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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포스트모더니즘·여성해방문학론>

 

 

 

 

- 대담자
임옥희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이사)

권보드래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이은솔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박사 과정)

·일시 : 2022년 1월 6일 오후 2시 

·장소 : 합정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주최 :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제1회 한국학페스티벌

- 목차 -

0) 대담에 들어가며
1) 90년대의 페미니즘 담론과 ‘변두리 페미니즘’
2) 80년대 말~90년대 초의 대학 풍경과 경희대 영문학과에서의 지적 경험
3) 90년대의 여성 잡지 : 「또 하나의 문화」, 「여성과 사회」, 그리고「여/성이론」
4) 90년대 포스트모더니즘 담론과 ‘여성 없는 여성주의’의 정치성
5) 배수아에서 양귀자까지, 90년대 여성 문학을 기억하는 방식들 
6) 「여/성이론」 창간호와 주디스 버틀러의 주체 이론 소개

 

 

 

4) 90년대 포스트모더니즘 담론과 ‘여성 없는 여성주의’의 정치성

 

 

권 : 인터뷰 제목에 ‘90년대·포스트모더니즘·여성해방론’ 이렇게 엮어놓으니까 굉장히 다른 느낌이다.

임 : 이때는 포스트모더니즘이 욕을 많이 먹었어요.

권 : 욕도 많이 먹었고…, 유희적인 쪽으로 간 것도 좀 있었고.

임 : 개인주의적이고. 욕망, 뭐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비판적인. 신자유주의적인 문화적인 담론으로 페미니즘이 흡수됐다, 정치성을 상실했다는 게 가장 큰 비판이었어요.

이 : 예, 「여성과 사회」 3호에 실린 「포스트모던 여성해방론의 딜레마」(김영희·이명호·김영미 저)를 보면서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민족문학론의 입장에서 여성해방론을 주장하는 저자들이 포스트모더니즘과 여성해방론의 결합이 야기하는 다양한 이론적/실천적 문제점들을 비판하는 글이었는데 그 분량이 원고지 300매에 달하더라고요. 글의 요지는 결국 ‘주체 없는 실천이 불가능하다’였던 것 같아요. 

임 : 그건 그 당시에는 너무 당연하게 나왔던 비판인데, 사실 포스트페미니즘은 ‘여성 주체’라는 고정된 정체성이라는 게 없다고 말하는 것이지 여성 자체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사회적 관계 속에서 어떤 여성 주체로 만들어지는가를 끊임없이 탐구하려고 했던 것이지, 여성은 아예 실재하지 않는다며 존재론적으로 부정하는 말이 아닌 거죠. 모든 여성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보편적인 여성 범주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즉 다양한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엄청난 스펙트럼의 주체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봐요. 

 

오드리 로드

 

임 : 아까 이야기한 오드리 로드의 사례가 대표적인 예시죠. 백인 중산층의 교양있는 엘리트 여성들이 “Sisterhood is strong”이라고 말했지만, 오드리 로드와 같은 흑인·레즈비언 여성들은 모두 배척했거든요. 그중에서도 좀 쓸모 있다고 느끼는 인물들만 정치적 레즈비언으로서 받아들였지, 사실은 페미니즘 내에서도 이성애가 주류였고 레즈비언들은 온정의 대상 혹은 병리적 존재로 여겨졌죠. 레즈비언을 받아들였을 때도, 이성애가 지배 담론으로서 어떤 특권을 누리고 있는지, 백인이라는 인종적 특권이 젠더보다 얼마나 더 큰 영향을 발휘하는지 성찰하지 않았어요. 시스터후드란 백인 중산층 여성의 시선에서 정체화된 여성들만 포함한다는 문제를 제기한 것이 오드리 로드죠. 

임 : 오드리 로드라는 가난한 흑인 레즈비언, 나중에는 유방암까지 걸린 이 인물이 볼 때 인종은 최전선에 놓인 문제예요. 그런데 백인 여성들은 페미니즘을 얘기할 때 인종이라는 조건을 기본값으로 두고 그에 관해서는 문제 삼지 않잖아요. 인종, 섹슈얼리티, 장애 등 다양한 조건들이 교차하면서 여성 주체가 형성되기 때문에 각 여성 주체는 결코 동일하지 않고 그렇다고 완전히 대립하지도 않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안정되고 역사적인 주체로서의 여성이란 없다는 이야기를 포스트모더니즘과 포스트페미니즘에서 말한다고 생각해요. 생식기에 기반을 둔 본질주의적 여성 주체를 상정하는 대신 ‘그런 여성은 없다’라고 말하는 것은 탈정치화된 주장이 아니라 오히려 보편적·객관적 주체로서 자신을 위치 짓기 어려웠던 소수자들이 동등한 입장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만드는 것이죠.

임 : 인종이라는 것도 결국 여러 조건에 의해 구성되는 정체성인데요, 가령 세계를 유랑했던 러시아 유대인들은 러시아에 돌아갔을 때 유색 인종으로 분류됐어요. 그런데 이 사람들이 미국에서는 백인 취급을 받아요. 인종도 고정된 정체성이 아니고. 그 사람들이 국가 내에서 차지하는 위상이나 그를 둘러싼 권력 관계에 따라 결정되는 거죠. 

 

임 : 장애도 마찬가지고요. 요즘은 「망명과 자긍심」(일라이 클레어)이나 「짐을 끄는 짐승들」(수나우라 테일러)과 같은 책에서 얘기를 잘 해주고 있지만, 이전까지 우리가 언제 장애에 관해 생각했던가 싶어요. 우리는 무의식중에 단정하고 깔끔한 면역 주체를 상정하고 말하잖아요. 바로 그런 부분을 해체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하이어라키(Hierarchy)의 가장 바닥에 있는 사람들을 동등한 조건에 설 수 있도록 그 장을 열어주는 게 저는 정치라고 생각하고, 그걸 ‘여성 없는 여성’이라는 말로 설명하고 싶다고 늘 생각했어요.

권 : 선생님께서는 90년대 포스트 모더니즘이라고 뭉뚱그려지는 이론적 조류를 일종의 동등성으로 바라보신 건가요? 

임 : 그런 거죠. 

 

 

 

 

 

 

 

5) 배수아에서 양귀자까지, 90년대 여성 문학을 기억하는 방식들 

 

 

 

 

권 : 선생님께 비평해보라는 권유는 없으셨나요. 

임 : 저는 국문과도 아니고, 사실 글을 정말 못 썼어요. 너무 겁났어요. 국문학하는 사람들은 문장들이 아름답고 명료하고 너무 좋아서 많이 부러웠어요. 그래서 사실 제가 배수아 작가를 좋아해요. ‘어머 이 사람 나처럼 문장이 안 돼’ 이러면서 동질감을 느꼈죠. 사실 저처럼 문장이 안되는 것이 아니라 독특한 문체였던 거죠.

이 : 그런데 그 문체가 너무 매력 있어요. 

임 : 그렇죠. 배수아 작가를 너무 좋아해서 작가의 작품을 거의 다 읽고 팬심으로 만났어요. 사실 배수아 작가 만나서 좋아하면서 “진짜 외국어로 글 쓰는 사람 같아요” 이렇게 말했어요. 요즘은 전혀 못 만났는데 한 10년쯤 같이 ‘월요일 독서클럽’이라는 이름으로 책 읽었어요. 배수아 작가는 작가로서 정말 존경스럽고 대단한 부분이 있는데, 화학과 출신이잖아요? 신춘문예라든지 공식적인 제도를 통해 등단해야 했다면 자기는 못 했을 거라고 말하더라고요. 기대치 않았던 출판사에서 자기 책을 내주는 바람에 그냥 느닷없이 작가가 돼서, 그 후로는 자기가 쓰고 싶은 것들을 쓸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했었거든요. 그런 부분들이 재밌었어요.

이 : 문단에서도 배수아 작가를 새로운 스타일의 작가로 환영하는 분위기가 있지 않았나요?

임 : 나중에는. 그래도 문단의 아웃사이드에서 활동했다고 봐야죠.

이 : 백낙청 선생님도 배수아론을 썼던 기억이 있어서요. 

권 : 아, 그러긴 했지만 훨씬 나중에. 프레카리아트(precariat), 요즘으로 치면 비정규직이나 가난한 젊은 사람들인데 그런 노동자의 새로운 존재 양상을 배수아 소설에서 찾으려고 하긴 했었죠. 신경숙의 「외딴방」부터 배수아의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 같은 책들을 쭉 읽어나가려고 하는 창비 쪽의 시도가 있었으니까. 

이 : 그렇게 이어지는 거군요.

권 : 예, 그 맥락 안에서 쭉 읽는 흐름이 있었죠. 그런데 요즘은 창비는 그런 건 없어졌잖아요.

임 : 이데올로기적 재단은 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시장 자체에 맡긴다는 느낌.

이 : 선생님 양귀자 작가의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은 그 당시에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해요.

임 : 「원미동 사람들」을 읽다가 ‘이건 또 뭐지?’ 그랬던 기억이 났어요. 「원미동 사람들」은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고, 그런데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는…. 지금 다시 읽으면 굉장히 다르게 생각할 것 같은데 그때는 굉장히 시답지 않게 생각을 했어요. ‘뭐 이런 소설이 있지?’ 이런 생각을 했고. 

권 : 「잘가라 밤이여」 때문에 이 사람이 정말 상처받았나보다 생각했어요. 

임 : 그건 못 읽었어요.

권 : 지금은 「희망」이 된 책인데, 그 책이 정말 안 좋은 타이밍에 나왔어요. 마음을 매우 울리는 소설이기는 했는데. 고문 후유증으로 죽어가는 남자와 그 남자를 둘러싼 10대의 시선, 그리고 어떻게든 정치적으로 그 친구의 복수를 하려는 시도들. 읽으면 마음이 굉장히 아파지는 소설인데, 90년대 전후 노동 문학만 띄우던 시절에는 너무 발붙일 데가 없는 소설이었던 거예요. 양귀자 작가가 나중에 어디서 그런 말을 했더라고요. 정말 죽을 것처럼 힘들게 「잘가라 밤이여 를 썼는데, 아무도 읽지도 않고 비평도 안 한다고. 

임 : 지금 딱 보면 저도 안 읽었잖아요. 

권 : 하여간 그 후로 사람이 달라졌다는 느낌을 저는 받았어요. 완전히 통속소설의 문법으로 확 넘어가버린 시기가 있었어. 복수한다는 느낌? ‘내가 진심으로 대해도 안 알아준다, 이거지? 알았어’ 이런 느낌? 양귀자 작가를 한 번도 뵌 적이 없는데 제멋대로 그렇게 생각했어요.

이 : 아, 정말요? 저는 한 세미나에서 90년대 여성 작가 쭉 읽어오고 있는데 그 책의 반응이 저희끼리는 너무 좋았어서. “어떻게 90년대에 이런 소설이.”라는 느낌이었거든요. 

권 : 지금은 그럴 수도.

임 : 지금 읽으면 그럴 것 같아요. 그때는 너무 유치하다고 생각했어. 

권 : 그 당시의 복잡한 내면에는 단순한 복수의 구도가 용납도 안 됐고, 저마다 세상의 고민을 다 짊어지고 있는데…(웃음).

임 : 유명한 셀럽을 잡아 와서 그런다는 것도 이해가 안 되고.

권 : 그렇죠. 잘생긴 사람을 데려와서, 거기다 사랑에 빠지고. 

임 : ‘미쳤구나, 이 사람 드디어 미쳤구나’ 그런 분위기였죠. 

권 : 아무래도 당시에 많은 페미니즘 소설이 그런 평을 받기는 했죠.

임 :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공지영)도 그렇고.

권 : 그래도 「무소의 뿔」은 좋았어요. 거기에 나오는 여자들이 계속 담배를 피워서 좋았어요. ‘이 소설의 키워드는 담배야, 다 필요 없어’ 그랬죠(웃음).

이 : 그랬군요. 선생님들 말씀 들으니까 너무 재밌어요. 저희는 당대 비평들이 워낙 통속소설이라고 비판만 하니까 가치를 몰라준다고 불평했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았군요. 

임 : 자기 시대의 분위기라는 게 있어서 거기에 저항해서 읽어내는 게 쉬운 건 아니라고 생각이 들어요. 한 30년 지나고 나니 이제 판이 달라졌잖아요.

권 : 지금 읽으면 어떨지 진짜 모르겠다.

임 : 지금 읽으면 굉장히 다를 것 같은데.

이 : 표지도 엄청 예뻐졌어요. 아 그리고 저는 어디에 반했냐면, ‘이렇게 자의식 강한 여자가 있다니’라는 느낌? 자기 자의식을 마구마구 말로 하는데, ‘야, 이 사람은 대단하다….’ 자기를 신의 딸이라고까지 말하고, 모든 여성의 대리자로서 내가 이 복수를 하겠다는 태도가 대단하더라고요. 

이 : 그리고 요즘 여성 느와르가 뜨잖아요. 「나는 소망한다」에서 주인공이 직접 힘을 쓰는 게 아니라 힘 잘 쓰는 남자 하나를 부하로 두고 일을 도모하니까, 요즘 장르적인 감성이랑도 잘 맞았던 것 같아요. 

권 : 그 의존성도 참을 수가 없었는데.

이 : 저는 요즘 오히려 그런 생각이 들어요. 남자한테 도움을 받지 않아도 혼자 자립할 수 있는 여자라는 믿음 그 자체도 얼마나 여자들을 몰아세웠는가. 

권 : 그건 엄청난 판타지인데, 어쨌든 그 판타지의 시절을 살았던 까닭에…. 나중에 읽어보면 어떨지 모르겠다. 90년대도 하여간 모르겠어요. 학생들하고 수업시간에 90년대 얘기할 때가 종종 있는데 뭔가 다른 시대를 본 듯한(웃음).

임 : 요즘은 식물 인문학에 관심이 가는 게, 내가 살아온 토양, 내가 숨 쉬는 공기, 내가 읽었던 책들이 나의 피와 살이 되어있어서 그걸 넘어서는 이야기를 과연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제가 아마 은솔 씨의 시대를 살고 있다면, 그래서 양귀자의 소설을 다시 본다면, 그러려면 내 역사를 탈역사화해야 하잖아요. 그게 안 되는 거죠. 그 기억과 온갖 과거를 다 앙금으로 가라앉힌 상태로, 자기 시대의 편견을 다 내장한 채 봤을 때 지금 세대들이 읽는 문법하고는 너무나 다르게 읽을 수밖에 없는 지점들이 있다는 거예요. 그걸 치고 나가는 게 요즘 세대들이 자기 언어를 만드는 방식이라고 생각을 해요.

권 : 그래도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면…(웃음). 저는 제일 많이 쓰는 말 중 하나가 ‘세대’일 정도로 모든 책에서 세대를 강조하고 세대 의식을 얘기하고. 세대 의식을 강조하다 보면 어떤 때는 당연히 뒤떨어지게 되는…. 그런데 선생님께는 그런 느낌을 받아본 적이 거의 없어요. 

임 : 저는 뭐 이상한 내용들을 좋아해서 그래요. <티탄>(쥘리아 뒤쿠르노 감독)이라는 영화 보면서 ‘우와~ 재밌다~’이러는 사람이에요. 

 

 

6) 「여/성이론」 창간호와 주디스 버틀러의 주체 이론 소개

 

 

주디스버틀러

 

 

이 : 마지막 질문입니다. 97년에 여성문화이론연구소를 개소하시고 2년 후에 「여/성이론」의 창간호를 발간하셨는데요. 창간호의 주제는 ‘젠더 섹슈얼리티 주체’였고 선생님께서는 <법과 권력이 생산한 주체 : 주디스 버틀러의 수행적 정체성>이라는 글을 수록하셨습니다. 창간호를 발간하시면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그리고 당시 주디스 버틀러의 주체 이론을 소개하신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임 : 저는 조너선 컬러의 「문학이론」이라는 작은 책을 번역하면서 버틀러에 관해 알게 되었어요. 거기서 컬러가 이론(theory)은 하나의 테러로도 볼 수 있다는 얘기를 해요. theorist와 terrorist를 말장난으로 삼은 이야기인 동시에, 이론을 소설에 가하는 폭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전하는 말이기도 하죠. 그 말을 하면서 버틀러를 짧게 소개해요. 지금껏 문화적으로 받아들여졌던 내용을 완전히 뒤집는 이론이라고 얘기하죠. 그전에도 버틀러를 보기는 했지만 무슨 소리인지 이해를 못 하다가, 컬러의 책을 번역하면서 새로운 각도로 버틀러를 볼 수 있었어요. 그 후로는 여이연 사람들에게도 버틀러를 같이 읽어보자고 제안하기도 했고요. 혼자 읽으면 이해가 잘 안 되니까. 

임 : 그때만 하더라도 사람들이 호모 섹슈얼에 관해서는 의식이 없을 때였고, 언제나 단단한 ‘주체’라는 파운데이션(foundation)이 있다고 믿었던 때였다 보니까 남성 주체는 해체하더라도 여성 주체는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시대였죠. 그런 시대에 버틀러는 여성 주체도 안정되고 고정된 정체성이 아니라고 말하고, 강제적 이성애라는 틀을 가져와서 제가 지금까지 막연하게 정상성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하나씩 해체했어요. 그래서 어쩌면 버틀러는 이론의 테러리스트일지 모르겠다고 생각했어요. 

임 : 이성애가 자연의 질서가 아니라 재생산을 위한 강제적 규범이라는 주장을 읽었을 때 여태까지 믿었던 모든 것들이 허물어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내가 딛고 있는 지반이 안정적이라고 믿었는데 사실은 균열이 가서 흔들리고 있다는 걸 깨달았고, 진짜 다리가 좀 후들후들 떨릴 정도의 충격이었어요. 그 후로 제가 적극적으로 버틀러를 꼭 읽어야 한다고 제안을 했죠. 그런데 그 글은 제대로 쓰지는 못했어요. 꼭 그 이론을 직접 읽는 게 아니더라도 시대의 지적인 분위기가 알게 모르게 축적이 되면 자기 언어로 다시 만들 수가 있을 텐데, 당시 버틀러는 너무 생소한 내용이었고 그에 관해 말을 한 사람도 아무도 없다 보니까 저도 잘 소화가 되지 않았어요. 그로부터 한 30년이 지난 지금은 버틀러하면 다 아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시대가 됐잖아요. 그런데 그때는 진짜 모르고 있었어요. 이 사람이 가하는 충격에 너무 놀랐어요. 

임 : 여태까지 페미니즘을 열심히 공부했다지만 사실 기존 질서와 공모하는 방식이었던 건데, 그 지반을 이론 하나가 뿌리부터 흔들어 놓을 수 있구나라는 걸 느꼈어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이론이, 저에게 정말 충격을 가한 거죠. 그래서 이 사람을 꼭 다뤄보자고 했는데 사람들이 별로 호응을 안 했어요.

권 : 이게 몇 년이죠, 선생님. 99년?

이 : 99년인 것 같아요. 혹시 다른 분들이 버틀러에 관해 글을 쓰는 걸 반대하시기도 했나요?

임 : 버틀러 때문은 아닌데 당시 의견이 맞지 않아서 여이연을 그만둔 분들도 있었어요. 97년에 처음 모여서 2년 동안 계속 책을 내자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굉장히 단호하게 반대하는 분들이 있었어요. 외국의 이론들을 제대로 소화도 하지 못한 상태에서 소개하는 것에 아무래도 거부감이 있었죠. 실제로 아직 너무 설익은 상태였고. 그래서 좀 더 깊이 소화하고 우리 언어로 체화했을 때 저널로 내자는 의견이 있었어요. 

권 : 상황이 너무 이해되네요.

임 : 그 문제 제기가 너무 합당해서 반박하기는 어려웠죠. 그래도 저는 우리가 몇 년 동안 공부만 하는 것보다는 뭐라도 표현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어요. 우리가 로자 룩셈부르크는 아니지만 혁명의 때가 될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는 없다는 생각이었던 거죠. 일단 얼굴에 철판 깔고 한번 해보자, 우리가 일단 의제를 던져 놓으면 또 다른 누군가가 그 이야기를 하게 되고 점차 논의의 장이 마련되지 않겠냐고 말했죠. 출간을 반대하던 분들이 결국 여이연을 그만두셨어요. 그래서 창간호를 생각하면 마음이 오히려 좀 아려요. 그때 그 사람들 말이 너무 타당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임 : 이 책이 나오자마자 <조선일보>에서 소개하겠다고 했어요. 그 문제로 사람들이 또 갈라졌죠. 어떻게 <조선일보>에 기사를 싣겠냐고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니까. 

이 : <조선일보>가 먼저 인터뷰 제안을 한 것도 흥미롭네요.

권 : <조선일보>는 굉장히 빨라요.

임 : <조선일보>가 문화적으로는 진보적인 듯 포지션을 취했거든요. 그래서 창간호 이야기만 나오면 아직도 마음이 아파요. <조선일보>에서 여이연을 띄웠던 이유는 저희가 「또문」과도 다르고 창비와도 다르다는 걸 부각하려고 했던 거예요. 탈정치화하려고 했던 거예요. 그래서 당시에 혹독한 비판을 받았죠. 

권 : 얘기 듣다 보니까 선생님 약간 피뢰침 같으세요.

임 : 맨날 쓸데없는 이야기, 이상한 이야기를 가져와서 하니까. 게일 루빈 때문에도 엄청 욕먹었어요.

권 : 어떤 상황이셨을지 충분히 이해가 가요. 

임 : 그 책이 나왔을 때 연구소로 온갖 말들이 쏟아졌죠. 저희가 페도필리아(pedophilia)를 옹호한다는 말부터,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BDSM 같은 이야기를 하냐는 말까지 셀 수 없었죠. 거기다 저희는 성매매를 성노동이라 말하니까 완전히 불에 기름을 부은 거죠. 

권 : 생각을 해보니 그렇네요. 스피박처럼 좀 알아들을 듯 말 듯한 이야기만 해야 했는데(웃음).

임 : 그랬답니다. 시대마다 치욕과 모멸을 다 받아내면서 ‘왜 이 짓거리를 하고 있지, 돈 되는 것도 아닌데’ 그랬어요. 그런데 이제 그런 것들이 잊히고 그 기억이나 시대적 분위기가 탈역사화되는 부분들이 있잖아요. 다음 세대들이 그 컨텍스트(context)를 떼어내고 이론을 보면 또 다르게 이야기되겠죠. 

권 : 여이연이 어느새 25주년이네요.

임 : 예, 학술대회도 하고. 이제 다음 세대들이 잘하겠지요. 

이 : 선생님 오늘 긴 시간 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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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중한 대담의 전문을 공유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신 임옥희·권보드래·이은솔 선생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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