동시대를 살고 있는 다른 마르크스 독자들의 해석의 열쇠와 대면하게 만들면서[각주:8]) 정식화할 수 있게 해주었다.

 

하지만 20년이라는 시간은 짧지 않은 시간이다. 세계, 그러니까 마르크스의 유명한 포이어바흐에 관한 번째 테제가 단순히 해석하는 것을 넘어 변형하라고 요구했던 사회세계는 변화했다. (나와 같은 세대의 다른 철학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역시 변화했다. 오늘날의 나는 얇은 책을 동일한 방식으로 있을까? 바로 질문이 프리더 오토 볼프가 책의 미래의 독일어권 독자들을 대표하여 나에게 제기했던 질문이었으며, 생각에 질문은 독일어권 독자들과 마찬가지로 프랑스어권 독자들도 제기할 있는 질문인 같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명백히 아니오이다. 나는 더 이상 이러한 방식으로 책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질문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대답해보자면, 1990년대 이후에도 내 철학적 작업을 위해 마르크스의 텍스트들로 끊임없이 되돌아왔음에도 내가 오늘날 이러한 종류의 종합을 생산해낼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내 대답은 명백히 아니오이다. 내가 [현실 사회주의가 붕괴한 이후인] 1990년대 이후에도 마르크스의 텍스트들로 끊임없이 되돌아왔던 이유는, 첫 번째로는 마르크스의 철학적이고 정치적인 다양한 질문들을 다루는 데 있어 그의 텍스트들이 지니는 유효성을 확인하기 위해서였고(순서 없이 나열해보자면, 폭력의 경제와 그 효과들의 양가성, 자본주의적 세계화에 의해 생산된 주체성과 행동역량의 변형, 보편성의 내재적 갈등들, 경계/국경frontières의 행정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기능과 작동, 관국민적 시민권[각주:9], 유럽적 세속주의와 그 프랑스적 변형태, 정교분리laïcité 등등), 두 번째로는 현재성을 강하게 지니는 이러한 질문들이 역으로 공산주의자 선언자본등등의 저자인 이 마르크스의 사유 내에서 우리로 하여금 어떠한 잠재성을 발견할 수 있게 해줄 수 있는지를 탐구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나는 마르크스의 철학을 훨씬 더 보강하고 많은 부분을 정정하는 작업에 착수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보강과 정정으로 인해 생산된 효과가 이 책이 다루는 주제들과 문제들을 훨씬 더 혼란스러운 것으로 만들 가능성이 높으며, 또한 내가 1993년에 행했듯 단일한 질문을 다루기 위해 이 주제들과 문제들을 서로 연결지을 수 있도록 해주는 핵심 원리를 오늘날에는 더 이상 발명해내지 못 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1993년에 행했던 이 강제”(forçage)가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생각하기는커녕, 오히려 나는 이 강제[현실 사회주의의 붕괴로 대표되는] 거대한 역사적 전환과 집단적인 철학적 글쓰기의 경험(나는 이러한 철학적 글쓰기의 집단적 경험과 긴밀히 결합되어 있었다) 사이의 해후점에서 일종의 필연성을 지니고 있었다고 믿고 싶다. 그리고 나는 철학자들의 이론적이고 실천적인 활용이 철학자 자신이 처해 있는 역사성에 대해 의식하도록 요구하는 자기-비판적인 차원(게다가 데리다처럼 말한다면 자기-탈구축적인 차원)을 영원히 지니고 있어야 한다고 스스로 확신하고 있기 때문에, 오늘의 나는 이러한 어제해후에 대한 인식이 마르크스와 함께하는, 그리고 동시에 마르크스에 반대하는우리 사유의 내일을 위한 조건들 중 하나라고 주장하는 위험까지도 감수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나는 이에 대해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으며, 이를 위해 독자들에게 상상력을 동원해 1990년대 초반, 특히 유럽의 정치적이고 지적인 정세로 되돌아가보라고 부탁해야만 할 것 같다(이러한 유럽중심주의eurocentrisme의 함의들에 대해서는 조금 뒤에 다시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다).

 

소련의 헤게모니 하에 있었던 현실 사회주의국가들의 갑작스러운 민주주의 혁명 속에서, 그 당시에 몰락했던 것은 사회혁명이라는 관념 그 자체였다고, 그리고 이 몰락과 함께 막 등장하기 시작했던 것은 바로 선순환” -선순환내에서 시장경제와 자유주의적 의회주의의 결합은 정반대로 정치가 그 반대물, 즉 우리가 그 때 막 최적화된 거버넌스”(gouvernance, governance)라는 용어로 지시했던 바로 변형되도록 만든다[각주:10]- 의 굉장히 문제적인 특징이었다고 우리는 매우 단순화시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보자면 이러한 풍경의 변화는 착시현상이었을 뿐인데, 왜냐하면 이 변화는 사회주의의 역사 또는 자본주의의 변형(그리고 이 둘 사이의 상호작용)에 대한 진정한 분석 없이 혁명담론을 정확히 그대로 전도한 것에 불과한 바에 기초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한 이 변화는 서구에서 근대성의 탄생 이후로 진보(progrès), 해방 그리고 혁명이라는 통념들을 결합할 수 있게 해주었던 그러한 역사철학의 범주들 -이 범주들은 우파 또는 좌파의 서로 다른 거대 서사들을 탄생시켰으며, 거대 서사들중에 사변적인 차원에서 부정적인 것의 역량을 통한 진보(progrès), 또는 폭력을 제도들과 사회적 형성물로 전환함으로써 이루어지는 진보라는 변증법적서사는 분명히 가장 영향력 있는 서사들 중 하나였음이 틀림없다- 을 다시 사고해야 한다는 명령을 포함하고 있다[각주:11]. 나와 같이 공산주의라는 통념에 담겨 있는 해방의 희망을 공유했던 이들(그리고 이 자리에서 고백하자면 여전히 그 해방의 희망을 공유하고 있는 이들 -하지만 이 공산주의라는 통념이 역사의 필연성에 조응한다는, 또는 이 공산주의라는 통념이 그 올바른 활용을 스스로 보증할 수 있다는 식의 환상은 전혀 없이)은 이러한 명령에 각별히 민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 스스로가 철학자이기를 원했던 이들은, 마르크스주의의 자기-비판적 능력을 가로막았던 바를(그리고 실천적인 차원에서는, -초기 쿠바혁명에 관해 레지스 드브레Régis Debray가 만들어냈던 표현, 하지만 중국 문화혁명이나 최소한 관념적 의미에서는 프라하의 봄에도 적용될 수 있는 표현을 따르자면- “혁명 속의 혁명을 위한 모든 시도들을 실행 불가능하게 만들었거나 파멸로 이르도록 만들었던 바를) 이론적이고 역사적으로 이해해야만 했다[각주:12]. 하지만 또한 이들은 부르주아의 시대(튀르고, 칸트, 헤겔, 콩트, 스펜서 등등)에 역사적 진보(progrès)의 목적론을 구성했던 가족 컴플렉스 내에서 마르크스주의가 진보 관념의 퇴폐성”(조르주 캉길렘) 자체를 넘어 그 비판적 기능이 영원히 작동할 수 있도록 보증해주는 특수한 차이성, 게다가 환원 불가능한 차이성을 지니고 있는지 아닌지를 규명해야만 했다[각주:13].

 

1960년대에 루이 알튀세르와 함께 집필했던 텍스트들(“‘자본 읽자”) 이래로 내가 최선을 다해 기여하고자 했던 알튀세르적마르크스주의는 이러한 종류의 질문들, 그리고 질문들이 지니는 철학적 함의들과 대면하기 위한 적절한 장소에 위치해 있었는가?[각주:14]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그렇다. 왜냐하면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이나 에른스트 블로흐(Ernst Bloch)와 같은 20세기의 다른 위대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을 따라(하지만 동시에 그들이 행했던 기여에 대한 거의 완전한 망각 속에서 그러했다고 말해야만 한다. 마르크스, 엥겔스 그리고 프로이트를 포함한 위대한 고전철학자들을 제외한다면, 레닌, 스탈린, 마오, 그람시, 브레히트, 루카치가 바로 알튀세르가 우선시했던 철학적 대화상대자들이었다), 알튀세르(와 그의 옆에 서있었던 우리)역사 개념의 개조와 역사유물론을 위한 장소론[각주:15](과잉결정된 동일한 인과성의 한 가운데에 서로 다른 실천들을 배치함으로써) 구축하기 위한 시도들에 있어 추구했던 바는 본질적으로 계급투쟁의 역사성을 (이 역사성에 그 예측 불가능한 사건성과 영원한 시작”, 재출발을 되돌려주기 위해) 선형성, ()결정성 또는 예언으로부터 분리하는 방식이었다.

 

그렇다. 왜냐하면 수많은 동요와 모순이라는 대가를 치름으로써, 알튀세르가 과학이라는 개념을 가지고서 스스로 행했던 고집스런 활용은, 과학에게 사회적 관계(rapports) 구체적인역사적 상황들의 객관성에 대한 분석 제시함으로써, 점점 사전에 확립된 과학성의 모델(공리화할 있는 마테시스mathèsis라는 모델이든, 실험과학의 응용 합리주의라는 모델이든, 또는 푸코가 구조주의적 대항-과학이라 불렀던 , 언어학, 정신분석학, 인류학의 모델이든) 마르크스주의에 적용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에, 그리고 성찰적이면서도 열려 있는, 게다가 아포리아적인 방식으로 점점 과학이라는 개념 ( 과학이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갈등성 자체로 변형하려 했기 때문에 그러하다. 이는, 당파적 입장이 이상 진리 또는 정당성의 어떠한 선험적(a priori) 기준도 포함하지 않는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당파적 과학”(science de parti)이라는 레닌주의적 관념을 확장하는 하나의 방식이기도 했다[각주:16].

 

그렇지 않기도 하다. 왜냐하면 완벽하게 신중한 방식으로이긴 했지만 어쨌든 알튀세르는 마르크스주의자로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몇몇 지점에 있어서는 이단적인 마르크스주의자로, 하지만 다른 몇몇 지점에 있어서는 정통적인, 심지어는 교조적인 마르크스주의자로 말이다. 이는 여러 가지 결과들을, 아마도 서로서로가 연결되어 있는 그러한 결과들을 이끌어내었던 것 같다. 우선 이는 알튀세르가 경제, 사회 그리고 역사에 있어서 계급투쟁의 현실이 지니는 우선성 -이러한 우선성은 내 생각에 마르크스주의 담론과 이 마르크스주의 담론이 지니는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한 그 비판적 힘의 이론의 여지없는 가장 강력한 요소들 중 하나로 남아 있다- 에 대해 양보하지 않으려 했다는 점을 의미했다. 또한 이는 알튀세르가 유럽의 특정한 역사(그리고 특히 시민사회국가사이의 특정한 위계화)로부터 만들어진 조직화의 형태들 -이 형태들은 계급갈등으로 하여금 상대적으로 스스로를 자율화하도록, 그리고 특수한 의식을 생성하도록 해준다- 내에서 사회학적이거나 문화적으로 결정된 그 무엇도 보지 않았음을 의미했다. 마찬가지로, 종종 생산적인 성과를 만들어냈던 만남과 대화(알튀세르에게 있어서는 샤를르 베틀렘Charles Bettleheim과의 만남과 대화, 그리고 조금 뒤 나에게 있어서는 이매뉴얼 월러스틴Immanuel Wallerstein과의 만남과 대화)에도 불구하고, 알튀세르는 역사적 마르크스주의 -공산당의 마르크스주의이든 [소련과 같은 사회주의] 국가의 마르크스주의이든 지식인들의 마르크스주의이든- 에 배어들어 있던 유럽중심주의(européocentrisme)에 대한 비판을 완수할 수 없었고, 세계사에 대한 유럽적 모델이라는 관념에 내재적인 목적론은 그에게서 확고하게 남아있었다(마르크스는 자본의 제사에서 막후에 존재하는”à la cantonade 세계 전체를 잠재적으로 언급하면서 de te fabula narratur, 이건 자네를 두고 하는 이야기일세라고 썼다).

 

다음으로, 이는 알튀세르의 사유에서 감추어져 있는 해방이라는 개념이 (비록 이것이 해방이라는 개념으로는 거의 언표되지 않는다 해도) 다양한 형태와 정도로 노동착취의 조건들에 대한 (혁명적) 변형이라는 관점에서 구조적인 방식으로 개념화된 남아있었다는 점을 의미했다. 결국 이는 알튀세르로 하여금 다른 지배관계 또한 동일하게 구조적이라고 사고하지 하게 하면서, 그리고 알튀세르가 정식화했었던 과잉결정이라는 개념으로부터 상당한 부분의 분석적 기능을 박탈하면서, 자본주의를 규정된 생산양식으로 만들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것이 이에 의존하는) 본질적인 사회적 관계(rapport)로도 만들었던 것이다. 이로부터, 부르주아 교육의 규율모델에 대항하는 1968 대학생들의 투쟁에 대한 알튀세르의 전적인 부정은 말할 것도 없고, 무엇보다도 특히 가부장제와 성차별주의에 반대하는 여성들의 투쟁에 대한 알튀세르의 무시가 유래하는 것이다(비록 몇몇 페미니스트들은 호명이라는 범주와 같이 지배 이데올로기와 관련해 알튀세르가 고안했던 범주들을 자신들만의 분석 내에 성공적으로 도입할 있었지만 말이다[각주:17]).

 

결국 이는, 알튀세르가 최후의 텍스트들에서 제시했던 우연의 유물론”(matérialisme aléatoire, 우발성의 유물론) -우연의 유물론은 각자의 방식으로 서로 협력하여 [알튀세르가 “‘자본을 읽자에서 제시했던 개념인] “사회효과의 형성에 기여하는 분화된 심급들로 분할된 사회구성체라는 관념 자체를 사라지게 만든다- 을 발명하면서 그 질문을 완전히 전위시키기 이전에는, 그리고 마르크스를 위하여에서 행했던 그의 유명한 선언, 최종심급이라는 고독한 시간은 절대 오지 않는다는 선언에도 불구하고, 알튀세르가 다양한 역사적 정세들 내의 지배심”(dominante)이 행하는 전위작용이 경제에 의한 최종심급에서의 결정자체의 존재를 다시 문제 삼는데 까지 나아간다는 점을 인정할 수 없었다는 점을, 그리고 사실은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는 점을 의미했다. 이는 알튀세르로 하여금 19세기 이래로 국가 이데올로기들 -그것이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이든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이든- 모두에 있어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던 경제주의-“경제의 종말이라는 유토피아주의 또는 종말론 내에서 이 경제주의를 거칠게 전도시킬 때를 제외하고는- “인간주의를 비판했던 때 만큼이나 근본적이고 급진적으로 비판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각주:18].

 

그러므로, 바로 이 모든 특징들로 인해 알튀세르(알튀세르주의자들” - 나는 어떠한 의미에서 이 알튀세르주의자들중 가장 충실한, 다시 말해 가장 명철하지 못한 알튀세르주의자였다)는 완벽히 마르크스주의자로 남아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특징들로부터 나는 (여전히 살아있는 자가 흔히 지니곤 하는 그 의심스러운 우월성을 통해) 이 특징들이 사유의 약점 또는 그러한 특성을 번역하는 것이라고는 전혀 주장하지 않으며, 또한 (만일 최소한 우리가 사회적 갈등이라는 관점에서 해방을 사유하기를 포기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 특징들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이를 언표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는 전혀 주장하지 않는다. 심지어 우리는, 그토록 많은 이들이 마르크스주의는 완전히 실패했다고 선언하거나, 또는 심지어 정직하게 말하자면 지적으로 옹호할 수 있는 입장이라는 의미에서의 마르크스주의는 존재한 적이 전혀 없었다고 선언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던 순간에도, 알튀세르만은 이 특징들을 스스로의 명예의 지점으로 만들었다고 말할 수 있다[각주:19]. 결국 (이 마르크스라는 유령을 깨운 뒤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의 뒤를 이은 신자유주의적 질서의 파괴력에 맞서 이 유령을 출몰하도록 소환하기 위해, 알튀세르 이후에 특이한 방식으로 다른 철학자들이 마르크스에게서 발견하려 했던 바와 근접하는 몇몇 메시아적 발상들을 제외한다면[각주:20]), 알튀세르는 무엇보다도 마르크스주의의 개념적 경제에 대한 내재적 비판에 놓여 있는 마르크스주의(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는) ()마르크스주의 사이의 원환을 파괴할 수 있는 수단들에 대한 본질적으로 거의 부정적인 표상을 스스로 만들어냈던 것이다.

 

책을 집필했던 1993년에 내가 인식했었던 정세에 대한 이렇듯 요약적인 묘사를 통해, 그리고 나의 지적 형성과정과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출발하여, 지금 나는 얇은 책에서 내가 어떻게 저작의 성격과 출간 시기가 나에게 부과했던 강제들을 어떤 의미에서는 자신을 위해 활용하면서 앞으로 나아갈 있었는지를 가장 이해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 나는 내가 모든 변형, 재정식화, 외삽 -하지만 이러한 변형, 재정식화, 외삽의 출발점은 마르크스가 했던 말들과 썼던 구절들에 대한 망각이 아니라 말들과 구절들이 지니는 내재적 동요일 것이다[각주:21]- 열려 있는 문제설정으로 개념화했던 마르크스의 철학, 노동자운동과 계급투쟁 조직의 역사적 순환의 완료라는 시간(다시 말해 19세기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출현과 20세기 현실사회주의체제들의 몰락 사이의 시간) 의해 한정된, 그리고 (유럽이라는 지리적 경계뿐만 아니라, 제국주의와 병존하면서도 동시에 제국주의에 대립하는 그러한 사회투쟁과 의식적 생성 대한 특정한 분석모델을 유럽으로부터 수출한다는 점에 의해서도) 공간에 의해 한정된 그러한 관념들과 제도들의 역사적 현상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 사이에 가능한 가장 근본적인 구분선을 긋고자 결심했다. 더욱이 이는 좋은 마르크스나쁜 마르크스주의를 맞세움으로써 [여러] 마르크스주의들이 스스로 확립했던 전통에서처럼 나쁜 마르크스주의에 의한 좋은 마르크스의 오염을 피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는 오히려 마르크스와 마르크스주의를 서로 결합시키는 관계를 변형(varier)하기 위한 수단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고(마르크스가 이미 마르크스주의가 구축되는 데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았다는 생각 자체가 착각이다), 그럼으로써 바로 그 관계 안에서 괴리(décalage) 내지 비-동시대성(이 비-동시대성이 우리에게 분석의 수단이 되는 동시에 성찰을 행할 수 있게끔 우리를 추동할 것이다)이 출현하게끔 만들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모든 마르크스주의 -심지어 이단적인 마르크스주의도 포함하여- 본질적으로 마르크스 사유의 일관성과 완결성을 전제해야만 하기 때문에(그리고 그러한 사유를 발명해야 필요성을 가지기 때문에), 이러한 전제와는 정반대로 나아가기 위해, 마르크스의 사유에 대한 나의 이러한 기술이 마르크스가 열어젖힌 작업장 안에서 새로운 철학 노동자들 서로서로를 - 철학 노동자들 정세(특히 정세의 위기 또는 비극) 요청에 따라 서로서로를 이어주지만 하나의 전체 내에서 모두가 결합되지는 않는다 - 작업장 안으로 들어오도록 만들기를 희망하면서, 나는 마르크스의 사유를 본질적으로 스스로의 선택에 있어 다양(multiple)하고 불확실하며 고유하게 완성 불가능한 으로 제시하기 위한 많은 노력을 투입해야 했다.

 

동일한 맥락에서 나는 이러한 내재적 다양성(multiplicité, 다수성)과 내재적 열림을 드러내기 위해 1993마르크스의 철학출간 당시 내 편집자에게 내 저서의 제목을 마르크스의 철학들로 붙이자고 설득하려 했다. 하지만 편집자는 (나의 미학적 만족감을 빼앗으면서, 하지만 나를 있을 수 있는 어떠한 오해로부터 벗어나도록 해주면서) 이를 거절했는데, 편집자에게는 마르크스의 철학들이라는 제목이 대학생들에게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한 동일한 총서에서 단수로 표기된 두 가지 다른 저서, 즉 각각 마르크스의 경제학마르크스의 사회학[각주:22]마르크스의 철학과 동시에 출간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경제학, 사회학, 철학 사이의 이러한 분업은 나의 작업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인데, 왜냐하면 나는 체계로서든 방법으로서든 자율화될 수 있는 철학이라기보다는 마르크스의 철학독일어 번역본의 서문에서 프리더 오토 볼프가 탁월하게도 philosophische Tätigkeit라고, 다시 말해 철학적 활동이라고 불렀던 바를 그 당시에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자신의 활동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는 푸코의 정식을 끊임없이 생각했었던 것인데, 이 정식이란 바로 역사라는 작업장 내에서의 철학적 단편들[각주:23]이라는 정식이다. 마르크스와 푸코라는 이 두 저자들은 하나로 겹쳐질 수 있는 저자들이 아님에도, 이 둘은 메타이론적 전제조건(préalable)으로서의 철학이라는 개념화에 대한 거부를 동일하게 공유하며, 마찬가지로 철학적인 것이 유물론 -우리들이 이 유물론이라는 표현을 원한다면- 에 속하는 탐구와 분석을 내재하고 있다는 전제를 동일하게 공유하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 나는 마르크스가 수행했던 탐구들이 이 탐구들 서로서로의 (정확히 말하자면) 대안적 열림으로 배치될 수 있게 해주는 사변적 질문을 다시 제기하고 이 질문을 명료한 것으로 재가공해 보겠다고 결심했었다(나는 이를 위해 각각 2, 3, 4장을 집필했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재가공의 핵심 원리로 이론실천사이의 통일(또는 결합)이라는 오래된 질문을 다시 취했다. 우리는 이 오래된 질문이 서양 형이상학의 기원들 그 자체, 다시 말해 사유와 존재는 단 하나의 동일한 것이라고 주장했던 파르메니데스, 그리고 두 가지 유형의 철학 -“품행”(conduite, 행동), “삶의 양식”(genre de vie) 또는 스스로 자기 자신을 통치하는 하나의 방식을 가르치는 철학과 인간 영혼의 구조에 비추어진 영원한 진리를 관조하는 철학- 사이의 관계에 대한 소크라테스적 논쟁들까지 이어지는 기원들에 뿌리내리고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또한 우리는 이 오래된 질문이 이론은 경험의 조건들을 명확히 대면해야만 하는 그러한 지평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그리고 실천세계의 변형이라는 내재적 목표를 지니고 있다는 점을 독일 관념론을 통해 발견함으로써 근본적이고 급진적인 변형을 겪었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다. 이론의 여지 없이 마르크스는 이러한 계보에 기입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에서 설명된 반정립[대립], 이전의 유물론관념론사이의 반정립을 지양하는 비판적 도식과 관련하여, 오늘날 나는 사상적 맥락과 관련해 그 명칭의 상대성을 보여주기 위해서 만큼이나 도발적 제스처를 취하기 위해, 마르크스가 독일 관념론의 위대한 대표자들 중 마지막 인물일 뿐만 아니라, 더욱 정확히 말해 독일 관념론의 활동적(activiste) 변형태로서의 인물이기도 하다는 점을 반복하여 지적하는 것이다[각주:24][각주:25]. 하지만 문제는 여기에서 마르크스가 완성이라는 형태 하에, 그러니까 종합또는 체계” -자신의 독일 관념론의 선조들인 칸트, 피히테, 헤겔이 제시했던 종합이나 체계보다 더욱 일관된- 라는 형태 하에 기입되는지, 아니면 반대로 마르크스가 내재적으로 비판적인 철학적 활동이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에 대한 물음을 사전에 준비된 손쉬운 해결책 없이 다시 제기하는 질문의 전위 또는 다시-열림[재개방]을 대표하는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1993년에 마르크스의 철학을 집필하면서 내가 선택했던 방향은 결국 마르크스 자신의 정식화들로부터 출발하여 이론과학(위에서 이미 언급했듯이, 여기에서 과학은 자신의 과정과 대상 내의 도래할 과학이라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으로 변형하고 실천혁명(나의 관점에서 이는 명백히 혁명 속의 혁명을 의미하는 것인데, 혁명 속의 혁명은 역사적으로 존재하는 이 혁명의 모델들과 동시에 혁명 자신까지도 혁명화하는 것이다)으로 변형하는 -비판을 이 과학과 혁명의 결합 또는 해후의 목표 그 자체로 만들기 위해- 두 번째 방향으로 가능한 한 멀리 나아가는 것이었다. 결국 나는 주체와 대상 사이의 분리의 해소라는 모든 고전적 관념론을 지배하는 변증법적 도식으로부터 확실히 거리를 두려고 노력했다(특히 프롤레타리아를 역사의 대상-주체로 메시아적으로 개념화했던 1923년의 천재적 저서 역사와 계급의식” -이 저서는 세계혁명의 시작으로 등장했던 볼셰비키 혁명이라는 그 짧은 순간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의 게오르그 루카치와 같이, 이러한 도식이 마르크스주의 자신의 중심에서 놀라운 사변적 성과들을 산출했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리고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어떠한 유산에 반대하여(이 유산과 관련하여, 합리성 일반에 대한 도착적 효과에 대한 비판 이외에, 알튀세르주의에서는 완전히 무시되었던 바인 상품논리로 인한 예속화의 일상적 형태들에 대한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분석이 지니는 독창적 힘에 대해서는 내가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고 할지라도[각주:26]), 나는 이론은 그 자체로 비판인 것이 전혀 아니, 대신 항상 현실의 해방, 봉기 또는 혁명과의 (“우연적인”) 문제설정적 관계를 통해서만이 이론은 비판을 예상할 수 있고 그 반작용을 경험할 수 있다고 사고하기 위해 노력했다. 결국, 내가 마르크스에게서(그리고 아마도 마르크스 이외의 다른 이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으리라 믿는 철학적 활동의 양식 내에서, 인식에 대한 요청(exigence de connaissance, 인식에 대한 욕망)이 매우 멀리까지 밀어붙여져서, 이 인식에 대한 요청은 지배 이데올로기를 침식시킬 위험뿐만 아니라 또한 해방의 욕망에 자리잡고 있는 환상(illusions)을 폭로할 위험 또한 항상 가지고 있게 되었다[각주:27]. 그리고 혁명에 대한 요청(exigence de révolution, 혁명에 대한 욕망)(또는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현재의 상태에 대한 수용을 거부하기)이 매우 멀리까지 밀어붙여져서, 이 혁명에 대한 요청은 자본주의(더 일반적으로 말해 상품사회, “부르주아사회, “가부장제사회, “제국주의사회)의 변형 경향과 그 반경향으로부터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바를 고려했을 때 혁명의 목표들을 가능한 것으로보다는 불가능한 것으로 보이도록 만들 위험이 있다. 하지만 이 이중의 위험이 바로 철학에서 뿐만 아니라 삶에서도 새로운 것을 도입하기 위해 우리가 감수해야만 하는 그러한 위험이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나는 마르크스가 과학과 혁명 모두를 위해서 정말로 이러한 위험을 감수했다고 말할 있다고 믿는다( 효과를 통해서가 아니라면 파악 불가능한 과학과 혁명 사이의 경계면 내에서 과학과 혁명 사이의 비판적 개입과 개념적 창조의 , 근대 사유의 역사에서 비견할 바가 거의 없는 그러한 [탁월하고 독특한] 장을 만들면서). 자신만의 방법으로 또는 마르크스에 대한 새로운 독해를 통해 마르크스가 천착했던 철학적 대상들 사유하는 오늘날의 내가 취하는 방식과 관련하여 비록 많은 것들이 변화했지만, 여기에서 나는 다음을 다시 반복하여 말하고자 한다. 마르크스가 실천(praxis)이라 불렀던 집단적인(또는 낫게 말해 관계적인relationnelle, 관개체적인) 정치적 주체화, (마르크스가 개인과 계급이 국가와 맺는 관계를 우선시할 때에는 이데올로기라고, 또는 개인과 계급이 상품적이고 화폐적인 형태와 맺는 관계를 우선시할 때에는 물신숭배라고 부르는) 지배적인 사회관계에 내재하는 오인(méconnaissance) 효과, (마르크스가 철학의 빈곤에서 역사는 나쁜 방향으로 전진한다” -만일 역사가 정말 전진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프랑스어로 지적했듯[각주:28]) 자본주의 고유의 파괴적 효과가 생산하여 자본주의의 개인주의적이고 공리주의적인 논리에 미치는 반사효과, 다시 말해 마르크스가 천착했던 가지 철학적 대상들[각주:29].

 

이는 또한, 분명 상당한 논의가 필요한 것이지만 이 글이 이러한 논의를 위한 장소는 아니므로 한 마디로 말하자면, 내가 마르크스주의에 고유한 윤리라는 통념을 마르크스의 철학에서의 논의 전체에 전혀 개입시키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이 윤리라는 통념에 관하여 이 윤리가 과학적 인식과 혁명적 정치의 결합에 필수적인 체계적보충물을 형성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이러한 윤리에 대한 논의의 공백이 몇몇 독자들을 놀라게, 심지어는 충격을 받게 만들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이에 대한 증거를 역사에 대한 모든 애도와 교훈에 저항하는 끈질긴 반인간주의를 보고 사람들이 느끼는 놀라움과 충격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내가 조금은 다른 작업가설을 감히 제시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윤리는 사유 내에 존재하기 위해 윤리 그 자체로 불리울 필요가 없다. 또는 오히려, 윤리가 윤리 그 자체로 불리우고 인식의 관점과 세계에 대한 변형의 관점 사이의 철학적 매개를 구성하자마자, 윤리는 필연적으로 타협(conciliation)과 화해(réconciliation, Versöhnung)의 기획이 되는 것이다. 비록 이러한 기획이 가설적 형태, “규범적”(normative) 형태 하에서 진행되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내 생각에 정치에서와 마찬가지로 인식에서도 윤리의 정당성을 인정해주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오히려 모순 내에 머무르기이다. 인식과 정치의 공통된 적용점을 찾기 위해, 그리고 여기에 수많은 지적이고 사회적인 힘들을 수렴시키기 위해 (변화 없는 수동적인 방식으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힘겨운 노력이라는 형태로 이 모순에 머무르면서 말이다. 물론, 우리가 살고 있고 작업하고 있는 정세가 거의 완전히 20년 전으로 회귀했음에도, 나는 20년 전과 달리 정말 많이 변했다. 그리고 이러한 회귀는 더 이상 사회주의를 구축하기 위한 시도의 최종적 위기라는 모습이 아니라, 주체들의 의식과 정서(affectivité)를 극도로 폭력적인 방식으로 단절시키는, 그 전개를 예측할 수 없는 자본주의의 (생산주의적) 축적양태와 (금융적) 조절양태의 구조적 위기라는 모습을 띠고 있다. 하지만 나는, 최소한 내가 이해하는 바로서의 마르크스와 함께, 인식[과학]과 혁명이라는 두 가지 요청들이 (사람들이 조금만 선의를 보여주면 모두 취할 수 있는) 동전의 양면으로 나타난다고 가정하기보다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윤리가 타협 불가능한 이 두 가지 요청들 사이에서 스스로 분열되는 그러한 윤리라고 변함없이 생각하고 있다. 더 이상 과학은 혁명을 위해 희생되어서는 안 되며, 더 이상 혁명은 과학을 위해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이러한 영원한 긴장으로부터 생겨나는 불편함(malaise) 또는 아픈 상태”(malêtre)[각주:30]가 바로 우리로 하여금 잠들지 못 하게 만드는 것이다[각주:31].

 

  1. 옮긴이 주: 윤소영 교수의 1995년 문화과학사 번역본에 실린 발리바르의 ‘한국어판 서문’ 참조. [본문으로]
  2. 옮긴이 주: 참고로 ‘포슈’, 즉 poche란 ‘주머니’를 의미하며, 포슈판이란 주머니에 넣고 다닐 만큼 작은 사이즈의 책자를 뜻한다. 또한 Repère는 ‘좌표’라는 의미이며, 인문사회과학을 공부하는 대학생들을 위한 좌표의 역할을 하는 총서라는 의미이다. [본문으로]
  3. 옮긴이 주: conception, notion, concept의 번역어 선정과 관련해서는 1장의 옮긴이 주 X번을 참조하라. [본문으로]
  4. 각주: 프리더 오토 볼프가 번역하고 서문을 쓴 이 독일어 번역본은 Marx’ Philosophie. Mit einem Nachwort des Autors zur neuen Ausgabe, übersetzt und eingeleitet von Frieder Otto Wolf (b_books, Berlin, 2013)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예전에 포르투갈의 코임브라(Coimbra) 대학의 교수였으며 유럽 의회의 그뤼넨(Grünen) 대표이기도 했던 프리더 오토 볼프는 현재 베를린 자유대의 명예교수(professeur hohoraire)이다. 그는 알튀세르의 텍스트 다수를 독일어로 번역했다. 특히 그는 Radikale Philosophie. Aufklärung und Befreiung in der neuen Zeit (Verlag Westfälisches Dampfboot, Münster, 2009)의 저자이기도 하다. 이 후기를 재판 서문으로 싣는 것을 흔쾌히 허락해준 b_books 출판사에 감사한다. [본문으로]
  5. 옮긴이 주: transindividualité, 즉 ‘관개체성’이라는 번역어에 관해서는 2장의 옮긴이 주 X번을 참조하라. 참고로 ‘관계의 존재론’에서 ‘관계’는 relation을 번역한 것이고 ‘관계들’은 rapports를 번역한 것이다. 프랑스어에서 relation이 상당히 추상적인 의미의 관계를 지시하는 반면 rapport는 상당히 구체적인 의미의 관계를 지시한다는 차이를 지니긴 하지만 굳이 구분해서 번역하거나 원어를 병기하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relation을 쓰느냐 rapport를 쓰느냐를 결정하는 것이 의미의 차이이기도 하지만 관습에 따른 차이인 경우도 많기 때문이며(예를 들어, 관습적으로 프랑스어로 생산관계는 영어에서와 달리 relation이 아니라 rapport를 사용하여 rapports de production이다), 또한 발리바르 자신이 이를 엄밀하게 구별해서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필요한 경우에만 한하여 앞으로 원어를 병기하도록 하겠다. [본문으로]
  6. 각주: 이 동일한 텍스트의 이탈리아어 번역본은 논문모음집 Il transindividuale. Sogetti, relazioni, mutazioni (에티엔 발리바르와 비토리오 모르피노Vitorio Morfino 책임편집, Mimesis Edizioni, Milan, 2014)에 실린 바 있다. [본문으로]
  7. 각주: 위에서 언급했던 “마르크스의 철학”의 독일어 번역본에서, 프리더 오토 볼프 자신이 마르크스와 마르크스주의에 입문하기 위한 서지사항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제시하는 작업을 수행했다. 프리더 오토 볼프는 현재 다양한 언어로 이루어지고 있는 마르크스와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논의들을 반영하면서 이 체계적으로 정리된 서지사항을 집필했으며, 내가 아는 한에서는 이에 견줄 수 있는 서지사항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프리더 오토 볼프의 서지사항은 직접 프랑스어로 옮겨서 제시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은 아니기에 여기에 번역하여 싣지는 않는다. [본문으로]
  8. 각주: 다니엘 벤사이드(Daniel Bensaïd)의 글들을 온라인에 아카이빙하기 위해 만든 사이트에서 나는 1993년 벤사이드가 이 책을 위해 썼던 노트인 “Étienne Balibar, La Philosophie de Marx”를 발견하고 상념에 젖었다. 이 글은 마르크스의 철학에 대한 관점에 있어서 벤사이드와 나 사이의 일치점들과 불일치점들을 강조한다. www.danielbesnsaid.org/etienne-balibar-la-philosophie-de?lang.fr 를 보라. [본문으로]
  9. 옮긴이 주: la citoyenneté transnationale의 번역어로 ‘관국민적 시민권’을 채택한 이유에 대해서는, 에티엔 발리바르, “우리, 유럽의 시민들?”, 진태원 역, 후마니타스, 2010에 실린 역자 진태원 교수의 옮긴이 해제를 참조. [본문으로]
  10. 각주: 세계은행의 토론 페이퍼(discussion paper)인 “Managing development : The governance dimension”은 사람들이 종종 이 거버넌스라는 용어가 지금과 같은 의미로 체계적으로 사용되게 된 기원으로 설정하는 텍스트이다. 이 텍스트가 작성된 시기는 1991년 8월이다. [본문으로]
  11. 각주: 나는 2010년 갈릴레 출판사(éditions Galilée)에서 출간된 내 저서인 “폭력과 시민다움: 웰렉 도서관 강연과 정치철학에 관한 에세이들”(Violence et Civilité. Wellek Library Lectures et autres essais de philosophie politique)을 구성하는 여러 글들에서 이 문제를 다루었다. [본문으로]
  12. 각주: Régis Debray, Révolution dans la révolution? Lutte armée et lutte politique en Amérique latine, Maspero, Paris, “Cahiers libres”, 1967. [본문으로]
  13. 각주: Georges Canguilhem, “La décadence de l’idée du progrès”, Revue de métaphysique et de morale, volume 92, n.4, 1987, p. 437-454. “콤플렉스”의 기원에 관해서는, 또한 Bertrand Binoche, Les Trois Sources des Philosophies de l’Histoire (1764-1798), PUF, Paris, 1994 (2판, Presses de l’Université Laval, Québec, 2008)을 보라. [본문으로]
  14. 각주: 나는 여기에서 독자들에게 루이 알튀세르, 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ère), 피에르 마슈레(Pierre Macherey), 에티엔 발리바르, 로제 에스타블레(Roger Establet)가 공저했으며 1965년 프랑수아 마스페로 출판사에서 출간된 이 집단저작이 프랑스 문화부 특임 위원회에 의해 2015년 “국가 기념저서” 리스트에 포함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픈 (자기)조롱의 즐거움을 누리고자 한다. 염치없게도 나는 심지어 그 수상소감문을 집필해달라는 요청을 수락하기도 했는데, 왜냐하면 제도적 인정 -분명히 어떤 이들은 이 제도적 인정에서 자신들의 조금은 덜 너그러운 예상에 대한 확인을 보기도 할 것이다- 에 속하는 바이기도 한 지나간 시간의 “교훈”과 과감히 맞서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제도적 인정에서 조금은 덜 너그러운 자신들의 예상에 대한 확인을 본다는 것은, 이 집단저서 “‘자본’을 읽자”의 의의를 인정하지 않는 독자들이 결국은 이 국가제도적 인정으로부터 이 책이 그 당시 표방했던 바와 모순되는 지점을 발견하고 ‘그럼 그렇지…’라는 냉소를 보낼 것이라는 의미인 듯하다 - 옮긴이) [본문으로]
  15. 옮긴이 주: ‘장소론’, 즉 topique에 대해서는 윤소영 교수의 다음 설명을 참고할 수 있다. “알튀세르는 ‘절단’이라는 범주와 함께 ‘토픽’이라는 범주를 사용하는데, 토픽이란 본래 희랍어 ‘토포스’에서 유래한 용어이다. 플라톤은 인간에 의해 조직되지 않는 비규정적 공간을 가리키는 ‘코라’(spacing, emplacement)라는 용어로 감각적 사물과 인식가능한 형식의 비동일성을 설명한다. 이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코라를 ‘결여된 제1의 질료’로서 토포스와 동일시하는데, ‘공통의 장소(common-place)’로서 토포스는 자연학에서는 운동을 설명하는 ‘물체의 한계’이고, 수사학/논리학에서는 ‘입장’ 또는 ‘관점’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토픽은 이런 이중의 의미에서 ‘장소론(topography)’이다. 근대에 들어와 토픽은 법률용어로 사용되면서, 법률적 장치의 토포스로서 ‘심급들’에 준거한 법률적 절차를 가리킨다. 프로이트가 토픽이라는 용어를 채택할 때에도 같은 의미이다. 즉 프로이트의 토픽이란 정신적 장치의 ‘심급들’에 준거한 정신적 절차에 대한 접근 방법이고, 동시에 주어진 계기에서 ‘심급들’의 접합양식 자체를 가리킨다. 알튀세르의 사회구성체 개념이 이같은 프로이트적 용어법에 충실하다면, 라캉은 라이프니츠적 수리논리학의 영향을 받아 프로이트의 토픽을 ‘위상기하학(topology)’으로 번역한다.”(윤소영, ‘알튀세르의 ‘스피노자-마르크스적’인 구조주의: 라캉과의 논쟁을 중심으로’, “구조주의 혁명”,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0, pp. 238-239). [본문으로]
  16. 각주: 특히 1976년의 미간행 텍스트 ‘마르크스와 프로이트에 대하여’에 담겨 있는 이러한 관념은 의외의 다행스런 번역을 통해 1977년 롤프 뢰퍼(Rolf Löper)와 페터 쇠틀러(Peter Schöttler)가 편집해 출간했던 독일어 판본에서 “분파적 과학”(science schismatique)이라는, 부분적인 프랑스어 판본들에서보다 더욱 강력하고 더욱 명료한 관념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Louis Althusser, Ideologie und ideologische Staatsapparate. Aufsätze zur marxistischen Theorie, Reihe Positionen 3, VSA, Hambourg-Berlin-Ouest, 1977, p. 93을 보라)(프랑스어 텍스트는 Louis Althusser, Écrits sur la psychanalyse. Freud et Lacan, Stock-IMEC, Paris, 1993, p. 222-246에 실려 있으며 1996년 Livre de Poche에서 재판이 나왔다). (프랑스에서는 1993년에서야 이 ‘마르크스와 프로이트에 대하여’가 출간될 수 있었던 반면, 독일에서는 뢰퍼와 쇠틀러의 작업 덕택에 1977년에 이미 이 텍스트의 번역본을 읽을 수 있었고, 그 덕분에 ‘당파적 과학’이라는 관념보다 훨씬 명료한, ‘마르크스와 프로이트에 대하여’에 등장하는 ‘분파적 과학’이라는 관념으로 이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는 의미이다. 이 텍스트의 국역본으로는 독일어 번역본을 번역원본으로 하고 프랑스어 원본과 대조하여 번역한 이진숙/변현태 옮김, ‘마르크스와 프로이트에 대하여’, 윤소영 편역, “알튀세르와 라캉: ‘프로이트-마르크스주의’를 넘어서”, 공감, 1996을 참조 - 옮긴이) [본문으로]
  17. 각주: 이에 대한 가장 탁월한 예는 알튀세르에 대한 흥미로운 비판 또한 포함하고 있는 주디스 버틀러의 작업 “권력의 정신적 삶”일 것이다. Judith Butler, La Vie psychique du pouvoir, Leo Scheer 불역, Paris, 2002. [본문으로]
  18. 각주: “마르크스를 위하여”에서 제출된 테제들의 관점에서 경제주의와 인간주의 사이의 대칭성을 연구하는, 알튀세르 학파에서 나온 가장 면밀한 작업으로는 프랑수아 레뇨(François Regnault)가 XXX라는 이름으로 익명으로 출간한 논문 “L’idéologie technocratique et le teilardisme”(Les Temps modernes, n. 243, 1966년 8월)을 보라. [본문으로]
  19. 옮긴이 주: ‘명예의 지점’은 le point d’honneur를 번역한 것으로, 프랑스어의 문어와 구어 모두에서 많이 쓰이는 말이다. 이는 마르크스주의자로서의 알튀세르가 마르크스주의의 ‘약점’으로 남들이 간주했었던 바조차 자신의 것으로 당당하게 수용하고 이를 자신의 명예로운 점뿐만 아니라 마르크스주의의 명예로운 점으로도 만들기 위해 이 약점에 대한 개조작업을 수행하였음을 뜻한다. [본문으로]
  20. 각주: 물론 이 지점에서 나는 당연히도 자크 데리다의 유명한 저서 “마르크스의 유령들: 부채국가, 애도작업 그리고 새로운 인터내셔널”(Spectres de Marx. L’état de la dette, le travail du deuil et la nouvelle internationale, Galilée, Paris, 1993)을 떠올리고 있다. 이 저서는 알튀세르라는 이름을 언급하지는 않으면서도 알튀세르에 대한 생생한 비판을 포함하고 있다(이에 대해서는 나의 글 Étienne Balibar, “Eschatologie/téléologie. Un dialogue philosophique interrompu et son enjeu actuel”, Lignes, n. 23-24, 2007년 11월을 보라). [본문으로]
  21. 각주: “동요”는 마르크스주의 내에서의 “이데올로기”라는 질문의 계보학을 제시하기 위해 이전에 내가 이미 사용했던 단어이다. Étienne Balibar, “La vacillation de l’idéologie dans le marxisme”, 1983-1987 (La Crainte des masses. Politique et philosophie avant et après Marx, Galilée, Paris, 1997에 다시 실림)을 보라. [본문으로]
  22. 각주: Pierre Salama & Tran Hai Hac, Introduction à l’économie de Marx, La Découverte, Paris, “Repères”, 1992; Jean-Pierre Durand, La Sociologie de Marx, La Découverte, Paris, “Repères”, 1995. [본문으로]
  23. 각주: Michel Foucault, Michelle Perrot 외, L’impossible Prison, Seuil, Paris, 1980, p. 41. [본문으로]
  24. 각주: Barbara Cassin (책임편집), Vocabulaire européen des philosophies, Seuil/Le Robert, paris, 2004, p. 988-1002에 실린 나의 논문인 Étienne Balibar, “Praxis”(바르바라 카상Barbara Cassin과 상드라 로지에Sandra Laugier와 함께 씀)을 보라. [본문으로]
  25. 옮긴이 주: 여기에서 발리바르가 마르크스를 독일 관념론의 최후의 인물이자 동시에 독일 관념론의 ‘활동적 변형태’이기도 하다고 지적하는 바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들’에서 마르크스가 관념론자들의 철학을 포함하여 감각적 유물론자, 즉 포이어바흐에게까지 가했던 비판을 살펴보아야 한다. 본서의 2장을 참조하라. [본문으로]
  26. 각주: 이러한 상품논리로 인한 예속화의 일상적 형태들에 대한 분석 -알튀세르주의에서는 완전히 무시되었지만- 은 20세기의 또 다른 위대한 프랑스 마르크스주의자인 앙리 르페브르에게서 자신만의 방식대로 재전유되었다. 르페브르는 1947-1981년의 “일상생활 비판”에서부터 1968년의 “도시의 권리”와 1974년의 “공간의 생산”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분석을 자신의 작업의 한 부분 전체의 중심에 놓았다. [본문으로]
  27. 옮긴이 주: ‘인식에 대한 요청’, 또는 달리 말해 ‘인식에 대한 욕망’에 대해서는 짧지만 자신의 주장을 명료하게 표현하고 있는 글인 ‘오히려 인식하라’를 참조하라. [본문으로]
  28. 옮긴이 주: 마르크스는 “철학의 빈곤”을 프랑스어로 집필했기 때문에, 당연히 이 ‘나쁜 방향’과 ‘전진한다’를 모두 프랑스어, 즉 mauvais côté와 avance로 표현했다. [본문으로]
  29. 옮긴이 주: 이 세 가지 대상들 각각이 바로 본서의 2장과 3장, 그리고 4장이 다루는 주제이다. [본문으로]
  30. 옮긴이 주: 아프다, 불편하다, 나쁨, 악 등을 의미하는 mal과 존재, 상태, -이다 등을 의미하는 être를 합친 malêtre는 아픈 상태, 나쁜 상태, 불편한 상태, 아픈 존재, 나쁜 존재, 불편한 존재 등으로 번역이 가능하고 발리바르는 이러한 의미를 모두 지니도록 이 두 단어를 합친 것이지만, 여기에서는 앞의 ‘불편함’이라는 단어와 형성하는 맥락을 고려해 ‘아픈 상태’ 정도로 옮긴다. [본문으로]
  31. 옮긴이 주: 재판 서문의 마지막 부분에서 설명되는 과학과 혁명 사이의 관계라는 문제에 대해서는 본서의 5장 ‘과학과 혁명’, 또는 조금 더 의역하자면 ‘과학이냐 혁명이냐’를 참조하라. [본문으로]
댓글 로드 중…

최근에 게시된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