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22년 9월 13일 서교연 포럼 <체제 전환을 위한 정치학적 모색3>에서 진행한 김종철의 "화폐 팽창과 제국주의 - 글로벌 인플레이션의 정치학적 의미"라는 제목의 발표를 녹음하고 녹취록을 푼 것이다. 녹취록 내용과 그래프는 모두 김종철의 발표문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아래 발표 내용과 관련해 더 정리된 내용을 보거나 인용을 하고자 한다면, 2022년 <경제와사회> 제136호에 실린 "글로벌 인플레이션과 제국주의 : 글로벌 인플레이션의 정치사회학적 의미"라는 논문을 참고하길 바란다. 논문을 볼 수 있는 링크는 다음과 같다.
현대 자본주의의 기원과 모순에 대한 비판적 연구를 하고 있다. 다학제간 접근법으로 재산권, 신탁, 주식회사, 자본주의 화폐 제도, 현대 은행업 등을 분석하고, 새로운 경제 시스템으로의 전환을 상상하는 작업을 이어가는 중이다. 저서로 <금융과 회사의 본질 - 재산권과 계약권의 이종교배(개마고원, 2019)>, <기본소득은 틀렸다 - 대안은 기본자산제다(개마고원, 2020>, <Modern Money and the Rise and Fall of Capitalist Finance: The Institutionalization of Tusts, Personae and Indebtedness(Routledge, 2022)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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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적 완화와 그 효과를 돌아보다
이제 어떤 방식으로 그게 이뤄지는지 살펴보죠. 최근까지 일본은 국채를 많이 발행하고 그 국채를 중앙은행이 사줬죠. 일본은 이런 식으로 양적 완화를 굉장한 규모로 해왔죠. 일본의 국가 부채가 GDP의 260% 정도였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그래서 일본 정부는 재정 지출 중 거의 4분의 1인가 3분의 1을 원금하고 이자를 갚는 데 쓰고 있어요. 국채 이자를 갚는데 말이에요. 그러니 일본은 이자 문제 때문에 금리를 못 올려요. 일본 중앙은행은 일본 정부가 발행한 국채를 계속 사줘야 합니다. 이런 식으로 돈을 푸는 일을 일본은 굉장히 오랫동안 해왔어요.
그러다 드디어 미국이 2008년부터 하기 시작했죠. 그래서 2008년은 위기가 일어났던 때였을 뿐만 아니라, 미국과 세계 금융 시스템이 마주한 굉장한 전환기였어요. 신자유주의 금융이 흥하다가 종말을 고하고, 다시 국가 주도의 금융으로 되돌아왔다고 할 수 있겠죠. 이제 돈을 만들어내서 뿌리는 일을 중앙은행과 국가, 즉 미 연준과 미 재무부가 주도적으로 하게 됩니다. 그걸 단적으로 보여주는 게 이건 데요. 2022년 5월 기준으로 미 연준이 미 재무부로부터 국채를 산, 정확히는 기타 모기지 증권까지 포함해 사준 금액이 8조 9천억 달러, 거의 9조 달러에 달했죠. 아까 확인했던 13조 달러는 일본과 유럽을 포함한 것이고요. 유럽도 만만치 않게 많이 했거든요. 상당히 돈을 많이 늘렸습니다. 그런데 그 대부분을 미국 혼자서 했다고 할 수 있겠죠.
이제 지난 2008년부터 시작된 양적 완화를 미국 입장에서 보겠습니다. 미국에서 어떤 결과가 나타났는지 보죠. 일단 내부적으로는 한편으로는 부의 불평등을 초래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의 경기가 회복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어요. 부의 불평등부터 보시죠. <그림 12>, 여기서 점선이 미국 연준의 자산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미국 연준이 국채와 모기지 증권을 사서 미국 정부한테 빌려준 돈이 2008년부터 어마어마하게 늘어났죠. 2018~19년에 좀 줄였다가 된통 당하죠. 2020년 3월에 다시 양적 완화를 합니다. 이때 양적 완화를 한 거를 팬데믹 위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시면 안 돼요.
무슨 말이냐면, 다시 금융위기가 터진 겁니다. 2008년에는 민간 금융에서 그러니까 투자회사나 상업은행에서 터졌거든요. 이번에는 어디서 터졌냐면 미국 국채 시장에서 터졌습니다. 헤지 펀드, 뮤추얼 펀드의 외국인들이 2020년 3월에 어마어마하게 미국 국채를 투매합니다. 원래는 말이죠. 2008년에 금융위가 터졌을 때는 어떻게 되었냐 하면요. 투자자들이 금융위기가 터지니까 다 국채 시장으로 몰려가서 미국 국채를 어마어마하게 샀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미국 국채가 너무 크니까 그때와는 반대로 움직였어요. 경기가 불안한 상황, 금융위기 상황에서 미국 국채를 투매했어요. 그래서 국채 시장이 어마어마하게 흔들렸어요. 미국 연방준비은행은 팬데믹 때문이 아니라 국채 시장을 안정화하기 위해서 어마어마한 돈을 뿌려댄 거였죠. 투자자들이 미국 국채를 투매하니까 연방준비은행이 그들 대신 나서서 미국 국채를 사준 거예요. 어마어마한 규모로요. 2018~19년에 긴축으로 전환하다가 일이 이렇게 되어버린 거죠. 긴축하려다가 금융위기가 터질 거 같으니 다시 어마어마한 규모로 양적 완화를 합니다.
여기 <그림 12>를 보시면, 이 실선은 전체 자산 중 미국 상위 1% 자산가들이 갖고 있는 자산의 비율이에요. 전체 자산에서 보시면, 2008년에는 한 27% 갖고 있었는데 최근인 2021년 기준으로 보시면 이제 32%를 넘었어요. 그러니까 부의 불평등이 양적 완화를 하면서 더욱 심해졌다는 걸 쉽게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왜냐면요. 일단은 그 이유는 뭐냐면요. 2008년 금융위기 때 돈을 푼 걸 우리는 기업을, 은행들을 살려줬다고 생각하죠. 그게 아니에요. 은행을 살려준 게 아닙니다. 예를 들면, 그 은행이 발행한 회사채가 있잖아요. 그 회사채를 산 사람들이 있곘죠. 채권을 산 그 채권자들을 살려준 거예요. 채권자들이 소유한 그 은행의 회사채를 사준 거예요. 미국 연방은행이 말이에요. 그 얘기는 뭐냐면요. 부유한 채권자를 살리기 위해서 어마어마한 양적 완화를 했다는 거죠. 원래는 경제 위기 상황에서 부유층도 돈을 잃어야 하는 건데, 경제 위기 상황에 부유층만이 자기들 돈을 안전하게 건졌다는 말이죠. 국가가 나서서 채권자를 보호해 줬어요. 대신, 미국 가계들은 주택을 압류당합니다. 그래서 2018년 기준으로 530만 주택이 압류됩니다. 보통 4인 가구이니, 그걸 기준으로 하면 주택을 압류당한 사람이 2천만 명이 넘는 거죠. 이 사실에 비춰볼 때, 우리는 왜 클린턴이 아니라 트럼프가 당선됐느냐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사실이 미국의 중산층이 몰락했다는 걸 여실히 반증하기 때문이죠. 양적 완화 이후 사회가 양극화되면서 포퓰리스트인 트럼프가 등장한 거죠.
이게 양적 완화 이후 미국 사회가 변화한 한 측면이고요. 두 번째는 뭐냐면요. 양적 완화 덕분에 주택과 주식 등 자산 가격이 어마어마하게 폭등했어요. 여기 <그림 13>을 보시죠. 이건 굉장히 유명한 차트에요. 제가 그린 건 아니고요. 세 나라의 중앙은행, 즉 미국과 영국 그리고 일본의 중앙은행이 시행한 양적 완화의 규모 총합입니다. 그리고 여기 실선은 뭐냐면요. 미국의 주가예요. 2008년부터 미국 주가가 그냥 막 오르잖아요. 이런 주가 변동의 양상은 독특한 거예요. 그런데 지난 20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우리는 그 독특함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 들이게 되었죠. 2008년부터 금융 시장을 경험한 사람들은 주식은 계속 오르는 거 아니냐고 생각하실 수 있어요. 하지만 2008년 이전 10년을 살펴보시면 다른 얘기를 하게 되겠죠.
2000년에 닷컴 버블로 주식이 폭락했는데요. 이걸 회복하는 데 거의 10년이 걸려요. 2007년 8월까지 가야 겨우 회복합니다. 보통 7년가량 걸려요. 주식에는 사이클이 있어요. 왜냐하면, 자본주의에서 산업은 경기 순환을 겪어요. 주기적인 사이클이 경험적으로 관찰되죠.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 조선업도 거의 망한다고 얘기했는데 다시 수주도 하고 회복했어요. 반도체 산업도 경기 순환을 타요. 제조업이 살아 있는 나라에서 주가는 이렇게 사이클에 따라 움직입니다. 독일 주가도 살펴보시면 마찬가지로 움직여요. 그런데 2008년 이후 미국 주식 시장은 사뭇 달랐죠. 이 얘기는 뭐냐면요. 양적 완화로 돈을 풀었기에 주가가 폭등했고, 그 기조가 지속된 거죠. 여기 <그림 14>를 보시면, 실선이 미국 전체 주식 중 상위 1%가 소유한 주식 비중을 가리켜요. 점선은 전체 자산 중 상위 1%가 가진 자산 비중이에요. 이 둘이 거의 같이 움직여요. 그러니까 2008년 경제 위기 이후 상위 부유층이 주식 비중을 늘렸고, 그와 함께 이들의 자산 가치가 어마어마하게 폭등한 거죠. 그래서 전체 인구의 1%가 전체 자산의 32%를 소유하는 대단히 불평등한 사회가 됐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이제 <그림 15>에서 미국의 주택 가격을 보시면 폭등하는 걸 확인할 수 있죠. 미 연준이 사준 모기지 증권과 주택 가격 사이의 상관관계가 굉장히 강합니다. 상관계수가 0.96이죠. 그리고 <그림 16>도 보죠. 미국이 뿌린 돈, 여기선 M2로 측정했는데요. M2로 측정된 통화량 변화와 미국의 주택 가격 변화가 거의 같거든요. 상관계수가 0.92입니다. 금리나 화폐량과 주택 가격의 변화는 긴밀한 관련이 있어요. 왜 우리나라 주택 가격이, 집값이 빠질까요? 아주 간단해요. 금리를 올리고 유동성을 회수한다고 중앙은행에 발표하고 실제로 그렇게 금리를 조정하니까 집값이 빠지는 겁니다. 그런데 다시 경제 위기가 오면 서방 선진국들은 다시금 양적 완화를 하겠죠. 지금과 같은 글로벌 인플레이션과 전 지구적 기아를 만들어낸 정책을 시행하게 되면 다시금 선진국에서는 주택 가격이 폭등하겠죠.
세계의 부를 미국으로 이전시키는 기만적인 속임수
하여튼 미국에서는 자산의 불평등이 굉장히 심해졌는데요. 반면에 가계 부채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된 거처럼 보여요. <그림17>에서 알 수 있듯이, 가계 소득 대비 부채 상환 비율, 상환한 이자나 원금의 비율은 굉장히 낮아졌어요. 여기 보시면 2008년에는 굉장히 높았잖아요. 가계 소득 대비 부채 상환액의 비중이 약 13%가 넘었는데 지금은 9%를 약간 넘네요. 그래서 가계의 안정성, 재정 안정성이 강화됐다고 할 수 있죠. 가계 대신 누가 부채를 떠안은 것인데요. 그럼 누가 대신했는지 보시면요. 여기 <그림 18>에서 실선이 가계의 부채거든요. 가계 부채가 2008년에 굉장히 높았다가 지금 굉장히 낮아졌죠. 국가 부채는 점선인데요. 2008년에 굉장히 낮았다가 지금 굉장히 높아졌죠. 그 얘기는 뭐냐 하면요. 가계의 부채를 국가가 대신 떠안아줬다는 겁니다. 그런데 말이죠. 우리나라에서 가계 부채 위기가 터지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나라는 선진국 중의 한 나라이기 때문에 똑같이 할 겁니다. 양적 완화해서 돈을 풀어서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이 미국처럼 한국 국채를 대신 사주면서 돈을 풀어서요. 결국엔 주택 가격을 올릴 겁니다. 주택 가격이 올라야 가계 부채를 지탱할 수 있으니까요.
다른 방향에서 설명해보도록 하죠. 가계의 재무 건전성이 왜 좋아졌는지요. 미국의 주택 가격이 2008년에 굉장히 폭등했다가 폭락했잖아요. 주택 가격이 폭락하면요. 채무를 진 가계 입장에서는 주택 가격보다 내가 갚아야 할 돈이 더 많아요. 그러면 은행이 더 싼 이자로 리파이낸싱을 해줄까요? 더 싼 이자와 만기가 긴 대출 상품으로 갈아탈 수 있게 해주겠냐는 말입니다. 채무자가 돈을 못 갚을 수도 있잖아요. 담보인 주택을 팔아도 부채를 못 갚을 수도 있잖아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미국에서 당시 미 연준 의장이었던 재닛 옐런이 일명 푸쉬업을 하겠다고 발표한 적이 있었어요. 인위적으로 주택 가격을 반등시키겠다고요. 그렇게 고의적으로 주택 가격을 끌어올리면요,채무를 진 가계 입장에서는 내가 모기지로 빌린 돈보다 주택 가격이 오르면요,은행이 그 가계에게 싼 이자로 더 긴 만기로 쉽게 갈아탈 수 있도록 할 수 있겠죠. 양적 완화가 이렇게 쉽게 리파이낸싱이 일어나도록 금융 환경을 조성해준 거예요. 집값을 올리는 식으로요. 그래서 우리나라가 가계 부채로 인한 위기를 마주하게 되면, 미국이나 서방 선진국처럼 똑같은 일을 답습할 가능성이 있다고 하는 거죠. 정리하자면, 미국 입장에서는 양적 완화로 부의 불평등이 심해졌지만, 가계의 재정 안정성이 굉장히 좋아졌다고 할 수 있어요. 역설적이죠.
그리고 <그림 19>에서 미국의 GDP도 보시면요. 실선이 미국이 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인데요. 1960년대를 보시면요. 거의 40%, 전 세계 생산에서 40%를 미국이 담당했어요. 초강대국이었죠. 그런데 지금 보시면요. 2011년을 한번 보시죠. 20% 조금 넘는 수준으로 떨어졌어요. 지금은 상당히 많이 회복했어요. 장기 추세는 미국의 GPD가 줄어들고 있는 모습이죠. 미국의 경제는 쇠락하는 게 분명하죠. 그런데 양적 완화를 통해 잠시 회복한 건 아닐까요? 그리고 이전 지출이라고 하는 걸 한번 보죠. 이건 전문 용어인데요. 이전 지출이 뭐나면요. 미국 정부가 돈을 쓸 때 말이죠. 100원을 냈으면 100원만큼은 뭐가 돌아와야 하거든요. 이게 교환입니다. 그런데 교환되지 않는 지출을 이전 지출이라고 해요. 100원을 주머니에서 꺼내서 썼는데 100원이 주머니로 안 돌아옵니다. 그 대표적 예가 실업급여죠. 팬데믹 때문에 실업급여와 같은 곳에 돈을 엄청 뿌렸잖아요. 어마어마한 돈을요. 그런데 그 돈은 미국 정부의 주머니로 돌아오지 않았죠.
여기 <그림 20>을 보시죠. 1975년 이후 신자유주의 시대에는요, 2008년 금융위기까지는요,이전 지출이 GDP에서 평균 약 10.5%를 차지했죠. 그러다가 2008년 이후에는 이전 지출이 점점 늘어납니다. 왜 그런지 아시겠죠. 짐작되시나요. 불평등이 심해졌기 때문에 이전 지출로 돈을 뿌릴 수밖에 없어요. 지금도 보면 유가가 폭등해서 휘발유 가격이 올라가니까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국민들한테 보조금 더 주겠다고 그러잖아요. 왜냐하면 불평등이 너무 심했기 때문에 이전 지출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거에요. 팬데믹을 경험한 2020년 3월 이후에는 GDP에서 이전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23.8%까지 올랐죠. 굉장한 등락을 보였죠. 이게 팬데믹의 영향도 있겠지만요. 장기적으로 이전 지출이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는 건 양적 완화 이후의 변화 때문이죠.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전 지출에 필요한 돈은 우리가 얘기하는 양적 완화를 통해서 대고 있는 거죠. 그래서 양적 완화는 어떤 측면에서는 전 세계의 부를 미국으로 옮기는 행위죠. 그것도 공짜로 말입니다.
왜 공짜일까요? 저는 양적 완화가 형이상학적인 속임수라고 주장합니다. 왜 속임수일까요? 양적 완화에는 한편에 미 연준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미 재무부가 있습니다. 여기서 둘 사이에 거래가 오갑니다. 미 연준에서 미 재무부한테 돈을 빌려주는 것처럼 꾸밉니다. 이자도 있고 만기도 있어요. 미 연준이 사는 미 재무부 국채의 만기는 주로 30년, 20년, 10년이에요. 그 기간만큼 미국 정부한테 미 연준이 돈을 빌려주는 거죠. 이자도 꼬박꼬박 냅니다. 그런데 재미난 점이 있어요. 미 연준은 미 재무부한테만 돈을 빌려주는 게 아니죠. 다른 국가나 금융기관, 은행들에도 돈을 빌려줘요. 그러면서 나름대로 소득이 생길 거예요. 그런데 말이죠. 연말이 되면 미 연준이 그렇게 번 소득 중 일부를 미 재무부에게 돌려줘요. 미 연준이 미 재무부한테 이자를 다 받았잖아요. 그런데 이제 미 연준이 미 재부무한테 그중 일부를 돌려준다는 말이에요.
그걸 보여주는 게 <그림 24>의 차트입니다. 이게 2008년부터 미 재무부가 미 연준에게 지불하는 이자고요. 진한 게 미 연준이 미 재무부에 반환하는 이자 소득입니다. 그러니까 채무자인 재무부가 채권자인 미 연준에게 돈을 빌리고 이자를 줬다가요. 채권자가 채무자에게 그중 일부를 돌려주는 거예요. 뭐 심하게 말하면, 한 1천억 달러 줬으면 2천억 달러 받은 거랄까요. 보시면 이게 양적 완화를 많이 할 때, 2008년부터 한창 할 때는요. 미 재무부가 미 연준한테 돈을 굉장히 많이 받았어요. 거의 2015년에는 거의 2배에 육박하게 이자보다 더 많이 돌려받죠. 양적 긴축을 했던 2018년에는 많이 줄어듭니다. 그런데 2020년에 다시 양적 완화하니까 재무부가 더 받아요. 겉으로는 재무부가 채무자인데, 채무자가 돈을 더 받는 거죠. 이거 이상하지 않은가요? 뉴욕타임즈를 보면 매년 나오는 기사가 있어요. 미 재무부가 미 연준에게 이자를 얼마 냈는데 미 연준이 미 재무부한테 얼마를 돌려줬다는 식의 내용이 기사에 다 나옵니다. 그런데 말이에요. 이걸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곰곰이 생각하면 좀 이상하지 않아요. 채무자가 채권자로부터 돈을 받는다니.
분리된 법인격에 기반한 형이상학적 마법
또 하나 이상한 게 뭐냐면요. <그림 25>에서 나타나듯, 미국 정부는 연준으로부터 빌린 돈을 갚을 능력이 없어요. 지금도 갚겠다고는 하고 있죠. 그런데 가만히 보면 초기에는 갚을 의향이 없었어요. 2020년 양적 완화할 때를 한번 보죠. 돈을 갚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한 대표적 인물이 폴 크루그먼이죠. 그 사람이 2020년 3월에 뉴욕타임즈에 기고를 합니다. 미 연준한테 매년 GDP의 2%씩 돈을 빌리고 대신 갚지 말라는 주장을 담은 글을 씁니다. 그리고 바이든 정부에서 경제 자문가로 활동하는, 현대 화폐 이론, 소위 MMT라고 부르는 계열에 속한 스테파니 켈튼이라고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 있어요. 거칠게 말해, 현대 화폐 이론은 정부가 중앙은행한테 무한대로 돈을 빌려도 괜찮다고 주장해요. 돈을 갚을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 것이죠. 더욱이 인플레이션이 이렇게 심하게 일어날지 몰랐죠. 인플레이션이 심하니까 이제야 갚겠다고 나선 겁니다. 그런데 갚을 수 있느냐 하면, 그렇지 않아요.
미국 의회 예산청에서 예상한 바에 따르면, 2051년에 이르면 미 국채 규모가 GDP의 200% 이상으로 증가합니다. 현재 120 몇 퍼센트거든요. 거의 두 배로 증가하는 거죠. 국채가 더 늘어나는데 어떻게 갚나요? 국채를 찍어서 돈을 빌리더라도, 미 연준으로부터 빌려야 미국 연방 정부가 이자 비용을 아낄 수 있어요. 미 국채가 어마어마하게 늘어나는데요. 여기 보시면 실선이 미국 연방 정부가 국채 이자로 지불하는 비용입니다. 그리고 점선이 연준한테 빌린 돈이에요. 둘 사이 관계를 보면, 연준한테 많이 빌릴수록 미국 정부가 이자 부담이 줄어든다는 걸 알 수 있죠. 미 연준에서 국채를 많이 사주니까 국채 가격이 오르고 대신 국채 이자가 떨어지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 미 연준이 긴축하잖아요. 그러면 국채 이자가 올라가요. 현재는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가 거의 3.3%까지 올라갔잖아요. 미국 정부의 재정 상태론 금리가 3.3%인 거 못 견딥니다. 지금도 계속 기준 금리를 올리고 있죠. 아마도 경기 침체를 만들 겁니다. 글로벌 경기 침체를 말이죠.
그래서 말입니다. 9조 달러에 대한 돈, MBS나 모기지 증권을 빼면 거의 7~8조 달러에 달하는 돈은 사실 미국이 갚지 못하는 돈이죠. 정확히는 갚지 않는 돈이고요. 그 얘기는 뭐냐면요. 그냥 공짜 돈이라는 말이죠. 그 엄청난 양의 돈이 그냥 하늘에서 떨어진 거죠. 미국은 그 어마어마한 돈을 흥청망청 쓴 거예요. 흥미로운 사진 한 장이 있는데요. LA의 롱 비치 항에 컨테이너 선들이 한 달 이상 떠있는 사진이에요. 팬데믹이 한창일 때 기사에서 몇 번 보셨을 수도 있어요. 이 사진을 두고 대부분 코로나로 물류가 멈췄다라거나 이주 노동자들, 화물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다는 얘기를 하는데요. 아무도 이 얘기는 안 해요. 뭐냐면요. 롱 비치 항에서 물건을 내리잖아요. 그 물건들은 어디서 올까요?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물건을 싣고 미국에 온 컨테이너 선들이 미국에서 물건을 싣고 나갈까요? 컨테이너 선들이 물건을 내리고빈 채로 돌아갔어요. 이건 무역이 아닙니다. 어마어마한 자원을 미국이 혼자 진공 청소기처럼 쫙 빨아당겨서 쓰는 거예요.
양적 완화는 어쩌면 굉장한 마법 같은 거죠. 이 마법에는 형이상학적 속임수가 자리하고 있어요. 미 연준하고 미 재무부는 서로 독립된 인격체로 보이죠. 독립된 법인들로 보여요. 그래서 그들 사이에 채권과 채무 관계를 형성한 것처럼 꾸밀 수 있어요. 하지만 사실은 그 둘의 관계는 보다 미묘해요. 저는 이걸 가리켜서 ‘하이브리드’, 한국식으로는 이종교배라고 명명합니다. 우선 미 연준은 퍼블릭과 프라이빗, 즉 사적 기구이면서 동시에 공적 기구이기도 해요. 왜냐하면 미 연준은 주주들의 결사체예요. 이 주주들은 미 연방에 속한 각 주의 은행들입니다. 각 주의 은행은 사기업이에요. 그래서 미 연준은 사기업인 주주들로 구성된 사기업입니다. 그런데 미 연준은 미 연방 의회의 인준에 의해서 설립된 거에요. 그래서 미 연방 의회에 보고할 의무가 있고요. 그리고 미 연준 의장은 미 대통령이 임명해요. 그런 점에서 미 연준은 공적 기구이기도 하고 사적 기구이기도 해요. 그래서 마치 미 연준이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보장받는 것처럼 정부와 동떨어져 존재하는 별도의 기구처럼 보이지만요. 사실은 아니에요. 하나의 미국이라는 국가, 하나의 연방 정부에 속한 산하 기구입니다. 그 대표적 단서가 미 연준에 소득이 생기면 미 재무부한테 돈을 돌려준다는 사실이죠. 그러니까 법적으로 채권자-채무자 관계로 꾸밀 때는 마치 별개의 인격체처럼 취급했다가, 돈을 안 갚아도 되는 구조를 만들 때는 하나의 몸으로, 한 인격체 내의 상위 기관과 하위 기관이 되는 거죠.
그래서 저는 이런 이중적 양상을 포착하려면 인격의 문제에 주목해야 한다고 봤어요. 저는 인격, Person이라는 독특한 개념이 현대 금융과 자본주의를 설명하는 데 대단히 중요하다고 봐요. 어떤 형이상적인 속임수를 가능하게 해주는 개념이거든요. 철학적인 개념인 인격을 이용해 현실 금융에서 속임수가 작동하는 구조를 만들어낸다고 저는 표현하는데요. 여기서 다 설명할 순 없지만, 법인격을 매개로 한 채권과 소유권의 이종교배야 말로 유한책임주식회사와 주주의 권한 및 책임, 상업은행과 예금창조 기능 등 현재 자본주의를 구성하는 제도들이 기반하고 있는 사상적 토대라 할 수 있어요.
연준은 얼마나 긴축할 수 있나?
이제 연준이 얼마나 긴축할 수 있는가를 살펴보도록 합시다. 지금 미 연준은 긴축을 아주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그림 26>은 국가 부채와 기준금리를 보여주는 차트예요.여기서부터 보시면요. 미국의 GDP 대비 국채 비율을 봐야 하는데요. 여기 막대 그래프가 미국 국채 규모를 보여줍니다. 보시면 2차 대전 전후로 어마어마하게 국채 규모가 컸죠. 이게 1970~80년대로 가면 굉장히 낮아집니다. 그러다 최근에는 다시 엄청나게 높아졌죠. 금리는 국채와 역의 상관관계죠. 여기서 상관계수가 -0.73이죠. 아주 강한 상관성을 보입니다. 1980년대 초에 거의 이자율을 16~20% 가까이 올렸거든요.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당시 미 연준 의장이 한 말이 있어요. 1940년대에는 장기 국채 금리를 2.5%로 유지했는데요. 금리를 통제했던 거죠. 그런데 지금처럼 양적 완화 비슷한 거를 한다고 하면서요. 당시에 미 연준 의장이 뭐라고 했냐면요. 장기 국채 금리가 인상되면 재무부의 재정 건전성이 떨어진다. 미국 정부가 국채를 발행해 돈을 계속 빌려야 되는데 이자율이 오르면 계속 빌리기가 어려워진다. 그래서 금리를 낮추는 정책을 해야 한다고 하거든요. 그 얘기는 뭐냐면요. 국채 규모가 굉장히 크면 양적 긴축을 하기가 어렵다는 말입니다.
최근까지 양적 완화해서 국채 규모가 엄청 늘었죠. 미 정부가 어마어마하게 공짜로 빌렸잖아요. 그런데 이미 국채 규모가 너무 커서 긴축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하더라도 조금 밖에 긴축할 수 없을 겁니다. 금리 올리다가 경제 위기가 터지면 다시 양적 완화 같은 걸 해서 돈을 더 빌리고 더 풀 거예요. 왜냐면 이거는 공짜 돈이거든요. 그래서 푸틴이 과거 유엔에서 한 연설이 회자가 되었잖아요. 푸틴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켰고 크나큰 잘못을 저지른 건 사실이죠. 하지만 그가 하는 발언 중에 유심히 봐야할 대목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왜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는가? 서방 선진국의 탐욕 때문은 아닌가? 냉전 이후 제3세계 빈곤과 반복되는 경제위기와 심화하는 불평등 등. 서방 선진국들이 달러를 기축통화로 삼아 전 세계의 부를 어떻게 전유했는지 물을 필요가 있어요. 아무래도 푸틴의 말을 가지고 얘기하니까 별로 신뢰성이 없을텐데요. 여기서 푸틴 빼고 얘기해보면 어떨까요.
다시 돌아와서 봅시다. 양적 완화와 같은 방식으로 돈을 빌리고 쓰는 건 일종의 마약과 같아요. 중독되는 거죠. 공짜 돈이기 때문에 또 할 겁니다. 그리고 자산가격이 긴축하면 자산 가격이 떨어지잖아요. 그러면 세수도 굉장히 줄거든요. 올해 2022년 1월부터 4월까지 미국에서 세수가 굉장히 많았거든요. 우리나라도 세수가 굉장히 많았습니다. 어디서 많았죠? 부동산을 떠올려보세요. 부동산 양도세. 부동산 거래가 많으면 세금이 어마어마하게 많습니다. 부동산과 같은 자산 가격이 오르고 거래가 활발해지니까, 올해 초 미국의 세수가 어마어마하게 늘었습니다. 그런데 활활 타오르던 부동산 경기가 급격히 꺼지면 어떻게 될까요? 당연히 세수가 줄겠죠. 어마어마하게 줄 겁니다.국채 규모가 계속 늘어나는 상황에서 불평등이 심해지고 이전 지출도 늘어나고 있어요. 사회복지 비용, 실업 급여를 더 많이 써야 하죠. 이런 상황에서 세금을 늘리지 않은 채 국채를 계속 찍고 있죠. 이렇게 국가 부채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양적 긴축을 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금리는 얼마나 올릴 수 있을까요? 그런데 미국은 할 겁니다. 양적 긴축을 말이에요. 그것도 강하게 할 겁니다. 그 얘기를 이어서 해보겠습니다.
우리나라가 양적 완화를 하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나라가 쌍둥이 적자, 즉 무역 적자와 재정 적자를 쌓으면 어떻게 될까요? 현대화폐이론, 일명 MMT를 따르고 주장하시는 분들이 경제 정책에 관해 뭐라고 하시나요? 우리나라도 돈을 엄청 찍어내자고 해요. 긴축이 아니라 확장을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여기서 길게 말할 순 없지만, 재정 긴축이냐 재정 확장이냐가 국내 그리고 국제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데 중요한 논쟁 구도일까요? 저는 논점이 잘못되었다고 봅니다. 이건 양적 완화에 관한 지금까지의 비판에서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지요. 다시 돌아와서 우리나라가 미국과 같이 양적 완화를 하면 어떻게 될까요? 환율은 폭등하고 외환 위기, 금융 위기, 경제 위기가 올 겁니다. 대부분의 국가들에서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런데 미국은 왜 그런 일이 안 일어날까요? 그건 미국이 기축 통화국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기축통화라는 특권과 그것을 유지하는 방법
기축 통화국이기 때문에 미 달러에 대한 국제적 수요가 강하죠. 미 달러의 가치와 미 달러에 대한 국제적 수요를 유지하는 방식은 아까도 말씀드렸었죠. 페트로-달러 시스템, 그러니까 석유를 팔 때 달러만 받도록 하는 일종의 군사, 경제적 동맹을 사우디아라비아하고 1970년대 초에 했고 이 체제가 과거처럼 견고하지 않더라도 어떤 형태로든 지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 닉슨이 달러를 더 이상 금으로 태환해주지 않겠다, 바꿔주지 않겠다고 선언했죠. 그걸 계기로 브레튼우즈 시스템이 붕괴했잖아요. 그러면 금과 연동되었던 미 달러도 기축 통화의 지위를 잃었어야 해요. 미국의 세계 기축통화로서의 지위가 사라졌어야 했어요.
하지만 미국 입장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면 큰일 나겠죠. 왜냐하면 베트남 전쟁 때문에 국채가 많이 쌓여 있기 때문이었죠. 미국이 망한다는 말과 다를 바 없는 거죠. 그래서 브레튼우즈 시스템을 벗어던지면서도, 달러가 누렸던 기축통화로서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대응, 일종의 모략을 펼쳤죠. 그걸 당시에 기획했던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 대표적 인물이 그 유명한 키신저예요. 그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차후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를 구상했죠. 그 일환으로 키신저가 사우디로 비행기를 타고 날아갑니다. 그래서 사우디하고 담판을 짓죠. 미국과 사우디가 어떻게 동맹을 맺냐 하면요. 너희가 원유를 팔 때는 결제대금으로 달러만 받는다는 거예요. 원유는 공업화의 핵심이거든요.
왜 북한이 1970년대에 남한보다 잘 살다가 지금은 못 살게 된 걸까요?여러 이유가 있겠지만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원유를 못 사는 거예요. 원유에 대한 접근권이 없어졌기 때문이에요. 달러로 구입대금을 결제해야 하는데, 북한은 달러를 구하기가 어렵잖아요. 그래서 1970년대 이후에도 북한은 계속 석탄을 주로 사용합니다. 석탄하고 석유는 효율성이 어마어마하게 차이가 나요. 그래서 처칠이 1차 세계대전 때 해군 장관에 부임해서 독일을 이기기 위해서 한 게 뭔 줄 아시나요? 석유를 동력으로 하는 군함으로 전력을 교체한 거예요. 함대에 쓰는 원료를 석탄에서 석유로 바꾼 거죠. 석탄은 효율성이 떨어지니까요. 석유로 움직이는 함선이 속력이나 에너지 효율에서 월등했죠. 그게 전쟁의 승기를 가져오는 데 한몫 했어요. 다시 돌아오면요. 북한은 달러에 대한 접근을 차단 당했어요. 달러 없이는 원유를 못 사기 때문에 석탄만으로 에너지를 공급해야 했어요. 더구나 원유는 에너지뿐만 아니라 다양한 공업에 쓰이는 원료이기도 하잖아요.
그러면 우리나라는 1970년대부터 뭘 했죠? 산업화를 위해서 가발 팔아서 미 달러를 먼저 구했죠. 외화벌이가 사활이 걸린 일이었죠. 그렇게 번 달러를 가지고 원유를 구한 겁니다. 1970년대를 보시면 제3세계 국가들에서 수입대체산업화, 일종의 자립화 정책을 시행했잖아요. 그런데 남한은 수출 지향적인 정책으로 전환했잖아요. 이게 브레튼우즈 시스템의 붕괴와 맞물리면서 다른 결과를 냈죠. 달러에 대한 접근이 가능한 게 국제 무역에서 관건적 사항이 되었죠. 그래서 수출 지향적인 정책을 쓴 남한은 산업화에 성공했고, 다른 제3세계 국가들은 미국을 비롯한 서구로부터의 경제적 종속을 탈피하고자 했지만 자립하려고 했던 모든 기획들이 제대로 된 효과를 내지 못했죠. 실패한 겁니다. 통화적 측면에서 제3세계 운동의 역사적 경로를 평가한다면요. 1970년대 페트로-달러 시스템으로의 전환을 빼놓을 수 없는 것이죠. 왜냐하면,기축통화국인 미국이 제공하는 어떤 우산, 보통 핵우산 뭐 이런 표현을 쓰는데, 일종의 화폐 우산, 달러의 권역 안에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이죠.
자, OPEC의 카르텔을 용인하고 사우디아라비아가 중동의 맹주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군사력을 지원하고 군사적으로 보호해 주는 대신 석유 팔 때 미국 달러만 받기로 했죠. 그런데 말이예요. 만약 OPEC 회원국 중에서 달러가 아닌 다른 통화, 예를 들어 위안화와 유로화를 받겠다고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미국이 나서서 차단하겠죠. 그런 일을 추진하는 정권을 제거하겠죠. 사담 후세인이 그 대표적 예입니다. 이라크 전쟁의 주된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이라크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사담 후세인이 석유를 팔 때 유로화를 받겠다고 선언했어요. 당시 유로화는 달러의 대안으로 각광받고 있었어요. 그러자 이라크 전쟁이 일어났거든요. 다른 통화를 받으려는 OPEC 회원국을 응징한 것이죠.
1999년에 유로화가 도입되면서 당시 굉장히 각광을 받았어요. 지금은 그만큼 주목받지 못하지만요. 유럽연합을 결성하게 된 이유는 정말 다양하죠. 그런데 사실 유럽은 오래 전부터 미국으로부터의 자립을 목표로 하고 있었어요. 유럽과 미국의 관계는 미묘해요. 우방이면서도 종속적이기도 하고 경쟁적이기도 한 관계랄까요. 저는 올해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서도 이런 측면이 드러났다고 봅니다. 정확히는 유럽이 미국으로부터 자립하려는 시도가 실패했다고 볼 수 있어요.왜냐하면, 유럽은 미국의 의존과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해 두 가지 방향에서 오랫동안 노력해왔어요. 하나는 유로인데요. 내부적으론 단일 경제 권역을 만들려는 취지가 있겠지만, 외부적으로는 미국의 달러로부터 독립하려고 한 고요. 다른 하나는 노드스트림이예요. 미국이나 중동으로부터 수입하는 자원들에 의존하는 것을 줄이고자 했던 거죠. 대신 러시아와 장기적으로 자원 협력을 꾀하고 안보도 안정시키려고 한 거거든요. 독일의 전 총리 메르켈이 오랫동안 기획했던 것이에요. 그 기획이 이라크 전쟁 때 한번 약화되었고,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종말을 고하게 된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다고 미국이 확실하게 유로를 제압했는가, 유로를 경쟁 통화의 지위로부터 완전히 끌어내렸는가 하면, 확실하게 대답하긴 어려워요. 왜냐하면 상당히 많은 중앙은행들에서 유로화를 준비금 통화로 비축해왔거든요. 전 세계 준비금 통화의 비중을 살펴보시면, 미 달러의 비중이 상당히 많이 낮아지고 유로화가 그걸 대체했다는 걸 확인하실 수 있어요. 하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유로화 대신 미국 달러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지도 모르겠어요. 달러가 유로화보다 경쟁에 앞서게 된 건 아닐까 싶어요. 어쨌든 그래서 최근 들어선 중국하고 러시아가 미 달러 본위제에 대해 도전하고 있죠. 그 일환으로 2018년 3월에 중국이 상하이 자유무역 지대에 상하이 국제 에너지 거래소(INE)를 설립했어요. 거기에서는 위안화로 석유가 거래됩니다. 그게 설립되자마자 미국이 중국과 무역분쟁을 시작했거든요. 그 시기가 겹쳐요.
그리고 러시아는 지금 금본위제로 돌아가고 있죠. 원유 팔 때 금을 받거나 아니면 우방국의 통화를 그냥 받습니다. 그래서 왜 북한이 남한의 눈치를 안 볼까요? 원유에 대한 접근성이 생겼기 때문이 아닐까요? 이제 북한도 자신들의 통화로 러시아한테 석유나 천연가스를 살 수 있어요. 북한은 이번 우크라니아 전쟁을 기점으로 아주 다른 나라가 될 겁니다. 김정은이 미국이나 남한에 고개를 숙이는 일은 절대 벌어지지 않을 거예요.
반면에 미국은 미중 무역 분쟁을 심화하고 군사력을 강화하고 있어요. 군사비 지출을 대폭 늘렸죠. <그림 23>을 보시죠. 이 차트는 세계 분쟁의 숫자를 보여줍니다. 아래 사이트에서 제가 갖고 온 거고요. 여기 보시면, 2008년을 기점으로 해서 기하 급수적으로 분쟁이 늘어났죠. 여기서 분쟁은 전쟁, 소요, 그리고 시민에 대한 폭력, 폭탄 테러, 봉기 등을 포함합니다. 그러면, 이렇게 말할 수 있겠죠. 2008년을 기점으로 해서 신자유주의 시대가 종언을 고함과 더불어 우리는 새로운 분쟁의 시대로 들어가고 있다고 말이죠. 우리가 지금 목도하고 있는 하나의 예가 우크라이나 전쟁이죠.
정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나? 다른 선택지는 없는가?
양적 완화는 정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까요? 지금과 같은 방식의 통화 팽창과 재정 확장이 불가피한 일이었을까요? 저는 이게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대안을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을 스스로 버리고서, 오직 하나의 대안만 있을 뿐이라고 스스로를 가둔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양적 완화라는 대안 밖에 없다고 담론을 제한하고 강제한 일종의 정치적 선택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선택이 서구 선진국들에게 너무도 이롭기 때문이었죠. 그렇지 않았다면, 과연 그런 선택을 했을까요? 그게 정답이라고 자평하고 이론적으로 정당화했을까요? 다른 국가들에게 감내하라고 강요했을까요? 그 선택을 거의 20년 가까이 유지했을까요?
그래서 저는 자본주의는 처음부터 타국의 부와 소득을 자국으로 이전시켜서 자국의 위기를 극복하려고 하는 제국주의적 체제였다고 생각합니다. 제국주의적 사회 형태를 자본주의는 처음부터 취했고 그게 아니고서는 등장하지도 작동하지도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초기에는 정복과 전리품 수출이라는 직접적 수탈의 형태를 취했고, 지금은 금융 시스템을 위한, 그리고 그것을 통한 간접적인 수탈의 방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죠. 사회, 나아가 문명의 위기를 해결하는 방법은 우리의 상상력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넓고 깊게 그리고 다르게 상상할 수 있는가에 따라 해결책의 방향은 대단히 많이 열려 있을 수 있어요.
오늘날 우리 사회와 문명은 심각한 부의 불평등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현대 자본주의에서 일어나는 경제 위기의 대부분은 부채 위기입니다. 부채 위기는 채권자와 채무자의 위기입니다. 채무자가 돈을 못 갚는 거고, 채권자가 돈을 떼이는 거거든요. 그러면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자본주의는 어떤 식으로 해결하냐면요. 돈을 만들어서 뿌리는 방식으로 해결합니다. 그래서 자본주의 등장 이전인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는요. 주화 경제였죠. 귀금속을 돈으로 썼으니까요. 다른 지역의 금은을 약탈해가지고 자국민들에게 뿌리는 겁니다. 채권자들한테 돈을 갚으라고 채무자들에게 돈을 쥐어 주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채권-채무 관계를 청산하고 부채 위기를 완화시키는 거죠. 지금은 어떻게 합니까?오늘날 자본주의에서는 어떤 방법을 취하나요? 양적 완화를 하는 겁니다. 아까 형이상학적 속임수를 써서 돈을 왕창 찍어서 돈을 확 뿌려버리는 방식으로 말이예요. 그래서 가계의 재정 안정성을 높이고 국내의 불평등 문제를 완화하는 거죠. 하지만 그 반대급부로 국제적 불안정이 심화하고 타국의 부를 수탈하는 일이 일어나죠. 더구나 채무자의 안정을 얘기하지만, 결국엔 채권자의 이해관계를 국가, 정확히는 사회 전체가 나서서 보장해주는 것과 다를 바 없죠. 데이비드 그레이버가 <부채, 첫 5000년의 역사>라는 책에서 묘사한, 그리스와 로마의 주화 경제에서 부채 위기를 해소하는 방식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오늘날 부채 위기를 어떻게 다르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채권-채무 관계의 문제니까요. 어떻게 해결하면 되겠습니까? 채권자가 돈을 안 받으면 돼요. 채권자의 권리를 사회적으로 제한하는 것입니다. 사회적 관계를 재조정하면 되는 간단한 문제입니다. 복잡하지 않다는 의미에서 말이죠.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간명합니다. 물론 그것은 엄청난 정치적, 경제적 변혁을 필요로 합니다. 분명 어려운 일이죠. 그렇다고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2차 세계대전 이후에 경험한 게 있습니다. 실제로 사회적 관계를 재조정했던 역사적 사례가 있습니다. 흔히 자본주의의 황금기라고 불리는 시기를 돌아보면 가능한 방법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피케티의 <자본과 이데올로기>를 보시면, 몇 가지 예를 알 수 있어요. 우선, 상속세가 있어요. 1930년부터 1980년대까지 거의 50년 가까이 상속세 최고 세율이 미국에선 75%, 최고 개인소득세율이 미국에서 평균적으로 한 50년간 85%에 달했어요.당시에는 누진적 특별세를 부과하기도 했어요. 당시 일본,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등에서 부유층의 부동산과 금융 자산에 세금을 부과했는데 한 번에 40~50%를 떼어 갔어요. 그냥 압류한 겁니다. 그리고 임대료 통제 제도도 있죠. 임대료를 통제하는 대신, 인플레이션을 인위적으로 막진 않아요. 어느 정도 허용하는 거죠. 당시 임대료 상승률을 보면요. 이 차트를 보시죠. 인플레이션이 오르는 대신 임대료를 통제하면요. 평균 약 4%씩 실질 임대료가 낮아졌어요. 그래서 임대료 통제를 프랑스 같은 경우엔 1차 세계대전 직후에 임대료 통제를 시행하는데요. 실질 임대료가 거의 5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집니다. 이런 식으로 사회적 관계를 재조정함으로 부의 불평등을 해결했던 사례가 분명히 있었어요.
그런데 우리는 그런 역사적 경험을 다 잃어버린 거 같아요.가능하다고 상상하지 못해요.분명히 사례가 있는데도 전혀 참조도 하지 않아요.대신 양적 완화해서 공짜로 돈을 찍어서 뿌리는 것만 얘기해요.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하면서요.그렇게10여년을 해온 결과가 지금의 글로벌 인플레이션이고요.전 세계의 기아와 분쟁 심화,저소득 국가들에게 예고된 경기 침체입니다.
최근 바이든 대통령이 학생 부채를 탕감했잖아요. 이게 진정한 의미의 탕감일까요? 우리가 아까 사회적 관계를 재조정한다고 말했잖아요. 그걸 기준으로 볼 때, 채권자가 돈을 받아야 될까요? 진정한 부채 탕감은 채권자가 돈을 안 받는 겁니다. 우리는 그걸 ‘용서’라고 하죠. 용서는 뭐냐면 요. 죄를 사해주는 게 아니에요. 죄가 아예 없던 걸로 해주는 겁니다. 잊어버리는 겁니다. 기억하지 않는 거예요. 부채를 없던 걸로 하는 거거든요. 그게 진정한 탕감이에요. 희년이죠.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새해를 맞이해 부채를 기록한 서판을 깨는 의식을 거행했어요. 이건 채권-채무 관계를 조정해 사회적 안정과 질서를 원래대로 회복하는 것이에요. 바이든의 학생 부채 탕감은 이것과 많이 다르죠.
지금 미국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부채 탕감 예산으로 4천억 달러를 추산하는 데요. 실제로는 그것보다 더 큰 규모로 필요하겠죠. 인플레이션 감축법안으로 재정 확충하겠다고 하는데, 과연 그럴까요? 그러면 채무자들에게 줄 돈은 어디서 나올까요?공짜 돈을 찍어낸다고 하지만요. 그걸 가능하게 해주는 금융 시스템을 뜯어 보면요. 그 윤전기에서 나오는 돈은 미국 내에서 나오는 게 아닙니다. 미국의 돈이 아닙니다. 미국 밖에서 오는 돈이에요. 다른 나라의 중앙은행이나 정부, 전세계 투자자들이 미국 국채를 사고 달러 가치를 떠받치기 때문에 가능한 겁니다. 바이든 대통령은은 여전히 돈을 뿌려서 해결하는 방식을 얘기하는 것일 뿐입니다.
사회적 관계의 재조정과 문명의 회복을 위한 상상이 필요하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대안을 얘기할 수 있을까요? 여러 가지가 있겠습니다. 예를 들어보죠. 가장 근본적으로는 미 달러 본위제로부터의 전환이 있겠죠. 저는 원자재 준비 통화, 상품 준비 통화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과거 1930~40년대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때, 원자재 가격과 물가 안정을 꾀하면서도 국가 간 환율 안정, 무역 증진을 위해 새로운 국제통화체제를 구상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했어요. 그 유명한 경제학자인 케인즈, 하이에크 등이 있었고요. 1970년대 브레튼우즈 체제 붕괴 이후에는 달러본위제의 문제를 지적하며 니콜라스 칼도 등이 다시 한번 제기했지요.
상품 준비 통화는 금본위제와 유사한데요. 금이라는 원자재 하나에만 기축 통화를 붙이는 방식이 아니라요. 이제는 생산과 소비에 필수적인 원자재들로 구성된 상품 바구니를 만들어서 그걸 기준으로 통화를 발행하는 거예요. 금, 원유, 철광석, 구리, 밀, 옥수수 등이 포함되겠죠. 중요한 건 원자재에다가 세계 기축통화의 가치를 연동시키는 것입니다. 통화의 발행을 원자재의 양과 가격 수준에 묶어 두는 것이지요. 과거 금본위제나 브레튼우즈 시스템에서 시도했던 거하고 유사한 취지를 가져요. 그렇지만 더 발전된 형태의 것이죠. 이 아이디어는 벤자민 그레이엄이라고 채권이나 주식 투자자들 사이에는 굉장히 유명한 인물이 있는데요. 이 사람이 20세기 초반인 1930년대부터 제기한 대안이거든요. 이런 대안이 분명히 있었고요. 이를 현대적으로 수용하려는 논의도 2008년 이후 다시 제기되고 있어요.
그리고 금융 시스템의 개혁이라든가, 앞서 보았듯 여러 가지 방식으로 부를 재분배하는 방안도 있겠죠. 상속세 강화, 임대료 통제 등이요. 그리고 저는 기본 자산제를 연구했고 그에 관한 책도 출판했는데요. 일단, 기본 소득과는 다른 것입니다. 오히려 거기에 비판적 문제의식을 담고 있죠. 하여튼 기본자산을 통해 부를 재편하는 방식이도 있겠죠. 이런 다양한 대안을 회피하고 상상하길 거부할 때, 쉽게 선택할 수 있는 게 바로 돈을 뿌리는 것입니다. 그건 분명히 서구 선진국에게 더욱 유리하죠. 그리고 실제로 서구 선진국은 돈을 뿌리는 방법을 선택해 위기를 지연시켰죠. 심지어 위기 국면에서 부국과 부자들이 더 많은 부를 누릴 수 있었죠.
우리에겐 더 나은 상상을 할 역량이 있습니다. 그걸 기르고 발휘해야 합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저는 통화팽창과 재정확장이라는 자본주의적 방식으로 경제위기를 극복할 것이 아니라, 부의 직접적 재분배, 세계 기축통화 제도의 개혁, 그리고 자본주의적 화폐 시스템의 개혁을 통해 해결할 것을 제안합니다. 오직 그것 만이 제국주의적 자본주의를 극복할 대안이라고 주장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신자유주의 이후 지금의 세계를 날카롭게 분석하고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대안을 모색해야 합니다. 제 이야기가 정답이 아닐 수 있습니다. 사회적 관계를 쇄신하고 더 나은 문명을 만들어가는 데 마중물이 되길 바랍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