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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 이후에 어떤 공산주의가?


에티엔 발리바르

번역 | 허은진

   [옮긴이] 지금 공개하는 번역문의 대본은 Etienne Balibar. 2000. 'Quel communisme après le communisme?'. Marx 2000. Collection Actuel Marx Confrontation. PUF.로, 두 해 전인 1998년에 『공산당 선언』 출간 150주년을 맞아 『악튀엘 맑스Actuel Marx』지(紙)가 조직한 ‘제2회 국제맑스대회’에서 발리바르가 발표한 글을 재수록한 것이다. 이 글은 이미 국내에 번역·출판된 바 있으나, 최근 발리바르가 전개하는 공산주의관의 기본 논점이 매우 체계적으로 제시되어 있는 초기 문헌이라는 점에서 이번 번역 기획의 취지를 잘 보여줄 수 있어 새롭게 번역하여 공개한다.


나는 서로 밀접하게 연관된 세 가지 이유에서 이 주제를 선택했다.

1. 예외가 몇 가지 있긴 하지만, 맑스를 다시 읽자는 제안들이 ‘공산주의’보다는 ‘사회주의’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회전한다는 느낌을 계속 받는다. 마치 맑스가 『공산[주의]당 선언』이 아니라 『사회[주의]당 선언』을 쓰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이로부터 나는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라는] 두 통념(notions)의 논리적이면서도 역사적인 절합이 주된 난점이라고 결론내렸다. 이 난점을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

2. [『선언』 출간 150] 주년을 기념한다는 취지로 청탁을 받은 것이기 때문에―여기에 일련의 기념일을 포개 놓을 수도 있을 것이다: 맑스가 탄생한 1818년을 기점으로, 동유럽에서 소비에트 체제의 마지막 위기가 시작된 1988~89년을 종점으로 잡고, 그 사이에 『선언』이 출간된 1848년, 1898년(엥겔스가 죽은 직후 시작된 최초의 거대한 ‘맑스주의의 위기’)―, 1918년, 1948년, 1968년 등을 배열하는 식으로) 나는 정확히 20년 전 베니스에서 『일 마니페스토』(Il Manifesto)지(紙)가 ‘혁명 이후 사회들에서 권력과 반대파’라는 주제로 반향이 없지 않았던 회합을 조직하였음을 상기시키려 한다.[각주:1] 그때 이미 [혁명 이후라는] 관념은 기정사실이었고, 문제는 이 관념에서 교훈을 도출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는 맑스주의의 쇄신이라는 가설과 양립불가능해 보이지 않았다. 그 전제는 맑스주의가 자신이 겪고 있는 위기의 원인과 양상을 철저히 사고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알튀세르가 특히 이런 생각, 또는 소원을 강력히 부각시켰다).

3. 하지만 맑스주의의 위기(실은 새로운 위기, 또는 최신의 위기)는 두 가지 명백한 사실로 귀착되는데, 이제는 그 결과를 전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한편으로 ‘자본주의의 대안’이라는 모든 관념은 (맑스주의의 사회주의적 공산주의로 제시된) 대안의 대안 역시 제조할 것을 전제한다. 다른 한편으로 맑스주의 자신과 그 위기를 낳은 역사의 ‘논리’를 해석하지 못하는 [맑스주의의] 구조적 무능력을 비판하지 않고서는 어떤 신-맑스주의 또는 포스트-맑스주의도 더 이상 생각할 수 없다. 바꿔 말하면, 맑스주의의 파국을 비판하지 않고서는 (반복이나 부인과는 구별되는) 포스트-맑스주의도 없다. 이는 『공산당 선언』이 발간되고 150년이 흐른 지금 그 분석과 논지를 활용하려는 모든 시도에 요청되는 절대적 조건이다.

무엇보다 [맑스주의의] 파국 때문에 우리는 공산주의 이념과 그에 본래적인 역사적 힘이라는 질문에 관한 진화주의적 관점을 전도하지 않을 수 없다(맑스는 진화주의적 관점을 ‘과학적’ 관점과 사실상 혼동했다). 19세기와 20세기 ‘맑스주의’의 중심에서 우리는 사회주의공산주의라는 통념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발견한다. 사실 맑스는 스스로를 ‘공산주의자’라고 명확히 선언하면서 당대의 ‘사회주의’와 거리를 두었다. 이는 우연일 수 없으나, (극히 다양한 유파로 나뉜) [사회주의라는] 용어는 불가항력적으로 맑스주의 안으로 되돌아와, 맑스주의와 분리할 수 없게 된다. 그때부터 사회주의는 잠재적 공산주의로 간주됨과 동시에, 공산주의는 사회주의의 귀결점이자 완성으로 생각되었다. 이 같은 목적론적 각운(脚韻, scansion)은 (여기서 유발된 범주와 양자택일 들, 가령 ‘최종목적’과 ‘운동’, 매개적 형태와 단계들, 연속성과 불연속성 등과 함께) 고전 맑스주의 전망 속에서 역사적 이행이라는 근본 관념과 일체를 이룰 따름이다.

이것이 공산주의가 역사의 목적이라는 관념과 일체를 이룰 수밖에 없는 한층 더 근원적인 이유는, 공산주의가 자본주의 및 사회적 생산성의 자본주의적 발전양식에 대한 사회주의적 대안에 내재한 ‘형태/형상’을 구성한다는 데 있다. 이는 역으로 자본주의 발전이 유토피아적이지 않은 ‘현실의 운동’으로서 공산주의가 역사 안에 출현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라는 뜻이다. 자본주의는 실제로 (노동자 인간의 생산성에 중심을 두는 완전한 의미의) 생산력들을 사회화하고, 이로써 첨점(尖點)으로 인도한다. 혹은 오히려 (더 변증법적인 이해/관념conception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노동력을 종속시키는 자본주의적 사회화와 노동력을 해방하는 대안적인 ‘사회주의적’ 사회화 간 경향들의 투쟁으로 끊임없이 인도한다. 이런 식으로 공산주의는 인간적 생산성과 생산력의 필연적 조직화로, 그리고 자본주의 생산양식에 원리상 대립하는(그리고 자본주의에 내재하는 모순을 해결하여 자신이 담지하는 사회화를 인간 개인들의 공동의 생활양식으로 격상시키는) ‘생산양식’으로 나타날 수 있게 된다.[각주:2]

이 핵심 관념에서 직접 도출되는 것이 ‘이행’ 과정―인류가 지배하는 역사를 불가항력적으로 지향하는 역사―의 주체와 대상으로서 ‘프롤레타리아화된’ 노동자라는 표상(이 표상에 루카치는 유례없이 강력한 표현을 부여했다), 따라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역사적 사명이라는 논지다. 그런데 이제부터 우리가 근본적으로 상대화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바로 이 관념이다. 우리가 볼 때 이러한 해체/탈구축은 맑스주의의 이론적 재구축뿐만 아니라, 일체의 이론적·정치적 활용 그 자체의 필요불가결한 조건이다.

여기서 ‘상대화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내 생각엔, 이 관념이 전적으로 ‘오류’라거나 그 의미작용을 상실했다는 뜻은 아니다. 그보다는 우선 다른 공산주의 형태들, 다른 공산주의관들이 존재하거나 존재했다는 뜻이다. 맑스적(‘사회주의적’, ‘프롤레타리아적’) 공산주의는 그 중 하나일 따름이다. 그리고 그 형태 자체는 규정된 역사적·사회적 조건들에 조응한다. 기성 지배 질서를 거부하는 운동에서 맑스적 공산주의의 ‘헤게모니’는, 비록 그 근거지와 영향력이 다양하긴 하지만, 19세기와 20세기의 일부 시기에만 유효할 뿐이다. 그리고 이 조건들 외부에서는 맑스주의가 서로 다른 이질적 요소들로 비가역적으로 분해될 운명이 아닌가 하는 질문이 당연히 제기된다.

따라서 나는 다음과 같은 관념을 주장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공산주의의 맑스적 형상이 유일한 진리(또는 그에 앞선 공산주의들의 진리이자 궁극적 형상)인지, 반대로 공산주의의 이전 형상들이 맑스주의에 의해 은폐·오인되었던 ‘본질’을 표상했던 것인지 결정할 수 있게 해 주는 어떤 (메타역사적이거나 메타구조적인) 선험적 기준도 없다. 우리는 ‘공산주의’라는 관념과 단어 자체의 근본적 다의성을 인정해야만 한다. 공산주의라는 용어가 반복되는 의미작용의 중핵, 예전에 혹자가 제안한 식으로 말하자면 하나의 ‘불변수’(un 'invariant')[각주:3]를 담고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면(이에 관해서는 후술할 것이다), 이 불변수가 끊임없는 변이들(variations) 밖에서는 존재하지 않으며, 이 변이들은 본질을 이루는 정치적·인간학적 특성들의 전도에까지 이를 수 있다는 점도 즉각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벤야민의 방식대로 ‘패자의 역사’로 상상하든, 네그리의 방식대로 각 시대의 근대성에 대한 ‘대안’의 역량으로 상상하든) 공식 역사의 이면, 지배와 국가의 이면으로 늘 새로운 조건들 안에서 존속하고 무궁무진하게 갱신되는 것으로 표상할 수 있는 공산주의는, 유일한 형태 아래 기입될 수 있고 고정된 본연의 실정적 내용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다른 정황 속에서 나는 동일성 없는 공산주의의 몇 가지 형상을 환기시키는 기회를 가진 바 있다.[각주:4]

1. 청빈형제회(fraticelli) 또는 급진 프란치스코파의 공산주의. 그 기반은 (긍정적 가치로 이해된, 또는 부정 긍정성으로 전도된 것으로 이해된) 가난이라는 통념[각주:5]과 (인간적 개인성의 한계 너머, 혹은 ‘인간주의’가 아닌 방식으로, 살아 있는 존재들의 ‘공동체’로 확장되는) 형제애라는 통념의 결합이다. 이 공산주의는 (로크와 스미스에게서 물려받은) 인간에 의한 자연의 전유(appropriation)의 인간학 일체를 전제하는 맑스의 유명한 정식에 따른 ‘수탈자들의 수탈’이 아니라, 인간의 탈고유화/탈소유(dé-propriation)를(또는 ‘고유성’(le propre)과 ‘소유’(la propriété)의 논리로부터의, 그리고 여기에서 유래하는 정체성/동일성으로부터의 해방을) 지향한다. 오늘날 이 같은 어조는 일부 생태주의자들, 더 철학적으로는 장 뤽 낭시(‘무위의 공동체’)와 데리다(cf. 『맑스의 유령들』과 일반적으로는 탈전유(exappropriation)의 ‘메시아적’ 주제)의 이론화에서 재발견된다.[각주:6]

2. ‘부르주아적’이라 부를 수 있는 공산주의. 여기서 부르주아지는 근대 도시들의 자유로운 시민이라는 뜻이기 때문에 경멸적 어감은 전혀 없다. 이는 시민 공동체 또는 조건들의 평등의 공산주의로, 평등은 공민적(civique) 자유 및 ‘공적 삶’의 전제이자 목적이다. 이 인간주의적 공산주의는 이탈리아 도시들의 하층민(popolo minuto)의 투쟁들에서 영국혁명 시기의 개간파(Diggers)와 수평파(Levellers)의 운동을 거쳐[각주:7] 고드윈(Godwin), 바뵈프(Babeuf), 블랑키(Blanqui)에 이르기까지 그 이념을 전개시켰고, 이 공산주의의 심원하게 정치적인 영감은 대의제 국가에 맞서 ‘영속혁명’을 이론화한 청년 맑스의 일부 저작에 담긴 급진 루소주의에서 여전히 쉽게 인지할 수 있다.[각주:8]

3. 사회주의적 혹은 ‘프롤레타리아적’ 공산주의. 이는 산업혁명 와중에 성립한 것으로, 1848년의 『선언』에서 맑스가 제출한 것은 이 공산주의의 이론화다. 이 새로운 갈래의 공산주의의 근본 이념은, 우리가 이미 본 것처럼, 노동력의 사용과 재생산으로까지 가치형태의 지배를 일반화하던 자본주의가, 기업의 수준과 함께 총괄적(global) 수준에서(경향적으로는 세계적(mondial) 수준에서. 이 점에서 맑스는 ‘세계화’를 이론화한 최초의 인물 중 하나다) 사회적 노동의 조직화로 귀착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본주의는 그 안에서 공동-의-존재(l'être-en-commun / Gemeinwesen)의 소외와 발전, 억압과 해방 사이의 적대가 구현되는 역사적 틀이 된다. 반면 공산주의는 생산물의 재전유 나아가 생산력 그 자체의 재전유로 사고되고, 생산의 상품적 사회화에 대한 대안이자 무의식적 조직화에서 의식적 조직화로의 이행으로 사고된다.

4. 그러므로 우리가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아마도 우리 주위에서 이미 돌발했을) ‘공산주의’의 또 다른 형태들을 해석할 수 있는가? 미래의 공산주의들이라기보다 생성 중인 공산주의들, (아마 그 독창성이 아직 지각될 수 없었기 때문에) 맑스가 지각하지 못했던 역사의 ‘대안적’ 측면들에서 돌발하는 공산주의들을 말이다.

이들을 식별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동일성 없는 불변수라는 관념에서 다시 출발해야만 하며, 맑스의 ‘공산주의’는 이 불변수의 여타 변이들 중 하나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모든 역사적 공산주의관은 개인주의와 사회화 간의 대립의 지양을 추구하는 것 같다고 말하고자 한다. 더 심오하게 말하자면, (형이상학적 추상일 뿐 아니라, 제도적인 역사적 현실이기도 한) 개인과 사회 간의 대립의 폐지를 시도하는 것 같다.

이상은 사실 맑스가 ― 『독일 이데올로기』에서부터 『요강』과 『자본』에서까지 ― 가장 집요하게 추구하던 것으로 보이는 관념이고, (당대 사회주의와 경제학에 대한 비판 작업 전체에서 유래한) 생산자연합 및 분업으로 분절된 노동력의 재결합에 관한 맑스의 정식화가 표현하는 동시에 숨기는 관념이다. 또한 맑스의 공산주의가 정치의 공간 안에서 안정적으로 자리잡는 데 결코 성공하지 못한 이유이기도 할 것인데, 맑스의 공산주의는 정치의 아래(en-deçà) 즉 ‘정치의 종언’을 표명하던 ‘사회혁명’ 쪽으로 거슬러 올라가거나, 정치의 피안(au-delà) 즉 ‘자유의 왕국’이라는 메타-정치 또는 윤리 쪽에 이르거나 했다.

여기서 공산주의라는 이름 자체에 기입되어 있는 공산주의 개념의 구성적 비대칭성과 대결해야 하는데, 이 비대칭성 속에서는 개(인)성과 공동체/공동성 간의 반정립의 지양이라는 관념이 말하자면 이미 ‘사회적인 것’, ‘공동의 것’에 유리하게 부정되어 있다. 공산주의가 공동체 이데올로기 가운데 하나라는 해석, 특히 근대의 경우 소유적·상품적 개인주의 및 ‘개(인)성의 추상’에 반발하는 반(反)개인주의적 낭만주의 전통에 속한 공동체 이데올로기라는 해석이 끊임없이 조장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각주:9] 이런 해석은 여전히 일정한 효과를 끼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맑스의 저작들을 특징짓는 사고의 운동이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임을, (어떤 분업도, 개인성의 어떤 ‘추상 과정’도 그것을 완전히 폐지할 수 없는바) 공동-의-존재나 관(貫)개체성의 요소, 공동체의 재천명에 머무르지 않는 방식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추상적’ 개인주의에 대한 이 같은 비판을 넘어, 공동-의-존재 자체가 필연적이게 만드는 개(인)성의 재구축에, 그 독특성의 무한한 발전에 이르는 것이 항상 중요하다. 따라서 공산주의일종의 개인주의이기도 하다는 점을 극한적으로 사고하는 것이 본질적이다(그리고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부정적 이해/관념, 즉 공산주의는 공산주의도 아니고, 개인주의도 아니며, 이들 이름은 규정된 하나의 맥락에 대한 추상들과 근사치들일 뿐이라는 이해/관념에 매여 있다).[각주:10]

따라서 이 문제적인 ‘불변수’가 앞서 암시한 공산주의의 상이한 형상들 속에서 실현되고 변형되는 방식을 탐구하기 위해서는 이 대목에서 더 정확한 조사를 시작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조사에 착수하지 않은 상태에서 내가 재차 말하고 싶은 점은, 탈고유화/탈소유에 기초한 프란치스코적 이해/관념이든, 급진적 평등자유(égaliberté)에 기초한 혁명적 이해/관념이든, 노동력의 사회적 재전유에 기초한 맑스적 이해/관념이든 간에, 이들 이해/관념 중 어떤 것도 문제를 전혀 해결하지 못했다고 단언할 이유는 전혀 없다는 것이다. 적어도 이들 이해/관념은 ‘개인’과 ‘공동성le commun’의 새로운 정의들에 입각한 끊임없는 재정식화를 통해 문제를 개방된 상태로 유지하였다. 잠정적인 결론을 내리기 위해, 나는 차라리 포스트-맑스적이거나 비-맑스적인 또 다른 공산주의라는 관념을 명확히 할 수 있는 몇 가지 논증 노선들을 환기하고 싶다.


아마 몇 가지 점을 재차 주의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생성 중인 공산주의들, 게다가 예상치 못한 공산주의들에 대해 말한다고 해서, 우리가 현재의 모순들 바깥에 자리잡는다거나, 자본주의의 동시대적 발전과 연관될 수 있는 투쟁 및 억압에 대한 저항 과정의 바깥에 자리잡는다는 뜻은 아니다. 그게 아니라, 이상을 기술하는 과정에서조차 우리가 이중의 질문을 개방된 상태로 유지하려고 노력한다는 뜻이다.

― 한편으로, 우리가 말하는 모순들이 임금 노동력에 대한 착취에 기초한 자본주의 생산양식 및 그 재생산 조건이 되는 ‘사회구성체’의 발전 단계의 산물이라고 사고될 수 있는 것은 어느 지점까지인가? 반대로 이 모순들이 (물론 자본주의의 본질적 메커니즘을 통합한) ‘포스트-자본주의’ 같은 것, 예컨대 상품/시장 경제의 포스트-자본주의적 단계 같은 것을 고려하도록 강제하는 것은 어느 대목에서인가?

― 다른 한편으로, 자본주의가 일반화한 시장의 지배에 대한 사회주의적 대안이라는 이념이 오늘날의 조건들 안에서 공산주의 운동의 전망을 열고 문제설정을 언표하는 데 적절한 것은 어느 지점까지인가?

이들 질문 때문에 우리는 공산주의 이념의 ‘다의성’이 정말로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 더 정확히 해야 한다. 각각의 역사적 이해/관념은 물론 하나하나가 독특한 발명으로, (삶, 정치적 발언, 노동과 생산…이라는) 인간적 경험에 뿌리내리는 새로운 지점으로 밝혀지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산주의’를 사고하고 실천하는 각각의 경험이 (필요한 경우 발본적으로 재정식화되기 위해) 후속하는 경험에 전하는 것을 무시한다면 부조리한 일이 될 것이다. 나는 이를 예증하기 위해 관건이 되는 논점 둘을 다룰 것인데, 국제주의인간학적 차이들이 그것이다.

‘포스트-맑스적인 공산주의’라는 질문이 오늘날 가장 직접적인 방식으로 제기되는 곳은 아마 국제주의일 것이다.[각주:11] 사실 국제주의는 맑스적 공산주의가 되고자 한 저 ‘반(反)-유토피아’의 가장 유토피아적 양상이었던 것 같다. 역사는 국제주의를 즉각 산산조각냈다(제1인터내셔널의 해산, 이어 유럽 프롤레타리아트를 반전(反戰)의 대오로 단결시키지 못한 제2인터내셔널의 무능, 마지막으로 ‘일국 사회주의’와 ‘사회주의 진영의 방어’라는 명목 하의 민족주의의 승리와 함께). 이들 사건에 비추어 보면, 조국이라는 관념에 대한 프롤레타리아트의 무관심과 국경을 넘는 그들의 자연스러운 연대를 거론한 『선언』의 유명한 구절들은, 최상의 경우에도 순진한 것으로 보이고, 오히려 역사의 현실적 ‘무대’에 영향을 미치는 힘들에 대한 깊은 오인의 증거로 보인다. 이 점에 관해 20세기 현실 공산주의의 역사는 민족주의와 인종주의에 맞선 대중투쟁의 조건들을 전혀 준비하거나 창출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정체성의 정념과 ‘인종 청소’의 악화된 형태들로 귀착하였다. 이제 우리는 자본주의와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의 야만뿐만 아니라, 사회주의의 야만 역시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곧바로 그 평판이 크게 손상된 이 국제주의는 맑스주의 운동에 속한 수많은 활동가들의 명예가 걸린 문제이자 ‘혁명적 의식’의 중핵으로 남게 되었고, 이런 식으로 반(反)파시즘 저항에서 반(反)식민주의를 거쳐 ‘혁명 안의 혁명’이나 사회주의 경험/실험 및 ‘현실 사회주의’의 역행에 대한 내부 비판 시도들의 중핵에 이르는 위대한 세기적 투쟁들에서 무시할 수 없는 역할을 수행했다. 나는 세계의 저항들과 해방운동들을 소통시킬 수 있거나 실천적 보편주의를 구축할 수 있는 어떤 역량 안에 (구체적인 개별 궤적들을 관통하여) 오늘날 국제주의가 영속하고, 이것이 오래 전의 공산주의관과 새로운 공산주의관 사이의 가교가 된다고 확신한다. 이 가설에 따라 우리는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의 관계라는 질문으로 즉각 돌아올 수 있게 된다.

이제 우리가 알게 된 것처럼, ‘자유로운’ 세계시장의 법칙들에 맞서 사회적 노동의 투쟁을 재결합하려는 사회주의적 전망이 강조해야만 하는 것이, 국민적 이해관계들(또는 더 일반적으로는 지역적 이해관계들)을 방어하는 것인가, 아니면 ‘세계 수준에서의 뉴딜’[각주:12]을 재발견하는 것인가, 즉 초국민적(supra-national) 수준에서 대항권력과 규제의 공적 심급을 구성하는 것인가 하는 질문에 분명한 답은 전혀 없다. 착취와 노동의 불안정성, 생활조건들의 파괴에 맞선 모든 저항 전략은 (아마 오랫동안) 해결할 수 없어 보이는 이 양자택일에 사로잡혀 있다. 그러나 일반적인, 그렇다고 해서 무시할 수 없는 확신 몇 가지는 진술할 수 있다.

경제의 불균등발전의 극단적 형태들, 그리고 이 형태들이 세계-경제 ‘중심부’의 생활 조건에 유발하는 반발력은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목적’이 없는 일반화된 폭력의 형태들을 수면 위에 드러내는데, 이 폭력은 도시의 불안정에서부터 다양한 유형의 ‘내부적·외부적’ 전쟁들[각주:13]을 거쳐 절멸적 인종주의에 이른다. 여기에서 은연 중 모습이 드러나는 공산주의는 무엇보다도 반(反)폭력이다(역사적인 의미가 충전되어 있는 ‘비(非)폭력’이라기보다. 계급투쟁을 ‘시민전쟁’[내전]이나 ‘사회전쟁’으로 표상하는 맑스주의 혁명 사상의 분명한 ‘군사주의’에 맞서 비폭력의 유산 일부를 상속받아야 한다 할지라도 말이다). 그것은 폭력에 맞선 저항 안에서의 연대, 그리고 세계사회의 ‘평화화’나 ‘문명화’ 형태들의 발명에서의 연대 말이다.

그러나 배타적 관계로서의 (국민적 정체성이든, 문화적 정체성이든, 심지어 계급적 정체성이든) 집단적 정체성 또는 소속감의 변혁이나 전변 없이는 어떤 연대도 생각할 수 없다. ‘공산주의’ 이념이 환기하는 공동-의-존재는 여기에서 명시적으로 경계/국경들(frontières)의 지양이나 경계/국경들 위에서 살아갈 수 있는 역량으로, 그리고 이를 위해 우선 개인들과 집단들에 대한 국가의 자의적/무제한적 권력을 표현하는 제도들로서 경계/국경들을 민주화할 수 있는 역량으로 나타난다. 그곳에 (『공산당 선언』이 모든 사회혁명의 정치적 선결조건으로 만든 바 있는) 저 ‘민주주의 쟁취’의 직접적으로 의미심장하고 결정적인 형태가 있다. 용어를 바꿔 말하면, 이 같은 국제주의의 재활성화와 구체화를 통해 공산주의는 사회주의적 변혁의 결과최종 목적으로서가 아니라, 노동의 자본주의적 조직화에 대한 사회주의적 대안들의 ‘객관적’이고 ‘주체적’인 조건으로 나타난다. 맑스가 제기한 질문들은 따라서 전혀 사라지지 않았고, 이 질문들에 영감을 준 이상들 역시 사라지지 않았으나, 이 질문들을 제기할 때 맑스를 규정한 역사적 전망은 사실상 전도되었다.

끝으로 나는 다른 질문을 하나 더 꺼낼 작정인데, 이 질문은 아주 구체적인 경험들에 결부되어 있긴 하지만 다소 사변적이다. 이는 내가 인간학적 차이들의 문제라고 불렀던 것이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이라는 맑스의 개념은 알다시피 사회적 관계의 계약적 형태가 작동하지 않으면 생각할 수 없는데, 이 형태는 개인에게 자기 자신의 재생산을 ‘관리’하는 책임을 떠넘긴다. 노동자들의 이 같은 형식적 자유의 조건들이 실제로는 심히 비대칭적이고 불평등하지만 말이다. 많은 측면에서 오늘날에 이르러 명백해진바, 노동자운동의 투쟁들은 세력관계를 재구성하는 역할을 넘어서지 못했던 것 같고, 이 역할이 없었다면 ‘정상적’ 자본주의, ‘중심부’ 자본주의에 필수불가결한 자유, 가장 고도의 사회화 및 생산성 형태들에 조응한 이 자유는 급속히 소멸했을 것 같다. 그렇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사회화’라는 문제의 항목들이 전복됨과 동시에, 노동력의 ‘개인적 자유’는 쇠퇴하기 시작했다.

이는 근본적으로 개(인)성이 ‘자기 자신의 몸’(corps propre)의 처분으로부터 (종종 극단적으로 폭력적인 형태들하에서) 분리되기 시작한다는 점과 관련되는데, (의식에 대한 특정한 관념과 소유권 일반에 대한 특정한 정치적 표상에 의해 연장되는)[각주:14] 고전적 개인의 경험은 이 ‘자기 자신의 몸’을 중심으로 조직되었다. 이 변혁을 네그리와 그의 동료들이 이미 얼마 전부터 강조한 바 있는데, 다만 그들은 사회적 노동의 지성화라는 현상을 특히 중시하였다. 사회적 노동의 지성화는 일반지성이나 ‘지적 담지자agent’라는 (『요강』에 등장하는) 맑스의 직관을 구현하는 것처럼 보이고, 노동의 ‘실질적 포섭’의 최고 단계이자 자본주의적 분업의 전도로 나타난다. 그들이 결국 이로부터 끌어낸 결론은, 집합노동자의 ‘의식화’를 통해 자본주의적 노동 조직화의 목적인으로서 공산주의가 도래한다는 진화주의적 맑스주의 해석을 강화한다.[각주:15]


이 같은 전망을 전적으로 부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개(인)성 전화의 또 다른 형태가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하는데, 이는 노동력의 공동체적 재결합이라는 견지에서 해석하기가 훨씬 어렵다. 어떤 이들이 ‘생명-정치’가 아니라 생명-경제라고 부르는 것이 그것인데, 이는 노동력이 아니라 생체 기관이나 인체 자체의 매매 과정을 뜻한다. 아직은 주변적이고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가장 ‘저발전된’ 지역에 주로 국한되어 있는[각주:16] 이런 관행은 실상 친자관계의 조작, 표준화된 인간 재생산, ‘적극적’ 우생학 등 가장 현대적인 생명공학기술들과 통한다. 이 같은 생명공학기술들은 자본주의가 요청하는 ‘자유’의 지위, 또는 원한다면, 권리에 의해 형식이 부여되고 (교육적, 문화적, 정치적) ‘사회화’ 과정 전체에 의해 강화되는 주체적 조건을 개(인)성으로부터 경향적으로 박탈하는데, 그 목적은 인간 존재의 객체성(심지어, 노예제 관행에 속하는 초객체성)이 드러나게 만드는 것으로, [인간 존재의 ‘(초)객체화’는] 인류의 유산과 소유를 ‘공유’하는 극단적으로 폭력적인 방식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같은 폭력들 안에서 근본적인 ‘인간학적 차이들’ 역시 노출되고 유동(流動)되는데, 맑스는 대다수 동시대인들과 마찬가지로 근대 자본주의와 ‘부르주아’ 시대가 인간학적 차이들에서 그 ‘낡은 면모’(archaïsme)를 제거하고 이 차이들에 최종적인 형상을 부여했다고 확신했다. 나는 성적 차이들, ‘영혼’(또는 정신적인 것)과 ‘육체’(혹은 신체적인 것) 사이에 행동들(comportements)과 역량들을 분배하는 문제와 관련된 문화적 차이들, 정상성과 일탈(또는 기괴함) 간의 차이들에 관해 말하고 싶다. 특히 성적 차이 및 성적 행동들 자체(게다가 심리학과 생리학에 기입된 성적 정체성들)의 사회적 지위에 의해 인간학적 차이들의 복합체 전체는 우리에게 점점 정치적 질문이 되었고, 동시에 정치적인 것을 그 한계로 인도했다.[각주:17] 여기서 가설적으로 드러나는 공산주의, 그리고 아마도 유토피아적(utopique)이라는 형용사보다는 (푸코가 제안한)[각주:18] 헤테로토피아적(hétérotopique)이라는 형용사가 어울리는 허다한 실천/관행들 속에서 이미 실천적/관행적으로 모색 중인 공산주의는, 맑스의 특히 사변적인 가설들에서 심히 멀리 떨어져 있다. 이 공산주의는 인간학적 차이들의 문명화이며, 차이들을 ‘공유하는 것’ 또는 인류라는 집단적 허구를 구성함에 있어 차이들의 기여를 ‘공유하는 것’[차이들이 함께 기여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설사 이 허구가 정상화의 조작을 받게 된다 하더라도).

여기에서 (상당수가 누락된) 세부 사항 전체를 다루려는 욕심은 접어둔 채 나는 이중적 이유에서 이상의 작업가설들을 제기하고자 했다. 첫째, 이들 가설이 맑스를 넘어선 공산주의를 재개한다는 관념을 구현하되, (맑스가 주어진 역사적·사회적 조건 속에서 일부 측면만을 논하긴 했지만, 분명 자기 저작의 중심에 위치시킨) 개(인)성과 공동체/공동성 간 대립의 ‘지양’이라는 인간학적 전망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둘째, 이들 가설이 초주체적이거나 초객체적인 ‘극단적 폭력’ 현상들[각주:19]이 떠오르고 심지어 일반화되는 상황에 준거하기 때문이며, 동시에 개인들과 관계들, 차이들의 다면체인 인류의 사회적 지위가 권력과 표상/대표의 구체적인 쟁점이 되기 때문이다.

이는 현대 ‘포스트-맑스주의’의 조류들 다수가 종말론적인 색조를 강하게 띠는 이유를 설명해 주는데, 이들 조류는 자신의 한계를 향해 나아가면서 맑스의 공산주의를 쇄신할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다고, 또는 ‘공산주의 이후의’ 또 다른 공산주의의 형상을 소묘하고자 애쓰고 있다고 일률적으로 가정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지향만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진화주의적인 실증주의와 종말론적 메시아주의(이것이 『맑스의 유령들』에서 데리다가 제안한 것처럼 ‘메시아주의 없는 메시아적인 것’이라고 할지라도) 사이에, 혹은 오히려 이런 양자택일 바깥에 제3의 가능성이 있다. 비극적 사고 혹은 비극적인 것에 대한 사고라는 가능성이 그것인데, 이는 고대 그리스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오랜 전통이 운명을 마주한 인간 행위에 고유한 것으로 만든 바로 그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약 12년 전에 로산나 로산다(Rossana Rossanda)가 쓴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에 대한 해설을 참조할 수 있을 것인데, 나로서는 다른 기회에 이 문제를 검토해 보고 싶다.[각주:20]




  1. Il Manifesto, Pouvoir et opposition dans les sociétés post-révolutionnaires, Editions du Seuil, 1978. [본문으로]
  2. (정치적 사용역과 철학적 사용역에 공히 속하는) 자유의 필연적 생성이라는 이 이념의 위대한 정식화를 맑스의 전 저작에 걸쳐 지켜보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각인의 발전이 만인의 발전의 조건이 된다”(『공산당 선언』); “사회적 존재 과정의 형세는 (…) 거기에서 자유롭게 사회화된 인간의 산물로서, 인간 자신의 의식적인 통제 아래 놓이고 숙고한 계획에 따른다. 그러나 그렇게 되려면 사회에는 다른 물질적 토대, 즉 일련의 물질적 존재 조건이 필요한데, 이는 그 자체 장구하고 고통에 찬 역사적 발전의 자연적 산물이다.”(Le Capital, Livre Premier, section 1. [국역: 강신준 옮김. 2008. 『자본 Ⅰ-1』. 143쪽(제1편 제1장 제4절 ‘상품의 물신적 성격과 그 비밀’). 번역은 수정.]) “그러나 자본주의적 생산은 자기 차례에서 (…) 그 자신의 부정을 낳는다. (…) 이 부정은 사적 소유가 아니라 (…) 자본주의 시대의 획득물[즉 협업과 토지 공유 및 본연의 노동에 의해 생산되는 생산수단의 공유] 자체에 기초한 개인적 소유를 재건한다.”(Le Capital. Livre Premier, Section VII. [국역: 강신준 옮김. 2008. 『자본 Ⅰ-2』(제7편 제24장 제7절 ‘자본주의적 축적의 역사적 경향’). 1022쪽. 번역은 약간 수정.] 여기에서 항상 강조되는 두 가지 관념은, 개인화/개성화(individualisation) 과정과 사회화 과정이 결국에는 동일하다는 것, 그리고 ‘육체노동과 지식노동의 분할’이 유적(類的) 인간의 두 생산적 기능의 통일로 역전된다는 것이다. [본문으로]
  3. cf. A. Badiou et F. Balmès, De l'idéologie, Maspero, 1976. [본문으로]
  4. E. Balibar. « L'Europe après le communisme», in Les Frontières de la démocratie, La Découverte. 1992. [국역: 진태원 옮김. 2010. 「공산주의 이후의 유럽」. 『우리, 유럽의 시민들?』. 후마니타스.] [본문으로]
  5. 정치적 주제로서 프란치스코적 가난에 관해서는 cf. Janet Coleman, 'Property and Poverty', in J. H. Burns, (ed.), The Cambridge History of Medieval Political Thought,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8. [본문으로]
  6. Jacques Derrida, Les Spectres de Marx, Galilée, 1993 [국역: 진태원 옮김. 2014. 『마르크스의 유령들』. 그린비.]; ; Jean-Luc Nancy, La Communaté désoeuvrée, Paris, 1986. [국역: 박준상 옮김. 2010. 『무위의 공동체』. 인간사랑] [본문으로]
  7. 그 위대한 이론가는 윈스탠리(Winstanley)다. cf. Christopher Hill, The World Turned Upside Down: Radical Ideas during the English Revolution, Penguin, 1975. [본문으로]
  8. cf. Miguel Abensour, La Démocratie contre l'Etat: Marx et le moment machiavélien, PUF, 1997. [본문으로]
  9. 낭만주의 일반 및 근대 공산주의가 낭만주의에서 점하는 자리에 관해서는 cf. M. Löwy et R. Sayre, Révolte et mélancolie: Le romantisme à contre-courant de la modernité, Payot, 1992. [본문으로]
  10. ‘이름’의 문제는 그러나 결코 완전히 제거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지양’에 공동성 편에서 접근하는 것과 독특성 편에서 접근하는 것은 결코 등가일 수 없을 것이다. 이는 알다시피 맑스의 담론과 (어떤 면에서는 니체를 예고하는) 슈티르너의 담론이 이데올로기적으로 양립불가능한 이유 중 하나다. [본문으로]
  11. 이 논점에 관한 적절성을 높이 평가해야 하는 상기(上記) 저작 『맑스의 유령들』에서, 데리다가 ‘새로운 국제주의’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맑스의 ‘경계 위에서의 삶’(survie)이나 ‘귀환’에 관한 논의를 집중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본문으로]
  12. Suzanne de Brunhoff, L'Heure du marché: Critique du libéralisme, PUF, 1986. 상반된 관점의 대강은 이매뉴얼 월러스틴이 발전시켰다. cf. 특히 Immanuel Wallerstein, Impenser la science sociale. Pour sortir du ⅩⅨe siècle, PUF, 1991. [국역: 성백용. 1994. 『사회과학으로부터의 탈피』. 창작과비평사.] [본문으로]
  13. 이를 엔젠스베르거는 ‘분자전쟁’이라 불렀다. cf. Hans-Magnus Enzensberger, La Grand migration, suive de Vues sur la guerre civile, tr. fr. Gallimard, 1995. [본문으로]
  14. 홉스와 로크로부터 당대 사회주의에 이르는 ‘소유/고유성’ 범주의 정치적 의미에 관해서는 cf. C. B. MacPherson의 작업들, 특히 Democratic Theory: Essays in Retrieval, Clarendon Press, 1973. [본문으로]
  15. cf. A. Negri and M. Hardt, Labor of Dionysus: A Critique of the State-Form, University of Minnesota, 1994. [본문으로]
  16. 하지만 그 중에서 ‘대리모’라고 일컬어지는 인공출산기술은 예외다. [본문으로]
  17. 로베르토 에스포지토(Roberto Esposito)가 ‘비(非)정치’(impolitique)라 부른 것, 또는 정치적인 것의 심장부에서 정치적인 것 자신의 한계들의 돌발(그리고 정치적인 것을 다시 문제삼는 것)에 접근하는 길 중 하나로는, cf. Roberto Esposito, Nove pensieri sulla politica, Il Mulino, Bologna, 1993. [본문으로]
  18. M. Foucault, "Des espaces autres", in Dits et Ecrits, Vol Ⅳ, Gallimard, 1994. [국역: 이상길 옮김. 2014. 『헤테로토피아』. 문학과지성사.] [본문으로]
  19. 이런 용어상의 구별에 관해서는 cf. 1996년 어바인대학 웰렉도서관 강연 Extreme Violence and the Problem of Civility, 근간, Columbia University Press. [Etienne Balibar, 2010. Violence et civilité: Wellek Library Lectures et autres essais de philosophie politique. Editions Galilée / 일부 국역: 진태원 옮김. 2012. 『폭력과 시민다움』. 난장.) [본문으로]
  20. Sofocle, Antigone, Con un saggio di Rossana Rossanda, Trad. L. Biondetti, Feltrinelli, Milano 1987.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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