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파리의 형사 법정에서 벌어졌던 짧은 대화로 시작해볼까 합니다. 1975년 2월에서 6월 사이에 벌인 다섯 번의 강간과 여섯 번의 강간 미수로 기소된 한 남자가 재판을 받고 있었습니다. 피고인은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재판장은 다음과 같이 물었습니다. “피고인은 자신이 저지른 사건을 되돌아본 적 있습니까?”침묵. “왜, 22살의 나이에 그렇게 폭력적인 충동이 피고인을 압도했습니까?”침묵. “피고인은 자신을 분석하려고 노력해야만 합니다. 피고인은 자신의 행위를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입니다. 자신에 대해 해명해 보십시오.”침묵. “왜 당신은 폭력 행위를 재차 저질렀나요?”침묵. 그러자 한 배심원이 나서서 소리쳤습니다. “제발 자신을 변호하시오!”
그러한 대화, 아니 오히려 심문의 성격을 지니는 그러한 독백은 전혀 예외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틀림없이 여러 나라의 많은 법정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시각에서 보면, 그러한 예는 역사가를 놀라게 합니다. 우리는 경죄(misdemeanors)[4]를 규정하고, 누가 범죄를 저지르는지 결정하며, 법으로 정한 처벌을 부과함으로써 그러한 범죄행위를 제재하도록 고안된 사법 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경우, 우리는 범죄를 시인하는 개인 - 그 결과, 자신이 받을 처벌을 수용하는 개인 - 이 있다는 사실이 확립돼왔음을 알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모든 실현 가능한 사법 세계 중 최고의 세계에서 가장 좋은 것이어야만 합니다.[5]입법자들,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 법체계의 설계자들은 더 명확한 상황을 꿈꿀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기계가 고장 나고, 톱니바퀴가 멈추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피고인이 침묵을 고수했기 때문입니다. 무엇에 대해서 침묵을 지키는 걸까요? 사실에 대해서? 상황에 대해서? 사건이 일어난 방식에 대해서? 사건의 직접적인 원인에 대해서? 모두 아닙니다. 피고인은 150년 전에는 낯설게 들렸겠지만, 현대(modern) 법정의 눈으로 볼 때는 필수적인 질문을 회피합니다. 즉 “당신은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이 그것입니다.
“나는 당신 앞에 있는 범죄자입니다. 그뿐입니다. 당신은 판결해야만 하니 판결하시고, 원하는 대로 유죄를 선고하십시오.”제가 막 인용한 대화는 “당신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피고인의 답변으로 충분치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에게는 훨씬 더 많은 것이 기대됩니다. 시인을 넘어서, 당사자의 고백, 자성, 해명이 있어야만 하고, 자신이 무엇인지에 대한 폭로가 있어야만 합니다. 사법 기계(penal machine)는 더 이상 법, 위반, 책임자에 맞춰 간단히 기능할 수 없으며 - 그것은 어떤 다른 것, 보충적인 것을 필요로 합니다. 치안판사(magistrates)와 배심원, 변호사는 물론이고 검찰국도 담론의 다른 형태, 즉 피고인의 자기 자신에 대한 담론, 또는 피고인의 고백, 기억, 내밀한 폭로 등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위해 피고인이 만든 담론을 제공받지 않는다면, 그들의 역할을 실제로 수행할 수 없습니다. 만약 이러한 담론이 누락 된다면, 재판장은 혹독해지고 배심원들은 화를 낼 것입니다. 재판장과 배심원들은 피고인을 재촉하고 압박하지만, 피고인은 그 게임에 응하지 않습니다. 그는 미온적이라는 이유로 단두대나 전기의자에 보내져야 한다는 사형수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한 이들이 사형받기를 원한다면, 실제로 스스로 조금이라도 걸어야 합니다. 그들이 심판받고자 한다면, 실제로 스스로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말해야 합니다. 최근 한 아이를 납치 살해한 사건을[6]맡은 프랑스의 한 변호사가 사용한 다음과 같은 논증은 사법 단계에서 자신에 대해 말하는 것 없이는 [판단] 요소들을 더할 수 없다는 것, 즉 어떤 판단도, 어떤 비난도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명확히 가리킵니다.
여러 이유에서, 이 사건은 범죄의 심각성뿐 아니라 사형제 존치 또는 폐지에 대한 문제까지 결부돼 큰 파장을 불러 왔습니다. 변호사는 항변에서, 즉 피고인이 원하는 처벌보다 더 강한 처벌인 사형선고에 대한 항변에서, 피고인에 대해 알려진 것이 거의 없고, 피고인의 본성이 심문과정과 정신감정에서 거의 드러나지 않았음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다음과 같은 놀라운 언급을 합니다. (그대로 인용해 보자면) “누구도 알지 못하는 한 사람에게 누가 사형을 선고할 수 있습니까?”[7]
이것은 아마도 하나의 잘 알려진 사실의 예증에 지나지 않는데, 그 사실이란 “3번째 요소의 법”또는 가로팔로(Raffaele Garofalo)[8]가 완벽한 명징성으로 이를 정식화했기 때문에 “가로팔로의 법”으로 불립니다. 즉 “[지금까지의] 형법은 오직 범죄와 처벌이라는 두 가지 조건만 알고 있었다. 새로운 범죄학은 세 가지 조건 즉 범죄, 범죄자, 억제수단을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발전 - 형벌 제도가 아니더라도 적어도 많은 국가에서 행해지는 일상적인 형벌 관행 - 은 이러한 추가적인 특징이 19세기 법정에서 점진적으로 등장하면서 정의됩니다. 처음에는 판사가 범죄에 대해 결정한 형벌을 조정하는 데 사용되는 창백한 유령에 불과하던 이 인물(character)은 점차 더 실체적이고, 더 견고하고, 더 현실적인 것이 되었는데, 이는 범죄가 오직 범죄자 주위를 맴도는 그림자, 현재 유일하게 중요한 것인 범죄자임을 밝히기 위해서 [범죄자로부터] 걷혀야만 하는 그림자로 보일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오늘날의 형사 사법(legal justice)은 최소한 범죄만큼이나 범죄자와 많은 연관이 있습니다. 또는, 더 명확히 말하자면, 오랫동안 범죄자들은 범죄의 원인으로서 처벌될 수 있는 사람에 지나지 않았지만, 오늘날 범죄는 사회체에서 위험한(dangerous) - 즉, 다소 위협적인(dangerous) –요소의 존재를 알리는 사건에 지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발전의 초기에, 범죄를 넘어서서 범죄자에게 의존하는 것은 두 가지 관심사에서 정당화됩니다. 형벌 실천에 합리성을 더욱 도입하는 것, 법과 사법 체계의 일반 조항들을 사회 현실에 더 가깝게 맞추는 것이 그것입니다. 범죄의 법적 유책성(imputability) 개념에 위험의 심리적 증상이라는 개념을 추가하는 것은, 극히 잘 알려지지 않은 미로로 들어가는 것일 뿐 아니라 서서히 중세의 종교재판 기간에 탄생하여 점차 발전해 온 사법 체계에서 빠져나오는 것임을 아마도, 최소한 처음에는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위대한 18세기가 도래하자마자 사법 개혁가들은 선행하는 발전의 결과로 도출된 체계적인 법전화를 완성했고, 그들이 법률의 모든 가능성을 발전시킨 바로 그때 법적 처벌의 법칙과 규정에서 새로운 위기가 드러나기 시작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무엇이, 어떻게 처벌되어야 하는가?”이것은 마침내 합리적 대답이 발견되었다고 믿었던 질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 사안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또 다른 질문이 생겼습니다. “당신은 누구를 처벌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가 그것입니다.
이러한 발전에 있어서, ‘위험’이란 개념뿐 아니라 정신의학과 정신의학자들도 영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저는 범죄적 위험의 ‘정신병리화(psychiatrization)’라고 부를 수 있는 두 단계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법의 영역에서 정신의학의 개입은 19세기 초에 발생하였고, 이는 1800년과 1855년 사이에 발생한 일련의 사례들과 관련하여 발생하였으며 정신의학의 개입 패턴은 거의 같았습니다.
메츠거(Metzger)가 보고한 사례: 고독한 삶을 살던 퇴역 장교는 그의 집주인 아이에게 애착을 갖게 됩니다. 어느 날 “어떠한 이유도 없이, 분노, 우월감, 원한과 같은 어떠한 격정도 없이”, 그는 그 아이를 폭행하고 비록 치명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망치로 두 차례 가격하였습니다.
셀레스타(Sélestat) 지역의 사례[9]: 기근이 맹위를 떨치던 1817년 알자스 지방의 혹독한 겨울에, 한 여성 소작농이 남편이 직장에 가 있는 때를 놓치지 않고 그녀의 어린 딸을 살해하고, 다리를 자른 후 그것을 수프에 넣어 요리하였습니다.
1827년 파리에서 앙리에트 코르니에(Henriette Cornier)라는 한 하인이 고용주의 이웃집으로 가서 이웃집 딸을 잠시 그녀에게 맡겨달라고 강하게 요구하였습니다. 그 이웃은 주저했지만, 동의했습니다. 그녀가 아이를 찾으러 돌아왔을 때, 앙리에트 코르니에는 막 죽인 아이의 머리를 잘라서 창밖으로 던져버렸습니다.[10]
비엔나에서 캐서린 지글러(Catherine Ziegler)는 그녀의 사생아를 살해하였습니다. 증인대에서 그녀는 자신의 행동이 저항할 수 없는 힘의 결과라고 설명하였습니다. 그녀는 정신이상(insanity)이라는 이유로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석방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다시 살인을 저지를 것이기 때문에, 자신이 감옥에 있는 편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10개월 후에 그녀는 아이를 낳았는데, 그 즉시 아이를 살해하였고, 법정에서 그녀는 오직 자신의 아이를 살해할 목적으로 임신하였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녀는 사형선고를 받고 처형되었습니다.
스코틀랜드에서, 존 호이슨(John Howison)이라는 사람은 한 집에 들어가서, 생면부지의 노파를 죽이고, 어떤 것도 훔치지 않은 채 떠났으며 숨지도 않았습니다. 체포되었을 때, 그는 모든 증거를 부정했습니다. 하지만 변호사는 물질적 동기가 없기에, 정신이상자의 범죄라고 주장하였습니다.호이슨은 처형되었고 사형집행장의 한 관리에 대한 그의 언급, 즉 호이슨이 그 관리를 죽이고 싶어했다는 언급은, 나중에 광기(madness)의 추가증거로 간주되었습니다.
뉴잉글랜드의 탁 트인 들판에서 아브라함 프레스콧(Abraham Prescott)은 그와 항상 잘 지내던 양어머니를 살해했습니다. 그가 집으로 가서 양부 앞에서 울음을 터뜨리자 양부가 그에게 이유를 물었습니다. 프레스콧은 자신의 범죄를 선뜻 고백했습니다. 프레스콧은 나중에 갑작스럽고 극심한 치통 때문에 어떤 것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조사결과 그는 이미 한밤중에 그의 양부모를 공격했었고, 그 행동이 몽유병 발작의 결과로 여겨졌었습니다. 프레스콧은 사형판결을 받았지만, 배심원들은 감형을 권고했습니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형되었습니다.
그 시대의 정신의학자들인 메츠거, 호프바우어(Hoffbauer), 에스키롤(Esquirol)과 조르제(Georget), 윌리엄 앨리스(William Ellis)와 앤드류 콤(Andrew Combe)은 이러한 사례들과 동일 유형의 사례들을 끊임없이 언급하였습니다.
수많은 범죄 중에서, 왜 이렇게 특정한 사례들이 중요할까요? 왜 그러한 사례들은 의사와 법학자들 간의 토론에서 논쟁거리가 되었을까요? 우선 그러한 사례들이 지금까지 범죄에서의 정신이상에 대한 법리(jurisprudence)를 구성했던 것과는 매우 다른 그림들을 제시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18세기 후반까지 보통 정신이상에 대한 의문은 오직 형법에서만 제기되었고 민법 또는 교회법에서 등장하는 경우에는, 지적장애나 인지장애[11]의 형태 또는 격정(furor)의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모두에서, 그것이 영구적인 상태의 문제이건 일시적인 폭발의 문제이건 간에,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 의사가 정말로 필요한지를 토론해야 할 정도로, 인지하기에 매우 충분하고 많은 신호를 통해 그 자신을 드러냅니다. 중요한 것은 범죄 정신의학(criminal psychiatry)은 인지장애의 전통적인 문제를 정교하게 재정의하거나(예를 들어, 인지장애의 점진적인 발전, 인지장애의 거시적인 또는 미시적인 특징, 개인의 선천적인 장애와 인지장애의 관계를 논의함으로써), 격정의 징후들(격정의 진정, 격정의 재발, 격정의 리듬)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통해 발전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문제와 함께 여러 해 동안 진행되었던 논의는 새로운 문제들로 교체되었는데, 즉 전례도 없거니와, 전통적으로 인식될 수 있는 가시적인 정신이상의 징후들이 선행되거나 동반되지 않는 범죄로 대체되었다는 것입니다. 각각의 경우 정신이상은 어떠한 전력(previous history)도 없으며, 사고나 행동에서 어떠한 초기 불안(disturbance)도 없고, 어떠한 섬망(delirium)도 없음이 강조됩니다. 그뿐 아니라 어떠한 동요도, 격정에서 나타나는 것으로의 가시적인 장애도 없습니다. 사실 문제가 된 범죄는 어떤 사람이 정신이상의 영[0]도라고 부를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발생한 것입니다.
두 번째 공통적인 특징은 길게 다루기에는 너무나 명백한 것입니다. 문제가 되는 범죄들은 경죄가 아니라 중죄이고, 대부분 살인, 때때로 기이한 잔혹 행위들(셀레스타 지역 여성 사례에서 식인)을 동반합니다. 비행의 정신병리화가 ‘위로부터’온 맥락에서 발생했다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비행의 정신병리화는 또한 기존 법리의 근본적인 경향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매우 중대한 범죄에서, 정신이상의 문제(오랫동안 정신이상은 신성모독 또는 대역죄를 포함한 사례들에서 참작되지 않았죠)를 제기하는 것은 흔치 않았습니다. 정신이상과 불법 사이에 상당한 중첩 영역이 있다는 것은, 경죄 사례 - 사소한 폭력, 부랑 - 에서 쉽게 인정되었고 이러한 사례들은 적어도 몇몇 나라들(프랑스와 같은)에서 수용이라는 애매한 방법으로 다뤄졌습니다. 하지만 정신의학이 형사 사법(penal justice)에 전면적으로(in full force) 침투할 수 있었던 것은 일상에서의 무질서라는 불분명한 영역을 통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가장 폭력적이면서도 가장 희소한 종류의 엄청난 범죄 사건을 건드림으로써 이뤄졌습니다.
이러한 엄청난 살인들의 또 다른 공통의 특징은 이 사건들이 가정이라는 배경에서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이 사건들은 가족 범죄, 가구 범죄, 기껏해야 이웃 범죄 - 부모가 그들의 자식을 죽이거나, 자식이 그들의 부모나 보호자를 죽이거나, 하인이 그들의 고용주의 아이나 이웃 아이를 죽이는 등 - 들입니다. 우리가 볼 수 있듯이, 이러한 사건들은 다른 세대의 피해자들(partners)이 발생한 범죄들입니다. 아이-어른 또는 청소년-성인 쌍은 거의 항상 등장합니다. 그 당시에 그러한 나이, 장소, 친족의 관계들은 동시에 가장 신성하고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었고, 또한 가장 순수한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관계들은 모든 관계 중에서 물질적 동기나 격정이 가장 적게 작용하는 관계였습니다. 이러한 관계에서의 범죄는 사회와 그 규칙에 반하는 범죄들이 아니라 오히려 자연(nature), 즉 인간의 마음속에 직접 새겨지고 가족과 세대에 연결된 것으로 인지된 그러한 법에 반하는 범죄였습니다. 19세기 초반에 정신이상의 문제가 적절히 제기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범죄의 형태는 사실 자연(nature)에 반하는 범죄였습니다. 정신이상과 범죄성의 관계 문제를 제기할 정도로 전문가를 필요로 하는 정신이상과 범죄성이 만나는 개인은 일상의 작은 무질서에서 비롯된 사람들, 즉 법과 정상성의 언저리를 돌아다니는 창백한 실루엣이 아니라 오히려 끔찍한 괴물이었습니다. 범죄 정신의학은 처음에 자기 자신을 끔찍한 존재들(the monstrous)의 병리학이라고 선언했습니다.
마침내, 이러한 모든 범죄는 이유 없이 일어났습니다 - 여기서 이유가 없다는 것은 이윤, 격정, 동기를 찾을 수 없으며 심지어 착각(disordered illusions)에서도 기인하지도 않음을 의미합니다. 제가 언급한 모든 사례에서, 정신의학자들은 그 드라마의 두 행위자 사이에서 범죄를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드는 데 도움을 줄 어떠한 관계도 없었다고 주장함으로써 자신들의 개입을 정당화합니다. 이웃집 딸을 참수한 앙리에트 코르니에 사례의 경우, 그녀는 아이 아버지의 정부(情婦)가 아니었고, 복수심으로 행동했던 것도 아니라는 것이 신중하게 규명되었습니다. 딸의 넓적다리를 삶은 셀레스타 지역 여성 사례의 경우, 논쟁의 중요한 요소는 “당시 기근이 있었는가, 없었는가? 피고인이 빈곤했는가, 아닌가?, 굶주렸는가, 아닌가?”였습니다. 검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만약 그녀가 부유했었다면 그녀는 착란을 일으켰다고(deranged) 여겨졌을 테지만, 그녀는 가난에 허덕였고, 굶주렸기에, 다리를 양배추와 요리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행동이며 그러므로 그녀는 미치지 않았다.”
새로운 정신의학이 확립되고, 형벌 개혁(penal reform)의 원칙들이 유럽과 북미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적용되고 있었을 그때, 이유도 없이, 느닷없이, 자연에서의 비자연적인 것의 갑작스러운 분출인 엄청나고 끔찍한 살인은 범죄적 정신이상 또는 병리적 범죄로 여겨지는 독특하고(singular) 역설적인 형태였습니다. 제가 역설적이라고 말한 이유는 그것이 범죄 그 자체 외에는 아무런 징후도 없고 일단 범죄가 발생하면 사라질 수 있는 착란(derangement), 즉 범죄를 가장하여 오직 범죄의 순간에만 자신을 드러내는 착란의 한 형태를 파악하려는 시도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역으로, 이는 범죄의 원인인, 범죄 당사자 –범죄에 대해 “법적으로 책임지는 대리인(agent) 말이죠” - 를 범죄의 책임을 넘어서는 주체의 부분으로서 인식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범죄자에게 감춰진 정신이상, 이러한 정신이상은 범죄자가 종종 인식조차 할 수 없기에 범죄자가 통제할 수 없습니다. 19세기 정신의학은 정신이상인 범죄, 정신이상일 뿐인 범죄, 범죄일 뿐인 정신이상 같은 완전히 가상의 실체(entity)을 만들어냈습니다. 반세기가 지나면서 이러한 실체는 ‘살인광(homicidal monomania)’으로[12]불렸습니다. 저는 그 개념의 이론적 배경을 검토하거나 법률가와 의사, 변호사와 치안판사 사이에서 촉발된 수많은 논쟁을 따라갈 생각은 없습니다. 저는 단지 다음의 기이한 사실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정신의학자들은 매우 끈질기게 사법 체계(legal machinery)에서 그들의 장소를 만들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정신의학자들은 가장 일반적인 범죄에 수반될 수 있는 눈에 보이는 광기의 수천 가지 작은 신호를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오직 충격적인 범죄에서만 그 자신을 드러내고 다른 방식으로는 나타나지 않는 정신이상의 종류가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기묘한 입장이죠 -자신들의 개입권을 정당화하였습니다. 그리고 제가 또 하나 강조하고자 하는 사실은, 편집광(monomania) 개념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모든 치안판사의 의구심에도 불구하고 당시 판사들이 마침내 범죄자의 정신감정을 수용하였을 때, 자신들에게 이질적이고 받아들일 수 없는 이러한 개념에 기반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왜 살인광(homicidal mania)에 대한 거대한 허구가 범죄 정신병리학의 원사(protohistory)에 있어서 핵심 개념이 되었을까요? 처음에 제기되는 일련의 의문들은 아마도 다음과 같을 것입니다. 19세기 초 정신의학의 과업은 의학 분야에서 정신의학의 특수성을 규정하고 다른 의료적 실천들 사이에서 정신의학의 과학적 특징을 확인하는 것이었는데 - 그 시점에, 즉 정신의학이 자기 자신을 의료적 전문분야로 확립할 당시 (이전 정신의학은 의학 영역에서 논외의 측면이었죠) - 왜 정신의학은 어느 정도까지만 매우 개별적으로 개입했던 의학의 영역에 관여하기를 원했을까요? 왜 의사들은 그 시점까지 한낱 범죄자로서 지위를 의심할 여지가 없었던 사람들을 미쳤다는 식으로 그렇게 처참하게 묘사하기를 원했을까요? 왜 그렇게 많은 나라에서 판사와 배심원들의 의료적 무지를 맹렬히 비난하고, 확실한 유죄의 처벌에 대해 사면 또는 감형을 요청하고, 법정에서 전문가로서 말하기를 요구하며, 이 범죄자 또는 그 사람이 광인임을 보여주는 수많은 보고서와 연구를 출판하려는 정신의학자들이 나타날 수 있었을까요? 왜 이 십자군들은 살인광이라는 기치 아래 범죄의 ‘병리화’를 지지하는 운동을 벌이는 걸까요? 이러한 점에서 더욱더 역설적인 것은, 불과 18세기 말에 정신이상의 거의 첫 연구자들(특히 필립 피넬(Philippe Pinel))이 비행자들과 비정상인들(mentally ill)을 구분 없이 수용한 많은 감금 시설들에서 행해지던 실천들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정신의학은] 왜 그토록 어렵게 허물었던 [광기와 비행 사이의] 유사성(kindship)을 다시 일신하기를 원한 것일까요?
정신의학자들이 자신들을 위한 새로운 영역을 찾는다는 측면에 대해 일종의 제국주의라고 부르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고, 심지어 광기와 범죄가 뒤섞인 혼란스러운 영역을 합리화하려고 시도하는 의료 지식의 내적 역학까지도 고려해야 합니다. 범죄는 정신의학자들에게 중요한 주제가 되었는데, 왜냐하면 범죄란 정복해야 하는 지식의 영역이라기보다는 확보하고 정당화해야 할 권력의 한 양식이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정신의학이 19세기에 그렇게 중요해졌다면, 정신 장애 또는 행동 장애에 새로운 의료 합리성을 적용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여기에는 정신의학이 또한 일종의 공중위생으로서 기능했던 점도 있었습니다.
(계속)
[1]번역에 참조한 대본은 다음과 같다. Foucault, M. 1978. About the concept of the “dangerous individual” in 19th-century legal psychiatry. International Journal of law and Psychiatry, 1(1), 1-18.
[2]각주는 모두 역자의 각주이다. 번역과 관련한 모든 문의는 아래 메일 주소를 이용하라.
[4]참고로 misdemeanor는 한국에서는 경범죄로 번역되지만, 미국에서는 중범죄를 제외한 모든 범죄를 일컫는다. 우리는 여기에서 minor offense도 마찬가지로 ‘경죄’로 번역한다. 프랑스의 범죄 분류는 중죄(crime), 경죄(délit), 위경죄(contravention)라는 삼분 체계를 따른다.
[5]“All should be for the best in the best of all possible judicial worlds.”프랑스어판은 “Tout devrait être pour le mieux dans le meilleur des mondes judiciaires.”이는 아마도 볼테르(Voltaire)가 『캉디드(Candide)』(1759)에서 제시한 “tout était pour le mieux dans le meilleur des mondes possibles”(모든 것은 가능한 세계들 중에서 최상의 세계에서 가장 좋다)란 문장의 변용으로 보인다. 이 문장은 볼테르가 책에서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를 비판하기 위해 라이프니츠의 대리인 역으로 출연시킨 팡글로스(Pangloss)의 말이다. 라이프니츠는 『변신론(辯神論, theodicy)』(1710)에서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는 것과 같은 세계는 가능한 세계들 중에서 최상의 세계”라고 말한 바 있는데 볼테르는 이에 대해 그럼 그런 세계에서 리스본 대지진(1755)이 왜 일어난 것인가? 라는 의문을 던지며 라이프니츠가 지나친 낙관주의를 펼치고 있다고 비판한다. 즉 이 문장은 푸코가 오늘날의 법체계를 법체계 발전의 최선의 결과로 평가하는 법학자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맥락으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6]이 사건의 자세한 내용은 가톨릭신문사에서 나온 로베르 바댕테르(Robert Badinter)의 『사형제도에 반하여』(송민주 역, 가톨릭신문사 2018)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사건의 간략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파트릭 앙리(Patrick Henry)는 1976년 1월 8일 7살의 필립 베르트랑(Philippe Bertrand)을 하굣길에 유괴하고 부모에게 몸값을 요구하였다, 9일 후 체포 현장에서 교살당한 아이의 시체가 발견되면서, 프랑스 전역이 그에 대한 증오로 들끓게 되었다. 당시 법무부 장관과 내무부 장관도 공개적으로 사형을 주장했던 이 사건은 프랑스 전역에 사형제 찬반논쟁을 일으킨 사건으로 알려져 있다. 법정 공방 끝에 파트릭 앙리는 최종적으로 무기징역 판결을 받았다. 푸코는 1977년 5월 30일 이 사건과 관련해 담당 공동 변호사인 로베르 바댕테르, 그리고 심리학자인 장 라플랑슈와 공개 토론을 벌였으며, 이는 <르 누벨옵세르바퇴르>에 게재되었다. 해당 토론은 앞서 소개한 『사형제도에 반하여』에 전문이 수록되어 있다. 이 문장에서 푸코가 말하는 ‘한 변호사’는 로베르 바댕테르 변호사이다.
[7]푸코는 재판 도중 어느 순간부터 돌연히 입을 다문 파트릭 앙리에 대한 바댕테르의 법정 변론을 매우 인상 깊게 받아들였던 것으로 보인다. 『사형제도에 반하여』에 실린 바댕테르, 라플랑슈와의 공개 토론을 보면 푸코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바댕테르 변호사 당신은 당신이 한 일에 대해서 아주 최소한의 해석만을 하고 있습니다. 배심원들에게 당신은 말했습니다...“여러분은 이 사람을 알지 못합니다. 정신의학자들도 그에 대해 아무것도 말해줄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그를 사형에 처하려고 합니다!”...당신의 전략이 예리해 보이는 것은 당신이 19세기 초부터 이어진 형법의 기능을 꼼짝 못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사형제도에 반하여』(송민주 역, 가톨릭신문사, 2018) 113-114쪽.
[8]라파엘 가로팔로(Raffaele Garofalo, 1852-1934). 이탈리아 범죄학파의 일원인 가로팔로는 이전까지 형법학이나 형벌학의 한 부분으로 다뤄지던 범죄와 범죄인 관련 사항들을 범죄학(Criminology)이라는 용어를 처음 만들어 정립하였다. 그는 고전학파 학자들의 주요 개념인 인간의 ‘자유의지’라는 부분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단지 범죄는 과학적인 수단에 의해서 분석하고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9]범행을 저지른 자의 이름을 붙인 다른 사례와 달리 특정 지역에서 벌어진 익명의 범행을 소개하고 있어서 다른 사례와 구별해 주기 위해 ‘지역’이라는 말을 붙였다.
[10]푸코는 앙리에트 코르니에의 사례를 1974년-1975년 콜레드주프랑스 강의인 『비정상인들』(박정자 역, 동문선, 2001)의 1975년 2월 5일 강의에서 매우 상세히 분석하고 있다.
[11] dementia는 ‘치매’로 번역될 수 있으나 치매란 단어가 어리석고(癡), 미련하다는(呆) 폄하적 의미를 담고 있기에, 여기서는 dementia의 번역어로는 ‘인지장애’를 사용한다. 이는 보건복지부에서 현재 모멸적 의미를 담고 있는 ‘치매’의 대체용어로 검토 중인 ‘인지장애’‘인지저하’‘신경인지장애’등의 용어에서 참조하였다.