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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에게 임금을』(3/5)

연구공간 L 연구자 박채원, 왕세종, 노지현, 이민주 번역


이것은 2013년 3월 3일 저녁 8시 뉴욕 비버가(街) 16번지에서 있었던 대담의 녹취록이다. 토론은 2시간 20분가량 이어졌고, 길게 늘어진 탓에 편집이 되었다. 몇몇 반복되거나 곁가지 논의는 생략되었지만 언급된 대부분의 내용은 그대로 적었다. 토론은 참석한 모든 사람의 동의 하에 녹음되었으며 편집자는 여기에 기록된 대화 참여자 모두에게 연락하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임이 공개 행사였기 때문에 모든 대화자의 신원을 확인할 수 없었고, 그래서 이 녹취록에는 8명의 “익명의 참여자”가 등장한다.

빚에게 임금을,
빚쟁이에게 학생을,
...에게 삶을.

뉴욕 비버가 16번지
2013년 3월 3일 일요일



르네 가브리(Rene Gabri) : 우리는 오늘 밤에 논의할 간단한 화두를 생각했습니다. 이는 제이콥 야콥센이 자기 자신과 관련된 것이자 그가 한동안 관심을 가졌던 일에 대해 말해준 것으로—기본적인 정보를 드리면 우리가 그를 알아온 지는 대략 10년 안팎입니다—, 그 생각이란 그가 『학생에게 임금을』 팸플릿에 이끌렸던 이유, 그가 팸플릿에 관해 가진 몇 가지 의문들입니다. 그래서 아마도 조지 카펜치스와 실비아 페데리치가 약간의 얘기를 해줄 수 있고, 이 의문들 중 일부에 답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모두는 더 나아가는 성찰을 할 수 있고, 우리 자신이 가진 의문을 던질 수 있을 겁니다.

제이콥 야콥센(Jakop Jakobsen) : 감사합니다. 실제로 우리는 이 모임의 짜임새에 관해 매우 느슨한 것이긴 하지만 꽤 많이 논의해 왔습니다. 그런데 논의의 출발점으로 어떤 것이 좋을지에 대해 우리 모두의 의견이 일치한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제가 처음 제시하는 것보다는 더 많은 논의가 오가는 밤이 되길 바랍니다. 제가 제시한 것에 대해 느끼신 바에 대해 묻거나 이야기해주길 바랍니다.

르네 가브리 : 논의 중간에 끼어드세요.

제이콥 야콥센 : 제 생각에 우리가 오늘 밤에 모인 이유는 이 소책자 『학생에게 임금을』 때문입니다. 저는 이것을 몇 해 전 런던에서 열린 아나키스트 도서전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실비아 페데리치와 조지 카펜치스와 알고 지냈기 때문에 실비아에게 편지를 써 이 책을 아는지 물었고, 실비아는 “네, 물론이죠. 그거 조지가 낸 거잖아요”고 말했죠. 제가 그렇게 물은 이유는 『학생에게 임금을』이 실비아의 작업인 ‘가사노동에 임금을’과 연결되고, 그래서 실비아가 잘 알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 팸플릿을 집어든 이유는 (잠시 저에 대해 짧게 말씀드리면) 제가 한동안 교육사나 교육투쟁에 대해 연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1968년에 설립된 실험적 대학인 런던의 반(反)대학(anti-university)에 관한 연구 프로젝트 자료집을 만드는 일을 약 3년간 했습니다. 그것의 실험적 구조를 미약하게나마 드러내고자 했던 이 연구가 언제 실제로 중단됐는지는 분명하진 않습니다. 그것은 학생자치로 운영되었습니다. 이 연구는 또한 그러한 반(反)제도를 서서히 제도권에서 벗어나게 해 런던과 전 세계의 사회조직 안으로 사라지게[스며들게] 만들었습니다. 제 생각에 이런 일을 말씀드리는 것이 중요한 것은 투쟁을 시간—『학생에게 임금을』 팸플릿은 1975년에 만들어졌습니다—과 연결시키고, 또한 투쟁을 공간의 맥락과 연결하기 위함입니다. 저는 줄곧 런던에서 살았고 그곳에서의 교육투쟁을 지켜봤습니다. 그래서 여기 와서 조지와 실비아, 그리고 여러분 모두와 얘기하면서 여기 뉴욕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듣는 일에 큰 관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기서는 말하기보다는 듣는 쪽에 있기를 아주 많이 바랍니다. 여러분이 다른 계획이 없으시다면 지금 이 팸플릿을 함께 읽는 것이 어떨까요?

말라브 카누가 : 돌아가며 읽을까요?

야콥센 : 그러죠.

[『학생에게 임금을』 팸플릿을 단체로 읽음]

야콥센 : 조금 있다 조지에게 다시 묻겠지만, 그 전에 먼저 실비아에게 묻고 싶군요. 자본주의 경제의 틀에서, 공부-노동을 노동으로, 무급노동으로 이해하는 것은 적어도 저에게는 고려할만한 흥미로운 생각입니다. 물론 이것은 생산적 노동과 비생산적 노동의 관계 위에서 당신이 해왔던 투쟁 및 작업 일체와 연결됩니다. 생산적 노동이 임금을 인정받고 그와 연동되는 공장에서의 노동인 반면, 가사노동과 학생노동 등의 재생산노동은 어느 정도는 생산적 노동을 뒷받침하는 노동입니다. 흥미로운 문제는 생산적 노동과 재생산노동의 관계인데, 이때 재생산노동은 가사노동이면서 동시에 학생노동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자본주의적 생산 내에서 학생노동이 무급노동이라는 생각을 반영할 수 있는지 실비아에게 묻고 싶습니다.

실비아 페데리치 : 그것은 집안의 노동을 노동력이 생산되는 보다 광범한 활동의 일환으로 개념화하는 일의 논리적 귀결입니다. 그것은 일괄생산라인이 공장에서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에서도 가동된다는 것을 깨달은 것으로, 집이나 학교는 상품과 이윤을 생산하는 노동자들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가사노동을 노동력을 생산하는 노동으로 재규정하는 것은 학교교육의 기능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공합니다. 학교는 집의 연속입니다. 학교는 미래의 노동자들을 훈련시키고 훈육합니다. 새로운 세대를 훈육하는 것도 가사노동의 중요한 한 측면입니다. 바로 이것이 가사노동을 그토록 어렵게 만드는 이유죠. 가사노동은 육체노동일 뿐만 아니라 사실상 “안돼”, “넌 그걸 할 수 없어”라고 말해야만 하는 끊임없는 분투를 포함합니다. 자기-훈육은 자본주의적 노동조직화와는 독립적일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우리가 우리 아이들을 가르치는 훈육은 아이들이 노동시장에 진입할 때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예측하는 일에 좌우됩니다. 우리의 욕망을 형성하고, 우리가 노동시장의 기대에 부합하는지 확인하는 일은 엄마의 일이자 아빠의 일입니다.
여성들과 페미니즘 운동이 이 점을 깨닫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가사노동에 맞서는 투쟁’이라는 생각은 늘 엄청난 죄책감과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가사노동 거부는 너무나도 많은 죄책감을 짊어지게 하는데, 여성들 자신이 그들의 가족이나 그들이 돌본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의 행복을 약화시킨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노동자를 생산하는 일 혹은 착취당할 운명에 처할 사람을 생산하는 일에게 특별히 요구되는 가사노동의 이러한 측면을 확인하고 그러한 문제를 풀어낼 수 있다면, 그것은 해방의 과정입니다. 우리는 투쟁하는 사람들을 재생산할 수도, 노동시장에 필요한 이들을 재생산할 수도 있음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이를 나누는 선이 늘 분명한 건 아닙니다. 하지만 가사노동에 맞선 투쟁이 우리가 돌보는 사람들에 맞서는 투쟁이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러한 투쟁은 해방적입니다.
그러한 생각은 학교노동에 대한 접근법으로 이어집니다. 우리의 학교노동 대다수는, 우리가 프랑스어를 공부하든 수학을 공부하든, 훈육되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배우리라 기대하는 첫 번째 일입니다. ‘학생에게 임금을’이 우리에게 알려준 것은 학교가 우리를 미래의 고용주를 위해 일하도록 준비시킨다는 점, 우리가 대체로는 공부의 즐거움이 아니라 학위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학교에 간다는 점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알려준 것은 학교가 조직되는 방식이 노동시장의 필요에 좌우된다는 점입니다. 또한 그것은 학생의 경제적 의존성이 어떤 결론에 도달하는지 우리에게 통찰력을 준다는 것입니다. 임금을 벌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돈을 내주는 이들에게 의존하고 그러한 의존에는 불평등한 권력관계가 있습니다. 몇몇 사람들은 “남편이 임금을 벌어오면 당신도 돈을 가지잖아”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여러분은 얼마를 받든 그에 감사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그에 대한 자격을 갖는 게 아닙니다. 학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일해서 임금을 번다면 적어도 가족이나 공동체로부터 일정한 자율성을 갖습니다. 하지만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반드시 다른 사람에게 의존해야 합니다. 더욱이 학생들과 가사노동자들이 그렇듯이 사회적으로 부불노동자로 규정되면 여러분은 또한 값싼 노동이 될 운명에 처하고 일거리를 가질 때마다 다른 노동자들보다는 돈을 덜 받게 됩니다. 가사노동자들의 처지와 학생의 처지 간에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은 바로 여기입니다. 분명한 것은 『학생에게 임금을』을 쓴 『제로워크』 편집진은 ‘가사노동에게 임금을’에 영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조지 카펜치스 : 그렇습니다.

페데리치 : 또한 놀라운 것은 이 팸플릿이 여전히 얼마나 현재적인가하는 것입니다. 특히 이 책 1부에서 여러분은 우리가 이미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와 대면하고 있었음을 보게 됩니다. 1970년대에 여러분은 이미 교육을 자기-투자로 보는 신자유주의의 초입에 있었습니다. 비록 그들이 복지국가나 교육 및 여타 재생산 형태에서의 국가 투자를 해체할 때까지 신자유주의를 완전히 실행할 수는 없긴 했지만 말이죠.

야콥센 : 이 책이 쓰여진 게….

페데리치 : 1975년이죠. 당시는 신자유주의가 만개하기 전이었고,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글은 벽에 적혀있는 형태였습니다. 특히 뉴욕에서 벽에 쓰인 글들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기 시작했죠. “우리는 당신들에게 교육을 빚지지 않았다. 돈을 지불해야 하는 건 당신들이다.”

야콥센 : 여기 계신 분들이 더 잘 아시겠지만, 제가 알기론 뉴욕시립대(CUNY)가 등록금을 받기 시작했던 것이 1976년이었나 그럴 겁니다. 『학생에게 임금을』이 출판되었던 1975년에 그 대학은 돈의 관점에서는 실제로 무료대학이었죠. 그러나 조지, 이 책에서 특히 제 관심을 사로잡은 것은 “교육에 맞서는 교육”이라는 관점이었습니다. 오늘날 재정삭감이나 민영화에 반대하고 제도 보존을 옹호하는 많은 투쟁이 대학 내에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당신이 비판하고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훈육주의적인 제도 모델, 즉 학생을 순종적인 노동자로 형성‧구성‧주조하는 모델에 매여있는 좌파였죠. 이 책에서는 보다 “아나키즘적인” 흐름—당신이라면 그렇게 부르겠죠—이 있는데 반해, 지금 현재는 그런 것이 많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훈육제도에 매달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제도들에서 벗어나거나 그것들을 급진적으로 변혁하는 대신 말이죠. 당신이 제시한 것과 같은 “교육에 맞서는 교육”을 이용해 이 제도들 바깥에서 자기-조직화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왜 그런 것인지 우리에게 좀 더 얘기해주실 수 있나요?

카펜치스 : 『학생에게 임금을』 은 『제로워크』 창간호 원고가 모이던 1975년에 작성되었습니다. 그것은 나와 다른 두 사람 존 윌셔-카레라와 레온시오 셰델(Leoncio Schaedel)이 작업한 것으로, 그들은 매사추세츠 대학 애머스트 캠퍼스의 경제학부 대학원생이었죠. 저는 당시에 뉴욕시립대학교 브루클린 칼리지에서 강의하면서 박사학위 논문을 쓰고 있었습니다. 우리 세 사람 모두는 우리가 두 개의 개념적‧정치적 혁명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묶어주는 정치에 연루되어 있었습니다. 첫째는 모든 부불노동의 세계를 여는 ‘가사노동에 임금을’이었습니다. 이것은 맑스주의적 인식틀 내에서 성장해왔던 우리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는데, 맑스주의적 틀은 임금노동이 자본주의 사회의 토대라고 보았으며, 또한 임금 노동 계급을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사회로 이행시키는 토대로 보았죠. … [밖에서 쓰레기차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수거 노동을 했고, 그것이 지나갈 때까지 카펜치스는 목소리를 높였다.] ‘가사노동에 임금을’은 노동의 본성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인식방식을 창출했습니다. 두 번째 개념적‧정치적 혁명은 [부분적으로 들리지 않음] 노동 거부를 계급투쟁이 작동하는 토대로 위치시켰습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계급투쟁은 자신의 뿌리에 노동과의 동일시가 아니라, 노동 거부를 둡니다. 후자[노동과의 동일시]는 오랜 기간 맑스주의 정치와 좌파 정치를 떠받치는 기둥 중 하나였는데, 예컨대 그것은 자유주의적 교육관과 많은 관련이 있었습니다. 이 팸플릿은 이러한 태도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우리가 자본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제공하지 않는가’나 ‘우리가 노동자와의 동일시를 얼마나 많이 거부하는가’가 중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이 『학생에게 임금을』의 작동방식, 사유방식에서 아주 기본적인 것이었습니다. … 제게 그걸 주시겠습니까? [카펜치스가 팸플릿 쪽으로 손을 뻗음]

『학생에게 임금을』을 쓴 『제로워크』 편집진이 영감을 받았다는 실비아 페데리치의 ‘가사노동에게 임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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