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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포스트모더니즘·여성해방문학론>

 

- 대담자
임옥희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이사)
권보드래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이은솔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박사 과정)

·일시 : 2022년 1월 6일 오후 2시 

·장소 : 합정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주최 :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제1회 한국학페스티벌

- 목차 -
0) 대담에 들어가며
1) 90년대의 페미니즘 담론과 ‘변두리 페미니즘’
2) 80년대 말~90년대 초의 대학 풍경과 경희대 영문학과에서의 지적 경험
3) 90년대의 여성 잡지 : 「또 하나의 문화」, 「여성과 사회」, 그리고「여/성이론」
4) 90년대 포스트모더니즘 담론과 ‘여성 없는 여성주의’의 정치성
5) 배수아에서 양귀자까지, 90년대 여성 문학을 기억하는 방식들 
6) 「여/성이론」 창간호와 주디스 버틀러의 주체 이론 소개

 

3) 90년대의 여성 잡지 : 「또 하나의 문화」, 「여성과 사회」, 그리고「여/성이론」

 

임 : 그걸 하면서 어쩌다 보니 고갑희 선생님 때문에 여성문화이론연구소(이하 여이연)를 들어오게 된 거예요. 

권 : 아 그래요?

임 : 예, 고갑희 선생님을 만난 게 95년이었어요. 계속해서 뭔가를 만들어보자고 하는데, 저는 만드는 데에 별로 관심 없다고 계속 거절하다가 어찌 끌려 들어와서 97년부터 여이연을 하게 되었어요. 

이 : 여이연이 97년에 개소를 했는데 「여/성이론」은 99년부터 발간하신 거죠? 그 2년 동안은 보통 세미나를 진행하셨나요?

임 : 예. 모여서 주로 세미나를 했어요. 고갑희쌤이 단체를 만들려는 의도가 있었는데, 저는 거기에 대해서 전혀 관심 없었어요. 그래, 맨날 싸우고 툴툴거리면서도 함께 했었어요. 그러다 고갑희쌤과 태혜숙쌤은 정규직으로 자리를 잡아서 나가고, 어찌 보면 연구소를 책임지는 방식으로 제가 들어오게 된 거죠.

 

 

권 : 그때는 세미나 뭐 하셨어요?

임 : 그때 마리아 미즈 읽고, 온갖 페미니즘 서적들 다 읽었죠. 특히 스피박은 태혜숙 선생님 전공이시니까 많이 읽었던 기억이 나요. 거기 모인 사람들이 다 영문학자잖아요. 전남대에 계시는 노승희 선생님도 그렇고, 다 영문학 전공자들인 거예요. 그러니까 텍스트를 빨리 접할 수 있었죠. 

권 : 이유가 뭘까요? 영문과에 워낙 여성들이 많기도 했고 당연히 여성적 관점이 발달할 수 있는 조건이었기 때문일까요. 저 석사 다닐 때 1년 선배인 영문과 남학생이 와서 “요즘 우린 다 페미니즘뿐이야. 그래서 죽겠어”라면서 하소연했던 기억이. (웃음) 

임 : 정말 그랬던 것 같아요. 남자들도 페미니스트가 아니면 안 되는 그런 분위기가 있었다니까요. 

권 : 커리큘럼이 페미니즘으로 다 바뀌던 시기였고, 그 진원지가 영문과였던 것 같아요. 그 이유가 해외에서의 영향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자생적인 동력이 여기서도 막 돌아가고 있었던 거군요.

임 : 아, 백낙청 선생님이나 「여성」 · 「여성과 사회」 등 창비 쪽에서 이야기하는 민족 문학이나 리얼리즘이 민족 통일이라는 문제의식으로 주로 논의되고 있었다면, 이런 후배들의 움직임을 촉발한 것은 「또문」이에요. 「또문이 엄청나게 충격을 줬다고 생각해요. 

권 : 충격은 충격이었어요. 

임 : 87년에서 97년 사이에 페미니즘 담론에 엄청난 변화의 물결이 있었던 이유가 「또문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민족주의 진영하고는 다른 목소리, 여성 개인의 욕망을 이야기하면서 나왔던 게 「또문이었죠. 항상 역사적 대의에 헌신해야 하는 민족진영의 이야기와는 다른. 그쪽을 대변하는 사람이 정현백 선생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민족주의와 페미니즘을 이야기했던 분이 정현백 선생님이라고 한다면, 조혜정 선생님이 이야기했던 게 여성들 개인의 욕망. 그 담론이 변곡점을 만들어줬다고 생각을 합니다. 

 

임 : 그 영향을 받은 젊은 세대들이 고갑희쌤과 태혜숙쌤. 영문학 텍스트를 읽었던 만큼 그런 내용을 빨리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위치에 있었어요. 

이 : 「또문동인분들과 여이연 선생님들 간의 교류가 있었나요?

임 : 없었어요. 전혀 없었어요. 

이 : 그 이유가 혹시 있을까요? 

임 : 고갑희쌤은 조금 왔다 갔다 했을 것 같은데, 저는 거의 교류가 없었고. 「또문 이후에 「if」 쪽과는 교류가 좀 있었어요.  「또문과 「if」의 영향으로 여성 영화제도 만들어졌어요. 민족주의 진영만이 아니라, 문화주의 페미니즘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역할을 했지요. 아무래도 국문학 연구자들은 민족주의로 다 갔기 때문에 페미니즘 담론을 먼저 받아들이는 건 외국 문학 전공자들이 많았어요.

권 : 강경애 좀 띄우고. 「여성」은 민족문학의 여성 버전 느낌? 모범생 같았죠. 실제로 인적 구성도 그랬고요.  「또문이 나왔을 때는 부르주아 여성주의라는 평도 많았죠.

임 : 예, 자유주의 부르주아 여성주의라며 서로 공격하고 싸우는….

권 : 맑시즘에 매혹을 느끼면서도 맑시즘이 한국적 민족주의와 결합하는 방식과는 다른 방식을 시도해보고 싶으셨던 거죠. 선생님, 혹시 정파상으로는…(웃음)? 

임 : 저는 무정부주의자예요.  「또문하고도 잘 맞지 않고 민족주의 진영과 함께 세미나 하면서도 잘 맞지 않는다고 느꼈어요. 민족주의를 얘기하는 사람들, 국문학 전공자에게도 제가 느끼는 반감은 전공자들에게 기본적으로 양반의식이 깔려 있다는 점이에요. 아닌 것처럼 위장하지만 ‘민족’이라는 것 안에 부르주아 민족주의자들만 다 모여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임 : 천민 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저는 ‘저걸 어떻게 깰 수 있을까’, ‘어떻게 똑같은 인간으로 대접을 받을 수 있을까’라는 게 항상 관건이었던 것 같아요. 인간은 그냥 한 인간으로서 존중해 주면 좋겠는데. 그걸 재단하는 가장 대표적인 기준이 학력. 우리는 한 번도 근대화된 적 없다는 브뤼노 라투르의 말이 와닿는 게, 우리는 아직도 계급 사회가 아니라 신분 사회에 사는 느낌이에요. 그게 가장 저항 의식을 느끼게 했어요. 

임 : 저는 천민은 천민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이 필요할 때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람시가 말하는 자기 계급에서의 유기체적인 지식인이라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당사자로서 자기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할 계급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한국 사회에서는 페미니즘 진영이든 민족주의 진영이든 지식인들에게 조선시대부터 쭉 내려오는 컨티뉴엄(continuum) 같은 게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권 : 정말 확 다가오는 비유였어요. 게다가 실제 양반 가문 출신들이 많아요. 

임 : 90년대를 거쳐오면서 기층민중을 명분으로 내세워서 사실은 지식인들이 그들의 대표성을 전유해서 자기 몫을 확보했다고 생각해요. 실제 그 사람들의 목소리를 전했다기보다는 ‘우리가 너희들을 대변해줄게, 그러니까 일단 열심히 해봐’와 같은 태도들. 기층민중을 계몽의 대상으로만 보지, 그들이 동등한 지식의 주체가 될 수 있고 각자의 위치에서 뭔가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종종 느꼈어요. 

임 : 그건 페미니즘도 마찬가지였죠. 기층민중 여성들을 여성해방을 이루기 위한 대상으로만 봤지, 그들이 우리와 똑같이 해방된 주체로서 목소리를 가질 수 있다고 정말 생각했을까요. 페미니즘 자체가 그런 한계를 가지고 있지 않나 싶기도 해요. 배운 여자들이 내는 목소리가 훨씬 크죠.

권 : 90년대는 한국 문학 연구자들이 근대성 논의 등을 통해서 민족문학론으로 수렴되지 않는 이론들을 찾아 나가던 때였는데요, 그때 알튀세르의 영향도 없지 않았지만 주로 하버마스나 푸코, 버만의 이론에 관한 관심이 컸던 것 같아요. 그런데 선생님은 그런 영향을 많이 받지는 않으신 듯해요.

임 : 예, 그쪽으로는 안 갔던 것 같아요. 그 시절에 가장 인상에 남는 책은 사실 「다락방의 미친 여자」(산드라 길버트, 수전 구바)였어요. 그리고 토릴 모이의 「성과 텍스트의 정치학」 토릴 모이의 책을 보면서는 ‘아,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네’라는 마음이 컸고. 엠마 골드만과 같은 무정부주의자들, 나중에는 버틀러와 스피박까지 갔던 것 같아요. 지배 담론의 틈새를 낼 수 있는 게 없을지 생각하면서 늘 새롭고 재미있는 이론을 찾아 나섰던 것 같아요. 이후에 게일 루빈의 「일탈」에 관심을 가진 이유이기도 하고요. 당시의 지배적인 분위기에서 일탈할 수 있는 걸 늘 찾았던 것 같아요. 

권 : 도발적이고 전위적인 것들을…. 

임 : 예. 그게 변두리 위치가 가질 수 있는 특권이라고 생각을 했었어요. 제도권 내에서는 그런 소리를 잘 못 하지만, 바깥에 있는 사람은 ‘미친 소리를 하든 말든 뭔 상관?’이라는 식으로. 변두리 위치가 주는 좀 자유로움이기도 하죠.

이 : 토릴 모이 책에 관해서 질문이 있습니다. 「성과 텍스트의 정치학」은 프랑스 해체주의 페미니즘을 영미권에 처음 소개한 책으로 알고 있는데요, 역자 서문에서 선생님께서 토릴 모이에 관한 비판적인 입장도 내비치셨더라고요. 토릴 모이의 경우 본질론에 입각한 안정적 주체를 거부하는데, 선생님은 이 의견에 반대하면서 “실천주체 없는 변혁은 불가능하다”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선생님께서 이 책에 우호적인 입장이셔서 번역을 결정하셨다고 생각했는데, 반대 입장을 보이셔서 흥미로웠어요. 당시에 어떤 이유에서 토릴 모이를 비판하셨는지, 그리고 생각이 달라지셨는지 궁금합니다.

임 : 당시에 제가 공역자 중 대표로 역자 서문을 쓰기로 했는데, 역자들끼리도 굉장히 생각이 달랐어요. 이명호 선생님 다르고, 정경심 씨도 다르고. 제가 무정부적이라고 그랬잖아요. 그래서 ‘주체를 해체해? 오 좋은데?’라고 반응을 보였을 때 두 친구가 굉장히 비판했어요. 이 책에 대해서 김영희 선생이 또 굉장히 신랄하게 비판했었거든요. 그래서 그런 걸 눈치를 본 지점이 있고.

권 : 아. 공저자들의 조율 과정에서 나온 의견이셨군요. 

임 : 함께 번역했는데 내 마음대로 쓸 수는 없었기 때문에 서로 터놓고 토론을 했죠. 비판을 열심히 받았고. 지금 생각하면 먼 옛날이야기인데, 그 시대의 분위기와 지적 풍토 속에서 여성 없는 페미니즘은 불가능하다는 지적에 대해 제가 디펜스할 어떤 말도 찾지 못했어요.

권 : 당시엔 매우 매우 충격적인 책이었어. 별별 해괴한 얘기들이…(웃음).

임 : 너무 낯선 책이 나온 거죠, 어느 날 갑자기.

이 : 권보드래 선생님은 당시에 그 책을 어떻게 보셨어요?

권 : 우리는 그냥 계급과 민족의 해방 이런 얘기들만 해왔는데, 정말 한 떼의 미친 여자들이 나와서 온갖 이야기를 한 거죠. 모니크 위티그는 성도 없다고 하고.

임 : 레즈비언 얘기도 막 하는데, 여자는 섹스가 없대. 다들 반응이 ‘이게 무슨 소리야?’ 싶지.

권 : 토릴 모이가 굉장히 질서정연하게 정리를 했는데도 워낙 말이 어지럽고 생전 들어본 적 없는 희한한 얘기들이고.

이 : 당시에 이 책이 좀 파문이 있었나요? 

권 : 내가 생각하기에는 조금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토릴 모이는 지금도 보면 반가워요.

임 : 반응이 좀 있었죠. 아마 가장 일찍 포스트 페미니즘 이야기를 한 책일 거예요. 사실은 저도 잘 모르면서 번역했어요. 선배한테 이런 얘기를 들어본 것도 아니고. 한창 민족이나 계급 해방만 이야기하다가 ‘이게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일까’ 싶었죠. 저는 철학적인 기반도 없었고. 그러다 보니 너무 어렵고 힘들었던 책이었어요. 

권 : 철학 공부는 같이 안 하셨는지?

임 : 열심히 한 건 민승기 선생이었어요. 저는 지적 동료로서 민승기 선생한테 철학을 배웠다고 생각하거든요. 당시 대학원 다니던 친구들 5명이랑 2년 동안 매주 세미나를 했는데, 그러면 민승기 선생이 강독하다시피 해줬어요. 그 당시에 그 내용을 설명해 줄 교수님은 없었고. 해체론에 관해서는 도정일 선생님이 이야기했지만, 라캉에 대해서는 승기 씨가 본인이 먼저 다 읽고 와서 설명해주고, 함께 머리 박아가면서 공부를 했죠. 

권 : 권택영 선생님은요?

임 : 권택영 선생님이 포스트모더니즘 쪽 작품들을 가져와서 수업하면, 저희는 ‘뭐 이런 작품들이 다 있지’라는 반응이었죠. 그 당시에는 되게 신선했거든요. 한국에서 사실주의적인 텍스트만 보다가 처음 접하니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죠. 도날드 바셀미나 「제5도살장」의 커트 보니것 등 그때 전위적인 작가들 다 만났던 것 같아요. 그런 텍스트들을 읽었던 경험이 굉장히 재미있었고, 훨씬 뒤에 나온 작가군이긴 하지만 토니 모리슨과 같은 흑인 여성 작가들의 책을 읽는 것도 굉장히 즐거웠어요. 

권 : 유학을 다녀온 분들은 그곳에서 배운 내용을 일종의 독트린처럼 생각하시기도 하는데, 임옥희 선생님의 경우에는 매번 다른 이론을 활용하면서 롤러코스터 타시듯 했던 것 같아요. 유학파 선생님들과는 다른 이론 감성이라는 인상이 있어요. 

임 : 유학파들의 감성은 아니죠. 그럴 수가 없고. 유학을 다녀온 분들은 대부분 제도권 내에 있기 때문에 자신이 공부해 온 것을 집중적으로 깊이 있게 연구하시는 분이고, 나는 연구하는 사람이 아니잖아요. 논문도 안 쓰고 그러다 보니까. 

권 : 논문을 많이 안 쓰셨어요?

임 : 학술지에서 통용되는 형식의 글이 아니었죠. 학교는 그런 논문이 가장 중요해요. 제 글처럼 에세이도 아니고 성격을 뭐라 단정하기 어려운 글들은 무가치하게 여겼죠. 이 글들은 논문으로 안 쳐줬으니까 실적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던 거고. 그러다 보니까 ‘그래? 그러면 내 마음대로 쓸 거야’라고 생각하게 되었죠. 학계에서 포지션이 없어지니까 가난하게 살 각오를 하고, 대신 시장에서 한번 버텨보려고 했는데 못 버텼죠. 학계 논문을 안 쓰면 대신 책을 써서 팔아야 하는데, 그렇게 도무지 못 써요.

권 : 학교에서 자리 잡고 강의하는 것보다는 직접 대중을 만나려고 하신 건가요?

임 : 네, 나와서 그렇게 하겠다는 생각을 한 거예요. 그래서 제 글은 논문들과는 성격이 다르죠. 에세이에 가까워요.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 여이연을 유지해야 했기 때문에. 아무것도 아닌 이걸 왜 하고 있냐고 생각이 들 수도 있는 이 공간을 유지하기 위해.

권 : 그러고 보니 여이연도 벌써 25주년이네요.

임 : 벌써 그렇게 됐다. 그래도 여이연이라는 지적 공동체가 있다는 게 참 좋아요.

권 : 정말 대단하세요. 그렇게 오랫동안. 

임 : 여이연은 그냥 일주일에 한 번 모이는 느슨한 공동체였고. 이곳이 오래 갈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들만 모여 있다는 거예요. 다들 이론을 안주 삼아서 술 마시고, 자기 호주머니 털어가면서 유지한 거죠. 여기는 정말 뜨내기, 주변부, 변두리 사람들이 왔다가 갔다가 또 모였다가. 그런데 사람들이 나중에는 그러더라고요. 저희가 혜화동 다락방에 20년 있었잖아요. 거기 가면 항상 임옥희가 있었다고(웃음). 

권 : 수유연구실은 마로니에 공원 뒤쪽에 있었는데.

임 : 수유하고 분위기가 너무 달라요.

권 : 수유는 정규직은 없었지만 일단 고미숙 선배, 이진경 선배가 사재를 털어서 재정적으로 탄탄했죠. 여이연은 직접 가보진 못 했지만, 근처 옥탑방 주변에서 여자들이 담배 피우면서, 놀면서 있다고 얘기 듣곤 했어요. 월세가 30만 원이라더라는 소문도 듣고.

임 : 진짜 30만 원. 처음에 30만 원으로 시작했어요. 

권 : 직접 가보진 못 했어도 이렇게 다 얘기를 듣고 있었어요.

이 : 두 연구실이 다 혜화에 있었네요. 

권 : 여이연은 혜화 로터리, 수유는 혜화 마로니에 공원 뒤쪽에 있었죠. 

권 : 선생님, 게일 루빈 책은 반응이 어땠어요? 물론 이 주변에서는 좋았습니다만(웃음). 한 줌의 독자들 사이에서는…. 저도 처음에 보면서 ‘어머나, 이런 새로운 세계가’ 했었는데.

 

임 : 서문에서도 썼는데, 그 책을 읽은 건 90년대였어요. 읽기는 진짜 빨리 읽었죠. 그때 노승희 선생님이랑 함께 루빈이나 버틀러 책을 번역하자는 얘기가 나왔어요. 저는 버틀러는 너무 어려워서 못하겠고, 게일 루빈은 한국 사회에서 몰매 맞을까봐 못 하겠다고 했어요(웃음). 타협을 잘하거든요. 이 책은 감당이 안 되고, 우리가 냈다가는 폭망할 것 같다고 말해서 90년대에는 번역을 못 했죠. 97년 IMF 때문에 썰렁하던 시절이었는데. 그랬다가 여이연 소속 회원 중에 현실문화연구 출판사 직원이 있는데, 그 친구가 “선생님 이거 재밌어요. 내봅시다.” 이러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진짜 할 거냐고 물었는데. 결국 신혜수, 조혜영, 허윤 선생이랑 같이 해보자고 얘기가 되었죠. 

임 : 그때 출판 제의했던 친구가 기획력이 뛰어나서 어떻게 하면 책이 사람들한테 팔릴 것인지, 어떤 식으로 홍보를 해야 하는지를 너무 잘 알더라고요. 연세대 문화인류학과의 김현미 선생님, 계원예대의 서동진 선생님 등을 모셔서 행사를 열기도 했고, 그러면서 책이 생각보다는 좀 나갔어요.

권 : 꽤 핫한 책이었던…. 

이 : 선생님 저 「일탈」 구매자입니다. 

권 : 아니, 저도 당연히…. 그런 걸로 지금 여기서 어필을 하는 겁니까.

임 : 그런데 그래봤자 3천 부 안짝이에요. 

임 : 예전에 번역했던 책들을 보면 제 번역도 좋지 않고, 맨날 욕도 먹고 그러는데 그래도 한국 사회에 쌓이는 지적 축적을 무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은 버틀러를 직접 읽어보진 않았어도 사람들이 아는 척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된 거잖아요. 이리가레, 엘렌 식수,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이론도 마찬가지예요. 사람들이 그 이론에 관해 잘은 모르지만 기본적으로 스며들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다음 세대들이 그 책들을 번역할 수 있는 인력이 출판 시장에 축적되어 있다는 생각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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