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인-무브

미하일 쿠즈민의 <날개>와 러시아 퀴어 문학 (3) 

 

 

이종현 | 서교인문사회연구실

 

 

1편 읽기-> 웹진 인-무브 - 미하일 쿠즈민의 <날개>와 러시아 퀴어 문학 (1) (tistory.com)

2편 읽기-> 웹진 인-무브 - 미하일 쿠즈민의 <날개>와 러시아 퀴어 문학 (2) (tistory.com)

 

 

파르노크는 1933년에 죽습니다. 이 해에 러시아 퀴어의 역사에서 큰 비극이 일어납니다. 바로 스탈린이 남성 간의 동성애를 형법상 범죄로 규정합니다. <어머니>를 쓴 고리키는 논문 <프롤레타리아 휴머니즘>에서 동성애를 서구 자본주의의 퇴폐적인 문화로 규정하고 스탈린의 결단을 환영합니다. 이후 많은 사람들이 동성애를 저질렀다는 죄목으로 수용소에 끌려갑니다. 그 중 대표적인 작가로 겐나디 트리포노프(Геннадий Трифонов, 1945-2011)가 있습니다. 사진을 보시면 이제 좀 우리 시대의 옷차림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레닌그라드에서 유력했던 작가 베라 파노바의 번역가로 일하면서 동성애 주제의 시들을 지하로 유통시켰습니다. 나중에 파노바가 죽자 그는 아무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KGB에게 끌려가 고문당하고 시베리아 수용소 4년형을 받습니다. 이런 식으로 동성애를 했다는 죄목으로 수용소에 있었던 예술가로는 아르메니아 출신 영화감독 세르게이 파라자노프도 있습니다. 그의 영화 <석류의 빛깔>이 유튜브에 영어자막과 함께 있으니 꼭 보시기 바랍니다. 신비롭고 아름다운 영화입니다.

 

세르게이 파라자노프(Սերգեյ Փարաջանով, 1924-1990)

 

영화 <석류의 빛깔>

링크: COLOR OF POMEGRANATES Цвет граната (SAYAT NOVA) Sergei Parajanov ENGLISH SUBTITLES FULL HD 1080P - YouTube

 

 

파라자노프가 떠올라서 트리포노프의 시 중에서 연작 <촛불에 비친 트빌리시>를 옮겨보았습니다. 트빌리시는 파라자노프의 나라 아르메니아 옆 나라이니까요. 쿠즈민이나 파르노크나 츠베타예바가 보여주는 재기발랄함은 없고 비극성이 한층 강합니다. 특히 마지막 두 구절이 그렇지요. “나는 네가 옆에 있다 해도 – / 죽을 때까지 비명 지르지 않고 침묵하면 된다.” 이 연작은 사이먼 카를린스키의 도움으로 미국의 게이잡지 <Gay Sunshine Journal>에 실리면서 소비에트의 동성애 탄압 문제를 서방에 알리게 됩니다. 다음은 <촛불에 비친 트빌리시>의 두 번째 시입니다. 

 

 

2

Бессонные ночи Тбилиси...

Лишь в нежности и наготе

грузинскому небу присниться

хотелось бы заново мне.

Как реки - Кура и Арагва -

хочу овладеть я, поверь,

единственным подвигом - правдой

всегдашних удач и потерь.

Целую тебя - это можно! -

в пробел твоей смуглой судьбы.

И собственной чувствую кожей,

сколь неодинаковы мы.

Тебе только дерзости надо,

игры при закрытых свечах.

А мне - если даже ты рядом -

весь век мой от крика молчать.

 

2

잠이 오지 않는 트빌리시의 밤...

발가벗고 나른할 뿐인 나는

다시 태어나 조지아

하늘의 꿈이 되련다.

쿠라 강과 아라그바 강을 따라, 정말이지

세상에서 유일하게

영웅다운 일, 언제나 존재하는

성취와 상실의 진리를 손에 쥐련다.

너에게 입맞춤한다, - 이것만큼은 허락되었으니! -

너의 거무스름한 운명의 공백에 입맞춤한다.

살갗에 느껴진다,

우리 얼마나 다른지.

너는 뻔뻔하기만 하면 된다,

촛불이 사그라지면 재미있게 놀면 된다.

나는 네가 옆에 있다 해도 -

죽을 때까지 비명 지르지 않고 침묵하면 된다.

 

 

그런데 전 트리포노프의 진지한 시들도 좋지만 예브게니 하리토노프(Евгений Харитонов, 1941-1981)의 통통 튀는 작품들이 더 좋습니다. 요절한 배우이자 화가이자 작가입니다. 

 

 

나눠드린 번역문 3쪽의 <어느 소년의 이야기>와 <리플릿>의 발췌문을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가 남긴 작품들을 모아서 출간한 작품집 <가택연금(Под домашним арестом)>에 실린 글들입니다. 제가 읽는 동안 지금 돌고 있는 사진집을 훑어 보시기 바랍니다. 사진작가 예브게니 픽스가 소련 시절 모스크바에서 동성애자들이 만나던 곳의 모습을 찍은 사진집 <모스크바>(2012)입니다. 

 

"나는 38일이 되면 꼭 모스크바에 가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인민화가도 여러 박물관을 둘러보라며 머물 곳의 주소를 주었다. 그렇게 나는 모스크바 시내에 이르렀고 가장 중요한 일은 사람을 사귀는 것이었다. 마지막 날 저녁 콧수염을 짧게 기른 미샤라는 남자가 유쾌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나는 그가 단박에 좋아져서 그를 따라 집으로 갔다. 그는 누나와 매형과 함께 살았는데, 그들은 집에 없었다. 우리는 욕실에 들어갔고 그는 내 뒤에 젤을 바르더니 바로 찔러 넣었다. 그가 너무 마음에 든 나머지 그의 것을 입에 넣고 싶다는 마음도 살짝 들었다. 하지만 그러지는 않았다! (...) 희한하게도 누나와 매형은 집에 돌아오지 않았고 그렇게 우리는 함께 밤을 보냈다. 다음날 나는 비행기를 타야 했지만 마지막까지 그와 헤어질 수 없었다. 간신히 비행기에 올랐다.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머릿속에는 오직 그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우리 도시에도 봄이 찾아왔고 나는 시내를 돌아다니며 그를 닮은 사람을 찾아보았지만 헛수고였다. 우리는 편지를 주고받았다. 모스크바에 다시 갈 수 있는 51일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 11월 연휴를 맞아 나는 이젭스크로 돌아와 친구들을 만났다. 인민화가도 만났고 사샤도 만났다. (...) 사샤는 교회에서 일하려고 온갖 애를 썼다. (...) 사샤는 자고르스크에 가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다. 바로 그곳에 그의 행복이 있었다. 신학생들이며 수도사들은 말할 것도 없고 교회 곳곳에서 남색이 꽃피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소년의 이야기-“나는 어떻게 지금의 내가 되었나Рассказ одного мальчика-“Как я стал таким중에서) 

 

"물론 당신네 일반들의 눈으로 보면 이 모든 것이 사랑의 의미를 지니지 않겠지! 지녀서도 안 되겠지! 안 그러면 세계는 두 개의 극으로 갈라져 성()의 열정이 자기 안에만 갇힐 테고 소돔과 고모라가 도래할 테니! (...) 선택받은 우리의 사명은 오직 사랑으로 (그것도 해소되지 않는 영원한 사랑으로) 살아가는 데 있다. (...) 우리 꽃들의 결합은 찰나의 것, 그 어떤 결실이나 강제에 묶여있지 않다. (...) 우리는 아무도 모르게 세계의 취향을 조종한다. 당신네가 아름답다고 여기는 모든 것은 우리가 정한 것인 경우가 흔한데도 당신네는 이걸 추측조차 못 한다 (로자노프는 이걸 간파했다). (...) 경건하고 정상적이고 수염 난 모든 것들이 지상의 모범으로 세워졌다. 신은 이 모범을 사랑의 도장으로 공증(公證)하기는 하나 마음으로는 그다지 사랑하지 않는다." (리플릿 Листовка」중에서)

 

 

예브게니 픽스의 사진집 <모스크바> 중에서. 소련 시절 동성애자들이 짝을 찾던 곳 중 하나인 스베르들로프 광장. 

출처: Cruising past: photographer Yevgeniy Fiks resurrects Moscow’s forgotten gay history — The Calvert Journal

 

 

어떠신가요? 지방 도시에 사는 평범한 사춘기 소년의 성적 모험담으로 읽히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소련의 세시풍속이 담겨있습니다. 38일은 여성의 날이고, 51일은 노동절이고, 117일과 810월 혁명 기념일입니다. 1917년 혁명은 구력 1025일과 26일에 일어났고, 이 날은 신력으로 117일과 8일입니다. 하리토노프의 성적 탐색은 소련의 기념일들에 따라 구조화됩니다. 게다가 그가 남자에 대한 사랑에 눈을 뜬 것은 모스크바에서 온 인민화가덕분입니다. 인민배우, 인민가수, 인민화가... 북한의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많이들 들어보셨겠지요. 국가가 부여하는 이 칭호가 지금의 러시아에도 존재 합니다. 여기에 옮기지는 않았지만 예순 살 정도 된 인민화가와 하리노토프는 고대 그리스의 나이든 남성과 소년의 관계처럼 그려집니다. 소련의 현실과 고대 그리스의 성 풍속이 묘하게 겹쳐집니다.

 

, 한 가지 재밌는 것은 바로 하리토노프가 어린 시절 함께 자위를 하며 놀던 친구 사샤가 바로 정교회 신부가 되는 대목입니다. 사샤 역시 게이인데요, 그는 고대 러시아 역사 매니아입니다. 결국 그는 정교회 신부가 되는데, 이때 그가 가려고 하는 자고르스크는 오늘날 세르기예프 포사트라는 옛 이름을 되찾은 러시아 정교회의 총본산입니다. 자고르스크라는 소련식 이름, 러시아 정교회, ‘꽃피는 남색’. 이 세 가지가 겹치며 묘한 분위기를 풍깁니다. 하리토노프의 산문이 독특한 까닭은 동성애를 이성애보다 우월한 존재적 지위로 파악하려 했다는 데 있습니다. <리플릿>의 마지막 구절이 저는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신은 이 모범을 사랑의 도장으로 공증하기는 하나 마음으로는 그다지 사랑하지 않는다.”

 

세르기예프 포사트에 있는 트로이체-세르기예프 대수도원

 

 

일단 이렇게 러시아 퀴어들이 등장하는, 천년 간의 문학을 훑어보았습니다. 포스트소비에트의 러시아 퀴어에 대해서는 일단 오늘의 주인공 쿠즈민에 대한 얘기를 조금 하고 나서 하겠습니다.

 

 

--- 4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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