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gender Liberation: A Movement Whose Time Has Come.New York: World View Forum, 1992.
레슬리 파인버그(Leslie Feinberg)
백소하 옮김
강건영 감수
역자 해제
이은용 작가님, 김기홍 선생님과 변희수 하사님이 우리 곁을 떴습니다. 이 너머에도 접하지 못한 수많은 죽음이 있을 것입니다. 폐단을 뿌리 뽑고 새로이 다스리겠다고 큰소리치는 이들이 눈 하나 깜짝 않고 가한, 새롭지 않은 살인입니다. 한 번도 뵌 적 없는 분들의 죽음에 설친 밤인데 유달리 공허합니다. 개인의 흥미로 옮기기 시작한 글을 이렇게 붙잡고 위안으로 삼을 줄은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파인버그는 이 글에서 트랜스젠더의 억압과 해방을 역사적인 차원에서 접근합니다. 글의 큰 흐름은 여러 학자의 논의를 빌려, 모계 공동 사회가 점차 해체되며 여성의 배제와 노동의 착취가 전개되는 계급 갈등의 역사를 차분히 훑고 있습니다. 이 흐름의 중심에 트랜스젠더의 역사를 배치하여, 파인버그는 트랜스젠더가 처한 탄압과 이에 맞선 트랜스젠더의 저항을 가부장적이고 경제적인 계급 지배의 발전이라는 맥락에서 살핍니다. 강화되는 성별 이분법뿐 아니라 자본주의로 인해 가능해진 도시 노동이라는 조건 역시 패싱의 탄생에 일조했다는 주장이나, 다양한 트랜스젠더 관습 및 실천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탄압을 모계 공동 사회의 가능성에 대한 봉건 지주의 공격으로 보는 접근이 그 예시입니다. 파인버그는 이러한 접근을 통해 트랜스젠더 공동체가 으레 규정되듯 새롭고 부차적인 존재들이 아니라, 새로이 나타난 “제도화된 억압과 편견”이 되려 쫓아낸 역사의 일익(一翼)임을 강조합니다.
따라서 파인버그가 상상하고 제안하는 트랜스젠더의 혁명적 잠재력은 아무리 좁게 잡더라도 지배 계급의 오래된 유산인 “분할 통치 전술”을 끝낼 힘입니다. 계급과 젠더, 성애의 전선에서 항상 탄압의 대상이자 저항의 주체로 나란히 섰던 트랜스젠더의 역사를 복원한다는 것은 절대 당사자들의 자긍심을 고취시키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각자도생이 보편타당한 명제가 되어 지배를 안정화하는 신자유주의의 시대에 이들을 다시 불러들이는 것은, 이들과 함께 잊힌 공동전선과 연대의 기억을 더듬는 나비의 날갯짓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나올 돌풍은 예컨대 만민의 해방을 위해 맑스와 파이어스톤이 역설한 생산수단/생식수단의 장악과 같이 강렬하고 근본적이겠지요. 지독한 혐오 한복판에서 용기를 내신 분들을 기리며, 이 글이 위로와 자긍심, 그리고 혁명의 힘을 여러분과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거의 모든 사람이 잔 다르크를 들어본 적이 있다. 그러나 잔 다르크가 남성의 복장을 그만 입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19세였던 1431년에 가톨릭교회의 종교 재판에 의해 화형당했다는 것을 오늘날 아는 사람은 적다. (중략)
잔의 판관들은 그가 이교도로 자랐다고 고발하였다. 교회 지도자들은 그가 태어난 로렌이 이교와 마법의 온상이라고 기소하였다. 그곳의 소작농들은 여전히 옛 신앙과 모계 전통을, 잔이 살아있던 때까지도 고집하였다. 아이들에게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의 성을 주는 관습은 아직 존속하였다. (중략)
며칠 지나지 않아 그는 다시 남성복을 입었다. 판관들은 남성의 옷을 입는 것이 확실한 죽음을 의미하는 데 왜 그리했는지 물었다. 재판은 그의 답변을 기록하였다. “그는 자신의 의지로 말했다. 그리고 누구도 그리하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여성의 것보다 남성복을 선호한다고 했다.” (중략)
종교 재판은 “개가 자신의 토사물을 주워 먹듯, 그대는 다시금 빠져들고야 말았다”고 하며, 남성복을 다시 입은 죄로 그에게 사형을 선고하였다. 잔 다르크는 즉시 화형을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