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알튀세르 「브레히트와 맑스에 대하여」(1968)
이종현 옮김 | 서교인문사회연구실
[불어본 편집자 프랑수와 마트롱이 붙인 소개글]
원래 알튀세르는 브레히트와 맑스에 대한 이 글에 제목을 붙이지 않았다. 이 글의 처음 몇 문장들을 보면, 그가 1968년 4월 1일 <밀라노의 피콜로 극단>(Piccolo Teatro de Milan)이 주최한 토론회를 염두에 두고 이 글을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알튀세르는 토론회에서 이 글을 읽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1968년 4월 3일 『루니타』(L'Unità)지(誌)에는 이 토론회에 대한 기사가 실렸는데, 이 기사에서는 알튀세르의 발표에 대한 언급이 없다. 또, 이 글이 결국 미완성으로 남았다는 점을 미루어보면, 알튀세르는 토론회에서 이 글을 읽지 않은 듯하다. 토론회에서 이 글 대신 「파올로 그라시에게 보내는 편지」가 읽혔다는 점은 자료를 통해 확실히 알 수 있다. 알튀세르의 문서고에는 브레히트의 『연극에 대한 글들』(Écrit sur le théâtre)에 대한 독서노트와 역시나 매우 흥미로운 예비적인 노트들이 보관되어 있다. 노트들에는 브레히트와 맑스에 대한 이 텍스트에서도 다루지 않은 내용이 담겨 있다.
[본문]
저는 피콜로와 그의 친구들 앞에서 연설해야 한다는 것 때문에 대단히 혼란스럽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연극의 문제들에 대해서는 완전히 문외한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철학과 정치학에 대해서는 약간의 지식이 있습니다. 저는 맑스와 레닌을 조금 알고 있긴 합니다. 그게 다입니다.
연극에 대해 제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제가 피콜로 극단(Piccolo Teatro)의 공연들을 매우 좋아한다는 것이 다입니다. 불행하게도 저는 <우리들의 밀라노(El Nost Milan)>, <키오지아의 난투(Baruffe Chiozzotte)>, <아를르캥(L’Arlecchino)>밖에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 세 작품들은 저에게 매우 깊은 인상을 주었습니다. <우리들의 밀라노>는 제 철학적 연구들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바 있습니다. <우리들의 밀라노>를 보면서 저는 맑스의 사유에서 중요한 몇 가지들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또 브레히트가 연극에 대해 쓴 이론적 글들을 알고 있다고 덧붙이겠습니다. 저는 최근에 그 글들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글들은 맑스주의 철학자가 보기에 매우 놀라운 것들입니다.
보시다시피 연극과 저의 관계들은 무엇보다도 철학적이고 정치적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물론 저는 제가 본 몇몇 작품들과 관객으로서 직접적인 관계를 갖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의 경험은 너무나도 제한적입니다. 제가 앞으로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들을 수정(corriger)하기 위해서라도 여러분들은 바로 이 점을 알고 계시기 바랍니다. 사실상, 철학자이자 정치적인 사람, 게다가 맑스주의 철학자인 저는 바깥에서(du dehors) 연극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여러분께 엄청난 엄격함과 동시에 엄청난 너그러움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제가, 단지 철학자일 뿐인 제가 감히 연극에 대해 말할 대담함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은 연극을 잘 알았던 브레히트가 저에게 그럴 수 있도록 허락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브레히트는 평생 연극과 철학을 서로 직접적인 관계에 놓는 작업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1929년 그는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연극의 미래는 철학에 있다”(「마지막 단계: 오이디푸스」). 1953년, 그러니까 24년이 지난 뒤에 그는 이 테제를 다시 받아들였고, 그 테제에 더욱 힘을 실어주었습니다.(「어느 사회주의적 대담」, 1953년 3월 7일) 그는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저의 연극은 [...] 철학적인 연극입니다. 이 개념의 순진한(naïf) 의미에서 그렇습니다. 저의 철학적 연극은 사람들의 행동과 의견들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약간의 변명을 하자면, 아인슈타인이 물리학자 인펠트(Infeld)에게 이야기한 것을 사례로 들 수 있겠습니다. 아인슈테인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두 명에 대해서밖에 생각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한 사람은 광선을 뒤쫓아 달리는 사람이고, 다른 한 사람은 자유낙하 중인 엘리베이터에 갇힌 사람입니다. 우리는 이 사유로부터 어떤 복잡한 무언가가 생겨났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제가 연극에 적용하기를 원했던 원칙은 세계를 해석하는 것만으로 만족해서는 안 되고 세계를 변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지[volonté]에서 비롯된 변화들은(제 자신도 이 의지에 대해서는 매우 천천히 의식하게 되었습니다) 언제나 존재했고, 이 변화들은 사소한 것이든 중요한 것이든 연극적 ‘놀이’(jeu) 내부에서 작동되었습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많은 수의 고전적 규칙들은 자연스럽게 변하지 않은 채 남아 있습니다. 저의 모든 오류가 남아있는 곳은 바로 이 사소한 단어 “자연스럽게”입니다. 이를테면, 저는 변하지 않은 채 남아있는 이 고전적 규칙들에 대해서는 결코 말한 적이 없었던 셈인데 제가 배우들에게 내린 지시사항들과 저의 작품들에 대한 “주석(Remarques)”들을 읽은 많은 사람들은 제가 그 규칙들을 폐기하기를 원했다고 생각했습니다. 평론가들은 곧장 제 이론들에 몰두하기보다는 일단은 제가 만드는 연극을 일반 관객들처럼 보아야 합니다. 그들은 단지 하나의 연극, 제가 바라건대 환상, 유머, 생각들로 가득 찬 연극을 보게 될 겁니다. 그들은 이 연극이 생산한 효과들을 분석하면서 비로소 그 새로움에 충격 받을 것입니다. 또, 그때에서야 비로소 그들은 제 이론적 선언들에서 그 새로움에 대한 설명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철학의 의무를 다하려는 철학자로서 제가 이 중요한 텍스트의 몇 가지 핵심적인 지점들을 요약하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브레히트는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몇 가지 분명한 테제들을 언명합니다. 저는 그것들을 다시 받아들일 것이고 그것들을 매우 도식적으로 설명하려고 합니다. 다음이 바로 브레히트가 우리에게 말하는 것들입니다.
1. 연극은 존재한다(existe). 그것은 하나의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사실이다. 그것은 하나의 사실이다.
2. 나는 연극의 고전적인 규칙들을 폐지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즉, 나는 연극을 폐기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바로 이 고전적 규칙들이야말로 연극이 연극이 될 수 있게 해주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이 테제는 매우 중요합니다. 이 테제는 연극은 삶이 아니라는 것, 연극은 과학이 아니라는 것, 연극은 직접적으로 정치적인 선전이나 선동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브레히트가 삶, 과학, 정치의 중요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로 그는 이 현실들이야말로 연극을 위해 필수적인 것들이라고 생각하며, 그 누구도 이 점에 대해 그보다 더 강조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브레히트에게 여전히 연극은 연극으로 남아야 한다는 것, 즉 예술로 남아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 점은 그가 다음과 같이 선언했을 때 분명해집니다. 나의 작품들을 보러 오시오, 그럼 당신들은 “단지 하나의 연극, 내가 바라건대 환상, 유머, 생각들로 가득 찬 연극을” 보게 될 겁니다.
3. 나는 몇 가지 새로운 효과들을 생산하기 위해, 연극의 내부에, 그러니까 연극의 “놀이”(jeu)의 내부에 어떤 변화들을 도입한 것으로 만족한다. “놀이”라는 말은 두 가지 의미로 이해해야 합니다. 먼저 연극적 연기(jeu théâtral)라는 전통적 의미에서.(연극은 하나의 연기다: 배우들은 연기한다; 연극은 현실의 허구적 재현이다. 연기는 삶도 아니고 현실도 아니다. 연극에서 재현되는 것은 삶이, 과학이, 정치가 자신을 몸소 드러내는 것(en personne)이 아니다. 현실이 재현(représentée)된다고 할 때, 그 현실은 현존하는(présente)것이 아니다.) 그러나 “놀이”를 두 번째 의미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연극은 바로 그 “헐거운 공간(jeu)”을 받아들입니다(하나의 문, 하나의 경첩, 하나의 메커니즘에 “헐거운 공간”이 있다는 의미에서) 즉, 연극은 변화들이 도입될 수 있는 어떤 장소를, 어떤 “헐거운 공간”을 포함하고 있게끔 만들어졌습니다.
4. 내가 연극 속에 도입했던 변화들은 나의 철학적 의지(volonté)에 의존한다. 이러한 철학은 맑스의 포이어바흐에 대한 유명한 11번째 테제의 다음과 같은 구절, “철학자들은 세계를 해석하는데 만족해왔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혁하는 것이다.”로 요약됩니다. 연극이라는 “놀이/운동(공간)(jeu)” 속에 도입했던 변화들로 브레히트를 인도했던 철학이란 맑스주의 철학입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저에게 무한한 충격을 주었던 것은 바로 브레히트가 연극에서 일으킨 혁명과 맑스가 철학에서 일으킨 혁명 사이의 일종의 유사성입니다. 사람들은 브레히트는 철학자가 아니었다고 말할 것이고, 철학교수들은 브레히트에게서 철학적 가르침들을 찾지 않을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왜냐하면 그는 철학책을 쓰지 않았고, 그는 하나의 철학적 체계를 주조하지도 않았으며, 철학적·이론적 담론들을 취하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브레히트는 스스로 말하기를 자신은 철학에 대해 순진(naïf)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철학교수들은 틀렸습니다. 왜냐하면 브레히트는 맑스가 이룩한 철학적 혁명의 본질적인 것을 매우 잘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 본질을 실천적으로, 그러니까 이론적 담론이 아니라 제가 그의 연극적 실천이라고 부를 것 안에서 이해했습니다. 브레히트는 결코 연극적 실천에 대해 말하지 않고, 언제나 연극적 기술(technique) 안의 변화들에 대해 말합니다. 그는 마치 오직 기술에 대해서만 말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벌거벗은 기술 그 자체란 없습니다. 하나의 기술은 언제나 하나의 실천에 삽입되어 있고, 언제나 어떤 하나의(une) 실천의 기술입니다. 브레히트가 연극적 기술에서 이룩한 혁명[들]은 연극적 실천에서 이룩한 어떤 혁명의 효과들로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브레히트의 텍스트들 속에서 매우 분명합니다. 그가 도입한 연극적 기술의 개혁들은 언제나 전체적인 연출(mise en scène) 개념에 연결되어 있고, 이 연출이라는 개념은 주체(sujet)라는 개념에 연결되어 있고, 이 주체라는 개념은 무대-관객, 배우-관객의 관계라는 개념에 연결되어 있고, 이 무대-관객, 배우-관객의 관계라는 개념은 연극-역사의 관계라는 개념에 연결되어 있고, 이 연극-역사의 관계라는 개념은 어떤 철학적 개념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모든 용어들은 브레히트의 기술적 개혁들이 연극적 실천에서 일어난 혁명의 효과들로서 고려되어야 한다는 점을 밝히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핵심적인 지점입니다. 맑스의 철학적 혁명은 모든 면에서 브레히트의 연극적 혁명과 닮았습니다. 맑스의 철학적 혁명은 바로 철학적 실천 안에서 일어난 혁명입니다.
브레히트는 연극을 폐기하지 않습니다. 연극은 존재합니다. 연극은 하나의 결정된 역할을 수행(joue)합니다. 맑스도 철학을 폐기하지 않습니다. 철학은 존재하며, 하나의 결정된 역할을 수행합니다. 브레히트는 자신의 모든 작품들에서 새로운 연극을 만들어내지 않습니다. 그 작품들이 반-연극이든, 아니면 과거의 연극의 모든 레퍼토리를 폐기하며 과거의 연극과 관계를 끊는 연극이든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맑스와 맑스주의자들은 모든 저작들에서 새로운 철학, 반-철학, 또는 과거의 모든 철학적 전통과 관계를 끊는 어떤 철학을 만들어내지 않습니다. 브레히트는 존재하는 그대로의 연극을 받아들여 존재하는 그대로의 연극 내부에서 행동합니다. 마찬가지로 맑스는 존재하는 그대로의 철학을 받아들여 존재하는 그대로의 철학 내부에서 행동합니다. 브레히트가 혁명화하는 것은 바로 연극을 실천하는 방식입니다. 그가 새롭게 가져오는 것은 연극의 새로운 실천입니다. 마찬가지로 맑스가 철학 안에서 혁명화하는 것은 철학을 실천하는 방식입니다. 그가 새롭게 가져오는 것은 철학의 새로운 실천이지, 그람시가 잘못 말했던 새로운 철학, 즉 어떤 실천 철학(une philosophie de la praxis)이 아닙니다. [맑스가 가져오는 것은] 철학의 새로운 실천입니다. 같은 방식으로 다음과 같이 정확하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 브레히트의 연극은 실천 연극(un théâtre de la praxis)이 아닙니다. 그의 안에 새롭게 있는 것은 연극의 새로운 실천(pratique)입니다.
* 다음 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