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주의의 현재성에 관한 몇 가지 언급
에티엔 발리바르
번역: 배세진 | 파리 7대학 ‘사회학 및 정치철학’ 학과 박사과정
[옮긴이]
이 텍스트는 잡지 Actuel Marx, 2010/2 n.48, pp. 33~45에 실린 “Remarques de circonstance sur le communisme”을 옮긴 것이다. 우선 정식으로 번역과 게재를 허락해 주신 발리바르에게 감사드린다. 그리고 본문에 나오는 프라일리그라트의 독일어 시를 번역해주셨을 뿐만 아니라, 독해가 까다로운 본 논문의 전반부 전체를 꼼꼼히 읽고 문장을 전부 자연스럽게 바꾸어주신 진태원 교수님, 그리고 마지막까지 교정을 맡아주셨을 뿐만 아니라 ‘대항-인민주의’에 대한 각주를 사실상 작성하고 번역해주신 장진범 선생님, 부족한 번역에 대한 제언을 해주신 서관모 교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하지만 당연히 모든 오역과 이해하기 힘든 문장은 역자의 책임이다. 역자의 생각에 이 텍스트는 (1) 「마르크스의 “두 가지 발견”」, (2) 「상품의 사회계약과 화폐의 마르크스적 구성: 화폐의 보편성이라는 문제에 관하여」(발리바르의 논문 모음집 『시민주체』에 수록되어 있음)와 (3) 「수탈자의 수탈에 관하여」(이는 아직 프랑스어로 미출간된 텍스트인데, 발리바르는 고맙게도 이 텍스트를 역자에게 보내주었다), (4) 「미셸 푸코의 반-마르크스」와 함께 묶이는 텍스트이다. 독자들은 본 논문의 독해를 위해 이 논문들 또한 참조하길 바란다.
역사적 공산주의이든 현재적 공산주의이든, “공산주의”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는 데 있어, 발화 내적인(illocutoires) 두 가지 상황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공산주의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표명하는 이(필요한 경우에는 그 발언을 스스로 곧바로 기록하는 이)가 공산주의라는 용어의 지시체에 내재해 있는 상황[곧 공산주의자인 사람이 공산주의에 대해 발언하는 상황]이든가 아니면 공산주의라는 용어의 지시체에 외재해 있는 상황[곧 공산주의자가 아닌 사람이 공산주의에 대해 발언하는 상황]이 그것이다. 우리는 이 상황들 각각이 현실에 있어서는 굉장히 복잡하고 분열되어 있으며 (종종 거부당한다고까지는 말하지 않더라도) 갈등적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 “지금 당신에게 말하고 있는 이가 한 명의 공산주의자다”라고 말하거나 또는 “나는 (공산주의에 관해서) 공산주의자로서 당신에게 말하겠다”라고 지금 여기에서 말하는 것은 오히려 쉽다(하지만 이것이 어디에서나 이렇게 항상 쉬웠던 것은 아니다). 일견, 이는 공산주의라는 용어를 정의하는 문제에 비장한 차원을 부여하면서 또는 [공산주의자가 현존한다는 것을 공산주의자 스스로] 증명하려는 의도를 부여하면서(하지만 이러한 의도는 깊은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곧 공산주의자들과 비(non)공산주의자들 ― 나는 “반”(反)공산주의자들이라고는 말하지 않겠다 - 중에서 오늘날 과연 누가 공산주의에 대한 정의 내지 분석을 제시하는 데 더 나은 위치에 있는 것인가?) 이 용어의 정의에 대한 질문을 살짝 유예시킬 뿐인 것처럼 보일 것이다. 공산주의에 대한 [공산주의자의] 자기지시가 어떠한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먼저 “공산주의란 무엇인가?”(또는 어떠한 종류의 공산주의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해 내야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실은 (최소한 니체 이후 우리가 알다시피) “누구”라는 질문과 “무엇”이라는 질문은 심원하게 서로 다른 함의들을 지니고 있다. 만일 내가 “공산주의자들은 누구인가”라고 묻는 것으로 시작한다면, 나는 공산주의의 이름으로 또는 아마도 공산주의라는 이름을 대체하기에 적절한 것으로 나타날 수 있는 다른 이름들 아래 공산주의자로서 행동하고 사고하는 공산주의자들(des communistes)이 있는(그리고 있었던) 곳에서만(그것이 어디이든 상관없이) 실천 또는 이념으로서의 공산주의들(du communisme)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미 공산주의들(du communisme)을 보았는데(그리고 아마도 여전히 보고 있는 것일 텐데), 그러나 이는 우리가 모든 공산주의(tout le communisme)를, 공산주의의 모든 것(tout du communisme)을 보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으며, 이 공산주의라는 용어가 역사적인 적합성을 보존할 것인지, [만일 지금 그렇지 않다면] 앞으로 다시 보존하게 될 것인지를 파악하는 문제 또한 전혀 해결해주지 않는다. 반면 두 번째 가설로, 만일 내가 “공산주의란 무엇인가?”를 묻는 것으로 시작한다면, 상호 배타적인 두 가지 가능성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첫 번째로, 공산주의는 우리가 재앙과 같았던 것이라고 지금 평가하는, 또는 우리가 그 과거에 대한 향수를 지니고 있는 [소련이나 중국이라는 이름의 현실 사회주의라는] 형태 하에서 존재했다는 가능성(여기에서 공산주의자들은 이 시스템 내에 자신이 속해 있다고 생각하는, 또는 이 시스템을 옹호했던 사람들이다), 또는 두 번째로, 공산주의는 이 공산주의라는 개념에 합치하는 형태로는 아직 존재한 적이 없었다는 가능성(여기에서 공산주의자들은 공산주의를 꿈꾸거나 그 도래를 준비하기 위해 노력하는, 그리고 아마도 자기 자신들의 “공산주의적 인간”으로의 변형을 준비하는 사람들이다) 말이다.
따라서 나는 여기에서 나 자신을 다른 공산주의자들 중 “한 명의 공산주의자”로 제시함으로써 “무엇”이라는 질문에 대한 “누구”라는 질문의 우위를 나타내고 싶은데, 이는 결론에서 다시 다룰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정세의 이유들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공산주의라는 용어에 포함된 불확실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리고 이 공산주의라는 용어의 불확실성을 나 자신의 정체성과 관련된 불확실성을 통해 더욱 배가시키기 위해서이다. 이름이라는 것은 분명 인지[인정]의 기호로 기능한다. 공산주의에 대한 몇몇 오래된 증오의 감정들은 수그러들었고, 이제 우리는 이 감정들을 젊은 시절의 기억이 상기시키는 연민의 정으로 바라보게 된다(한 번 더 강조하자면, 굳이 유럽 대륙 바깥으로 나가지 않더라도, 이러한 사태가 어디에서나 동일하지는 않을 것이다). 혹은 이 증오의 감정들은 재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인정(reconnaissance)은 오인(méconnaissance, 불인정)의 단순한 이면일 뿐인 것 아닐까? 확실한 것은 오늘날 공산주의에 대해 말함에 있어 우리는 “전”(前)공산주의자들이자 동시에 “미래의” 공산주의자들이라는 점, 그리고 과거는 단번에 정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프랑스에서는, 용어의 제도적인 의미에서 ‘공산당’에 소속되었던(더욱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소속되어 있는) 이들과, 자신들이 보기에 전통적인 권력 장치인 것에(비록 이 권력이 종속적이거나 반응적인 권력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이 경우 공산당은 국가와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고 국가를 모방하는 것에 만족했다) 반대하는(그리고 반대했던) 이들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분할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이분법 자체 내에서 그 무엇도 정말이지 단순하지는 않다. 왜냐하면 우리는 [루이 알튀세르와 같이] “당 내부에서” 반대할 수도 있었기 때문인데, 이는 아마도 당에 대한 반대를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또한 공산당에 반대하는 대안적인 집단들이 당의 대체물, 축소된 모델들, 모방적 이미지들로서 등장하거나, 제일 나은 경우는 공산당의 역사적 “진실”의 이상적 재탄생으로 나타나기도 했기 때문인데, 이들은 혁명이라는 관념 자체 내에 함축된 대립항들(조직과 자생성이라는 대립항 또는 이론으로 무장한 지도와 투쟁의 자주성autogestion이라는 대립항)을 통일하는 “변증법”적 시도, 즉 “당이 아닌 당”을 건설하려는 희망에 종종 기초를 두고 있지만, “국가가 아닌 국가”에 관한 레닌주의 이론의 아포리아와 동일한 아포리아에 똑같이 노출되어 있다. 그러니까 이 대안적 집단들이 완전히 “외부적”이지는 않았던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나는 공산주의라는 이름이 짊어지고 있는 과거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이러한 딜레마들을 선험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수단을 전혀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정반대로 나는 이 공산주의라는 이름이, 최악의 것 또는 우스꽝스러운 것을 포함하여, 이 이름을 표방했던 모든 것을 포함한다는 테제를 지지[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름, 관념, 유령
나는 방금 공산주의라는 “이름”과 그 모순적 유효범위(portée)에 대해 말했다. 이 유효범위는 또한 하나의 이름이 하나의 개념의 지표로서(개념 대신에, 바디우가 최근에 제안한 “이념” 또는 “가설”이라 말해도 될 것이다), 또는 유령에 대한, 이중의 의미의 “푸닥거리”(conjuration)로서 기능한다는 점과도 관련된다. ‘유령’이란 『공산주의자 선언』에서 마르크스가 사용하였고 최근에 데리다가 다시 취한 표현인데, 이것은 “늙은 두더지”와 같은 또 다른 종말론적인 은유들과 관련지을 수 있을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용어들의 다소간 겹쳐진 사용법들을 검토함으로써(그러나 이 용어들이 기입되어 있는 차원들은 이질적이다), 우리는 “공산주의”가 부유하는 기표가 되었으며, 이 기표는 이러한 인식론적이면서 또한 정치적인 차이의 진폭 전체에 걸쳐 끊임없이 진동한다는 점을 이해하게 된다. 우선 우리는 ‘공통적인 것’과 ‘공산주의’에 관해 현재 새롭게 전개되는 토론에 대응하여 공산주의라는 이름에 대한 비판적 역사를 구성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주장을 도출해낼 것이다. 이러한 비판적 역사는 계보학과 동시에 고고학의 형태를 띠어야 할 것이다. 곧 이 역사는 공통적인 것과 공산주의라는 두 용어를 결합시키는 ‘기표 연쇄’(그리고 더 일반적으로는 공동체적인 것을 “특수주의적인” 전통적 공동체들 내에 존재하는 그 근원으로부터 뽑아내어 근대적, 국가적, 상품적 개인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형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명제들 전체)의 유래와 동시에 담론적 형세 내에서 차지하는 위치(특히 “공산주의”와 “공산주의자”가 정치적 기표가 되는 순간에 차지하는 위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의미한다. 이러한 의미에 있어서의 중요한 작업들이 이미 존재하지만, 이 작업들은 부분적이고 몇몇 언어에 국한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작업들은 오늘날 나에게 매우 놀라운 것으로 보이는 현상, 즉 1917년 10월 혁명으로부터 탄생하여 1980년대 말까지 존재했던 체제들의 전반적인 붕괴가 ‘진화주의적’ 테제를 종식시켰다는 현상을 더욱 명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작업들이다. 이때의 진화주의적 테제란, 마르크스주의적 공산주의를 공산주의적 이념의 발전의 최종 형태로 만들고(왜냐하면 “절대적인” 하나의 혁명적 계급의 출현에 기초한 마르크스주의적 공산주의는 “과학적”이기 때문에 등등) 동시에 이 이념의 다른 형태들은 마르크스주의적 공산주의에 대한 선취이거나 아니면 모순적인 실현태인 것으로 나타나게 만들었던 테제를 가리킨다. 더 이상 다른 체제들에 대한 “공산주의”의 역사적 또는 정치적 우월함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몇 년 전에 공산주의라는 관념이 의식에 출몰하기 위해, 그리고 또한 이 공산주의라는 관념이 과거의 서로 다른 담론구성체들을 각각 분리시키거나 다양한 조합들로 다시 작동시키면서 동시대의 정치적 논쟁에 출몰하기 위해 [공산주의라는 체제의 붕괴 이후] 유령의 상태로 “되돌아온다”(revient)는 식의 계보학적인 소묘를 제시했던 것이다. “사회주의적” 공산주의와 “프롤레타리아적” 공산주의 -마르크스와 그의 후계자들은 이에 대한 체계적인 정식화(분명 이는 오늘날 희망이 없어 보이는 암울한 역사에 대한 철학과 정치에 의해 훼손된 정식화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공산주의가 새로운 발전들을 이룩하거나 발견되지 않은 잠재성들을 드러낼 것이라는 점을 내가 완전히 배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를 제시했다- 뿐만 아니라, 또한 그와 동일하게 유효한 자격을 지닌, 가난과 사랑의 복음적 가치에 대한 정치적 해석에 기초해 있는 기독교적 공산주의(프란치스코회와 재세례파 - 안토니오 네그리의 사상에 있어서 이 기독교적 공산주의의 영향력은 명백히 지배적이다) 또는 우리가 “부르주아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영국의 수평파, 프랑스의 바뵈프주의자들과 같이 고전주의 시대의 혁명들에 속해 있는 근본적 전통으로부터 온) 평등적 공산주의 -자크 랑시에르의 사상에서 특히 이들의 영향이 감지된다- 가 그렇게 유령의 상태로 되돌아온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이러한 유형학의 문제점은 단순히 이것이 맹아상태의 것이라는 점만이 아니라, 이러한 유형학이 위험스럽게 유럽중심적이고, “대안적 근대성”이라는 개념화를 통해 현재 자신의 전식민지적(précolonial) 과거와 포스트식민지적(postcolonial) 현재 사이의 관계를 다시 이해하고 있는 중인 “비유럽” 세계 내에서 어떻게 이 계보학이 제시될 수 있는가의 문제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러한 유형학은 공산주의의 “메시아적인”, 그러니까 신학적인 (또는 반신학적인antithéologiques) 요소들이 어떻게 재생산되고 전파되는가 라는 가장 어려운 질문의 코앞으로 우리를 데려가는 역할을 해줄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마르크스주의는 이렇듯 단순한 시기구분을 자연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이 요소들을 (역사 자체에 내재적인 갈등이 만들어냈을 “역사의 종말/목적(fin)”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의 참조에도 불구하고 또는 그 참조 때문에) 비판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이 요소들을 통해 다음의 웅장한 재정식화를 이루어냈다. Deus sive Revolutio [신 즉 혁명]… 이 긴장은 “현재의 상태를 폐지하는” “현실의 운동들”(단수보다는 복수의 운동들)(마르크스, 『독일 이데올로기』) 사이에서 불가피한 것이다(그러나 이는 이러한 긴장이 비생산적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어쨌든 이 운동들은 지배적인 질서에 대립하며, 또한 그 용어의 두 가지 의미에서 역사의 종말/목적(fin)의 성격을 이러한 “폐지”에 부여하는 종말론의 세속화라는 끊임없는 과정이다.
마르크스의 공산주의들
그럼에도 “마르크스의 공산주의”(마르크스에 따른 공산주의보다는 마르크스의 공산주의를. 왜냐하면 “누구?”라는 질문의 우위 때문에 우리는 마르크스의 공산주의를 변별적인 방식으로 그 언표행위의 발화 내적 쟁점들, 그리고 변화된 조건들과 관련지어야 하기 때문이다)라는 질문과 새로이 대면하는 것은 필요불가결하다. 우리가 여기에서 다루고자 하는 복잡함을 해석에서의 갈등이라는 형태 하에서 현재화하려는 시도는 (우리가 그 상속자인 동시에 이용자이기도 한) 20세기 마르크스주의의 독해와 해석 작업의 가장 명백한 결론일 것이다. 이러한 현재화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모든 “재구성”(recomposition)과 대립점에 위치해 있는 공산주의의 아포리아들(이는 사유의 역사성을 형성하는 아포리아들이다)을 드러내주는 더 멀리 확장된 탈구축(déconstruction prolongée)을 요청한다. 이전의 해석들과의 연속성 속에서, 나는 두 가지 예를 도식적으로 취할 것이다.
첫 번째 예는 1848년의 『공산주의자 선언』의 마지막 부분에서 공산주의의 전망이 언표되는 방식에 관한 것이다. 여기에서 모든 곤란한 지점과 모든 흥미로운 지점은 마지막 장(이 장은 “서로 다른 반대파들에 대한 공산주의자들의 입장”이라는 한 페이지로 요약된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 입장이 완전히 “누구”라는 질문의 관점에서 위치 지어져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시기에 공산주의자들은 무엇을 하는가, 그리고 결국 그들은 누구이며 무엇으로 자신들을 인지하는가?)에서 마르크스가 자신의 입장에서 “행동강령”을 정의함에 있어 동일하게 필요불가결한 두 구성요소들을 절합하는 방식에서 서로 만나게 된다. 그가 정의하는 행동강령은, [(1)] 한편으로 소유의 형태들을 둘러싼 사회적 문제가 가지는 우위로, [(2)] 다른 한편으로 민주주의적 투쟁의 국제화를 위해 싸울 필요성으로 정의된다. 알다시피 바로 이러한 기반 위에서 “제1인터내셔널”이 1864년에 창립된 것이다. 국제주의가 마르크스를 원용하는 “일국 사회주의”와 “사회주의 국가체계”(그 국가체계들은 서로 동맹국이었거나 경쟁국이었다)의 구성으로 변질되었다는 사실, 최소한 표면적으로 봤을 때는 반제국주의적 투쟁이 소멸했다는 사실 또는 그 적을 단순한 방식으로 분별해내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사실, 그러나 특히 무엇보다도 현재의 금융위기를 금융세계화라는 그 진정한 “최고 단계”에 도달한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와 동일시하는 것, [이 세 가지는] 일군의 지식인들에게 있어 “공산주의적 가설”로 회귀하고 있는 현재의 담론구성체 내에서 [(1)과 (2)라는] 두 용어들 사이에 존재하는 위계의 경향적 전도, 다시 말해 소유에 대한 참조[(1)]가 국제주의에 대한 참조[(2)]의 우위에 서게 되는 전도를 이끌어냈다.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나의 입장이 이 두 가지 용어들 사이에서 우리가 선택을 할 수는 없다는 것임을 잘 알 것이다. 여기에서 이 두 가지 구성요소들은 우리의 공산주의에 대한 표상에 있어 서로 환원 불가능한 것이다. 반면, 우리는 사적 소유의 폐지[(1)]와 민족들로의(그러니까 자기 민족의 자립autonomisation과 관련된 이들에게 있어서는, 국가들로의) 인류 분할의 폐지[(2)]는 단 하나의 “현실의 운동”에 속하거나 동시대 역사의 동일한 경향에 조응한다[(1)=(2)]는 마르크스의 신념을 뒷받침하는 근거들과 그 근거들이 오늘날에는 어떠한지에 대해 질문하도록 요구받는다.
마르크스는 [(1)과 (2)라는] 이 두 경향들의 공통 “기반” -근본적으로 착취당하는, 그리고 또한 [역설적이지만] 자신이 그 존속을 보증하는 부르주아 시민사회로부터 [오히려] 배제당하는 계급으로서 프롤레타리아의 실존에 의해, 또는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프롤레타리아들(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를 부르주아 시민사회의 존재조건들에 대한 현행적 “해체” -“dissolution” en acte, Auflösung- 로 지시했다)의 실존에 의해 구성되는- 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다른 말로 바꾸면, 마르크스에게 본질적인 것으로 보였던 것은 객관적 조건에 “존재론적으로” 뿌리박혀 있는, 하지만 그가 역사의 한계에서 프롤레타리아들이 점하는 이러한 위치를 표시하기 위해 (『독일 이데올로기』 이래로) 사용해 왔던 두 가지 범주들의 접합이 잘 표현하는, 본질적으로 부정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는 집합적 주체화의 과정이었다. [(1)] 무소유(Eigentumslosigkeit) 또는 소유의 근본적 부재(그렇기 때문에 “프롤레타리아들은 그들을 묶고 있는 쇠사슬 말고는 잃을 것이 없다”)와 [(2)] 무환상(Illusionslosigkeit) 또는 부르주아 시민사회 내에 존재하는 공동체적 관계의 본성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환상, 특히 민족적 환상의 근본적 부재(그렇기 때문에 종교를 가지지 않듯이 “프롤레타리아들은 조국을 가지지 않는다”)라는 두 가지 범주들의 접합. 이는 [(1)과 (2)에 관한] 서로 다른 부정들이 자본주의 내에서 작동 중인 사회구조들의 변형의 경향들 위에서보다는 오히려 어떠한 역행점 위에서 서로 만나게 되는, 그러한 역행점을 사고할 것을 우리에게 요구한다. 잠재적으로 공산주의자인 이 프롤레타리아들은 그 해체(dissolution)의 요인이며, 동시에 그들은 그들의 “존재” 내에서 그 해체의 효과들을 감지한다. “의식”(Bewusstsein)은 “의식의 존재”(das bewusste Sein)와 다른 것이 아닌 것이다. 그들의 혁명이 모순들의 성숙에 의해 폭발할 때, 그들과 함께 나타나는 것은 그 결과보다는 오히려 자본주의의 이면이다.
내 생각에, 오늘날 이러한 방식으로(즉, 마르크스의 관점에서) 공산주의를 사고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프롤레타리아의 존재에 조응하는 부정성, 즉 프롤레타리아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은 아닌 것 같다(왜냐하면 프롤레타리아 전체가 사라진 적은 없으며, 프롤레타리아는, 세계-경제의 “중심부들” 내부를 포함하여, 사회보장 제도의 붕괴와 함께 대량으로 재구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새로운 착취조건들은 공들여 다시 연구되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또한 우리에게 결여되어 있는 것이 민족구성체, 더 일반적으로는 “공동체적” 구성체들을 접합하는 표상들의 허구적인(illusoire) 특징, 또는 더 낫게 말하자면, “이데올로기적인” 특징인 것도 아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결여되어 있는 것은 소유에 대한 비판[(1)]과 민족에 대한 비판[(2)]을 자동적으로 수렴하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는, 더욱이 이 비판들 모두를 하나의 존재론 -“부정적”인 존재론이라 할지라도- 으로 뿌리박을 수 있는 가능성이다[다시 말해, 이러한 가능성은 존재하지 않으며, 마르크스의 두 가지 범주들을 완벽하게 접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로부터, “누구?”라는 질문(호모 에코노미쿠스에 대한 비판[(1)]과 외국인공포증과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2)] -그리고 아마도 특히 가부장제와 성차별주의와 같은 몇몇 다른 비판들 또한- 을 실천적으로 절합하는)에 대답하는 공산주의자들의 정치적 정체성조차 어떠한 연역이나 전제에 의해 결정될 수 없으며, 이 정체성은 또한 경험 속에서(마르크스와 엥겔스 각자가 독일, 프랑스, 그리고 영국에서 현재의 상태의 부정을 체현하는 프롤레타리아들을 “조우했던” 경험을 1840년대에 머릿속에 떠올렸듯이) “찾아질” 수도 없으며, 대신 우연적인, 그리고 어쨌든 가설적인 정치적 구성의 대상이 되어야만 한다.
이제, 이번에도 매우 빠른 속도로, 역시나 매우 강한 긴장으로 특징지어지는 마르크스의 사유의 두 번째 이론적 형세로 넘어가자. 이 두 번째 형세는, 부르주아 시민사회의 경제적 구조들에 대한 분석(상품들의 일반화된 유통과 교환 내에서 인간 노동생산물들의 가치화, 임금 노동력에 대한 착취와 자본주의적 산업혁명)의 기반 위에서 마르크스가 그 부정을 다시 한 번 사고하기를 착수할 때, 『자본』에서, 또는 오히려 『자본』의 언저리에서 언표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논리적인 관점에서 “무엇”이라는 질문은 “누구”라는 질문의 우위에 서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또는 오히려 이 “누구”라는 질문이 다음과 같은 가설적인 명제의 형태로 되돌아온다는 점을 지적하자. 만일 자본주의의 모순들이 사회화의 어떠한 “역사적 경향”에 따라 진화한다면, 부정의 부정(마르크스는 『자본』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 부정의 부정에 정치적인 동시에 메시아적인 반향을 가지는 이름인 “수탈자의 수탈”이라는 이름을 부여한다)으로 제시되는 공산주의는 근본적인 인간 욕구들(물질적이고 정신적인, 또는 “문화적인”)의 충족 수단들을 통한 공동생산(과 재생산)의 구조적 특징들을 제시할 것이다. 여기에서 마르크스가 변화(évolution)의 국면들 또는 단계들 -여기에서 한 국면/단계에서 다른 국면/단계로의 “이행”은 (생산력의 양적 또는 질적 발전 내에서, 또는 제도들의 변형 내에서, 또는 의식의 수준 내에서) 규정된 문턱들을 넘어선다는 점을 전제할 것이다- 이라는 관점에서 사고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자(이는 “마르크스주의”가 마르크스의 사유를 가지고 행했던 적용들을 마르크스 본인의 사유와 대면케 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지점이다). 마르크스는 역사적 경향들(그리고 필요하다면, 알튀세르가 지적했듯이 “반反-경향들”)의 관점에서 사고하는데, 이 역사적 경향들의 실현 양태들은 상대적으로 비규정된 것으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만일 공산주의에 대한 명목적인 정의가 존재한다면, 공산주의는 예측의 자격으로도, 강령의 자격으로도 자신의 표상을 가질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국가형태의 강화(공산주의의 관념과는 모순되는)에 대한 반대를 물리치고 오히려 국가형태를 강화하는 “사회주의적” 실천들을 정당화하는 데에 매우 많은 역할을 해온 이러한 부정적인 특징이 우리가 내적 긴장을 새롭게 위치 짓는 것(localiser)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세계화와 그 위기의 시대에 마르크스적 공산주의의 현재화를 위한 시도들은 근본적으로 다시 사고하기(다시 말해, 이를 뒷받침하는 “공리들”의 수준에서 다시 사고하기)를 피할 수 없을 것인데, 이것이 우리가 말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비록 이러저러한 측면에 대해 논쟁할 여지는 존재하지만, 『자본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1985) 이래로 여러 저작들을 통해 발전되어 온 자크 비데(Jacques Bidet)의 통찰이 완전히 옳았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비데에 따르면, 『자본』에서 마르크스는 하나가 아니라 변별되는 두 가지 구조들을 연구했는데, 이 두 가지 구조들 모두는 정치경제학 비판으로부터 기원하지만 이 두 구조들의 논리적인, 그러니까 정치적인 함의들은 -비록 우리가 역사적으로 이 둘을 결합(combinaison) 가능하도록 만나게 하더라도- 서로 다르다. 하나[➀]는 상품의 유통과 “가치형태”와 관련되며, 다른 하나[②]는 자본의 명령/지배(commandement) 하에서, 그리고 무한정 확장된 자본의 축적을 가능케 하는 조건들 내에서, 노동력이 생산과정 내로 통합된다는 점(그러니까 착취와 그 다양한 “방법들”)과 관련된다. 하지만 공산주의로의 경향과 그 실현의 형태들을 사고하기 위한 각 구조의 함의들은 완전히 다르며, 우리는 마르크스가 서로 구별되는 텍스트들 내에서(특히, 한편으로는 “상품 물신숭배”에 관한 『자본』에서의 이론적 발전들[➀], 다른 한편으로는 “협업”과 “폴리테크니즘”polytechnisme에 관한 이론적 발전들[②]) 이 함의들을 교대로 언급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➀] 한편으로, 수탈자의 수탈은 본질적으로 시장의 철폐(또는 사회 전체에 대한 시장의 지배의 철폐), 그리고 비-상품적 공동체 또는 자기 자신에 대해 투명한(화폐의 “현실추상”에 의해 매개되지 않는) “자유로운 생산자들의 연합”의 구성, 다시 말해 사회적 삶의 자기-조직(auto-organisation)의 구성으로 사고된다. [②] 다른 한편으로, 수탈자의 수탈은 사회적 생산 -『자본』의 마지막에서 두 번째 장의 표현에 따르면 “자본주의적 사회화라는 성취의 기반 위에서 개인적 소유를 재건”하는- 의 수단들을 통한 “집합적 영유”로 사고된다. [➀] 한편으로, 이는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사회 전체의 수준에서의 노동분할(즉, 생산의 부문들과 단위들에서의 노동분할[분업])에 관한 것이며, [②] 다른 한편으로, 이는 그들의 노동 수단들, 협력, 그리고 그들 고유의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능력들 -이 능력들의 적용은 협력 속에서만 실행 가능하다- 에 대해 개인들이 맺는 관계에 관한 것이다. 이는 양립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동일한 것은 아니며, 심지어 이는 (국가와 법의 공적 심급들과 교육 등등의 역할에 대해서) 반정립적인 정치적이고 문화적인 조건들을 요구할 수도 있다. “사회주의”의 근대적 관념과 핵심적으로는 마르크스주의 내에서 그 관념이 “공산주의”와 맺었던 관계, 이 관념과 관계의 강력한 영향력이 가지는 심원한 다의성(équivoque)과 근거들이 이 지점에 동시에 위치한다. 이 두 가지 문제들의 혼합 또는 총체화 -“과학적 사회주의”라는 관념과 동일시되는 그러한 혼합 또는 총체화- 를 제시하면서, 마르크스적(사회주의적, 프롤레타리아적) 공산주의는 정의 또는 평등의 사상에 속하는 다른 공산주의들을 유토피아 또는 전사(préhistoire, 前史)의 가장자리로 끈질기게 배척했다. 하지만 이는 또한 오늘날 이러한 마르크스의 위대한 이론적 구축물을 이론적으로(그러니까 정치적으로) 취약하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분명 우리는 여전히 “공통적인 것”의 문제설정(네그리 –분명 사람들은 네그리가 공통적인 것의 문제설정을 발명한 사상가라고 생각하는데, 하지만 또한 이 동일한 사람들이 공통적인 것의 문제설정에 관한 관점을 명확히 하기를 그에게 요구하고 있다- 이전에 “비정통적인” 제도[주의] 경제학의 다양한 흐름들이 공통적인 것의 관념을 발전시켜왔다)을 노동의 “지성화”(intellectualisation)(와 그 한계들, 또는 정보화시대에 있어 새로운 소외의 형태들 내에 존재하는 그 대응물들)의 문제설정과 교차시키는 작업을 지속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존재론적인”, 다시 말해 사변적인 전제의 자격에서가 아니라면) 소유의 변화[➀과 관련된]와 관개체적 관계(rapport transindividuel)의 변화 또는 공동체의 변화[②와 관련된]가 동일한 결과로 나아간다고 당연시할 수는 없다. 이 지점에서, (마르크스가 제기하였으며 그에 의해 부르주아 시민사회 내에서 정치의 “공산주의적” 지양으로 간주되어 왔던 문제들의 새로운 개조를 통해) 이 문제들이 필연성의 관점에서 그 우연적인 역사적 “조건들”과 구성의 관점으로 이동하도록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여전히 존재한다.
공산주의인가 인민주의인가
결론으로 나아가기 위해, 나는 우리 논의가 지닌 마지막 측면(물론 부분적으로 이는 자기비판적인 측면이기도 할 것이다)을 환기하는 것에 만족할 것이다. 하지만 이 논의에 있어 (공산주의의 지속적인 담지자가 되기 위한 그 노력 속에서) 공산주의의 이름들, 관념들, 그리고 유령들과 함께 나아가고자 하기 위해서는 이 마지막 측면을 언급하는 것이 불가피한데, 왜냐하면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이전의 모든 딜레마들은 그것이 국가와 맺는 변별적 관계를 함축하고 있으며, 그러므로 이 딜레마들은 의미/방향(sens)이라는 질문 -그 안에서 공산주의가 국가(또는 국가주의)에 대한 하나의 대안으로 존재하는 질문- 을 제기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마르크스적 공산주의는 우리가 동일한 이름하에 위치시킬 수 있는 다른 공산주의의 형상들에 대해 “변증법적” 우위를 지니는 것으로 드러나는데, 왜냐하면 마르크스적 공산주의는 국가 없는 사회를 “추상적으로” 또는 “이상적으로” 묘사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계급사회가 국가 없이는 존재할 수 없도록 만드는 (또는 국가가 계급사회를 그 장소로 점하고 있는 갈등들을 극복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개입하도록 만드는) 역사적 조건들에 대한 변혁을, 그리고 더욱 심원하게는 실천 -이 실천의 중심에서 지배의 형태로서의 국가(“국가권력”, “국가기계”)가 자신의 반대물과 대면하게 된다- 을 사고하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산주의는 단순한 하나의 목표 또는 경향일 뿐만 아니라, 또한 하나의 정치, 심지어는 하나의 정치적 관계(“국가가 아닌 국가”라는 레닌주의적 표현이 지시하는 그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우위는 아이러니한 것이며, 심지어 이러한 우위는 우리의 심정을 극도로 쓰라리게 만드는데, 내재적 관점에서뿐만 아니라 역사적 정황들의 관점에서도 이를 검토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내재적이고 역사적인 관점을 취해보자면, 정치이자 동시에 반(反)정치(정치적 실천의 “부르주아적” 형태들의 지양, “헌법적” 방식으로 사고된 국가인지 “도구적” 방식으로 사고된 국가인지를 막론한 국가와 정치적 실천 사이의 관계의 전도)이기도 한 공산주의적 정치라는 관념, 그리고 결과적으로 (제도화된, 이데올로기화된, 공동체화된) 기존 정치의 장을 전위시키거나 변형하거나 전복하기 위해서만 기존 정치의 장에 개입하는 공산주의적 정치라는 이 관념은 사실상 정치적 실천의 부르주아적 형태들에 대한 가장 완벽한 복종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 부르주아적 형태들은 최선의 경우 자유주의적 형태들이며 최악의 경우 전체주의적 형태들인데, 이 형태들에 대해 공산주의적 정치 자신이 주목할 만한 “창조적인” 기여를 행했다. 지금은 더 이상 이러한 이율배반을 비극적인 경멸로 바라볼 때가 아니다. 오히려 무력함과 타락 사이로 양분된 자신의 역사적 실현형태들로부터 자신을 거리 둘 수 있는 능력을 가지기 위해 마르크스주의에게 여전히 부족한 것은 무엇인지 자문해보아야 한다. 다른 곳에서 내가 적용했던 방법에 충실하게, 나는 “정치 개념”의 구성이라는 마르크스주의의 아포리아들에 대한 내재적 비판으로부터 출발하여 이를 행하는 것이 (충분하지는 않더라도) 유용하다고 여전히 생각하고 있다(다른 말로 하자면, 여전히 나는 마르크스주의에 있어 이 정치 개념의 부족 또는 결여가 자의적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공산주의적인 (반反)정치의 기획이 급진적 사회주의의 “반(反)자본주의적” 기획에 내재하는 모순적 요소가 사고되었던 방식(또는 사고되었어야 했던 방식)과 분리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특히 주권에 대한 활용recours과 그로 인한 효과들과 관련하여). 그런데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역사적 공산주의는 새로운 역사적 조건들 속에서 “두 번째 근대성”의 초반부 이래로 인민주권이라는 관념을 만들어내는 이율배반을 극단으로 밀어붙이거나 재생산할 뿐이다. 그런데 이 두 번째 근대성으로부터 그 모델들, 특히 프랑스혁명과 영국혁명이 나타나는데, 여기에서 “합법적 폭력(Gewalt)을 독점하는” 국가의 주권은 혁명적 주권 -우리는 이 혁명적 주권이 “역사적 변혁의 역량을 독점”한다고 말할 수 있다- 으로 재전위된다. 하지만 봉기적인 또는 혁명적인 인민주권의 국가주권으로의 회귀는 혁명적 정치(특히 대중의 혁명적 정치)라는 범주 -이 범주는 봉기, 구성적/제헌적 권력(pouvoir constituant), “사회적 관계들의 변혁”, “민주주의의 민주화” 등등의 개념들 사이의 간극에 위치할 것이다- 없이는 그 반대인 국가주권의 인민주권으로의 회귀보다 더 불가피하다. 여기에서 우리는 벤사이드가 활용했던 아름다운 “저항적” 문장의 취약점을 확인한다. 이 아름다운 문장에서 벤사이드는, 마치 여기에는 이율배반이 내재하고 있지 않다는 듯, “국가의 관료주의적 이성에 의한 포획으로부터 공산주의를 구해내기”를 주장한다. 공산주의는, 만일 그것이 해방의 담지자인 만큼이나 그 최악의 담지자, 즉 전체주의의 담지자가 아니라면, 사회주의적 정치를 시장의 “과잉”의 조절 또는 교정 너머로 이끌어갈 수 있는, 소유의 형태들에 대해 문제제기할 수 있는, 그리고 정의 또는 평등에 대한 다소 이상화된 전통들과 다시 관계 맺을 수 있는 메시아적 근본성/급진성(radicalité)의 이름이 아닐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관점을 전도시키려는 시도가 무용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유이다. 공산주의를 “사회주의의 지양”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인민”(peuple)이라는 참조점을 공통적으로 가지면서 국가에 맞서는 혁명담론들의 중심에서 시작되는 분기(bifurcation)의 양태들로 사고하기, 그러므로 공산주의를 인민주의에 대한 하나의 대안으로 사고하기. 이 문제는 다른 여러 이유들에 의해 굉장한 현재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비판적인 방식으로 작업해야 할 것은 (공산주의와 순수하고 단순하게 일치하는 것이 아닌 한에서) 공산주의와 분리 불가능한 것으로 남아 있는 공동체에 대한 참조이다(공산주의는 항상 공동체를 부활시키거나 이를 보편적인 것으로 고양시키려는 하나의 시도였던 만큼이나 공동체에 대한 하나의 비판이었다).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나는, 여기에서 “국가가 아닌 국가”에 대한 변증법이라는 공산주의적 정치의 아포리아를 어떤 의미에서는 그 이면에서 공격하기를 제안하는 것이다. 국가가 아닌 국가에서 사회주의의 근본성/급진성의 대체보충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그리고 민주주의적 실천의) 역설적 대체보충물 -인민이 자기 자신의 역사적 “주권”을 가지고 스스로 형성해내는 표상을 변질시킬(altérer) 수 있는- 을 봄으로써 말이다. 다시 말해, 인민주의의 또 다른 내부(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적 변질altération interne) 또는 반자본주의의, 그리고 역사-지리적인 몇몇 조건들 내에서는 반제국주의의 인민-되기에 대한 비판적 대안으로 봄으로써 말이다. 그러므로 이는 분명 그와 관련될 수 있는 하나의 관념이나 하나의 모델이 아니라 정세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하나의 행위에 관한 것이다. 따라서 나는 이 논의에서의 내 출발점, 즉 공산주의자들이란 누구인가, 역사적 운동의 중심에서 “그들이 하는 일”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의 우위로 돌아온다.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공산주의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보다는 말이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앞으로 확인하게 될 것들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