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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 학술생태계의 파국과 미래

 

 

대담자: 박치현(진행, 본지 편집위원장),

김강기명(철학박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회원),

김지수(문화연구자),

김현준(서교인문사회연구실 회원, 대학강사, 사회학/기술문화연구자),

배세진(현대 프랑스철학 번역가, 연세대 커뮤니케이션 대학원 강사),

연혜원(사회학과 대학원 박사수료)

 

 

*이 대담은 <대학: 담론과 쟁점> 13호에 실렸던 글입니다. 

 

 

박치현(사회): 기획 좌담회의 취지와 방향은 학문후속세대, 요즘에는 이미 학적인 지식을 생산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학문현재세대라고도 부르는데요, 바로 이들의 관점에서 인문사회 학술생태계의 현실 진단과 대안을 모색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현재 인문사회학 후속세대 연구자들이 대학 바깥에서 연구를 하는 경우도 많음을 고려하면, 이때 학술생태계의 영역은 대학에 국한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학술생태계의 관점에서 보면 기존의 대학 담론이 대학 밖의 연구활동이 많아지고 있는 학문후속세대의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듯합니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기 위해, 또 이게 만만치 않은 주제이기도 한 만큼, 저희 <대학: 담론과 쟁점>은 에세이나 글을 받는 대신 다 같이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좌담회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연구자, 특히 인문사회 학술연구자의 상황에 초점을 둬서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순서는 현실 진단을 앞에서 하고, 그 다음 시간이 허락하는 하에서 대안을.대안이 별로 없긴 하지만.모색하는 쪽으로 진행하겠습니다. 김강기명 선생님이 지난 12<슈뢰딩거의 석학들>에서 기본적인 방향을 제시를 하신만큼, 관련된 이야기도 포함하면 좋겠습니다. 학술생태계를 논할 때, 대학 외부에서 뭔가를 모색하시는 분 또한 대학원에서 공부하신 경험이 있으신 만큼, 대학과 대학원부터 시작하는 게 맞을 듯합니다. 그래서 최근에 대학원을 졸업하셨거나 현재 재학 중이신 분들이 먼저 대학과 대학원 이야기를 하시고, 다음으로 비제도권 학술단체의 상황도 말씀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보고서나 책 등의 질적 조사결과도 나오고 있는 만큼, 각자의 개인적 경험은 가급적 간략하게 말씀해 주시죠. 김강기명 선생님과 김지수, 연혜원 선생님께서 먼저 시작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고투하는 삶: 인문사회 후속연구자의 생애와 학문경력

 

김강기명: 저는 원래 석사까지는 신학을 전공했어요. 그것도 두 개의 서로 다른 교단 신학교에서요. 유학을 나가면서 철학과로 전공을 바꿔서 박사학위를 받고 2022년에 돌아왔습니다. 돌아오자마자 곧바로 강사 지원 시즌이라 마구 지원을 했습니다만, 처음 시간강사에 지원할 때는 보통 모교의 인연부터 시작해서 하나씩 기회를 노리고는 하잖아요? 저는 교단도 전공도 계속 바뀌었기 때문에 모교 찬스를 쓸 수가 없었습니다. 스무 개 넘게 지원했는데 다 떨어졌어요. 9월이 되어서야 어떻게 운 좋게 모 대학에 있는 중점연구소(현 인문사회연구소)에 취직이 되어 다행히 잠시나마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올해 8월 해당 연구소의 사업이 끝나는데요, 지금 연구소의 새 프로젝트가 준비 중이지만 사업 경쟁률이 굉장히 높아서 101넘습니다. 어쩔 수 없이 사업 선정이 되지 않는 경우의 수도 고려하게 되는데, 생계도 생계지만 무소속이 되는 공포가 있어요. 특히 영문 저널에 투고할 때 비용도 상당한데 개인으로선 그 비용을 어떻게 할 수도 없고요. 그래서 강사자리에 열심히 지원하고 있지만 지금까지는 다 탈락한 상태입니다. 이제 우리 연구소가 재진입에 성공하든가, 아니면 실업 급여를 받든가 이런기로에 놓여 있습니다.

 

이런 환경에 있다 보니 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공부를 하기가 매우 어렵더라고요. 지금은 박사 논문 때 했던 작업을 조금 더 성숙시켜 논문들로 내고 또 이런저런 기고도 하고 있지만, 과연 어느 분야에 안착할 수 있을지 등등이 전혀 어떤 감이 잡히지 않아요. 저 같은 경우 서양 근대 철학 전공이고 앞으로도 계속 전공을 살리고 싶지만 과연 그렇게 살 수 있을까요. 마음이 딱 하나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어도 쓰기 쉽지 않은 게 학술 논문일 텐데, 자꾸 이걸 좀 봐야 되나 저걸 좀 봐야 되나 기웃거리게 되죠.

 

연혜원: 저는 여성 연구자이기도 하고 동시에 학교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어요. 작년 1학기에 박사를 수료하고 지금 박사 논문을 써야 하는 상황이고요. 학부는 철학과를 졸업했고 석사 박사는 사회학으로 하고 있는데요, 같은 대학에서 학사 석사 박사를 다 경험하다 보니 학교 환경의 변화가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무엇보다 대학원 신입생에서 눈에 띌 정도로 굉장히 급격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어요. 성비와 관심 주제 모두 매우 달라지고 있는데, 그에 비해서 학교, 그리고 학교의 지원은 거의 변하지 않고 있어요. 대학원생과 대학원 교육·지원 사이의 거대한 미스매치를 계속 보면서 스스로가 그 사이에 끼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죠. 학술적인 연구로는 학교와 청년을 다루고, 그 외의 글은 젠더와 퀴어로 많이 쓰고 있는데, 왜 정작 젠더와 퀴어로는 학술적인 글을 쓰지 않게 되는가를 생각해보면 학교의 이러한 상황과 맞물려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석사 때부터 교육 문제, 제도권에 진입하지 못하는 청년 문제, 대학에 진입하지 못하는 청년 문제 등을 질적으로 연구해오고 있는데, 이 주제는 제 관심사인 것도 있지만 학과에 지도를 해줄 수 있는 교수님이 있어요. 반대로 젠더 퀴어 분야는 지도해 주실 분이 없고 그러다 보니 출판계나 예술, 사회과학적 에쎄이 등의 기고 요청이 와야 지면을 글을 쓰는 기회가 생기죠. 문제는 젠더와 퀴어 연구에 관심을 가지고 입학하는 대학원생의 수가 놀라울 정도로 늘어나고 있는데, 정작 해당 분야를 지도할 수 있는 교수는 제대로 채워지지 않고 있다는 거예요. 제가 있는 학과에 젠더를 전공하는 여성 교수님은 있지만, 전임 중에 질적 연구를 하는 연구자가 전무해요. 결국 학과에서 제가 퀴어 및 질적 연구 경력이 가장 많은 사람이 되어버렸어요. 한국 대학원의 수요와 공급이 엄청 미스매치가 상황을 석사 때 겪은 대학원생들은 박사는 못 가겠구나하고 느끼는 거죠. 지금 나한테 가이드를 주는 사람이 이 박사 과정 선배 한 명 뿐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 거 아니에요.

 

박치현: 보통 대학 서열체제가 있으니까 일단은 다들 수도권 대학원에 입학하겠죠. 어쨌든 선배도 있고 동료들도 많으니까. 그러다가 이제 선배들의 상황을 알게 되면서 점점 진학을 안 하게 되는 그런 거겠죠? 왜 수요가 있고 필요한 분야의 교수를 뽑지 못하는 걸까요?

 

김강기명: 교수를 뽑을 때 학과에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 실적이 좋은 사람을 올려야 그 위에 단과대 혹은 인사위원회에서 동의가 나니까요. 최근에는 학과에서 영어 논문이 없는 사람을 후보자로 올려도 단과대나 본부에서 킬한다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미국 대학원에 있는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어느 서울 명문 사립대 인사 담당자가 교수 임용후보를 파악하려고 미국 대학교 투어를 와서 이렇게 얘기했다고 해요. 우리 학교는 학부 학벌을 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학부모들이 좋아하니까. 학벌이나 학연을 극복하자는 취지 하에 공정하게논문 점수 많은 사람 뽑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현실에선 옛 스노비즘과 요즘 스노비즘 둘 다 작동하는 거죠.

 

김현준: 사실 제도를 바꾼다고 해도 아비투스가 똑같다면, 아비투스는 어떤 형태로든 그 경로를 찾아내기 마련이죠.

 

김강기명: 기본적으로 서울대 및 서울의 사립대들, 그 다음 몇 개의 국립대들이 배출하는 대학원생 숫자가 많다 보니까 이 사람들 간에 네트워크가 잘 돼 있어요. 여러 경로로 정보가 조금이라도 빨리 들어오면 더 충실하게 임용을 준비할 수 있죠. 논문 점수가 결정적이라 해도, 그 이면에서 작동하는 수많은 베네핏들이 없을 수 없겠죠.

 

배세진: 학벌 문제에 대해서 제가 프랑스 유학 후 한국에 돌아와서 느낀건, 대학 문제나 아니면 인문사회 학술생태계 문제를 얘기할 때 절대 안 건드리는 게 학벌 문제라는 겁니다. 이제는 여전히 너무나도 부족하지만 여성문제도 건드리고 지방 문제도 건드리는데, 학벌 얘기는 절대 안 건드린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게 우리 문제의 핵심이구나. 그게 대학과 인문사회 학술 생태계 문제의 핵심이구나 이렇게 파악이 되더라고요.

 

박치현: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학벌을 쉬쉬하는 건 인문사회계 진보진영에 좋은 학벌을 가진 학자들이 꽤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진보적인 학자들에게 당신은 학벌주의자야라고 비판하기 쉽지 않으니까요. 이분들은 글로는 학벌주의를 비판하는데, 자기 자식을 키우거나, 어떤 사람을 채용하거나, 교수를 임용할 때, 즉 사람을 뽑을 때는 여전히 학벌주의 아비투스가 강하게 작용하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다음으로 김지수 선생님 말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김지수: 저는 미디어문화연구를 전공하는 박사과정 대학원생입니다. 학부 때는 언론학 안에서 문화연구를 세부 전공으로 했었는데, 문화연구라는 전공 자체가 기존의 분과학문 안에 하위 전공으로 들어가 있거나 아예 분과외부에 있는 경우가 많다 보니 학습 기회가 그렇게 많지 않았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대학 밖에 있는 학술공동체에 처음부터 관심을 갖게 됐던 것 같아요. 지금은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이라는 학교 밖 문화연구자 네트워크 단체에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박사과정 처음 입학할 때부터 항상 일을 하면서 지내왔어요. 학교 안에는 장학금이 거의 없고 일을 하기 어렵다 보니, 학교 밖에서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한 일들을 많이 하게 되더라구요. 유일한 생계수단으로 기대할 수 있었던 게 한국연구재단의 인문사회 학술연구교수 제도였는데, 수 년 연속 떨어지니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박사과정생인 나의 생계 수단을 박사 졸업자들과 경쟁해서 마련해야 된다는 것도 힘들었고, 나의 연구의 탁월함을 혼자 어필하면서 생계비를 요구해야 된다는 것도 괴로웠어요. 탈락이 거듭되니 내 연구는 정말 가치가 없는 것인가 회의감도 들었구요. 올해부터 그래도 박사과정 트랙을 별도로 뽑게 되었지만, 경쟁률이 너무나 세져서 사실 거의 기대를 못 하고 있습니다. 기존에 있던 제도(B유형)는 총예산과 선발인원이 더 줄어들고 조건이 더 까다로워졌다고 합니다. 어쨌든 그런 지원 제도 말고도 먹고 살 수 있는 방법들을 항상 고민해 왔습니다. 주로 용역을 받아서 일을 많이 했는데요. 대부분은 제가 전공하는 분야와 일치하지 않는 주제들이 많았습니다. 이 연구 용역이라는 것도 안정적으로 주어지는 게 아니고, 정권의 변화에 따라서 특정 분야 연구에 대한 예산이 줄어들거나 아예 발주가 되지 않는 상황이 생기더라구요. 지금은 인문사회 분야 연구 전반에 대한 전체적인 수요가 줄어드는 상황이라, 용역 연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끊긴 상태입니다. 어쨌든 지금 저는 연구자 복지의 사각지대라 할 수 있는 박사수료 상태에 있는데요. 생계노동을 할 때마다 학위논문 작성은 밀리게 될 텐데, 당장 다음 달부터 일거리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라 고민이 큽니다.

 

 

인문사회 학술생태계의 파국: 문송해졌는가?

 

박치현: 세 분만 얘기했는데도 웬만한 문제제기들이 다 나온 것 같습니다. 케이스는 달라도 다 보편성을 갖고 있는 듯합니다. 지금까지는 개인에 좀 초점을 맞춰서 이야기했다면, 이제는 조금 층위를 올려서 문송에 한 현실에 대해서 조금 더 제도적인 각도에서 한번 이야기를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아까 연혜원 선생님의 대학원 이야기에도 제도의 문제가 살짝 언급되어 있긴 한데, 학과 구조조정은 아직 시작도 안 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인문사회계가 구조조정도 통폐합도 많이 됐는데 앞으로 더 없애겠죠. 특히 교수들의 반대도 많고 실제로 학과에 타격이 큰 게 무전공입학 같습니다. 무전공 입학은 제가 생각하기에는 일종의 천국과 지옥 사이의 연옥이거든요. 무전공으로 있다가 좀 더 재력이 되는 친구들은 좀 더 공부를 해가지고 좋은(?) 과로 상향할 수 있게 된 거죠.

 

김강기명: 반수도 많이 하죠. 물론 의대나 사범대 같이 자격증 주는 과들은 이동이 막혀 있긴 하지만요. 현실에서 무전공 입학으로 생기는 문제를 하나 들어보면, 보통 무전공으로 들어오면 전공수업을 안 들어도 되니까 교양수업을 많이 들어오게 되죠. 그런데 어떤 학교들은 몇 년간 교양 수업을 줄여왔거든요. 이렇게 교양 수업이 과밀이 되는 거죠. 그리고 이 신입생들은 한 학기 듣고 반수를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냥 의대 혹은 다른 과 전공을 가고 싶은데 그래도 소속이라도 있는 게 나으니까 무전공으로 걸어놓는 거죠. 이 제도는 대학이 알아서 정원 감축을 안 하니까 도입되었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모두 자율전공으로 뽑은 다음 나중에 그 정원만 줄여버리면 감축이 되는 거잖아요. 제가 보기엔 결국 그게 목표인 것 같아요.

 

박치현: 무전공 같은 경우는 교수들의 학과 이권과 충돌하는 면이 있죠. 각 대학 교수회 같은 데서 반대를 많이 해서 보통 한 20%에서 25% 정도 많으면 30%정도에서 정지한 것 같아요. 중요한 건 학과 정체성이라도 있어야 인문사회 학과들이 버티는데, 무전공 혹은 자유전공학부 특징이 학생들이 뿔뿔이 흩어져서 학교를 다니니까 커뮤니티가 만들어지지 않잖아요. 그러니 본부가 마음대로 구조조정을 하기가 아주 쉬워지죠.

 

배세진: 결국 그렇게 되면 인문사회 대학원으로 진학할 동기를 가지고 있는 학부생이 선배를 매개로 대학원 세계와 접촉할 기회가 거의 없어지니까, 어떤 흥미로운 학문이 대학에 있는지, 학자로서 어떻게 커리어를 쌓아나갈 수 있는지 전혀 알 수 없게 되죠. 학부 때 그런 접촉의 경험이 없어지면 평생 깊은 지식을 접할 기회는 없어지는거 아닐까 싶어요. 사실 유튜브에서하는 얘기가 인류 지식의 전부구나 하는 사람들이 지금 정말 많을 거에요.

 

박치현: 이제 국내 대학원, 공대도 그렇지만 특히나 인문사회 대학원이 실패했다는 것은 명확한데, 수도권의 몇몇 대학들만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듯합니다.

 

 

 

국내 대학원 진학, 감소하고 있지만 가는 이들도 있다

 

김강기명: 인문계 대학원에 안 가는 진짜 이유는 졸업한 다음에 일자리가 보장되는 게 없기 때문일 거예요. 그 리스크를 굳이 왜 감당해야 하나요.

 

김현준: 그래도 여전히 대학원에 많이 들어와요. 마치 종교처럼 항상 수요는 있어요. 그런 점에서 대학원 교육이 실패하고 있는 게 진짜 문제가 아닌가 싶어요. 열정을 갖고 인문학을 공부하려 하는 분들은 많은데, 이런 분들을 대학, 대학원에서 제대로 교육을 못 시키고 있다는 거죠.

 

연혜원: 한국에서는 대학이라는 것, 지식인이라는 말이 오염되어 있는 것 같아요. 지식을 생산하는 사람을 하나의 직업군이라 간주하면, 기존의 지식을 업데이트하고 새로운 지식을 생산하고 특정한 문헌을 다루는 이 사람들이 학교에만 필요한 게 아니라, 예를 들면 인류학자가 병원에 들어가서 무언가 다른 성과물을 낼 수 있는 것처럼, 사회 각 분야에 기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각보다 많잖아요. 문제는 대학을 출세용으로만, 이런 지식 생산자들의 교육 과정을 학벌을 재생산하거나 아니면 계층상승을 하는 용도로만 생각하다보니, 이들에게 어떠한 역할과 기능을 부여할 것인지, 즉 이 사회에 적절히 배치하는 과제가 완전히 실패해왔다는 거죠.

 

저는 대학에 와서 이 대학이라는 곳은 뭔가 중산층 이상을 위한 공간이라고 느꼈어요. 일단 노동이 다 망가져 있어요. 이 안에서 제대로 된 처우를 받으면서 노동할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대학원에서 일한다고 해도 이런 일은 내가 부모의 집에서 지원받는 것이 전제되어야만 할 수 있는 노동인 거예요. 큐레이터 노동이랑 비슷한 건데, 박사까지 가서도 부모의 지원이 있어야만 최종적으로 학벌을 획득할 수 있는 거죠.

 

대학원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일정 계급 이상인 것은 어쩔 수 없는 면이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다양한 지식과 다양한 계층과 다양한 정체성이 섞여야 이 안에서 노동의 불합리함을 말할 수 있죠. 그래야 나 같이 지원을 넉넉히 받지 못하는 계층의 사람들은 어떻게 하라는 거냐, 이런 얘기도 나올 수 있는 거고. 사실 SNS에서도 당연히 대학원생은 계층이 높을 거라 생각하더라고요. 대학원 밖에 있는 사람들은 대학원생 씩이나 돼서 왜 징징대냐고 얘기하곤 하죠. 네가 하고 싶어서 하는 공부면서, 나는 대학원 안 가고 싶어서 안 간 줄 알아, 이런 식으로 되는 거에요.

 

정리하면, 대학원을 졸업한 사람들은 많은 자원이 투입된 전문적 노동자들인데 이 사회는 지식인 관리에, ‘노동자로서의 지식인관리에 완전히 실패하고 있다. 아니 애초에 그런 전문인력의 활용이 기획된 적 자체가 없다. 특히 지식생산을 계속 해외에서 외주하는 상황을 보면, 그러면 왜 국내 대학원 박사과정을 개설해 놓는가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되죠.

 

김현준: 그러니 교수들도 학생들에게 국내 대학원에 진학하라고 설득할 동력이 없어요. 내 제자로 들어와서 나랑 같이 열심히 공부하자 설득할 수 가 없는 거예요.

 

 

연구자로서의 미래 전망 문제

 

김강기명: 제가 보기에는 대학원 교육의 실패도 있지만, 핵심은 결국 석박사졸업을 한 다음이 없다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막스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학문> 첫 장을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독일하고 미국하고 비교하면 미국은 조교들이 고용돼가지고 학교에서 유급으로 커리어를 시작하는데, 독일은 부잣집 자식 아니면 학문의 길을 걷는다는 게 직업적으로 불가능하다. 21세기 한국도 비슷하죠.

 

연혜원: 만약 대학원 졸업 후에도 직업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먹고살 수 있는 가능성이 보이면 솔직히 말해 진짜 많이들 입학할 것 같아요.

 

김강기명: 그러한 방향에서 박치현 선생님이 제안한 국가박사제도, 국가박사 풀(pool)을 만들자라는 제안을 진지하게 생각해 봤으면 합니다. 일단 이 제도를 연구자의 기본적인 생계 안정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좋겠어요. 대학 연구소에서 인문사회 쪽 전임 연구원급이 240만 원에서 250만 원 정도 사이를 실수령액으로 받거든요. 저는 괜찮았어요. 이 정도로도 딴 생각 없이 열심히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연구실 일이 많다 해도, 대부분은 연구 어젠다나 제 프로필을 확장하는 것과 관련된 일이었고요, 이 정도면 연구자로 살만하다 생각했어요. 물론 만족스럽다 할 만한 금액은 아니지만, 이것조차 없으면 직업연구자로 버티기 힘듭니다.

 

김지수: 국가박사제도 그렇고 이런 식의 연구자 복지와 삶을 위한 제도적인 담론들이 대학 안에 많이 들어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도 대학원에 들어오면서, 물론 서울 중심 대학에 한정된 문제일 수 있겠으나, 놀랄만큼 계급적으로 균질화되어 있다는 걸 많이 느꼈어요. 지식인의 자식이 지식인이 되고 대졸과 대학원 출신 부모의 자녀가 대학원에 들어오는 계급 재생산이 가장 많이 이루어지는 공간이 대학원이더라구요.

 

연혜원: 진짜 대학원생 중에 교수 부모를 둔 사람이 그렇게 많은 줄은 몰랐어요. 저는 사실 대학 들어가기 전까지 주변에서 교수를 본 적이 없었는데 말이죠.

 

김지수: 결국 우리의 연구와 노동이 계속 연결될 수밖에 없는데, 대학이나 대학원 안에서 연구와 노동이 분리될 수 있다는 어떤 믿음이 있는 것 같고 노동의 영역을 거의 논의하지 않거나 그 영역을 격하하고 비가시화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노동 혹은 계급의 관점에서 지식생산과 학술생태계의 질서를 살피고 연구하는 일이 더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까 말씀하셨던 것처럼 학술생태계에서 우리가 공부뿐 아니라 어떤 종류의 삶과 노동을 하게 되고, 앞으로 이행하게 될 경로에는 어떠한 옵션들이 있는지를 알려줄 수 있는 시스템이나 연구문화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걸 대학원에서는 절대 배울 수 없었고, 학교 밖에서 여러 연구자를 만난 다음에야 알 수 있었거든요.

 

 

 

서로 읽거나 인용하지 않는 논문들

 

김강기명: 문송이란 말이 퍼지게 된 또 다른 이유가 있어요. 물론 생계문제나 낮은 대학원 진학률도 있지만, 학계 전체의 역량이 연구자 개개인의 역량에 비해서 낮다는 점도 지적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학교에 자리 잡은 선생님들이나, 아카데미 안에 들어가려고 노력하시는 분들 보면 개개인의 역량이 아주 뛰어난 분들이 정말 많아요. 진짜 뛰어난 분들이 많은데 역설적으로 정작 학계의 역량은 낮은 거예요. 학술장이 매력이 하나도 없는 거예요. 최근에 조선일보에서 KCI등재지 논문이 거의 읽히지 않는다는 기사가 났었어요. [각주:1]  전혀 인용되지 않는 논문이 91%인데, 그 정도로 학술장 안에서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아요. 이른 커리어 단계부터 주구장창 개인 연구를 해서 양적으로 측정가능한 개별적 성과를 내는데만 몰두하는 그런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는 거에요. 옆에서 누가 무슨 연구를 하고 있는지 몰라도 되고요, 누가 어떤 책을 내도 같은 분야 연구자들이 서평을 쓰고 논쟁적인 개입을 하거나, 그 책을 다루는 다른 책을 쓴다든가 하는 기본적인 소통 작업도 이뤄지지 않는 거에요.

 

서양 인문학이나 이론 등을 다루는 분야의 경우, 우리의 원전은 저 유럽에 있고 내가 참고하는 중견 학자들은 미국에 있는 거예요. 내 옆의 정말 똑똑한 연구자들이 아무리 좋은 논문을 써도 읽거나 참조하지 않죠. 참조할 이유가 없겠죠. 지금의 시스템에서는 한국의 동료들을 참조하는 게 내 커리어와 나의 어떤 학문적인 추구에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 안 읽어도되니까 안 읽게 되는 거죠. 그럴수록 우리는 계속 이론을 외주화할 수밖에 없고요. 맨날 선생님들이 왜 한국에는 이론의 대가가 안 나오느냐, 한국을 배경으로 해서 뭔가 독창적인 이론이나 독창적인 변형이 왜 안 일어나냐고 한탄들 하시지만, 그건 사실 내용의 문제가 아니라 명백하게 형식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제가 다른 글에서 슈뢰딩거의 석학이란 말을 한 적이 있어요.  [각주:2]  한국 연구자들은 이 사람들이 석학인지 석학이 아닌지 알 수 없는 중첩 상태에 있는 경우가 많은 거예요. 슈뢰딩거의 상자를 열어서 관측을 해야 석학인지 석학이 아닌지 아는데 계속 상자 속에만 있는 거죠.

 

연혜원: 상자를 열어서 관측하는 일도 결국 노동이잖아요. 그러니까 사실 사대주의 비판 같은 문제가 아니라, 한국에서 한국어로 된 지식이 순환될 수 있는 구조가 중요하다. 예를 들어 예술도 누가 창작을 해도 비평가가 없으면 그냥 묻히게 되죠. 비평가들이 양질의 수용자 대중을 만들고, 또 이 사람들을 예술장으로 다시 유입시키듯, 대학 학술장도 똑같은 거잖아요. 누가 지식에 대해 계속 얘기해 줘야 하는데 이런 노동을 할 사람들은 이제 아무도 없고, 노동할 수 있는 시간도 없고 그러다 보니까, 좋은 이론가들은 그냥 혼자 갇혀 있게 되고 계속해서 악순환이 되는거죠.

 

문송하게 되는 또 다른 이유로는 여전히 학술장의 식민지 상태가 지속되고, 아니 더 강화되고 있다는 게 있어요. 다들 계속 이제 논문을 영어로 써야겠네”, “영어로 논문 언제 쓸 거야같은 얘기만 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한국에 남기로 결정한 게, 누군가에겐 매우 낭만적인 얘기일 수도 있지만, 한국어로 글을 쓰는 게 저의 가장 핵심적인 자산이라고 생각했어요. 나는 진짜 한국어로 글 쓰는 것만큼 잘 할 수 있는 일이 없는데 내가 이거를 버리고 간다는 게 말이 되나. 또 저는 약간 인류학적인 방법론을 쓰고 있는데, 미국에 유학 간 친구들을 보면 보통은 방학 때만 국내에 들어와서 현지조사를하고, 이렇게 참여 관찰한 거를 미국으로 가져가서 논문을 쓴단 말이에요.

 

그런데 한국에서 현지조사를 하는 입장에서 보기에는 그게 너무 얕게 느껴지는 거예요. 여기서는 1년 내내 이 사람들을 만나서 생활사를 보니까요. 또 내 시간 될 때만 만나달라고 하는 게 솔직히 좀 무례한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 같은 경우 어쨌든 상대가 시간될 때 찾아가서 인터뷰하고, 상대한테 중요한 일이 생겼을 때 찾아가고. 그래서 한국에서 질적 연구자로서 계속 박사를 해야겠다 생각하죠. 한국에서 사회학은 완전히 통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지만요.

 

이런 상황이니 한국에서 이론을 생산할 수 있는 여러 방법론이 죽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오랜 시간을 거쳐 만들어지는 훌륭한 질적 연구, 문헌 연구, 지속적인 번역 생산 등 좋은 이론을 만들어낼 수 있는 학적인 방식들이 사라져가고, 좋은 이론가들이 성장하고 알려질 기회도 사라져가고 있죠. 그냥 실적 중심주의로 가고 있는데, 그건 인문사회과학과는 전혀 매칭이 안 되는 평가 방법인 것 같아요.

 

 

전임교수 10%의 연구자원 독점구조

 

김강기명: 연구자 커리어의 경로가 다양해야 되고, 다양한 일을 맡은 인력들이 학술장을 함께 만들어야 학술장이 건강하게 굴러갈 텐데, 한국 학술장에서는 진로의 경로가 하나밖에 없어요. 전체 박사 중 한 10%밖에 안 되는 대학의 정년트랙 전임 교수가 거의 90% 정도의 자원을 배분받고, 나머지 10%를 두고 나머지 연구자들이 나누는 거잖아요. 그러니 교수직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조차도 교수의 길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게 돼요. 40대 중반에 박사를 받았는데, 이 시점에서 정년까지 일할 수 있는 다른 직업이란 게 없으니까요. 생계만 유지된다면 즐겁게 자기 연구에 매진하며 살고 싶은데, 물질적 토대가 없으니 어떻게든 교수가 되려고 미친 듯이 경쟁을 하잖아요. 사실 전임교수란 게 올라운드 플레이어가 될 것을 요구받는 자리인데, 교수님들이 모든 일을 다 잘 하냐면 사실 그렇지는 않잖아요. 교수가 잘할 수 없는 영역은 대학원생이나 신진박사들에게 아주 싼 값에 아웃소싱될 뿐, 전문성이 확보된 하나의 분야로 발전하지 못하는 거죠.

 

과도한 경쟁 속에서 학술장 형성이 잘 되지 않고 있다는 점도 문제예요. 학술장의 재생산이라는 관점에서는 사실 자기가 전공하는 분야에 같은 내용을 연구하는 전공자가 많은 게 정말 좋은 일이잖아요? 대화할 사람이 많은 거니까. 그런데 지금의 현실에서는 각자의 커리어라는 관점에서 보면 공포스러운 일이에요. 누가 어디 붙었는데 나는 떨어졌다면, 같은 연구 분야의 사람들을 미워하게 되는 거죠. 이런 마음을 가지고 10년에서 15년 지나면 20대 때 저 선생님은 왜 그럴까?”라고 생각했던 저 선생님이 내가 되는 거죠. 사실 그 선생님들 개개인들이 나쁜 게 아니었던 거예요. 이 시스템에서는 구조적으로 연구자들이 동료 연구자를 미워하고 무시하게 만들어요. 호의를 담은 서평과 토론, 건설적인 비평이 학술장의 가장 근본인데, 건설적인 비평이 없는 자리에, 악담 아니면 무관심 두 개만이 지배한단 말이에요.

 

이공계나 자연과학 쪽 연구자들도 늘 연구비로 경쟁하고, 선도와 혁신을 논하지만, 이분들은 과학자 공동체라는 단어를 즐겨 씁니다. 그런데 인문학 하는 사람 중에 인문학자 공동체라는 말을 쓰는 사람이 없어요. 내 분야의 연구자가 적으면 적을수록 좋다고 생각하죠. 이론 분야에서 식민주의적 경향이 강한 이유도 마찬가지인데, 뭔가 새로운 게 나오면 경쟁적으로 빨리 수입해서 소개하는 수입상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에요.

 

연혜원: 그러니까 아래로부터의 자생적인 이론이 나오기 어려운 거겠죠. 이론가들도 자기의 사회적 맥락을 가지고 그 이론을 만드는 거잖아요. 한국에서 살고 한국어로 사유할 수 있는 사람들의 눈으로 보는 대신, 외국 것을 한국 사회에 바로 끼워 맞춰보고 대충 맞아떨어지는 것 같으면 바로 논문으로 내는 게 일상화되어 있는데 그러면 당연히 한국 사회를 설명할 수 있는좋은 이론이 나오기 힘들죠.

 

 

쪽논문을 양산해야 살아남는다!: 인문사회적 글쓰기란?

 

김강기명: 알면서도 그런 헐거운 논문을 쓸 수밖에 없잖아요. 1년에 2편 씩은 유지해야 4년에 800점이라도 채울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연구자의 사유를 집대성할 수 있는 학술적인 단행본 작업은 계속 미뤄지다가 은퇴할 때쯤 쓰게 되죠.

 

박치현: 사실 요즘에는 두꺼운 박사 논문이 무시된 지 오래되었죠. 인문사회학은 박사논문이 중요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김강기명: 현실적으로는 박사논문을 잘 쪼개서 3~4년간 여러 편의 학술논문으로 발전시켜 내야 하니 박사 논문 자체에 그렇게 공을 들일 이유도 없죠. 학계나 학계 바깥을 향해서 내는 게 학술 전문 서적인데요, 설령 학술장 밖에서 진짜로 읽히지는 않는다 해도 단행본이 계속 나와서 지금 인문학계에서 이런 책이 나왔고, 이 정도 수준의 논쟁이 이뤄지고 있다고 학술장 바깥을 향해 선언해야 인문학이 무언가 일을 하고 있음을 사람들이 알 수 있잖아요. 그런데 박사 논문 단계부터 단행본 작업은 잘 하지 않고, 각자 고립된 채 점수를 채우기 위해 누구도 읽지 않는 논문을 써야 되는 상황이 지속되다 보면, 역설적으로 경력이 쌓일수록 학술 단행본을 쓸 수 있는 역량이 점점 줄어들까 겁나기도 해요.

 

배세진: 저는 매 대학원 수업마다 첫 시간에 항상 이 얘기를 하거든요. 저는 미국 학술제도가, 물론 한국에서 미국 학술제도 자체를 왜곡해서 가져온 면도 있겠지만, 어떤 면에서는 조금은 문제가 있다고 봐요. 물론 미국 학술제도를 경험해보지 않았고 프랑스 학술제도만 일종의 반면교사로 경험해 봤으니 잘못된 얘기일 수 있단 걸 전제하고 말하겠습니다. 한국 학계가 미국 학술제도를 따라하면서 대학원 학생들이 이제는 전문가로서의 글만 써요. 그러니까 학술지 논문을 석사 때부터 잘 쓴다는 거에요. 석사 때 벌써 KCI에 학술지 논문을 내고, 더 나아가서는 SCI급 영어 논문도 내고, 그거로 박사 유학을 위한 CV를 만들어서 유학가는데요. 그 자체가 문제라는게 아니라 그게 인문사회 연구의 전부가 되어버린다는 게 문제죠. 제가 강의 첫 시간에 항상 하는 얘기가 이런 게 인문사회 연구의 전부가 아니란 겁니다. 물론 대학원에서 배워가야 할 첫 번째, 그러니까 가장 중요한 능력이 소위 전문가로서의 학술 논문 쓰기를 잘하는 것이긴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란 사실도 염두에 둬야 한다는 거죠. 에쎄이든 이론적인 글이든 비평이든 다른 종류의 글들도 써봤으면 좋겠다, 이렇게 조언을 하거든요. 저는 이런 맥락에서 대학원 수업 기말평가 때 인문사회과학 내에서 어느 정도 가치가 있고 현재성이 있는 도서에 대한 서평을 써오라고 해요.

 

20여년 전에 <당대비평>이라는 계간지가 있었습니다. 그때 참여하셨던 분들을 보면, 물론 강사분들이나 학계 밖 선생님들도 계셨지만, 교수님들도 많았어요. 예전에는 대학의 교수님들이 정세적 개입을 위한 사회비평도 많이 쓰셨던 거죠. 참여지식인이 되라는 고루한 얘기가 아니라, 인문사회 연구자는 다른 과학자와는 달리 여러 종류의 글을 쓸 줄 알아야 한다는거죠. 지금은 이태원 참사 같은 우리 사회의 커다란 사건이 나도 그에 관한 글을 쓸 사람이 대학 내에 없어요. 대학 밖에 있는 소수의 사람은 쓸 수 있겠지만. 대학 내에서 그런 글을 쓸 시간도 없고 더욱 중요하게는 쓸 수 있는 능력도 점점 없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학의 전문화가 꼭 좋기만 한 걸까 질문해봅니다. 인문사회과학에서 말하는 과학적 글쓰기라는 게 꼭 학술지 논문을 위한 글쓰기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고, 더 나아가서는 과학의 범위를 그렇게 한정할 필연성은 없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은데요. 점점 무너지고는 있지만 프랑스 학계에선 이런 정신을 여전히 유지하려는 중력이 남아 있거든요. 제 생각에는 점점 과학과 과학적 글쓰기의 범위가 줄어들고 그런 글을 쓰고 이를 위해 사유할 수 있는 역량이 떨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대학원생 시절부터 이미 학술논문을 정말 잘 쓰지만, 오히려 인문사회 연구자로서의 상상력은 점점 약해지고 있는거 아닐까 하는 고민과 걱정이 있는 거에요. 그리고 오늘날 한국 인문사회 학술 생태계의 위기와 이런 인문사회과학적 글쓰기의 소멸이 정말 연관이 없는 걸까 의심해보게 됩니다. 사실 인문사회 연구에 발을 들여놓은 우리는 다 알잖아요, 그게 다가 아니라는 걸. 우리가 인문사회 연구에 뜻을 두게 된 계기를 떠올려보면, 상당수는 인문사회과학적 글쓰기의 매력이 많은 영향을 미쳤을 거에요. 인문사회과학의 위기를 논할 때 저는 반드시 인문사회과학적 글쓰기의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강기명: 단행본이나 비논문형 학술적 글쓰기 같은 것들이 공존을 해야되는데, 모든 것이 다 논문 점수로 환산되는 상황에서 그런 걸 가지고 커리어를 닦을 수 없으니까. 아마 그 학생들도 나중에는 그때 배세진 선생님말을 듣지 말았어야 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웃음) 특히 서울의 사립대중에는 임용시 SCI급 논문에 800점 씩이나 주는 곳도 있고 그렇잖아요. 영어 논문 많이 쓴 사람 뽑겠다는 거죠. 학교는 학교대로 이게 대학 평가에 들어가고, 랭킹 높여서 외국인유학생 충원하는데 영향을 미치는 문제니까 목을 매게 되는 거고요.

 

 

영어논문의 지배

 

연혜원: 대학 평가에서 영어 논문이 이렇게 배점이 높은 게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이걸 도대체 어떻게 바꿀 수 있는 걸까요. 제가 박사 과정에 들어오고 전임 교수 임용이 두 번 있었어요. 대학원생들도 지원자들의 공개강의에 참석할 수 있었는데, 그때 공개강의를 영어로 한다는 걸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충격을 받았어요. 정작 대학원 강의는 다 한국어로 하는 상황에서 영어 강의를 들으니 내가 뭘로 평가해야 될지 모르겠더라고요. 거의 저 영어 못해요라고 하고 싶을 정도였어요. 저는 한국에서 박사하고 있는 거잖아요.

 

각자 자기 장점과 재능이 있고 또 학술장에 대한 비전이 있을 텐데, 심지어 영어를 잘하는데 한국어를 잘 못하시는 분도 있더라고요. 만약 그분이 되셨다면 도대체 수업을 어떻게 하셨을지 모르겠어요. 요즘은 한국인 학부생이 줄고 중국인 학부생들이 대부분인 경우도 많으니 차라리 중국어가 더필요하겠네요.

 

김강기명: 권력의 관점에서는 너무 쉬운 거예요. 자신들은 아무런 노력도 안 해도 되고 연구자들이 지들끼리 알아서 경쟁하다 걸러지고 한 5%만 남으니까. 이 사람들에게만 억대 임금 주고 나머지는 그냥 내버려두고요. 요즘은 교수님들도 처우가 안 좋다고 문제제기하는 분들이 많죠. 근데 산업예비군이 이렇게 많은데 대학들이 교수님들 임금 올려줄 필요가 없죠. 너 하기 싫으면 그만둬. 여기 너 자리 대체하고 싶은 사람 너무 많아, 이렇게 되는 거니까. 교수님들은 월급 안 오른다고 불만인데 사실 그 원인은 다른 모든 사람이 너무 불안정하고 취약하기 때문이죠. 단순히 등록금이 동결되어서 임금이 안 오르는 게 아니에요. 교수도 협상력이 없고, 우리 모두 협상력이 없죠. 정부와 사학 재단들만 너무 행복한 거죠.

 

박치현: 새로 후속연구자 유입이 계속되어야 하는데, 아까 연혜원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대학원 이후의 전망이 좋지 않아도 대학원에 입학하는 어리숙한(?) 세대들이 있어야겠죠. 이제 더 이상 학문을 위한 순교자(?) 식의 내러티브가 먹힐 수는 없겠지만요.

 

연혜원: 제가 박사 입학했을 때 강의하러 오신 박사 선배한테 처음 들은 말이 진짜 왜 왔어였어요. 진짜 할 말이 없어서 이거 팔자인 거 아시잖아요라고 답했죠. 저는 사실 직장 생활도 두 번이나 했어요. 그러니까 저는 아주 냉정하게 판단한 거예요. 나는 불행하게도 이거(공부)밖에 못한다고. 사실 내가 말을 걸고 싶은 사람들은 한국 안에 있는 사람들인데 왜 내가 만날 가능성도 희박한 영어 화자들을 향해서만 말해야 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아요. 영어 논문 쓰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왜 굳이 나까지 영어 논문을 써야 하는 거지? 그런데 안 그러면 정말 여기서 노동자로서 완전히 사장될 수 있겠다는 근원적인 공포심도 들죠. 이로부터 오는 어떤 크나큰 괴리감과 비참함, 그리고 왜 이렇게 된 걸까라는 질문이 들죠. 진짜 나는 완전 식민지 노동자라는 생각을 진짜 많이 하게 돼요.

 

배세진: 저 같은 경우 프랑스 유학이든 프랑스어 번역이든 처음부터 의도한 건 당연히 아니에요. 대부분 다 그렇지만 그냥 하다 보니까 이렇게 된 건데, 저는 학사과정 때부터 우연한 계기로 알튀세르 등등을 읽었고, 이건 정말 대단한 이론이고 확고한 진리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계속 파고들어가자 해서, 석사 때도 알튀세르, 발리바르로 논문을 썼죠. 프랑스 이론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생각해서 이후 프랑스에 가서 배우기로 했죠. 가서는 정말 재미있게 공부했는데, 이제 돌아오고 나서는 누구나 그렇듯 현실에 부딪히게 되잖아요. 현실적으로 제가 영어도 다 잊어버리고, 영어로 강의하거나 영어 논문을 쓸 능력은 당연히 없는데다가, 아예 평가체계 자체가 다른 국가에서 유학을 했다 보니 영미식 평가체계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이 많죠.

 

그런데 유학 시절 경험을 떠올려보면, 이게 유학생으로서 저의 피상적 관찰일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고 들어주셨으면 좋겠는데, 프랑스 학계가 인문사회과학 영역에서는 정말 건강하다고 생각했어요. 그 핵심은 연구자 간 경쟁이 적다는 건데요. 물론 그랑제콜과 일반 대학 간 차별은 분명 존재하지만 예전처럼 심하지 않고, 인종간 차별도 인문사회과학에서는 민감하게 다루면서 해결해 나가려 하고요. 업적도 말하자면 박사 논문을 책으로 내면 그걸로 평가받는 식이에요. 아직까지는 경쟁이 적은 편이고, 업적의 양보다는 동료들의 질적 평가가 중요하고, 그런 저경쟁 환경이라는 맥락에서 국립과학연구센터(CNRS) 소속으로만 살아가는 연구자도 많죠. 어떻게 연구자들이 삶을 꾸려 가는가 살펴보면, 최저 생계 수준의 삶인 건 프랑스도 맞아요. 그런데 다들 열정적으로 재미있게 연구하고 여러 가지가 많이 보장되고 강의와 논문 지도 등도 할 수 있고 학술공동체 내에서 지적 인정도 받죠. 정교수와의 차별은 적은 거 같아요. 그래서 교수가 안 돼도 크게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죠. 지방 대학과 파리 대학 간 위계도 어느 정도는 약화돼서 지방에서도 다들 연구 잘 하고요.

 

지금 인문사회 학술장이 무너지고 있는 한국에서 제가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 제도적으로야 당연히 교수도 아니니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힘이 제게는 별로 없죠. 이렇게 좌담회도 하고, 학생들과 얘기하고, 동료들과 토론하는 정도겠죠. 그래도 결국 제도 내에서 저의 역할은 번역서를 많이 내는 것밖에 없겠다라고 생각했어요. 번역서 내고 그다음 관련 논문을 좀 충실하게 써서 출판하면, 한국 인문사회과학에서 이론에 대한 논의를 조금이라도 더 풍부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번역의 경우 당연히 돈도 안 되고 업적도 안 되지만, 그래도 많이 해놓으면 확실히 동료들과 학생들이 많은 도움을 받거든요. 특히 대학원생들이 정말 큰 도움을 받으니까 이거 하나만 하자, 이런 마음입니다.

 

 

인문학의 수요는 분명 있다

 

김강기명: 그런 게 사실상 대학에서 할 일을 학교 바깥에 있는 연구자들한테 외주 주고 있는 거잖아요. 저도 이번 여름에 스피노자 강의를 학교 밖에서 열었는데 30명이나 온 거예요.

 

배세진: 대학에서는 스피노자 철학을 배우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으니 그렇겠죠.

 

김강기명: 사실 인문학의 수요가 없다는 건 거짓말이에요. 대학원생들은 수백만원 등록금을 내고도 정작 학교에서 필요한 수업이 안 열리니까 밖에서 또 수강료를 내고 수업을 들어요. 대학 밖 학술단체 강사들은 알아서 수강생을 모집하고, 대학원생들은 알아서 학교 바깥에 나가서 공부를 해서 논문을 쓰고 있죠. 이럴 거면 대학원은 왜 있는 걸까요?

 

배세진: 최근 논란이 된 유튜브 채널 중에 <장사의 신>이라고 사업가 출신 유튜버가 운영하는 채널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말하기를 회사 직원들을 회사에 붙여놓으려면 두 가지밖에 없대요. 돈을 많이 주거나 비전을 주거나. 돈을 못 주면 비전 밖에 없다는 거예요. 그거 안 하면서 좋은 사장이라고 말하지 말라, 뭐 이런 얘기였는데. 대학원생들도 대체로 돈 보고 학계에 진입하는 게 아니거든요. 이 비전이라는 게 대학들의 서열을 높여주기 위한 비전이 아니라, 여기 오면 진리에 다가갈 수 있다는 비전인데 인문사회 대학원이 이를 제시해주지 못하고 있는게 현실입니다. 이 두 가지 모두 주지 못하니까 대학원생들이 이탈할 수밖에요.

 

 

논쟁과 토론이 필요하다

 

김지수: 저는 김강기명 선생님 논문 읽으면서 동료 간의 상호교류와 비판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에 대해서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료간 상호 비판과 비평이 안 되는 이유가 학술 장이 가진 구조화된 문제들도 있고 서로에게 관심이 없는 문제도 있는데, 제가 보기에는 못 하는분위기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얼마 전에 동료와 이 주제를 가지고 얘기를 했었는데, 요즘에는 연구자들이 학회나 간담회에서 모였을 때 학술적 입장의 다양성, 다층성, 환대와 같은 가치들을 가장 우선적인 규범으로 두는 것 같다는 얘기가 나왔어요. 심지어 비판을 하면 다들 좋다고 말은 하는데, 그게 공동의 논쟁으로 가지는 못해요. “날카로운 비판 잘 들었습니다. 학문후속세대인 님의 말이 다 옳습니다, 반성합니다. 좋은 연구 하시네요, 파이팅에 그치는... 바로 이것이 무관심과 연결되는 지점인 거죠.

 

이런 연구문화에는 분과의 장벽도 한몫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른 분과 연구에 대해 토론을 맡게 되면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기본적으로 조심스러워지죠. “제가 그 분야를 잘 몰라서 그러는데이렇게 항상 운을 떼곤 하죠. 특히 젠더와 섹슈얼리티 연구 같은 경우에는, 그 주제를 이야기한 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뭔가 연구의 사회적, 학술적 의의가 충족이 된다는 분위기가 있는 듯합니다. 비판이나 비평이 깊이 있게 이루어지기보다는 그 분야를 일종의 성역화된 영역으로 놔두는 거죠. 여성학을 비판할 수 있는 사람은 여성학 내부의 전공자밖에 없다고 여기는 분위기도 있는 듯해요. 인문사회 분야에서 전공자가 줄어들고 생존의 입지가 점점 사라지는 상황에서, 누군가 새로운 연구자가 발표를 한다면 이 학생이 다음번 학회에 오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비판과 비평을 제대로 할 수 없는 분위기가 있어야할 것 같아요. 뭔가 공통의 의제를 토대로 토론을 하고, 그런 토론이 일어나더라도 환대가 이루어질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하는데, 토론 없이 단순한 환대만 근본적인 규범으로 자리 잡은 것 같습니다.

 

배세진: 학자들끼리 서로 토론을 해야 관심이 계속 유도가 되는 거죠. 다만 논문을 제출해보면 피어 리뷰 받을 때 이런 연구를 왜 하냐부터 시작해서 워낙 공격적인 말들이 많이 들어오니 상처를 많이 받는 거 같아요. 아까 말씀하신 경쟁적 환경 때문에 연구자들이 마음 속에서 품게 되는 원한 감정이 특히 피어 리뷰에서 다 드러나는 거예요. 저의 경우 아무래도 비주류 학문을 연구하고 주제 자체가 학술 논문 형식과 안 맞으니까 더 심한 혹평을 받기도 하고요. 그런 포지션인걸 감안해도 경쟁적 환경이 만드는 원한 감정 때문에 불필요한 공격을 받고 있다 느낄 때도 많습니다.

 

김강기명: 바깥에서는 최대한 신사적인 태도와 평판을 유지해야 하지만, 그런 규범이 해제된 공간에서는 꼬인 마음이 확 튀어나오는 거죠. 개인의 문제가 아니에요. 누구든 그 환경에서 한 15, 20년 있으면 당연히 그렇게 될 수 있는 거죠.

 

 

학술 번역과 출판, 그리고 이론교육의 문제

 

박치현: 이제 제가 준비한 테마 중 두세 가지만 이야기하고 마무리를 짓겠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다들 활발하게 고민을 풀어주셔서 제가 사회자로서 말을 얹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우선 배세진 선생님꼐서 학계에서 번역과 저술의 가치 부여 방안에 대해 얘기를 해 주시고, 그리고 김지수, 연혜원 선생님 중심으로 여성 연구자 문제에 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마지막으로 김현준 선생님께서 비제도권 학술단체가 학술생태계에서 갖는 가능성을 짚어 주시죠.

 

배세진: 번역과 학술출판을 함께 묶어서 얘기해야 할 것 같네요. 저는 번역가로서의 활동에 매우 큰 자부심을 지니고 있거든요. 번역을 계속하면서 느끼는 건, 근본적으로 대학원에서 서양 학문을 하면 무조건 한국어로의 번역을 가르쳐야 한다는 겁니다. 그걸 안 하니까 저는 한국어로 자기 글을 쓰는 것도 어려워진다고 생각합니다. 국학은 좀 낫겠지만, 보통 많은 학계에선 서양 이론 가지고 와서 이론적 배경 쓰고 그 뒤 사회과학 방법론 써서 논문을 완성합니다. 문제는 번역이 안 되니까 외국어 문헌 읽기도 잘 안 되고 그러니까 이론적 배경이, 궁극적으로는 작업 자체가 매우 피상적이 되기 쉬운 거죠.

 

그래서 저는 대학원 수업 때 서평을 쓰거나, 자기가 쓰고 있는 석박사 논문의 이론적 배경을 써오라고 주문하는데, 학생들이 많이 어려워하죠. 어렵게 느끼는 건 텍스트를 많이 안 읽어서 그렇습니다. 전반적으로 대학원생들이 한국어로든 외국어로든 텍스트를 많이 안 읽고 있다는 거죠. 외국어의 경우에도 말은 유창하게 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읽고 쓰기는 안 되는 거죠. 말하기와 듣기, 읽기와 쓰기는 상당히 다른 훈련을 요하는 꽤나 별개의 능력이니까요. 그래서 상당히 다른 방식으로 각각의 역량을 키워야 하는데, 학생들이 읽고 쓰기를 어려워하는 상황에서는 번역이 그런 문제를 고치는데 아주 좋거든요. 그래서 번역이든 외국어 텍스트 독해든, 대학원에서 가르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되고, 그걸 안 가르치니까 대학원생들의 텍스트 독해나 글쓰기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번역 문제로 돌아오면, 결국 번역을 배울 곳이 없다는 게 문제인데. 따로 이론을 배울 데가 없는 현실과 동일한 거죠. 사실은 이 둘은 연결된 문제이기도 하고요. 논문을 쓰려면 결국 다 이론적 배경을 써야 되잖아요. 그런데 다들 이걸 너무 어려워해요. 제가 석사논문이든 학술지 논문이든 논문심사를 많이 하는데, 좋은 논문인데도 항상 이론적 배경만 보면 매우 불충분한 경우가 많아요. 그리고 이 문제가 이 논문이 더 좋은 논문이 되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고요. 어쨌거나 요즘에는 이론적 배경이 중요한 평가 기준이 아니기 때문에 그냥 다 통과가 되는 거죠. 인문사회과학, 특히 사회과학에서 이제 이론가는 거의 없고, 그렇게 되고자 하는 대학원생도 없다고 봐야죠. 그렇지만 저는 경험 연구자에게도 이론적 이해의 불충분함 혹은 부재가 결국 시간이 흐를수록 발목을 잡는다고 생각해요. 경험연구자로서 더 성장하지 못하는 경우 그 이유는 사실상 이론에 있다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이야기할 건 학술출판인데, 상업출판사에서 학술번역을 하다보니 정말 힘들어요. 번역 자체가 힘든 건 아니고, 이걸 책으로 내는 과정이 너무 힘들고, 출판사들과 많이 싸울 수밖에 없고, 출판사도 당연히 돈이 안되니까 또 자원을 많이 쓰기 힘든 것이고. 번역과 출판이 너무 힘든 작업이 라는 것을 이해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돈 안 되는 거 상관없고 힘든 거도 상관없는데, 그냥 번역한 다음 제도의 힘으로 편하게 책이 나왔으면 좋겠는데, 그러기 어렵죠. 제도도 없을 뿐더러 출판장 내 행위자들의 이해도도 떨어지니까. 그러니까 또 번역을 다들 안 하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요.

 

김강기명: 책은 절대 저자나 번역자 혼자서 내는 게 아니기 때문에 숙련된 편집자가 정말 많이 필요한데 말이죠.

 

배세진: 출판사도 학술을 이해하고 이에 자원을 투입할 의지와 역량이 있는 출판사여야 되는데 아닌 경우가 정말 대부분이죠. 출판계가 상업적으로 워낙 어렵다 보니 이해가 가는 부분도 많지만요. 결국에는 상업성에 대한 고려를 최소화하는 ‘대학출판부’가 해야 됩니다. 특히나 전문적인 학술 편집자 양성을 위해서는 더욱더요. 상업 출판사에서 전문적인 학술 편집자를 양성할 수 없는 건 아니지만, 역시 영역이 나눠져 있다 보니까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상업성에서 아주 조금이라도 해방되어야 학술 편집자를 기를 수 있는 여지가 생길거고요. 중국도, 미국도, 프랑스도 그렇고 학술장이 확고히 자리잡은 국가들에서는 대학출판부가 잘 돌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김강기명: 일본이나 독일은 대학 출판부보다는 유수의 대기업 출판부가 학술전문출판을 맡는 것 같아요.

 

연혜원: 대학출판부를 통해 대학에서 만들 수 있는 일자리가 생각보다 많을 것 같아요. 사실 대학원생이 많아지면 책도 더 많이 팔릴 거예요. 제 주변에 책 제일 많이 사는 사람들이 다 대학원생들이죠. 문과가 돈이 안 되긴요, 돈이 돼요. 책을 사니까. 한국은 그 사업 모델을 모르는 것 같아요.

 

 

여성연구자의 성장과 생애

 

김지수: 재작년에 인문사회 분야 여성 신진연구자들의 실태에 관련한 공동 연구를 했는데요 [각주:3] , 석박사 과정을 하던 중에는 여성 동료의 비율이 적지 않았는데, 단계가 계속 올라갈수록 여성 선배들이 사라진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어요. 왜 다들 사라졌을까,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이런 질문이 생겨서 국내에서 인문사회 분야를 전공한 여성 연구자의 삶이나 이행 경로를 보고 싶었습니다. 여성 연구자들이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를 듣고 싶었고, 또 여성 연구자들이 학술생태계 내에서 어떤 노동을 하고, 학술노동에 여성이라는 범주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분석했어요.

 

연구를 하면서 여성 신진연구자들이 겪는 문제들이 굉장히 특수화되어 있으면서도 교차되어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기본적으로 인문사회 분야에서 신진 연구자로서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큰 어려움을 수반하는데, 거기에 젠더라는 축이 하나 더 겹치니까 거의 전 생애과정에 불안정성이 상존해 있었어요. 그런 문제에 대해서 여성 연구자들이 오로지 개인적 차원에서만 책임지고 대응하라는 요구를 받아 왔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상당히 놀라웠던 건 2022년도에 연구를 진행했는데도 대학원 재학시 성폭력이나 성희롱을 당했다는 진술이 많이 나왔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많은 여성연구자가 기본적인 연구자 생태계에서 자신들이 여성으로서 패싱되거 나 배제된 경험을 했다는 의견을 들려주었어요.

 

아직까지도 인문사회 분야 학술장에서 남성중심적 연구문화가 유지되고 있는 건데, 그게 노골적이지는 않더라도 굉장히 은근한, 연성적인 형태로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죠. 나를 동료로 취급하지 않는 분위기 같은 것들이 있고, 과연 내가 이 학술장에 남아 있어도 되는 존재인가, 모두 불편하지 않아 보이는데 여기서 계속 불편함을 느끼는 내가 학술장의 교란자처럼 느껴진다, 이런 얘기들을 들으며 여러 생각들이 들었습니다.

 

여성 연구자들이 학계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지에 대한 롤모델이 부재하다는 얘기도 많이 나왔습니다. 나에게 피드백을 주고 조언을 주는 남성 교수는 높은 확률로 SKY 대학을 나온 운동권 출신으로 위치성 자체가 다릅니다. 한편 여성 교수들은 산전수전 다 겪고 살아남은 정말 완벽한존재들이에요. 완벽해야만 여성 연구자로서 살아남을 수 있어요. 그러니 그 사람도 나의 롤모델이 될 수 없는 거죠. 자신이 학술장에서 과연 어떤 연구자들을 보면서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문제에 있어서, 여성연구자들은 학계에서 규정하는 기존의 지식인 모델이 자신과 맞지 않는다는 것을 간파했다는 점이 드러났지요. 그래서 같은 분야의 다른 여성 연구자 등으로 대안적 롤모델을 만들거나 이상적인 연구자의 상을 스스로 바꿔나가려는 움직임들을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이 연구를 하면서 여성 연구자들이 여러 종류의 위험과 차별에 노출되어 있으면서도 집단적으로 이를 공유하지 못하고 파편화되고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특히 대부분의 연구참여자들이 지적했던 광범위한 남성중심적 학술생태계 구조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됩니다. 여성 연구자들의 전방위적 네트워크를 고민하기도 했지만 불완전한 해법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고민은 많이 생겼지만, 동시에 힘을 많이 받기도 했던 연구였습니다.

 

 

학술생태계와 비제도권 학술실천

 

박치현: 여성연구자 말씀하시면서 자연스럽게 동료 이야기를 하셨는데, 비제도권은 <연구자의 집> 같은 예도 있고 여기 계신 선생님 중에서도 오랫동안 활동해오신 분이 있으시죠. 비제도권이 어느 정도 이 학술생태계의 문제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요?

 

김현준: 저는 오랫동안 비제도권에서 활동했죠. 저는 애초에 대학 밖에서부터 공부를 시작했고, 대학과 대학 밖 활동 둘 다 열심히 한 케이스죠. 학교도 매일 열심히 나가고 학교밖 활동도 열심히 하고. 그래서 약간 양가적인 점이 있어요. 한편으로는 애초에 대학교수를 목표로 대학원을 다닌 게 아니었기에 망가지는 대학에 크게 희망이나 기대를 품지 않았죠. 그런데 또 다른 한편으로 현실 자각 타임을 가지면서 이렇게 대학이 중요하구나, 대학원이 중요하구나란 문제를 느끼게 되었죠.

 

대학 밖 학술운동의 기본적인 조건은 아시다시피 여러 현실적 상황에 의해 사람들이 대학 바깥으로 잉여적으로 밀려나면서 성립될 수 있었습니다. 적어도 20년 전부터 신자유주의화같은 거시적 흐름과 함께 있었던 일이죠. 물론 과거에 80년대 학술운동이 있었지만 저는 그 운동권 세대에 반쯤은 걸치긴 했어도 좀 다른 세대잖아요. 86세대들은 나름 공부에 어떤 진지한 생각을 가지고 시작했던 거고, 어떤 전략의 일환으로 대학원에 갔던 것이고. 어쨌든 대학 밖에서 이런 공부를 하는 게 밀려난, 그러니까 네거티브(negative)한 측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에서 그냥 만족하거나 자조적으로 논의를 끝내고 싶지는 않고, 저는 포지티브(positive)한 측면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어요. 대학에 자리가 없으니까 대학 밖에서 하는 게 아니라, 우리는 독자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려 합니다. 최근에는 그런 생각을 더 많이 하고 있고요. 대학 밖 그냥 독립적인 연구소다 이렇게요. 분명 대학에서 외주를 준다는 측면도 있고 이를 부정하고 싶지는 않아요 다만 정부든 대학이든 외주를 시킬거면 돈을 주어야겠죠.

 

저는 개인적으로 학문 후속 세대에 관심이 있고, 제 동료들도 관심이 있죠. 이제 계속 서로의 연구를 이렇게 살펴볼 수 있는 그런 조건이 마련되어야 하는데, 요즘 대학이 그런 조건을 잘 마련하지 못해요. 비제도권 연구단체에서 동료들을 더 쉽게 만날 수 있다 이거죠. 쉽게 얘기하면 비제도권에서 우리가 강좌를 열면 많이들 오니까 여기서 서로 만날 수가 있죠. 정작 제

가 소속되어 있지 않은 대학에선 저를 만날 수가 없겠죠. 그러면 송은이가 독립 기획사 차리는 것 같은 그런 마인드로, 아무도 나를 찾지 않으면 내가 만들겠다 이런 심정으로 이 비제도권 연구소를 하고 싶다고 말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대학원에서의 부조리 중 하나는 주로 미국 대학에 유학을 갔다 와서 한국에 자리를 잡으신 선생님들이 자기 제자들을 가르치고 논문을 쓰고 할 때 국내 저자들을 전혀 가르치거나 인용하지 않는 그런 습속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거예요. 반면 대학원생들이 공부하러 대학 밖의 선생님들을 찾아가요. 그 선생님들이 대학에 없으니까 밖으로 공부하러 가는 거죠. 정작 대학 교수님들은 대학 밖 선생들에 대해 거의 인용하거나 언급하지 않아요. 이러면 학생은 여기서 약간 혼란스러운 거죠. 대학 밖 선생님들이 진짜 훌륭한 분인지 아닌지를 잘 모르겠는 거에요. 시간이 흐르면서 알게 되었지만 처음에는 헷갈렸어요. 어쨌든 그러면서 모순적인 습속들 간에 갈등이나 대학교수/독립학자의 이중적인 하비투스를 체화하는 거죠. 저는 그런걸 보면서 공부를 했는데, 나도 결국 대학에 자리를 못 잡을 거면 그런 대학 바깥의 독립연구자 선생님들처럼 훌륭한 연구자가 되어야겠다. 그냥 대학 밖에서 나를 찾아주면 그걸로 족하다, 이렇게 생각을 하게 된거죠.

 

요점은 대학 밖에서의 학술운동이 자체적인 목표를 가져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자체적인 목표를, 자체적인 프로젝트를, 자체적인 의제를 가져야 된다는 것이죠. 이것이 외주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요. 나중에는, 이건 망상일 수 있는데, 대학이나 대학원으로부터 존중받는 존재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전임교수가 비제도권 온라인 인문학 강좌를 수강하는 이유

 

김강기명: 저번에 세미나를 하나 열었는데, 교수님들이 몇 분이나 우리 세미나에 오시는 거에요. 미국에서도 접속하시고요. 깜짝 놀랐죠. 예전에 오프라인으로만 이런 모임을 할 때는 매우 드물었던 현상인데요.

 

박치현: 미국에 있는 교수도 온다는 건 비제도권이 학문적 가치가 있다는 거 아닌가요?

 

김현준: 불어원서의 영문번역본 강독을 한 적이 있는데, 영어나 불어 잘하는 분들이 왜 들어오시는지(웃음). 그러니까 그런 수요가 있는 거죠. 단순히 번역의 문제를 넘어 그걸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문제. 예를 들면 제가 부르디외 공부하지만 불어를 할 줄 알아서 그분들이 오는 게 아니잖아요. 제가 무슨 프랑스 학계를 알고 유학을 갔다와서 전문성을 인정받는 것과는 좀 다르죠. 진보적인 스탠스라든지 특정한 관점에서 부르디외를 해석하는 걸 듣고 싶어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박치현: 비제도권이 결국 연구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물적 조건이 필요한데, 물적 조건 마련을 위해 어떻게 해야하는지 좀 이야기해보면 좋겠습니다.

 

김강기명: 저는 물적 토대와 관련해서 지금 말한 지점을 이슈화시켜야 된 다고 생각해요. 아까 학생들이 알아서 밖으로부터 배워가지고 논문 쓰고, 밖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너희들이 알아서 학생들 모집해서 수강료를 벌어서 그걸로 운영을 해, 이런 상황이잖아요. 이건 사실상 지식생산의 ‘착취’구조 아닌가요? 대학이 교육기능의 일부를 학교 바깥에 외주주고 착취하고 있는 거죠. 물론 지방에는 이런 모임같은 것도 없으니까 소외감을 느끼는 연구자분들도 많지만요.

 

연혜원: 학생들이 사실 돈을 2배로 내는 거잖아요. 학교에도 내고 밖에도 내고. 너무 고민이죠. 어쨌든 교수라는 롤모델이 아니면, 나는 뭘 하면서 먹고 살 수 있을까? 내 연구를 하면서도 먹고사는 그런 롤 모델이 한국에는 참 없어서, 김현준 선생님이 말씀하신 그런 비제도권 공간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죠. 그런데 아무래도 가장 중요한 건 그 물적 토대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물적 토대와 관련하여 뭔가 함께 할 수 있는 어떤 방향성이 나온다면 좋은데, 여전히 너무 불안한 경제 상황 속에서 내가 한 발이라도 대학에 걸치고 있어야 어쨌든 계속 생활비라든지 이런 게 나온다고 생각이 드니까. 어떻게 하면 오랫동안 글을 쓸 수 있을까가 사실 목표이기는 하거든요.

 

김강기명: 저는 학교 밖 연구단체들이 자립을 추구해야 하는가에 있어서 김현준 선생님 생각과 약간 다른 부분이 있어요. 수강생 다수가 대학생, 대학원생들이잖아요? 같은 사람이 대학원도 가고, 학교 바깥으로도 간다는 이야기죠. 자립 모델이 아니라 ‘공생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하청을 맡겨놓고는, 그것을 인정하지도 않는 착취 모델인데요, 이 모델을 공생 모델로 바꿀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걸 어떻게 제도화할 것인가? 예를 들면 연구자 개개인의 삶을 안정시키는 ‘국가박사’ 모델도 있을 테고, 아니면 학교 밖 단체들이 연구재단 같은 기관의 컨트롤을 받아들이면서 대신 지원을 요구한다든지 하는 모델도 있을 것 같아요. 여기에 관해선 다들 견해가 다른 것 같습니다. 예전 학술운동세대의 성향이 강할수록 우리가 비제도권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한 것 같고요, 밀려나다 못해 여기까지 온 사람들은 공생 모델을 좀 제대로 잘 갖추면 좋겠다는 분들이 있는 것 같고요.

 

 

연구자 개인의 삶을 안정화하자

 

연혜원: 저는 연구자 개인의 삶의 안정화를 추구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연구소 단위로 사업을 따는 데, 실제로 그 밑에서 일도 해보고 했지만, 너무 회의적이에요. 굉장히 수직적으로 가기 쉽고, 그 안에서 발생하는 불합리한 노동이 너무 많거든요. 예를 들어 6시 퇴근인데 4시에 갑자기 내일 낼 사업서를 쓰라는 거예요. 아니 나는 최근에야 들어왔는데 알면

교수가 더 잘 알지 박사 과정인 내가 무슨 연구 계획서를 갑자기? 퇴근 2시간 남았는데 내일 오전까지 쓰라고 하니까이런 식의 불합리한 노동 구조가 발생하기 너무 쉽죠. 약간 독립적인 것이 많아져야 한다는 입장이에요. 예술이든 학술이든 문화든, 박사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의 개인의 삶이, 그게 기본소득이 됐든 사회보장이 됐든 어느 정도 안정화돼야, 그 독립의 의미가 살아날 수 있는 거 아닐까요.

 

김강기명:인문도시 사업이라고 있어요. 연구재단 사업인데 이게 대학에만 연구비를 준단 말이죠. 대학 밖에서 이런 활동을 하던 분들이 대학 내 인문도시 연구단에 들어가 밖에서 하던 강의를 대학 안으로 옮겨서 수행하고 있죠. 사실 홍대와 신촌 인근에 있는 연구단체들이 만약에 컨소시엄으로 이 사업을 받을 수 있다면 어마어마한 강의성과가 나올 겁니다. 지금도 많은 강의가 여기서 이루어지고 있으니까요. 배세진 선생님 같은 분들은 막 수강생 200명씩 모아서 강의를 하시잖아요. 단지 대학이 아니고 비제도권이란 이유로 박사급 연구자들의 모임이지만 그냥 그림자처럼 지내고 있죠. 이렇게 우리는 이미 인문도시사업을 잘 하고 있는데, 인문도시 사업은 우리가 아니라 엉뚱하게 대학에만 연구비를 주고 있죠.

 

김현준: 지금 여기 학술단체들과 그 구성원들의 재정 상태는 다 각자도생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제 뭘 할 수가 없으니까 어쩔 수 없이 여기서 한다, 이런 건 아니고, 각자도생하는데 여기에 플러스알파로 내 돈을 내고 학술단체를 한다는 거예요. 사실 되게 힘든 문제인데, 모두한테 그걸 강요할 수 있는 건 아니죠. 어쨌든 그런 마음으로 한다는 거죠. 개개인의 경제적인 문제는 지금 서로 말을 못하는 상황이에요.

 

연혜원: 먹고사는 문제를 고려하지 않는 것은 위험해요. 뭘 하든 먹고 사는 게 늘 발목을 잡는데, 그건 학술만 해당하는 것도 아니죠. 저는 부업을 하는데요, 예술 전공도 아닌데 어쩌다가 예술 기획과 관련해서 돈을 벌 수 있게 되었어요. 그런데 그런 컬렉티브 같은 거를 해도, 결국에는 개인의 생활비 문제를 서로 말을 안 하죠. 그러다 나중에 문제가 터지는데, 한 사람의 생활고가 과중되어 폭발해가지고, 결국 너희들이 잘못해서 내가 이렇게 된 거야라는 식으로 되죠. 사실 그런 일들을 몇 번 겪고 나니까, 어떻게 하면 진짜 생활이라는 걸 안으로 가져올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었죠. 그런데 그건 개개인이 풀기에는 너무 어려운 문제고, 사회적인 접근으로 해결해야 해요.

 

 

국가박사 모델과 그 효용

 

김강기명: 박치현 선생님이 주장하신 국가박사 모델은 최소 수준의 풀(pool)을 놔두고, 추가로 강의하면 조금 더 벌고, 연구소 인력이면 또 추가로 조금 더 벌고 하는 모델이죠. 단순 산술 계산으로 지금 인문사회학술연구 교수 A형 한 사람에게 들어가는 인건비 연 4,000만원(퇴직충담금과 4대보험 기관부담금 포함이죠)5,000명한테 주면 연간 예산이 2,000억원이

에요. 영일만에 시추공 두 개 꼽는 금액이죠.

 

박치현: 이미 연구재단이 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 사업에 AB유형 합치면 1천억 조금 안되게 쓰고 있어요. 참고로 제 방안은 수도권에 있는 사람들은 2천만 원만 주고 비수도권으로 내려가야 4천 만원을 주자는 것이죠. 이럴 경우 소요금액이 1,500억원 정도로 줄어들어요. 지방에 내려가면 메리트를 주는 거죠. 지방에 내려가면 연구실도 주고 주택도 제공 가능하고요. 그러면 학술생태계 중심축 이동으로 수도권의 기득권도 어느 정도 타격이 있겠죠.

 

김강기명: 학술연구교수 A유형이 5년짜리인데, 일단 취지는 학문후속세대 지원, 즉 교수가 되는 과정의 징검다리에요. 그런데 대학들이 이렇게 인문사회 교수를 안 뽑는데 과연 징검다리가 될 수 있을까요. 결국 국가박사 식으로 가는 것이 뉴 노멀(new normal)이 되어야 하지 않나 싶어요. 처음에는 지금처럼 그냥 정액으로 시작하더라도, 인원이 모이고 박사 풀이라는 직군으로 묶이면 협상력도 생겨요. 그러면 정부랑 임단협도 할 수 있고 호봉이 오를 수도 있겠죠.

 

물론 이 제도를 관리하는 기준은 당연히 필요하겠습니다. 저는 현재 연구재단 인문사회학술교수 A형 정도의 기준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거든요. 3년간 논문 3편 혹은 단행본 한 권이잖아요. 그 정도의 연구 역량을 포닥 기간 동안 증명했고, 연구 의제를 제출했다고 한다면, 일단 국가박사 풀에 집어넣자는 거죠. 그러면 대학도 강사를 박사 풀에서 쓰고, 연구원도 그 풀에서 가져다 쓰면 되니까, 국가박사제는 대학으로서는 유연성이 확보되고, 연구자로서는 안정성이 확보가 되는 모델입니다.

 

이 국가박사들이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아까 배세진 선생님이 말씀하셨던 고도의 학술번역을 할 수 있는 분들, 그다음에 각 출판사나 혹은 대학 출판부의 박사급 편집 인력, 이런 전문직들이 박사 풀에서 나올 수 있게 되는 거죠. 이렇게 기본적인 안정성을 제공하면서 약간의 수당이 덧붙여지는 형식으로 국가박사 풀을 운영하면, 아까 말했듯이 우리가 누구를 미워할 필요도 없어지고 나랑 같은 연구를 하는 사람들과 제대로 된 동료관계를 만들 수 있게 될 거라 생각합니다. 또 대학 출판부가 살아나고, 단행본과 기획 논문 위주의 학술적 대화도 충분히 가능해질 거라 봅니다. 이게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모델이라고 생각해요.

 

박치현: 사실은 프랑스의 CNRS나 독일의 막스플랑크 같은 곳을 조사한 국내의 보고서들도 좀 있긴 한데, 이게 질적 방법론으로 쓴 게 아니라서 너무 피상적이더라고요. 실제로 그 해외 연구원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에 대한 연구가 좀 필요할 것 같네요.

 

김현준: 정부를 설득할 때도 우리는 조금만 돈을 줘도 이렇게 만족하고 살 사람들이 넘쳐라고 할 수 있겠네요.

 

 

임페리얼 영어가 아닌 인터내셔널 영어로

 

김강기명: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얘기는 아까 영어 관련한 얘기가 나왔는데, 저는 인문학계의 영어 역량 제고는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인구는 줄어들고 있고, 이민자들이 계속 들어오는 상황에서 인터내셔널리티는 분명히 중요해요. 우리가 영어에 대해 스트레스를 느끼는 건 이게 인터내셔널 랭귀지가 아니라 임페리얼랭귀지로 기능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저는 일본인 중국인 한국인이 모여서 영어로 스피노자 논문 읽는 모임 하나를 운영하고 있는데요, 우리가 아시아가 됐건 제3세계가 됐건, 유럽과 북미 학술장 밖에서 아래로부터의 학술장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많은 사람이 한국에서 학술장이 잘 안 되는 가장 큰 이유가 학술장 자체가 작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해요. 학술장이 작으니 여기서 비평을 한다든가 칭찬을 한다든가 하는 것이 불가능하며,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그냥 자기 말고는 이거 다루는 연구자가 거의 없는 주제를 연구하지 않냐는 거죠.

 

그렇다면 결국 우리는 다른 나라에서 우리 글의 독자를 찾을 필요가 있는데, 사실 영어 말고는 대안이 없는 거죠. 아시아에서 싱가폴, 홍콩, 마카오, 말레이시아, 필리핀, 인도네시아 같은 곳은 기본적으로 영어 학술장이고, 수준 높은 연구들이 많이 있지만 우리는 전혀 교류하지 않아요. 많은 이들이 한국 학술장의 종속구조를 어떻게 깰 거냐에 대한 고민들이 있는데요, 진짜 국제화나 세계화라는 게 유럽이나 북미의 학술지에다가 내 논문 하나 싣는 이런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좀 다른 방향에서, 가까운 데 있는 동료 연구자들과 뭔가 해볼 수 있는 게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해봐야 하는거죠. 비행기 값도 싸고요.

 

연혜원: 사실 연구를 하다 보면 계속 미국 논문 읽기를 권유하잖아요. 근데 점점 갈수록 일본에 있는 학자들이나 중국에 있는 학자들, 즉 동아시아 연구자들과 할 이야기가 훨씬 많아요. 그들의 저술이 사실은 저한테 필요할 때가 정말 많아요. 도움도 많이 되고. 우리가 같은 역사 지형에 있었잖아요. 그러니까 그 안의 차이들을 살펴보는 게, 미국과 한국의 차이를 살펴보는 것보다 더 유의미할 때가 많거든요. 말씀하신 것처럼 영어라는 것이 말하자면 제국어로 쓰이고 있는 거잖아요. 소통의 언어로 쓰이는 게 아니라.

 

김지수: 사실 문화연구 전공 내에서는 선생님이 말씀하셨던 이야기가 이미 2000년대 중반에 있었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지식장의 식민성을 탈피해야 된다, 한국적인 문화연구 혹은 아시아 단위의 블록에 기반한 연구와 실천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인터아시아 문화연구라는 새로운 입장들이 부상하기도 했었는데요. 일부 학문에서 제기되었던 그런 논의가 잠시 떠올랐다가 왜 없어졌는지를 찾아보는 것도 중요한 듯합니다.

 

김강기명: 한국 학술장은 기본적으로 갈라파고스로 향하는 습성이 있어요. 사람들이 일본만 섬나라라고 생각하는데 남한도 완벽한 섬나라거든요. 일본은 내수 수요라도 크지만, 한국은 내수만으론 안 돼요. 내수가 안 되기 때문에 지금 이런 얘기가 필요한 시점인데, 박사들이 역할 분담하면 좋죠. 영어가 되는 선생님들은 아시아의 학술네트워크에 참여하고요. 그런데 사실 돈이 없어요. 경쟁도 하고, 알바도 하느라 너무 바빠요. 교수가 아니면 국제적인 작업을 하고 싶어도 여행경비 등의 문제로 하기 힘들죠.

 

박치현: 국가박사제를 하면 아마도 합리적인 행정절차를 거쳐 출장비 신청도 할 수 있겠지요. 어떻게 보면 저소득 연구자를 양산한다는 비판도 받을 수 있겠지만, 그곳을 거점으로 해서 뭔가를 해볼 수 있다는 건 분명해 보이네요. 지금까지 무려 2시간을 넘게 생동감 있게 대안에 대한 제언까지 허심탄회하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들의 논의가 조금이라도 인문사회 연구자들의 현재와 미래에 도움이 되는 몸짓이었으면 하고요, 인문학과사회과학의 사회적 가치와 효용이 좀 제대로 인정받는 분위기가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너무 고생 많으셨습니다.

 

 

 

각주

1) ‘아무도 안 보는 논문늘어91%가 피인용 0’, 조선일보 2024. 07. 01 https://www.chosun.com/national/

education/2024/07/01/ T274HBSVJJEV5OKTLZABUC475I/

2) <대학: 담론과 쟁점> 12호에 수록되었다.

3) 김정인, 김지수, 김화연, 천주희, 2022, 인문사회 분야 여성 신진연구자 실태에 관한 연구, 경제인문사회

연구회.

  1. 아무도 안 보는 논문 늘어 91%가 피인용 0’, 조선일보 2024. 07. 01 https://www.chosun.com/national/education/2024/07/01/ T274HBSVJJEV5OKTLZABUC475I/ [본문으로]
  2.  <대학: 담론과 쟁점> 12호에 수록되었다.   [본문으로]
  3. 김정인, 김지수, 김화연, 천주희, 2022, 인문사회 분야 여성 신진연구자 실태에 관한 연구, 경제인문사회

    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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