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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윌먼의 비교 영화 연구 번역을 시작하며


박상빈 |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영화를 비교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사실 영화를 비교하는 일은 너무나 쉬우며 너무나 일상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일이다가령 우리는 할리우드나 유럽의 영화와 비교하며 남한 영화를 오랫동안 방화(邦畫)라 불러온 역사를 가지고 있다혹은 시야를 최근으로 돌린다 해도요즈음의 소위 알탕 영화[각주:1]들을 문제시할 수 있는 것은 여성 캐릭터에게 중요한 역할이 부여되거나 여성의 성역할 구분을 무화시키는 캐릭터를 제시하는 다른 영화들과 알탕 영화들을 비교할 수 있기 때문이다이처럼 영화 간의 비교가능성은 영화에 관한 경험에 있어서 너무나 당연한 전제로 주어진다.

그런데 이러한 방식의 영화에 관한 비교는 우리들의 일상에서 수행하는 다른 비교 형식들과 그닥 다르지 않다그러니까 아이폰보다 갤럭시가 좋다거나소나타보다 K5나 혹은 BMW 5시리즈가 더 좋다거나 하는 방식의 단순한 유용성이나 취향에 기반한 비교뿐만 아니라가령 나이키 운동화는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방식으로 생산되기에 나이키보다는 다른 걸 선택하겠다는 것과 같은 어느 정도 정치적이고 윤리적인 기준에 근거한 비교 형식까지 포함한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비교 형식은 무엇이 무엇보다 못하고 낫다는 줄 세우기의 형식과 부지불식간에 분간할 수 없게 되고그러는 와중에 불가피하게 정전canon’들을 산출해 내게 된다박스오피스 흥행 순위 모형에서부터 당신의 인생을 바꿔놓을 50편의 영화, 1980년대의 걸작 30인도 영화 베스트 10, 놓쳐선 안 될 여성영화 30선 등등 그 변형의 형태는 무한히 가능할 수 있다정전들의 목록은 더 나은’ 범주의 영화를 접해보지 못한 이들에게 즉시적인 충격을 준다세상에 이렇게나 좋은 영화들이 많이 있었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따라서 이러한 목록은 교육적·계몽적 효과를 지닌다혹은 아직 경험해보지 못했으나 선망을 불러일으키게끔 한다는 의미에서 여행용 팸플릿과 유사한 효과를 발휘한다.

폴 윌먼Paul Willemen이 제안하는 비교 영화 연구comparative film studies의 방법론은 이러한 문제 인식에서부터 시작한다윌먼이 비교 영화 연구라는 의제를 영화연구 학계에 제기한 일의 의미는 단순히 정전적인 영화 목록 만들기에 매몰되어 있는 영화연구 학계의 고리타분함을 비판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오히려 그가 제기하는 비교라는 의제는 다른 나라nation의 영화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라는 아주 기본적이지만 그 대답을 찾아내기에는 진땀을 흘리게 만드는 질문과 연관된다자기 자신의 문화까지를 포함한 지구상의 제각기 다른 다양한 문화를 이해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앞서 말한 여행용 팸플릿의 방법을 통해서일 것이다관광객의 시선이라고도 할 수 있을법한 이러한 태도는 여권에 도장을 찍듯유적지에서 사진을 찍듯혹은 국제통용화폐로 지역특산물을 기념품으로 구매해 간직하듯 그 문화와 문화생산물을 이해한다.

이러한 단순한 관광객의 시선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그 문화를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는 쉽지 않다이러한 시도에서 가장 빠지기 쉬운 함정은 복화술사의 길이다이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자 하는 관광객의 시선이 단순히 전도된 것에 불과하다.

이것은 전도된 투사적 동일시이며누군가가 타자들의 대변인으로 나서서 이야기할 때에 관한 것이다그 발화자는 마치 뽕을 맞은 듯 화자들의 목소리에 몰두되어 있으며그 타자의 사회적 혹은 문화적 공간 속에 자신이 포함되어 있다는 듯이 여기며 발화한다여기서 작동하는 판타지는 … 자신이 교육이란 특혜를 입었고 매우 값비싼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에 너무나 자책하고 있는 중산층 지식인 혹은 기업가들의 판타지이다그것은 그/녀가 억압된 것즉 타자의 목소리에 공명하는 것을 통해 자신이 단지 텅 비어 있는 그릇일 따름인 척 하고 싶어 하는자신의 지적 책무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하는 그런 판타지이다이러한 태도는 그 타자가 계급젠더종족종교민족성공동체 등 그 무엇으로 정의되는지에 관해서는 전혀 상관하지 않는 채로 머무른다따라서 이러한 복화술이란 독점기업-제국주의가 느끼는 양심의 가책인 것이다 /녀가 억압된 것으로서 가장하고 있는 동안에도 그/녀는 여전히 권위주의적 독점기업으로 남아있을 뿐이다.”[각주:2]

윌먼은 이러한 두 가지 시선을 모두 자신의 고려에서 배제한다대신에 그는 바흐친의 창조적 이해’ 혹은 레이먼드 윌리엄스의 진단적 이해라는 방식의 태도를 요청한다그것은 어떤 문화를 접할 때 혹은 어떤 문화생산물에 대해 발화(연구)할 때 그 문화생산물과 공유하고 있는 자신의 주체 위치 역시 고려해야 한다는 요청이다이는 단순히 너 자신을 알라와 같은 윤리적 격언을 반복하는 것이 전혀 아니다윌먼의 요청은 오히려 객관화에 관한 요청이다즉 타 문화와 연구자의 문화그것들을 동일하게 형성한 동력그들이 서로 접근할 수 있게 만든 동력그들이 각기 (관광객과 이국적 유적혹은 복화술사와 그 인형이 아닌연구대상과 연구자로 설정될 수 있게 만든 동력을 모두 고려하여 연구에 임해야 한다는 요청이다그리고 윌먼에게 이와 같은 영화연구의 지평을 만들어주는 그 동력이란바로 개별 사회구성체의 자본주의와의 보편적인 (그러나 서로 다른 양상으로 진행된마주침encounter’이다.

여기가 바로 윌먼이 비교 영화 연구를 시작하는 지점이다여기서 새롭게 출발하게 될 비교의 구체적인 방법도구내용들은 다음과 같은 윌먼의 논문들을 번역하는 것을 통하여 소개해보려 한다.

 

Paul Willemen(2005), “For a Comparative Film Studies”, Inter-Asia Cultural Studies, 6:1,

Paul Willemen(2013), “Introduction to Subjectivity and Fantasy in Action: For a Comparative Film Studies”, Inter-Asia Cultural Studies, 14:1, 96-103.

Paul Willemen(2005), “Action Cinema, Labour Power and the Video Market”, Hong Kong Connections : Transnational Imagination in Action Cinema, edited by Meaghan Morris, Siu Leung Li and Stephen Chan Ching-kiu, Duke University Press(Durham and London) & Hong Kong University Press(Hong Kong).

Paul Willemen (2013) “Indexicality, fantasy and the digital”, Inter-Asia Cultural Studies, 14:1, 110-135.

Paul Willemen (2013) “Preliminary conclusions: cultural labourcultural value in a comparative frame”, Inter-Asia Cultural Studies, 14:1, 136-155.

 

윌먼의 비교 영화 연구’ 기획은 아쉽게도 완성되지 못했다암으로 별세하기 직전까지 <비교영화연구를 위하여>라는 제목의 단행본 작업을 하였으나 미완으로 남은 채 2013년에 학술지 <Inter-Asia Cultural Studies>에 게재되었다.

윌먼의 이와 같은 미완의 작업을 여기에 번역하는 일이 조금은 부담스러우면서도 또 뿌듯하기도 하다부족한 실력 탓에 난해한 윌먼의 문장 번역 작업이나 주석을 다는 작업에 부정확한 내용이 있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게 부담스러움이라면윌먼의 글을 처음 만났던 한예종 영상이론과에서가 아닌 다른 장에서 윌먼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점이 바로 내가 느끼는 뿌듯함이다이 작업을 통해 윌먼의 비교영화연구가 조금이나마 더 많은 논의를 낳을 수 있게 되길 바란다.





  1. 최근 한국에서 메이저 투자배급사에 의해 기획되고 제작되는 영화들 중 다수의 영화가 등장인물들이 거의 남자들만 나온다는 점을 지적하며 비꼬는 표현이다. [본문으로]
  2. Paul Willemen(1994), “The National”, Looks and Frictions, Indiana University Press, p.213.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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