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에서 실용주의로:
혁신사회학센터(CSI)에서 브뤼노 라투르와 함께한 여정
From ANT to Pragmatism:
A Journey with Bruno Latour at the CSI
(『라투르와 인문학』(Latour and the Humanities, 2020) 2장)
앙투안 에니옹 (Antoine Hennion)
번역: 박동수
0) 서론
브뤼노 라투르와 나는 오랫동안 함께 여행한 동료였다. 우리의 동행은 파리 국립고등광업학교 산하 혁신사회학센터(CSI, Centre de Sociologie de l’Innovation)에서 오랜 기간 머문 시절부터 시작했고, 2010년 시앙스포에서 그가 설립한 정치예술 실험 프로그램(SPEAP, Experimental Programme in Political Arts)에 이르기까지 이어졌다. 후자의 프로그램에서 학생들은 환경 문제처럼 새롭게 떠오르는 쟁점들을 탐구하는 데서 출발해, 전통적 학문 분과들이 너무나 체계적으로 분리해놓은 정치적, 과학적, 예술적 재현들 사이의 연결 고리를 재구축해 나간다. 나는 인문학과 라투르의 『존재양식의 탐구』 사이의 가능한 관계들을 추상적으로 논하기보다는, 특히 CSI(혁신사회학센터)에서 실제로 이뤄진 교류들을 되짚으며 이러한 종류의 관계들을 다시 따라가 보려 한다. 이러한 연결들과 궤적들은 매우 다양했는데, (과학과 기술, 법, 문화, 경제, 건강 같은) 다양한 영역들 사이에서도 그러했고, (번역, 매개, 발화 체제, 행위성, 애착 같은) 다양한 개념들 사이에서도 그러했다. 『존재양식의 탐구』는 하나의 오랜 프로젝트의 정점이다. 이 프로젝트는 라투르와 스티브 울가가 실험실에 대해 수행한 첫 연구에서 시작해, 과학기술학(STS) 및 미셸 칼롱, 존 로와 함께 공동으로 발전시킨 행위자-연결망-이론(ANT)의 탄생에 이르며(그리고 곧이어 존 로와 존 해사드가 1999년에 『행위자 연결망 이론과 그 이후(Actor Network Theory and After)』를 통해 가한 그들 자신의 비판을 겪으며), 1991년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를 통해 화려하게 개시된 근대인에 대한 심문, 그리고 에밀 뒤르켐 없이 사회학을 다시 세워야 한다는 사회학자들에 대한 덜 외교적인 제안(『사회적인 것의 재조립』, 2005년)으로까지 이어진다. 『존재양식의 탐구』는 ANT의 성과를 총괄하는 동시에, ANT 방법론을 명시적으로 다원주의적이고 실용주의적인 방식으로 재정식화하려는 시도이며, 또한 ANT 방법론이 남긴 열린 질문들—그 자체의 급진주의를 잘 수행했기에 치러야 했던 대가—에 대한 응답이기도 하다. 아울러 『존재양식의 탐구』는 라투르와 현재 그의 주요 동료들, 특히 이자벨 스탱게르스를, 그녀가 차이의 철학자들(philosophers of difference)이라 부르는 이들의 길 위에 올려놓게 했음을 덧붙일 수 있을 것이다. 곧 가브리엘 타르드, 윌리엄 제임스,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 에티엔 수리오, 질 들뢰즈, 미셸 세르, 도나 해러웨이 등과 같은 길을 걷게 한 것이다.
나는 이 전체 여정을 “대상으로의 귀환(return to the object)”이라는 제목 아래 묶고자 한다. 이를 통해 라투르의 사유가 그러하듯, 항상 만들어지는 과정 중에 있는(in the process of making) 사유를 지탱하는 여러 실타래들을 풀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한편으로 과학과 기술의 문제들과 다른 한편으로 문화의 문제들 사이를 오가며, 내가 음악, 아마추어, 애착에 관해 수행해온 작업들이 상호적으로 얽힌 교류들에 기초하고 있다. 음악은 교차하는 매개들의 연결망이자, 사라져가는 대상을 만들어내는 생산이며, 예술가의 연주나 아마추어 활동을 통해 항상 다시 만들어지고 있다. ANT가 기술적 대상들을 다르게 볼 수 있게 해준 것처럼, 음악은 기술적 대상들과의 새로운 연결 경로를 열어주는 데 특히 풍부한 암시를 제공해왔다. 나는 이 글에서 역사적 개관을 시도하기보다는, 『존재양식의 탐구』에 대한 일종의 부분적 고고학을 수행하고자 한다. 그 출발점으로 삼을 것은 내가 특히 관심을 가져온 몇 가지 질문들이다. 말하자면 매개와 번역의 대비, 애착의 문제, 부르디외의 비판사회학에 대한 우리의 비판적 관계, 그리고 사회적 탐구 속에서 실용주의를 부활시키는 문제 같은 것들이다.

1) 연결망, 결합, 번역: 사회학을 대상-친화적으로 만들기
Networks, Association, Translation:
Getting Sociology to Be Object-Friendly
1970년대 말부터 CSI는 과학기술사회학 분야의 선구자로 알려지게 되었다. 여기에서 라투르와 그의 네덜란드 및 영국 동료들과 함께, 칼롱은 번역의 사회학(sociology of translation)을 창안했고, 이어서 행위자-연결망-이론(actor-network-theory)을 창안했다. 이 이론은 ANT라는 약어로 영어권 세계에서 급속히 퍼져나갔다. 데이비드 블루어의 스트롱 프로그램을 담은 『지식과 사회의 상』이 개시하고, 참이든 거짓이든 모든 진술을 동일한 조건 하에 다루어야 한다는 과제를 확립한 과학지식사회학(SSK, Sociology of Scientific Knowledge)의 뒤를 이어, ANT는 이 대칭성의 원칙(principle of symmetry)을 더욱 일반화할 수 있었다. 프로젝트가 기술적으로 성공하든 실패하든, 설명에 동원되는 요소가 사회적이든 기술적이든, 그리고 해명 책임을 지는 행위자가 인간이든 비인간이든 관계없이 그 모든 것을 대칭적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과학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방식을 더 잘 묘사하고 기술 혁신을 분석하기 위해 ANT는 일련의 개념들을 제안했다. 연결망(network), 결합(association), 관심끌기(intéressement), 번역(translation), 의무통과점(obligatory passage point) 등이 그것이다. 이 개념들은 대상과 관계 사이의 기존 구도를 급진적으로 뒤집는 결과를 가져왔다. 즉, 행위가 행위자를 만들고, 관심끌기가 관심을 만들며, 관계가 대상을 만드는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스스로를 급진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다소 수상쩍어 보이기 마련이지만, 실제로 이것은 ANT의 역사 일부이기도 하다. ANT는 논쟁적인 어조를 띤 채 매우 다양한 분야가 얽혀 있는 장 속으로 돌진해 등장했다. 사회학이 과학적이고 기술적인 대상을 고려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은 즉각적으로 긴장을 불러일으켰다—나는 이 긴장을 이 글의 핵심에 두려 한다. 처음에는 인식론자들처럼 과학과 기술의 자율성에 전념하는 이들과의 긴장이었고, 이어 곧, 우리가 우리 프로젝트를 더 잘 설명하게 되면서, 반대 방향에서도 긴장이 발생했다. 그것은 대상을 단순히 “사회적 구성물(social constructions)”로 환원하려는 이들과의 긴장이었다. 칼롱은 사회학자이자 공학자로서, 사회 안에서 과학의 위치를 재고하기 위해 민간 및 공공 연구의 정치를 연구했다. 그가 겨냥한 비판 대상은 머튼 학파의 과학사회학이었다. 한편, 철학을 전공한 라투르는 사회과학적 탐구를 수행하지 않고는 더 이상 철학을 할 수 없다고 확신했다. 그는 프랑수아즈 바스티드(Françoise Bastide)와 함께 작업하면서, 그의 번역 이론의 핵심이 되는 탈연동(shifter)과 행위소(actant)라는 개념을 그레마스의 기호학에서 차용했다. 철학(특히 라이프니츠, 타르드, 화이트헤드) 외에도, 라투르의 초기 참조 대상은 주로 인류학, 기술 및 문화의 민족학, 그리고 민속방법론(Aaron Cicourel, 울가, 마이클 린치)이었다. 그는 사회학보다는 오히려 인식론과 과학사와의 치열한 전투에 더 큰 열정을 쏟았다. 칼롱과 라투르의 협력에서 나타난 이론적 대담함은 바로 이러한 학제 간 참조의 상호보완성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
사회과학에서 대상으로의 귀환을 주장했던 것은 프랑스에서 우리만이 아니었다. 사회학의 여러 흐름들 가운데 실용적 전환(pragmatic turn)을 가장 먼저 시도한 이들이 있었는데, 이 전환은 이후 매우 다양한 해석과 활용을 낳았다. 대표적으로 뤽 볼탕스키(Luc Boltanski), 미하엘 폴라크(Michael Pollak), 로랑 테브노(Laurent Thévenot)가 창립한 정치도덕사회학 그룹(GSPM, Groupe de Sociologie Politique et Morale)이 있다. 이들은 “실용적 사회학(pragmatic sociology)”을 제안했다. 또 다른 예는 사회운동연구센터(CEMS, Centre d’Études des Mouvements Sociaux)였다. 이곳에서는 민속방법론, 대화 분석, 상황적 행위(situated action) 연구들이 독해되고 논의되었는데, 이는 부르디외 전통이 지나치게 빠르게 상징적 상호작용으로 환원해버린 미국 사회학 연구의 이론적 기반을 강화하려는 시도였다. 이 외에도 대상을 사회학의 중심 문제로 삼으려는 다양한 연구소들이 있었다. 이 모든 흐름이 막 태동하던 시기였다.
CSI에서는 각자의 다양한 연구 프로젝트를 넘어, 우리의 토론을 관통하는 문법적 수준, 즉 하이퍼텍스트적(hypertextual) 수준에서 긴밀히 연관된 사물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예를 들면, 결합(association)이라는 개념, 주체와 대상 사이를, 혹은 인간과 인간이 다루는 사물들 사이를 엄격하게 구분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 등이 그것이었다. 과학기술학(STS) 연구가 발전함에 따라, 연구 영역도 환경, 법, 건강, 신체, 공공 토론, 정치 등으로 확장되었다. 한편, CSI 또한 대상과 그것의 사용 간의 관계를 출발점으로 삼아 환경, 건강, 시장 같은 영역에 개입해 들어갔다. 그리고 행위성(agency)과 수행성(performativity) 같은 다른 주제들을 발전시키고, 발화 체제(regimes of enunciation), 존재양식(modes of existence), 애착(attachments), 배치(agencements), 틀 짓기와 흘러넘침(framing and overflowing)처럼 탐구 영역을 넘나드는 새로운 개념들을 개발하며, 사용자와 생산자, 문화와 기술, 정치와 경제 사이의 기존의 불안정했던 구분들을 갱신해 나갔다. 이런 맥락 속에서 내가 음악을 연구했다는 사실은 단순한 에피소드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이 아이디어들—대상들을 이질적 관계들의 조직 속에서 끊임없이 시험되고, 실험되고, 재구성되며 다른 대상들을 생산하는 임시적 결과로 보는 것, 내용과 지지체, 연결망과 행위자, 제품과 사용자를 명확히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은 기술 프로젝트뿐 아니라 음악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었다. 문화와 기술 간의 이러한 결합은, 인류학이 제시해온 고전적 아이디어를 재확인하는 것에 불과했다. 나는 음악사회학을 음악에 맞서서가 아니라 음악과 함께 수행하기 위해 CSI에 온 것이었다. 사회학이 대상에 부여하는 자리, 곧 “행위자들 자신”이 대상을 어떻게 정의하고 또 그 대상과 어떻게 애착을 맺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그 자리에 대한 질문과 관련해서, 이 음악적 우회로는 기술을 다룬 프로젝트들과 문화를 다룬 프로젝트들을, 그 상호 차용이나 차이를 항상 명확하게 드러내지 않더라도, 소급적으로 연결 지을 수 있게 해주었다.
2) 과학과 문화를 같은 방식으로 다룰 수 있을까?
Can Science and Culture Be Treated in the Same Way?
CSI가 과학기술학(STS) 분야에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되면서, CSI의 후원 아래 수행된 문화 관련 프로젝트들도 초기 기술 연구의 확장판이라는 인식이 생겨났다. 그러나 역사적으로는 오히려 그 반대 방향이었다. 1967년 뤼시앵 카르피크(Lucien Karpik)에 의해 센터가 설립될 때부터, 목표는 단순히 과학과 기술, 시장, 사용자들에 관심을 갖는 것만이 아니었다(광업학교에 위치한 특성상 자연스러운 주제들이었지만 말이다). 동시에 센터는 법과 문화 같은 여러 분야에도 비교적 관점에서 접근하고자 했다. 이때 관통했던 생각은 전통적 사회학의 틀 안에서는 당시 매우 새로운 것이었는데, 그것은 바로 내용이 중요하다(content counts)는 발상이었다. 과학, 기술, 문화, 혹은 법의 사회학을 다룰 때, 단순히 제도적 혹은 직업적 역사, 조직이나 사회적 연결망, 분야나 수용 같은 것들만 이야기하는 것—달리 말해, 사회학적 현실을 준거로 삼아 하나의 영역을 폐쇄시키고, 그 특정 대상을 고려함 없이 그 작동 방식만을 분석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활동의 결과물(fruits of the activity)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결코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을 깨닫는 것이 문제였다. 이것은 이미, 비록 당시에는 이런 생각이 보다 소박한 방식으로 표현되었지만, 그러한 결과물에도 행위를 위한 역량(capacity for action), 즉 행위성(agency)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방법이었다. 따라서 행위자, 조직 등에 대한 연구는 물론이거니와, 논쟁과 도전을 통해 점진적으로 한 영역을 만들어내는, 대개 매우 정교한, 특정한 조립체(assemblies)를 가진 대상들 자체에 대한 연구 역시 중요했다. 그리고 반대 방향에서, 이러한 집합적 행위의 대상들이 스스로의 효과를 내재화하여 상대적 자율성을 확립하는 능력을 통해 자신들의 행위자와 조직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했다. 그러므로 대상을 마치 전염병처럼 기피하는 대신, 사회학은 과학과 기술(혹은 법, 혹은 나에게는 음악)의 힘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이 대상들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용기를 가져야 했다. 대상들은 결코 사회적으로 무기력하지 않다. 대상들은 저항하고, “작동하며”, 사건을 만들어내고, 사용자들을 변형시킨다.
하지만 사물들은 항상 같은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그것은 과학과 기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지, 아니면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법과 문화는 인간이 만든 것, 로마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설립된(instituted)”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반면에 물리 법칙, 자연 법칙, 형식적 법칙이 사회적으로 구성된 실재라고 말하는 것은 즉각적인 충격을 준다. 과학기술학(STS) 논쟁에서는 이 논지가 구성주의적 입장으로 이해되었는데,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처음에는 실제로 그것은 증명 절차와 무관하게 존재하고 인식되는 절대적 진리라는 개념에 맞서는 구성주의적 투쟁이었다. 바로 이 시기에 CSI는 국제적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당시 지배적 사회학에 비추어 보면, 과학지식사회학(SSK)의 초기 구성주의—실패한 과학뿐 아니라 모든 과학을 사회적으로 설명하려 했던 시도—와 이후 STS의 구성주의(아직 각기 다른 버전들이 명확히 구별되지 않았던, 훗날 ANT도 이 안에 포함되게 된) 모두가 그 급진주의 때문에 공격을 받았고 상대주의라고 비난당했다.
이 점은, 당시 우리가 완전히 자각하고 있지는 못했지만, CSI 구성원들 사이에서 연구 분야에 따라 나타난 미묘한 차이를 설명해준다. 같은 프로젝트라 하더라도, 과학의 경우에는 객관적이라고 여겨지던 것을 보다 사회적으로 만들려는 시도로 나타난 반면, 문화의 경우에는 그와 정반대 방향으로 나아갔다. 즉, 사회학이 단순히 집단 간의 차별화의 표지나 사회적 기호로 환원해버린 것들에 대해 오히려 그 객관성[대상성]을 존중하려 했던 것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객관성은 미학적 절대성이나 순수 대상의 자율성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것은 대상(object)을 관계들의 매듭(knot of relations)으로, 즉 서로를 시험하고 더 강하거나 덜 강하게 저항하는 결합과 연결의 조직망(tissue of associations and links)으로 재정의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대상은 그것을 받아들인 집합체를 다시 변형시키는 존재다.
3) 번역 또는 매개
Translation or Mediation
요컨대, 우리가 사회적인 것의 자율성을 믿는 사회학—각각의 특정 대상을 해당 전문 과학 분야에 맡겨두고 그 사회적 측면만을 연구하는 사회학—으로부터 거리를 두려 했던 점에서는 공통되었다 하더라도, 이 관심사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표현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번역(translation)”이라는 말과 “매개(mediation)”라는 말 중 어느 쪽을 선호하는지가 갈리게 된 것이다. 이는 하나의 문제설정이 출현하는 과정을 잘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음악의 경우, 예술 작품은 인간적, 물질적, 신체적, 집단적 요소들이 얽힌 이질적인 조직망(heterogeneous tissue)으로 새롭게 구상되어야 했다. 즉, 키보드, 음향, 음계, 연주자의 몸, 특정한 공간과 시간 등이 가진 저항성과 누적 효과를 고려해야 했다. 음악이 사회학적 환원에 저항하는 점을 표현하되, 그것을 자율적 대상으로까지 신격화하지는 않으면서, 이러한 결합의 조직망들이 사회적 차이의 코드화 속에 용해되지 않고 “함께 짜여 있다(hang together)”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나는 “매개(mediation)”라는 단어를 전면에 내세웠다. 반면 과학과 기술 분야에는 번역(translation)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렸다. 두 단어 모두 어떤 종류의 배신을 필요로 한다는 점을 암시하지만, 번역은 특히 통과(passage)나 운동(movement), 즉 진리의 창설에는 연결, 작업, 시험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반면 매개는 음악에 더 적합한 단어다. 왜냐하면 비록 같은 일반적 아이디어를 지지하긴 하지만, 매개는 관계를 확립하는 것뿐만 아니라 관계를 중단시키고 관계를 넘쳐흐르게 만드는 다른 측면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어떤 통과는 대상을 전달하는 것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그것은 다른 무언가를 한다. 그것은 원인으로 거슬러 올라가 원인을 지시(refer)하는 것이 아니라, 인과적 요인들의 총합으로부터 도출될 수 없는, 예측 불가능한 효과들을 일으키는 하나의 수행(performance)이다.
우리는 과거를 되돌아보며 이 논의가 도전하고 있었던 기존 모델의 강력함과 그것이 사회과학 전반에 걸쳐 얼마나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는지를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인류학자들과 사회학자들에게 문화란, 인간들이 자신의 사회적 관계를 임의의 대상들에 집단적으로 투사한 것으로 정의되었다. 뒤르켐은 이 견해를 사회(society)에 대한 긍정적 정의를 통해 뒷받침했고, 부르디외는 이 생각을 전복시키면서 되풀이했다. 그는 이를 사회적 지배를 부정하는 근본적 메커니즘으로 전환시켰다. 즉, 문화적 대상들은 토템들(totems)이고, 코드에 속하는 순수 기호들이며, 게다가 그 자신이 기호임을 알지 못하는 것들이다. 우리는 이러한 상식적인 통념을 거부했다.
음악은, 그것을 둘러싼 인간들이 기대하거나 계획한 것과는 다른 일을 해낸다.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음악을 듣는 이유다. 음악은 인간들의 분신도 아니고, 인간들의 허영심을 비추는 거울도 아니다. 음악은 지금 이 방식대로 “만들어진(made)” 덕분에, 스스로 고유한 행위 능력(capacity to act)을 갖는다. 음악은 정체성과 감수성을 만들어낸다. 그것은 정체성과 감수성에 복종하지 않는다. 이런 의미에서 음악은 행위한다(fait oeuvre).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음악을 다시 사회적 기호로 환원하려는 것도, 그렇다고 절대적 대상으로 간주하려는 것도 아니다. 수리오는 “만들어져야 할 작품(work to be made)”이 우리를 부르고 있다고 아름답게 표현한 바 있다. 따라서 문화 쪽에서는 문제가 과학 쪽과는 완전히 정반대로 제기되었다. 사회과학자들의 눈에 과학은 절대적 진리의 지위를 의심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문화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대상은 모든 것이다(과학) 혹은 대상은 아무것도 아니다(음악)라는 생각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음악적 사물(musical thing)을 출현하는 무언가로, 하나의 현존으로 바라보되, 그것을 우리 눈앞에 고립시킬 수 있는 어떤 고정된 대상으로 보지 않음으로써, 매개(mediation)는 이 불모의 이원론을 깨뜨린다. 결합(association)과 통과(passages)를 강조함으로써, 번역(translation) 또한 디젤 엔진이든 수학적 진리이든 만질 수 없는 인상을 주는 대상을 다룰 때 똑같은 작업을 수행한다. 요컨대, 매개라는 단어는 그 시기에 내가 “우리의 하이퍼텍스트”라고 부른 것에 확실히 속한다. 그리고 매개는 번역과 많은 특성을 공유하지만, 사물들이 사회학에 제기하는 문제의 다른 측면을 다룬다. 즉, 사물들이 단지 결합된다는 것만이 아니라, 사물들이 결합을 멈추기도 한다는 것이다. 달리 말해, 우리는 같은 아이디어를 두 개의 반대되는 경사면 위에서 전개하고 있었다. 라투르는 인식론과 씨름하는 한편, 그와 동시에 과학이 실행해온 사물들의 특유한 규정 체제(regime of determination)를 “구제”하려 했다. 이로 인해 양쪽 진영 모두가 라투르를 적으로 삼을 수 있었다. 과학적 진리의 절대성을 믿는 이들은 그에게 분노했고, 과학을 그저 다른 이야기들 중 하나로 보는 “언어적 전회(linguistic turn)”의 구성주의자들은 그를 배신자로 간주했다. 예술이라는 주제와 관련하여 나는 이러한 싸움 속에서 나 자신을 발견했다. 사회학은 절대성의 미학과 대문자 W로 표기되는 작품(Work)의 자율성을 향한 무한한 탐구를 정당하게 문제 삼았지만, 나는 소문자 w로 표기되는 작품들(works) 안에서 그 작품들의 행위 능력을 인정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었다.
우리가 이러한 접합 지점들을 이해하고 서로 다른 단어들을 사용해야 할 필요성을 깨닫는 데는 시간이 좀 걸렸다. 라투르와 나는 두 편의 공동 논문을 통해 그렇게 했고, 그동안 라투르는 “팩티시(factishes)”에 관한 글을 쓰면서 같은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고 있었다. 우리는 매개 또는 번역에 대해 풍부한 정의를 만들어냈다. 이는 사물들이 사회학에 제기하는 문제를 다루기 위한 방법이었다. 즉, 사물들은 저항하는 것(이는 물론 흔한 비판적 입장이다)일 뿐만 아니라, 또한 넘어서는 것, 넘쳐흐르는 것, 되돌아오는 것이다. 우리가 만들어내는 대상들은 거꾸로 우리를 만들어낸다. 만들어진 것은 벗어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물들은 그들 고유의 행위성(agency), 그들 고유의 행위 능력(capacity to act)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첫 번째 논문에서 과학 분야와 예술 분야의 매개들을 비교한 뒤, 두 번째이자 더욱 도발적인 논문에서는 발터 벤야민이 예술 작품의 아우라 이론과 매개의 파괴적 효과를 중심에 놓고 전개했던 근대주의 비판을, 용어 하나하나를 전복하는 방식으로 재구성했다. 물론 벤야민에게서 얻을 수 있는 다른 아이디어들도 분명 많았지만, 당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매개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한 벤야민의 텍스트가 지닌 명성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 글의 성공 자체를, 근대라는 개념에 담긴 매혹(비판적이면서도 공모적인 매혹)의 증상으로 읽어내고자 했다.
4) 사물들의 재귀성: 우리는 정말로 구성주의자였을까?
The Reflexivity of Things: Were We Really Constructivists?
매개들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외부적 설명과 규칙에 따른 효과로 환원하는 분석 방식—사회학자는 자신의 관심사에 따라, 음악학자나 심리학자는 그들의 관심사에 따라 측정하려 드는 방식—으로부터 음악을 떼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매개들에는 명료하게 표로 정리할 수 없는 부분적이고 이질적인 원인들만이 존재한다. 이 원인들은 필연적이며, 이것들이 사물들을 출현시킨다. 이 조립된 원인들로부터 효과들은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분출하고, 항상 다시 만들어지며, 그 효과들 자체는 처음의 원인들로 환원될 수 없다. 물론 이것은 단순한 인과 관계로 사물들을 설명하는 것보다 훨씬 더 표현하기 어렵지만, 동시에 내가 여기서 말하는 것은 결코 난해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런 방식으로 이해되는 매개는, 피아노 앞에 앉은 어떤 음악가에게도 명백한 일이다. 그는 음계, 악보, 터치, 그리고 자신이 습득한 기술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 매개들로 시작하더라도 아무것도 확정되어 있지 않으며, 음악은 출현(emerge)되어야만 한다. 그 과정에는 자동적이거나 보장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덧붙이자면, 이런 경우에 종종 그렇듯, 이론은 여기서 오히려 상식(common sense)을 뒤따르는 입장이지, 그 반대는 아니다. 사물들의 흐름으로부터 벗겨져 나오는 놀라움이야말로 가장 일상적인 경험이다. 관객이든, 화가든, 축구 선수든, 술을 마시는 사람이든 모두 마찬가지다. 그것은 전문가와 아마추어 모두가 공유하는 경험이다.
익숙한 사물들의 짜임새(fabric)에서 벗어나는 작지만 결정적인 일탈(deviation)이 때로는 거대한 효과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러나 그 효과들은 사물들 자체가 스스로를 드러내는 방식 속에서 생겨난다. 마치 재즈 연주자가 같은 곡을 백 번 연주했는데도, 어느 순간 “잠깐만, 이번에는 이렇게 흘러가네.”라며 완전히 새로운 길을 밀어붙이는 것과 같다. 그는 그 길을 따라가고, 다시 시도하고 … 되돌아오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공간이 열린다. 이 “일어나게 함(bringing about)”이라는 문제는 어렵지만 매우 중요한 문제다. 이러한 창조적 제공(creative offering)에서 각각의 요소들은 어떤 몫을 담당하는가? 확실히 음악가는 다시 사물들을 수용하지만, 제공(offering)은 사물들이 어떤 식으로든 붙잡힐 가능성을 드러내는 운동 자체 안에서, 사물들의 밀고 나아감 안에서 비로소 실현된다. 나는 사물들이 그 자체로 가지는 재귀성(reflexivity), 즉 사물들이 단순히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내어주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고 제안한 바 있다.
여기에는 중요한 요소가 하나 있다. 바로 대상들 안에서 이러한 사물들의 “만들어짐(making)”을 인정하는 것이다. 즉, 그것들이 만들어졌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그것들이 스스로 고유한 만들어짐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만들어짐은 사물들을 돌보고 사물들과 대립하지 않는 방식 속에서 생겨난다. 다시 말해, 그것들이 제조되었다(fabricated)고 해서 그것들을 탈자연화하거나 해체하는 것이 아니다—이는 사회구성주의의 전혀 다른 목표에 속한다. 이러한 (사회구성주의로부터의) 이탈의 순간과 그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했다. 처음에는 이 주제가 혼란스러웠고, 질문 자체도 어렵고 오해를 부를 수 있는 여지가 많았다. 라투르는 우리가 이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다양한 해결책을 제안했다. 즉, 구성주의 자체와 사회구성주의를 구별하자, 구성주의(constructivism)가 아니라 구축주의(constructionism)라고 부르자, 또는 제조(fabrication)라는 말 대신에 이어서 자신이 고안한 “팩티시(factishes)”라는 말을 사용하자고 제안했다. 즉, 실증주의자들이 그를 공격할 때 사용하는 단단한 사실들(facts)조차, 그 이름이 스스로 증언하듯 “그래, 이건 만들어진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분명 실용주의(pragmatism)라는 단어 자체가, 우리가 실제로는 “사회적으로 구성된”이라는 의미에서의 구성주의자들이 전혀 아니었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사회적으로 구성된”이라는 표현은 그 사이 사회학 안에서 하나의 자동적 구호가 되어버린 상태였다. 물론 처음에는 모든 사회학적 작업이 넓은 의미에서 구성주의적이다. 어떤 대상을—그것이 예술이든, 종교든, 진리든, 도덕이든, 문화든 간에—다룰 때, 우리는 그것이 역사적이며,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 의존하고 있으며, 신체적 관행을 통해 전달되고, 맥락에 따라 달라지며, 일정한 절차와 관습에 기반하고 있으며, 제도에 의해 지탱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부르디외의 말처럼, 믿음이 어떻게 생산되는지를 믿는 자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사회학을 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어느 정도는 그 학문 고유의 구성주의를 함께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과학과 문화라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리는 진리 그 자체의 절대주의나 예술을 위한 예술의 아름다움을 반대하는 것이 문제인 한, 우리 자신의 것과는 매우 다른 사회학들과도 함께 길을 걸을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더 멀리 나아가면서, 같은 단어[구성주의]가 두 갈래의 상반된 길을 가리키고 있었다. 즉, 하나는 사물들이 구성된 것임을 보여주고 따라서 그것들이 아무것도 아님을 선언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사물들 자체가 이 문제들 속에서 고유한 역할을 한다고 인정하는 길이다. 우리는 두 번째 길을 따랐다. 그리고 먼저 우리 자신이 그 길을 이해해야 했고, 이어서 일반적으로 구성주의라고 이해되는 것—부르디외의 버전이든, 언어적 전회의 구성주의든, 과학지식사회학(SSK)이든, 과학기술학(STS)이나 문화연구의 좋은 부분이든—에서 우리의 입장이 어디서부터 급진적으로 갈라지는지를 이해시키는 작업을 해야 했다. 출발점은 같았지만, 길들은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물론 사물들은 고유한 본성을 지니고 있지 않다. 사회과학의 과제는 사물들의 창설(instauration) 과정을 보여주는 데 있다. 그러나 이 작업이 끝난 후에는 훨씬 더 어려운 다음 질문이 등장한다. 이것이 라투르가 그의 “팩티시(factishes)” 개념으로 훌륭하게 표현한 결정적인 분기점이다. 이러한 사물들의 제조(fabrication)를 사물들에 맞서서 수행해야 하는가, 아니면 사물들과 함께 수행해야 하는가? 사회과학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인간 행위와 대상의 행위성 사이의 구분, 사회적 해석과 자연적 실재 사이의 구분이라는 두 가지 근본적이고 불가침적인 구분을 유지하는 한, 사회과학은 이 새로운 영토의 문턱을 넘지 못한 채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구분이야말로 ANT가 도전했던 것이었다.
5) 부르디외를 넘어서?
Beyond Bourdieu?
나아가 문화 쪽에서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비판사회학(critical sociology), 특히 이 주제에 대한 모든 문제설정의 필수적인 배경에 대해 나 자신을 자리매김할 필요가 있었다. 이를테면, 당시 사회학을 실증주의적인 자기 개념화로부터 구출해내기 위해 대규모의 인류학화(anthropologization) 작업을 수행하고 있었던 부르디외와의 관계를 설정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1970년대 사회학이—그 글쓰기, 추론 방식, 심지어 개념들까지—가장 평범한 의미에서 기본적으로 실재론적(realist) 성격을 띠고 있었음을 종종 잊곤 한다. 하지만 그 실재론적 성격은 사회학의 생동감 넘치는 표현력이나 공적 삶 속에서의 정치적 중요성을 전혀 감소시키지 않았다—오히려 그것을 강화했다. 조직, 권력, 사회 계급, 상호작용—이 모든 것은 행위자들에게나 관찰자들에게나 “진짜로” 눈앞에 존재하는 것이었다. 부르디외 덕분에, 즉 문화에 대한 그의 철학적 관점, 재귀적인 글쓰기 스타일, 순환적인 문장 구성을 통한 그 특유의 논지 전개 방식, 실천, 능력, 장치에 대한 주목, 신체의 무게와 집단적이고 체화된 역사에 대한 주의가 사회학적 상식과는 대비되는 하나의 인류학적 부흥(anthropological revival)을 탄생시켰다. 예술이라는 주제의 경우, 작품과 감상자 사이의 이원론에 맞서 그는 예술 작품과 맺는 관계를 환영할 만한 방식으로 탈주체화(desubjectivation)했다. 즉, 집합적이고 제도화되며 체화된 관계로 재배치했다—오늘날 식으로 말하자면, 상황적(situated) 관계로 바꾼 것이다. 물론, 최종적으로는, 그리고 그가 옹호하던 과학적인 비판사회학의 맥락에 따라, 부르디외는 다시 고삐를 잡았다. 그는 방금 말에 태워 놓았던 대상을 다시 집단으로 되돌려 놓았고, 그것을 사회학자에게 다시 맡겼다—당신들의 대상은 겉보기와는 다르다. 그것은 당신들 관계의 숨겨진 작용이며, 바로 그 작용이 당신들의 공통된 믿음을 만들어낸다. 사회적인 것이란 결국 당신들이 설치하려 애쓰는 것이며, 동시에 그 설치를 스스로에게 숨기려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이다.
이것은 빛나는 동시에 파괴적인 명제다. 하지만 그 전제와 결과가 아무리 많이 논의되었어도, 내가 보기에는 하나의 중요한 점이 놓쳐졌다. 바로 이 명제는 앞서 말한 인류학화(anthropologization)에 의해 요청되는 것도 아니며, 그것으로부터 연역될 수도 없다는 점이다. 인류학화로부터 출발했다고 해서 굳이 대상을 사회학적으로 실격시키거나, 대상을 일루지오(illlusio, inlusionem)—즉 사회적인 것을 구성하는 이해관계—로 변환할 필요는 없었다. 분석의 초기에 관계망, 신체들, 장치들, 역사들 속에 다시 삽입되었던 대상은, 결과적으로 다시 토템(totem)으로 변해버린다. 이것은 일종의 마술적 속임수이자 손재주다. 사회학자는 자신이 행위자들 사이에서 묘사하고 있다고 믿는 것을 실은 스스로 창조해낸다. 그는 공통된 행위의 대상을 사라지게 하고, 대신 단지 사회적 집단의 무기력한 상징을 가져다 놓는다. 이 과정에서 그는 사회적인 것을 과학적 대상으로 바꿔놓고 그에 대한 연구를 자기 자신에게 귀속시킨다. 당시 CSI에서 수행된 작업—STS든, 문화, 건강, 시장 주제에 관한 것이든—을 설명하는 한 가지 방법은, 그것이 우리 활동들의 “실용화(pragmatization)”를, 부르디외가 역사, 제도, 아비투스, 신체, 장치, 성향에 도입하며 수행했던 인류학화를 고스란히 유지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부르디외는 이 모든 작업을 대상에 맞서서, 전통적이며 매우 이원론적인 절차 속에서 수행했다. 그는 자신이 대상을 믿는 자들이라고 믿었던 이들에 맞서 싸웠다. 반면 우리 자신의 프로젝트들은 대상들과 그에 애착을 맺은 행위자들을 존중하려 했다. 그것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나 “여전히…” 같은 식의 온건한 방식(“대상들도 어쨌든 일정한 자율성은 있다”)이 아니라, 오히려 어떠한 유보도 없이 이 일반적인 실용성(pragmatics)을 강조함으로써, 즉 대상들과 함께 연구를 수행함으로써 그렇게 했다. 부르디외가 신체, 집단, 장치에 대해 일관되게 했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그가 유독 대상에 대해서만 거부했던 것과 달리, 문제의 대상들을 다루어 보는 것은 어떨까? 대상들을, 형성 중에 있는 존재들, 열려 있고 저항하는 존재들, 서로를 상호적으로 만들어내며 자신들을 불러낸 주체들에게 재귀적으로 행위하는 존재들로 보는 것은 어떨까?
어쩌면 부르디외를 비판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가 수행한 작업을 받아들여 그것을 대상에도 또한 적용하는 것이 중요했는지도 모른다. 대상을 억압하는 데 이 작업을 사용하는 대신 말이다. 물론 이러한 절차는 모든 것을 거꾸로 뒤집는 결과를 낳는다. 동시대적 언어로 표현하자면, 이는 실천 이론(theory of practice)에서 진정한 실용주의(real pragmatism)로 넘어가는 것이다. 대상들은 우리가 만들어내고 동시에 우리를 만들어내는 고유한 행위성(agency)을 지닌다. 여기서 핵심은 대상에게 부여하는 지위에 있다. 이는 대상을 외부에 고정된 주어진 것으로 (과학의 경우라면 대상을 자연적 실재성으로, 문화의 경우라면 대상을 단순한 기호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대신, 대상을 불확정적으로 복합된 존재로, 시험과 시련을 거치며 매듭지어지거나 풀려나가는 연결들로 이루어진 존재로 보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대상들은 독특하고 복합적인 세계들을 창조해낸다. 물론 이는 대상을 “사회화”하는 것이지만, 그 내용을 비워버리는 방식은 아니다. 대상들은 채워지고 우리를 채우고, 다양하게 연결된 세계들을 형성하며, 층층이 겹쳐져 있고 우리와 층층이 겹쳐져 나간다—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분명히 길들이 갈라진다. 계속 나아가려면, 부르디외가 개척했던 길—대상을 괄호로 묶어버림으로써 결국 사회학을 막다른 골목으로 이끈 길—을 떠나야 한다. 대상들이 던지는 도전은, 그것들을 비난하거나 무턱대고 환영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떤 일을 일으키고 있는지를 묻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예술에 대한 사랑, 와인에 대한 사랑, 혹은 어떤 대상이나 실천에 대한 사랑을, 그것을 그저 다른 무언가를 은폐하는 것으로 환원하지 않고 진지하게 말할 수 있을까? 부르디외의 1966년 저작 『예술에 대한 사랑』을 읽었던 사람 중에서 정말로(actually) 이 책이 예술에 대한 사랑 자체를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한 사람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설마 작품 그 자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려는 건 아니겠지?” 그렇다면 미학으로 회귀하는 것이며, 행위자들의 말에 현혹되어 믿음에 빠지는 것이지, 그 메커니즘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게 된다. 그러나 바로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은, 그 예술에 대한 사랑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가 곧 보게 되겠지만, 그 대가로 요구되는 것은 실용주의(pragmatism)를 그 창립 원리들, 즉 프라그마타(pragmata), 사물들의 행위성(agency)으로 되돌려놓는 것이다. 단순히 비판사회학을 벗어나기 위한 명목으로 실용주의를 차용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들에게 부여된 좁은 무대를 근본적으로 재고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앞서 말했듯, 이렇게 이해된 실용주의는 결코 난해한 새로운 유행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사회과학에 본질적으로 필요한 유효성의 기준, 즉 상식(common sense)과 다시 연결되게 한다. 예술에서도, 과학과 기술에서도, 대상은 중요하다. 사회학자가 결여한 것은 어쩌면 사물 자체에 대한 존중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6) 어포던스, 상황적 행위, 확장된 마음: 실용주의를 향한 또 다른 길
Affordances, Situated Action, Extended Mind:
Another Opening Toward Pragmatism
당시 다른 전통들도 이러한 질문들을 재정식화하는 데 도움을 주었는데, 이번에는 행위 이론의 미국식 확장에서 비롯된 경로였다. 이 경로는 실용주의로부터 나왔으며, 결국 우리로 하여금 실용주의를 재발견하도록 이끌었다. 제임스 J. 깁슨(James J. Gibson), 돈 노먼(Don Norman), 에드윈 허친스(Edwin Hutchins), 루시 서치먼(Lucy Suchman)과 같은 이들은, 의도, 수단, 목적이라는 구조를 가진 도구적 행위 모델을 깨뜨리고, 대신 상황적 행위(situated action), 확장된 마음(extended mind), 분산된 인지(distributed cognition)라는 비전을 제시했다. 부르디외에 대한 우리의 경험과는 달리, 우리는 훈련 초기에 어포던스(affordances)—즉 사물이 새로운 사용을 향해 스스로 지향하면서도 여전히 그 가능성을 제시하는 성질—의 언어에 몰입한 적이 없었다. 상황적 행위 개념도 마찬가지였다. 루시 서치먼의 1987년 저서 『Plans and Situated Actions』는 우리에게 하나의 계시와 같았으며, 우리 프로젝트의 초점을 제대로 잡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마찬가지로, 에드윈 허친스의 1995년 저서 『Cognition in the Wild』 역시 우리를 놀라게 했다. 이 저작은 미국의 “기술사” 전통에서 나온 것으로, 전력망에 관한 토머스 휴즈(Thomas Hughes)의 1983년 저서 『Networks of Power』나 찬드라 무커지(Chandra Mukerji)와 같은 뛰어난 연구자들의 물질문화(material culture) 연구들과 함께 빛을 발했다. 허친스는 기술적 장치들과 그 연결고리를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조명했다. 이런 연구자들은 STS 전체, 그리고 특히 우리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여기서도 우리가 CSI에서 기술과 문화를 동시에 다루고 있었다는 사실은 큰 도움이 되었다. 아마추어들의 지식이 제기하는 질문들로 자연스럽게 건너갈 수 있었던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에밀리 고마르(Émilie Gomart)와 함께 쓴 논문에서, 아마추어 음악가들의 애착(attachments)과 고마르가 연구했던 마약 소비자들의 애착을 비교한 바 있다. 이 작업의 목적은, ANT의 한계와, 선형적이고 도구적 모델을 넘어서는 방식으로 행위(action)를 재배치하려 했던 지적 흐름들의 한계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데 있었다. 우리는 이러한 도전을 이어가고자 했지만, 여전히 그들 자신의 행위라는 틀 안에 머물러 있던 기존의 틀로부터 벗어나려 했다. 즉, 대상들의 능동적 역할을 인정하고, 능동/수동이라는 이원론 너머의 다른 형태의 행위성을 포착하고자 했던 것이다. 예컨대, 능동적 수동성(active passivity)의 여지를 찾거나, 음악가들과 마약 “아마추어들”의 경우처럼 스스로 수동적으로 되려는 행위를 인정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인과관계라는 틀로 돌아가는 대신, 칼롱이 1992년 시장 분석에서 사용했던 “애착(attachments)”이라는 단어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라투르는 인형 조종사와 인형(누가 누구를 조종하는가?)의 예시를 사용하여, <마팔다(Mafalda)> 만화 속 한 장면과 연결해, 흡연과 자유를 주제로 한 강력한 논문 속에서 그 개념을 활용하기도 했다.
이러한 미국적 우회로는 우리가 “실용-적(pragmat-ic)”이라는 단어가 지닌 다양한 의미를 보다 명확히 구분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오늘날 프랑스에는 자신을 “실용적”이라고 주장하지 않는 사회학자가 거의 없지만, 행위 이론(theory of action)으로서만 이해된 실용은 사실 진정한 실용-주의(pragmat-ist)라고 할 수 없다. 이 차이는 대상에 부여되는 지위를 살펴보면 뚜렷이 드러난다. 이 기준에 따르면, 예를 들어 허친스는 이미 윌리엄 제임스의 의미에서 철학적 실용주의를 직접 반향하고 있었다. 그는 배를 조종하는 작업을, 다양한 기계들—항법 장비에서 조타실 레이아웃, 수압, 무전기까지—이 모두 기여하는 집합적 작업으로 제시했다. 즉, 확장된 마음 개념을 실제로 활용한 것이다. 내가 제임스를 언급한 이유는, 실용주의의 창시자들 가운데에서도 이원론에 맞서는 싸움 속에서 프라그마타(pragmata)를 가장 진지하게 다룬 인물이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제임스는 대칭성의 원칙을, 그 명칭조차 붙기 전에, 가장 급진적인 방식으로 정식화했다. 인식하는 주체와 인식되어야 하는 세계 사이의 대칭성은 철학자로서 제임스가 직면했던 문제였지만, 그는 존재자들과 사물들에 대해서도 이러한 대칭성을 옹호했다. 나는 이 문제를 글의 마지막 부분에서 아마추어라는 예시를 통해 다시 다룰 것이다. 결국 실용주의(pragmatism)의 핵심에 있는 것은 프라그마타(pragmata)—사물-관계들, 복수적이고 확장된 사물-관계들—이지, 실천(practice)이 아니다. 실천은 인간 행위와 그 행위가 작용하는 사물 사이의 대분할(grand divide)에 대한 도전을 요구하지 않는다.
이런 맥락 속에서 제임스를 발견한 것은 우리를 경탄하게 만들었다. 예를 들어, 제임스는 사물과 그 효과를 구분하기를 거부한다. 그는 사물들과 그 관계들이 “같은 재료”로 이루어져 있다고 본다. 여기서 우리는 마치 누군가가 우리 연구의 핵심 주제 중 하나이자 가장 논쟁적인 주제 중 하나를 미리 써놓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실용주의라는 이 미국 철학은 그 절정기에 도달한 뒤, 심지어 미국 내에서도 경시를 당했고 분석철학에 의해 억눌렸다. 1980년대 프랑스에서 이 사상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받아들여진 것은, 시대 상황에 맞춰 대폭 다시 써낸 형태의 실용주의였다. 그것은 발화 화용론(enunciative pragmatics), 분석철학, 행위 이론을 뒤섞은 것으로, 실용주의 창시자들의 논의와는 거의 연결되지 않았다. 그러다 마침내 관심 있는 연구자들에 의해 지속된 논쟁들 덕분에, 이 공유된 틀은 새로운 방향을 지목하게 되었다. 즉, 다원주의, 외재성의 거부, 시험과 탐구, 공적 논쟁과 토론, 행위자들의 역량 같은 것들이다. CSI에서 우리를 특히 놀라게 했던 것은 제임스와 존 듀이의 명제들이 지닌 급진성이었다. 이 두 사람이 STS가 온 힘을 들여 연구하던 기술과 대상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한 바는 거의 없었지만, 마치 그들은 미리 예견이라도 한 듯이, 우리의 연구 아이디어와 놀랍도록 일치하는 세계관과 대상관을 제시했던 것이다. 즉, 대상들이란 프라그마타(pragmata), 즉 “그들의 복수성(plurality) 안에 있는” 사물들이고, 관심사(concerns)란 공적 토론을 거쳐 시험됨으로써 출현하는 이러한 공통된 사물들이며, 그리고 이 과정에서는 관련된 이해관계, 행위자, 토론의 장을 선험적으로 고정시켜 목록화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마치 듀이가 오늘날의 환경 문제, 개발 문제, 에너지 문제, 섹슈얼리티 문제를, 외부성 없는 세계 안에서, 그러나 다원적이고 열린, 이질적인 현실들이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제임스가 멋지게 표현했듯이, “여전히 만들어지는 과정 중에 있는(still in process of making)” 세계 안에서 이 모든 것을 다루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물론 그때 이미 모든 것이 말해져 있었다는 이 느낌은 어느 정도 착각일 수 있다. 하지만 제임스의 “다원우주(pluriverse)”가 제시하는 윤곽과, 특히 결합 개념과 일반적 대칭성 개념에 관한 ANT 존재론의 잠정적인 절합 사이에서 마치 기적적인 일치가 이루어진 듯한 인상을 주었던 것은 사실이다. 여기에 이번에는 듀이로부터 차용한 탐구(inquiry) 개념과 관심 있는 공중(concerned public) 개념만 추가하면, 우리는 우리의 STS 세계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결합(association), 매개(mediation), 시험(testing), 배치(agencement)로 이루어진 세계 속으로 말이다.
실용주의로의 이러한 귀환에는 과거로 후퇴하려는 태도는 전혀 없었다. 오히려 그것은 CSI의 우리 모두가 각자 다른 대상들을 다루면서도 공통적으로 찾고 있던 전환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즉, 실천 이론(theory of practice)에서 수많은 연결들에 걸쳐 분산된 행위성(agency)으로 넘어가는 전환 말이다. 더 이상 인간이 사물에 맞서서 어떤 것을 설립하는 식의 이원론적 작업을 하지 않고, 대신 라투르가 들뢰즈로부터 차용한 조립체(assemblages) 사이를 오가며 작업하게 되었다. 즉, “행위자-연결망(actor-network)” 안에 분산되어 있는 행위성 사이를 오가며 말이다. 행위자-연결망이라는 표현은 연결망 자체가 행위하고 있으며,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이분법적 대립을 넘어서, 서로 다른 성질을 지닌 행위자들이 서로를 형성해 간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이었다. 라투르가 말하듯, “사회적(socio-)”이라는 말은 본래 어원상 결합(association), 연결(link)을 의미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오직 관계들(relations)만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 “오직 존재한다”는 말은 비판적이고 사회학적인 방식(사실 이것들은 오직 사회적 관계들일 뿐이다)으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충만하고 존재론적인 방식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렇다, 사물들이란 그 자체로 관계들인 것이다. 이것이 실용주의가 가르쳐준 교훈이다.
7) 결론: 요구하는 대상들
Conclusion: Objects That Make Demands
그것이 대중가요든, 현대 미술 설치작품이든, 오페라 아리아든, 회화 작품이든, 일단 하나의 작품이 창조되고 나면, 그것은 창작자의 손을 벗어난다. 그것은 저항하고, 효과를 낳거나 낳지 않는다. 그리고 그 효과는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작품은 스스로의 삶을 살아간다. 바로 이 점이 애호가들(aficionados)을 그러한 대상들에 애착시키는 것이다. 대상은 고유한 현존을 지니며, 우리를 만들어냄으로써 스스로를 만들어낸다. 우리가 창조하고, 우리가 제작하며, 그러고도 우리를 벗어나 다시 변화된 모습으로 되돌아오는 작품들—이 관계는 얼마나 신비로운가!
아마추어들은 자신이 열정을 쏟는 대상들을 이처럼 중요한 결과를 낳는 방식으로 시험하는 데 있어 전문가들이다. 그들은 대상들과 대면하고, 시험하고 느끼기 위해 필요한 모든 일을 한다(프랑스어 éprouver는 “시험하다”와 “느끼다”라는 두 가지 의미를 모두 가진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이러한 대상들이 고유한 효과를 발휘하는 방식에 의해 끊임없이 도전을 받는 경험을 축적해 나간다. 그러므로 그들은 내가 앞서 말했던 전문가들이라기보다는 실험자들(experimenters)이다. 프랑스어에 그런 단어가 있다면, 에프루버(éprouveurs)라고 부르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나는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취향(taste)이라는 주제로 돌아가 결론을 맺고자 한다. 취향은 감상 행위 자체를 통해 출현하는 사물들에 대한 감상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연구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접근해야 할 하나의 경험이다.
아마추어들은 자신들의 믿음 속에 갇혀 그 환상에 빠져 있는 믿는 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의 취향이 어떤 조건 속에서 형성되었는지에 무관심한 사람들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가장 일상적인 경험은 의심과 희망의 경험이다. 아마추어들은, 반복되는 수많은 실망을 경험하면서, 작품이 나타나거나 감정이 일어나는 일이 결코 자동적이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사냥 중에 있다. 취향의 경험은 끊임없이 그들에게 그 기원을 되묻게 만든다. “이것은 내 환경 때문인가? 내 습관 때문인가? 일시적인 유행의 변덕일 뿐인가? 너무 손쉬운 어떤 절차에 내가 속아 넘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누군가의 영향력 아래 지나치게 놓여 있는 것은 아닐까? 혹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보게 만드는 어떤 투사(projection)의 장난감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이처럼 취향의 결정(determination of taste)에 대한 질문은 아마추어라는 주체가 형성되는 핵심 한가운데에 있다. 이는 사회학자가 마치 모두가 억압해온 진실을 새로이 발견하는 것처럼 말할 수 있는 종류의 일이 아니다. 아마추어만큼 자신의 열정의 대상이 지닌 열려 있고, 불확정적이며, 따라서 논쟁 가능하고, 다툴 수 있는(contestable) 성격을 깊이 느끼는 존재는 없다. De gustibus est disputandum.[취향에 관해서는 논쟁해야 한다.]
아마추어리즘(amateurism)이란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을 숭배하는 것이다. 그것은 무관심/무차별(indifference)의 두 가지 의미 모두와 정반대다. 그래서 나는 아마추어들을 실용주의의 작은 교사들로 여긴다. 아마추어들은 (그것을 진짜로 살아내기에) 누구보다도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즉, 과거의 경험을 통해 훈련된 신체와 타인의 기술과 취향에 지속적으로 의존하여 어떤 대상을 “구성(construct)”할 필요성과, 그 교차하는 경험들의 얽힘 속에서 대상이 등장할 때, 그것이 얼마든지 놀랍게 출현하거나, 벗어나거나, 전혀 다른 일을 해낼 수 있다는 사실 사이에는 어떠한 대립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말이다. 이 취약한 구성물에서 가장 작은 벽돌 하나라도 빠지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 그러나 아마추어들은 또한 수리오의 조각가처럼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즉, 대상은 “단지” 그것을 만든 사람들의 반영(reflection)일 뿐이라는 식으로 환원될 수 없으며, 오히려 그러한 구성이야말로 대상이 그 모든 이질성(alterity) 속에서 출현할 수 있는 조건 자체라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출현한 대상이 거꾸로 자신의 “구성자들(constructors)”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말이다. 아마추어의 열정(passion)은 어떤 고정된 상태나 완성이 아니다. 그것은 대상으로의 의도적 내맡김을 통해서 자기와 함께 출발하여 자기로부터 이탈하는(self-dislocating) 운동이다. 열정이라는 단어는 설사 그 장황함을 조심해야 한다고 하더라도 이 과정을 아름답게 표현해준다. 만약 그것이 옳은 단어라면, 그것은 열정이 우리가 사물들과 맺는 관계에 영혼이라는 보충물을 덧붙이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를 사로잡는(seize us) 사물들과 맺는 특유의 관계를 정확히 그 지방 고유의(autochthonous) 말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열정(passion)”을 수동성(passivity)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어떤 것이 당신을 사로잡으려면, 당신은 그것을 “당신 스스로 사랑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make yourself love)” 한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더 이상 숙련, 행위, 또는 행위 이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열정은 그런 식의 계산(calculation)이 아니다. 열정은 운반되고, 변형되고, 사로잡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수동적 표현들에도 불구하고, 열정은 결코 수동적이지 않다. 어떤 사물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그 사물을 만들어내는 작업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우리는 마치 스스로를 적극적으로 내맡기듯이, 사물들이 자기 길을 갈 수 있도록 모든 것을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고마르와 내가 함께 쓴 논문의 요지였다. 분명 낯선 문법 구성일 것이다. 그러나 이 문법 구성 자체가 규칙을 제시하고 있으며, “열정”이라는 단어가 가리키는 것도 바로 이것이다. 즉, 사로잡히는 것(to be taken), 혹은 사물들을 경험하는 일의 그 한가운데서 일어나는 무언가에 스스로가 사로잡히게끔 내맡기는 것 말이다. 이로써 우리는 아마추어들의 활동에서 또 하나의, 예상 밖의 측면을 발견하게 된다. 즉, 애정을 쏟는 사물들에 대해, 자기 자신에 대해, 진행 중인 경험의 질에 대해 지속적으로 헌신하는 의무(obligation)라는 윤리적 차원을 말이다. 취향에는 명백히 의무의 차원이 있다. 경로를 끝까지 따라갈 의무, 손을 내미는 대상에 응답할 의무, 대상의 고유한 성질이 요구하는 바에 부응할 의무. 수리오는 창조자들에게는 자신의 작품이 그들에게 요구하는 것을 반드시 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이 점을 아름답게 표현했다. 이것은 또한 자기 자신과 사물들에 대한 이러한 의무가 분명 사회과학자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윤리적 과제임을 뜻한다. 사회과학자가 아마추어들의 경험을 소중히 여기고 더 널리 알리고자 할 때 이러한 윤리적 과제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나 자신에게는 이것이 내가 취향의 사회학(sociology of taste)을 추구하게 만드는 중요한 동인이 되고 있다고 느껴진다. 대상은 단지 아마추어에게만 의무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다. 대상은 철학자나 사회학자에게도 똑같은 의무를 부여한다.
번역자의 글: 『라투르와 인문학』(Latour and the Humanities, 2020) 2장에 수록된 프랑스 사회학자 앙투안 에니옹(Antoine Hennion)의 글 「ANT에서 실용주의로: 혁신사회학센터(CSI)에서 브뤼노 라투르와 함께한 여정」의 전체 번역을 모아서 올린다. 주석은 반영하지 않았고, 강조는 원문 그대로다. 블로그에 나눠서 올린 번역문과 정확히 동일한 것이다.
노파심에서 말하자면, “ANT에서 실용주의로”라는 말은 ANT를 실용주의로 대체한다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ANT의 핵심이 실용주의의 창시자들이 추구했던 바와 일치한다는 것을 ANT 이론가들이 뒤늦게 깨달았다는 뜻이다. 실용주의와의 접속을 통해 ANT가 추구하는 바가 한층 더 명확해지고 다른 방향으로 확장될 수 있었다는 것이 주된 요지다.
동시에 이 글은 “혁신사회학센터(CSI)에서 브뤼노 라투르와 함께한 여정”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앙투안 에니옹은 1994년부터 2002년까지 혁신사회학센터의 소장을 맡았다(1982년부터 1994년까지 센터 소장을 역임한 사람이 바로 미셸 칼롱이다). 한국에는 그 활동의 면면이 잘 알려지지 않은 혁신사회학센터 내부 이야기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가진다.
또한 이전 글에서 쓴 것처럼, 에니옹은 라투르의 절친한 동료일 뿐 아니라, 지근거리에서 라투르의 사상을 재형성시킨 중요한 ‘매개자’ 중 한 명이다(애초에 ‘매개자’라는 용어를 ANT의 방식으로 재발명하고, 이를 라투르에게 전파한 사람이 바로 에니옹이다). 게다가 에니옹 자신이 이 글에서 보여주듯 음악과 아마추어 등에 대한 중요한 사회학적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이번에도 에니옹에 대한 자세한 소개는 뒤로 미뤄야 하겠지만, 다음과 같은 라투르의 말을 인용해 두겠다.
“앙투안에 대해 말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왜냐하면 그는 항상 나보다 성찰성의 수준에서 세 단계쯤 앞서 있기 때문이다. 아니, 나뿐만 아니라 누구보다도 말이다.” 브뤼노 라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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