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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무브 Writing

‘듣기 시간’으로서의 소설: 김숨의 『오키나와 스파이』

by 인-무브 2026. 6. 11.

듣기 시간으로서의 소설: 김숨의 『오키나와 스파이』[1]

 

지혜정

 


'[2026 서교연 비평이론학교] 시즌 2.  탈식민주의로 TEXT 횡단하기'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작성한 비평문입니다. 


 

 

어떤 소설은 읽는 이의 감각을 바꿔놓는다. 경험하지 못한 역사의 한복판으로 독자를 불러들여 사건을 몸으로 겪도록 한다. 김숨의 『오키나와 스파이』(2024)가 그렇다. 소설이 다루는 것은 1945년 오키나와전투 시기, 구메지마에서 벌어진 학살이다. 오키나와 본섬에서 서쪽으로 백 킬로미터 떨어진 작은 섬, 구메지마에서 일본군은 스파이를 잡겠다는 명목으로 주민 20명을 사살했다. 그중 7명이 소설 속에서 조선인 고물상으로 불리는 구중회와 그의 가족들이었다. 여기에는 아직 이름도 붙여지지 못한 젖먹이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 사건은 오키나와 내 조선인의 존재가 반복적으로 지워져 오면서 제대로 다뤄지지 못했으나, 2024년 김숨이 처음으로 소설화한다. 1974년 울산 출생으로 오키나와전쟁의 당사자와 어떠한 접점이 없음에도, 작가는 80여 년 전의 역사를 현재화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듣게 한다’. 전쟁 당시 작은 섬에 갇혀 있던 소리들을. 

 

폐쇄된 공간에 울리는 폭력의 발화들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여 오가던 배마저 끊긴 상황 속에서, 섬은 폭력의 소리가 빠져나갈 곳 없이 증폭되는 공간이 된다. 소설의 전개 방식은 이러한 섬의 폐쇄성을 충실히 구현한다. 섬의 북쪽에서 아홉 명이 학살되는 장면으로 시작된 소설은 조선인 고물상이 서쪽 마을로 도망가지만 끝내 일가족과 함께 죽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그 사이사이, 다양한 섬 주민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전쟁의 시간을 통과한다. 시간의 비선형성은 이를 심화한다. 1부가 아홉 명이 학살되는 날‘을 다룬다면 2부는 그로부터 이틀 전’, ‘십사 일 전’, ‘세 달 전으로 차례차례 거슬러 오른다. 그러다 다시 현재로 돌아오는가 싶다가 또 다시 과거로 이동한다. 한편, 작가는 인물 한 명을 중심으로 서사를 전개하는 대신 섬에 흩어진 여러 인물들을 파편적으로 조명하는데, 그렇게 서술자의 시선을 따라 섬 이곳저곳을 종횡하다 보면 독자는 어느새 자신이 구메지마 안에 들어섰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죽음으로 수렴되어 가는 주민들의 일상이 붕괴하는 감각을 함께 겪는다.[2] 더 이상 안전한 거리감을 확보할 섬 바깥에 서 있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섬은 소설에서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독자를 전쟁의 내부로 끌어들이는 장치가 된다. 

이러한 섬 안에 가장 크게 울려 퍼지는 것은 폭력의 발화들이다. 전쟁이 벌어지기 전부터, 섬에는 이미 분명한 위계 구조가 새겨져 있다. 가령 일본군은 섬 주민을 덜 떨어지고 미개한 오키나와 놈들이라 멸시하고, 섬을 잡도이자 조선이나 타이완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식민지로 간주한다.[3] 본섬 출신 교사 또한 구메지마 아이들을 향해, “너 혼자 미개한 오키나와인으로 살거냐고 다그치며 생각도 일본말로 하고 잠꼬대도 일본말로 해야 일본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4] 이러한 폭력성은 조선인을 향한 오키나와인의 태도에서 동일하게 반복된다. 섬 주민 사토는 조선인을 소를 잡자마자 생간을 꺼내 피를 얼굴에 묻혀 가며 먹을 존재라며 타자화하고, “이 섬에서 조선 놈 하나가 죽었다고 불쌍해할 사람이 있을 것 같냐고 조롱한다.[5] 이 작은 섬에는 서로 복잡하게 뒤엉켜 있으면서 좀 더 하위에 자리한 이들을 계속해서 만들어가는 시스템이 작동한다.[6] 오키나와 작가 마타요시 에이키가 말했듯, “폭력은 가장 밑바닥으로 흐른 것이다.[7]

차별과 배제를 내포한 목소리는 조선인 고물상의 깊은 내면으로까지 흘러든다. 그는 땅에 묻혀 부패되기 전에는 조세나 지라(조선인 얼굴)를 벗을 수 없다는 사실에 괴로워하고 조선인이라는 죄를 이 땅 어디서도 용서받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8] 이는 프란츠 파농이 말한 피식민 주체의 자기 소외 문제와 공명한다. 탈식민주의 이론가이자 정신과 의사인 파농은 『검은 피부 하얀 가면』에서, 백인에 의해 대상화된 흑인이 어떻게 자신을 식민화된 대상으로 바라보게 되는지 분석한다.[9] 타자의 눈길을 통해서 스스로를 검둥이로 인식하는 흑인처럼, 식민지 위계 속에서 조선인은 자신을 삼등으로 낙인찍는다. “엄마, 인종차별이 뭐냐면 말이에요, 인간을 일등, 이등, 삼등 그렇게 나누는 거래요. 일본인은 일등, 오키나와인은 이등, 조선인은 삼등. 엄마, 그런데 나는 조선인이에요?”[10]

한편 작가는 이러한 폭력성을 단선적으로만 그려내지 않는다. 학살에 가담하는 인간 사냥꾼들이 잠든 땅굴을 태아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자궁으로, “가해자의 탈을 벗고 십 대 소년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공간으로 그려 냄으로써 이들이 실은 어린 소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독자에게 인식시킨다.[11] 또한 스파이로 몰려 죽는 과 학살하는 겐‘을 몸집도 생김새도 비슷하여 마치 쌍둥이 형제 같다고 표현함으로써, 피해와 가해의 이분법을 교란한다. 나아가 새끼 돼지마저 따뜻하게 보듬는 산가키가 이웃들을 죽인 조카 사토의 얼굴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충격을 받는 장면은, 가해성이 특정 인물에게만 귀속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작가는 이러한 장면을 통해 누구든지 가해성을 지닐 수 있다는 인식을 독자에게 남긴다. 출구 없는 섬 안에서, 식민지배와 전쟁으로부터 야기된 폭력의 발화들은 사라지지 않고 메아리처럼 울린다.

 

섬이 내는 소리, 존재들의 숨소리

폭력적인 목소리들에 귀 기울이다 불현듯 깨닫게 되는 것은, 그 공간을 메우고 있는 것이 인간의 음성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동물 역시 전쟁이라는 비극의 구성원으로 소환된다. 우선 인간 사냥꾼들은 족제비, 너구리, 다람쥐 등으로 불리고, 학살당하는 주민들은 새끼 참새가 된다. 조선인 고물상은 반복적으로 하얀 산양에 빗대어진다. 한편, 버둥대는 새끼 돼지를 청년들이 칼로 찢으려 하는 장면이나 산양 삼백 마리가 푹 소리를 내며 한꺼번에 도살되는 장면도 그려진다. 신지영은 이러한 소설 속 동물화가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고 분석한다.[12] 하나는 오키나와인과 조선인이 모두 동물로 낙인찍히듯 권력의 근접성을 받아들여 배제와 차별을 고착화하는 동물화이며, 다른 하나는 비인간동물의 도축과 인간동물의 학살이 겹쳐지는 장면을 통해, ‘인간종이 가해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인식하게 되는 종차별주의에 대한 성찰로서의 동물화다. 이러한 분석이 동물화의 정치적∙윤리적 함의를 짚는다면, 소설은 동물의 등장을 통해 인간만이 섬에 존재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당연한 사실 또한 환기시킨다. 소설 속에서 동물은 인간 이하의 존재 혹은 죽임 당하는 존재로만 그려지지 않고 섬의 주민으로서 존재한다. 가만히 귀 기울이면 작품의 내부는 인간이 아닌 존재들의 온갖 소리로 시끄럽다. 

 

메마른 사탕수수 잎들이 서로 비비대는 소리, 짝짓기 철을 맞은 반딧불이들이 금빛 은빛 선을 허공에 그으며 초조히 날아다니는 소리, 딱정벌레들이 손톱처럼 딱딱한 푸른 야광의 날개를 파닥거리는 소리, 동굴을 나온 박쥐들이 먹이를 찾아 숲을 휘저으며 날아다니는 소리, 묵직하고 둥그스름한 돌들이 한꺼번에 구르는 것 같은 파도 소리, 풀 한 포기 없는 빈 땅에 대고 낫을 그저 휘두르는 것 같은 바람소리….”[13]

 

이 소리들은 배경음이 아닌, 살아있는 섬의 숨소리다. 그 웅성대는 소리들이 독자 귀에 울려 퍼질 때, 독자는 자연스럽게 섬 안에 있다는 감각을 느끼게 된다. 청각만이 아니다. 조선인 고물상은 이 섬의 물이 달고 맛있고, 이 섬의 흙이 따뜻하고 부드럽다고 느낀다. 돼지, , 그리고 산양. 이 섬의 가축들이 그에게는 사랑스럽게 다가온다. 그의 눈에는 어미 닭이 희고 부드러운 깃털로 달걀을 품듯 빛의 깃털이 섬을 품고 있는 듯 보인다.[14] 이 섬의 감각들이 조선인 고물상의 몸을 통해 독자에게 전달될 때, 독자는 그가 이 땅에 속한 존재임을 알게 된다. 반면 학살을 명령하는 기무라 대장에게는 이러한 것들이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서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바위ㅡ섬 여자들이 기도를 드리기 위해 찾아오는 우타키ㅡ를 두 발로 함부로 밟고 서 있는 기무라를 바라보며 섬의 여자아이인 유미코는 이렇게 생각한다. “기무라가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다는 걸 안다. (…) 그에게는 이 섬의 집들과 논밭이, 우물이, 나무와 바위들이, 소목장의 소들이,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15] 그러나 섬에는 원래부터 있던 것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그리고 그 자연의 존재감은 조선인 고물상이 둑으로 끌려가는 장면에서 정점에 달한다.

 

땅이 미쳐서는 조선인 고물상의 살을 할퀴고 머리카락을 잡아당긴다. 돌멩이도 미쳐서는 송곳니가 돼 그의 살을 찌른다. 아주 작은 돌멩이도 송곳니가 된다. 풀포기가 칼이 돼 그의 살을 벤다. 바다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성난 낫이 돼 그의 얼굴 위에서 춤을 춘다. 50미터도 못 가 조선인 고물상의 머리에서 피가 흐른다. 등과 엉덩이, 허벅지, 종아리, 발뒤꿈치에서도 피가 흐른다”.[16]

 

이 구절은 자연이 지닌 행위성을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자연 역시 전쟁에 동원된 섬의 구성원임을, 인간만이 비극의 구성원이 아님을 독자가 감지하게 한다. 존재를 적극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그러나 모든 순간을 지켜보는 조용한 목격자도 있다. 소설은 손도끼 모양의 달이 떠 있던 밤에 아홉 명이 학살당하는 장면으로 시작해서, 조선인 고물상의 시체 위로 황금덩이 같은 달이 떠 있는 장면으로 막을 내린다. 마침 조선인 고물상이 학살당하는 날이 조상들의 영혼이 저승에서 이승으로 건너오는 오키나와의 추석 명절인 오봉이었다는 언급은, 섬에 존재했을 또 하나의 비/인간 존재인 ‘혼’을 상상해보게 한다. 조상의 영혼을 섬기고 나무와 돌 같은 자연물을 신성하게 여긴 오키나와 섬 주민들 곁에는 인간 외의 존재들이 저마다의 숨을 내쉰다. 그러나 섬의 모든 소리가 늘 또렷하게 들리는 것은 아니다. 

 

공백을 읽고 침묵을 듣는 일

소설 안에는 끝내 재현되지 못한 존재들도 있다. ‘위안부 문제에 오래 천착해온 작가는, 이 소설에서도 구메지마의 목욕탕 건물에 찾아오곤 했다는 위안부들의 이야기를 복원해보고자 했으나 결국 넣지 못했다고 말했다.[17] 부분적이나마 위안부 여성들의 흔적은 소설 속에서 두 차례 스치듯 나타난다. 기무라 총대장의 수발을 들기 위해 끌려가면서 유미코는 지난날 군인들이 조선인 위안부들을 개처럼 끌고 나오던 모습을 떠올리고, 본섬에서 온 요미치는 위안부‘들이 군인의 명령에 따라 스파이 누명을 쓴 어떤 여자를 공포에 질려 총검으로 찌르던 광경을 기억해낸다.[18] 당시 그녀들의 존재는 일상에서 쉽게 목격될 수 있었겠지만, 오키나와 내 조선인 위안부에 대한 공식적인 기록은 전무하다.[19] 그녀들은 이 섬에 분명히 있었으나 들리지 않는 존재들이었다. 

가야트리 스피박은 서발턴의 목소리가 공백으로 남은 것은 그 말을 들을 만한 구조가 부재하기 때문이라고 했다.[20] 서발턴이 말할 수 없다는 것은 발화의 능력이나 자리의 문제가 아니라, 인식 체계나 권력 구조가 말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주지 않았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대변(represent)’되고 재현(represent)’될 수 없는 서발턴의 목소리는 어떻게 들을 수 있는가. 이 소설은 그 물음 앞에서, 침묵에 귀 기울이고 공백으로 존재하는 자리들을 더듬는다. 이름도 붙여지지 못한 젖먹이와 숫자로만 남은 그//들의 죽음을 살핀다. 작품의 장 구성 또한 이를 드러내는데,  12부로 구성된 소설에 제목이 붙은 장은 넷뿐이다. 1 <9>, 4 <1>, 9 <3>, 12 <7>. 숫자로 명시된 장은 학살된 인원 수를 가리키고, 나머지 장들은 공백으로 남아 있다. 이 공백은 역사적 기록 바깥에 존재하는 죽음과 비/인간 존재들의 고통, 즉 말해지지 못한 것들이 머무는 자리다. 

김숨은 소설가란 들리지 않는 소리도 들어야 하는 자들이라고 말한 바 있다.[21] 이러한 생각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인터뷰하는 이야기를 담은 소설 『듣기 시간』(2021)에서도 드러난다.

 

말을 하기 위해서. / 말을 하지 않기 위해서. / 말을 하지 않기 위한 말하기. / 말하는 걸 잃어버리기 위한 말하기. / (내가 그녀를 위해 준비한 최초의 질문) / 듣기 / (최후의 질문) / 듣기 / (최선의 질문) / 듣기[22]

 

최초의 질문이자 최후의 질문이고 최선의 질문으로서의 듣기. 이 듣기 실천이 『오키나와 스파이』에서도 수행된다. 소설의 마지막에 이르면, 조선인 고물상의 입에서 토해지는 소리는 "마치 해명(海鳴)이 우는 소리"처럼 울려 퍼지고, 뒤따르는 아들 후미오의"높고 가는 비명 소리는 섬을 찢고 찢는다".[23] 억압되어 있던, 줄곧 들리지 않던 거대한 울음이 끝내 섬을 찢으며 소설은 막을 내린다.

 

끝났다는 매듭 없이

1945 8 15일ㅡ일본이 패전한 날. 섬 주민인 요미치의 아내는 묻는다. “전쟁이 정말 끝난 걸까요?”[24] 그러나 바로 그날 요미치와 그의 아내는 학살당하고, 젖먹이 아기의 심장에는 총검이 꽂힌다. 그리고 닷새 후 조선인 고물상의 가족들 역시 사살된다. 계속되는 죽음 속에서 끝났다는 매듭은 이 소설 어디에도 없다.[25] 더군다나 소설 속에서 섬 주민 야마자토는 전쟁 전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미군들이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미군들이 설마 우리 섬에 아예 눌러앉으려는 건 아니겠지요? … 미군들이 우리 섬을 아주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단 말이에요”.[26] 실제로 오늘날까지 오키나와에는 일본 내 미군 전용 시설의70% 이상이 집중되어 있다. 요미치 아내의 물음은 여전히 현재형이다.

지금도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가자에서도, 레바논에서도. 그 참혹함 앞에서, 소설을 읽고 쓰는 일은 결코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팔레스타인 작가 모함메드 엘쿠르드의 말을 감히 빌리자면, 인종학살의 와중에 글을 쓴다는 것이 고문같이 느껴지는 것은 비탄 때문만이 아니라 “2000파운드짜리 폭탄 앞에서 글이란 부끄러우리만치 모자람을 알기 때문이다.[27] 그럼에도ㅡ혹은 그렇기 때문에ㅡ충분하지 않다는 그 부끄러움을 안고 조금이라도 전쟁을 감각하는 일. 그것이 이 소설이 독자에게 요구하는 일이자 우리가 문학을 통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조선인 고물상의 모티프가 된 구중회와 친척관계인 하가 가오루의 어머니는 이 소설을 읽은 후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인간의 추악함, 어리석음 (…) 슬픔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정작 늘 가려지는 것은 전쟁 자체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라고.[28] 전쟁 자체가 가려지지 않도록 하는 일은 무엇으로 가능할까. 소설은 답하지 않는다. 다만 섬이 찢기는 듯한 소리를 우리 몸 안에 남길 뿐이다. 섬의 폐쇄성, 비인간 존재들의 소리, 공백의 구조. 이 모든 장치들은 독자가 안전한 거리에서 그저 텍스트를 읽는 데에 그치지 않고 전쟁의 감각을 몸 안에 새겨 듣도록 강제한다.



[1] 김숨, 『오키나와 스파이』, 모요사, 2024.

[2] 신조 이쿠오, 끝난 것은 아무것도 없다-오키나와 전투가 말하지 못한 핵심을 정밀한 언어로 구체화한 『오키나와 스파이』」, A Collections of Japanology Studies』 제50, 글로벌류큐 오키나와연구소·경희대학교 대학원 일본학 연구회, 2025, 150.

[3] 김숨, 앞의 책, 34.

[4] 김숨, 앞의 책, 165.

[5] 김숨, 앞의 책, 175-176.

[6] 오세종, 『오키나와와 조선의 틈새에서』, 송혜원 옮김, 소명출판, 2019, 82.

[7] 마타요시 에이키, 『긴네무 집』, 곽형덕 옮김, 글누림, 2014, 254.

[8] 김숨, 앞의 책, 215.

[9] 프란츠 파농, 노서경 역, 『검은 피부 하얀 가면』, 문학동네, 2014.

[10] 김숨, 앞의 책, 218-219.

[11] 손지연,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삶이 얼마나 허망한지, 인간의 연대라는 것이 얼마나 쉽게 허물어질 수 있는지에 대하여김숨 작가를 찾아서」, 『문학인』 18, 2025, 395.

[12] 신지영, 앞의 글, 78.

[13] 김숨, 앞의 책, 8.

[14] 김숨, 앞의 책, 213.

[15] 김숨, 앞의 책, 287.

[16] 김숨, 앞의 책, 345.

[17] 손지연, 앞의 글, 390 참고. (김숨은 10여년간 위안부에 관한 소설을 써 왔다. 한 명(2016), 흐르는 편지(2018), 숭고함은 나를 들여다보는 거야 (2018), 군인이 천사가 되기를 바란 적 있는가(2018), 듣기 시간(2021), 간단후쿠(2025).)

[18] 다미에게 방직공장에서 편지를 보내는 딸이 있지만 그 딸이 정확히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다 설정 역시  위안부 서사를 떠올리게 한다. 가령 한 명에는 순사가 딸을 일본 방직공장에 보내야 한다고 말하자 죽일까 싶어서, 어디로 데리고 가려는 것인지 묻지 못하는 어머니가 나온다. 물론 다미의 딸은 조선인이 아닌, 오키나와인이겠으나 이러한 설정은 전쟁 속에서 여성들이 처하게 되는 위치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김숨, 한 명, 현대문학, 2016.)

[19] 군 자료에 의하면 당시 위안부 1천명 정도였고 오키나와 각지에 설치된 위안소는 대략 140여 곳으로 추정된다. ‘위안소 이용권을 지참한 병사들이 줄지어 늘어서서 재촉하는 소리가 민가 밖까지 들렸다고 하고, 섬 주민들은 조선인 여성을 조센삐’, ‘조센후’, ‘매음부’, ‘조세나’ ‘조센구와 등으로 불렀다고 한다. (오세종, 『오키나와와 조선의 틈새에서』, 송혜원 옮김, 소명출판, 2019, 75)

[20] 서발턴(subaltern)은 안토니오 그람시의 이론에서 가져 온 용어로, 그람시에게 서발턴이란 사회적으로 억압받고, 지배 구조에서 배제된 계급을 지칭하며 주로 이탈리아 남부의 농민이나 노동자 계층을 가리킨다. 스피박은 서발턴이라는 개념을 영국 제국주의와 인도 가부장제라는 억압 속에 놓인 인도 여성과 함께 사유한다. (가야트리 차크라보르티 스피박, 태혜숙 역,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 그린비, 2013 참고.)

[21] 김용출, 「장편소설 『오키나와 스파이』 김숨 인간과 역사 성찰 없으면 당신도 가해자가 될 수 있다, 『세계일보』, 2026.3.30.

[22] 김숨, 『듣기 시간』, 문학실험실, 2021, 76-77.

[23] 김숨, 앞의 책, 348.

[24] 김숨, 앞의 책, 250.

[25] 신조 이쿠오, 앞의 글, 149.

[26] 김숨, 앞의 책, 238-239.

[27] 모함메드 엘쿠르드, 박종주 역, 『완벽한 피해자 팔레스타인인이라는 존재』, 마티, 2026, 11.

[28] 하가 가오루, 「상처 위에 피어난 구원의 언어김숨 『오키나와 스파이』 서평」, A Collection of Japanology Studies』 제50, 글로벌류큐 오키나와연구소·경희대학교 대학원 일본학 연구회, 2025, 1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