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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 경험과 과학 La vie : l’expérience et la science[1]

 

 미셸 푸코

번역 오규진

 

 

돋움체 : 1978년 서문과 동일한 부분

돋움체(밑줄) : 1985년 논문에서 수정된 부분

돋움체 : 1985년 논문에서 제거되었지만, 이해를 위해 1978년 서문의 내용을 남긴 부분

〔    〕 : 이해를 위해 역자가 임의로 개입한 부분

계몽 : 굵은 글씨로 강조된 계몽은 독일어 Aufklärung의 번역어이고, 그 외 강조 표시되지 않은 계몽은 소유형용사 및 소유대명사를 번역한 경우를 제외하면 프랑스어 Lumières의 번역어이다.

 

 

 

« La vie : l’expérience et la science(「생명 : 경험과 과학」) », Revue de métaphysique et de morale(『형이상학과 도덕』), 90e année, n° 1 : Canguilhem, janvier-mars 1985, pp. 3-14.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는 그의 스승이었던 조르주 캉길렘Georges Canguilhem에게 헌정되는 『형이상학과 도덕』 특별판에 새로운 글을 투고하려고 했다. 그러나 새 글을 쓸 힘이 남아 있지 않았던 푸코는 『정상적인 것과 병리적인 것』 영문판 서문으로 쓴 글을 수정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푸코는 이 글을 1984년 4월 말에 제출했으며, 이에 따라 이 글은 푸코가 출판을 허락한 마지막 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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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 논리학자들은 거의 없는 반면 과학사학자들은 무시할 수 없는 정도의 수가 있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또 우리는 이 과학사학자들이 제도권 철학 — 교육이나 연구 — 에서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또 우리는 조르주 캉길렘Georges Canguilhem이 최근 20년에서 30년 동안 수행했던, 그리고 제도권 〔철학〕의 경계선까지 나아가서 수행했던 작업이 무엇이었는지는 아마 정확히 알지 못할 것이다. 아마 그것보다 더 시끌벅적한 극장들이 있었을 것이다. 정신분석, 마르크스주의, 언어학, 민족학 말이다. 그러나 프랑스 지성 환경의 사회학이나 프랑스 제도권 대학의 기능, 문화적 가치들의 프랑스적 체계라는 영역에서 확인되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잊지 말자. 즉 저 기이했던 60년대에 정치 및 과학과 관련해 이루어진 모든 논의들에서 철학의 역할이 — 나는 단지 대학 교육을 철학과에서 받았던 사람들만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 중요했다는 것이다. 어쩌면 사람에 따라서는 지극히 중요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철학자들 전부 또는 대부분은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캉길렘의 가르침 및 저서를 참조했다.

 

이로부터 한 가지 역설이 생겨난다. 과학사는 어쨌든 〔모든 철학적 논의에 등장할 만큼〕 화려한 학문 분야로는 여겨지지 않으며, 캉길렘은 바로 이러한 과학사라는 특수한 영역에 자신의 저작을 몸소 엄격히 제한했고 오직 그 영역만을 향하도록 주의를 기울였다. 그런데도 캉길렘은 결코 나타나지 않으려고 스스로 철저히 주의를 기울였던 논쟁들에 어떤 방식으로든 등장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캉길렘을 따로 떼어 놓으면 알튀세르Louis Althusser, 알튀세르주의, 그리고 프랑스 마르크스주의자들 사이에서 벌어졌던 일련의 모든 논의들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그다지 없을 것이다. 또 부르디외Pierre Bourdieu와 카스텔Robert Castel, 파스롱Jean-Claude Passeron 같은 사회학자들의 고유한 특징, 이들을 사회학이라는 영역 안에서 그렇게나 두드러지게 만들어주는 것 파악하지 못할 것이다. 또한 당신은 정신분석가들, 특히 라캉Jacques Lacan주의자들에 의해 이루어진 이론적 작업의 전모를 놓칠 것이다. 더 나아가서 68년 운동에 선행했거나 이에 뒤따라 일어난 사상적 논쟁 전체에서,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든 캉길렘에게 교육 받은 사람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종전 후 수십 년 동안 마르크스주의자와 비마르크스주의자, 프로이트주의자와 비프로이트주의자, 분과학문의 전문가와 철학자, 제도권 학계에 있는 사람과 그 바깥에 있는 사람, 이론가와 정치가를 대립시킬 수 있었던 간극을 무시하지 않고도 나는 이러한 모든 대립을 가로지르는 새로운 분할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것은 경험, 의미sens, 주체의 철학과 지식, 합리성, 개념의 철학을 나누는 선이다. 앞의 것은 사르트르Jean-Paul Sartre와 메를로-퐁티 Maurice Merleau-Ponty의 계열이고 뒤의 것은 카바예스Jean Cavaillès, 바슐라르Gaston Bachelard, 쿠아레Alexandre Koyré, 캉길렘의 계열이다. 아마도 우리는 저 멀리서 온 이 간극의 흔적을 찾아 19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베르그송Henri Bergson과 푸앙카레Henri Poincaré, 라슐리에Jules Lachelier와 쿠튀라Louis Couturat, 멘 드 비랑Maine de Biran과 콩트Auguste Comte까지 말이다. 20세기에도 그 간극은 아무튼 상당한 정도로 벌어져 있었고, 그 결과 현상학 역시 바로 그 간극을 통해 프랑스에 수용되었다. 1929년 강연에 수정 및 번역을 가한 직후 출판된 『데카르트적 성찰』[2]은 곧장 독해 가능성의 두 가지 초점을 나누었다. 하나는 주체의 철학이라는 방향으로 후설을 급진화하려고 했고, 이윽고 『존재와 시간』[3]이 던진 질문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이것이 사르트르의 1935년 논문 「자아의 초월성」[4]이다. 다른 하나는 후설 사유의 근원적 문제인 형식주의와 직관주의의 문제로 되돌아가게 되는데, 이것은 1938년 카바예스의 박사학위 주논문 「공리적 방법과 형식주의」와 부논문 「추상적 집합이론의 형성에 대한 고찰」이 된다.[5] 이것들이 아무리 변동되고 가지를 내고 상호작용하며 심지어 서로 접근할 수 있었다 해도, 이 두 형식의 사유는 프랑스에서 두 가지의 축을 이루었고 이는 최소한 한동안은 상당히 크게 이질적인 것으로 남았다.

 

언뜻 보기에 후자의 사유는 완전히 이론가의 몫인 동시에, 가장 사변적 작업에 치우쳐 있는 관계로 직접적인 정치적 문제제기interrogation로부터도 역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2차대전 시기, 마치 합리성의 토대에 대한 질문이 그 합리성의 현행적actuel 실존 조건들에 대한 문제제기와 분리될 수 없다는 듯이, 가장 직접적으로 싸움에 참여했던 것이 바로 후자의 사유이다. 또한 단순히 대학의 위기이기만 했던 것이 아니라 지식의 지위 및 역할의 위기이기도 했던 1960년대의 위기 한가운데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 역시 후자의 사유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성찰 유형이 어떻게 자기 자신만의 고유한 논리를 따르면서도 이처럼 현재와 깊숙이 연결된 채 존재할 수 있었는지를 자문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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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주요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다음에서 기인할 것이다. 과학사의 철학적 위용은, 18세기 철학에 아마도 다소 은밀하게 또 우연히인 듯 도입된 주제 중 하나를 과학사가 이용한다는 사실에서 유래한다. 이 시기, 처음으로 우리는 합리적 사유에 그 본성, 토대, 힘과 권리에 대한 질문을, 뿐만 아니라 그 역사와 지리적 위치에 대한 질문을, 그에 인접한 과거 및 그 실행 조건들에 대한 질문을, 그것의 순간moment, 장소, 현행성actualité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철학은 이 질문을 통해 자신의 현재적 형식에 대한, 그리고 자기가 〔처해 있는〕 맥락과의 관계에 대한 핵심적인 문제제기를 수행했는데, 이 질문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월간 베를린』에서 ‘계몽이란 무엇인가?’를 주제 삼아 이루어진 논쟁이다. 이 질문에 대해 멘델스존Moses Mendelssohn이, 뒤이어 칸트Immanuel Kant가 각자의 입장에서 응답해 왔다.[6]

 

처음에 이 질문은 아마 비교적 부수적인 문제제기로 이해되었던 것 같다. 이 질문을 통해, 우리는 철학이 가질 수 있는 형식에 대해, 그 순간moment의 형상에 대해, 그리고 우리가 기대해 마땅한 결과effet들에 대해 질문했다. 그러나 이윽고 드러난 것은 바로 우리가 철학에 대해 제출한 답변이 완전히 달라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것이었다. 계몽Aufklärung은 순간으로, 그러니까 철학이 한 시대를 결정짓는 형상으로 성립될 가능성을 찾은 순간으로, 그리고 이 시대가 〔다시〕 이 철학의 실현 형식이 되는 순간으로 간주되었다. 또한 철학은 그야말로 그 철학이 등장한 시기에 고유한 특정 특징들의 결합이라고, 그리고 그 시기에 상응하는 형상이자 그 시기의 체계화이며 그 시기에 대해 성찰한 형식이라고 충분히 이해될 수 있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이번에는〕 그야말로 시대의 근본적 특징들을 통해 철학의 본질이었던 것이 돌출하고 드러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이로써 철학은 한 시대의 의미 작용signification을 어느 정도 드러내는 요소로도, 또 반대로 각 시대가 가져 마땅한 형상을 결정하는 일반 법칙으로도 나타나는 것이다. 따라서 철학을 역사 일반histoire générale이라는 틀에 따라 독해하는 것과, 철학을 모든 역사적인 것들의 잇따름을 해독하는 원리로 해석하는 것은 동시에 가능해진다. 그리고 그 결과, 철학에게 〔다음과 같은〕 ‘현재의 순간moment présent’이라는 질문은 더 이상 철학과 분리될 수 없는 문제제기가 된다. 이 ‘순간’은 어떤 점에서 역사 일반의 과정에 속하며, 또 철학은 어떤 점에서 역사 자체가 그 역사의 조건과 함께 해독되어야 하는 지점이 되는가?

 

따라서 역사는 철학의 핵심 문제 중 하나가 되었다. 우리는 아마도 계몽에 대한 질문이 왜 결코 사라지지 않은 채 독일 및 프랑스의, 그리고 앵글로색슨 국가들의 전통에서그토록 다른 운명을 맞게 되었는가를 탐구해야 할 것이다. 또 우리는 아마도 이 계몽에 대한 질문이 왜 여기저기서 그토록 다양한 연대에서 그토록 상이한 영역들에 관심을 기울였는가를 탐구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독일 철학은 아무튼 무엇보다도 사회에 대한 역사적 • 정치적 고찰을 통해 계몽에 대한 질문을 구체화했다(그 중심 문제는 종교개혁이라는 특수한 순간과, 국가 및 경제와 관계 맺고 있는 종교적 경험이다). 우리는 헤겔 이후의 헤겔주의자posthégélien들로부터 포이어바흐Ludwig Feuerbach, 마르크스Karl Marx, 니체Friedrich Nietzsche와 베버Max Weber를 거쳐 프랑크푸르트 학파와 루카치György Lukács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러한 경향을 목격할 수 있다. 프랑스에서는 무엇보다도 과학사가 계몽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떠맡았다. 어떤 면에서 생-시몽Saint-Simon의 비판과 콩트Auguste Comte 및 그 후계자들의 실증주의는, 멘델스존과 칸트의 문제제기를 제 사회의 역사 일반이라는 차원에서 다시 수행하는 하나의 방식이었던 것이다. 지식과 믿음croyance, 인식의 과학적 형식과 표상의 종교적 내용, 즉 전과학적인 것으로부터 과학적인 것으로의 이행, 전통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합리적 지식권력의 구축, 관념과 믿음의 역사 한가운데에서 이루어진, 과학적 인식에 적합한 유형의 역사의 출현, 합리성의 기원과 문턱seuil. 이러한 형태로 실증주의 — 와 그에 반대하는 이들 — 를 통해, 뒤엠Duhem과 푸앵카레Jules Poincaré를 통해, 과학주의에 대한 소란스런 논쟁과 중세 과학에 대한 학구적인 논의를 통해, 계몽에 대한 질문은 프랑스에 도입되었다. 그리고 〔프랑스에서〕 오랫동안 주변부에 머물러 있던 현상학이 마침내 〔중심으로〕 침투해 들어온 것은, 아마도 후설이 『데카르트적 성찰』과 『위기』〔『유럽학문의 위기와 선험적 현상학』〕[7]에서 이성의 보편적 전개라는 서양의 기획과 과학의 실증성, 철학의 급진성의 상호 관계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 시작하면서부터였을 것이다.

 

내가 이러한 논점을 주장하는 이유는 지난 150년간 과학사가 프랑스에서 그 자체로 철학적 쟁점들을 제시해 왔다는 것은 보이기 위해서인데, 손쉽게 확인된다. 쿠아레Alexandre Koyré나 바슐라르, 카바예스, 캉길렘의 저작은 과학사의 정확하고, ‘국지적’이며, 연대적으로 분명하게 한정된 영역을 준거점으로 삼고 있지만, 그것들은 현대 철학에 본질적인 이 계몽의 문제를 서로 다른 측면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전개함으로써 주요 철학적 작업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우리가 프랑스 바깥에서 쿠아레, 바슐라르, 카바예스, 캉길렘의 작업에 상응하는 것을 찾아본다면 아마 프랑크푸르트 학파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들의 스타일, 즉 연구를 수행하는 방식과 다루는 영역은 아주 다르다. 그러나, 한쪽이 데카르트의 기억에 사로잡혀 있고 다른 한쪽이 루터의 망령에 사로잡혀 있기는 하지만, 결국 이들은 동일한 종류의 질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제기는 합리성에 대해 제기되어야 하는 것들이다. 그것은 전적으로 우연성 속에서 전개되는 동시에 보편을 주장하는 합리성, 자신의 단일성unité을 단언하면서도 전면적인 수정이 아니라 부분적인 수정을 통해서만 나아가는 합리성, 자신의 본유적인 최고권souveraineté으로 자신을 유효하게 만들지만 그 역사에서는 그것을 예속하는assujettir 관성이나 하중, 강압coercition과 분리될 수 없는 합리성이다. 독일의 비판이론에서와 마찬가지로 프랑스의 과학사에서도 결국 검토의 관건이 되는 것은 이성, 다시 말해서 그 구조의 자율성이 교조주의와 전제주의의 역사를 동반하는 이성이며, 그 결과 자기 자신으로부터 해방되는 데 이른다는 조건 하에서만 〔다른 이들의〕 해방이라는 효과를 가질 수 있는 이성이다.

 

20세기 후반을 특징짓는 일련의 과정들은 계몽이라는 질문을 현대적 관심사의 핵심으로 끌고 왔다. 첫 번째는 생산력의 발달 정치적 결정의 게임jeu에서 과학적이고 기술적인 합리성이 갖는 중요성이다. 두 번째는 ‘혁명’의 역사로, 이 혁명에 대한 희망이 18세기 말 이래로 합리주의 자체에 의해 품어져 왔던 것인데, 우리는 〔다른 한편에서〕 전제주의의 결과로 혁명에 대한 희망이 길을 잃게 된 데 대해 이 합리주의가 어느 정도로 관여되었는지 질문을 던질 자격이 있다. 세 번째이자 마지막은 식민 지배 시대의 종말기에 이르러 서양의 문화, 과학, 사회적 조직화, 그리고 마침내는 서양의 합리성 자체가 보편적인 타당성을 점유하고 있다고 주장할 권리가 어디 있는가를 서양에서 그리고 서양에 대해 따져 묻는 운동이다. 그것은 경제적인 지배에 그리고 정치적 헤게모니에 결합된 신기루와는 다른 것인가? 등장하고 2세기가 지나 계몽은 다시 돌아왔다. 〔그것도〕 그러나 그것은 서양의 현행적 가능성과 서양이 접근할 수 있는 자유를 서양이 의식하는 하나의 방식으로서 돌아온 것은 결코 아니며 동시에, 서양의 한계와 서양이 남용사용해 온 권력에 대해 자문하는 하나의 방식으로서 또한 돌아왔다. 〔즉 계몽은〕 전제주의로서의 이성인 동시에 빛으로서의 이성인 이성〔을 문제삼는 것이다〕.

 

과학사가, 특히 조르주 캉길렘이 과학사에 부여한 특수한 형식을 통해, 비록 그의 역할이 숨겨진 채로 남아 있더라도, 현재 프랑스에서 진행중인 논쟁에서 대단히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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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이루어진 과학사에서 조르주 캉길렘은 주목할 만한 관점의 이동을 가져왔다. 아주 거칠게 말하자면, 과학사는 몇몇 ‘고귀한’ 분과 학문에 의해 (대체로, 아니면 배타적으로) 오랫동안 점유되었다. 그 고귀한 분과 학문은 자신의 위엄을 자신의 오랜 토대, 고도의 형식화, 수학화의 적절성, 제 과학의 실증주의적 위계 안에서 점유해 왔던 특권적 위치에서 가져왔다. 그리스인들로부터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에 이르는 과학인식들 가까이에, 요컨대 철학과 한 몸이 되어 있는 이러한 과학인식들 가까이에 위와 같은 방식으로 최대한 가까이 머묾으로써, 과학사는 과학사 자신과 철학의 관계에 대한 질문으로서 과학사 자신에게 핵심이 되는 질문을 회피했다. 캉길렘은 이 문제를 상세히 검토했다. 캉길렘은 연구의 핵심을 생물학과 의학의 역사에 집중시켰다. 그는 어떤 과학의 전개가 제기하는 문제들의 이론적인 중요성이 그 과학 자신에 의해 달성될 수 있는 형식화의 정도에 반드시 직접적으로 비례하지는 않음을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그는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수학, 천문학, 갈릴레이의 역학, 뉴턴 물리학, 상대성 이론 등의) 과학사를, 인식이 훨씬 덜 연역적이고 외부적인 과정(경제적 자극이나 제도적인 뒷받침)에 보다 좌우되고 상상이라는 위력prestige에 훨씬 더 오랜 기간 연결된 채 있었으며 철학적으로 훨씬 덜 관례적인 일련의 질문을 던졌던 영역으로 끌어내렸다.

 

그러나 이러한 전치를 수행하면서 캉길렘은 상대적으로 무시된 영역을 재평가하는 것 이상의 일을 수행했다. 그는 단순히 과학사의 장을 넓힌 것만은 아니었다. 그는 몇 가지 본질적인 점에 있어서 분과 학문 자체의 틀을 다시 짰다.

 

1. 먼저 그는 ‘불연속성’의 주제를 다시 거론하였다. 이 오래된 주제는 과학사 탄생과 거의 동시대일 정도로 매우 일찍 등장했다. 퐁트넬Fontenelle이 이미 말했던 것처럼 불연속적 역사의 특징은, 어떤 과학이 ‘무로부터 출발해’ 갑작스럽게 형성된다는 것에, 거의 기대하지 않았던 진보가 지극히 빨리 이루어진다는 것에, 또 과학자들〔의 행동〕을 유발할 수 있었던 ‘공유된 방법usage commun’ 및 동기로부터 과학적 인식을 구분하는 간격에 있다. 나아가 이러한 역사의 논쟁 형태는 ‘편견’ • ‘저항’ • ‘장애물’에 반한 싸움을 끊임없이 열거한다.[8] 쿠아레와 바슐라르가 공들여 다듬은 이 동일한 주제를 다시 취하면서, 캉길렘은 불연속성을 탐지해내는 것이 그에게 전제도 아니고 결과도 아니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것은 차라리 ‘수행 방식manière de faire’이자 방법으로, 그것이 과학사와 한 몸이 되는 이유는 과학사가 다뤄야 하는 대상 자체가 그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러한 과학사는 참인 것le vrai의 역사도 참이 서서히 현현하는 역사도 아니다. 오늘날의 지식이 마침내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진실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그 진실에서 출발해 오늘날의 지식이 과거를 평가할 수 있다고 상상하지 않는 한, 그 역사는 사물이나 지성에 이미 항상 각인되어 있었던 진실에 대한 점진적인 발견을 열거한다고 주장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사는 관념들과 그 관념들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조건들의 순수하고 단순한 역사도 아니다. 과학사에서 진실이 〔이미〕 획득된 것으로 주어질 수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과학사와〕 참의 관계가, 그리고 〔과학사와〕 참-거짓 이항대립의 관계가 생략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이 참과 거짓의 질서를 참조하는 한에서만 과학사는 자신의 특수성과 중요성을 가질 수 있다. 어떠한 형태로? ‘진실 진술 담론discours véridiques’의 역사를 써야 한다고 생각함으로써, 다시 말해 자신을 수정하고 교정하며 ‘참을 말한다dire vrai’는 과업을 목표하는 정교구성 작업 전체를 자기 자신에 대해 수행하는 담론의 역사를 써야 한다고 생각함으로써. 어떤 과학의 서로 다른 순간들이 서로에 대해 가질 수 있는 역사적 관계은, 수정, 개정, 근거fondement의 새로운 갱신, 층위échelle의 변화, 새로운 유형의 대상으로의 이행이 구성하는, 즉 카바예스가 말하는 ‘심화 연구와 정정을 통한 영속적 내용 재검토’가 구성하는 이러한 불연속성이라는 형식을 필연적으로 가진다. 오류는 그림자로부터 점차적으로 생겨나는 보이지 않는 진실의 힘에 의해 제거되는 것이 아니라, ‘참을 말하는’ 새로운 방식의 형성에 의해 제거된다.[9] 18세기 초에 과학사가 형성될 수 있었던 조건의 하나는, 캉길렘이 말하듯이 최근에 ‘과학 혁명’ — 대수기하학 혁명과 미적분 혁명, 코페르니쿠스와 뉴턴의 우주론 혁명 — 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우리가 의식하고 있었다는 것이다.[10]

 

2. ‘진실 진술 담론의 역사’를 말하는 사람은 또한 회귀적récurrent 방법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과학사가 말하는, 오늘날 마침내 인정된 진리가 어떤 순간 이래로 예견되었고 어떤 길을 따라 걸어야 했으며, 진리를 발견하고 보여주기 위해 어떤 오류집단groupe을 쫓아내야 했는가? 라는 의미가 아니다. 반대로 그것은 이 진실 진술 담론의 잇따른 변환이 그 담론의 역사 자체의 재구성을 끊임없이 산출한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서 오랫동안 막혀 있던 곳이 어느 날 출구가 되고, 부수적인 실험이 그 주위로 다른 모든 것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는 중심적인 문제가 되며, 아주 조금 분기해 나간 한 걸음이 근본적인 단절rupture이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비세포발효의 발견은, 파스퇴르주의 미생물학이 지배적이던 동안에는 부수적인 현상이었지만, 효소 생리학이 발달한 이후에는 비로소 〔생물학의 역사에서〕 본질적 단절 지점이었던 것으로 이해된다.[11] 요컨대 불연속성의 역사는 단번에 완전히 획득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 자체로 ‘비영속적’이고 불연속적이며, 끊임없이 새로운 대가를 치르며 다시 쓰여짐이 분명하다.

 

이러한 사실로부터, 과학이 각 순간에 자발적으로 자기 자신의 역사를 만들고 또다시 만들며, 따라서 자신이 하고 있는 연구에 기반해 과거를 재구성하는 과학자 자신만이 유일한 과학사학자로 인정될 수 있을 것이라고 결론 내려야 하는가? 캉길렘에게 있어 문제는 전문 직업의 문제가 아니라 관점의 문제이다. 과학사는 과거의 과학자들이 믿을 수 있었거나 증명할 수 있었던 것들을 한군데 모으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식물생리학의 역사는

 

“때로는 풀, 때로는 식물, 때로는 채소라고 불린 대상들에서 구조와 기능의 관계를 추측하고 관찰하고 실험한 바를 가지고 식물학자, 의사, 화학자, 원예가, 농경가, 경제학자 등의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기록할 수 있었던 모든 것들을”[12]

 

되새김질함으로써 쓰여지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과학사는 현행적으로 유효한 언표énoncé나 이론의 집합으로 과거를 재차 걸러냄으로써, 그리고 그렇게 해서 ‘거짓’이었던 것 안에서 후에 참이 될 것을 찾아내고 참이었던 것 안에서 추후에 명백한 오류가 될 것을 찾아냄으로써 쓰여지는 것도 아니다. 이것이 캉길렘 방법론의 근본적인 논점 중 하나이다.

 

과학사는 오직 순수 역사가와 과학자 자신 사이에서 〔역사적〕 인식론자épistémologue[13]의 관점에 설 경우에만 특수성을 갖는 것으로서 구성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은 어떤 과학적 지식 상의 다양한 일화épisode들 가운데 ‘숨겨진, 질서 정연한 길 내기cheminement’를 나타나게 만든다. 이것은 언표와 이론과 대상을 선택하고 제거하는 과정이 각 순간에 어떠한 규범norme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규범은 이론적 구조나 현행적 패러다임과 동일시될 수 없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과학적 진리는 그 자체로 하나의 일화이기 때문이며, 말하자면 고작해야 잠정적인 귀결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과거로 돌아가 과학의 역사를 유효하게 추적할 수 있는 것은 쿤이 말하는 정상과학normal science에 의존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규범화된normé’ 과정을 재발견retrouver함으로써 가능한 것인데, 그 규범화된 과정에 대한 현행적 지식은 단지 하나의 순간일 뿐이며, 예언이라도 하지 않는 한 우리는 그 미래를 예상할 수 없다. 쉬잔 바슐라르Suzanne Bachelard를 인용한 캉길렘에 따르면, 과학사는 “이상적인 시공간”[14] 밖에서는 자신의 대상을 구성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 이상적인 시공간은 역사가의 박식함으로 축적되는 ‘현실적’ 시간에 의해서도 오늘날의 과학을 독단적으로 재단하는 이념성idéalité의 공간에 의해서도 주어지지 않으며, 바로 인식론의 관점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다. 인식론은 과학 전체와 가능한 과학적 언표 전체에 대한 일반 이론이 아니다. 그것은 서로 다른 과학적 활동들이 실제로 실행된 한에서 그 활동들에 내재하는 규범성을 탐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과학사가 역사 일반과는 다른 양식으로 구성될 수 있게 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이론적 성찰이다. 다른 한편 그 역으로, 과학사는 인식론이 어떤 주어진 순간에 어떤 과학의 내부 도식들을 단순히 재생산하는 것 이상이 되는 데 반드시 필요한 분석의 영역을 열어젖힌다.[15] 캉길렘이 사용한 방법론에서 ‘불연속론적’ 분석의 정교구성 및 제 과학과 인식론 간의 역사적 관계에 대한 해명은 병행하여 진행된다.

 

3. 이제 캉길렘은 생명과학을 역사적-인식론적 관점 안으로 전치시킴으로써, 생명과학의 전개를 다른 과학들의 전개에 비해 독특한 것으로 만들고singulariser 생명과학을 다루는 과학사학자들에게 특수한 문제들을 제기하는 몇 가지 본질적 특징을 드러낸다. 사실 18세기 말에는 생명 현상을 연구하는 생리학과 질병 분석을 수행하는 병리학 둘 사이에서 질병이 되는 변이의 특징을 보이는 것과 정상적 과정 둘을 단일한 것으로comme une unité 생각할 수 있게 만들어 줄 공통 요소가 발견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비샤Bichat에서 베르나르Claude Bernard까지, 열fièvre의 분석에서 간肝 기능의 병리학까지, 생리-병리학이라는 단일성을 약속하고 정상적 과정에 대한 분석에서 출발한 질병 현상 이해에의 접근을 약속하는 듯 보였던 하나의 광대한 영역이 열렸던 것이다. 건강한 유기체에게 기대되었던 것은, 그 유기체가 제공하는 일반적 틀에 병리적 현상들이 뿌리박고 있으며 그 틀 위에서 병리적 현상들이 단지 일시적으로만 〔질병이라는〕 고유한 형태로 구체화된다는 것이었다. 정상성normalité이라는 바탕 위에 세워진 이 병리학은 오랫동안 의학적 사유 전체를 특징지었던 것 같다.

 

그러나 생명의 인식la connaissance de la vie[16]에는, 생명의 인식을 물리-화학 영역에 준거할 수 있는 인식 전체와 분리시키는 현상들이 있다. 왜냐하면 생명의 인식은 오직 병리적 현상에 대한 탐구interrogation에서만 자신의 전개 원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질병, 죽음, 기형, 이상anomalie, 오류의 가능성이 자신의 〔탐구〕 대상에 본질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은 채로 생명체vivant에 대한 과학이 구성될 수는 없었다. 물론 우리는 〔생명체에 포함된 자기조절 과정과 자기보존 과정〕[17]〔의 작용〕을 설명하는assurer 물리-화학적 메커니즘을 점점 더 정교finesse하게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들은 여전히 생명과학이 고려해야 하는 어떤 특수성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는다. 그렇지 않으면 생명과학은 자신의 대상과 고유 영역을 구성하는 바로 그것을 지워버리게 될 것이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역설적인 사실이 생명과학에 나타난다. 즉 ‘과학화’ 과정이 생명과학의 구축 과정이 물리화학적 메커니즘의 발견, 세포화학 및 분자화학, 혹은 생물물리학 등과 같은 영역의 구축, 수학적 모델의 활용 등을 통해 이루어졌다면, 그것은 오히려 오직 생명질병의 특수성이라는 문제와, 다른 모든 자연적 존재자들 가운데에 생명질병이 기입하는marquer 문턱[18]이라는 문제가 하나의 도전으로서 끊임없이 재활성화되었던 한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19] 그렇다고 해서 이 사실이 그토록 많은 이미지를 유통시키고 그토록 많은 신화를 지속시켰던 생기론이 참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많은 경우 전혀 엄밀하지 않은 철학에 뿌리박혀 있었던 생기론이 생물학자들의 확고부동한 철학을 구축함이 분명하다는 의미도 아니다. 그것은 생물학의 역사에서 생기론이 ‘지표indicateur’로서 본질적인 역할을 가졌고 아마 지금도 가진다는 의미이다. 그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지표가 된다. 해결해야 할 문제들에 대한 이론적 지표(즉 일반적으로 말해 그것이 생명의 독자성을 구성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생명의 독자성이 결코 자연 안에 독립된 왕국을 구성하지는 않는다는 것)가 그 하나이고, 피해야 할 환원들(즉 보존, 조절, 적응, 생식 등이 무엇인지를 드러내는 특정 가치의 정립을 생명과학이 반드시 필요로 한다는 것을 간과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는 모든 환원들)에 대한 비판적 지표가 하나이다. “〔생기론은〕 방법보다는 요청이, 이론보다는 정신이 되어야 한다.”[20]

 

4. 생명과학은 자신의 역사를 쓰는 데 특정한 방식을 요구한다. 생명과학은 또한 독특한singulier 방식으로 인식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제기한다.

 

삶과 죽음 그 자체는 결코 물리학의 문제가 아니다. 심지어 물리학자가 자기 작업에서 자기 자신의 생명이나 다른 이의 생명을 걸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물리학자에게 그것은 도덕이나 정치의 질문이지 과학의 질문은 아니다. 르보프André Michel Lwoff의 말처럼, 물리학자에게 유전자 돌연변이는 〔인간에게〕 치명적이든 아니든 한 핵산염기가 다른 핵산염기로 치환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반면 바로 이 차이점에서 생물학자는 자신에게 고유한 대상의 표지marque를 인식한다. 그것은 또한 생물학자 자신이 〔일원으로〕 속해 있는 대상 유형의 표지이기도 한데, 이는 바로 생물학자 역시 삶을 살기 때문이고, 그가 그러한 생명체의 본성을 드러내고 행사하며, ‘인간과 환경 사이의 긴장을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해소하기 위한 방법 일반’으로 이해되어야 하는 인식 활동을 통해 그러한 생명체의 본성을 전개하기 때문이다. 생물학자는 생명을 인식의 특수한 대상으로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를 이해해야 하고, 나아가 그렇게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수많은 생명체 중에서 게다가 생명체라는 바로 그 이유로 인식이라는 것을 수행할 수 있고 결국에는 생명 그 자체에 대한 인식을 수행할 수 있는 존재자들이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현상학은 인식 행위 전체의 본래적 의미를 ‘체험된 것vécu’에서 찾았다. 하지만 그 의미가 ‘생명체vivant’ 자체라는 측면에서 찾아질 수는 없는 것인가? 아니면 그것은 거기서 찾아져서는 안되는 것인가?

 

캉길렘은 생명에 대한 지식과 이 지식을 절합articuler하는 개념들을 해명함으로써 생명 안의 개념concept dans la vie이라는 그 어떤 것을 찾으려 한다. 캉길렘이 찾으려는 개념은, 모든 생명체가 자신의 환경으로부터 추출해 내는, 또 역으로 모든 생명체가 바로 그것을 통해 자신의 환경을 구조화해 내는 정보information의 양식들 중 하나로서의 개념이다.[21] 인간이 개념적으로 축조된 환경에 살고 있다는 것은 인간이 어떤 망각oubli으로 인해 생명으로부터 멀어졌다는 것을[22] 증명하지 않으며, 역사의 드라마가 인간을 생명으로부터 분리시켰다는 것도 증명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은 인간이 특정한 방식으로 살고 있다는 것만을, 인간이 자신의 환경에 대해 고정된 관점을 취하지 않는 한에서 자신의 환경과 관계를 맺는다는 것만을, 인간이 움직이는 영역에 정해진 한계가 없거나 적어도 충분한 정도로 넓은 한계를 갖는다는 것만을, 인간이 정보를 받아들이기 위해서 돌아다녀야 한다는 것만을, 인간이 어떤 사물들을 다른 사물들과 관련해 움직이게 만들어 그 사물들을 유용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만을 증명할 따름이다. 개념을 형성한다는 것은 살아가는 한 가지 방식이지 생명을 죽이는 방식이 아니다. 그것은 상대적 유동성 가운데서 살아가는 한 가지 방식일 뿐 생명을 고정시키려는 시도가 아니다. 개념을 형성한다는 것은, 수많은 생명체가 자신의 환경을 꼴 짓고informer 그 환경으로부터 정보를 얻는 과정에서 우리가 바라는 바에 따라 사소하거나 중요하다고 판단하게 될 어떤 혁신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즉 그것은 매우 특수한 유형의 정보이다.

 

따라서 캉길렘은, 정상적인 것 및 병리적인 것에 대한 오랜 질문이 최근 수십 년 동안 생물학이 정보 이론에서 차용한 일단의 개념들(코드, 메시지, 메신저 등)과 생명과학 안에서 서로 만났다는 것에 중요성을 부여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일부는 1943년에 쓰였고 또 다른 일부는 1963 ~ 1966년 사이에 쓰인 『정상적인 것과 병리적인 것』은 의심의 여지 없이 캉길렘의 업적 중 가장 중요하고 가장 의미 깊은 책이다. 이 책에서 우리는 어떻게 생명의 특수성이라는 문제가, 진화의 전개가 가장 많이 이루어진 형태들에 고유하게 속한다고 간주되었던 몇몇 문제들을 만나게 되는 쪽으로 최근에 방향을 바꾸게 되었는지를 보게 될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의 중심에는 오류라는 문제가 놓여 있다. 왜냐하면 생명의 가장 근본적인 차원에서 일어나는 코드와 코드 해독의 게임jeu은 우발〔적 오류〕를 허용하며, 여기서 이 우발〔적 오류〕는 질병, 장애, 기형이 되기 이전에 정보 체계에서 일어난 어떤 교란이나 ‘잘못됨méprise’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생명이란 — 따라서 생명의 근원적인 특징은 — 바로 오류가 일어날 수 있는 어떤 것이다. 그리고 이상anomalie에 대한 질문이 생물학 전체를 꿰뚫는다는 것은, 아마도 〔생명의 근원적 특징이 오류 가능성에 있다는〕 이 소여를 통해, 차라리 근본적 우발성éventualité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통해 해명되어야 할 것이다. 돌연변이와 그 돌연변이가 초래하는 진화 과정 역시 이 소여 또는 우발성을 통해 해명되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이 독특하면서도 유전적인 오류와 관련해 저 소여 또는 우발성을 탐구해야 한다. 즉 생명이 결국 인간을 결코 전적으로 자신의 장소에만 있을 수는 없는 생명체가 되도록, ‘떠돌아다니errer’고 ‘실수하는se tromper’ 데 헌신하는 생명체가 되도록 만드는 오류와 관련해 저 소여 또는 우발성을 탐구해야 한다.

 

그리고 만일 우리가 개념이라는 것이 생명 자체가 이 우발〔적 오류〕에 돌려준 대답임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오류가 곧 인간의 사유와 역사를 만드는 것의 뿌리라는 것도 받아들여야 한다. 참과 거짓의 대립, 우리가 이들 양자에게 부여하는 가치, 서로 다른 사회와 제도가 이 분할에 연결시키는 권력의 효과, 이 모든 것들은 아마도 생명에 내재하는 이러한 오류의 가능성에 대한 가장 최근의 응답일 것이다. 만약 과학사가 불연속적이라면, 다시 말해서 과학사가 일련의 ‘수정’으로만, 결코 진리의 최후의 순간을 궁극적으로 영구히 해방한 적이 없는 참과 거짓의 새로운 분포로만 분석될 수 있다면, 이 경우에도 그것은 ‘오류’가 약속된 실현의 망각이나 지연이 아니라 인간 생명에 고유하고 인간 종의 시간에 필수적인 차원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니체는 진리가 가장 심오한 거짓말이라고 말했다. 니체와 가깝기도 한 동시에 멀기도 한 캉길렘은 진리가 생명의 거대한 달력에서 가장 최근에 이루어진 오류라고 말할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해 그는 참-거짓의 분할과 진리라는 것에 부여된 가치란, 그 기원에서부터 오류라는 우발성을 내포해 온 생명이 발명할 수 있었던 가장 독특한 삶의 방식이라고 말할 것이다. 캉길렘에게 오류란 끊임없는 우발〔적 오류〕이며, 그것을 중심으로 해서 생명의 역사와 인간의 생성devenir은 일어난다. 이러한 오류 개념은 그로 하여금 그가 생물학에 대해 알고 있는 바와 그가 생물학의 역사를 쓰는 방식을 결합할 수 있도록 만든다. 진화론의 시대에서 우리가 그랬던 것과는 달리, 그는 결코 생물학의 역사를 쓰는 방식을 생물학에 대해 알고 있는 바로부터 연역하려 하지 않았다. 그로 하여금 생명과 생명의 인식의 관계를 드러낼 수 있게 하고, 그 관계에서 마치 붉은 실처럼 가치와 규범의 현존을 추적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바로 이 오류라는 개념이다.

 

그 자신이 이미 매우 ‘합리주의’적이었던 이 합리성의 역사가는 오류의 철학자이기도 하다. 내 말은 그가 오류로부터 출발해서 철학적 문제들을, 더 정확히 말하자면 진리와 생명이라는 문제를 제기한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우리는 아마도 근대 철학사의 가장 근본적인 사건 중 하나를 다루게 될 것이다. 데카르트라는 거대한 단절이 진실과 주체의 관계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면, 18세기는 진리와 생명의 관계에 대한 일련의 질문을 가져왔는데, 『판단력 비판』[23]과 『정신현상학』[24]이 그 질문을 최초로 훌륭하게 정식화했다. 그 이후로 이 질문은 철학적 논의의 쟁점 중 하나가 되었다. 생명의 인식은 진리, 주체, 인식에 대한 일반적 질문에 속해 있는 한 영역에 불과한 것으로 간주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생명의 인식은 이 〔진리, 주체, 인식에 대한〕 질문을 다르게 제기하도록 강제하는가? 인식이 세계의 진리에 열려 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오류’에 뿌리박고 있는 한, 주체에 대한 모든 이론은 다시 정립되어야 하지 않는가?

 

우리는 캉길렘의 사유와 역사가이자 철학자로서 그가 수행한 작업이, 그토록 다양한 관점(마르크스주의, 정신분석, 언어학의 이론가들)에서 출발해 주체의 문제를 다시 생각해 보고자 하는 프랑스 내의 사람들에게 왜 그렇게나 결정적인 중요성을 가질 수 있었는가를 이제 이해한다. 물론 현상학은 신체, 섹슈얼리티, 죽음, 지각된 세계를 분석의 영역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다. 그러나 거기서는 여전히 코기토cogito가 중심적이다. 과학의 합리성도 생명과학의 특수성도 코기토의 근본적 역할을 위태롭게 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의미, 주체, 체험vécu의 철학에, 캉길렘은 생명체의 개념과 오류의 철학을 생명에 대한 통념에 접근하는 또 다른 방식으로서 대립시켰다.



[1] 〔역주〕 « La vie : l’expérience et la science », Dits et Écrits, t.4: 1980-1988, éd. Daniel Defert et François Ewald, avec collab. Jacques Lagrange, Paris: Gallimard, 1994, pp. 763~776.
『정상적인 것과 병리적인 것』 영문판 서문으로 이 글을 썼던 1978년, 푸코는 소르본에서 ‘비판이란 무엇인가?’라는 이름으로 프랑스철학회에서 강연을 수행했다. 강연에서 푸코는 자신의 강연에 ‘계몽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을 붙이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고 말하며,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일반적인 덕으로서의 비판적 태도’이며 그것이 곧 칸트가 말하는 ‘계몽’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해당 강연과 1978년 서문 모두에서, 푸코는 계몽의 문제가 사라지지 않고 이어져 독일, 프랑스, 영국에서 각각 고유의 방식으로 이어져 왔다고 말한다. 여기서 비판으로서의 계몽이 독일에서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비판이론이나 후설의 인식 비판으로 이어졌다는 것은 즉각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이 비판으로서의 계몽이 프랑스에서 과학사 작업으로 실현되었다는 주장은 어떻게 이해될 수 있을까?
푸코가 역사가와 과학자 사이의 〔역사적〕 인식론자라는 말로 표현하는 것은, 프랑스의 과학사 작업이 과학적 담론의 생산 조건을 드러내는 새로운 역사 쓰기 작업이었다는 것이다. ‘합리성’과 ‘이성’의 ‘현행성’에 대한 문제제기로서의 과학사는, 과학적 담론이 생산되어 온 역사가 결코 영원한 진리의 점진적 발견의 역사일 수 없음을 보여준다. 이성 비판으로서의 과학사는 특정 과학 영역의 ‘담론 생산 조건’을 드러내는 과학사이며, 그러한 담론 생산 조건을 드러낸다는 인식론적 관점 아래 일련의 과학적 일화를 배치하는 과학사이다.
이러한 과학사가 이성과 합리성, 그리고 지식에 대한 비판을 수행한다고 할 때, 우리는 푸코의 세 주제인 ‘지식, 권력, 주체’에 대해 같은 입장을 취할 수 있다. 지식의 역사를 씀에 있어서 그 지식의 생산 조건을 드러내는 역사를 쓰는 것이 비판적 역사 쓰기로서 중요하다면, 권력 작용을 통한 주체의 생산에 있어서도 특정한 주체를 생산하는 조건으로서 권력이 작용하는 역사를 쓰는 것이 관건이 될 것이고, 자기 자신을 통한 주체의 생산에 있어서도 그러한 주체를 생산하는 조건으로서 주체의 능동적 실천이 작용하는 역사를 쓰는 것이 관건이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중기 푸코의 권력론은 주체가 특정한 주체로 생산되는 한에서 그러한 주체를 생산하는 조건으로서 인간에게 작용하는 ‘힘’의 역사를 쓴 것이고, 후기 푸코의 윤리 논의는 나 자신을 나 스스로 특정한 주체로 생산하는 한에서 나 자신을 이전과는 다른 나 자신으로 생산하는 조건으로서의 ‘자유’와 그 능동적 실천의 역사를 쓴 것이라 할 수 있다.

[2] Husserl (E.), Cartesianische Meditationen. Eine Einleitung in die Phänomenologie, 1931, in Gesammelte Werke, t.I, La Haye, Martin Nijhoff, 1950 (Méditations cartésiennes. Introduction à la phénoménologie, trad. G. Peiffer et E. Levinas, Paris, Vrin, 1953).

[3] Heidegger (M.), Sein und Zeit, Tubingen, Max Niemeyer, 1927 (L'Être et le Temps, trad. R. Boehm et A. de Waelhens, Paris, Gallimard, 1964).

[4] Sartre (J.-P.), « La transcendance de l’ego. Esquisse d’une description phénoménologique », Recherches philosophiques, n°6, 1935; rééd., Paris, Vrin, 1988.

[5] Cavaillès (J.), Méthode axiomatique et formalisme. Essai sur le problème du fondement des mathématiques, Paris, Hermann, 1937; Remarques sur la formation de la théorie abstraite des ensembles. Étude historique et critique, Paris, Hermann, 1937.

[6] Mendelssohn (M.), « Ueber die Frage : Was heisst Aufklären? », Berlinische Monatsschrift, IV, n°3, septembre 1784, pp. 193-200. Kant (I.), « Beantwortung der Frage: Was ist Aufklärung? », Berlinische Monatsschrift, IV, n° 6, décembre 1784, pp. 491-494 (Réponse à la question : Qu'est-ce que les Lumières?, trad. S. Piobetta, in Kant [E.], La Philosophie de l'histoire [Opuscules], Paris, Aubier, 1947, pp. 81-92).

[7] Husserl (E.), Die Krisis der europäischen Wissenschaften und die transzendentale Phänomenologie. Einleitung in die Phänomenologie, Belgrade, Philosophia, t.I, 1936, pp. 77-176 (La Crise des sciences européennes et la phénoménologie transcendantale, trad. G. Granel, Paris, Gallimard, 1976).

[8] Fontenelle (B. Le Bovier de), Préface à l’histoire de l’Académie, in Œuvres, éd. de 1790, t. VI, pp. 73-74. 캉길렘은 이 대목을 다음에서 인용한다. l’Introduction à l'histoire des sciences, Paris, 1970, t. I. Éléments et Instruments, pp. 7-8.

[9] 이 주제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 Idéologie et Rationalité dans l’histoire des sciences de la vie, Paris, Vrin, 1977, p. 21.

[10] Cf. Études d’histoire et de philosophie des sciences, Paris, Vrin, 1968, p. 17.

[11] 캉길렘은 플로킨(M. Florkin)이 『생화학의 역사』(A History of Biochemistry, Amsterdam, Elsevier, part. I et II, 1972, part. III, 1975)에서 다뤘던 사례를 가져온다. cf. Idéologie et Rationalité, op. cit., p. 15.

[12] Idéologie et Rationalité dans l’histoire des sciences de la vie, op. cit., p. 14.

[13] 〔역주〕 여기서 푸코가 말하는 ‘인식론’은 절대적이고 영원한 ‘인식의 원리’ 또는 ‘앎의 원리’를 탐구하는 이론이 아니다. 여기서 언급되는 인식론은 이른바 ‘역사적 인식론’이다. 도미니크 르쿠르Dominique Lecourt에 따르면 역사적 인식론은 “과학적 인식들의 실제적인 – 역사적인 – 생산조건들을 벗기고 드러낸다.”(도미니크 르쿠르, 『맑스주의와 프랑스 인식론』, 황세연 옮김, 중원문화, 1996, 31~32쪽.) 순수 역사가가 일어난 역사적 사실을 소박하게 기록하는 일을 수행하고, 과학자가 자신이 몸담고 있는 영역에서 해당 영역의 담론 생산 규칙에 따라, 그리고 그 규칙을 스스로는 인지하지 못하는 한에서 담론적 인식 내용의 생산을 수행한다면, 양자 사이에서 역사적 인식론자는 그러한 담론적 인식 내용의 ‘생산 조건’을 인지한 한에서 그 인식 내용의 생산에 이르기까지의 역사적 사실들을 그 생산 조건을 드러내면서 서술하는 일을 수행한다. 그렇기에 그가 하는 일은 ‘길 내기cheminement’이자 ‘과학의 고고학’이 된다. 역사적 인식론자가 하는 일은 인식의 본연적 권리를 영원한 원리 위에 정초하는 일이 아니라, 담론적 인식의 내용이 바로 그 내용으로 생산될 수 있었던 조건과 과정을 드러내는 일이다. 따라서 역사적 인식론에 따라 역사를 서술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역사적 인식론자는 과학자, 역사가, 인식론자 셋 모두가 되어야 한다. 즉 그는 과학자로서 자기 영역의 담론 생산 규칙을 잘 알고 있어야 하고, 역사가로서 자기 영역에서 생산된 담론을 역사적으로 잘 기술할 수 있어야 하며, 인식론자로서 자기 영역의 담론 생산 조건을 비판적으로 드러내는 관점을 유지해야 한다.

[14] Bachelard (S.), « Épistémologie et Histoire des sciences » (XIIe Congrès international d'histoire des sciences, Paris, 1968), Revue de synthèse, IIIe série, n° 49-52, janvier- décembre 1968, p. 51.

[15] 인식론과 역사의 관계에 대해서는 특히 다음을 참조. l’Introduction à Idéologie et Rationalité…, op.cit., pp. 11-29.

[16] 〔역주〕 la connaissance de la vie는 ‘생명에 대한 인식’인 동시에 ‘생명의 인식’이기도 하다. 즉 그것은 생명에 대해 인간이 수행하는 인식인 동시에, 인간이 생명인 한에서 수행하는 인식이기도 하다. 이 인식에는 인간이 생명이기 때문에 부여하지 않을 수 없는 일련의 가치가 정상성 및 건강이라는 형태로 개입한다. 차라리 이 인식에 어떤 가치가 개입하는 한에서만 그 인식은 그 인식으로서 성립할 수 있다고 하겠다. 여기서 그 인식이 객관성을 획득했다는 사실과, 그 인식에 특정 가치가 개입했다는 것은 별개다. 즉 그 인식은 가치가 개입된 인식이라는 점에서 그렇게 개입된 가치를 드러내는 것으로서의 비판을 피할 수 없는 한편, 가치가 개입된 인식임이 인지된 한에서의 객관성을 (절대적 객관성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가질 수 있다.

[17] 〔역주〕 1978년 서문에서 대명사가 가리키는 내용을 찾아 삽입함.

[18] 〔역주〕 자연적 존재자로서의 생명을 설명하는 데 질병이 하나의 ‘문턱’이 되어 그 설명을 가능하게 해준다는 의미.

[19] Études d’histoire et de philosophie des sciences, op. cit., p. 239.

[20] La Connaissance de la vie, 1952, 2e éd., Paris, Vrin, 1965, p. 88.

[21] 〔역주〕 information에는 forme를 준다는, 즉 꼴 짓는다는 뜻이 넓은 의미로 포함되어 있다. 생명체는 자신이 그 안에 처해 있는 환경으로부터 정보를 추출해 내기도 하지만, 반대로 그 정보를 통해 자신의 환경을 특정한 형태forme로 꼴 짓는다. 정보 개념에 대한 보다 넓은 의미를 염두에 둘 것.

[22] 〔역주〕 즉 ‘생명이 아닌 것이 되었다는 것을’.

[23] Kant (I.), Kritik der Urteilskraft, 1790, Gesammelte Schriften, t. V, Berlin, Königlich Preussichen Akademie der Wissenschaften, 1902, pp. 165-486 (Critique de la faculté de juger, trad. Alexis Philonenko, Paris, Vrin, 1965).

[24] Hegel (G. W. F.), Phänomenologie des Geistes, Wurtzbourg, Anton Goebhardt, 1807 (La Phénoménologie de l’esprit, trad. Jean Hyppolite, Paris, Aubier-Montaigne, coll. « Philosophie de l’esprit », t. I, 1939, t. II,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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