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여성의 모성 : 억압의 지점에서 저항의 공간이 되기까지
해미
1. 들어가며
이 글은 패트리샤 힐 콜린스의 <흑인 페미니즘 사상> 에서 제시된 통제적 이미지로서의 ‘흑인 모성'의 생성 배경 및 작동 방식과 흑인 모성, 더 나아가 출산 및 양육에 대한 흑인 여성의 대응 방식을 분석한다. 여기서 통제적 이미지란 교차하는 여러 억압을 정당화하고 지속시키는 이데올로기를 생산하는 이미지를 말한다. 흑인 여성에 대한 통제적 이미지는 흑인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노동력의 착취를 정당화하려는 지배집단의 계략과 흑인 확대가족 네트워크 내에서 흑인의 생존을 위해 구축된 문화가 얽혀 생성된다. ‘흑인 모성’은 흑인 여성이 병행한 유모화된 유급노동과 양육이라는 무급노동의 착취를 정당화하는 통제적 이미지로 다양하게 활용된다. 가령 백인 지배집단에서는 흑인유모 이미지를 통해 흑인 여성이 백인 가정에서 수행하는 유모화된 노동에 대한 착취를 정당화하며, 흑인공동체 내에서는 가모장 이미지와 ‘강인한 흑인 어머니’라는 이미지를 통해 흑인 남성이 양육에 대한 책임을 오롯이 흑인 여성에게 전가하게끔 한다. 이로 인해 흑인 여성은 신화화된 모성, 더 나아가 출산과 양육을 강요받으며 계획하지 않은 아이를 받아들이고 오랜 시간 동안의 양육의 의무를 지며 개인적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러나 본 글의 목적은 흑인 모성을 통한 통제적 이미지로 인해 발생하는 부정적인 효과를 넘어, 흑인 모성이 흑인 여성의 힘기르기의 지점으로써 발하는 것을 분석하는 데 있다. 당시 흑인 여성은 양육을 위해서든 경제적 자립을 위해서든 노동을 하기 위해 계속해서 지배집단과 마주쳐야 했으며, 또한 흑인공동체, 곧 확대가족 네트워크를 벗어나 생존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흑인 여성은 이 억압적인 공간 내부에 머물면서도 모성 신화가 만든 통제적 이미지들을 해체하고 모성을 자기 정의를 하는 지점으로 새롭게 정의한다. 무엇보다 모성은 흑인 여성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하나의 용기이자 힘이었으며, 여기서 흑인 여성들의 정치적인 운동이 시작된다. 흑인 여성들은 자녀와의 관계에서 자아존중감을 회복하고 다른 흑인 여성과 함께 모성을 실천하며 총체적인 자아를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일상 속에서 행하는 모성과 통제적 이미지로 인한 왜곡된 모성 사이에서 모순을 발견하고, 진정한 모성에 대한 입장을 규정하였다. 이와 같이 이 글은 억압의 지점으로만 보였던 흑인 모성을 흑인 여성이 행위 주체성을 통해 스스로를 정의하며 생존하는 저항의 지점으로 바꿨던 사실을 조명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이다. 다만 본고에서는 흑인 모성 이미지가 활발히 작동하던 시기의 흑인 여성의 네트워크를 집중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탈식민화 및 초국가적 상황의 출현과 더불어 전지구적 경제로 인해 확대가족 네트워크가 약해진 근래 이전으로 분석 시기를 한정한다.
2. 통제적 이미지로써 흑인 모성
2.1 백인 지배집단의 모성을 둘러싼 통제적 이미지
흑인 여성은 주로 백인 노예주의 집에서 가사노동을 하였다. 이 가사노동은 고용주에 대한 피고용인의 복종심이 강요된다는 점에서 다른 직종에 비해 심하게 착취적인 일이 될 수 있다. 백인 노예주는 흑인 여성에 대한 자신들의 착취를 정당화하기 위한 통제적 이미지를 만들어내어, 이를 기준으로 끊임없이 흑인 여성의 처신을 평가하며 억압한다.
그중 흑인 여성의 모성을 둘러싼 통제적 이미지는 백인 지배집단이 흑인 여성의 재생산 능력을 착취하고 복종을 지속시키며, 흑인 가정의 모든 문제를 흑인 여성 개인에게 덮어씌우기 위해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이다. 특히 백인 지배집단은 ‘여성이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는 임신, 출산, 양육과 관련된 어머니로서의 자질’을 뜻하는 모성이라는 상징을 이용한다.
셰릴 길케스가 지적하듯, “흑인 여성은 백인이 지배하는 미국의 의식이 철저하게 가려온 노예제도에서 ‘유모’나 ‘못된 흑인 여성’으로 간주되었다.”(134) 먼저 흑인유모mammies 이미지는 충실하고 순종적인 가사노동자를 의미한다. 이 이미지를 통해, 흑인 여성의 모성은 본인의 흑인가족보다 백인가족과 그 자녀들을 더 사랑하고 정성스럽게 보살피는 데에 적합한 것처럼 이미지화된다. 그리고 흑인 여성은 자기 가족을 돌보지 못할 정도로 낮은 보수와 길고 혹독한 노동을 함에도 이러한 종속에 만족하는 “행복한 노예”로 여겨진다. 백인 지배계급은 왜곡된 흑인 모성을 통해 자신의 자녀를 사랑하는 흑인 여성의 능력을 왜곡시키며 흑인 여성의 가사노동에 대한 경제적 착취를 은폐하고, 자신들의 계급 위치를 유지한다.
또 다른 통제적 이미지 흑인가모장Black matriarch은 백인 지배계급이 흑인 여성을 자녀를 제대로 훈육시키지 못하고, 가정에 대해 무책임한 ‘나쁜’ 흑인 어머니로 만들기 위해 날조한 이미지다. 여기서 흑인 모성은 가정을 계속해서 빈곤하게 만드는 주원인이며, 자녀들이 비행하고 사회에서 낙오되게 하기에 흑인 가족을 돌보기에 부적절한 부정적인 것이 된다. 이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유급노동을 하는 흑인 여성의 현실과, 더 나아가 흑인 여성과 가족이 빈곤에 처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린다.
마지막으로 번식 여성breeder woman 이미지는 흑인 여성의 재생산 능력을 정치경제적 필요에 의해 착취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백인 노예주는 흑인 여성이 ‘번식하기’를 원했다. 노예화된 흑인은 백인 노예주의 재산으로 여겨졌고, 흑인 여성이 낳는 아이는 백인 노예주에게 추가적인 자산, 즉 또 한 명의 노동력이고 번식 여성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백인 노예주는 흑인 여성이 아이를 쉽게 낳을 수 있다는 이미지를 작동시켜 흑인 여성 노예들이 더 많은 아이를 낳도록 간섭하는 것을 정당화하고, 흑인 여성에게 어머니-아이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아이를 낳도록 유인하였다.
2.2 흑인공동체 내 모성 신화
백인 지배집단뿐 아니라 흑인공동체 내에서도 흑인 여성의 모성과 연결된 통제적 이미지가 작동하였다. 19세기 초반, 흑인은 노예 제도로 인해 기본적인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했다. 이에 흑인 여성들은 공적 영역에서의 유급노동과 가족 책무라는 무급노동을 동시에 이행하며 흑인가족의 유지와 흑인공동체의 존속을 위해 노력하였다. 특히 흑인 여성들은 혈연어머니가 양육을 위해 유급노동을 하는 동안 발생하는 공백을 다른 대안어머니othermother가 책임지는 공동체적 육아 방식을 통해 해결하였다. 이 흐름에서 흑인공동체 내에서 널리 퍼진 이미지가 바로 ‘강인한 흑인 어머니’ 이미지다. 흑인 남성과 공동체는 흑인 여성의 힘과 복원 능력을 예찬하고 숭배하며 이 이미지를 흑인 여성에게 주입시켰다. 이 모성 신화로 인해 점차 자신의 가족과 자녀를 위한 흑인 여성들의 무급 가사노동은 그들만의 사적 직업으로 여겨졌고, 이와 함께 많은 흑인 남성들은 자신의 자녀에 대한 책임을 자연스럽게 흑인 여성에게 전가하였다. 결국 출산과 양육을 장려하는 흑인공동체의 가치와 흑인 남성의 부양의 부재가 흑인 여성들로 하여금 아이를 낳고 보살핀다는 막중한 임무를 오롯이 맡게 하였다. 너무나도 많은 흑인 여성들이 나의 자녀, 더 나아가 다른 흑인 여성의 자녀까지 돌보아야 했던 당시의 조건에 발목 잡혀, 노예생활로부터 도망치지 못하고 아이와 공동체라는 물리적 한계 내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3. 흑인 여성이 구축해낸 새로운 모성
그러나 흑인 여성이 일상에서 마주하는 모성 경험은 흑인 여성에게 부과되는 획일적으로 부정적인 통제적 이미지와는 달랐다. 그들이 일상에서 마주하는 모성 경험은 그보다는 힘기르기의 씨앗이 되는 창조적인 경험이었다. 흑인 여성들은 본인이 직접적으로 경험하는 흑인 모성과 통제적 이미지 내의 흑인 모성 간의 모순을 파악하게 된다. 그리고 바로 이곳에 흑인 여성 스스로가 만들어나가는 흑인 모성의 진정한 의미가 세워지며, 이는 흑인 여성들의 집단행동으로 연결되어 마침내 “상황을 한바탕 휘저어 놓는”(177) 저항이 시작된다.
우선 흑인 여성들이 경험하는 모성은 통제적 이미지로부터 느껴지는 압박감보다 그들에게 자유를 찾는 힘을 주는 경험이었다. 흑인 여성은 아이를 통해 처음으로 무언가를 자신이 직접 창조하고 성장시킨다는 긍정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아이에 대한 사랑, 이것이 바로 흑인 여성이 “욕망하기 위해 그 누구의 허락도 필요하지 않은 것”(262)이었다. 이는 흑인 여성이 스스로의 삶에 자부심을 갖고 목소리를 내는 힘을 기를 수 있는 촉진제로 기능한다. 아이는 흑인 여성들이 양육을 위해 마주쳐야 했던 난관들을 헤쳐나갈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는 용기를 심어주었다. 한편, 아이들은 흑인 어머니로부터 생존을 위해서는 자립하기 위해 노력해야 함을 교육받는다. 그리고 아이들은 커가면서 “스스로는 꽃이 피는 것을 보지 못하더라도 창의성의 불꽃이 될 씨앗”(338)을 자신에게 전해주기 위해 흑인 어머니들이 치른 대가를 깨닫고, 자신 또한 그들과 같이 가족과 공동체에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며 살면서 그들의 사랑에 보답하고자 했다. 이렇게 흑인 모성은 흑인 여성들이 세대를 초월하여 끈끈하게 연결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흑인 여성은 공동체적 육아를 행하며 다른 흑인 여성들과도 깊고 단단한 관계를 구축하였다. 흑인 여성 네트워크는 흑인 여성이 타자화되었던 친숙한 곳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목소리를 찾는 발판이 되는 안전한 공간이었다. “흑인 여성이 대상화됨으로써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는 경험을 이야기할 때 그것을 가장 잘 이해하는 청자는 흑인 여성이다.”(190) 흑인 여성들은 자신이 살아낸 것들에 대해 말하며 공감을 나누고, 흑인 여성 자신의 문제로 손가락질 받던 것들, 가령 가정의 빈곤과 아이가 세상을 겉도는 문제가 “흰 피부나, 남성됨 혹은 부”(424)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구조 때문임을 직시한다. 또 흑인 여성들은 서로 사교나 재생산, 소비에 관한 지혜를 주고받았으며, 감정적 지지와 경제적 협조를 통해 서로의 존중감 회복과 자립을 도왔다. 육아를 통해 길러진 흑인 여성들 간의 협동심은 제도적 지원이 확보되지 않던 열악한 상황을 함께 헤쳐나가고, 더 나아가 억압에 집단적으로 대응하고, 저항할 수 있도록 도운 강력한 자원이었다. 흑인 여성들이 아이를 둘러싼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했던 투쟁들은 점차 흑인공동체가 대면하는 문제를 위한 정치적인 투쟁으로 확대되었고, 흑인 여성들은 공통적인 목소리를 내며 흑인 시민사회에서 힘 있는 자리를 확보해나갔다. 이제 흑인 모성을 둘러싼 통제적 이미지는 흑인 여성의 이러한 투쟁을 통해 스스로가 정의한 이미지로 대체된다. 이제 흑인 모성은 흑인 여성 본인과 아이, 다른 흑인 여성 자매들이 “함께 존재”하게 하며 그들이 그들 자신이지 못하게끔 한 그 모든 것에 맞설 수 있게 하는 경험이 된다.
4. 나가며
‘태어나면서부터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는 어머니로서의 자질’이라는 모성의 정의에 관심을 갖고 본격적이고 구체적으로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한 지도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 같다. 많은 여성들이 모성 신화의 역사나 이를 작동시키는 지배 이데올로기를 연구하며, 모성을 기준으로 판가름 나는 여성성의 틀과 이로 인한 출산, 양육의 억압으로부터 여성을 해방시키기 위해 싸워왔다. 그리고 이제는 모성이 여성의 본능이 아니며, 여성이 가족과 아이를 가지고 싶을 때 가질 권리, 또 모든 재생산 노동이 무조건적으로 여성에게 전담되지 않을 권리의 보장을 자연스럽게 주장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지금 와서 과거 흑인 모성을 주축으로 이루어진 흑인 여성의 운동을 바라볼 때, 흑인 모성이 흑인 여성들을 통해 궁극적으로 자기정의를 하는 발판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에서 너무나 많은 개인적 대가를 치르게 했던 부정적인 면이 부각되어 보인다. 또 자신을 억압하는 가족과 공동체에서 벗어나지 못한 당시의 흑인 여성의 운동이 어느 정도는 급진적이지 못 한, 그래서 아쉬운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시대적 한계를 짚으며 아쉬워하기보단, 준 조던의 말처럼 “누구에게도 감사의 말을 듣지 못한 채, 저녁 늦게 외로운 집으로 혹은 자기 가족의 일을 하러 집으로 돌아가”(299)던 여성들이 그들의 사랑으로 후세대 흑인 여성들에게 열어주었던 저항과 자유의 가능성에 우리는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자유로운 선택이 불가능했던 당시의 상황 속에서조차 그 한정된 선택지를 어떻게든 자기정의의 지점으로 만들어나가기 위해 벼리던 흑인 여성들의 매일매일은 투쟁이었을 것이다. 그 당시 그들의 운동이 최선의 선택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공통된 목소리를 내며 굳건히 자신의 입지를 굳히는 지금의 흑인 여성들의 모습을 보면 과거의 흑인 여성들이 아무 길이 없는 곳에서 서로가 서로의 버팀목이 되며 만들어낸 길들이 대단히 성공적이고 소중한 것이었음은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