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튀세르에게 연극이란 “허구적 위험”일 뿐인가? (1/3)
마르크뱅상 올레
번역 : 황재민 | 알튀세르 번역집단
마르크스주의의 용어들 속에서 사고하는 것이 더 이상 긴급한 것이 아닌 몇몇 사람들의 눈에는 알튀세르에 대한 독해를 오늘날 다시금 끌어들이는 것이 부질없는 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거에 열렬히 읽었던, 그러나 불행히도 그와 동일한 정도로 열렬히 망각하기도 했던 것을 이러저러한 기회로 다시 읽는다고 할 때, 무언가 엄습해 오는 것에서 벗어나기 힘든 경우도 있는 법이다. 그렇게 다시 읽을 때 강력하게 표출되는 것이 철학자들을 읽는 데서 오는 유식함이 아닌, 그 철학 읽기의 적합성일 경우가 그렇다.
첫머리를 여는 이 지적은 피상적일 뿐 아니라 흔히 나올 법한 말이라 여길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그것은 알튀세르에게 우리가 진 빚이 무엇인가를 가리키고 있다. 오늘 나는 우리에게 읽고 또 읽도록 주어진 텍스트들, 철학에 관해서는 별로 읽은 게 없음을 고백했던 자이기도 한 그 비범한 독자 알튀세르의 천재성을 확증해 주는 텍스트들을 제쳐두고, 알튀세르의 작업 안에서 부차적이라고 여겨진 측면에 주목해 보고자 한다. 연극과 관계된 측면이 바로 그것이다.
영화에 관해서라면 우리는 상영관을 말하게 된다. 그곳은 어둡지만 빛이 관통한다. 이 빛 때문에 영상이 움직이고 보일 수 있다. 거기서 우리는 어둠을 탄 채 마치 물신주의적 의례처럼 뭔지 모를 영상 인화 기술을 기다리는데, 이는 사적인 성격을 띠는 것이다. 반면 연극에서 우리는 축제적이며 비장하고, 정치적일 뿐만 아니라 호사스럽고 화려한 분위기에 취하게 되는데, 심지어 관객들이 어떤 상황에서는 이러한 공개적인 과시적 공연을 부인하는 모든 것, 즉 막연한 불편함이나 금언을 재인지하는 곳 또한 바로 이 곳이다. 알튀세르가 영화를 즐겼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아는 한 알튀세르는 영화에 관해 말한 바가 없다. 그가 연극을 얼마나 높이 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연극에 관해서는 얼마간 말한 바가 있다. 이는 연극이 정치적인 것과 연관이 있기 때문인가, 아니면 연극이 정치적인 것을 넘어서기 때문인가? 아마도 둘 다일 것인데, 왜냐하면 연극은 자기 자신의 위반 바깥에서는 사고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위반은 연극을 그것의 바깥으로 인도하는 위반이라기보다는 정치적인 것의 테두리 안에서 그것을 격화시키는 위반이다.
「피콜로 극단, 베르톨라치와 브레히트」라는 제목과 “유물론적 연극에 대한 노트”라는 부제를 단 1962년 텍스트가 처한 운명은 묘한 것이었다. 알튀세르의 첫 작품집 『마르크스를 위하여』 속에 끼워진 이 텍스트는 혁신적 개념들을 가득 품고 전적으로 마르크스 독해에 할애된 그 작품집에서 한 번의 휴식시간처럼, 그러니까 철학, 역사 유물론, 정치 경제학의 개념들이 밀집한 세계로부터 벗어나는 한 번의 외출처럼 나타난다. 연극에 관한 이 “노트”가 일정 정도 가려질 정도로 여타의 텍스트들이 가진 중요성은 컸던 것이다.
1962년 7월 테아트르데나시옹(Théâ̂tre des Nations)에서 베르톨라치의 희곡 ≪우리들의 밀라노≫가 조르조 스트렐레르의 연출로 밀라노의 피콜로 극단에 의해 상연된 것에 맞추어 작성한 바로 그 텍스트가 “임박함”의 텍스트, 적시의 텍스트임을 누가 말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모든 텍스트는 적시의 텍스트가 아니던가?) 알튀세르가 이야기하듯이 당시 이 연극은 적대감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주 싸늘한 반응을 얻게 된다. 언론들은 기다렸다는 듯 “신파극”, “저질 통속극” 등의 말들을 쏟아냈다. 알튀세르의 항전 의지는 자신의 임자를 만난 셈이었지만, 논쟁을 벌이기는커녕, 우리가 사려 깊은 방청자를 상정할 때마다 적어도 기대하곤 하는 진정한 연극적 비평이라는 양식 내에서 그 싸움을 행하였다. 알튀세르가 펼친 것은 대가다운 연극 분석 수업이었다. 오늘에는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애석한 그런 분석 말이다.
이후 알튀세르는 말을 아꼈던 것 같다. 연극에 관한 그 텍스트를 이어 출간된 속편은 없었다. 현대출판기록물연구소(IMEC)에 알튀세르 서고가 마련된 이후에야 여타의 텍스트들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갑작스럽게 맡게 된 밀라노에서의 연극론 강연 준비용으로 작성한 파올로 그라씨에게 보내는 편지가 있다. 강연을 위해 알튀세르는 브레히트를 다시 읽게 되는데, 그렇게 책을 읽으며 필기한 공책들은 알 수 없는 이유로 발표되지 않은 강연문 초안과 더불어 현대출판기록물연구소에 보관돼 있다. 이 같은 작업에 알튀세르는 1968년 3월 한 달을 꼬박 바친다. 이 기록들이 어떤 점에서 1962년에 행한 분석의 연장선상에 놓일 수 있는지 파악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덧붙여 말할 것은 그가 1962년과 1968년 사이에 미학 문제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건 아니라는 점이다. 가령 크레모니니에 관해 쓴 텍스트는 알튀세르가 주어진 시각적 작품에 대한 사려 깊은 관람자가 된 이후부터 그가 끌어 모은 생각들을 단단히 다지기에 충분한 조명을 담고 있다.
알튀세르의 접근법을 특징짓는 것을 좀더 가까이서 살피기 전에 「베르톨라치와 브레히트」라는 그 텍스트가 응당 받을 법한 그러한 비평적 평가를 가지지 못했다는 점에 주목하자. 프랑수아 르뇨의 말대로 연극 관련 종사자들에게 그것은 기억으로만 남았을 뿐이다. 아마도 프랑스보다는 이탈리아에서 더 큰 울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텍스트가 종종 재인지/인정될수록, 사실상 이 텍스트는 더욱 오인되었다/인정받지 못하였다. 하기야 진심으로 알튀세르를 따르는 이들에게는 이런 식의 전도가 그리 놀랍지도 않을 테지만 말이다. 그러한 몰이해는 그 텍스트가 철 지난 브레히트의 저술을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일까? 공인된 브레히트 추종자들이 다 늙어 더 이상 관객들의 기대를 채우지 못하는 시대에 말이다. 아니면 그것이 언제나 연극계에서 신임을 받지 못했던 한 장소, 곧 철학 ― 거꾸로 철학에서 연극계를 볼 때도 마찬가지일 테지만 ― 에서 나온 발언이라는 점에서, 동업자주의의 특권들에 집착하는 환경에서 그 텍스트는 별 대수롭지 않은 것이기 때문인가? 그 텍스트가 야기한 침묵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아마도 두 이유가 결합되어야 할 것이다. 당연히 경탄할 만한 ― 이 경탄은 우리가 할 수 있었던 최소한의 것이었다 ― 텍스트임에도 결국에는 거부된 바로 그 텍스트. 알튀세르의 몇몇 제자들이, 곧 간접적으로는 자크 랑시에르, 직접적으로는 프랑수아 르뇨와 알랭 바디우 등이 잃어버린 그 수년을 되찾으려 연극 종사자들처럼 연극 관련 “사태”에 도전하는 것은 나중 일이 될 것이다.
나는 앞에서 「베르톨라치와 브레히트」가 적시의 텍스트였다고 말한 바 있다. 그 정식은 긴급함의 관념을, 또 전투의 관념을 불러일으킨다. 알튀세르가 연극론을 펼치는 가운데 성찰하고자 했던 것은 일종의 의식화 내지 또 다른 의식으로의 각성을 목표로 하는 투쟁에서 연극이 할 수 있는 기여임에 틀림없다.
문제로 삼아야 할 것은 바로 이 점이다. 무대 위에서, 또 극장 안에서 연극은 확실성이나 혼란 속에 있는 하나 내지 다수의 현행적 의식을 지닌 장소라는 것이다. ≪우리들의 밀라노≫ 상연과 더불어서 알튀세르는 어떤 아주 기묘한 구조를 간파할 수 있게 하는 복수의 장면들로 엮인 한 편의 극을 마주했던 셈이다. 알튀세르가 보기에 그 구조는 말 그대로 범상치 않은 것이었다. 장면들(제1막 1890년대 밀라노의 티볼리 지방, 이어지는 제2막 드넓은 공간을 메운 무료 급식소 광경, 마지막으로 제3막 여성용 임시 숙박 시설을 비추는 새벽녘)마다 현실의 두 면이 결합된다. 남성들과 여성들이 어떠한 말도 입 밖에 내지 않는 가운데 고독 속에 돌아다니는 공허한 공간이 한쪽에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니나라는 인물(토가소라는 건달은 니나를 탐하는데, 이 점이 빌미가 되어 토가소는 니나의 아버지에 의해 살해당하게 된다)로 특별히 중심화된 찰나적인 만큼 폭력적인 장면이 있다. 니나는 아버지의 품 안에, 즉 아름다운 멜로드라마적 의식의 품 안에 안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랑시에르가 잘 요약하듯 “진짜 세계, 돈과 매춘의 세계, 빈곤을 양산하고 그녀에게 이 빈곤에 대한 의식을 강요하는” 세계 속으로 뛰어들기 위해 미망의 세계에 대한 발견/실망 속에 있다. 우리는 알튀세르의 감탄이 각 막의 두 가지 시간을 특징짓고 있는 기묘함에 대한 발견에서 오는 것임을 알게 된다. 바로 거기가 놀람과 함께 천착을 강요하는 그 분리가 있는 곳이다.
“왜나하면 제1막과 제3막 사이에서 관객은 당황스러운 유보에서 놀라움으로, 그리고 다시금 열정적인 지지로 이행할 때, 실재적으로 이러한 천착을 체험하기 때문이다. 나는 여기에서 이러한 체험된 천착을 숙고하고자 할 뿐이며, 관객 자신에 반하여 관객에게 영향을 미치는 이러한 잠재적(latent) 의미를 목소리 높여 말하고자 할 뿐이다. 그런데 결정적인 질문이 여기에 있다. 어떻게 이러한 분리가 이렇게나 표현적일 수 있는가? 그리고 이러한 분리는 무엇을 표현하는가? 따라서 관계들의 부재를 정초하고 그것을 정당화하는 잠재적 관계를 암시하기 위한 이러한 관계들의 부재는 어떠한 것인가?”
위 구절에서 가려낼 수 있는 몇 가지 특징은 환기해 볼 만하다.
― 무엇보다 알튀세르는 경험 내지 “체험”에 입각해 연극을 말하고 있다. 연극이란 “보도록 주어진 것”, “나타난 것”이다. 나는 이 점을 강조하면서 그 표현에서 일체의 현상학적 차원을 제거할 것을 요구한다. 아마도 “실존하도록 해주는 것”이라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지만 이때 역시 우리는 현상학에 붙들릴 수 있다(“탈존”). 알튀세르가 연극적 현상을 읽어내는 것은 관객으로서이다. 그는 극작법에 관련된 작품을 읽는다기보다 연극적 경험을 설명한다. 이 점이 중요한 이유는, 알튀세르가 그 텍스트에서 작업한 대상들을 고려해 봤을 때, 그 텍스트를 아주 흔치 않은 하나의 차원, 곧 인간 알튀세르의 차원에 종속시키기 때문이다. 마치 예술이 자기의 일부분을 작동시키고 나면 역으로 이 부분이 우리가 말하게 되는 대상을 규정짓는 것처럼 말이다. 연극은 열기를 띤 대상, 즉 그것에 대한 지각의 양상이 본질의 성질을 띠는 현행적 대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알튀세르는 상연되는 텍스트의 이해에 이르기 위해서는 “장면을 ‘체험’했다는 것으로 충분함”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다. 연극은 사이 공간, 다시 말해 알튀세르가 연극의 본질적 차원으로 여기기에 결연히 보호하는 그 공간을 연다. 연극은 보기가 함축하는 거리에, “각광”, 즉 넘을 수 없는 경계의 형상 그 자체를 넘어서는 것에 있다. (끔찍한 오해를 살 위험이 없다면, 행위로의 이행이라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당대 연극계가 높이 샀던 시도들과 관련하여 1968년부터, 특히 리빙시어터(Living Theater)의 실험들과 더불어 연극을 불안정하게 만든 것은 바로 극장과 객석 사이의 거리를 없애는 시도들이었다. 알튀세르는 바로 그러한 거리를 연극 상연의 본질적 차원으로 요구한 것이었다. 뒤에 가서 다시 말하겠지만, 알튀세르가 브레히트를 읽거나 다시 읽는다고 할 때는 알튀세르에게 있어서 거리에 대한 이러한 생각이 점하는 중요성을 명심해야 한다.
다시 알튀세르의 텍스트로 돌아와 보자.
― 알튀세르는 그 작품의 의미가 독창적 형식에 속하는 표현적 전체라는 점에 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거기서 단층을 파악하게 되기 때문이다. 대신에 이는 경우에 따라서는 모든 형식이 의미 유발적임을 긍정하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 전체가 멋들어진 헤겔적 총체성에 속하는 것은 아니다.
― 그 의미는 잠재적인 것으로서, 이야기의 극작법적 짜임 속에서 이해되는 웅성거림의 행위(들) 사이를 순환한다.
― 따라서 이러한 잠재성은 어떤 해석 작업을 전제한다.
― 그래서 결국 그 해석은 알튀세르가 (‘극 자체 안에는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베르톨라치는 당신이 내놓은 해석들을 일체 개의치 않았다.’ 식의) 예상되는 반발에 대비해 지적하는 것처럼, “극중에 나오는 말들, 인물들, 행위들 등의 너머”에서, 즉 “극의 구조를 이루는 근간 요소들 간의 내적 관계” 속에서 행해지는 것이다.
알튀세르는 극 텍스트 안을 순환하는 것, 곧 모순, 간극, 기능 장애, 비대칭 등등을 가려낸 후에 자신의 답을 내놓는다. “진정한 관계를 구성하는 것은 바로 관계들의 부재이다.” 막이 거듭될수록 주고받는 말들의 간격이 점점 더 벌어지는 그 연대기가 공백이 될 때, 달리 말해 반복이 공백이 되고, 알튀세르가 명확히 표현하기로 그에 대한 “의식이 (…) 무로 되돌아가게 만든다”고 한 부동성, 미해결, 공허함 등이 텅 비게 될 때, 드라마의 충만한 시간, 즉 니나, 니나의 아버지, 토가쏘가 살아가는 시간이 뒤를 잇는다. 그 두 가지 시간 간에는, 그러니까 변증법의 부재의 시간과 “자체의 생성 및 결과를 생산하는 데까지 자체의 내적 모순이 밀고 나가는 변증법적인(즉 갈등의) 시간” 간에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우리들의 밀라노≫의 역설은 거기에서 이 변증법이 이를테면 측면에서, 무대 가장자리에서(à la cantonade), 무대의 한 구석 어디에선가, 그리고 막의 끝에서 공연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연극 작품에서 필수불가결하게 보이는) 이러한 변증법을 우리가 아무리 기다려도, 등장인물들은 그것을 조롱할 뿐이다.” 그럼에도 이 부재를 메우기 위해서는 또 다른 “변증법”이 관건이지만, 어쨌든 변증법은 하나의 의식의 특성들 아래에서 드러나는 “지체 속에” 있는, 불안정 속에 있는 변증법이다. 사람들이 다 떠나버린 무대에서의 변증법이라는 너무나도 멋진 이름으로 부를 수도 있겠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변증법은 아버지의 변증법, 그러니까 “현실적”이라 말해진 진정한 변증법에 가닿기 위해 파괴해야만 할 변증법이다. 알튀세르는 전자의 아버지의 변증법으로 하여금 자신의 비변증법성을 시험에 들게 하지 않고서는, 후자의 진정한 현실적 변증법으로 넘어갈 수는 없다고 우리에게 단언한다. 이 비변증법성은 니나가 자신의 아버지와 아버지의 세계, 그 세계의 멜로드라마적 의식, 그 세계의 신화들, “그 세계의 의식에 속한 가소로운 미망들”과 절연함으로써 발견하는 것이다. 니나는 돈의 세계, 비참함의 세계로, 비참함을 드라마의 의식에 이르게 할 수도 있는 그러한 세계로 들어감으로써 이 세계에 눈을 뜨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